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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의 함정 - 중산층 가정의 위기와 그 대책
엘리자베스 워런,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 지음, 주익종 옮김 / 필맥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맞벌이가 아이의 육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임으로써 맞벌이를 하지 말라는 논조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왠걸, 이 책은 전혀 육아와는 관련이 없는 순수 경제학적인 접근에서 맞벌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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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맞벌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예전에 외벌이가 일반적이었고 외벌이를 기준으로 도시근로자가구의 평균소득을 책정했다면 지금은 맞벌이가 그 기준이 되어야 할 정도로 맞벌이 부부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것은 맞벌이를 통해 과외의 여윳돈을 얻게 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일반적인 중산층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처럼 되어버림으로서 외벌이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사회가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늘어난 소득의 대부분을 자신들의 과소비적 소비를 위해 써버리는 것이 아니라 교육비, 주택비, 자동차비, 보험비 등 우리가 중산층이라고 여겨지는 항목들을 위해 고정적으로 지출함으로써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여윳돈을 전혀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중산층의 맞벌이 부부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환경과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도시를 떠나 교외에 있는 저택을 구입하게 된다(이는 장기모기지 대출로 이루어짐) 또한 맞벌이를 하다보니 필요에 의해 두 대의 자동차를 굴리게 되며 필수적으로 가입하게 되는 건강보험료 역시 무시하지 못하는 고정지출항목이 된다.
그러다보면 이전 세대와는 큰 차이가 없이 정상적이고 검소한 소비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높아진 고정지출 때문에 이혼, 실직, 장애, 질병 등 예기치 않은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게 된다.
이는 실제적으로 여러 통계를 통해 나타나는 현실이다. 중산층이라 여기는 수많은 맞벌이 부부들이 지금도 법원에서 파산신청을 하고 있고 갑자기 닥친 경제적 위험에 당황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재난이 닥치기 전에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저자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당신의 가정은 한쪽 소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가?
둘째,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는가?
셋째, 비상대책을 세워 놓았는가?
그럼 나도 답을 해볼까.
첫째, 당신의 가족은 한쪽 소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가?
일단 지금은 그렇다. 아직 아기가 태어나기 전이기 때문이기에 쉽게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10년 후나 20년 후라면 이렇게 쉽게 대답할 수 없으리란 걸 잘 안다. 아까 말했듯이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오빠와 나의 소득, 둘 중 하나를 포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둘째,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는가?
현재 우리 가정의 고정비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오빠와 나의 건강보험, 연금보험은 합쳐서 80만원 정도.
자동차 유지비 30만원 정도(이건 정확히 잘 모르겠다.)
대출금이자 20만원 정도
그렇다면 현재 우리 가정의 고정비용은 130만원 정도이므로 생활비와 저축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택을 구입하게 되고, 아기가 태어나서 육아비가 발생하게 된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현재 우리의 재정상태로 보았을 때 24평형을 구입시 최소 1억 5천 정도의 대출은 불가피하다고 여겨지며 20년 원리금상환을 연 6.5%의 대출이자에 적용하면 매달 120만원씩 고정비용이 발생한다.
아기의 경우도 역시 어른들의 말씀에 따르면 100만원 정도의 육아비가 필요하다고 하시니 대충 따져봐도 350만원은 그냥 나가는 돈이요, 여기에 생활비와 각종 세금을 내다 보면 저축할만한 여유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권하는대로 주택구입을 미루거나 장기대출은 피하는 것만이 상책일까? 이 부분은 좀더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사정들이 많이 있으니 말이다.
셋째, 비상대책을 세워 놓았는가?
나와 오빠는 결혼과 동시에 재정컨설턴트에게 도움을 받아 연금보험에 가입하고 몇 가지의 펀드를 시작했으며 부족한 보험액을 증액했다. 무조건 대출금부터 갚고 집부터 사자는 애초의 계획은 전면 수정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집을 사고 싶다는 강열한 욕망은 시시때때로 나의 마음에 불을 지펴 요즘같은 집값 하락기가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동산사이트를 전전하며 눈동냥을 하며 오빠를 설득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우리가 가진 총알이 아직 부족하다는 자각과 함께 무모한 도전은 애초부터 하질 말아야 한다는 이 책의 권고는 나의 불붙은 조급함에 찬물을 끼얹었다.
결국 오빠와 내가 열심히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앞으로 태어날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니까 위험한 공중곡예와 같은 장기대출의 덫에 걸리는 일은 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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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몇 시간만에 읽었지만 너무 많은 통계 자료와 우리나라와는 약간 괴리가 있는 내용 때문에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냥 덮어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이므로 이 책의 표지를 보게 된다면 책 뒤편에 나온 역자후기만이라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책의 내용을 너무나 성실하고 간략하게 잘 정리해서 나름대로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재편성했기 때문에 지루하게 책 한권 읽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