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 정치적 종족성과 민족주의, 그 오랜 역사와 깊은 뿌리
아자 가트 외 지음, 유나영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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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현상학' : 시민적 민족주의 vs. 종족적 민족주의
- [민족](2013), 아자 가트/알렉산더 야콥슨, 유나영 옮김, <교유서가>, 2020.


"프랑스혁명은 프랑스 민족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민족'의 주권자를 '군주'에서 '인민'으로 교체한 과정이었고, 이 과정에서 민족에 대중적 에너지와 충성심을 불어넣은 건 덤이었다... 전면적 '근대화' 과정은 '민족주의'를 출범시킨 게 아니라 '해방'시키고 '변화'시키고 '강화'하는 동시에 그 정당성을 크게 높여주었다. 그러니까 '대중주권(민주주의)'은 '민족주의'에 기여하는 동시에 '민족주의'가 '해방'될 출구를 제공했다."
- [민족], <6. 근대 : 해방되고 변형되고 강화된 민족주의>, 아자 가트, 2013.


한때 '민족'과 '민중'이 '대립'되는 개념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분명, 국가와 사회의 주인은 '민중'이었는데 소수의 권력자들이 앞세웠던 '민족'과 '민족주의'는 다수 인민/국민/민중들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군부독재정권에서 '해방'을 위한 가장 주요한 가치는 '민주주의'였고, '민주'를 중심으로 '민족'과 '민중'의 운명은 엇갈리는 것만 같았다. 

'민족주의'도 시대를 풍미한 '이데올로기'였다. 영국의 역사학자 윌리 톰슨은 자신의 저서 [20세기 이데올로기](2011)에서 20세기 '극단의 시대'를 관통한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사회주의)', '파시즘'의 역사적 계보학을 그리면서 '해방'을 약속하는 이데올로기의 실천을 서술한다. '자유주의'가 '승리'한 듯 했던 1991년 이후 "가장 가공할 만한" 이데올로기로서 "공격적인 '민족주의'"(윌리 톰슨, 같은책, <3-15.>)를 언급하지만 정작 [20세기 이데올로기]에서 '민족주의'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민족주의' 또한 다른 주요 이데올로기들 못지 않게 '해방'을 약속하는 실천적 이데올로기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아자 가트(Azar Gat)는 [민족(Nations)](2013)이라는 책을 통해 '시민적 민족주의'와 '종족적 민족주의'의 대립체계의 틀로 '민족의 현상학'을 서술한다. '민족주의'는 보통 근대화의 산물로 여겨지는데, 아자 가트에 의하면 '민족'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전자는 '시민적 민족주의'이고, 후자인 아자 가트의 관점은 '종족적 민족주의'에 가까운데 실질적으로 저자의 입장은 '절충주의'의 모양새다. 즉, '민족'은 아주 오래전 선사/원사 시대부터 '종족'의 모습으로 존재해 왔고, 근대화의 산물인 '민주주의'와 함께 '민족주의'가 '해방'되고 '변형'되며 '강화'되었다는 주장이다(아자 가트, 같은책, <6>). 지금의 '민주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는 무솔리니 파시즘과 히틀러 나치즘 같은 '파시즘'에 의해 배타적 인종주의 형태로 '변형'되고 '강화'되며 특정 민족의 '해방'만을 주장하는 왜곡된 모습이 된 결과 '민주주의'의 적(敵)이 되었지만, 원래 '민족'은 '종족성', '인족'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다. 다분히 이론적인 책이지만 그만큼의 이론적인 근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선사시대와 고대로부터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세계 각지의 종족과 국민(민족)국가의 역사적 현상을 따라 서술하는 일종의 '민족 현상학(現象學/phenomenology)'이다. '종족성(ethnicity)'에서 출발한 인류가 '인족(people)'을 거쳐 궁극에 '민족(nation)'으로 완성되는 장구한 '현상학'. 책이 불필요할 만치 장황하고 두꺼운 이유는 대사상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대한 오마쥬 또는 유발 하라리, 토마 피케티 같은 현대의 인기 사상가들에 대한 '민족'적 도전일 수 있겠다.


