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
손수건으로 새를 감싸 들어올리자, 서늘하고 가벼운 몸의 전부가 얇은 천 아래로 느껴진다. - P151
새의 죽은 얼굴을 다시 감싸 여민다. - P152
삽날을 타고 마침내 얼지 않은 속흙의 감각이 느껴진다. - P154
그게 멈춘 게 언제였을까, 나는 생각한다. - P155
나중에 그 동굴을 찾아갔는데, 찾을 수 없었어요. 몇 번이나 기억을 더듬어서 가봤는데 실패했어요. - P157
이마에 카메라를 달고 촬영한 듯한 숲이 돌연히 나타났다. - P158
속솜허라. 동굴에서 아버지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에요. - P159
어명할 수가 이시냐. 억지로 끄성 올 방법이 어디 이시냐. 아이를 살려사주, 이 아이가 무신 죄가 이서. - P160
동굴로 가다가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버지가 조릿대를 꺾었어요. - P162
흑백사진 석 장이 차례로 화면을 채우고 사라졌다. - P163
마지막 사진에서 청년들의 몸은 비틀려 있었다. - P164
느네 아방 가져당주라. 안 받으민 입에다 넣어드려불라. - P165
신음 같은 바람이 문틈으로 파고들어오고 있다. - P166
깊은 숨을 내쉴 때마다 통증이 물러난다. - P167
보일러가 꺼졌으면 난방도 중단되겠구나. - P169
하나의 꿈이 사그라들기 무섭게 다른 꿈이 송곳처럼 찌르며 들어온다. - P170
이 모든 걸 물리치도록. 이 모든 게 나를 피해가도록. - P171
죽으러 왔구나, 열에 들떠 나는 생각한다. 죽으려고 이곳에 왔어. - P172
더이상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섬이 아니구나, 검은 사막의 지평선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 P175
어째선지 벌어지지 않는 입속의 압력을 느끼며 나는 생각했다. - P176
어떻게 악몽들이 나를 떠났는지 알 수 없었다. - P177
수많은 흰 새들이 소리 없이 낙하하는 것 같은 함박눈이었다. - P178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 P179
내가 너를 묻었는데, 어젯밤에. 꿈일까, 의심하며 나는 말했다. - P180
새들에게 간식이 아닌 식사를 줄 때는 반드시 새장에서 먹게해야 한다고 인선은 말했었다. - P182
정전이 아니라면 전기레인지를 켜고 따뜻한 걸 만들어 먹을텐데, 나는 생각했다. - P183
거긴 추울 텐데, 아마. 나는 말했다. - P184
늘어뜨려진 전선이 흔들리는 대로 갓등 위에서 그네를 타는 아마를 향해 나는 웃었다. - P185
이상한 열정에 사로잡혀 나는 눈 한줌을 움켜쥐었다가 펼쳤다. - P186
어둠 때문에 더 커 보이는 인선의 두 눈이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P187
내가 아니라 자신에게 묻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꿈인가. - P188
이내 솟아오른 불꽃의 빛이 그녀의 눈두덩과 콧날을 밝혔다. - P189
난로 옆면에 눈동자들처럼 뚫린 두 개의 바람구멍을 나는 보았다. - P190
스케일을 바꾼 이유를 이어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말을 아꼈다. - P191
차 한 모금이 식도를 타고 내려간 순간 내가 얼마나 그걸 기다려왔는지 깨달았다. 혀끝을 델 만큼 뜨거운걸 마시는 것. 그 열기가 식도와 위를 적시는 것. - P194
청회색 박명이 나무들의 우듬지를 밝히고 있었다. - P195
사실은 어떤 말도 나눠진 적 없었던 걸까? 새는 새였고, 나는인간이었을 뿐일까? - P196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인선의 목소리가 그 열기 사이로 번졌다.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 - P197
인선이 등뒤로 손을 뻗어 문을 닫자,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을 만큼 사위가 어두워졌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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