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보 삼봉집 2
정도전 지음, 정병철 옮김 / 한국학술정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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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혁명가 정도전은 '유물론'자다
- [삼봉집(三峯集) - 2], 정도전, 정병철 편저, <KSI한국학술정보>, 2009.


"[주역]에, 
'성인의 큰 보배는 위(位)요, 천지의 큰 덕은 생(生)이니, 무엇으로 위를 지킬 것인가? 바로 인(仁)이다.'...
인군(人君)의 위(位)는 높기로 말하면 지극히 높고, 귀하기로 말하면 매우 귀하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수없이 많은데, 한 번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마 크게 우려할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하민(下民)은 지극히 나약하나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으나 지혜로써 속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을 얻으면 복종하게 되고, 그들은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배반하게 된다... 그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사사로운 뜻을 품고서 구차스럽게 얻는 것도 아니요, 도를 어기고 명예를 구하는 방법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그 얻는 방법은 오직 인(仁)으로써 가능하다."
-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보위를 바룸(正寶位)>, 정도전, 1394.



고려왕조를 멸하고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한 무리는 '유학(성리학)'을 지도사상으로 한 고려말 신흥사대부 중 '급진파'의 이념과 중앙에서 배제된 변방 무인세력의 무력의 결합이었다. 인물로 말하면, 정도전의 '머리'와 이성계의 '주먹'으로 이룬 혁명이었다.
고려말 대 유학자이자 재상이었던 목은 이색의 신흥사대부 사학 제자 중 정몽주는 온건개혁파였고 그 '운동권' 동아리 '동심회'의 4년 후배였던 정도전은 급진개혁파였는데, 이성계의 무력을 얻은 급진개혁파가 정몽주를 제거함으로써 비로소 혁명의 길로 치닫는다.


조선 개국 2년 후인 1394년, 삼봉 정도전은 새 국가를 운영하는 '법전'인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지어 태조 이성계에게 올린다. 오늘로 치면 '헌법'에 해당하는 문건으로 후세인 성종대에 이르러 [경국대전(經國大典)]으로 집대성되는 조선의 '법률초안'이다. [조선경국전]은 '이-호-예-병-형-공'의 중국 국가기구의 뼈대인 '육조(六曹)' 또는 '육전(六典)'을 정리하여 '국가조직을 짠다(經國)'는 국가운영 기획서이기도 했다. 유학의 시조 공자가 '이상적 시대'로 삼았던 중국 주나라의 [주례(周禮)]로부터 유래하는 '육전(六典)'은 '치(治)전', '교(敎)전', '예(禮)전', '정(政)전', '형(刑)전', '사(事)전'으로 각각 '이-호-예-병-형-공'을 의미한다. [조선경국전]은 각 공무조직의 틀과 업무 범위를 세세하게 규정하면서 중국과 고려의 역사를 함께 인용하고 있는데, 그 주제는 첫 장에 서술되는 '인사관리'의 '이(吏)조'에 해당하는 '치전(治典)'이며 주인공은 이를 총괄하는 '총재(冢宰)'다.

정도전이 설계한 '이상국가' 조선은 '천명'을 받은 군주를 앞세워 '유학(儒學)'의 군자가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세상이었다. [조선경국전]에서 '천명'을 받은 군주는 '인군(人君)' 또는 '인주(人主)'이며, 실질적 국가 운영자인 '성인군자'는 바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인 '재상(宰相)'이다.

'경영(經營)'이란 '조직의 틀을 짜는 것(經)'과 '인력을 운용하는 것(營)'의 조화를 뜻하는데, 이로써 '육전'의 최고는 '인사관리'의 '치전'이며 '재상' 중의 '재상'은 '치전'의 대표인 '총재'인 것이다. 


"총재(冢宰)라는 것은 위로 군부를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리는 것이니, 그 직책이 매우 큰 것이다. 또 인주(人主)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으니, 총재는 인주의 아름다운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인주로 하여금 '대중(大中)'의 지경에 들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相)'이라 하나니, 즉 '보상(輔相:임금을 도와 대신을 거느리며 다스림)'한다는 뜻이다. 백관은 제각기 직책이 다르고 만민은 제각기 직업이 다르니, 재상은 공평하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각자 그 처소를 얻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재(宰)'라 하나니, 즉 '재제(宰制:전권을 휘두름)'한다는 뜻이다."
- [조선경국전], <치전>, 정도전, 1394.


'치전'의 '총재'가 바로 '재상(宰相)'인 바, '전권을 휘두르며(宰)' '임금을 도와 대신을 거느리며 다스리는(相)' 직위이다.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인데 국가운영의 하나하나를 소홀함 없이 다 알아야 하고 챙겨야 하는 중책이다. 사람이 이를 혼자 다 할 수는 없으므로 여러 인재를 선별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관리'가 제일 중요하니 '치전'의 '총재'가 조선의 '재상'이 되는 것이다. 재상은 아니나 먼훗날 조선 당쟁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 간관을 임명하는 정5~6품 '이조전랑'의 요직의 발령이 된 이유도 그 연장선상 아니겠는가.

'이상국가' 조선을 운영하는데 핵심은 이러한 성인군자 반열의 '재상'과 바른 말 하고 감사하며 비위자를 탄핵하는 '대간(臺諫:대관과 간관)'이었으니, 당시의 '유일한 정치체제'였던 '세습군주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대쪽같은 '성리학(주자의 유학사상)' 이념으로 무장한 비타협적 사대부 관료들과 그들에 의해 조직된 국가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위로는 음양을 조화하고 아래로는 서민을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며, 안으로는 백성을 밝게 다스리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를 진정하고 무마하는 것이니, 국가의 작록과 포상과 형벌이 이에 관련이 있고 천하의 정치와 덕화, 가르침과 명령이 이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다. 전폐 아래에서 치도를 논하여 일인(군왕)을 돕고 묘당의 위에 서서 도견(성인의 정사)을 잡아 만물을 주재하니, 그의 직임이 어찌 가볍겠는가? 국가의 치란과 천하의 안위가 항상 이에서 비롯될 것이니 진실로 그 사람(재상)을 가볍게 고르지 못할 것이다."
- [경제문감(經濟文鑑)], <재상의 직>, 정도전, 1395.