"민족국가는 전근대 국가 중의 일부였지 전부가 아니었고 심지어 대부분도 아니었다. 나머지는 더 넓은 공간을 여럿이 나누어 가진 소국들이었다. 하지만 제국들도 있었는데, 한 '인족'이나 '종족'이 팽창해서 다른 인족이나 종족들을 지배하는 경우가 가장 전형적이었다... 민족태를 정치적 종족성의 특정한 형태로 보는 이 책에서 제국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로 제국은, 국가 형성 과정에서 일찍부터 어디에나 싹트고 있던 '민족(nation)'국가들을 우세한 무력으로 파괴한 강력한 엔진이었다. 많은 민족국가들이 제국이라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 사라졌다... 둘째 이유는,... 거의 모든 제국은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특정 '인족(people)'이나 '종족(ethnicity)'의 제국이었다. 그 인족/종족의 군사력과 정치적 지배력이 제국의 주춧돌이었다."
- [민족], <4. 전근대 세계의 종족, 인족, 국가, 민족>, 아자 가트, 2013.


역사학자이자 이스라엘 방위군 예비역 소령인 아자 가트가 보는 '종족적 민족주의'에 가까운 '민족'은 오랜 세월 핍박받고 떠돌다가 근대화의 결과로 근동에서 땅따먹기 민족투쟁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유대' 민족주의의 그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자의 '절충주의'는 근대 '민주주의'가 필연적으로 결합된 결과이기도 하다. 아무리 유대 민족주의에 사상적 뿌리를 두었더라도 '종족주의'에 머물 수 없는 까닭은 '민주화'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민족 현상학'의 주체인 '종족(ethnicity)'은 '인족(people)'을 만난다. 역자가 말하기로도 어색한 번역어인 '인족'의 원어는 'people'이다. '민중'이나 '인민'은 '민족'적 색체가 적기 때문에 선택된 번역어겠지만 내가 읽기로 아자 가트의 '인족'은 '민중(인민)'에 다름 아니다.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던 씨족과 부족 등의 '종족'은 평상시에는 서로 싸움을 멈추지 않던 원수들이었으나 사회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레 공동체를 형성하고 외부의 다른 종족에 대항하여 비슷한 종족들끼리 단결하면서 연맹체나 초기 국가를 만들었다. 모든 역사의 소국들이 연맹체가 되고 사유재산과 잉여가치의 축적을 위한 군사력으로 고대국가가 되는 과정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국가'의 출현에 관한 아자 가트의 현상학은 여기까지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1884)의 정치경제학적 분석틀을 따른다. 그러나 [민족]의 저자 아자 가트는 결코 '계급투쟁의 역사'를 말하지 않는 '자유주의자'다. 미리 말하자면, 아자 가트의 [민족]의 결론은 "종족/민족 감정이 '자유주의'적이고 계몽된 상태로 유지되기만 한다면, (민족 감정과) 전 인류에 대한 사랑이 근본적으로 모순된다고 보지 않았다"(같은책, <6>)라는 명제에 들어 있다. 아자 가트에게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같은 말이고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힘으로 '민족주의'는 비로소 '해방'된다. 그래서 아자 가트의 [민족]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인족(people)'이 된다. '민중'은 곧 '민주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 민족적 친밀감, 정체성, 연대감이... 매우 의미있는 정치적 힘으로서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근대주의적, 이분법적 이론화의 근본적 오류다... 민족현상에 큰 힘을 부여하여 이를 의미있는 정치변수에서 '민족주의 시대'의 핵심에 위치한 지배적 정치변수로 바꾸어놓은 것은 '대중주권', 시민권, 시민적-법적 평등, '민주화', 그리고 지역 정체성의 약화라는 교의였다."
- [민족], <5. 전근대 유럽과 민족국가>, 아자 가트, 2013.


