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징가 Z 신장판 1
나가이 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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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선(善)'과 '악(惡)'의 변증법
- [마징가(魔神-Ga)], 나가이 고, 1972.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다."
- 카부토 주조 박사, [마징가-Z], 1972.


카부토 코지의 할아버지 카부토 쥬조 박사는 예전의 동료 헬 박사의 음모를 알고 있었다. 그리스 고대유물 발굴지에서 탈출한 그는 자취를 감추고는 '초합금-Z'를 개발하여 '신(神)의 힘'인 '광자력 에너지'로 가동되는 '흑철(黑鐵)의 성(城)'을 비밀리에 제작한다.
헬 박사는 고대 그리스 미케네 문명 발굴 과정에서 '청동거인'들을 부활시켜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데, 이를 막으려는 카부토 쥬조 박사를 찾아 그의 집을 폭격한다.

카부토 쥬조 박사는 손자에게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다"는 유언을 남긴 채 죽는데, 그가 만든 '흑철(黑鐵)의 성(城)'의 이름이 바로 '마신(魔神)'이고, 일본 발음으로 '마징'인 것 같다. 
손자 카부토 코지가 이 '흑철(黑鐵)의 성(城)'을 조종하며 외치는 "Go~"를 붙여 로봇의 이름은 '마징가(魔神-Ga)'가 되었다.


[마징가-Z]는 1972년 일본 만화가 '나가이 고'가 발표한 만화 연재물(comics)인데, 1980년대 초,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만화영화는 그의 원작 만화를 토대로 일본 방송국에서 제작한 어린이용 'TV 시리즈'였다.
그런 걸 알 수 없었던 초등학교 입학 전, 할머니 집에서 TV를 보던 나의 당시 꿈은 조종사 '쇠돌이(카부토 코지)'도 아니고 '마징가-Z' 자체였다. 
나는 어른이 되면 그 강한 로봇이 되고 싶었다.


나가이 고의 원작만화는 '어린이용'이 아니었다. '신좌파 세계혁명'이 일단의 '실패'로 보이던 1970년대 초의 '염세적'이고 '회의적' 세계관을 담은 '실존철학'적 작품인데, 아마도 '아나키즘'적 관점을 가진 듯 한 작가 나가이 고는 이 '거대로봇물'에 '세기말적'이고 '퇴폐적'인 내용을 담는다. 
이 만화는 '선악 이분법'에 기초한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의 '동화'가 아니었다.


'우주소년 아톰'은 일본 전후세대 데즈카 오사무의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관점, '원자력'으로 사람과 같은 로봇을 만드는 '발전적 미래'를 담고자 했고, 우편향적 만화가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일본 '군국주의' 비밀병기 '철인28호'는 리모컨으로 조종되는 '퇴행적 미래'를 보여준다.
그러나, '마징가-Z'는 자동차나 비행기처럼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현재'의 표현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비약적 경제성장이라는 '발전적 미래' 속에 '파괴의 미래'가 동시에 존재함을 보여주려는 듯 하다.

강력한 힘은 그래서,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다".



중국 원나라 말기 '마니교'와 '조로아스터교' 등의 교리가 결합하여 '명(明)교'가 창시되는데, '명태조' 주원장은 이 반란농민군에서 '한(漢)족 독립투쟁'을 통해 명(明)나라를 건국한다. 
[주원장전(朱元璋傳)](1949)을 쓴 중국 작가 오함이 밝힌 '명교'의 교리는 ‘이종삼제(二宗三際)’이며,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상에는 '명(明)'과 '암(暗)' 두 종류의 다른 세력이 있는데, 명은 광명이니 선(善)이고 이(理)이며, 암은 암흑이니 악(惡)이고 욕(欲)이라는 것이다. 이 두 세력은 대립 항쟁을 하는데, 초제(初際), 중제(中際), 후제(後際)의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초제 단계에는 천지가 없고 명암만 있을 뿐, 명의 성질인 지혜와 암의 성질인 ‘치우(痴愚)’가 대립 상태를 이룬다. 중제 단계에는 암의 세력이 발전하고 확대되어 명의 세력을 압박하고 멋대로 내쫓아 대환(大患)이 만들어진다. 이때에 바로 명왕이 세상에 나와서 투쟁을 거쳐 암흑을 내쫓는다. 후제 단계에는 명과의 암의 이종(二宗)이 각각 제자리로 돌아가 명은 대명(大明)으로 돌아가고 암은 적암(積暗)으로 돌아가게 된다. 초제는 명암 대립으로서 과거이고, 중제는 명암 투쟁으로서 현재이며, 후제는 명암 복위로서 미래인 것이다."
- [주원장전(朱元璋傳)](1949), 오함, 박원호 옮김, <지식산업사>, 2003.


강력한 힘, 또는 '권력(權力)'에는 '선(善)'과 '악(惡)' 두 모순이 동시에 존재하며, 이 '대립물'은 끊임없이 내부 투쟁을 한다는 '변증법'이다.
쉽게 말해 '착하게 쓰면(善用)'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못되게 쓰면(惡用)'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의미다.


