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ㅣ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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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꿈을 꾸었다
- [불편한 편의점](2021), 김호연


"어떤 글쓰기는 타이핑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이 오랜 시간 궁리하고 고민해 왔다면, 그것에 대해 툭 건드리기만 해도 튀어나올 만큼 생각의 덩어리를 키웠다면, 이제 할 일은 타자수가 되어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는 게 작가의 남은 본분이다. 생각의 속도를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가 되면 당신은 잘 하고 있는 것이다."
-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2021.


1. '불편한' 꿈

'불편한' 꿈을 꾸었다.

경기도 오산에서 1년 넘게 홀로 자취생활을 하며 생긴 습관은 퇴근 후 혼자 도라도 닦는 듯 원룸에서 책을 읽다가 가끔 초저녁에 설핏 잠에 드는 거다. 평일 저녁시간에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만끽하며 책도 보고 종이접기를 하다보면 한없는 시공간에서 막막함에 젖어든다. 지나고 나면 순식간에 흘러간 시간이지만 그 일분일초의 시간 속에서는 진공에라도 빠진 듯 시각이 멈춘 듯 공연히 막연해지는 거다. 그럴 때 읽고 있던 책이나 접고 있던 종이 쪼가리를 들고 자리에 눕는다. 그러고는 깜빡 초저녁 잠에 빠져든다. 

눈을 뜨면 밤은 깊어져 있다.
역시 읽던 책을 마저 읽거나 종이를 접다보면, 왠지 이대로 다시 잠들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꼼지락대다가 새벽에 다시 잠자리에 든다. 

어떤 날은 그 새벽잠에 악몽도 꾼다.
생전 꾸지 않던 지각하는 꿈도 꾸고, 무서운 꿈에 빠져 가위눌리기도 한다. 그럴 때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깰 수가 없다. 얼른 깨어야 하는데 도통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경험을 내 기억에 처음 겪어본다. 언젠가는 주말에 서울 집에서 자다가 가위눌려 옆에 잠든 처와 막내를 놀래킨 적도 있다.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내가 갑자기 한순간에 쫄딱 망하는 아주 무시무시한 꿈이었다.

며칠 전에는 생전 꿈에 보이지 않던 첫사랑 후배가 등장했다. 
나와 그녀는 그 때 그 시절처럼 다시 만나고 있었다. 분명 육신은 중년인 지금의 모습인데 정신은 이십대 초중반 그 시절 그대로 생생했다. 

다시 태어나도 반드시 또 찾아 만나겠다고 내가 입버릇처럼 호언장담하는 나의 아내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는 아주 '불편한' 꿈이었지만, 그 잔상은 깨어있는 며칠 동안에도 아주아주 오래도록 이어진다.


2.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는 곳임을"

인천에 있던 첫사랑 후배의 부모님께 나를 믿고 딸을 달라고 당차게 요구하던 나는, 그러나 사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음에도 변변한 취업준비도 안하고 있었다. 후배의 부탁으로 토익시험도 4학년 2학기에 처음 봤다. 취업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동기들과 달리 나는 깊은 강물 속에 빠진 것 같았다. 먼저 취업한 첫사랑 후배 그녀는 바쁘다며 나를 피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을.

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불평등한 세상을 뒤집어 엎지 못할 바에야 이 세상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리얼리즘' 소설을 쓰고 싶었다.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스물예닐곱의 나는 그런 소설이 분명 있다고 믿었다. 

정확하지는 않다.
나를 뒤늦게 취업의 전선으로 나서게 만든 게 첫사랑 그녀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눈빛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부모님을 건사해야 하는 가난한 내 형편을 그제서야 새삼 깨달아서였는지.

운이 좋아 대기업에 취직한 나는 대학의 마지막 강의를 듣고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에도 단편소설을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만약 당선이라도 된다면 나는 그 길로 나설 것처럼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문사에서는 연락이 없었고 그 덕에 나는 이십년 넘게 한 직장을 잘 다니고 있다. 첫사랑 그녀는 잃었지만 그 덕에 같은 직장에서 만난 지금의 착한 아내와 한 가정을 꾸리고 부모님 모시며 세 자녀와 큰 개 한 마리, 작은 고양이 한 마리까지 거느리며 아주 잘 살고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일년 전부터는 그 직장 덕에 팔자에 없을 것 같던 자취생활도 겪어보고 있다. 

이십년 전 나를 떠난 첫사랑 그녀만 빼고 모자랄 것 없던 삶에 불쑥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내게 묻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살게 될 거면서 그 때는 자기한테 왜 그랬느냐고. 애초에 작가가 될 것도 아니면서 왜 그랬느냐고 말이다. 

꿈 속에서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어느 화창한 여름날 서울시역사박물관 뜰에서 내가먼저 그녀에게 이제 그만하자고 말했지만, 그녀는 이미 내게 눈빛으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만나자던 그녀의 전화기 너머 목소리에서 이미 이별을 감지하고 있었다. 모질지 못한 나는 애초에 그런 말을 할 위인이 못되었으나 그녀의 슬픈 눈빛을 보는 순간 그녀가 나로 인해 더이상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써 웃어보이며 아주 발랄하게, 이제 좀 웃고 살자는 어울리지 않는 이별통보를 남기고는 먼저 돌아섰다. 
이제 돌아서면, 뜨겁고 아프고 설레고도 슬펐던 내 젊은날과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터였지만 나는 그 화창한 여름날의 햇살 속에 그녀를 홀로 남겨두고 말았다.
너무도 사랑했다고 믿었지만, 그 사랑 때문에 경제력 없는 나의 불쌍한 부모를 버릴 수가 없다는 말은,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씩씩했지만 나 때문에 많이 울던 그녀가 오늘 이후 더 이상 울지 말았으면 했다.
그 여름의 서울시역사박물관 뜰에 내리쬐던 햇살처럼 항상 웃기를, 원래 그녀의 모습 그대로 언제나 씩씩하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돌아선 나는 눈물을 삼켰다.

지금도 그 햇살은 며칠 전의 '불편한' 꿈처럼 잔잔한 영상으로 떠오른다.


소설가 김호연이 2021년 발표한 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노숙인에서 편의점 야간알바가 된 '독고'라는 덩치 큰 중년사내가 본인의 후원자 역할을 해준 편의점 사장 할머니 염여사와 그 주변 인물들과의 에피소드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기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백지 또는 아마도 '빈 서판(The Blank Slate/tabula rasa)'과도 같이 모든 걸 잃은 독고를 통해 알바생과 세일즈맨, 극작가와 흥신소 노인 등 여러 인물들의 시각으로 소설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이어가고 있다. 같은 장면이 다른 에피소드에서 다른 시각으로 그려지는 입체적 관점이다. 독고가 혼술에 찌든 세일즈맨 가장을 위로하던 장면이 벼랑에 선 극작가의 시선에서 다시 반복되기도 하고 이 모든 에피소드들은 독고가 자기 기억을 되찾아가는 마지막 장에서 총정리되듯 독고의 시선으로 곱씹어진다. 결국 다른 인물들에게 따뜻한 기운과 함께 각성과 갱생의 계기를 주던 독고가 사실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게 되는 입체적 관계다. 아픈 과거로 인해 한강다리에 올라 강에 뛰어들고자 했던 독고는 결국 깨닫는다.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는 곳임을"([불편한 편의점], <ALWAYS>).
그렇게 그는 아픈 삶의 심연에 빠지는 대신 그곳을 건너 "부끄럽지만 다시 살아보기로" 한다.