'종족성' 자체가 다분히 정치적인 개념이다. 아자 가트는 부정하겠지만 모든 '종족'은 계급사회의 정치권력으로 역사의 전면에 부상했고 국가권력이 된 후로는 '민족'으로 치장했다. 물론 근대 이전에는 '민족'을 대표하는 정치권력이 '군주(왕권)'였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민주화' 이후 국가의 주권이 형식상이나마 '민중(인족/people)'의 것이 되었다. 아자 가트의 '민족주의'에서 '인족'이 중요한 개념인 이유다.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나 제국도 기본 이데올로기는 공통 언어와 종교에 기반한 "범문화적 유대감"(같은책, <6>)을 공유하는 '민족'이었고, 이집트를 포함하여 고대 세계에서 이민족 왕이 집권했다 하더라도 해당 '인족'들이 믿는 '민족주의'로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그 '민족적 민중'이라 할 수 있는 '인족'들에 의해 언제 쫓겨날지 몰랐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유럽 최초 '민족국가'의 원형이었던 고대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또한 방대한 영토를 정복했던 제국이었지만 여러 지역을 직접 지배할 수 없었다. 마케도니아나 로마를 포함한 대제국의 권력자들은 '민족'이 여러 개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해당 지역의 실질적 주인은 그곳에 사는 해당 '인족'이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도 중국을 차지한 이민족들은 '한족'으로 동화되었는데 해당 지역의 다수 '인족'이 한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자에 따르면, "과거의 농민들에게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찬성했던 유럽의 프롤레타리아들 못지 않게 엄연히 '조국(민족)'이 있었던 것이다"(같은책, <5>). 

프랑스 대혁명을 필두로 한 근대 '민주주의'가 등장한 이래 건설된 '국민국가'는 바로 이 '민족국가' 또는 '민족'에 기반한 제국이 해체되고 발전한 근대적 '민족국가'였다. 근대국가는 더 이상 '군주'가 주인이 아닌 '국민'이 주인이라고 헌법에 명시했고, 이 '국민'이 바로 '민족'으로 뭉친 '인족'들이었다. 아자 가트는 미국과 같은 '다민족 국가'에 관한 서술도 이어가고 역시 이스라엘 역사학자 알렉산더 야콥슨은 [민족]의 7장에서 '민족'과 '국가', '종족성' 관련한 헌법적 측면을 서술하고 있으나 사실 이 책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챕터 같지는 않으므로 건너뛰어도 무방할 듯 하다.


"근대 민족주의의 쇄도는 인민이 자신들의 선택을 표출하고 행동에 옮기게 해준 민주화, 자유화 과정의 한 작용이다... 계몽주의 가치를 옹호하는 이들은 민족주의의 해방적 측면과 공격적, 폭력적인 측면을 둘 다 인식해 왔다. 전자(해방적 측면)를 극대화하고 후자(공격적 측면)를 억제하려면 그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민족], <결론>, 아자 가트, 2013.


국가는 오래전 고대로부터 '종족'과 '민족'에 기반해 왔고, '민주주의'가 등장한 근대 이후로 다수 '인족'의 힘을 기반으로 '국민(민족)국가'를 형성해 왔다. 아자 가트의 '민족주의'는 이 과정에서 현대의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민족주의(인종주의)로 인해 부정적 변화는 겪었지만 결국 '자유주의'와 함께 할 때 '전 인류에 대한 사랑'과 '해방'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거의 동의어인 이스라엘 역사학자 아자 가트로서는 근대의 '시민적 민족주의'와 전통의 '종족적 민족주의'를 적절히 절충시킨 최적의 '민족주의'가 되겠다. 그러나, 부족이 국가가 되고 제국의 팽창과 국민국가의 출현에서 '계급투쟁'의 인류 역사를 보지 않으려 하는 유대인 '자유주의자' 아자 가트와 알렉산더 야콥슨의 '민족 현상학' 너머로 본다면, '민족'과 '민중'의 역사적 길항에서 '종족'이나 '민족' 같은 개념보다는 어색한 번역어이기는 해도 '인족(people)'에 더 방점이 찍힐 수 밖에 없다. 

'인족(people)'의 정체는 다시 말하지만 '민주주의'의 주체인 '민중(인민)'이다.

