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평소보다 들떠 있었다. 시종일관 사뿐사뿐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 P445
소리가 나자마자 자신과 지유를 눈보라 치는 습지로 내보낸 아내의 행동도 이상하고, 돌아온 후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도 수상쩍었다. - P449
직관적이고 단순한 이유를 댔다. 정나미가 떨어져서,라고. - P451
대화의 상대는 대부분 두 가지 유형으로 갈린다. 자기 기준을갖고 대응하는 쪽과 상대의 반응에 따라 응수하는 쪽. - P452
말 그대로 자신을 제물로 삼은 셈이었다. 그리해서라도 노아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을 알고 싶었다. - P455
때로 진실이 삶보다 더 무겁다는 걸, 서른여섯이 된 지금에야 절절하게 깨닫고 있었다. - P456
다만 예상치 못한 두 가지 변수가 있었다. 하나는 아침 일찍 서대문경찰서에서 아내를 불렀다는 점이다. 명목은 ‘참고인 조사 였다. - P457
복종의 밑바닥에 도사린 저항감이었다. 은밀하지만 분명하게 감지되는 느낌이었다. - P457
ㅡ 아내와 여행을 떠나는 길입니다.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 P458
따라서 서민영은 그의 등에 붙어 있는 유일한 안전장치였다. - P458
손도 대지 않은 굴라시, 샴페인 한 잔, 역시 쳐다보기만 한 샐러드, 소스 그릇에 담긴 땅콩버터, 땅콩버터를 떠서 빵에 바르는 자신의 손, 화면이 딱 멈췄다. 땅콩버터였다. - P459
쉐바 10mg - 수면진정제 — 1일 1회 - P461
수면유도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수면진정제계의 대표선수. - P461
"그렇기는 해도 자기 진심을 확인할 필요는 있었어. 내 기대와 진실이 정반대인 경우가 많았거든. 아니지. 많은 게 아니라 다 그랬지. 항상 그랬지." - P465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미쳐 날뛰는 꼴이야 몇 번이나 봤지만, 이런 식으로 미친 건 처음이었다. - P467
"아무리 잘해줘도 사람들은 나를 배신해, 심지어 아빠까지도." - P468
세상은 너무나 고요했다. 흥분해 떠들고 있는 아내를 빼고. - P470
"그래서 얘긴데, 내가 경찰이 껌벅 죽을 걸작을 하나 만들어볼까 해.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관해 함께 늪에 투신한 불륜 커플, 어때?" - P470
세 번째 깨달음이 왔다. 2층의 ‘되강오리‘는 서준영이 아닌 신재인이었다. - P470
네 번째 깨달음이 연달아 왔다. 이곳은 습지였다. 아내는 반달늪으로 가고 있었다. - P470
"엄마의 시험이야. 내일 아침까지 이 방에서 나가지 않는다면 너를 용서해줄게." - P474
되강오리의 울음은 아빠의 부름이 되어 들려왔다. - P477
그 바람에 욕실의 맨발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 P480
엄마는 다락방을 자물쇠로 잠가뒀어. 안에는 이모가 있어. 이모는 말을 할 수 없어. 이 세 가지를 합하면 어떤 뜻이 되는지 생각해봐. - P484
다른 하나는 오늘 밤지유가 방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유나는 지유를 지배하는 신이었다. 자신은 지유가 아니라 지유의 신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었다. - P486
일순 지유의 시선이 그녀의 봉인된 입으로 내려갔다. 이 영특한 아이는 그녀의 눈이 말하는 걸 단숨에 알아차린 것이었다. - P489
마비된 입술 새로 침을 질질 흘리고,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헤엄치듯 쓸면서, 화장실을 향해 물개처럼 기어갔던 것이다. - P490
"아래층 욕실에서 …… 피가 고인 욕조에…… 다리 두 개가………발이 달린……… 진짜 다리…….." - P491
아이가 몇 날 며칠 의식을 놔버릴 만큼 앓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빠 인형에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 역시. - P492
아이는 아빠 인형과 대화를 나누면서 무의식적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아빠 인형이 아니라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다고. 나아가 아빠가 살아 있다고 믿었을 것이며, 자신이 본 것을 스스로 꿈이라 우겼을 것이다. - P492
일곱 살짜리 아이가 이 무서운 비밀을 가슴에 담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헤아리기조차 불가능했다. - P492
도구를 치우려고 왔을 것이다. 이는 경찰이 유나의 행적을 어느 정도 파악했으며, 유나도 그걸 눈치챘다는 걸 의미했다. - P496
온몸으로 유나를 들이받았다. 그 결과로 세 사람은 나란히 늪으로 굴러 떨어졌다. - P499
잘못된 셈법이었다. 유나라는 변수가 누락된 계산이었다. - P501
잡아챈 끄덩이를 밑으로 당겨 물속에 얼굴을 담그는 동시에 그녀의 목을 팔로 감아서 조여댔다. - P502
삶의 순간순간마다 자신을 향해 걸었던 주문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물러서라고. 그러면 평화가 오리라고. - P503
선혈이 흐르는 눈을 감싸 쥔 채 유나는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 비명마저 그녀를 향한 것이었다. 쌍년, 개 같은 년, 도둑년. - P504
골짜기……. 그녀는 비로소 알아차렸다. 잘못 고른 길이 아니었다. 선택한 길이었다. - P505
이를 악문 것처럼, 나직하게 눌린 소리로 속삭였다. "놔. 도둑년아." - P506
유나가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제 삶을 끝없이 훔쳐왔다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도 바뀌지 않을 신념같은 것이었다. 바로 그 힘으로 살아왔을 테니까. - P507
그러면 나를 달래줘야 맞잖아? 성질부릴 때마다 다락방에 가둘게 아니라. - P510
"저게 또 내 것에 손댔네." 중얼대는 아내의 목소리에 짜증이 배어 있었다. - P512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알기 위해서. - P514
‘어쩌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건져올릴 때까지 살아 있는 것. - P514
그는 눈 쌓인 둑방 비탈에 손가락을 박고, 애벌레처럼 몸통을 꿈틀거려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P516
경찰의 태도가 바뀐 건 처형마저 사라졌다는 걸 확인한 후였다. - P516
경찰은 처음부터 아내에게 혐의를 두고 수사를 해온 모양이었다. - P516
아내는 이미 벼랑 끝에 서 있었던 셈이다. - 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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