나는 지금도 글을 쓴다.
한때는 사회를 고발하고 싶었고, 유명한 작가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다는 욕망에 달떠있었다. 그렇게 잘난체 하고 싶어 두껍고 어려운 책들을 열심히 읽어댔고 글을 썼다. 아마도 작가가 되었다면 [불편한 편의점] 에피소드에 나오는 극작가처럼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며 벼랑 끝에 섰을 수도 있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작가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써댄다. 나 스스로 매주 마감을 정해 매주 짧은 글을 한 편씩 써대고 있다. 전형적인 자아도취이자 자기만족이겠지만 이제 내 꿈에서 남은 건 나와의 약속 뿐이다. 매일 아침 집앞을 쓸었다던 다산 정약용처럼 가급적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집어든 책이 사실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었다. 이번주 읽고자 했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The Blank Slate)]이 너무 두꺼워 다 읽지도 못했으니 하루만에라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집어들고 나온 거다. 그리고 출근길에서 생각지 못하게 감동을 받았다. 가장으로 다시 힘을 내기로 한 세일즈맨 에피소드에서 울컥하기도 하고 글쓰기의 벼랑에서 독고와 함께 갱생했을 작가 김호연 스스로의 모습도 얼핏 본다.

매년 '이상문학상'과 '현대문학상' 등을 빼먹지 않고 챙기며 유명 소설가들의 작품들을 열심히 읽어대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내 글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읽은 책을 인용하며 서평을 꾸준히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소설'은 아니고 '서평'을 빙자한 독후감을 소설 비슷한 형식을 빌어 매주 쓰는데 정작 소설은 몇 년만에 읽어본 듯 하다.

이제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매주 나와의 약속을 지키듯이 글을 쓴다. 소설 속 독고가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는 곳"이라 말하듯 글은 그냥 쓰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3.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선배가 취업할 생각은 하지 않고 '소설가'가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 바로 말했어야 했다. 오빠는 재능이 없다고. 그런 소설은 지금 세상에서 먹힐리도 없고 운이 좋아 등단했다손 치더라도 굶어죽기 딱 좋다고. 헤어질 결심으로 직언을 해야 했지만 못했다. 그가 아직도 내가 예전처럼 그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내게 도움이 안될 것 같으면 언제든 그를 버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했어야 했다. 주변 사람 누구도 아는 사실을 그만 모르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처럼 자기가 특별한 줄 아는 듯 하지만 사실 뭐 하나 다를 것 없는 그는 남들처럼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고 그렇지 못한다면 나는 더 이상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하라는 토익시험도 잘 안보고 취업준비도 소홀한 그가 내가 마지못해 다니던 회사 앞 커피숍에서 기다리는 것도 싫었고, 만나면 예전 사회과학 학회 세미나에서나 하던 말들을 지껄여대는 모습에도 진절머리가 났다. 어쩌다 데이트라도 할라차면 돈도 없으면서 모텔이나 찾아다니려던 꼴도 너무 보기 싫었다. 더이상 대학 신입생도, 연인의 제대를 손꼽아 기다리며 밤새 꽃편지를 쓰던 가련한 여인도 아닌 나는 매정하지만 이제 그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더는 쥐구멍만한 무역회사도, 미래가 없는 그와의 만남도 참을 힘이 없었다. 다 때려치우고 임용고시 준비나 제대로 하고 싶었다. 더 이상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동기들은 이미 교사가 되었거나 나보다 한참 멀리 가 있었다. 그래. 이제 떠나자, 생각하며 나는 커피숍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던 그를 두고 일도 없는데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 남자 때문에 허비한 내 젊음이 아깝고 억울해서 언제나 씩씩한 나였지만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2004년 총선에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을 지지해 달라는 문자가 왔다. 5년만에 그가 보낸 문자였다. 잘 지냈느냐는 안부 따윈 없었다. 아직도 나를 대학시절 그 후배의 모습으로 대하는 듯 내게 했던 일들은 아랑곳 없는가 보았다. 학교 친구와 선후배에게 물어보니 그 남자는 이제 정신차리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잘지내고 있다고 했다. 임용고시가 뜻대로 잘 풀리지 않던 나는 그를 다시 만나보았고 예전같은 감정은 없지만 결혼도 생각해 보았다. 그는 몇 번 우리 부모님께도 다시금 찾아와서 결혼허락을 받고자 했지만 엄마는 하나 뿐인 딸인 나를 가난한 집 외아들에게 보내고 싶지 않다고 완강히 버티셨다. 사실 나 또한 그 남자의 부모님까지 모시고 살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언제 어떻게 또 나를 실망시킬지 모를 그 남자도 모자라 그 부모까지 책임지며 살 수는 없었다. 나는 또 다시 헤어질 궁리를 하는 나를 발견했고 햇살 맑은 어느날 서울시역사박물관 뜰에서 이별통보를 하고자 했다. 

의외였다.
이제 정신차렸으니 자기가 더 잘해보겠다고 하기는 커녕, 그는 이제 서로 각자 웃으며 살자면서 내게 먼저 이별을 고했다. 황당해하는 내게 그는 끝까지 되지도 않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행복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먼저 등을 돌려 가버렸다. 
햇살이 눈부시던 그 여름의 박물관 정원 풍경은 그 후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 장면에서 그의 뒷모습만 파버리면 딱 좋았을 풍경이었다.


감호연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마지막 장면에서 독고라는 남자가 기억을 찾아 기차를 타고 한강을 건널 때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깨달았듯, 사랑은 상대방을 향해야지 자기만을 향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원래 모든 사랑은 자기애라고는 하지만, 결국 사랑의 본질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 뭐 이런 것이 되어야 한다. 
그도 나도, 각자 자기만 바라보는 그런 사랑, 내 젊음이 너무 아쉽고 억울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냥 우린 그렇게 열병과도 같던 청춘의 다리를 건넌 거였다. 같이 뛰어내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그가 뛰어내리자고 할 때 내가 손을 놓을지도.

그 여름의 햇살 속에서 그가 어색하게 웃음지으며 먼저 손을 놓아준 게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쉽게 변할 사람이 아니니 이 모진 세상에서 그 선배가 상처나 덜 받고 살기를 바라는 수 밖에.

아직까지 글이나 써보겠다고 방에 틀어박혀 궁상이나 떨지 말기를.

안녕.
한 많았던 내 청춘.


4. "부끄럽지만 살기로"

좋은 글을 쓰려면 깊이있게 구상도 하고 그 생각들이 농익은 다음 저절로 터져나와야 할게다. 소설가 김호연도 [불편한 편의점]에서 극작가인 정작가를 통해 생각의 속도가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보다 빠르다면 글을 잘 쓰고 있다는 말을 한다. 아마도 작가 본인의 경험이자 글쓰기 지론이겠다.

나는 사실,
글을 쓸 때는 어쩔 수 없이 첫사랑 그녀를 떠올린다. 그녀 때문에 글을 쓰고 싶었던 건 결코 아니었지만,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가 내 옆에 있었기도 했고 군대에서 서로 주고받던 장문의 편지를 통해 어설프게나마 습작 비슷한 것을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또한 그녀에게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더더욱 작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 결국 나는 소설도, 첫사랑 그녀도 잃었지만, 그 때는 그게 나의 전부였다.