'신(神)' 자체는 가치 판단의 여지가 없으나, 나가이 고에게 '신'은 '선'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보기에 '신좌파 세대'임이 분명한 그가 '신'을 믿었을 것 같지 않으나, 만약 '신'이란 게 있다면 '선'해야 한다고 믿은 듯 하다. 그의 '마징가'가 마주한 현실은 '악'이었을 테니.


'마징가-Z'는 1976년생 우리나라 김청기 감독의 '태권-V'처럼 종국에 악당들을 물리치지는 못한다. '어린이용' 만화영화로 만들어진 우리의 '태권-V'는 악당의 고뇌는 잠시 보여주나 결국 '권선징악'의 교훈을 남한의 어린이들에게 남겼으나, '마징가-Z'는 헬 박사의 '기계수'에서 더욱 진화한 미케네 문명의 '전투수'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면서 일본 어린이들의 동심도 파괴한다.
이렇게 파괴되던 마징가를 구하면서 나타난 것이 '그레이트 마징가'인데, 만화 원작에서는 공백이던 카부토 코지의 아버지이자 카부토 쥬조 박사의 사라진 아들 카부토 켄조 박사가 '초합금-newZ'로 한단계 진화시킨 전투기계다.


나는 동갑내기 1974년생 그레이트 마징가를 더 좋아했는데, 이 친구는 나가이 고의 실존적 '철학'이 만든 것이 아니라 'TV 시리즈'와 극장판을 제작하던 '도에이'사의 작품이다.
'신좌파'의 후예 '마징가-Z'와 달리 '그레이트 마징가'는 '자본주의 과학'의 후예였고, 원작자 나가이 고는 끝내 이 '자본주의'적 전투기계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2009년에는 일본 'TV-도쿄'에서 나와 같은 세대를 겨냥하여, [마징가-Z]를 재해석한 [진(眞)-마징가]라는 'TV 시리즈'를 제작, 방영하였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릴 적에 지금 내 나이에 이미 '마징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던 나는 2009년에 밤을 새며 몇 번을 보았는지 모른다.

2009년에 나가이 고 원작의 '철학'을 되살려 낸 '진짜 마징가', [진(眞)-마징가]는 적어도 내게는, 흥행했다.

***

1. [마징가(魔神-Ga)-Z], 나가이 고, 1972.
2. [그레이트 마징가], 도에이사, 1974.
3. [태권-V], 김청기, 1976.
4. [주원장전(朱元璋傳)](1949), 오함, 박원호 옮김, <지식산업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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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Z + 그레이트 마징가 합본 박스세트 (18disc)
투모루필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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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과 '악(惡)'의 변증법
- [마징가(魔神-Ga)], 나가이 고, 1972.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다."
- 카부토 주조 박사, [마징가-Z], 1972.


카부토 코지의 할아버지 카부토 쥬조 박사는 예전의 동료 헬 박사의 음모를 알고 있었다. 그리스 고대유물 발굴지에서 탈출한 그는 자취를 감추고는 '초합금-Z'를 개발하여 '신(神)의 힘'인 '광자력 에너지'로 가동되는 '흑철(黑鐵)의 성(城)'을 비밀리에 제작한다.
헬 박사는 고대 그리스 미케네 문명 발굴 과정에서 '청동거인'들을 부활시켜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데, 이를 막으려는 카부토 쥬조 박사를 찾아 그의 집을 폭격한다.

카부토 쥬조 박사는 손자에게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다"는 유언을 남긴 채 죽는데, 그가 만든 '흑철(黑鐵)의 성(城)'의 이름이 바로 '마신(魔神)'이고, 일본 발음으로 '마징'인 것 같다. 
손자 카부토 코지가 이 '흑철(黑鐵)의 성(城)'을 조종하며 외치는 "Go~"를 붙여 로봇의 이름은 '마징가(魔神-Ga)'가 되었다.


[마징가-Z]는 1972년 일본 만화가 '나가이 고'가 발표한 만화 연재물(comics)인데, 1980년대 초,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만화영화는 그의 원작 만화를 토대로 일본 방송국에서 제작한 어린이용 'TV 시리즈'였다.
그런 걸 알 수 없었던 초등학교 입학 전, 할머니 집에서 TV를 보던 나의 당시 꿈은 조종사 '쇠돌이(카부토 코지)'도 아니고 '마징가-Z' 자체였다. 
나는 어른이 되면 그 강한 로봇이 되고 싶었다.


나가이 고의 원작만화는 '어린이용'이 아니었다. '신좌파 세계혁명'이 일단의 '실패'로 보이던 1970년대 초의 '염세적'이고 '회의적' 세계관을 담은 '실존철학'적 작품인데, 아마도 '아나키즘'적 관점을 가진 듯 한 작가 나가이 고는 이 '거대로봇물'에 '세기말적'이고 '퇴폐적'인 내용을 담는다. 
이 만화는 '선악 이분법'에 기초한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의 '동화'가 아니었다.