정도전은 조선의 '헌법전'인 [조선경국전]에 이어, '재상'과 '대간(대관과 간관)'의 임무와 역할을 역시 성리학 사상에 기반하여 규정하는 '공무원 복무규정'으로서 [경제문감(經濟文鑑)]을 저술하는데 이 책은 우선 '육전'의 구성을 간략히 정리한 후, 중국 역사상 각 왕조와 고려 및 새 국가 조선에서 '재상'의 형태들을 일별하면서 위와 같은 '재상의 직'에 이어 '재상의 업'은 '자기 몸을 바르게 한다', '임금을 바르게 한다', '인재를 잘 안다', '일을 잘 처리해야 한다', '임금을 이끌어 도에 도달하게 한다' 등의 47개조 항목을 들고 있다. 역시 대관과 간관도 같은 형식으로 서술한다.
또한, [경제문감]의 <별집>을 따로 지어 중국 역대 왕들과 고려의 역대 임금들에 대한 간략한 '평론'을 하고 있는데, 정도전이 인정하는 '유학 군자'로서 훌륭한 '재상'은 '주공 단'은 물론 한나라 소하와 삼국시대 촉한의 제갈량 등이며, 한편으로 꼽는 뛰어난 인군은 은탕, 주무왕, 한고조 유방, 당태종 이세민, 송태조 조광윤, 고려태조 왕건 등이 있다.
물론, 중국 역사에 대한 사대주의 풍조가 주를 이루고, 지배계급의 틀에서의 혁신을 논하기에 역사속 '농민혁명'과 왕안석 '신법' 등을 폄하하고 있음은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의 시대적 한계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정도전의 '혁명'은 단순한 왕조 교체로서 '역성혁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진보적이었던 사상을 토대로 완전히 새로운 사회체제를 건설하고자 했던 진정한 '혁명'이었다.


"어떤 사회에서든 어른이 되려는 사람이 배워야 하는 지도자의 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착한 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밝혀라.
둘째, 자기 수양을 바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라.
셋째, 자신의 착한 마음의 수양을 바탕으로 타인과 어울리며, 조화로운 사회관계를 일상에서 지속하라.

대학지도(大學之道),
재명명덕(在明明德),
재친민(在親民),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
- [대학(大學)], <경문 1-1>


조선의 '건국이념'으로서 '성리학'은 춘추시대 공자로부터 시작한 '유학'을 북송시대 주돈이나 남송시대 주희(주자)가 철학적 '이기론(理氣論)'으로 정리한 사상으로 종교와 같은 반열의 '유교'가 되는데, 정도전이 말한 '군자'는 유교의 '4서'인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을 완벽하게 체득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고대로부터의 역사는 물론 [논어]에서 말한 공자의 '인(仁)'과 [맹자]의 '의(義)'의 정치를 아우르고 [중용]의 치우침 없는 '불편부당'과 지도자(어른)가 갖추어야 할 학문적 소양을 가리키는 [대학] 등에 통달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통틀어 아시아, 아니 전세계 역사 속에서 정도전에 이르러 비로서 [대학]의 '3강령 8조목'이 현실에서 '혁명'적으로 실현된다. 공자의 '애민(愛民)정치'와 맹자의 '여민(與民)정치'를 기반으로 [대학]의 '3강령(明明德-親民-止於至善)'과 '8조목(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을 '관념'이 아닌 현실정치에서 실현했던 유일한 시도였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해도 삼봉 정도전은 일체의 '관념론'을 거부한 '유물론'자였던 것이다.


"불(佛)씨의 학(學)이... 저들 스스로가 물(物)을 부리기는 하되 물에게 부림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일 돈 한 푼을 주어도 곧 그것을 어찌할 줄 모른다면 그 일이 이상하지 않는가? 그런즉 하늘이 이 사람을 내어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고, 재성(財成), 보상(輔相)의 직책을 준 이유가 과연 어디 있겠는가?...
요컨대 우리(유학)는 마음과 이치가 하나라고 본 것이요, 저들(불교)은 마음이 공(空)함으로써 이치도 없다고 보았고, 우리는 마음이 비록 공하나 만물의 이치를 갖추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우리 유가는 하나이고 석씨는 둘이며, 우리 유가는 연속이고 석씨는 간단(間斷:끊어짐)인 것이다."
- [불씨잡변(佛氏雜辨)], <14. 유교와 불교가 같은 점, 다른 점에 대한 변>, 정도전, 1398.


정도전은 조선의 '건국이념' 성리학을 정치사상으로 실현함과 동시에 '철학' 이데올로기로 굳건히 하기 위해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불교'와 사상 논쟁을 전개하는데, 이 다분히 '논쟁적 저작'이 바로 [불씨잡변(佛氏雜辨)]이다.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은 '하늘의 이치'인 '이(理)'와 '인간의 실천'인 '기(氣)'가 하나라는 '일원론'적 주장을 통해 불교에서 속세와 내세를 구분하는 '이원론'을 통렬히 논박한다.
민중의 '물질적' 욕구와 토지제도 개혁과 같은 '경제민주화'는 등한시한 채 내세를 향한 '수양'과 '깨달음'을 앞세워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정하게 부를 축적하는 당시 지배종교로서의 불교를 '불씨', '석씨(석가모니)'로 칭하며 비판과 논박을 하고 있다. 마치 5~6백년 후 유럽의 혁명가 엥겔스의 [반뒤링론]이나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못지 않다.
'혁명가' 정도전에 의해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 불교의 '윤회론', '인과론', '지옥론', '자비론' 등의 19개 논제가 처절하게 짓밟힌다.
불교와 유교의 가장 큰 차이는 '이원론'과 '일원론'이고 '관념론'과 '유물론'이다. 마치 천 년 이전 플라톤의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 차이와 비슷하기도 하다.
불교의 '내세'적 '관념론'과 대비되는 유학의 '현실'적 '유물론'은 역시 '4서 5경' 중 하나인 [주역(역경)]의 '과학'(또는 '음양오행설')에 의해 천태만상으로 변화발전하는 객관적 세계를 토대로 한다.


