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에서」 🔭 - P161

집을 치우다 보니 오래된 앨범이 나왔다. - P163

13년 전 가을, 나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리고 유스케는 열아홉살이었다. - P163

동급생 중에 유스케가 가장 나이가 많고 내가 가장 어린 셈이었다. - P164

원래는 나 혼자 여행을 떠날 작정이었다. - P165

"서로 정반대 경로로 도는 거야. 그래서 나중에 누가 더 재미있는 여행을 했는지 겨뤄보자고." - P165

따로 행동하기로 했지만 출발은 같이 하기로 했다. - P166

"아무튼 너무 무리는 하지 마라. 나홀로 여행이라니, 너한테는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거니까." - P167

그래서 늘 남의 뒤에 숨어 있었으니까. 그 남이라는 건 대개 유스케였고, 덕분에 그는 친구가 의지하는 그릇이 큰 청년 역할을 해낼 수 있었으니까. - P168

유스케는 늘 리더 역할이었고 나를 조수나 졸병처럼 취급했다. - P168

하지만 이제 와서 차분히 돌이켜보면 유스케가 내게 그런 역할을 맡긴 것은 단순히 이성을 의식했기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 P169

적어도 유스케 자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우월감을 맛볼 수있는 것이다. - P170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정신적으로 나 자신을 강인하게 단련하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십수 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유스케와 나 사이의 역학관계를 청산하고 싶다는 소망도 있었다. - P171

하지만 통로 중간에서 그를 돌아보았을 때 한순간 불안한 기색을 드러낸 것은 뜻밖이었다. - P172

어쩌면 나를 바꿀 만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 P173

그래, 이게 동해구나 싶었지만 기대한 충격도 감동도 느껴지지 않아 슬그머니 맥이 풀렸다. - P174

"혼자 여행하시는 건가요?" - P175

"그렇다기보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걸 해 두려고요."

"여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맞아요. 여기는 숨은 명소죠. 특히이 등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최고예요.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 P177

등대지기 남자는 고이즈미 - P177

태평양 쪽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에서 태양이 솟아오르는 건 봐도 가라앉는 건 보지 못하니까. - P178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면서 아까부터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것은 그가 한 말이었다. 어떻게 내가 막차를 타고 온 걸 알고 있는 것일까? - P179

그가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을 리 없지 않은가. - P180

바다에 면한 비탈길 중턱에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이 보였다. - P181

등대에 묵는 정도면 나 홀로 여행의 에피소드로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182

게다가 유스케는 나를 제대로 된 숙소가 아니면 묵지 못하는 도련님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 P182

"여행을 한다고 해서 억지로 그 지역의 명물을 찾으려고 할 필요는 없지요. 그런 건 단순한 자기만족이에요. 중요한 건 어떤 느낌을 받느냐 하는 거죠." - P183

X역행 임시 버스 - P184

학생이 혼자 여행한다는 얘기를 듣고 도와주려 했는데 그 호의를 저버렸다는 생각에 화가 난 것일까? - P185

"흠, 나는 일본술밖에 마시지 않아. 위스키니 브랜디니 하는 건 비싸기만 하지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 P186

그 아이의 아버지가 해외근무를 나가게 돼서 자연스레 걔도 미국 대학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그 후로는 만나지 못했고요. - P187

우리의 이별 의식 - P188

이 등대지기와 함께 있는 것이 점차 고통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 P188

그는 몇 초 동안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았다. - P190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려니 까무룩 잠이 드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술기운이 도는 모양이었다. - P191

생각해 보면 그가 생면부지 학생에게 친절히 대할 이유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 P192

그러면서 찾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취향의 젊은 남자를. - P192

내게 유일한 희망은, 그가 아직 힘으로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고 먹이가 얌전히 숙면에 빠지기를 기다려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 P193

배낭을 짊어진 채 죽을 힘을 다해 그것을 타넘었다. - P194

등대 밑이 어둡다. - P194

아직 오지 않은 유스케를 기다리면서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어떻게 얘기할지 생각을 정리했다. - P195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도가 지나친, 악의가 깃든 계획이었지만 그 생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 P196

도호쿠를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한테는 전설적인 장소라나 봐. - P197

유스케가 화장실에 간 사이 그의 배낭에서 버번 병을 찾아 늘 가지고 다니는 수면제를 넣어둔 것이다. - P198

모리오카에서는 메밀국수 식당을 겸하는 여관에 묵었다. - P198

그 기사가 지금 이 앨범에 붙어 있는 것이다. - P199

앨범을 덮기 전에 다시 한번 오래된 기사를 읽어보았다. 작은 곳의 등대지기가 살해된 사건을 보도한 기사다. - P199

임시 숙소 담요에는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이 묻어 있었다. - P200

어쨌든 나와 유스케의 좋은 관계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 P200

친한 친구에게만 알려주는 비일 여행지 〈등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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