'우주소년 아톰'은 일본 전후세대 데즈카 오사무의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관점, '원자력'으로 사람과 같은 로봇을 만드는 '발전적 미래'를 담고자 했고, 우편향적 만화가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일본 '군국주의' 비밀병기 '철인28호'는 리모컨으로 조종되는 '퇴행적 미래'를 보여준다.
그러나, '마징가-Z'는 자동차나 비행기처럼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현재'의 표현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비약적 경제성장이라는 '발전적 미래' 속에 '파괴의 미래'가 동시에 존재함을 보여주려는 듯 하다.

강력한 힘은 그래서,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다".


중국 원나라 말기 '마니교'와 '조로아스터교' 등의 교리가 결합하여 '명(明)교'가 창시되는데, '명태조' 주원장은 이 반란농민군에서 '한(漢)족 독립투쟁'을 통해 명(明)나라를 건국한다. 
[주원장전(朱元璋傳)](1949)을 쓴 중국 작가 오함이 밝힌 '명교'의 교리는 ‘이종삼제(二宗三際)’이며,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상에는 '명(明)'과 '암(暗)' 두 종류의 다른 세력이 있는데, 명은 광명이니 선(善)이고 이(理)이며, 암은 암흑이니 악(惡)이고 욕(欲)이라는 것이다. 이 두 세력은 대립 항쟁을 하는데, 초제(初際), 중제(中際), 후제(後際)의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초제 단계에는 천지가 없고 명암만 있을 뿐, 명의 성질인 지혜와 암의 성질인 ‘치우(痴愚)’가 대립 상태를 이룬다. 중제 단계에는 암의 세력이 발전하고 확대되어 명의 세력을 압박하고 멋대로 내쫓아 대환(大患)이 만들어진다. 이때에 바로 명왕이 세상에 나와서 투쟁을 거쳐 암흑을 내쫓는다. 후제 단계에는 명과의 암의 이종(二宗)이 각각 제자리로 돌아가 명은 대명(大明)으로 돌아가고 암은 적암(積暗)으로 돌아가게 된다. 초제는 명암 대립으로서 과거이고, 중제는 명암 투쟁으로서 현재이며, 후제는 명암 복위로서 미래인 것이다."
- [주원장전(朱元璋傳)](1949), 오함, 박원호 옮김, <지식산업사>, 2003.


강력한 힘, 또는 '권력(權力)'에는 '선(善)'과 '악(惡)' 두 모순이 동시에 존재하며, 이 '대립물'은 끊임없이 내부 투쟁을 한다는 '변증법'이다.
쉽게 말해 '착하게 쓰면(善用)'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못되게 쓰면(惡用)'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의미다.


'신(神)' 자체는 가치 판단의 여지가 없으나, 나가이 고에게 '신'은 '선'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보기에 '신좌파 세대'임이 분명한 그가 '신'을 믿었을 것 같지 않으나, 만약 '신'이란 게 있다면 '선'해야 한다고 믿은 듯 하다. 그의 '마징가'가 마주한 현실은 '악'이었을 테니.


'마징가-Z'는 1976년생 우리나라 김청기 감독의 '태권-V'처럼 종국에 악당들을 물리치지는 못한다. '어린이용' 만화영화로 만들어진 우리의 '태권-V'는 악당의 고뇌는 잠시 보여주나 결국 '권선징악'의 교훈을 남한의 어린이들에게 남겼으나, '마징가-Z'는 헬 박사의 '기계수'에서 더욱 진화한 미케네 문명의 '전투수'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면서 일본 어린이들의 동심도 파괴한다.
이렇게 파괴되던 마징가를 구하면서 나타난 것이 '그레이트 마징가'인데, 만화 원작에서는 공백이던 카부토 코지의 아버지이자 카부토 쥬조 박사의 사라진 아들 카부토 켄조 박사가 '초합금-newZ'로 한단계 진화시킨 전투기계다.


나는 동갑내기 1974년생 그레이트 마징가를 더 좋아했는데, 이 친구는 나가이 고의 실존적 '철학'이 만든 것이 아니라 'TV 시리즈'와 극장판을 제작하던 '도에이'사의 작품이다.
'신좌파'의 후예 '마징가-Z'와 달리 '그레이트 마징가'는 '자본주의 과학'의 후예였고, 원작자 나가이 고는 끝내 이 '자본주의'적 전투기계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2009년에는 일본 'TV-도쿄'에서 나와 같은 세대를 겨냥하여, [마징가-Z]를 재해석한 [진(眞)-마징가]라는 'TV 시리즈'를 제작, 방영하였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릴 적에 지금 내 나이에 이미 '마징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던 나는 2009년에 밤을 새며 몇 번을 보았는지 모른다.

2009년에 나가이 고 원작의 '철학'을 되살려 낸 '진짜 마징가', [진(眞)-마징가]는 적어도 내게는, 흥행했다.

***

1. [마징가(魔神-Ga)-Z], 나가이 고, 1972.
2. [그레이트 마징가], 도에이사, 1974.
3. [태권-V], 김청기, 1976.
4. [주원장전(朱元璋傳)](1949), 오함, 박원호 옮김, <지식산업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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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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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나의 힘!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황금가지>, 2002. / <해문>, 1985.



