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夜심한 연극반」 - P286

한지수 - P284

《자정의 결혼식》 - P284

《헤밍웨이 사랑법》 - P284

《빠레, 살라맛 뽀》 - P284

《파묻힌 도시의 연인》 - P284

《40일의 발칙한 아내》 - P284

교토의 첫인상은 적막하면서도 소란스러웠다. - P286

오차야
일종의 고급 요릿집이다. 현실을 잊고 화려한 꿈의 세계를 즐기라는 뜻으로, 요즘도 교토의 오차야에서는 게이코들의 세련된 태도와 최고의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 P286

게이샤
예능에 종사하는 전통적인 기생으로, 공연과 작시 등 일본 예술에 능숙하다. 춤과 노래를 단련하는 십 대를 ‘마이코‘라고 부르고, 20세 이상을 ‘게이코‘ 라고 부른다. 요정이나 여관 등에서 이들을 부르면, 시간을 정해놓고 고객과 이야기를 해주거나 노래나 춤으로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 P286

내가 지금 기온 거리를 서성이는 이유는, 저 게이샤의 목소리를 닮은 오 분짜리 동영상 때문이다. - P287

아버지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은 건, 열흘 전이었다. - P287

나는 앞의 화면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뒤 화면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크로스디졸브를 좋아한다. - P287

"아버지께 죽었어요. 딸님, 찾아가세요." - P288

어눌한 말투로 보아 한글학교를 다닌 교포 2, 3세쯤 될 것이다. - P288

나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유복자에 가까웠다. - P288

우토로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정부는 교토 우지시 우토로에 군 비행장을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했다. 당시 21만㎡(6000평)가량의 면적에 1300여 명의 조선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비행장 건설에 투입됐다. 일당은 잡곡 3홉이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징용자 일부는 뱃삯을 구하지 못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우토로에 공터를 닦아 무허가 정착촌을 이루고 살았다. - P288

"우토로 오세요. 아버지 찾아가세요."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 P289

나는 올림픽 베이비다. 정확히 말하면, 88서울올림픽. - P289

아버지는 갓 태어난 내게 ‘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집을 나가버렸다고 한다. - P289

그런 아버지가 여성이 됐다는 말을 들은건, 스무 살 생일날이었다. - P289

여자가 보낸 동영상은 ‘야夜심한 연극반‘ 이라는 제목의 오 분짜리 영상이었다. - P290

우토로 주민센터 연극반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일을 마치고 늦은 밤에 연습했으므로 야심한 연극반‘이라고 합니다. - P290

한국말이었다. 대신 일어로 된 자막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배우는 객석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P291

배우가 그간에 익힌 발성법 등을 동원해서 자신의 이야기를풀어놓는 일종의 치료 요법 같았다. - P291

그러나 그 동영상은 내 짧은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 재배치를 시작했다. - P291

그 늙은 게이샤는 내 엄마였다. 코앞에 둔 귀한 손님이 ‘나‘인 적도 있었으니까. - P292

엄마에게서는 이 주일이 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늘 그렇듯 기다릴 뿐이었다. 그 기다림은 일곱 살부터 시작된 엄마와의 암묵적 약속이었다. - P292

엄마는 같이 살자는 말 대신에 학교 기숙사로 돈을 보냈다. 나는 기숙사행 짐을 싸면서 생각했다. 엄마에게는 이미 오래전에 새로운 가족이 생긴 거라고. - P293

엄마는 가끔 ‘더 귀한 손님‘은 없는지 묻기도 했다. - P294

여자가 된 아빠의 팔짱을 끼고 신부 입장을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했다. - P295

내 그리움의 원형이던 우토로는 갑자기 숙제가 돼버렸다. - P296

서일본식산
이 부동산회사는 1989년 교토지방재판소에 우토로 주민들을 피고로 ‘건물 수거 토지 명도‘ 소송을 제기해 1998년 승소했다. 이에 우토로 주민들은 오사카 고등재판소 항소를 거쳐 최고재판소에 상고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이후 일본의 양심 세력을 중심으로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이 결성됐고, 우토로를 살리기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 P296

"제가 우토로 주민이 된 건..… 우지시에 있는 딸아이의 외할머니 댁을 찾아왔다가, 한국 분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기에 이 마을에 와본 겁니다. 갓난애를 데리고 마땅히 갈 곳도 없었는데." - P297

붉은 기둥길 - P298

늘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왜 나와 같이 살지 않는지. - P298

과천에 있는 대안학교에 입학한 나는 어떤 할머니의 집에서생활했다. - P299

지금 생각하면 ‘별‘이라는 내 이름마저 무언가의 대안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내 존재는 가벼웠다. - P299

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할머니와는 서로의 외로움마저덜어주는 사이가 됐다. - P300

일찌감치 나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분노보다 나를 사랑해준엄마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는 사실을 그날 알았다. - P301

전두측두엽 치매 - P301

"제 딸에게 짐이 되기 전에, 이 몸뚱이를 치우려고 해요." - P301

일본 여자 준꼬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나보다 네살이나 연상이었어요. 아내는 자주 가출을 했지요. - P302

내가 태어났을 때 집을 나간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였다. - P303

"아내는 아팠던 겁니다. 임신거부증은 치료받아야 하는 질병이거든요, 저는 딸을 안고 아내의 고향을 찾아 우지시에 왔다가, 이렇게 우토로 주민으로 살아남았습니다." - P303

나는 엄마 몰래 살아남아 기어코 세상에 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짐이 되어 살아남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사라졌다. - P303

주카이숲
일본 후지산 기슭에 있는 숲으로, 자살자와 많은 유골이 발견돼 일명 ‘자살 숲‘으로도 불린다. 한때는 이 숲에서 죽은 사람들의 사체와 유류품들의 사진을 올려놓은 ‘주카이의 유실물‘ 이라는 웹사이트도 존재했다. - P304

여섯 시 정각이 되자, 병풍 앞으로 마이코와 게이코가 부채를들고 등장했다. - P305

죽은 후에도 인터넷 세상에서 ‘야심한 연극반‘의 남자 게이샤로 떠돌게 될 아버지가 말했다. - P306

나는 아버지로 인해 태어났다. 엄마 자궁에서 살아남았을 때가 아니라. 아버지가 엄마 옷을 입은 그 순간, ‘별‘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로그인하게 된 것이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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