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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ㅡ 에너지의 역습 - P305

여성평화캠프
그린햄 커먼 - P309

‘평화를 위한 특별열차‘ - P310

20세기의 가장 큰 ‘정치적 사건‘은 볼셰비키혁명이었고 가장 중대한 ‘기술적 사건‘은 핵무기 개발이었다. - P311

핵폭탄 제조를 가능하게 한 과학의 발달과정은 『전쟁의 물리학』(배리 파커 지음, 김은영 옮김, 북로드, 2015), 424~471쪽을, 핵폭탄의 원리는 원자핵에서 핵무기까지 다다 쇼 지음, 이지호 옮김, 한스미디어, 2019)를 참고해 서술했다. - P312

영국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 P313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과학 셀럽‘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 P314

연구팀은 비교적 단순한 포신형 (gun type) 우라늄235 폭탄과구조가 복잡한 내폭형 (implosion type) 플루토늄 폭탄을 동시에 개발했다. - P315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경위는 『카운트다운 1945』(크리스 월리스 미치 와이스 지음, 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2020)를 참조해 서술했다. - P316

미군이 히로시마에 투하한 ‘꼬마(Little Boy)‘는 우라늄235를 쓴 12.5kt 원자폭탄으로, 구조가 매우 단순한 포신형이라 폭발 실험도 하지 않고 실전에 투입했다. - P317

나가사키에 떨어진 22kt 규모의 ‘뚱보(Fat Man)‘는 뉴멕시코 사막에서 폭발 실험을 한 것과 같은내폭형 플루토늄 폭탄이었다. - P317

두 나라는 냉전시대 40년 동안 폭발력이 더 큰 핵폭탄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그것을 적진으로 실어 보낼 미사일을 만드는 데 돈과 인력을 쏟아 부었다. - P318

소련은 1955년 5천km 넘게 날아가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제작했고 2년 뒤에는 초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만들었다. - P319

소련이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하자 미국은 전술용 소형 핵폭탄을 개발하는 한편 수소폭탄을 만들었다. - P320

아인슈타인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런던에서 러셀 - 아인슈타인 선언」을 발표했다. - P321

폴란드 출신 물리학자 조지프 로트블랫(Joseph Rotblat) - P322

선제 핵공격이나 보복 핵공격을 피하기 위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여러 개의 핵탄두가 제각기 목표를 찾아 흩어지는 다탄두각개목표재돌입체 (MIRV), 재돌입 단계에서 목표를 찾아 진로를 바꾸는 기동탄두재진입체(MARV), 컴퓨터를 장착한 정밀유도재돌입체(PGRV)를 개발했고 적의 탄도미사일을 파괴하는 탄도탄 요격미사일 (ABM)도 만들었다. - P323

‘스타워즈‘ 라는 별명이 붙었던 레이건의 구상은 지상과 우주의 모든 첨단기술을 이용해 소련의 핵무기 체계를 무력화하는 것 - P324

쿠바 미사일 위기 - P324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의 핵미사일 기지를 선제공격하자는 군부 강경파의 주장을 물리치고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비밀협상을 해서 사태를 해결했다. - P326

레이건 고르바초프, 부시-옐친, 클린턴-푸틴 등 미국과 소련 · 러시아 지도자들은 국제사회와 함께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감축 등 여러 협정을 맺어 세계의 핵탄두와 탄도미사일 보유량을 크게 줄였다. - P327

북한은 ‘가난한 외톨이‘로 핵무기를 품고 살아가는 길과 핵 폐기 요구를 수용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해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는 길 사이에서 오래 번민했다. - P328

‘원자로 노심 손상을 동반한 세 번의 중대사고‘
미국의 스리마일 아일랜드 2호기, 소련의 체르노빌 4호기,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다. - P329

소련에서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 원자로 4호기가 폭발했다. - P330

그러나 핵의 위험성을 직시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더 많은 사람이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대한다면, 호모사피엔스는 비관론자들의 예상보다는 오래 생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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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
ㅡ 20세기의 폐막 - P333

베를린장벽은 독일 분단과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다. - P337

베를린장벽은 1985년 3월 12일에 시한부 사망선고를 받았다. - P338

‘제한주권론(制限主權論)‘ 또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으로 알려진 패권주의 논리 - P339

시민운동가와 지식인이 만든 단체 ‘노이에스 포룸(Neues Forum)‘ - P340

브레즈네프 독트린
시나트러 독트린 - P340

레흐 바웬사(Lech Watesa) - P342

동유럽 최초의 반소봉기를 일으킨 헝가리
소련군에게 처형당한 너지 임레(Nagy Imre) 총리의 장례식 - P343

‘프라하의 봄‘을 이끌었던 알렉산드르 둡체크(Alexandr Dubtek)가 복귀해 연방의회 의장이 됐고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작가 바츨라프 하벨(Václay Havel)은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공화국의 대통령이 됐다. - P343

루마니아는 유일한 예외였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는 나치와 싸운 전사였지만 독재자가 됐다. - P344

소련 해체의 주동자는 단연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 P345

그렇게 최초의 사회주의국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지나간 역사가 됐다. - P346

독일 통일과 동유럽 민주주의혁명은 어느 정도 ‘고르바초프가 준 선물‘이었던 셈이다. - P347

과학기술의 진보와 보조를 맞추게끔 경제정책을 전환‘ 하고 ‘경제 관리 시스템을 개선‘ 하며 ‘민주주의를 발전‘ 시키는 것을 내정의 중요한 과제로 설정 - P349

고르바초프는 얼마 뒤 자신의 노선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페레스트로이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고 체르노빌 참사의 실상을 확인한 뒤에는 글라스노스트도 함께 거론했다. - P350

고르바초프를 이해하려면 소련의 역사를 살펴야 한다. 레닌은 혁명가였고 스탈린은 차르였다. - P352

금속노동자 출신 사회주의 혁명가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Broz Tito)는 수십만 명 규모의 해방군을 조직해 발칸반도를 점령한 독일과 이탈리아 군대를 몰아내고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공화국연방‘을 수립 - P353

소련공산당 수뇌부는 1964년 10월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흐루쇼프를 해임하고 브레즈네프를 서기장 자리에 올렸다. - P354

프라하의 봄 - P354

공산당 서기장 둡체크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자유선거와 복수정당 제도를 도입하고 노동자의 기업 자주관리 제도를 시행하려 했다. - P354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사상은 자본주의체제의 품에서 태어났다. - P355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신생국은 소련과 중국을 성공모델로 삼았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추종하는 청년 사회주의자들은 무장투쟁을 감행했다. - P355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핵심은 생산수단을 개인이 아니라 ‘모든 인민 또는 사회‘가 소유한다는 것이다. - P356

소련 정부는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 (Nikolai Ostrovskii)의 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됐는가』를 ‘인민 필독서‘로 - P357

 ‘자유로운 개인의 자발적 결사체‘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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