"열 꼬마 병정이 밥을 먹으러 나갔네.
하나가 사레들었네. 그리고 아홉이 남았네.
아홉 꼬마 병정이 밤이 늦도록 안 잤네.
하나가 늦잠을 잤네. 그리고 여덟이 남았네.
...
일곱 꼬마 병정이 도끼로 장작 팼네.
하나가 두 동강 났네. 그리고 여섯이 남았네.
다섯 꼬마 병정이 법률 공부 했다네.
하나가 법원에 갔네. 그리고 네 명이 남았네.
네 꼬마 병정이 바다를 향해 나갔네.
훈제 청어가 잡아먹었네. 그리고 세 명이 남았네.
...
두 꼬마 병정이 볕을 쬐고 있었네.
하나가 홀랑 탔네. 그리고 하나가 남았네.
한 꼬마 병정이 외롭게 남았다네.
그가 가서 목을 맸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네.'"

- Agatha Christie,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김남주 옮김, <황금가지>, 2002.


열 명이 찾아간 '병정섬'에 다섯 명이 남았을 때, 전직 '교수형 판사' 로렌스 워그레이브가 권총에 맞아 죽고 "네 명이 남았다." 
닥터 암스트롱이 실종되었다가 "훈제 청어"한테 잡아 먹힌 채 발견된 후 베라 클레이슨 양이 필립 롬바드 장군을 권총으로 쏘아 "홀랑 태우고", 
종국에 혼자 남은 섬에서 '뭘 좀 먹을까' 생각하다가 피곤해져서 "목을 맸을 때", '병정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사실은 '인형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처음 읽은 건,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나보다 한 살 많은 동네 형과 그 동생의 집 어두운 방에서였다.
오락실에서 '더블 드래곤'을 구경하다가 할 일 없어 찾아간 그 형제의 방에서 <해문 출판사>판 그 책을 발견하고는 제목에 홀려 꺼냈고 빌려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읽었다.
하나씩 사라지는 그 인형이 '한 꼬마 두 꼬마 인디언'이었든, '병정 인형'이었든 중요하지 않다. 애거서 크리스티 원작의 제목은 [Ten Little Niggers]였다는데, 불길한 이야기에 '흑인 인형'을 끌어들인 것이 그녀의 '인종차별성'이었을지, 아니면 그냥 '원주민'의 표현이었을지는 알 길이 없다. 단지, 영국의 '자장가'를 모티브로 한 최초의 '밀실살인' 추리소설이라는 내용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때, 한 친구의 집에는 40권인가 50권 하는 검은색 표지의 얇은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선' 한 질이 있었다. 나는 가난한 엄마아빠한테 사달라고 할 생각은 못하고 그 친구한테 한 권, 두 권 빌렸다. 대부분 반납했지만, 그 중 인상깊었던 한 권, 아마도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 초반부 '빌리 본즈' 선장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늙은 해적 살인사건' 이야기는 잃어버린 척 하고 돌려주지 않았다. 첫 '도둑질'이었는데 이상하게 친구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와는 멀어졌다.
약 10년 후 고등학교 친구 중호로부터 당시에는 귀했던 '북두의권'과 '소년공작왕' 일본 해적판 전집을 빌려서 보관하다가 못 돌려줬을 때는 정말 너무도 미안했다. 내가 안 돌려준 게 아니라 군대 갔을 때 어머니가 치워버렸으니. 이제는 더 말 안하지만,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친구 중호한테 계속 미안하다.
아무튼, '셜록 홈즈' 시리즈는 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처음으로 '동화책' 아닌 '소설'을 단편이지만 시리즈로 읽은 경험이었고 지금도 '셜록 홈즈' 하면, 그 단편의 짧은 흑백 삽화들이 아른거린다.

그것도 잠시, 중학교 올라가서까지 빈주머니로 오락실을 전전하던 내게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일종의 '신의 계시'였다. 이제 오락실 갈 돈 모아 "책 좀 읽으라"는.
중학교 시절에는 용돈 모아 <해문 출판사> 추리소설 시리즈를 사서 모으는 게 취미였고, 그 장편들을 읽는데 익숙해져 갔다. 물론 지금도 그 짧은 삽화들이 가끔 떠오른다.
당시 다양한 해외 추리소설가들을 짧게나마 섭렵하기도 했지만, 지금 남는 건 역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다.

'셜록 홈즈'는 내게 '단편'을 읽는 힘을, 탐정 포와로와 미스 마플,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밀실살인자는 '장편'의 바다에서 헤쳐나오는 힘을 주고 떠났다.

우리 '추리소설협회' 작가들도 뛰어났을 테지만,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더 이상 '추리소설'에 흥미가 없어졌고, <해문 출판사> '컬렉션'은 내 관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더 나이가 들어, 우연히 오래된 흑백영화,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보고는 감회에 젖어 어릴적 읽었던 작품들만 골라 <황금가지> 판으로 한 권, 한 권 사서 다시 읽어 보았다.
1916년 크리스티의 첫 작품,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만큼은 오래된 <해문> 판으로 사고 싶었고, 여전히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대륙횡단 기차의 흔들림을 같이 느꼈으며, [나일강의 죽음(메소포타미아 살인)]에서는 내 잊혀진 꿈, '고고학자'가 되어 고대유물과 사건을 쫓고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코, 미야베 미우키 부류의 일본 추리소설들이 성인들에게 그나마 책을 읽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어린 나를 '책'과 '이야기'의 세상으로 초대해 준 '코넌 도일 경'과 '애거서 크리스티 경'에게 다시금 깊은 경의를 보낸다.