***

1. [민족(Nations) - 정치적 종족성과 민족주의, 그 오랜 역사와 깊은 뿌리](2013), Azar Gat/Alexander Yakobson, 유나영 옮김, <교유서가>, 2020.
2. [20세기 이데올로기(Ideologies in the Age of Extremes)](2011), Willie Thomson, 전경훈 옮김, <산처럼>, 2017.
3.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1884), F. Engels. 김대웅 옮김, <아침>, 1987.
4. [정신현상학](1806), G.W.F.Hegel, 임석진 옮김,<지식산업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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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 패션의 권력학
계정민 지음 / 소나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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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포크'와 '댄디즘'이 영원하지 않듯
-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계정민, <소나무>, 2021.


"실버포크 소설이 가져온 변화 혹은 폐해는 넓고도 깊었다. 노동계급과 소작농 집단을 제외한 영국인들이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소비패턴을 향해 달려간 것이다... 이들 모두는 짐작하지 못했다. 동경과 모방의 대상인 귀족들은 이미 구별짓기를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했다는 사실을."
-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1-1. 실버포크 소설>, 계정민, 2021.


우리 사회 세대론을 상징하는 용어로 '금수저-흙수저론'이 있다. 재벌을 비롯한 상위 자본가 계급의 자녀들은 태어날 때 '금수저'를 물고 나오고, 다수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은 '흙수저' 또는 아예 수저 자체가 없다는 비유다. 아주 소수인 '금수저'보다는 못하지만 부유한 상층 부르주아들은 '은수저'로도 분류된다. 그들은 사회체제와는 무관하게 본인의 '능력'에 대한 '댓가'로 부를 축적했다고 생각하며 자녀에게 '교육' 자본과 '부동산' 자본을 세습하는 '세습중산층' 사회의 주축이다.

19세기 초 영국 문학 중 '실버포크(Silver fork)' 소설이 있다. 당시 몰락해 가던 대토지 소유 귀족 계급의 생활방식을 세부적으로 묘사한 소설들이었단다. 영문학을 전공한 나도 사실 몰랐다. 18세기 영국 소설에서 상류계층을 풍자했던 '코믹(Comic)' 소설과 또 다르게 그들을 비꼬았던 '벌레스크(Burlesque)' 소설은 들어봤다. 헨리 필딩이라는 '벌레스크' 소설가는 자신의 풍자소설 [조셉 앤드류스]의 '서문'에서 '코믹'은 '자연스러운(natural)' 풍자인 반면, 본인의 '벌레스크'는 '부자연스러운(unnatural)' 형태로 세태를 풍자한다고 규정했다. 필딩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모방(imitation)'했다고 책표지에 쓰고 있는데, 실제로 그의 소설 주인공들의 행실은 기묘하고 기괴하다. 돈키호테처럼 현실의 인물이라면 할 수 없는 우스꽝스런 모습들로 가득하다. 영문학에서는 이후 19세기 영소설에서 찰스 디킨스의 '사실주의'로 넘어가던 기억이 있다. 물론 전공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아 내가 빼먹었을 수도 있겠다.


계명대 영문과 계정민 교수는 19세기 영국 소설에서 등장했다가 사라진 '실버포크' 소설 이야기를 소개한다.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2021)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은 19세기 영국의 '실버포크' 소설과 이에 따른 '댄디즘'의 부상 및 몰락을 그리고 있다. 부제로 '댄디즘'의 핵심인 '패션의 권력학'을 썼지만, 책의 내용은 '패션'보다는 근대 이후 계급문화의 흐름을 짚고 있다.