물론, 조선 후기에 이르러 다수 민중을 위한 현실정치와 격리된 '유교'로서 성리학은 '관념론'의 길을 갔으나, 조선의 건국 이데올로기로서의 초기 '유학'은 이념과 현실을 '일원론'으로 파악한 '유물론'적 성격이 다분했다.

그리하여,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불세출의 혁명가 삼봉 정도전 선생을 감히 나는 '유물론자'라 부른다.


***

1. [삼봉집(三峯集) - 2], 정도전, 정병철 편저, <KSI한국학술정보>, 2009.
2. [사서(四書) - 이치를 담은 네 권의 책(대학/논어/맹자/중용)], 신창호 편역, <나무발전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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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혁명가 정도전은 '유물론'자다
- [삼봉집(三峯集) - 2], 정도전, 정병철 편저, <KSI한국학술정보>, 2009.


"[주역]에, 
'성인의 큰 보배는 위(位)요, 천지의 큰 덕은 생(生)이니, 무엇으로 위를 지킬 것인가? 바로 인(仁)이다.'...
인군(人君)의 위(位)는 높기로 말하면 지극히 높고, 귀하기로 말하면 매우 귀하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수없이 많은데, 한 번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마 크게 우려할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하민(下民)은 지극히 나약하나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으나 지혜로써 속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을 얻으면 복종하게 되고, 그들은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배반하게 된다... 그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사사로운 뜻을 품고서 구차스럽게 얻는 것도 아니요, 도를 어기고 명예를 구하는 방법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그 얻는 방법은 오직 인(仁)으로써 가능하다."
-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보위를 바룸(正寶位)>, 정도전, 1394.

고려왕조를 멸하고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한 무리는 '유학(성리학)'을 지도사상으로 한 고려말 신흥사대부 중 '급진파'의 이념과 중앙에서 배제된 변방 무인세력의 무력의 결합이었다. 인물로 말하면, 정도전의 '머리'와 이성계의 '주먹'으로 이룬 혁명이었다.
고려말 대 유학자이자 재상이었던 목은 이색의 신흥사대부 사학 제자 중 정몽주는 온건개혁파였고 그 '운동권' 동아리 '동심회'의 4년 후배였던 정도전은 급진개혁파였는데, 이성계의 무력을 얻은 급진개혁파가 정몽주를 제거함으로써 비로소 혁명의 길로 치닫는다.

조선 개국 2년 후인 1394년, 삼봉 정도전은 새 국가를 운영하는 '법전'인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지어 태조 이성계에게 올린다. 오늘로 치면 '헌법'에 해당하는 문건으로 후세인 성종대에 이르러 [경국대전(經國大典)]으로 집대성되는 조선의 '법률초안'이다. [조선경국전]은 '이-호-예-병-형-공'의 중국 국가기구의 뼈대인 '육조(六曹)' 또는 '육전(六典)'을 정리하여 '국가조직을 짠다(經國)'는 국가운영 기획서이기도 했다. 유학의 시조 공자가 '이상적 시대'로 삼았던 중국 주나라의 [주례(周禮)]로부터 유래하는 '육전(六典)'은 '치(治)전', '교(敎)전', '예(禮)전', '정(政)전', '형(刑)전', '사(事)전'으로 각각 '이-호-예-병-형-공'을 의미한다. [조선경국전]은 각 공무조직의 틀과 업무 범위를 세세하게 규정하면서 중국과 고려의 역사를 함께 인용하고 있는데, 그 주제는 첫 장에 서술되는 '인사관리'의 '이(吏)조'에 해당하는 '치전(治典)'이며 주인공은 이를 총괄하는 '총재(冢宰)'다.

정도전이 설계한 '이상국가' 조선은 '천명'을 받은 군주를 앞세워 '유학(儒學)'의 군자가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세상이었다. [조선경국전]에서 '천명'을 받은 군주는 '인군(人君)' 또는 '인주(人主)'이며, 실질적 국가 운영자인 '성인군자'는 바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인 '재상(宰相)'이다.

'경영(經營)'이란 '조직의 틀을 짜는 것(經)'과 '인력을 운용하는 것(營)'의 조화를 뜻하는데, 이로써 '육전'의 최고는 '인사관리'의 '치전'이며 '재상' 중의 '재상'은 '치전'의 대표인 '총재'인 것이다. 


"총재(冢宰)라는 것은 위로 군부를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리는 것이니, 그 직책이 매우 큰 것이다. 또 인주(人主)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으니, 총재는 인주의 아름다운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인주로 하여금 '대중(大中)'의 지경에 들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相)'이라 하나니, 즉 '보상(輔相:임금을 도와 대신을 거느리며 다스림)'한다는 뜻이다. 백관은 제각기 직책이 다르고 만민은 제각기 직업이 다르니, 재상은 공평하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각자 그 처소를 얻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재(宰)'라 하나니, 즉 '재제(宰制:전권을 휘두름)'한다는 뜻이다."
- [조선경국전], <치전>, 정도전, 1394.


'치전'의 '총재'가 바로 '재상(宰相)'인 바, '전권을 휘두르며(宰)' '임금을 도와 대신을 거느리며 다스리는(相)' 직위이다.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인데 국가운영의 하나하나를 소홀함 없이 다 알아야 하고 챙겨야 하는 중책이다. 사람이 이를 혼자 다 할 수는 없으므로 여러 인재를 선별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관리'가 제일 중요하니 '치전'의 '총재'가 조선의 '재상'이 되는 것이다. 재상은 아니나 먼훗날 조선 당쟁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 간관을 임명하는 정5~6품 '이조전랑'의 요직의 발령이 된 이유도 그 연장선상 아니겠는가.