***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황금가지>, 2002. / <해문>,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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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계급의식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죄르지 루카치 지음, 조만영 외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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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성', '물화'와 '소외', 그리고 '자아비판'
- [역사와 계급의식](1921), 게오르그 루카치, 박정호/조만영 옮김, <거름>, 1993.



"마르크스주의 문제에 있어서의 '정통성'이란 오로지 '방법'에만 관련된다. '정통성'은 변증법적 마르크스주의 속에서 올바른 연구방법이 발견되었으며 이 방법은 오직 그 창시자들(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정신에 따라서만 확장되고 확대되고 심화될 수 있다는 과학적 확신이다. 또한 그것은 그 방법을 극복하거나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천박화, 진부함, 절충주의로 귀착되어 왔고 또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과학적 확신이다."
- G.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정통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1921.

헝가리 마르크스주의자 게오르그 루카치는 "문학은 현실의 특수한 반영"이라는 유명한 테제와 함께 '리얼리즘' 문제에 천착한 미학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1918년 헝가리 공산당원으로 헝가리 혁명에도 참여한 철학자였다.
1921년에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여러 논문들을 묶어 [역사와 계급의식]을 출간하는데, 하나의 저작으로서 연결되는 논리구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를 분석하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사유의 '방법론'을 다루면서, '총체성', '사물화' 또는 '물화', '소외' 개념을 정립했고, 1967년에는 이 개념들에 대한 '자아비판'이 이 저작의 특징이다.


1. '총체성(Totality)'

"직접적 존재를 이처럼 이중적(현상과 본질)으로 규정하는 것, 즉 그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지양하는 것이 바로 '변증법'적 관계이다... 사회생활의 개개의 사실들을 역사적 발전의 계기로서 '총체성(Totality)' 속으로 통합시키는 이러한 연관 속에서야 비로소 사실들의 인식은 현실의 인식이 될 수 있다... 사회발전의 여러 단계들이 지니는 현실적 차이점은 이 개별적이고 고립된 부분적 계기들이 겪는 변화 속에서 표현되기보다는, '전체 역사과정'에서의 그 계기들의 기능 또는 사회 전체와 그것들의 관계 등이 입는 변화 속에서 훨씬 분명하고 명쾌하게 표현된다."
-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정통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루카치에게 마르크스의 업적은 관념론자 헤겔의 '변증법'적 사유방식 및 그 체계를 유물론적으로 '전복'시킨 것인데, 헤겔의 철학은 개별 학문과 과학으로 고립되어 사유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통합적 유기체로 파악한 것이다. 루카치는 이 개념을 '총체성'으로 표현한다. 
계급의식 또한 한 노동자 개인이 즉자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의 '총체성' 속에서 도출되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이 '총체성'을 담지한 계급인데 그 자체로 '완성'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존의 '전자본주의적' 계급의식이 한 계급으로 다른 계급을 대체하는 것, 예를 들어 부르주아(시민) 계급이 봉건지주 계급을 대체하여 지배계급으로서 자본가가 되는 역사적 형태를 넘어 프롤레타리아는 그 자신의 계급적 본질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면서 계급 자체를 철폐함으로써 '총체성'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루카치는 헤겔을 깊이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방법적'으로 '헤겔화'시키는데, 이를 통틀어 표현한 것이 루카치의 '총체성'이라는 개념이다.


2. '물화' 또는 '사물화', '대상성'

"이와 같은 구조적인 근원적 사실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분명히 확인되어야 할 점은 '사물화(물화)'로 인하여 인간 특유의 활동, 인간 특유의 '노동'이 객체적인 어떤 것, 인간으로부터 독립되어 (오히려) 인간에 낯선 자기법칙성을 통해서 인간을 지배하는 어떤 것으로서 인간에 대립되어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경제적으로 부단히 더 높은 단계를 향하여 자신을 생산-재생산하는 것과 비례해서, '사물화' 구조는 자본주의 발전과정 속에서 갈수록 심각하게, 숙명적으로, 구조적으로 인간 의식 속에 파고든다."
-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사물화와 프롤레타리아의 의식>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정치경제학 비판' 작업의 결정판인 그의 [자본론]에서 '노동'의 '사용가치'가 아닌 '상품'으로서의 '교환가치'만이 측정되고 거래되면서 인간 본연의 활동으로서의 '노동'과 그를 매개로 한 '인간적 관계'가 '상품' 거래의 '물질적 관계'로 나타나는 현상을 자본주의적 '물신성'으로 표현했다.
마르크스의 '물신성' 또는 '물신숭배'는 [자본론]에서 '은유적 표현' 정도였으나, 루카치는 이 현상을 '물화' 또는 '사물화', '대상화' 또는 '객체화' 등으로 개념화한다. 
우리말로 가장 유행한 표현은 '물화'다. 이 개념은 1921년의 [역사와 계급의식]에서는 '소외'와 동일선상에서 연결되는 개념으로서, 인간의 활동과 그 관계가 물질적 관계로 왜곡되고 그로 인해 본질로부터 그 특성이 벗어남으로서 현상과 본질의 괴리로 나타나는 '소외'가 그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노동의 소외'다. '소외'된 노동은 당연히 '해방'되어 본질적 형태로 돌아와야 하는 바, 자본주의 '총체성'을 담지한 계급에 의해 수행되는 '노동 해방'이 그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나 이처럼 '소외'로 연결되는 초기의 '물화' 개념은 나중에 루카치 자신에 의해 '자아비판'되고 재정립된다.