'실버포크(Silver fork)'는 생선요리를 먹을 때 '은으로 된 포크'를 쓰는 계층을 이른다고 한다. 상층계급의 생활양식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소설 부류였는데, 18세기 산업혁명으로 급부상하던 산업(상업) 부르주아 계급이 경제적 부를 기반으로 선거권 확대를 통해 정치적 주류가 되었음에도 장악할 수 없었던 기존 대지주 귀족 계급의 '문화자본'을 따라할 수 있게 한 일종의 '지침서'였다고 한다. 소설의 플롯 자체는 흡사 지금의 막장 드라마와 같았을 것인데, 묘사 자체가 너무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라 은둔작가 에밀리 브론테 조차도 당대의 '실버포크' 여소설가 고어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낼 정도였단다. 덕분에 상류층의 생활상을 직접 보지 않고도 간접경험했고 자신의 소설쓰기에 활용할 수 있었음에 대한 감사의 편지였다. '실버포크' 소설 주인공들은 귀족적 삶을 동경하고 따라하려던 부르주아 또는 자본주의 발전으로 몰락한 귀족의 후예로서 돈은 없지만 귀족적 문화가 몸에 배인 젊은이로 우연히 거대한 유산을 받아 귀족적 '실버포크' 인생을 완성하거나 몰락하는 내용들이라고 한다. 영국 소설 계보에서 소수에 해당했을 이 '실버포크' 소설은 영문학자 계정민 선생의 이 책에 의해 세밀하게 분석되고 소개되고 있다. 

영문학사에서 유명한 토머스 칼라일이나 윌리엄 새커리 같은 비평가/소설가들은 이 '실버포크' 소설들을 매섭게 비판했다. 문학이 담아야 할 역사와 철학, 사상을 소홀히 한 채 상업적 인기에만 영합하는 '속물(snob)'들이라는 것일진데, 이런 속류 소설들을 출판기획하고 뻥튀기 서평까지 곁들여 돈을 번 헨리 콜번은 지금까지 문학계에서 조롱과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지만 저자에 의하면 콜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이 가게 될 길을 조금 앞서 간 것이라고 한다. 지금 '문학(예술)성'과 '상업성'의 관계를 보면 이해할만한 이야기다. 물론 저자의 이력이나 각종 사실관계를 부풀리거나 속여서 '서평'을 먼저 뿌렸다는 출판기획자 콜번의 사기 마케팅은 앞서도 너무 앞섰을 테다. 


"돈으로 '휘감은' 중간(부르주아) 계급은 상류사회 진입을 위한 예비단계는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예선통과자'에게는 본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족 계급은 유일하게 남은 무기인 문화자본으로 최종 방어기지를 구축했고, 구축한 문화요새의 전위에는 '댄디'가 서 있었다. '댄디'가 '허영심 많은 젊고 경박한 맵시꾼'이 아니라 귀족 계급이 선포한 문화전쟁의 선봉대인 까닭이다."
-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2-3. 댄디의 탄생>, 계정민, 2021.


이제 본격적으로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고 말한 주체가 등장한다. 그들은 '댄디(Dandy)'들이었다. 자신의 옷차림과 '패션', 치장된 육체를 타인들에게 '전시'하던 귀족 계급 남성들이 바로 '댄디'들이었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와 노동의 영역에는 결코 발을 들이지 않는 몰락한 귀족주의가 '댄디즘(Dandyism)'이었다. 그래서 '실버포크' 소설은 '댄디' 소설이었다. 
물론 산업혁명 이전 대지주 귀족 계급은 대부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게 당연했다. 그러나 자본가 계급이 부상하면서 '정직, 성실, 근면' 등의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강조되었고, 실제 노동은 노동자 계급이 전담했음에도 이런 지배윤리로 무장한 부르주아 계급은 도저히 귀족들의 '무위'적 생활방식을 진실로 따라갈 수 없었다. 몰락하던 귀족들은 이런 신흥 부르주아에 대항하여 진정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재산과 시간을 몸 치장하는데 허비하고 바쁘게 다니는 부르주아 계급(중간계급) 사이에서 '거북이를 데리고 산책하기' 등을 시전하던 '댄디'들을 그래서 부르주아들은 '감히 넘볼 수 없었다'. 몰락하는 귀족들은 '무위'와 '권태'로 무장한 '댄디즘'으로 시대에 대항했지만, 결국 자본주의 발전과 부르주아 계급의 부상이라는 역사적 경향을 되돌릴 수 없었다. 중국 역사학자 이중톈의 전공인 [위진풍도]는 5세기 위진 남북조 시기 진취적인 이민족 북조에게 밀려 남하한 한족 남조의 '사족'들의 '무위'적 삶을 '위진풍도'라 하였다. 몰락해 가던 귀족 자제들이 일은 안하고 몸치장과 고담준론, 음주향락에 빠지고 남성들이 연약하고 흰 피부에 하루 종일 화장하며 칼이나 붓 대신 부채나 들고 다니다가 허약한 몸으로 길거리에서 실신하는 행태는 19세기 영국의 '댄디'의 모습 그대로다. 실리보다 명예를 앞세우는 '결투'를 하기도 했지만 영국의 '댄디'들은 여성화된 남성이었다는데, 귀족들이 양성평등의 진보성이 있었을리는 만무하고 그저 '성실, 근면, 노동'의 새로운 지배윤리에 저항하고 "감히 넘볼" 필요 조차 못 느끼게 만들려는 최후의 발악과도 같다.