'이상국가' 조선을 운영하는데 핵심은 이러한 성인군자 반열의 '재상'과 바른 말 하고 감사하며 비위자를 탄핵하는 '대간(臺諫:대관과 간관)'이었으니, 당시의 '유일한 정치체제'였던 '세습군주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대쪽같은 '성리학(주자의 유학사상)' 이념으로 무장한 비타협적 사대부 관료들과 그들에 의해 조직된 국가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위로는 음양을 조화하고 아래로는 서민을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며, 안으로는 백성을 밝게 다스리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를 진정하고 무마하는 것이니, 국가의 작록과 포상과 형벌이 이에 관련이 있고 천하의 정치와 덕화, 가르침과 명령이 이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다. 전폐 아래에서 치도를 논하여 일인(군왕)을 돕고 묘당의 위에 서서 도견(성인의 정사)을 잡아 만물을 주재하니, 그의 직임이 어찌 가볍겠는가? 국가의 치란과 천하의 안위가 항상 이에서 비롯될 것이니 진실로 그 사람(재상)을 가볍게 고르지 못할 것이다."
- [경제문감(經濟文鑑)], <재상의 직>, 정도전, 1395.


정도전은 조선의 '헌법전'인 [조선경국전]에 이어, '재상'과 '대간(대관과 간관)'의 임무와 역할을 역시 성리학 사상에 기반하여 규정하는 '공무원 복무규정'으로서 [경제문감(經濟文鑑)]을 저술하는데 이 책은 우선 '육전'의 구성을 간략히 정리한 후, 중국 역사상 각 왕조와 고려 및 새 국가 조선에서 '재상'의 형태들을 일별하면서 위와 같은 '재상의 직'에 이어 '재상의 업'은 '자기 몸을 바르게 한다', '임금을 바르게 한다', '인재를 잘 안다', '일을 잘 처리해야 한다', '임금을 이끌어 도에 도달하게 한다' 등의 47개조 항목을 들고 있다. 역시 대관과 간관도 같은 형식으로 서술한다.
또한, [경제문감]의 <별집>을 따로 지어 중국 역대 왕들과 고려의 역대 임금들에 대한 간략한 '평론'을 하고 있는데, 정도전이 인정하는 '유학 군자'로서 훌륭한 '재상'은 '주공 단'은 물론 한나라 소하와 삼국시대 촉한의 제갈량 등이며, 한편으로 꼽는 뛰어난 인군은 은탕, 주무왕, 한고조 유방, 당태종 이세민, 송태조 조광윤, 고려태조 왕건 등이 있다.
물론, 중국 역사에 대한 사대주의 풍조가 주를 이루고, 지배계급의 틀에서의 혁신을 논하기에 역사속 '농민혁명'과 왕안석 '신법' 등을 폄하하고 있음은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의 시대적 한계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정도전의 '혁명'은 단순한 왕조 교체로서 '역성혁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진보적이었던 사상을 토대로 완전히 새로운 사회체제를 건설하고자 했던 진정한 '혁명'이었다.

"어떤 사회에서든 어른이 되려는 사람이 배워야 하는 지도자의 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착한 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밝혀라.
둘째, 자기 수양을 바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라.
셋째, 자신의 착한 마음의 수양을 바탕으로 타인과 어울리며, 조화로운 사회관계를 일상에서 지속하라.

대학지도(大學之道),
재명명덕(在明明德),
재친민(在親民),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
- [대학(大學)], <경문 1-1>


조선의 '건국이념'으로서 '성리학'은 춘추시대 공자로부터 시작한 '유학'을 북송시대 주돈이나 남송시대 주희(주자)가 철학적 '이기론(理氣論)'으로 정리한 사상으로 종교와 같은 반열의 '유교'가 되는데, 정도전이 말한 '군자'는 유교의 '4서'인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을 완벽하게 체득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고대로부터의 역사는 물론 [논어]에서 말한 공자의 '인(仁)'과 [맹자]의 '의(義)'의 정치를 아우르고 [중용]의 치우침 없는 '불편부당'과 지도자(어른)가 갖추어야 할 학문적 소양을 가리키는 [대학] 등에 통달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통틀어 아시아, 아니 전세계 역사 속에서 정도전에 이르러 비로서 [대학]의 '3강령 8조목'이 현실에서 '혁명'적으로 실현된다. 공자의 '애민(愛民)정치'와 맹자의 '여민(與民)정치'를 기반으로 [대학]의 '3강령(明明德-親民-止於至善)'과 '8조목(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을 '관념'이 아닌 현실정치에서 실현했던 유일한 시도였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해도 삼봉 정도전은 일체의 '관념론'을 거부한 '유물론'자였던 것이다.


"불(佛)씨의 학(學)이... 저들 스스로가 물(物)을 부리기는 하되 물에게 부림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일 돈 한 푼을 주어도 곧 그것을 어찌할 줄 모른다면 그 일이 이상하지 않는가? 그런즉 하늘이 이 사람을 내어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고, 재성(財成), 보상(輔相)의 직책을 준 이유가 과연 어디 있겠는가?...
요컨대 우리(유학)는 마음과 이치가 하나라고 본 것이요, 저들(불교)은 마음이 공(空)함으로써 이치도 없다고 보았고, 우리는 마음이 비록 공하나 만물의 이치를 갖추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우리 유가는 하나이고 석씨는 둘이며, 우리 유가는 연속이고 석씨는 간단(間斷:끊어짐)인 것이다."
- [불씨잡변(佛氏雜辨)], <14. 유교와 불교가 같은 점, 다른 점에 대한 변>, 정도전, 1398.