3. '계급의식'과 '자아비판'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과를 낳고 가장 눈에 띄는 분열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분리에서 나타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분리가 허용될 수 없음을 되풀이하여 지적했고 모든 '경제투쟁'은 그 본질상 '정치투쟁'으로 전화한다(또 거꾸로 '정치투쟁'도 '경제투쟁'으로 전화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의 의식적 변혁'이라는 과제를 '역사'에 의해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계급의식' 속에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궁극목표와의 '변증법'적 모순, 개별적인 계기와 전체와의 '변증법'적 모순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발전과정의 개별적 계기는, 즉 구체적 요구를 동반하는 구체적 상황은 그 본질상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해 있고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에 지배받고 있으며 이 사회의 경제구조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계급의식>

전술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단계에서 정치경제체제를 다 포괄하는 '총체성'을 담지하는 다수 노동계급, 프롤레타리아는 '계급'으로서의 스스로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면서 '계급' 자체를 폐지할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으므로, 이 계급의 '의식', 즉 노동자 '계급의식'은 즉자적이지 않고 대자성을 넘어 '총체성'을 담아야 한다. 순환논리이자 동어반복 같지만, 이것이 루카치식 '총체성'의 전부다.


결론적으로, [역사와 계급의식]이란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역사' 속에서 그 '물화'된 관계 아래 '소외'된 노동을 하는 다수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을 정립하는 개념화 및 추상화 과정이며, 이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 방법론에 의해 정립된다.

루카치의 '추상성'은 러시아 볼셰비키나 독일 사민당으로부터도 비난을 받았고, 그는 모스크바 망명 시절 '철학'을 잠시 떠나 '미학'에 몰두한다. 1967년에는 결국 '자아비판'을 통해 [역사와 계급의식] 주요 개념들을 수정하고 재정립하는데, 스스로의 '총체성' 및 '추상성'의 원인을 1920년대 당시의 세계 혁명 '낙관성'에서 찾는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사멸할 것이기에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소명'이라는 '총체'적 담지자 역할은 1960년대에는 다르다는 것이 하나의 '자아비판'이다.

또 다른 '자아비판'은, '물화'와 '소외' 개념의 차이인데, 1967년 <서문>의 구절로 대신한다.

"두 근본개념('물화'와 '소외')의 잘못된 동일시... '대상화(물화)'란 사실상 인류의 사회적 삶에서 폐기될 수 없는 표현양식... 실천 속에서 이루어지는 '객관화' 모두가, 특히 노동 자체가 '대상화'라는 사실, 또 언어를 포함한 인간적 표현양식 모두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대상화'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것들이 인간들 상호간 교류의 형식임이 분명해진다. '대상화(물화)' 그 자체는 몰가치적이다. 잘못된 것이든 올바른 것이든, 아니면 노예화이든 해방이든, '대상화'임에 틀림없다. '대상화'된 형태가 사회적 장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인간의 존재와 대립하게 만들고, 인간적 존재를 사회적 존재를 매개로 해서 굴종시키고 왜곡, 기형화시키는 기능을 획득할 때 비로소 객관적인 사회적 '소외' 관계가 성립되며 그 필연적 귀결로서 내적 '소외'의 모든 주관적 특징들이 성립되는 것이다."
-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1967년판 서문>

즉, '소외'는 극복해야 할 개념 그대로이나, '물화(대상화)'는 현대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미 만연된 '표현양식'이며 '현실'이 된 것이다.


[역사와 계급의식]의 부제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 연구'다. 루카치는 마르크스주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헤겔로 돌아가는 것과 같이 다른 선학들을 찾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은 끊임없는 '부정의 부정'을 통해 혁신되는 고정되지 않는 사유방식과 그 '방법론'이다.
그로 인해 루카치는 마르크스주의 '정통성'은 마르크스주의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추상적' 순환논리에 또 다시 빠지고 만다.


어려운 책이다.
1993년 스무살 생일선물로 사준 대학친구 진욱이한테 읽은지 27년 지난 이제야 '리포트'를 제출한다.

***

- [역사와 계급의식], 게오르그 루카치, 박정호/조만영 옮김, <거름>,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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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혁명 - 헤겔과 마르크스, 제3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지음, 김현일 옮김 / 중원문화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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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사유'로서의 '철학' : '변증법적 유물론'
- [이성과 혁명](1941),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김현일/윤길순 옮김, <중원문화>, 1987.