젊은 치기로 그녀에게 주었던 상처를 돌아본다. 며칠 전의 '불편한' 꿈처럼 다시 돌아간들 잘해볼 자신은 없다. 다시 돌아가보았자 난 여전히 그 시절의 나일테니 말이다. 정말 미치도록 사랑했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그건 그녀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자 집착이었다. 상대방이 아닌 나만을 향했던 사랑, 이것이 젊었던 내가 그녀에게 준 상처의 근원이었다. 부디 그녀가 꿈에서나마 그 아픔과 아쉬움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불편한 편의점]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수 밥 딜런의 자서전을 인용하며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하셨다는 말을 하나 소개하고 있다. "네가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같은책, <불편한 편의점>)고. 편해야 하는 '편의점'임에도 '불편'하고 그 속에서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되면서 인생의 '편안함'을 되찾게 된다는 일종의 판타지일 수도 있지만, 그게 바로 삶의 역설(paradox)일 수도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생각의 속도보다 아이폰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이 먼저 가는 글쓰기임에도 당분간 나는 계속 해보려 한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이라든가, 소설을 써보겠다는 그럴듯한 구상은 일단 접어두기로 한다. 
다소 부끄럽지만 그냥 글을 써보기로 한다.
그게 지금의 내가 사는 길이다.

강은 빠지는 게 아니라 건너는 것이고,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니듯,
글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쓰는 것일테니 말이다.

(2023.2.22.)

***

-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나무옆의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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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레의 민중
쥘 미슐레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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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벗은 누구인가
- [민중], 쥘 미슐레, 1846.


"Vox Populi, vox Dei.
(민중의 목소리가 신의 목소리다)."
- [민중], <2-7. 단순한 자의 본능과 천재의 본능>, 쥘 미슐레, 1846.


1.

스무살이 되었을 때 나는, 
여전히 철딱서니 없었지만, 더 이상 내 아버지를 '노무자'라 부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가정환경조사서'를 쓸 때는 부모님 몰래 아버지 직업을 '노무자'로 써서 내려다가 아버지한테 걸려서 '기술자'로 바꿔쓰기도 했지만, 나는 내심 부끄러웠다.
헛기침하시며 '노무자'를 '기술자'로 수정하던 아버지가 실은 나보다 더 그랬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게 된 건 그 후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스무살의 나는,
내 아버지를 굳이 '자랑스럽다'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이 땅의 '노동자'로 생각했고 나 자신을 '노동계급의 아들'로 규정했다.

그렇게 나 역시,
'노동계급'이 될 터였다.


2.

"외로운 몽상가에 불과한 불쌍한 나는 침묵을 지키는 그 거대한 '민중'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가진 것은 내 목소리 밖에 없는데. 이것으로 지금까지 그들을 배제했던 '올바름의 나라'로 그들이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나는 이 책에서 자신들이 이 세계에서 권리를 갖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했다. 침묵 속에 신음하며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향해 여망을 갖고 상승하려는 사람들, 그들이 나의 '민중'이다. 그들이 '민중'이다. 그들이 나와 함께 가게 되기를."
- [민중], <2-9. 2부의 요약과 3부의 도입>, 쥘 미슐레, 1846.


그렇게 '계급적 각성'을 했다고 해서 내가 뭐 투철하게 '혁명' 운동을 했는가 하면, 그러기에 나는 너무 소심했고 헌신을 진짜 헌 신발짝 만큼이나 가볍게 여겼던지 주변만 기웃거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나는,
결국 '노동자'가 되기는 했다.

내가 생각했던 '노동계급'은 이 땅 '민중'의 대다수이자 선봉대였고, 이십대의 내가 추앙하던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가 레닌의 말대로 '노동계급의 아들'이면서 '배운' 나는 '지식인'으로서 '인민(민중)의 벗'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읽었고 '리얼리즘' 소설를 써보겠다며 더더욱 책 속으로 침잠했다.

결국 '혁명'은 커녕 '소설'도 쓰지 못한 나는 지금, 
금융노동자로서 '민중의 벗'이 아니라 '민중' 자체가 되었다.


19세기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Jules Michelet : 1798~1874)는 프랑스 2월 혁명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846년에 [민중(Le Peuple)]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로부터 2년 후 1848년 2월 혁명으로 왕정은  1789년에 이어 다시금 타도되었지만 이 혁명을 이끌었던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계급이 된 부르주아지는 2월 혁명의 주력군이었던 대다수 노동계급을 배반했고, 혁명의 국면에서 [공산당선언]을 발표하며 다수 노동계급을 지도할 '공산주의자'의 역할을 강조했던 칼 마르크스는 이후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부터 나폴레옹 3세의 브뤼메르 18일 쿠데타와 파리코뮌까지 이어진 프랑스 '반혁명성'의 역사를 '프랑스 혁명사 3부작'으로 엮어낸다.

칼 마르크스는 혁명의 주체로서 자본주의 체제의 임금노동자를 역사의 무대에 등장시켰다. 이들은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혁명/자본/제국의 시대 3부작'에 의하면 19세기 당시 실제로 대다수는 아니었지만 생산수단의 독점화가 필연인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결국 대다수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대전제였다. 그러므로 원래 '민중'은 '과학적 사회주의' 개념은 아니었지만 절대다수가 될 '노동계급' 자체가 바로 '민중'이었다. 

쥘 미슐레의 [민중]은 원제가 'Le Peuple(The People)', 즉 '민중' 또는 '인민'이다. 그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정신의 '조국 프랑스'를 되찾기 위해 프랑스 '민중' 모두가 "신념"(같은책, <3-8>)을 기반으로 "사랑"과 "우정", "희생" 같은 덕목을 통해 "정신적인 결속"(같은책, <3-3>)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 국민공회가 확립한 '공교육'을 통해 모든 '민중'이 "모두가 똑같은 정신적인 의자에 앉아있는 '평등의 나라'로서, '궁극적인 나라'로 가기 이전의 좋은 나라"(같은책, <3-9>)를 만들자는 것을 결론으로 삼는다.
'혁명'으로 복권된 미슐레의 '조국 프랑스'는 "올바름의 나라"(같은책, <2-9>)로 표현되고 있는데 '민중'이 주인되는 '권리의 나라'이자 '신의 나라'다.


"중세는 결속을 약속했지만 전쟁만을 주었을 뿐이다. 신에게 두번째의 시대가 필요했고 그는 1789년에 육화되어 지상에 나타났다."
- [민중], <3-3. 결사에 대하여>, 쥘 미슐레, 1846.


미슐레의 '민중'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으로 '조국 프랑스'를 재건할 대다수 인민이었다. 이를 위해 미슐레는 당시 프랑스의 경쟁국이었던 영국의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농업국가인 프랑스에 도입된 자본주의 도시화를 "기계주의"(같은책, <1-8>)로 묘사하며 초기 자본주의화되는 프랑스 현실에 "예속"(같은책, <1부> 전체)되어가는 농민과 도시 노동자, 공장주와 상인, 심지어 부자와 부르주아의 처지까지 설명하며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2부>에서는 '민중'의 '본능'을 '자연'이라는 주제어로 풀어나가는데 지식인들의 사상은 복잡하지만 '어린이'와 같이 단순한 '민중'의 생각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 예로 '천재의 단순성'과 '비지성주의'를 '민중'에 비유하고 있는데 19세기 '고전'이라 읽어주지 지금 책이 이런 식의 논리를 폈다면 바로 책을 덮고 말았을 게다.
아니 실제로도 여기서 그만 덮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읽어야 했다. 그 자체로 다수 '노동계급'이자 '민중'의 일원으로서 '민중'의 역사와 기원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민중(인민:people)'에 관한 최초의 저술을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미슐레의 [민중]은 서양에서 중세를 넘어 근대에 이르러 하층의 다수 사람들(민중)을 거지나 범죄자로 보는 게 아닌 '공공성'의 담지자로, 나아가 근대적 '신의 목소리'로 여긴 최초의 저작이다. 동양은 이미 기원전 공자의 '인'이나 맹자의 '의' 개념에서 다수 '민중'의 힘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지배받아야 하는 '백성'이었다. 