정도전은 조선의 '건국이념' 성리학을 정치사상으로 실현함과 동시에 '철학' 이데올로기로 굳건히 하기 위해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불교'와 사상 논쟁을 전개하는데, 이 다분히 '논쟁적 저작'이 바로 [불씨잡변(佛氏雜辨)]이다.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은 '하늘의 이치'인 '이(理)'와 '인간의 실천'인 '기(氣)'가 하나라는 '일원론'적 주장을 통해 불교에서 속세와 내세를 구분하는 '이원론'을 통렬히 논박한다.
민중의 '물질적' 욕구와 토지제도 개혁과 같은 '경제민주화'는 등한시한 채 내세를 향한 '수양'과 '깨달음'을 앞세워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정하게 부를 축적하는 당시 지배종교로서의 불교를 '불씨', '석씨(석가모니)'로 칭하며 비판과 논박을 하고 있다. 마치 5~6백년 후 유럽의 혁명가 엥겔스의 [반뒤링론]이나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못지 않다.
'혁명가' 정도전에 의해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 불교의 '윤회론', '인과론', '지옥론', '자비론' 등의 19개 논제가 처절하게 짓밟힌다.
불교와 유교의 가장 큰 차이는 '이원론'과 '일원론'이고 '관념론'과 '유물론'이다. 마치 천 년 이전 플라톤의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 차이와 비슷하기도 하다.
불교의 '내세'적 '관념론'과 대비되는 유학의 '현실'적 '유물론'은 역시 '4서 5경' 중 하나인 [주역(역경)]의 '과학'(또는 '음양오행설')에 의해 천태만상으로 변화발전하는 객관적 세계를 토대로 한다.


물론, 조선 후기에 이르러 다수 민중을 위한 현실정치와 격리된 '유교'로서 성리학은 '관념론'의 길을 갔으나, 조선의 건국 이데올로기로서의 초기 '유학'은 이념과 현실을 '일원론'으로 파악한 '유물론'적 성격이 다분했다.

그리하여,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불세출의 혁명가 삼봉 정도전 선생을 감히 나는 '유물론자'라 부른다.


***

1. [삼봉집(三峯集) - 2], 정도전, 정병철 편저, <KSI한국학술정보>, 2009.
2. [사서(四書) - 이치를 담은 네 권의 책(대학/논어/맹자/중용)], 신창호 편역, <나무발전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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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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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즐기면, 이 또한 '희망'을 향해 지나가리라!
-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많은 유럽 언어에는 '힘'을 나타내는 단어가 두 개씩 있다. 라틴어에는 potestas-potentia, 프랑스어에는 pouvoir-puissance, 스페인어에는 poder-potencia, 독일어에는 Macht-Vermogen 등이 있는 반면 영어에는 power 한 단어만 있다... 소문자 'power(활력)'와 대문자 'Power(권력)'로 구분... 수직적이고 중앙집중화된 지배권력, 자본주의 명령, 삶권력에는 '권력(Power/potestas)'이라 이름 붙이고, 저항의 수동적 과정, 산노동의 힘, 삶정치의 창조적 측면에는 '활력(power/potentia)'을 썼다."
- [Assembly](2017), '1-5 권력을 다르게 잡자',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라틴어는 문자로만 전해오는 '죽은 언어'다.
기원전 1세기경 지중해를 중심으로 뻗어나갔던 고대 로마제국의 문자로 '세계 공용어'였던 라틴어는 지금의 '영어'와 같이 강대국의 지배를 통해 널리 확산된 언어로서 '제국의 언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20세기 미국의 패권을 표현했던 라틴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유래가 기원후 1~2세기 로마제국의 전성기를 나타냈던 표어 '팍스 로마나(Pax Romana)'다. 즉, 제국의 힘으로 유지되는 세계 '평화(Pax)'라는 오만함이다.
언어로서 영어의 부모는 게르만어와 라틴어인데 라틴어는 영어의 엄마 격이다.

'다중'의 아래로부터 운동으로 '제국'에 저항하고 새로운 권력지형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이탈리아 정치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최근 저작 [Assembly]에서 '권력'을 뜻하는 라틴어로 'potestas(포테스타스)'와 'potentia(포텐티아)' 두 개가 있는데, '포테스타스'는 물질적이고 수직적 '권력'이고 '포텐티아'는 잠재적이고 수평적 '활력'이라고 구분한다. 지배권력은 라틴어로 '포테스타스'이고 지배권력을 새롭게 구성할 '다중'의 '활력'은 '포텐티아'다. 영어로 '잠재력'인 'potential'의 어원이 라틴어 'potentia(포텐티아)'다.


"'카르페 디엠'은 원래 농사와 관련된 은유로서 로마의 시인인 호라티우스가 쓴 송가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시구입니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인 한동일 신부의 대학 강의록을 엮은 [라틴어 수업]은 라틴어 속담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인문학 이야기다. 유럽과 영미 등의 서양 언어에서 '로마제국'의 '라틴어'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제국'의 '한자(漢字)'와 위상이 비슷하니 [라틴어 수업]은 아시아식으로 보면 '고사성어(故事成語) 강의' 정도 되겠다. 
언어는 역사적으로 다분히 정치경제적이고 사회적이다.
오래전 '죽은 언어' 라틴어는 이렇게 '살아 있다'.

우리에게 '오늘을 즐겨라'로 익히 알려진 '카르페 디엠'을 예로 들면, 이 문구는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유래하는데, '카르페(carpe)'는 '추수하다'는 뜻의 '카르포(carpo)'의 명령형으로 일년 동안 힘들여 지은 농작물을 '오늘 수확하라'는 말이다. 그간 고생했으니 내일 생각은 말고 오늘에 충실하라는 시구절이 쾌락주의 사조의 표제어로도 쓰이면서 '오늘을 즐겨라'로 의역되었다는 이야기다.


"신약성서 마태오복음 6장 34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Nolite ergo esse solliciti in crastinum crastinus enim dies sollicitus erit sibi ipse sufficit diei malitia sua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일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마태오는... 기본적으로 삶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믿음(신앙) 안에서 살아야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지금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그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때 이 단순한 말 한 마디를 생각합니다.