"이 책은 헤겔 철학의 부활보다는 오늘날... 망각되어 소멸할 위험에 처해 있는 하나의 정신기능, 즉 '부정적 사유능력'의 부활에 작으나마 공헌을 했으면 하는 바램에서 쓰여졌다... 세계는 그 자체 모순적인 세계... 상식과 과학은 이러한 모순을 스스로 피하려 하지만, '철학'적 사유는 사실이 상식과 과학적 이성이 강요하는 제개념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으로부터, 다시 말하면 상식과 과학의 개념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 H.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960년판 서문 - 변증법에 대하여>

독일 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는 하이데거 영향 아래 헤겔(Hegel) 철학을 연구했는데,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로 분류된다. 1941년 그는 독일 관념철학이 생소한 미국에 헤겔 철학을 소개하기 위해 [이성과 혁명]을 쓴다.
이 책은 끊임 없는 '부정의 변증법'을 논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적 기초를 헤겔 철학에서 재조명하는데, 1914년 레닌의 방식과 닮았으나 '실천'이 아닌 '철학'에 머무르는 '추상성'으로 비판도 받는다.


1. 이성 - 헤겔


마르쿠제에 의하면, '변증법'이 상식과 과학 개념들에 적용하는 '부정(negative)'이란 실재하는 '모순'을 거부하는 기존 '논리학'에 대한 비판이며 기존 사상과 체제에 대한 비판이다. '변증법'적으로 현실의 모순을 파악하는 것은 사물의 참된 '존재양식'을 파악하는 것인데, 현실의 '모순', '부정합성'을 분석하는 도구가 바로 '부정적 사유능력'으로서의 '철학'이다.
이를 위해 이 독일 망명철학자는 기존 논리학을 뒤집은 헤겔을 연구하면서 '실증(positive) 철학'과 투쟁하는 '부정(negative)의 철학'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논한다.


"진정한 '존재'는 진정한 '운동'이며, 진정한 '운동'은 주체가 객체와 완전히 통일되는 활동이다. 따라서 (헤겔에게) 진정한 '존재'는 사상이고 '이성'이다... 헤겔은 모든 '존재'를 과정이나 운동으로 간주한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지극히 역동적인 성격을 재발견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변증법'의 양식은 '부정성'에 의해 관통된 세계, 모든 것이 그 실상과 다른 무엇이며, '대립'과 '모순'이 진보의 법칙을 이루는 세계를 표출하는 그러한 세계의 '진리'인 것이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편 - 헤겔철학의 기초>

1914년의 레닌이 헤겔로 다시 돌아갔을 때처럼, 마르쿠제도 독일 관념론의 완성자 헤겔에게서 기존 관념론(형이상학)과 다른 요소를 발견하는데, 바로 제목에 명시한 주요 개념인 '이성'이다. 
헤겔은 [법철학]에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는 포괄적 명제를 내놓는데, 헤겔에게 '이성'이란 기존 형이상학이나 논리학에서 규정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운동'을 본질로 한다. 즉, '이성'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내포한 '현실' 속 '가능태' 또는 '맹아'까지 본다는 것이다. 물론 헤겔의 '존재론'은 '물질'보다 '정신'을 우선하는 관념론이므로 그의 [정신현상학]은 세계의 궁극적 본질인 '절대이성(정신)'을 향해 '자유'를 동기로 자기운동하는 '이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변증법'적 서술방식을 '유물론'으로 뒤집은 것이 바로 '상품'으로부터 시작하여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니 헤겔의 '변증법'적 영향력은 크다.
마르쿠제는 이러한 '철학적 기초 개념'을 토대로 헤겔의 [정신현상학](1807), [대논리학](1812~1816), [정치철학](1816~1821), [역사철학](말년) 등을 분석한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인간 '개별 이성'이 '절대이성'이라는 '총체성'을 향해 경험하는 자기운동 과정으로 '자유', '노동', '소외', '소유' 등의 중요한 철학 개념들을 다룬다.
[대논리학]은 '절대지(이성/정신)'의 기초를 다루는데, 모든 사물은 "그 자체의 본성에 속하는 '부정성'으로 인해 '대립물'과 연결되어 있으며", 사물이 "참다운 자기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현재 '그것이 아닌 것'으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 즉, 모든 사물은 그 내적 자기모순을 통해 운동하고 변화하며 발전한다는 '변증법적 논리학'으로서, 모든 것을 '불변'으로 전제하는 기존의 '형이상학적 논리학'을 '부정'한다. 여기서 그는 '모순', '대립물', '개별', '보편', '이행', '운동' 개념을 논하며 '현재 그것이 아닌 것'으로 '존재'하는 '개별자'의 '(변화)가능성'을 '실재성'으로 인식한다.


"... 가능적인 것은 또다른 실재의 '조건'으로서 파악된 주어진 실재성이다... '사실'은 '실존'하기 전에 '존재'한다는 헤겔의 유명한 명제는 이제 그 정확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된다... '사실'은 '실존'하기 전에 수없이 흩어져 있는 현존하는 제자료 안에 하나의 '조건'의 형태로서 '존재'한다... '사실'은 아직 '사실이 아닌 것', 그리고 아직 그 자체를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주어진 현실로 현현하지 못한 것과 관계되는 한에서만 '사실'이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편>

헤겔의 [정치철학]은 '국가'를 '절대이성(정신)'으로 상정하고 '사적 소유'와 '법의 지배'를 정당화했으며, 그의 [역사철학]은 지금까지의 '논리학'적 결론으로 '역사의 간지'를 끌어들여 그의 관념론적 '필연'을 완성시키므로 [정치철학]과 [역사철학]에서 물려받을 것은 별로 없다.