그러나 중국의 5세기 '위진풍도'가 이후 [삼국지연의] 등의 문학에서 제갈량의 모습 등으로 부활했듯, 몰락한 '실버포크'의 '댄디즘'은 부르주아 계급 뿐만 아니라 '혁명전사'가 될 다수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욕망 속에서 다시 부활한다.


"1840년대는 가난의 문제와 '빈곤의 문화'가 압도적으로 부각된 시기였다. 소비와 과시로 요약되는 귀족 계급의 생활양식은 더 이상 찬탄과 모방의 대상이 아니라 분쇄해야 할 시대착오적인 악습으로 규정되었다. '실버포크' 소설의 몰락은 이제 예정된 수순이었다."
-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3-6. 실버포크 소설을 감시하기>, 계정민, 2021.


영국의 '곡물법'은 1846년에 폐지되었다. 곡물 수입을 제한하고 귀족들 땅에서 나온 곡식 만 비싸게 유통시킴으로써 대토지 소유주의 이익만 늘리고 다수 민중들은 기아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곡물법'을 존속시킨 귀족들은 더이상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증오와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1840년대 노동자 혁명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실버포크'와 '댄디' 또한 부정되고 파괴되어야 했다. 찰스 디킨스 같은 소설가는 초기 영국 자본주의 현실을 그리는 영국 근대소설의 전형이 되었고, 아일랜드 식민지의 현실을 그리려는 제임스 조이스 같은 굵직한 영문학 소설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기존 '실버포크' 소설가들 조차도 '댄디즘'을 버렸다. 그러나 '댄디즘'은 사라지지 않았다. 

1851년 영국 수정궁 박람회는 산업혁명으로 전성기를 향해 기관차처럼 치달리는 영국의 산업과 생산품들을 전세계에 전시했고 계급의 '혁명전사'가 되어야 했던 다수 노동자 계급은 물론 식민지 '해방전사'가 되어야 했던 식민지 민중들까지 자본주의 상품 소비의 거대한 대열에 포섭되었다. 몰락 귀족의 사치스런 '댄디즘'을 "감히 넘볼 수 없던" 부르주아 계급은 자본주의적 공급과잉 상품을 무기로 몰락한 소수 귀족은 물론 부상하는 다수 노동자 계급과 식민지 민중들을 사로잡았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본주의 상품들을 모두가 "넘볼 수 있게" 하는 환상을 심어 다수 민중들이 자본가들의 정치경제적 독점권력을 "감히 넘볼 수 없게" 만들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들고 수많은 정보와 자산이 교류되고 공유되는 지금, 소수 자본가들의 생활방식과 문화자본 일체 또한 오래전 '댄디즘'처럼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감히 넘볼 수 없게" 존재하던 소수의 권력이 보다 많은 다수의 점유를 통해 '사회화'될 수 있는 기반도 만들어지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실버포크'와 '댄디즘'이 영원하지 않듯,
영원한 체제도, 영원한 계급도 없다.
세상에 "감히 넘볼 수 없는" 것 또한 없다.

***

1.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 패션의 권력학], 계정민, <소나무>, 2021.
2. [위진풍도 - 이중톈 중국사 11](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8.
3. [Joseph Andrews](18세기), Henry Fielding, <No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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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데올로기 -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1914-1991
윌리 톰슨 지음, 전경훈 옮김 / 산처럼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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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실천'은 '해방'이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윌리 톰슨, 2011.


