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진 - P218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 - P220

그해, 가을 날씨는 그녀의 눈동자를 닮아있었다. - P220

비록 그녀의 가을만 알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녀라면 봄에 꽃이 피어도, 폭염으로 여름이 녹아내려도, 겨울 한파가 호수를 얼려도 가을의 눈동자로만 살고 있을 것 같았다. - P220

아까 그 새끼 고양이 때문일까. - P221

"미안. 안됐잖아, 어린 고양이가. 날도 추운데." - P222

같은 과 3년 후배인 현수를 만난 건 사흘 전이었다. - P223

신호가 풀리고 현수는 액셀을 꾹 밟아 속도를 냈다. - P223

"사람이 무서워서 떨고 있었던 걸 거예요. 추워서가 아니라.  어디서 들었는데, 털 달린 동물들한테는 영하 15도도 아, 서늘하다, 정도래요." - P224

06학번 김은경. - P225

비록 이름은 평범하고 흔했지만 그녀는 결코 평범하고 흔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특별했다. - P225

나는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불안할 때 비밀스럽게 머물렀던 나만의 스폿들을 천천히 돌아본 뒤 학과 사무실에 들러 조교 형에게 전역 인사를 했다. - P226

초급 루마니아어 변역 연습 - P226

한 강의실인데 그녀는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 따로 잠겨있었다. - P227

찰나의 순간, 나는 군대에서 얻은 감각으로 강의실 바깥의 가을이 그대로 스며든 그녀의 눈빛을 알아보고 크게 놀랐다. - P227

현수는 오히려 떨어져있는 사람이니까 간유리처럼 흐릿하게 남아서 어느 순간 그조차도 시간이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거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 P228

폭설은 ‘나가기 귀찮은‘ 마음을 ‘나가기 어려운‘ 핑계로 바꿔놓기에 좋은 날씨였다. - P229

그녀는 항상 눈물이 필요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정작 한 번도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 P230

"처음 배우는 언어는 어려운 게 당연해." - P231

자신감 없고 소심한 행동과 달리 그녀는 모험심과 호기심이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32

그것이 그해 가을, 나의 특별한 연애의 시작이었다. - P232

내 꿈은 루마니아 문학을 전공해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 P233

내 꿈이 이상적이란 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깨달았다. - P234

문학은 늘 삶을 노래하지만 삶은 문학으로 영위되는 게 아니었다. 그러자 문학이야말로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34

현수는 티슈 한 장을 뽑아 단물 빠진 껌을 뱉으며 고백하듯 말했다. - P235

루한사전 - P236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어디서든." - P237

"루마니아 작가 도리넬 체보타루의 작품이야." - P237

"루마니아 문화와 역사가 잘 드러나있는 작품이야. 주석도 달아뒀으니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거야." - P238

"아마 너희들 기억 어딘가에 있을 테니까." - P239

내가 배낭에서 체보타루의 소설을 꺼내 건네면 그녀는 원제를 소리 내 읽은 뒤 전에 선물 받은 소설에 대한 감상평을 소심한 목소리로 들려줬다. - P240

그날 내가 여섯 번째로 선물한 소설은 〈세상의 저쪽〉이란 단편으로 도시인의 고독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 P241

"눈을 맞추는 게 힘들어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 P242

"다른 사람들 눈은 칼 같을지 몰라도, 네 눈은 그렇지 않다고. 가을 날씨 같아." - P243

‘잘 찾아보라면서요. 기억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 P245

"너무 없는 애처럼 지내니까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사라져도 없어진지 아무도 모르죠." - P247

내가 대학에 남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가 떠넘긴 빚과 신경쇠약에 걸린 어머니, 어린 두 동생들 때문이 아니라 그녀 때문이었던 건 아닐까. - P248

"저에 대한 선입견이 마지막 날에라도 조금 깨져서 다행이에요." - P249

압박감 - P250

"그 체보타루라는 작가 때문에 루마니아로 간 거라고………." - P253

분명한 건 그해 나는, 그녀의 눈동자로 인해 가을의 3분의 2를 앓았고, 가을의 쓸쓸함에 대해 알았다는 것이었다. - P254

체보타루는 알코올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양초와 꿈〉을 썼다. 이 단편소설을 쓰는 데 2년이 걸렸고 병원에서 써낸 유일한 소설이었다. - P254

봄의 눈동자 - P2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