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지음

서문 - P5

오래된 책을 다시 펴내며 - P5

이 책은 20세기 세계사의 열한 가지 큰 사건을 다룬 보고서다. - P5

역사를 안다고 해서 무슨 쓸모가 있을까마는, 나는 그저 아는 것 자체가 좋아서 다른 나라 역사를 공부했다. - P6

‘1980년대 지식 청년의 지적 반항‘ 이라는 평을 들은『거꾸로 읽는 세계사』에는 예전의 내가 있었다. - P7

돌베개

20세기 세계사의 위대한 성취인 민주주의와 디지털혁명의혜택을 한껏 누리며 글을 썼다. - P8

나는 교과서와 언론이 소홀하게 취급하는 몇몇 사건을 비중 있게 다뤘고 어떤 사건은 다른 시각으로 서술했다. 그래서 책 제목을 바꾸지 않았다. - P9

1
드레퓌스 사건
ㅡ 20세기의 개막 - P17

반역자 드레퓌스 - P21

군사기밀을 누설한 내부자를 적발하려고  - P21

이스라엘은 사건 자체에 초점을 두고 관련 문서와 증언 등 사료를 검토해 육군 정보부가 처음부터 드레퓌스를 표적으로 삼아 음모를 꾸몄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 P21

범인의 태도였다. 드레퓌스는 단 한 번도 혐의를 시인하지 않았다. - P22

우연히 진실을 발견한 조르주 피카르 중령은 그 진실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드레퓌스 사건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 P25

국방부와 합참본부 장군들이 피카르의 보고를 제대로 처리했다면 드레퓌스는 1896년 여름에 풀려났을 것이다. - P26

드레퓌스의 형 마티외는 동생의 이름을 다시 세상에 불러내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 P27

에밀 졸라의 고발 - P28

그때 작가 에밀 졸라(Émile Zola)가 참전해 전황을 단숨에 바꿨다. - P30

드레퓌스의 결백을 증명하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자 재심 반대파는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사실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었다. - P32

그것은 전 인류로 하여금 얼굴을 붉히게 할, 우리의 비열함에 대한 고백록인 셈이다. - P35

졸라와 피카르 중령뿐 아니라 드레퓌스 사건을 조작하고 진실을 은폐했던 국방부와 참모본부의 장군들도 소송에 휘말렸고, 그 소송 하나하나가 저마다 만만치 않은 정치적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 P36

국방부는 사관학교 연병장에서 드레퓌스의 육군소령 복귀식을 열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 P37

드레퓌스 사건을 오래 기억하는 까닭은 민주주의 시대의 도래를 알린 사건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P39

드레퓌스 사건을 겪으면서 프랑스 국민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깊이 체득했다. - P40

드레퓌스 사건은 ‘지식인과 언론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 P41

드레퓌스 사건은 유럽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 P43

2
사라예보 사건
ㅡ 광야를 태운 한 점의 불씨 - P45

사라예보의 총성 - P49

저격범은 열아홉 살의 세르비아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 피해자는 오스트리아ㅡ헝가리제국의 황태자 부부였다. 황태자비 조피는 즉사하고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병원에서 사망했다. 이 암살사건을 ‘사라예보 사건‘ 이라고 한다. - P49

보스니아ㆍ헤르체고비나 · 크로아티아 등으로 흩어진 세르비아 민족은 오스만제국의 세력이 약해진 19세기 초에 무장 독립투쟁을 시작했고, 러시아와 오스만제국이 부딪친 두 차례의 ‘발칸전쟁‘에서 러시아 편에 서서 싸운 끝에 1882년 국제사회의 승인을 얻어 세르비아왕국을 수립했다. - P50

프린치프는 보스니아 서부 시골 마을에서 무슬림 지주의 땅을 소작하는 세르비아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 P51

프린치프가 쏜 총알은 바싹 마른 들판에 던진 불씨였다. 그때까지 본 적없는 화염을 일으켜 유럽을 불태우고 세계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 P52

유럽의 화약고 - P53

사라예보 사건은 여러 단계를 거쳐 ‘국제전‘으로 번졌다. - P54

합스부르크제국‘은 중세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이 빈에 거주지를 두고 수백 년 동안 지배한국가를 통칭한다. 이 글에서는 맥락에 따라 합스부르크제국, 오스트리아ㅡ헝가리제국 또는 오스트리아라는 국명을 사용했다. - P55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식민지 쟁탈에 혈안이 된 ‘부르주아 정부‘들이 ‘제국주의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 P57

400만 노동자의 이름으로 - P57

독일을 중심으로 한 진영을 ‘동맹국이라 하고 영국·프랑스쪽을 ‘연합국‘이라 하자. - P59

제국들의 무덤 - P61

‘평화원칙 14개 조항‘을 발표 - P62

① 공해의 자유 항해권 보장, 평등한 국제무역 체제 수립
② 군비축소
③ 식민지 문제의 공정한 해결
④ 러시아 내정에 대한 불간섭
⑤ 벨기에 주권 회복, 알자스-로렌의 프랑스 귀속, 폴란드 독립 보장
⑥ 민족적 자립 원칙에 의거한 이탈리아 국경 재조정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민족문제 해결
⑦ 발칸 지역의 민족적 독립
③ 오스만제국의 튀르크인 영토주권 존중과 여러 민족의 자치 보장
⑨ 국제연맹 창설 - P62

민족자결주의 - P63

사라예보 사건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사건이 제1차 전쟁의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 P64

영국 경제학계의 이단아 존 홉슨(John Hobson) - P65

제1차 세계대전은 돈과 권력을 향한 탐욕이 과학혁명의 날개를 달고 벌인 참극이었다. - P67

"과학기술은 발전하지만 인간정신은 진보하지 않는다." - P67

독일 역사가 레오폴트 폰랑케(Leopold von Ranke)의 말은 진리가 아니어도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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