Hoc quoque transibit!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마태오는 신앙이라는 '영원'을 믿었기에 하루하루를 버텼겠지만, 일반 '다중'에게는 기쁨도 슬픔도 영원하지 않고 '본래 얻고 잃는 것은 없고 잠시 머물 뿐'이라는 [동국이상국집]의 이규보 선생이 말한 '부처님 말씀'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카톡 프로필 문구 등으로 많이 쓰이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Hoc quoque transibit)"에서 '지나가는' 'transibit'는 '변화'를 의미하는 'trans-'의 어원을 갖고 있다. 지나가는 시간과 그 축적으로서 인생은 계속 '변화'하니 오늘의 슬픔이 내일의 행복이 될 수 있다. 동양의 고사성어로 중국 전한시대 잡기록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새옹지마(塞翁之馬)'와 비슷하다. 
그러니 일희일비 말고 '평상심'으로 오늘을 보내자는 지혜의 말이다.


오늘을 버티는 힘은 '희망'이다.
'희망'은 라틴어로 '스페스(spes)'라는데 '기대하고 바란다'라는 뜻인 인도-유럽어 ''speh-s'에서 왔다고 한다. 반대로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무너지는 순간 '절망'이 찾아오는데, '희망이 거두어진 것'이라는 라틴어 단어는 '데스페라티오(desperatio)'라고 한다. 영어로 '자포자기 또는 필사적 상태(desperation)'의 어원이다.
'절망'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희망'을 향해 '지나가는(transibit)' 것이 지혜로운 인생철학이며, 이것이 바로 '변증법(辨證法/dialectic)'이다.
'변증법(dialectic)'의 라틴어원 'dia-'는 '서로 통한다'는 의미의 접두어다.
이렇게 '반대말'도 서로 통하는 것이 바로 '변증법'이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고달프고 힘들어 내일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 동안의 노력을 '추수(carpe)'하는 오늘을 즐기고, 그 오늘이 별로였더라도 '지나가는(transibit)' 시간의 한 때로 담담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혜의 구절들을 소개한 후 한동일 신부는 [라틴어 강의]를 '삶'과 '희망'으로 맺는다.


"라틴어 명구에도 희망과 관련된 것들이 참 많아요.

Dum vita est, spes est,
둠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Dum spiro, spero.
둠 스피로, 스페로.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

Dum vivimus, speramus.
둠 비비무스, 스페라무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희망한다."

-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

1.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2017.
2. [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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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5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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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중항쟁
- 신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한 계엄령 선포와 광주민중들의 항쟁



"윤상현(소설 속 윤상원 열사)! 넌 왜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 하는가?... 
누군가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해. 지난 열흘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이어온 이 뜨거운 항쟁의 마침표를 누군가는 찍어야 해.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렇다면 내가 하겠다는 거야. 이유는 다만 그것 뿐이야. 저 불의한 압제자들에게 이 자리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냥 고스란히 내어줄 수는 없어. 절대로. 그것이야말로 저들의 승리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 되고 말 터이므로...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설사 이 순간엔 우리의 싸움이 패배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뿐이야. 훗날 다른 누군가가 이 싸움을 다시 시작하겠지. 그래, 아무 것도 헛된 것은 없어. 우리가 꿈꾸었던 것, 사랑하고 소망하고 투쟁했던 것, 진정 그 어떤 것도 헛된 것은 없어..."
- [봄날] 5권, '1980. 5. 27. 윤상원 열사의 독백', 임철우, <문학과지성사>, 1997.


들불야학 선생으로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지키던 서른 살 윤상원 열사의 심경을 작가 임철우가 그의 소설 [봄날]에서 재구성한 대목이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스물여섯 살이었던 소설가 임철우는 '살아남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그런 스스로와 '화해'도 하지 못한 채 항쟁 후 17년이 지난 1997년에 '광주민중항쟁'의 일지를 소설로 재구성했는데, 바로 소설 [봄날]이다. 주인공은 가상의 인물이되 시공간은 사실 그대로를 배경으로 하는 논픽션 르포문학이다. 
'민중의 애국가'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기리는 '영혼결혼식'의 주인공인 윤상원 열사는 5월 광주의 마지막 날이었던 1980년 5월 27일, 최후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던 시민군들과 함께 본인이 국민으로 살았던 국가의 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은 대한민국 정규군대가 국민을 상대로 벌인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다.


1979년 10월에 독재자 박정희가 저격 당하면서 길고 긴 18년 간의 군부개발독재가 일단 종식되었고, 1980년 봄은 전국에 걸친 민주화의 물결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1980년 5월 15일, 약 10만여명의 학생과 시민은 자발적으로 서울역에 모여 조속한 시일 내에 계엄을 해제하고 민주화를 추진할 것을 주장했으나 시위와 농성이 계속될 경우 군이 개입할 명분을 준다는 주장이 나오자 지도부 역할을 하던 대학생들은 시위를 해산하기로 결정하고 서울역에서 물러난다. 이를 사람들은 '5.15 서울역 회군'이라 부른다.

이후 바로 전해 '12.12 쿠데타'로 이미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5월 17일을 기하여 비상계엄 전국확대와 국회 해산, 국보위 설치 등의 조치를 단행하게 되는데, 전두환 '신군부'의 1979년 '12.12 쿠데타'에 이은 1980년 5.17 '2차 쿠데타'였다.


이날 광주에서는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전남대 등지에서 대학생들이 횃불 시위 등을 계획하였다. 하지만 역사적인 5월 18일, 신군부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두려워하여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대학생들과 군인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면서 학생들에 대한 군인들의 무자비한 시위 진압이 시작된다. 
전남대 앞에서의 진압은 5.18 광주민중항쟁의 첫 시작이었다. 이어 학교에 진입하지 못한 학생들이 광주 시내에 모여 군대를 물릴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개되었고 군대는 밤 9시 이후 통행금지 조치까지 내렸으나 민주화를 열망하는 광주민중들의 시위는 더욱 거세어질 뿐이었다. 이에 신군부는 광주지역을 고립시키고 특수부대 및 군인들을 증파하여 무자비한 폭력과 심지어는 군용칼까지 휘두르며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잡아간다. 하지만, 신군부의 이러한 진압행위는 광주민중들의 분노를 더욱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되었고 시위와 항쟁이 더욱 들불처럼 번지게 된다.
 
