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들이 끓어오른 얼굴과 몸에 흰 페인트가 끼얹어진 채 응급실로 실려온 사람들처럼. - P287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어. 허깨비. 살아서 이미 유령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 P288
회원들이 찾는 가족들의 이름을 엄마가 일일이 찾아내 유해가 묻혀 있을 장소를 추정해줬다고 했어. - P289
미안허우다. 잠깐만 신세 지쿠다예. - P290
지금 갱도에 있는 유해 삼천 구 중 어떤 것도 외삼촌일 수 있는 것처럼. - P291
나는 설득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가 살 수 있었을지 의문했을 뿐이다. - P292
그것 때문에 엄마가 아버지를 찾아갔던 거야, 어떻게 살아서 돌아왔는지 물으려고. - P293
외삼촌의 이름을 듣고서야 아버지 눈이 흔들렸다고 엄마는 말했어. 외가에 오곤 하던 한지내 남매들중 하나란 걸 알아본 거야. - P294
돌아온 일요일 오후 담배 연기 자욱한 찻집에서 마주앉았을 때 엄마는 서른 살, 아버지는 서른여섯 살이었어. - P294
외삼촌이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여름부터 아버지가 부산으로 이감된 봄까지 약 팔 개월 동안, 겹쳤던 복역 기간에 두 사람이 그곳에서 만난 적이 있는지. - P296
더이상 앞에 있는 사람에게 들려줄 말이 없었어, 아버지에게는. - P297
기억나는 건, 그렇게 물을 때면 엄마가 내 손을 놓았던 거야. - P298
어떤 것도 발광하지 않는 해저면인가. - P302
발자국이 보일 만큼 빛을 놓치지 않고, 인선의 몸과 부딪히지도 않으며 걸으려면 두 걸음의 간격을 유지해야 했다. - P304
눈과 어둠 때문에 수종을 알아볼 수 없는 숲으로 들어섰다. - P305
눈높이로 뻗어 있는 가지들에 촛불의 빛이 스칠 때마다 소금 알 같은 눈송이들이 반짝였다. - P306
초가 얼마나 타들어갔을지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 P307
불빛이 허공에 멈춰 한자리에서 너울거렸다. - P308
이 기슭까지 엄마하고 가끔 왔어. - P310
커다란 광목천 가운데를 가윗날로 가르는 것처럼 엄마는 몸으로 바람을 가르면서 나아가고 있었어. - P310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 P311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집의 어둠 속에서. - P312
엄마의 정신이 극도로 맑아지는 순간들이 섬광처럼 찾아왔어. - P313
머릿속 수천 개 퓨즈들에 일제히 불꽃 튀는 전류가 흘렀다가 하나씩 끊기는 것 같은 과정을 나는 지켜봤어. - P314
낮에는 공방에서 나무를 깎고, 밤이면 안채로 돌아와 구술 증언 자료들을 읽었어. - P316
내 인생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더이상 알 수 없게 되었어. - P317
그 아이들, 절멸을 위해 죽인 아이들. - P318
눈 속에서 나는 기다렸다. 인선이 다음 말을 잇기를, 아니, 잇지 않기를. - P319
아니, 침묵하는 나무들뿐이다. 이 기슭에 우리를 밀봉하려는 눈뿐이다. - P320
섬을 떠나 있던 십오 년 동안 아버지가 저 건너편을 지켜봤다고 그날 엄마는 말했어. - P321
포기하자. 이감된 날짜를 기일로 하자. - P321
정말 누가 여기 함께 있나, 나는 생각했다. - P322
하지만 죽음이 이렇게 생생할 수 있나. 뺨에 닿은 눈이 이토록 차갑게 스밀 수 있나. - P323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 P325
이곳에 살았던 이들로부터, 이곳에 살아 있는 이들로부터꿈처럼 스며오는 지극한 사랑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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