쥘 미술레의 이 저작은 서양에서 '민중'을 처음 주제로 삼은 고전이기는 하나 그 내용을 보면 거의 한 세기 전 미국 독립혁명 투쟁과 공화국 건설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던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 1737~1809)의 [상식]이나 [인권]보다는 조악하다. 그럼에도 미슐레의 [민중]이 고전인 이유는 지금 읽기에 다소 유치한 내용 때문이라기 보다는 절대군주의 목을 친 프랑스 대혁명의 경험을 토대로 모든 '민중'들이 새로운 세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당당한 사상에 있다. 

이 책의 마지막 <3부>의 핵심어는 바로 '조국'이다.
미슐레가 비록 '조국 프랑스'를 재건할 '민중'으로 프랑스 전체 국민을 포괄함으로써 자본주의 계급투쟁을 간과했다 해도 이 고전의 역사적 의의는 '민중'의 '주체화"에 있는 것이다.


3.

마르크스주의 '노동계급'이나 현대의 민주주의에서 '대중' 개념의 뿌리가 사실 '민중'이다. 
미슐레가 추종하듯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중세를 넘어 부르주아 사회를 열었지만 더욱 중요한 의의는 다수 '민중'을 '혁명'의 주역으로 처음 상정한 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분석을 통해 이 '민중'을 필연적으로 다수가 될 '노동계급'으로 구체화시켰다.
이제 현대 민주주의 운동의 확장에 따라 다수 '민중'은 사회 전영역에서 '주체화'의 가능성 일체를 담지한 '대중(mass)' 또는 '다중(multitude)'으로 치환해서 부를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만약 지금도 '신'이 죽지 않았다면,
가령 그 '신'이 모두의 복지를 증진해주는 '공공성'이라면,
그 '신의 목소리(Vox Dei)'는 '민중의 목소리(Vox Populi)'일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에 대한 염려 따윈,
다수의 '민중', '인민', '노동계급', '대중'의 '주체화' 뒤로 잠시 미뤄둘 일이다.

미슐레의 말대로 '민중'은 '사랑'과 '우정'과 '희생'의 덕목을 통해 '정신적'으로 결속한다.

'민중'의 벗은 다름아닌 '민중' 스스로다.

***

- [민중(Le Peuple ) ](1846), Jules Michelet, 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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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격투기 ㅣ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오사다 류타 지음, 남지연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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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너무도 '사소한' 페히트부흐
- [고대 격투기] / [중세 유럽의 무술], 오사다 류타


1.

나도 '형'이 있었으면 했다.

열 살 이전의 아주 어린 시절, 동네에서 싸움이 붙기 전 가장 강력한 말 중 하나는, "너, 우리 형한테 이른다"였다. 누나만 셋이었던 나는 소심하여 평소에 싸울 일도 거의 없었지만 간혹 만만해 보이는 친구 하나랑 붙어볼까 싶다가도 나중에 그 집 '형'한테 쥐어터질까봐 바로 꼬리를 내렸다. 
물론, 남자 꼬맹이들의 현실세계에서 그 '형'이란 무형의 존재들이 '평화'의 메신저가 되기 이전에, 그 남자 꼬맹이들 실제 가정에서의 그 '형'들이 어떤 인간들이었는지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친구들 집을 드나들며 관찰한 결과 형제 집안 친구들은 밖에서 안 맞는 매를 집안에서 그 '형'으로부터 맞고 사는 듯 했다.
나는 우리 집에 있는 누나들이 갑자기 상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펼친다.
친구네 '형'의 책장에 있던 이소룡의 [절권도 교본]이나 [당랑권 교본], [유도 교본] 같은 책을 빌린다. 그리고 또 몇 권은 반환하지 않는다. 물론 보나마나 그 책을 잃어버린 친구는 어느날 책주인 '형'으로부터 그 무술 '교본'의 실험대상이 되었을 게다.


2.

"페히트부흐는 독일어로 [싸움의 책]이라는 뜻이며, 일반적으로 중세에서 근세에 걸쳐 전투기술의 해설과 참조를 목적으로 쓰여진 서적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책이 쓰여졌다는 것은 무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식자율이 높아지고 기술이 다양화, 세분화되었으며, 귀족을 포함한 부유층이 무술 사범을 고용하여 배움을 청하는 기회가 늘어난 것도 페히트부흐의 성립과 관련이 있습니다."
- [중세 유럽의 무술], <1부 개론>, 오사다 류타, 남유리 옮김, <AK>, 2013.


사실 그 수 많았던 '교본' 즉, '싸움의 책'들은 실전에 쓸 수 없었다. '당랑권'이나 '태극권', 또는 '유도'의 기본기를 익혀서 실전에 쓸 만큼 싸움을 해보기에는 너무 피곤한 일이었는데, 아마도 무술에 진심인 녀석들은 그 때문에라도 숱하게 싸웠는지도 모르겠다.  남자 꼬맹이들이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서로 뒹구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같은 현상일텐데 사람만의 특징은 '교본'을 머릿속에 장착한다는 것일테고 소심한 나와 달리 적극적인 놈들은 이 '교본'을 진심으로 실험해보기 위해 약자들을 찾아다녔을게다.


'<AK> 출판사에서 'Trivia Book' 시리즈를 통해 실로 오랫만에 '교본'을 보았다. '하찮은 것(trivia)'에 관한 잡학적인 책들을 엮는다는 이 시리즈 중 '오사다 류타'라는 정체불명의 일본인이 쓴 [고대 격투기](2018)와 [중세 유럽의 무술](2013)이다. 옮긴이 소개는 있는데 정작 저자 소개도 없다. 실생활에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주제를 다뤘다는데 읽어보면 의외로 깊이도 있고 참고문헌 또한 방대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역사학자'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없는 저자는 아마 일본의 어느 독방에서 인류 '무술의 역사' 관련 책과 인터넷 자료를 수십년 째 파고 있는 '무술 오타쿠(덕후)'가 아닌가 싶다. 

무술 '교본'의 유래는 아마 14세기경 독일인이 쓴 '페히트부흐(싸움의 책)'일 수도 있겠다. 14세기 당시는 인쇄술 혁명이 일기 전이었고 중세의 중반이었으므로 이 '교본'들은 대중에게 읽히기 위한 게 아니라 무술 전문가인 저자가 본인을 고용한 후견인 귀족이나 권력자에게 헌사하는 용도 또는 독일식 무술의 대표자 요하네스 리히테나워 같은 대가의 제자들이 예수 사후 [신약성경]이나 공자 사후 [논어]처럼 스승의 비책이 사장되지 않도록 책으로 정리한 것일 수도 있다. 동양의 오래된 무술영화에서 주인공의 사부님이 품고 다니는 서책교본처럼 이 세상에 몇 권 안되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근대의 인쇄술 혁명처럼 '총기류'의 발달은 힘있는 자들의 독점물이었던 '무술'과 전쟁 조차도 모든 대중이 접근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화'시켰다. 
어릴적 내가 읽었던 각종 무술 '교본'은 물론 지금의 오사다 류타의 '사소한' 교본들 또한 현대의 민주주의적 '페히트부흐'다.

저자는 중세에서 르네상스 전까지 유럽의 독일식, 이탈리아와 스페인식 유파를 소개하고 장검(롱소드)과 단검(대거) 및 쌍검(몬탄테), 스틱과 창, 도끼(폴엑스) 등의 무기술과 맨손 레슬링에 관한 잡학 지식을 풀어놓는다. 