5월 20일, 고등학생들까지 시위대에 참여하게 되었고 신군부는 고등학교에까지 휴교령을 내렸다. 택시와 버스들도 차량시위를 벌이면서 광주민중들의 항쟁은 커져만 가는데, 신군부의 통제를 받은 방송과 신문은 고립된 광주의 상황을 ‘북한의 명령을 따른 폭도들에 의한 것’이라고 허위보도를 일삼는다.
 
5월 21일, 신군부는 금남로에서 시위 중이던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 집중사격을 하였고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가면서 광주민중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경찰서와 탄약고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였다. 스스로 무장한 시민군은 군대를 광주 외곽으로 몰아내고 그들이 다시 몰려오는 5월 27일까지 광주의 질서를 유지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 짧은 시간 동안 광주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고 범죄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며 시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하는 등 ‘파리꼬뮌’이 아닌 이른바 ‘광주꼬뮌’으로 불릴 정도의 '민중 자치의 해방구'였다고 한다.
 
5월 27일 새벽, 신군부는 탱크까지 앞세우고 시내로 진격해 들어왔고, 시민군은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하지만, 중무장한 정규 군대를 시민군이 당해낼 수는 없었고 끝내 도청에 남아있던 많은 시민들이 죽임을 당함으로써 5.18 광주민중항쟁은 비극으로 끝난다.
12.12 쿠데타로 대통령 최규하를 허수아비로 만든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5.27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위한 '대책회의'에서 '광주사태'에 대한 '강경진압'을  지휘했고 '조기진압'을 위해 군대가 광주 시민들에게 직접 사격을 한 날 진압군에 '하사금'을 내리기도 했다. 
전두환이 광주 학살의 책임자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제 그 자에게는 '옥사(獄死)'의 길 밖에 없다.

역사학자 서중석 교수는 '이명박근혜 정권'의 '뉴라이트' 역사왜곡에 대항하여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18년 박정희 군부독재 시기를 거쳐 전두환 학살정권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를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기자 김덕련과의 문답 형식을 빌어 정리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권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이야기이고, 17권은 광주민중을 학살하고 집권한 '5공화국' 학살정권의 '잔혹사'를 다룬다.

소설 [봄날]에서 윤상원 열사의 입을 빌어 말한 "우리가 패배할지라도 훗날 다른 누군가가 다시 시작할 이 끝나지 않는 싸움"은 이후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그 해 '8월 노동자 대투쟁', 1996년의 '총파업', 2002년과 2008년의 대규모 '촛불시위'와 최근의 2016~17년 '촛불항쟁'으로 계속 되살아나 우리 역사를 전진시켜 왔다.


우리 역사에서 5월 18일은, 당시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 정권의 파쇼적 실체와 이에 대항한 우리 민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그리고 세상의 주인인 우리 민중들을 폭력만으로 억압하고 통치할 수는 없다는 역사적 진실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역사적 '아이콘'이 되어왔고, 이후 이 땅 민주주의 역사의 살아있는 교본이자 이 땅의 민주주의와 노동해방을 이루고자 하는 후세대들에게는 기어이 한을 풀지 못한 하나의 ‘원죄’가 되어 왔다.


"... 긴 시간이 흘렀지만, 밝혀야 할 사안은 지금도 적잖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뻔뻔한 거짓말과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오월 광주를 어떻게든 폄훼하려는 세력이 여전히 날뛰고 있습니다. 오월 광주 문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월 광주의 진실을 잊으면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습니다."
-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17권, '나가는 말', 서중석/김덕련, <오월의봄>, 2019.


# 5.18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 산화해 간 민주주의 영령들의 넋을 기립니다.

***

1. [봄날] 1~5권, 임철우, <문학과지성사>, 1997.
2.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17권, 서중석/김덕련, <오월의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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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20 세트 - 전20권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서중석.김덕련 지음 / 오월의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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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중항쟁
- 신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한 계엄령 선포와 광주민중들의 항쟁



"윤상현(소설 속 윤상원 열사)! 넌 왜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 하는가?... 
누군가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해. 지난 열흘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이어온 이 뜨거운 항쟁의 마침표를 누군가는 찍어야 해.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렇다면 내가 하겠다는 거야. 이유는 다만 그것 뿐이야. 저 불의한 압제자들에게 이 자리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냥 고스란히 내어줄 수는 없어. 절대로. 그것이야말로 저들의 승리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 되고 말 터이므로...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설사 이 순간엔 우리의 싸움이 패배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뿐이야. 훗날 다른 누군가가 이 싸움을 다시 시작하겠지. 그래, 아무 것도 헛된 것은 없어. 우리가 꿈꾸었던 것, 사랑하고 소망하고 투쟁했던 것, 진정 그 어떤 것도 헛된 것은 없어..."
- [봄날] 5권, '1980. 5. 27. 윤상원 열사의 독백', 임철우, <문학과지성사>, 1997.


들불야학 선생으로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지키던 서른 살 윤상원 열사의 심경을 작가 임철우가 그의 소설 [봄날]에서 재구성한 대목이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스물여섯 살이었던 소설가 임철우는 '살아남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그런 스스로와 '화해'도 하지 못한 채 항쟁 후 17년이 지난 1997년에 '광주민중항쟁'의 일지를 소설로 재구성했는데, 바로 소설 [봄날]이다. 주인공은 가상의 인물이되 시공간은 사실 그대로를 배경으로 하는 논픽션 르포문학이다. 
'민중의 애국가'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기리는 '영혼결혼식'의 주인공인 윤상원 열사는 5월 광주의 마지막 날이었던 1980년 5월 27일, 최후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던 시민군들과 함께 본인이 국민으로 살았던 국가의 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은 대한민국 정규군대가 국민을 상대로 벌인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다.


