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인은 에릭 로메르의 사진 아래에서 도원을 기다린다. - P179
호계는 처음 알게 됐을 때보다 많이 변했다. - P179
어김없이 예진이라는 친구의 얘기가 곁들여지곤 - P179
끊어야 될 건 얼른 끊어버려요. 안 그러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요. - P180
의미는 진작 증발했고 이제 호칭마저 사라졌다면 서둘러 관계를 끊어내야 하는 게 아닐까. - P181
재인이 부모를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지점은 그들이 그 난리를 치면서도 끝내 한집에 살았다는 사실 - P181
재인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벚꽃과 연녹색 잎을 내고 있는 소나무를 오래도록 바라봤다. - P181
더 이상 이 동산에 꽃이 피는 건 볼 수 없을 것 같아. 꽃이 지는 것도. - P182
‘라미드모나미 (L‘ami de mon amie)‘ - P183
노골적인 의상의 색과 엔딩에서 블루와 그린을 교차로 입은 네 남녀의 모습도. - P184
"먹지 않는 거,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거, 그런 걸로 표현하지 말고 말로 해줬으면 좋겠어." - P184
서로 간에 시간을 허투루 쓸 일은 없었을 텐데. - P187
가운데에 서서 하늘을 향해팔을 뻗은 저울의 눈금처럼 그녀의 일상은 도도한 중립, 평온하고 자존감 높은 0이다. - P187
. 도원과 호계를, 진심을 줬던 사람과 깊이 아꼈던 사람을 급히 인생에서 몰아냈다. - P187
종일 태연한 얼굴이지만 오후 내내 재인의 가슴속에는 작은 불길이 간질댔다. - P188
그제야 세상이 조금 살 만하게 느껴진다. - P189
죽은 남동생이, 소리치는 아버지가, 노쇠한 엄마가, 배신한 현조 씨가 떠오른다. - P189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도원의 차디찬 표정이, 결국 재인은 웃어야 할 기억 앞에서 울고 울어야 할 기억 앞에서 웃고 만다. - P189
봄밤이 가게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 P190
준비된 것도 없는데 늘 무언가가 시작되려 해서 불안한 봄밤. - P190
공백을 메우는 기타와 묵직하고 투명한 피아노가 주고받는 편지 같은 선율 - P193
숨기기 위함이 아니라, 기억을 건져올려 대면할 용기가 없어서 - P194
병은 영혼을 추악한 방식으로 지배 - P194
민영이 떠난 뒤 도원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 안에 후련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스라쳤다. - P195
아픈 민영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 P196
죽음과 가까운 민영을 그는 사랑하지 않았다. - P196
시작과 동시에 도원은 늘 끝을 생각했다. - P196
극복해야 할 때도 끝이 그려졌다. - P196
사랑이 뒤틀린 시간을 만나면 죽음이 되는 거라고. - P196
도원은 화를 내고 있었다. 불같이 무섭게. - P198
어느 봄눈 내리던 밤, 도원은 집으로 가려던 걸음을 돌렸다. - P200
어느새 봄의 마지막 눈은 소리 없이 멎어 있었다. - P201
한 가구회사의 VMD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 P202
매뉴얼대로 해야 하기에 예술적인 자율성이 적다는 단점은 있어도 짜여진 틀 안에서 미적 감각을 펼쳐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 P202
몇 마디 말이 일파만파 퍼져 믿음이 깨지고 관계 사이에 영원한 거리가 생긴다는 게. - P204
거울처럼 모든 게 단절된 상태로.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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