내 생각으로 중세 무술을 연 바이킹 같은 북유럽 게르만족과 중유럽 프랑크족의 개별적 각개전투가 로마의 진법을 깰 수 있었던 이유는 전투기술의 우열 차이가 아니라 문화였다. 고대 유럽의 세계최강 로마군단의 진법이 프랑크족의 손도끼(프랑크)와 바이킹의 장검(롱소드)에게 깨지기 전 서로마 국가체제는 이미 몰락한 후였다.
그렇게 "펜은 칼보다 강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복싱(Pygne:주먹)은 영웅 테세우스가 발명한 것으로 서술된다... 복싱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인데, 작중에 활약하는 영웅이 스스로 '전투는 뒤떨어지지만 주먹으로 살을 찢고 뼈를 부수기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와 같이 당시 복싱 기술은 전장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듯 하다... (당시 복싱은) 주먹을 이용한 타격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만큼 당시 가장 위험한 스포츠로 인식되었으며, 올림픽 대회에서도 두 명의 사망이 확인되고 있다. 초기 복싱에는 규칙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고, 처음으로 공식적인 규칙이 확립된 것은 기원전 688년의 일이다."
- [고대 격투기], <3장 복싱개설>, 오사다 류타, 남지연 옮김, <AK>, 2018.


우리의 고구려 벽화에 '수박희(手搏戲)'가 있다. '교본'은 없지만 [한서] <애제기> 등 고대 중국의 기록과 고구려 고분 등의 동아시아 벽화를 통해 권력자 주최의 잔치에서 무사들이 웃통을 벗고 힘을 겨루는 일종의 스포츠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의 택견이나 씨름으로, 일본의 가라데나 스모로, 중국의 쿵푸 등으로 분화되었겠지만 구체적 증거는 없으니 현대의 이종격투기 같았을 수도 있다. 당시부터도 규칙은 힘있는 자의 말에서 나왔을테니.

오사다 류타는 [고대 격투기]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 및 로마시대 서기 4백년까지 무술의 역사를 돌아본다. 복싱과 레슬링, 이 둘의 혼합과 같은 판크라티온(이종격투기)과 곤봉술, 검투사의 종류 등 온갖 사소한 지식을 풀어놓는다.

노예제 사회였던 고대 로마의 검투사는 전쟁포로 등의 노예였다. 아마도 대부분 비참한 삶으로 마감했을 것이지만 어느 시대에나 특출난 인간들은 있다. 여권이 없던 고대에도 여성 황제가 나왔고 천대받던 내시가 권력의 정점에 서기도 했다. 노예 검투사 중에도 '스타'가 되어 신분상승된 경우도 있었을 테고 스파르타쿠스 같은 영웅은 검투사 노예해방군을 조직했다. 이 책에 의하면 실제로 스파르타쿠스는 신분의 제약을 넘어 외부에 살면서 결혼까지는 못했어도 여자와 동거하며 개별살림도 했단다. 참으로 '사소'하나 재밌다. 

고대 로마의 공화정과 제국의 혼합국가는 세계 각지의 민중들이 로마에 편입하려는 치열한 경쟁으로 돌아갔다. 그 중 하나가 군대로서 게르만인이나 유대인 등이 로마의 용병이 되어 실적을 쌓고 정규군이 되고 나아가 장군으로까지 승진하는 '능력주의'가 판을 친 시대였다. 이 '능력주의'의 '능력'은 실력이든 뇌물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다.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용병은 물론 검투사 같은 노예의 길을 택한 이민족도 많았을 것이다. 이들을 이끌었을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는 극소수였을 테니 도태된 다수가 살기 위해서는 타협은 물론, 적당하고 사소하게 '저항'할 수 밖에 없었겠다. 
결국 고대 로마와 같은 견고한 노예제 체제를 무너뜨린 건 다수 노예들의 '사소한' 저항들이었고 이것들이 모여 스파르타쿠스 반란 같은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으리라. 


3.

무술 '교본' 따위를 구해오는 '형' 같은 존재가 없었던 나는 10여세 이후 현실을 직시하기까지 '용감한 형제'라는 말도 안되는 판타지를 꿈꿨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기에  어머니를 졸라 태권도장을 다녔다. 아마도 초등 6학년 때인가 오른팔이 부러지지 않았다면(애정했던 태권도 훈련이 아니라 그냥 놀다가) 나는 아마 지금 태권도 사범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만큼 어린 시절의 나는 태권도를 무척 사랑했다. 
모든 무술은 '도(道)'로 통하므로 인격훈련을 위해서라도 가히 애정할만한 대상이다.

가정을 이룬 후 숨어있던 무의식에 의해 첫째 아들을 보고 둘째도 '용감한 형제'를 바랐던 무모했던 삼십대를 지나 반백의 중년에 이른 지금, 성장한 아들을 보며 세상 모든 고추들에게 환멸 비슷한 걸 느끼게 된 후로는 세상 딸들이 그렇게 고맙고 이쁘다. 아마도 친구들에게 힘으로 군림하려던 어린 시절 그 역시 어렸던 친구들 형들의 실체를 본 후 우리집 세 명의 누나들이 상냥하게 보였던 현상의 반복이리라. 

나 스스로도 진흙탕에서 그렇게 구르며 성장하고 겪었지만, 어린 시절의 남자는 특히나 무모하고 위험한 존재들이다. 아마도 죽기 전날까지도 철이 들지 않을 이 '형'들은 대의를 꿈꾸면서도 '사소한 것'에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에서 허다한 예가 있겠지만,
관우는 자존심 세우다가 죽었고,
장비는 술주정 부리다가 죽었고,
유비는 의리를 쫓아가다 죽었다.

그들의 최후에 '촉한정통'과 '북벌통일'의 '대의'가 있었는가.

'사소한' 남자들에게 특히 '도(道)'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에게도 조선 정조시대인 18세기에 규장각에서 무예 '24기'를 총망라한 무술 교본 [무예도보통지]가 있기는 하나, '도(道)'를 담은 이 시대 진정한 '페히트부흐'는 어디에 있는가.

***

1. [고대 격투기], 오사다 류타, 남지연 옮김, <AK>, 2018.
2. [중세 유럽의 무술], 오사다 류타, 남유리 옮김, <AK>,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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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무술 ㅣ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오사다 류타 지음, 남유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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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너무도 '사소한' 페히트부흐
- [고대 격투기] / [중세 유럽의 무술], 오사다 류타


1.

나도 '형'이 있었으면 했다.

열 살 이전의 아주 어린 시절, 동네에서 싸움이 붙기 전 가장 강력한 말 중 하나는, "너, 우리 형한테 이른다"였다. 누나만 셋이었던 나는 소심하여 평소에 싸울 일도 거의 없었지만 간혹 만만해 보이는 친구 하나랑 붙어볼까 싶다가도 나중에 그 집 '형'한테 쥐어터질까봐 바로 꼬리를 내렸다. 
물론, 남자 꼬맹이들의 현실세계에서 그 '형'이란 무형의 존재들이 '평화'의 메신저가 되기 이전에, 그 남자 꼬맹이들 실제 가정에서의 그 '형'들이 어떤 인간들이었는지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친구들 집을 드나들며 관찰한 결과 형제 집안 친구들은 밖에서 안 맞는 매를 집안에서 그 '형'으로부터 맞고 사는 듯 했다.
나는 우리 집에 있는 누나들이 갑자기 상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펼친다.
친구네 '형'의 책장에 있던 이소룡의 [절권도 교본]이나 [당랑권 교본], [유도 교본] 같은 책을 빌린다. 그리고 또 몇 권은 반환하지 않는다. 물론 보나마나 그 책을 잃어버린 친구는 어느날 책주인 '형'으로부터 그 무술 '교본'의 실험대상이 되었을 게다.