1979년 10월에 독재자 박정희가 저격 당하면서 길고 긴 18년 간의 군부개발독재가 일단 종식되었고, 1980년 봄은 전국에 걸친 민주화의 물결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1980년 5월 15일, 약 10만여명의 학생과 시민은 자발적으로 서울역에 모여 조속한 시일 내에 계엄을 해제하고 민주화를 추진할 것을 주장했으나 시위와 농성이 계속될 경우 군이 개입할 명분을 준다는 주장이 나오자 지도부 역할을 하던 대학생들은 시위를 해산하기로 결정하고 서울역에서 물러난다. 이를 사람들은 '5.15 서울역 회군'이라 부른다.

이후 바로 전해 '12.12 쿠데타'로 이미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5월 17일을 기하여 비상계엄 전국확대와 국회 해산, 국보위 설치 등의 조치를 단행하게 되는데, 전두환 '신군부'의 1979년 '12.12 쿠데타'에 이은 1980년 5.17 '2차 쿠데타'였다.


이날 광주에서는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전남대 등지에서 대학생들이 횃불 시위 등을 계획하였다. 하지만 역사적인 5월 18일, 신군부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두려워하여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대학생들과 군인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면서 학생들에 대한 군인들의 무자비한 시위 진압이 시작된다. 
전남대 앞에서의 진압은 5.18 광주민중항쟁의 첫 시작이었다. 이어 학교에 진입하지 못한 학생들이 광주 시내에 모여 군대를 물릴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개되었고 군대는 밤 9시 이후 통행금지 조치까지 내렸으나 민주화를 열망하는 광주민중들의 시위는 더욱 거세어질 뿐이었다. 이에 신군부는 광주지역을 고립시키고 특수부대 및 군인들을 증파하여 무자비한 폭력과 심지어는 군용칼까지 휘두르며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잡아간다. 하지만, 신군부의 이러한 진압행위는 광주민중들의 분노를 더욱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되었고 시위와 항쟁이 더욱 들불처럼 번지게 된다.
 
5월 20일, 고등학생들까지 시위대에 참여하게 되었고 신군부는 고등학교에까지 휴교령을 내렸다. 택시와 버스들도 차량시위를 벌이면서 광주민중들의 항쟁은 커져만 가는데, 신군부의 통제를 받은 방송과 신문은 고립된 광주의 상황을 ‘북한의 명령을 따른 폭도들에 의한 것’이라고 허위보도를 일삼는다.
 
5월 21일, 신군부는 금남로에서 시위 중이던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 집중사격을 하였고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가면서 광주민중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경찰서와 탄약고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였다. 스스로 무장한 시민군은 군대를 광주 외곽으로 몰아내고 그들이 다시 몰려오는 5월 27일까지 광주의 질서를 유지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 짧은 시간 동안 광주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고 범죄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며 시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하는 등 ‘파리꼬뮌’이 아닌 이른바 ‘광주꼬뮌’으로 불릴 정도의 '민중 자치의 해방구'였다고 한다.
 
5월 27일 새벽, 신군부는 탱크까지 앞세우고 시내로 진격해 들어왔고, 시민군은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하지만, 중무장한 정규 군대를 시민군이 당해낼 수는 없었고 끝내 도청에 남아있던 많은 시민들이 죽임을 당함으로써 5.18 광주민중항쟁은 비극으로 끝난다.
12.12 쿠데타로 대통령 최규하를 허수아비로 만든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5.27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위한 '대책회의'에서 '광주사태'에 대한 '강경진압'을  지휘했고 '조기진압'을 위해 군대가 광주 시민들에게 직접 사격을 한 날 진압군에 '하사금'을 내리기도 했다. 
전두환이 광주 학살의 책임자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제 그 자에게는 '옥사(獄死)'의 길 밖에 없다.

역사학자 서중석 교수는 '이명박근혜 정권'의 '뉴라이트' 역사왜곡에 대항하여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18년 박정희 군부독재 시기를 거쳐 전두환 학살정권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를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기자 김덕련과의 문답 형식을 빌어 정리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권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이야기이고, 17권은 광주민중을 학살하고 집권한 '5공화국' 학살정권의 '잔혹사'를 다룬다.

소설 [봄날]에서 윤상원 열사의 입을 빌어 말한 "우리가 패배할지라도 훗날 다른 누군가가 다시 시작할 이 끝나지 않는 싸움"은 이후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그 해 '8월 노동자 대투쟁', 1996년의 '총파업', 2002년과 2008년의 대규모 '촛불시위'와 최근의 2016~17년 '촛불항쟁'으로 계속 되살아나 우리 역사를 전진시켜 왔다.


우리 역사에서 5월 18일은, 당시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 정권의 파쇼적 실체와 이에 대항한 우리 민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그리고 세상의 주인인 우리 민중들을 폭력만으로 억압하고 통치할 수는 없다는 역사적 진실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역사적 '아이콘'이 되어왔고, 이후 이 땅 민주주의 역사의 살아있는 교본이자 이 땅의 민주주의와 노동해방을 이루고자 하는 후세대들에게는 기어이 한을 풀지 못한 하나의 ‘원죄’가 되어 왔다.

"... 긴 시간이 흘렀지만, 밝혀야 할 사안은 지금도 적잖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뻔뻔한 거짓말과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오월 광주를 어떻게든 폄훼하려는 세력이 여전히 날뛰고 있습니다. 오월 광주 문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월 광주의 진실을 잊으면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습니다."
-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17권, '나가는 말', 서중석/김덕련, <오월의봄>, 2019.


# 5.18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 산화해 간 민주주의 영령들의 넋을 기립니다.

***

1. [봄날] 1~5권, 임철우, <문학과지성사>, 1997.
2.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17권, 서중석/김덕련, <오월의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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