"기존 현실의 내용은 새로운 형태로의 자기전환의 맹아를 품고 있으며 그 전환은 그것이 우연적인 실재가 현실적으로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의미에서의 '필연의 과정'이다. 현실성에 대한 변증법적인 해석은 우연성, 가능성 및 필연성 사이의 전통적인 대립을 폐기하고 그 모든 것을 하나의 포괄적인 과정의 계기로서 통합한다. 필연성은 우연적인 실재를, 즉 기존의 형태에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으로서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필연성은 우연적인 실재가 그것에 합당한 형태를 획득하게 되는 과정이다. 헤겔은 이것을 현실성의 과정이라 부른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편>

위와 같은 헤겔의 '부정(negative) 철학'은 모든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실재'만 '긍정'하는 '실증(positive) 철학'을 넘어 '철학'을 한 단계 진보시켰다. 여기서 중요한 철학적 방법론으로 '변증법'이 완성된다.

'이성'은 헤겔에 이르러 '변증법'을 만나 일단 완성되었다.


2. 혁명 - 마르크스


"헤겔은 주장하기를, '진리'는 어떤 단순한 요소 안에도 현존해야만 하는 전체이며, 따라서 만일 단 하나의 실질적인 요소나 '사실'이 '이성'의 과정과 결합될 수 없는 경우에도 전체의 '진리'는 파괴된다고 했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그와 같은 요소, 즉 '프롤레타리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는 이른바 '이성'의 현실과 모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이성'의 '부정'을 증명하는 하나의 완전한 '계급'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는 '진리'가 실현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역사와 사회적 실현 그 자체는 이처럼 '철학'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비판은 '철학'적 이론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역사적 '실천'의 작업이 된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2편 - 사회이론의 발흥>

마르크스주의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헤겔이 완성한 독일 사변적 관념론은 그 '철학'의 기초가 되었고, 마르크스-엥겔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계승하여, '물질'이 '정신'보다 우선한다는 '유물론'으로 뒤집었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그 구조상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로부터 착취당한다는 현실을 분석하며 '노동'의 '소외'를 새롭게 정의한 바, 개별적이고 실존적 '노동'이 아니라 위와 같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 구조적으로 편입되어 가동되는 '착취'당하는 '노동'은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철학'적 분석의 토대는 역시,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총생산의 사회화'의 모순을 담고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자본가와 노동자를 계급으로 대립시키는 '생산관계'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현실'과 그 변화 '가능성'을  매개하는 것은 '노동'이고, 이 '보편'적 노동을 담지하는 다수의 '프롤레타리아'라는 '존재'가 이 체제의 '진리'를 담보한다는 것이다. 즉, 다수 노동계급 내에 그 자체로 체제 변혁의 '가능성'과 '운동', 그리고 '이행'의 '진리'가 있으며, 이것의 형식이 '혁명'이다.

이렇게 철학의 '이성'은 마르크스에 이르러 '혁명'으로써 그 '진리'를 궁극적으로 완성한다.


3. 이성과 혁명 - 레닌 혹은 마르쿠제

마르쿠제는 자본주의 변혁의 '철학'적 근거를 헤겔 철학의 '변증법'으로 운동하는 '이성'에서 찾고 있는데, 그 '현학적' 논리를 빼면 결국 내용상 1914년 레닌의 [철학노트]의 반복일 수도 있다. 
다만, 그의 초기 저작 [이성과 혁명]은 독일 관념론자 헤겔을 부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현실을 불변의 것으로 선언해 버린 스탈린주의라는 '권위주의', '전체주의'로 변질된 레닌주의를 넘어, 끊임없는 '부정'의 사유방식으로써 지속적인 '혁명'을 수행하는 새로운 '실천적 철학'을 다시 부활시키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헤겔주의'가 '종언'되었고, 얼마전에 '마르크스주의'도 '종언'되었다는 의견들도 있으나, 독점자본이 강화되고 '자본가'를 넘어 '자본' 자체가 전세계를 지배하는 지금의 '자본의 제국' 체제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은 역시 '부정의 철학'으로 끊임 없이 갱신되고 혁신되어야 할 '다수'의, '노동자의 철학'이다.


"사회의 자연법칙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며, '사회주의 혁명'은 이 법칙으로부터 '해방'을 가져오는 것... 헤겔에게서 정점에 달한 독일 관념론은 사회-정치적 제도들이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과 일치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반면, 권위주의 체제는 개인의 이해에는 개의치 않은 채, 모든 개인을 경제적 과정 속으로 강제로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사회질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결론 - 헤겔주의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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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과 혁명(Reason and Revolution)], Herbert Marcuse, 김현일/윤길순 옮김, <중원문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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