2.

"페히트부흐는 독일어로 [싸움의 책]이라는 뜻이며, 일반적으로 중세에서 근세에 걸쳐 전투기술의 해설과 참조를 목적으로 쓰여진 서적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책이 쓰여졌다는 것은 무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식자율이 높아지고 기술이 다양화, 세분화되었으며, 귀족을 포함한 부유층이 무술 사범을 고용하여 배움을 청하는 기회가 늘어난 것도 페히트부흐의 성립과 관련이 있습니다."
- [중세 유럽의 무술], <1부 개론>, 오사다 류타, 남유리 옮김, <AK>, 2013.


사실 그 수 많았던 '교본' 즉, '싸움의 책'들은 실전에 쓸 수 없었다. '당랑권'이나 '태극권', 또는 '유도'의 기본기를 익혀서 실전에 쓸 만큼 싸움을 해보기에는 너무 피곤한 일이었는데, 아마도 무술에 진심인 녀석들은 그 때문에라도 숱하게 싸웠는지도 모르겠다.  남자 꼬맹이들이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서로 뒹구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같은 현상일텐데 사람만의 특징은 '교본'을 머릿속에 장착한다는 것일테고 소심한 나와 달리 적극적인 놈들은 이 '교본'을 진심으로 실험해보기 위해 약자들을 찾아다녔을게다.


'<AK> 출판사에서 'Trivia Book' 시리즈를 통해 실로 오랫만에 '교본'을 보았다. '하찮은 것(trivia)'에 관한 잡학적인 책들을 엮는다는 이 시리즈 중 '오사다 류타'라는 정체불명의 일본인이 쓴 [고대 격투기](2018)와 [중세 유럽의 무술](2013)이다. 옮긴이 소개는 있는데 정작 저자 소개도 없다. 실생활에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주제를 다뤘다는데 읽어보면 의외로 깊이도 있고 참고문헌 또한 방대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역사학자'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없는 저자는 아마 일본의 어느 독방에서 인류 '무술의 역사' 관련 책과 인터넷 자료를 수십년 째 파고 있는 '무술 오타쿠(덕후)'가 아닌가 싶다. 

무술 '교본'의 유래는 아마 14세기경 독일인이 쓴 '페히트부흐(싸움의 책)'일 수도 있겠다. 14세기 당시는 인쇄술 혁명이 일기 전이었고 중세의 중반이었으므로 이 '교본'들은 대중에게 읽히기 위한 게 아니라 무술 전문가인 저자가 본인을 고용한 후견인 귀족이나 권력자에게 헌사하는 용도 또는 독일식 무술의 대표자 요하네스 리히테나워 같은 대가의 제자들이 예수 사후 [신약성경]이나 공자 사후 [논어]처럼 스승의 비책이 사장되지 않도록 책으로 정리한 것일 수도 있다. 동양의 오래된 무술영화에서 주인공의 사부님이 품고 다니는 서책교본처럼 이 세상에 몇 권 안되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근대의 인쇄술 혁명처럼 '총기류'의 발달은 힘있는 자들의 독점물이었던 '무술'과 전쟁 조차도 모든 대중이 접근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화'시켰다. 
어릴적 내가 읽었던 각종 무술 '교본'은 물론 지금의 오사다 류타의 '사소한' 교본들 또한 현대의 민주주의적 '페히트부흐'다.

저자는 중세에서 르네상스 전까지 유럽의 독일식, 이탈리아와 스페인식 유파를 소개하고 장검(롱소드)과 단검(대거) 및 쌍검(몬탄테), 스틱과 창, 도끼(폴엑스) 등의 무기술과 맨손 레슬링에 관한 잡학 지식을 풀어놓는다. 

내 생각으로 중세 무술을 연 바이킹 같은 북유럽 게르만족과 중유럽 프랑크족의 개별적 각개전투가 로마의 진법을 깰 수 있었던 이유는 전투기술의 우열 차이가 아니라 문화였다. 고대 유럽의 세계최강 로마군단의 진법이 프랑크족의 손도끼(프랑크)와 바이킹의 장검(롱소드)에게 깨지기 전 서로마 국가체제는 이미 몰락한 후였다.
그렇게 "펜은 칼보다 강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복싱(Pygne:주먹)은 영웅 테세우스가 발명한 것으로 서술된다... 복싱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인데, 작중에 활약하는 영웅이 스스로 '전투는 뒤떨어지지만 주먹으로 살을 찢고 뼈를 부수기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와 같이 당시 복싱 기술은 전장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듯 하다... (당시 복싱은) 주먹을 이용한 타격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만큼 당시 가장 위험한 스포츠로 인식되었으며, 올림픽 대회에서도 두 명의 사망이 확인되고 있다. 초기 복싱에는 규칙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고, 처음으로 공식적인 규칙이 확립된 것은 기원전 688년의 일이다."
- [고대 격투기], <3장 복싱개설>, 오사다 류타, 남지연 옮김, <AK>, 2018.


우리의 고구려 벽화에 '수박희(手搏戲)'가 있다. '교본'은 없지만 [한서] <애제기> 등의 고대 중국의 기록과 고구려 고분 등의 동아시아 벽화를 통해 권력자 주최의 잔치에서 무사들이 웃통을 벗고 힘을 겨루는 일종의 스포츠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의 택견이나 씨름으로, 일본의 가라데나 스모로, 중국의 쿵푸 등으로 분화되었겠지만 구체적 증거는 없으니 현대의 이종격투기 같았을 수도 있다. 당시부터도 규칙은 힘있는 자의 말에서 나왔을테니.

오사다 류타는 [고대 격투기]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 및 로마시대 서기 4백년까지 무술의 역사를 돌아본다. 복싱과 레슬링, 이 둘의 혼합과 같은 판크라티온(이종격투기)과 곤봉술, 검투사의 종류 등 온갖 사소한 지식을 풀어놓는다.

노예제 사회였던 고대 로마의 검투사는 전쟁포로 등의 노예였다. 아마도 대부분 비참한 삶으로 마감했을 것이지만 어느 시대에나 특출난 인간들은 있다. 여권이 없던 고대에도 여성 황제가 나왔고 천대받던 내시가 권력의 정점에 서기도 했다. 노예 검투사 중에도 '스타'가 되어 신분상승된 경우도 있었을 테고 스파르타쿠스 같은 영웅은 검투사 노예해방군을 조직했다. 이 책에 의하면 실제로 스파르타쿠스는 신분의 제약을 넘어 외부에 살면서 결혼까지는 못했어도 여자와 동거하며 개별살림도 했단다. 참으로 '사소'하나 재밌다. 

고대 로마의 공화정과 제국의 혼합국가는 세계 각지의 민중들이 로마에 편입하려는 치열한 경쟁으로 돌아갔다. 그 중 하나가 군대로서 게르만인이나 유대인 등이 로마의 용병이 되어 실적을 쌓고 정규군이 되고 나아가 장군으로까지 승진하는 '능력주의'가 판을 친 시대였다. 이 '능력주의'의 '능력'은 실력이든 뇌물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다.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용병은 물론 검투사 같은 노예의 길을 택한 이민족도 많았을 것이다. 이들을 이끌었을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자는 극소수였을 테니 도태된 다수가 살기 위해서는 타협은 물론, 적당하고 사소하게 '저항'할 수 밖에 없었겠다. 
결국 고대 로마와 같은 견고한 노예제 체제를 무너뜨린 건 다수 노예들의 '사소한' 저항들이었고 이것들이 모여 스파르타쿠스 반란 같은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으리라. 


3.

무술 '교본' 따위를 구해오는 '형' 같은 존재가 없었던 나는 10여세 이후 현실을 직시하기까지 '용감한 형제'라는 말도 안되는 판타지를 꿈꿨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기에  어머니를 졸라 태권도장을 다녔다. 아마도 초등 6학년 때인가 오른팔이 부러지지 않았다면(애정했던 태권도 훈련이 아니라 그냥 놀다가) 나는 아마 지금 태권도 사범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만큼 어린 시절의 나는 태권도를 무척 사랑했다. 
모든 무술은 '도(道)'로 통하므로 인격훈련을 위해서라도 가히 애정할만한 대상이다.

가정을 이룬 후 숨어있던 무의식에 의해 첫째 아들을 보고 둘째도 '용감한 형제'를 바랐던 무모했던 삼십대를 지나 반백의 중년에 이른 지금, 성장한 아들을 보며 세상 모든 고추들에게 환멸 비슷한 걸 느끼게 된 후로는 세상 딸들이 그렇게 고맙고 이쁘다. 아마도 친구들에게 힘으로 군림하려던 어린 시절 그 역시 어렸던 친구들 형들의 실체를 본 후 우리집 세 명의 누나들이 상냥하게 보였던 현상의 반복이리라. 

나 스스로도 진흙탕에서 그렇게 구르며 성장하고 겪었지만, 어린 시절의 남자는 특히나 무모하고 위험한 존재들이다. 아마도 죽기 전날까지도 철이 들지 않을 이 '형'들은 대의를 꿈꾸면서도 '사소한 것'에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에서 허다한 예가 있겠지만,
관우는 자존심 세우다가 죽었고,
장비는 술주정 부리다가 죽었고,
유비는 의리를 쫓아가다 죽었다.

그들의 최후에 '촉한정통'과 '북벌통일'의 '대의'가 있었는가.

'사소한' 남자들에게 특히 '도(道)'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에게도 조선 정조시대인 18세기에 규장각에서 무예 '24기'를 총망라한 무술 교본 [무예도보통지]가 있기는 하나, '도(道)'를 담은 이 시대 진정한 '페히트부흐'는 어디에 있는가.

***

1. [고대 격투기], 오사다 류타, 남지연 옮김, <AK>, 2018.
2. [중세 유럽의 무술], 오사다 류타, 남유리 옮김, <AK>,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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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 경제학고전선, 개역판
존 메이나드 케인즈 지음, 조순 옮김 / 비봉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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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것은 '사상'이지...
-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존 케인즈, 1936.


1.

역시, 
경제학은 어려웠다.

자본주의 확장과 발전을 보며 '본의 아니게' 사회주의를 전망했던 요제프 슘페터의 책,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1942)를 억지춘향이로 읽고나서, 20세기 '천재 경제학자'로 꼽히는 슘페터가 마르크스주의만큼이나 견제했다던 동갑내기 경제학 천재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말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 케인즈의 주저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넘기면서 새삼 확인한 사실이다.

경제학은,
내 적성은 아니었다.


2.

"어려움은 새로운 관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자라온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라온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구석구석까지 침투되어 있는 관념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있는 것이다."
-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서문>, J.M.케인즈, 1935.2.


20세기 최고의 '천재 경제학자'가 되고 싶었을 슘페터가 '사회주의'를 전망한 이유는, 자본주의 모순을 밝혔기 때문도, 착취당하는 다수 민중을 위해서도 아닌, 자본주의가 그 '창조적 파괴'의 '기업가 정신'으로 인해 무한 성장하다 보면 2차 대전 후 영국과 미국처럼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체제가 발전할 것이고, 팽창하는 자본주의 속성상 누진세와 국영화를 통해 자연스레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슘페터의 '예언'은 틀렸고 수십년 후 그가 전망했던 세계 경제체제는 '신자유주의'의 형태로 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했다. 물론, 지금의 '럭셔리'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재화를 분배하고 본의 아니게 '공공재'를 무한생산하게 되면서 그가 말한대로 점점 '사회주의화'되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튼, '예언'하는 모든 '사상'은 '위험'하다. 그리고  일찍이 이를 알려준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케인즈이기도 했다.

'창조적 파괴'의 '기업가 정신' 밖에 모르는 슘페터에게 마르크스주의 혁명은 무책임한 선동이었고, '완전고용'을 지향했던 케인즈는 자본주의의 확장성을 모르는 '정체론자'의 대표논객이었다. 슘페터가 보기에 1883년 동갑내기 천재 케인즈는 슘페터 본인처럼 경제학 교수도 아닌, 경제관료로서 거시경제학 논객이었지 '경제학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슘페터는 평생 또 다른 경제학 '천재'였던 케인즈를 의식했다.


"나는 '고전파' 이론들의 공준들은 오직 특수한 경우에 한하여 타당하고 '일반'적인 경우에는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1-1. 일반이론>, 케인즈, 1936.


1883년생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는 20세기 초중반인 1936년에 '완전고용(full employment)'과 '유효수요(effective demand)'라는 주요 개념으로 '거시경제학'의 논쟁을 촉발했다. 고전파 경제학을 전공하였으나 케인즈는 슘페터처럼 '경제학자'라기 보다는 영국 재무부 경제관료로서 현실적인 경제정책을 끊임없이 제출했다고 한다. 
한편, 1929년 대공황 이후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은 케인즈주의 영향은 아니고 우연히 겹치는 사상과 정책이다. 

케인즈의 주저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하 [일반이론])을 통해 제창된 '케인즈주의'는 국가의 공적 지출을 통한 '완전고용'과 저축(투자)과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유효수요'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불평등'을 점차로 완화하자는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여러가지 용어들의 형형색색의 용법의 혼란 속에서 하나의 확정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저축액은 개개 소비자의 집합적 행동의 소산이고, 투자액은 개개 기업자의 집단적 행동의 소산이면서, 이 두 액수은 필연적으로 일치하게 된다...
...
소득 = 산출물의 가치 = 소비 + 투자
저축 = 소득 - 소비
따라서, 
저축 = 투자 ((소비+투자)-소비)..."
- [일반이론], <2-6. 소득, 저축 및 투자의 정의>, 케인즈, 1936.


이를 위해 케인즈는 주류경제학 일체인 '고전파 경제학'의 '추상성'을 일관되게 비판하는데, 이들 '사상'의 "낡은 관념으로부터 탈출"(같은책, <서문>)하는 어려움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이들 고착화된 개념들이 사실 '일반이론'으로 작동하기 위해 새롭게 현실적으로 재규정되는 "유쾌함"(같은책, <2-6>)을 즐기고 있기도 하다.


"우리의 분석의 긍극적 목적은 무엇이 '고용량'을 결정하는가를 발견하는 데 있다."
- [일반이론], <3-8. 소비성향:1.객관요인들>, 케인즈, 1936.

"... 고용이론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나는 오직 두 개의 기본적인 수량단위, 즉 '화폐가치'의 수량과 '고용'의 수량만을 이용할 것을 제창하고자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위를 엄격히 두 개의 단위, 즉 '화폐'와 '노동'에 한정..."
- [일반이론], <2-4. 단위의 선정>, 케인즈, 1936.


'완전고용'의 이상사회를 상정하고 있기에 케인즈의 경제학에서도 '노동'이 기본 개념이 된다. 그렇다고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 나아가 이들의 유산을 일부 물려받은 마르크스까지 고전주의적 정치경제학이 근간으로 두고있는 '노동가치론'을 다루지는 않고 있다. 케인즈는 [일반이론]에서 이미 고용된 90%의 임노동의 형태를 바꾸기보다 고용되지 않은 10%가 고용되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같은책, <6-24>).

케인즈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은 부러 무시하듯 언급도 거의 하지 않는데, '자본'이나 '노동', 그리고 '화폐'를 논할 때 '상품'이라든가 '노동가치론'을 준거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당시까지 '고전파' 경제학이 '노동가치론'에 대항하여 발견한 주요개념인 '한계(marginal~)' 개념을 사용하여 '자본의 한계효율'을 최소화할 정도의 풍부한 자본 확충을 통해 '유효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완전고용'에 이르러야 한다는 경제 '사상'이라기 보다는 경제 '정책'을 제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화폐'는 그 사용량이 확대되고 화폐 사용에 대한 대가로서 '이자율'은 높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실업(완전고용 실패)'과 '불평등'이라는 자본주의 폐해(같은책, <6-24>)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이자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는 상당히 광범위한 '투자의 사회화'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대부분의 경제생활을 포괄할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옹호할 만한 분명한 이유는 없다. 국가가 인수할 중요한 사항은 '생산용구(생산수단)의 소유'가 아니다. 만일 국가가 생산용구를 증가시키시 위해 투입되는 총자본량과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에 대한 보수의 기본율을 결정할 수 있다면, 국가는 그것으로써 필요한 모든 일을 다 성취하게 되는 셈이 된다. 뿐만 아니라 '사회화'를 위하여 필요한 조처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사회의 일반전통을 파괴하지 않고 도입될 수 있는 것이다."
- [일반이론], <6-24. 일반이론이 도출하는 사회철학에 관한 결언>, 케인즈, 1936.


케인즈에게 경제불황에 대한 대책은 이자율을 낮춰 '준호황' 상태를 유지하는 것인데(같은책, <6-22>), 자본의 한계효율을 최소화시킬 정도의 자본 확충을 통해 저축 또는 투자와 소비의 균형으로서 '유효수요'를 충족시키는 '완전고용' 사회를 지향하면서 경제정책을 실행하면, 당시의 현실사회주의 체제처럼 전반적인 국유화의 '국가사회주의' 또는 급격한 '혁명' 없이도 점차적인 자본주의 모순 극복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그의 결론이다.

그 외 내가 읽기에 중요한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사회의 두드러진 결함은 '완전고용'을 성취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부와 소득의 분배가 자의적이고 '불평등'하다는 점에 있다."
- [일반이론], <6-24. 결언>, 케인즈, 1936.

"... 자본 일반의 한계효율을 이자율과 거의 균등('제로')하게..."
- [일반이론], <4-18. 고용의 일반이론 재설>, 케인즈, 1936.

"...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서서히 인상하게 하는 정책... 선호한다."
- [일반이론], <5-19. 화폐임금의 변화>, 케인즈, 1936.


3.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의 '사상(思想)'은...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 사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이 밖에 별로 없는 것이다... 나는 기득권의 위력은, '사상'의 점진적인 침투에 비하면, 매우 과장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빠르든 늦든, 선에 대해서든 악에 대해서든, 위험한 것은 '사상'이지 기득권익은 아니다."
- [일반이론], <6-24. 결언>, 케인즈, 1936.


케인즈는 '경제학자'였지만 이론으로서 '사상(思想)'을 중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험"(같은책, <6-24>)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 유일한 균형의 위치... 자본 축적량이 '한계효율'을 제로(0)로 만들기에 넉넉한 크기이면서 동시에, '완전고용'까지 실현되어 있고 이자의 형태로 얻을 수 있는 아무런 특별배당도 없는 상황에서 장래를 위해 대비를 마련하고자 하는 공중의 총체적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큰 부의 양을 표시하기도 하는 그러한 상태이다... 이자율이 제로가 되는 바로 그 점이 아니라, 이자율이 점차적으로 저하하는 과정에서 제로가 되기 전의 어떤 점에서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만약 '자본의 한계효율'이 제로가 되도록 자본재를 매우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비교적 쉽다고 생각하는('유효수요' 충족과 '완전고용' 실현) 나의 상상이 옳다면,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바람직하지 못한 여러 측면들을 점차적으로 제거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일반이론], <4-16. 자본의 본질에 관한 고찰들>, 케인즈, 1936.


케인즈는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기획한 마르크스와 달리 "자본주의의 바람직하지 못한 여러 측면들을 점차적으로 제거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4-16>)으로서, '자본의 한계효율'과 '이자율'을 거의 제로(0)에 가까운 동일 수준으로 조정하면서 충분한 소비와 저축(=투자)을 가능하게 하는 '유효수요'를 충족하고 '완전고용'을 실현하는 사회를 국가 주도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경제관료'로서 거시경제적 정책 제안을 했다. 
케인즈에게 국가는 마르크스주의처럼 '생산수단'을 직접 소유하는 '국영화'의 주체가 아니라, 생산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생산수단에 투입되는 총자본량과 이 생산수단 소유자들에게 지급되는 보수율을 정하는 '조정자'의 역할로써 충분하다(같은책, <6-24>).

한편으로 케인즈는 슘페터 같은 대학 강단의 '경제학자'가 아니었기에 좀더 자유롭게 '고전파' 주류경제학을 비판할 수 있었다. 
케인즈는 마르크스주의와 슘페터와 같이 '자유방임'적 시장을 믿지 않았다. '거시경제학'의 시조와도 같은 케인즈는 마르크스조차도 '노동가치론'으로 깊이 영향을 받은 고전주의 정치경제학은 물론 그들의 후예를 자처하는 마샬과 피구 등의 수리경제학 일체를 "날조"(같은책, <5-21>)와 기만으로 규정한다. 그들의 '미시경제학'은 극도의 추상성과 그릇된 전제로 인해 현 경제체제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했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도 내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관료' 케인즈의 경제학은 진보를 격정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고전파' 경제학의 추상성을 비판하고 각종 경제학 개념들을 새롭게 재규정하면서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자기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담담하게 설명할 뿐이다. 
원전을 통해 내가 케인즈로부터 직접 들은 말들은 매우 건조했다.

현실을 분석하되 추상적 이론을 배척한 케인즈는 결국 이 책 [일반이론]의 결론으로 기존 정치경제학 '사상' 일반은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위험성'이 있다는 주장으로 끝을 맺는다. 누구든 이미 '사상'에 영향을 받으면 세계관을 수정하려 하지 않으므로 케인즈는 이 '위험'한 '사상'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일반이론]을 쓴다는 1935년 2월의 <서문>을 상기하게 된다.

케인즈의 '화폐론'은 현실에서 중요한 경제학 개념이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 다만 "파는 사람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없고, 사는 사람이 없는 곳에 파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같은책, <2-7>)는 논거를 보면 'MMT(Modern Money Theory:현대화폐이론)'의 모티브일 수도 있겠다.
'유효수요' 충족과 '완전고용' 실현을 위해서는 '균형재정론'보다는 '공공지출'의 확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어려운 경제학에다가 우리나라 '거시경제학'의 대부라는 조순 교수 번역본으로 일부러 골라서 읽었다. 아마도 번역투와 용어 자체가 1980년대식이라 내게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

아무튼,
슘페터 덕분에 직접 읽게 된 케인즈의 [일반이론]에 대한 나의 이해도는 아마도 한 30% 수준 이하 아닐까 싶은데, 읽을 때는 괴롭더니 책을 덮으니까 다음에는 또 어떤 경제학자의 원전을 읽어볼까 싶기도 하다.

경제학,
묘하다.

***

-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1936), John Maynard Keynes, 조순 옮김, <비봉출판사>, 198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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