"지배적인 '사상(이데올로기)'이란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들의 관념적 표현, 사상으로서 파악된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 그 자체일 뿐이며, 따라서 어느 한 계급을 지배 계급으로 만들어주는 관계들의 표현이고, 따라서 그 계급의 지배 사상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1-3.>, 1845~1846.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하면 "망상과 관념과 도그마와 환상적인 존재들([독일 이데올로기], <서문>)"로서 물질적 세계를 떠나 존재하는 척 하는 '허위 의식'이었다. 그 전형은 독일의 사변철학자들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유물론'으로 인류를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던 최초의 '과학'적 시도였다.


"이데올로기란 한 주어진 사회 내에서 역사적 존재와 역할을 지닌 하나의 표상(이미지들, 신화들, 경우에 따라서는 관념이나 개념들) 체계(고유한 논리와 엄격성을 지닌)라는 정도로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 이데올로기는 사회들의 역사적 삶에 본질적인 구조인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표상들은 대부분의 경우 이미지들이거나 때로는 개념들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표상들은 무엇보다도 '구조'들로서... '지각되고-수용되고-체험된' 문화적 대상들이며 인간이 알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에게 기능적으로 작용한다... (대중의 표상체계로서) 이데올로기의 '계급'적 기능을 논할 때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바로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것, 그리고 지배 이데올로기가 피착취 계급을 지배하는 데 뿐만 아니라 지배 계급이 세계와 체험한 관계를 현실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지배 계급으로 형성되는 데'에도 봉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루이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 1965.


1965년,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라는 저작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였다. '대상'을 가지고 '지식'을 생산하는 '과학'과 말 그대로의 '허위의식'이지만 물질적 힘을 지니는 '이데올로기'를 구분하는 것이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인 '철학'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1. 20세기 '극단의 시대'의 이데올로기들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권력에의 의지와 결부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네 가지(자유주의/보수주의/공산주의/파시즘) 이데올로기의 지적 토대를 다루지만, 주된 관심은 이데올로기들의 역사적 적용과 작용을 고찰하는데 있다. 이론을 논의하긴 하겠으나,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실천(praxis)'이다... 
... 혁명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가 지닌 강점과 매력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자유주의는 17세기 영국에서 등장한 '소유적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에 기초한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민주주의 없이도 완벽하게 잘 돌아갈 수 있으며, 빈번히 그래왔다... 
... 실지로 보수주의는, 토지 소유 및/또는 그와 연결된 교회와 장교군단과 같은 전통 기관들로부터 수입을 얻고 있으며 기존 상황의 변화를 결사반대하는 사회 계급 및 지위의 이데올로기에서 기원했다...
... 19세기 중반 유럽에 새로 등장한 이데올로기에서는 자유주의를 유산 부르주아지의 계급 이데올로기로 낙인찍고, 스스로도 계급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그와 동시에 '보편성'을 주장했다. 이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바로 사회주의인데,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변형태가 그러했다...
... 무엇보다도 파시즘 자체는 위기 즉 전쟁과 부차적 사회혼란 그리고 경제붕괴 및 문화적 불안이라는 위기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서론: 개념 정의 및 개요>, 윌리 톰슨, 2011.


영국의 역사학자 윌리 톰슨(Willie Thomson:1939~)은 1991년 영국공산당이 해체될 때까지 활동한 사회주의 역사학자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부터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1991년까지 기간을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로 규정하며, 제1~2차 세계대전의 1914~1945년을 '대참사의 시대'로, '자유주의' 진영이 추축국 파시즘에 승리한 후 냉전을 통해 자본주의/공산주의 경제번영을 이루던 1945~1973년을 '황금시대'로, 세계경제 위기로 경기가 하향선을 그리다가 결국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진 1973~1991년을 '위기'로 구분한다. 각 시기를 각 부로 나누고 각 부의 첫 장에 '경제 및 사회여건'을 다룬 후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등 네 가지 이데올로기들의 역사를 소개하는 저서가 바로 [20세기 이데올로기(Ideologies in the Age of Extremes)](2011)다. 그는 20세기 세계사에서 이데올로기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지만 역사에 적용된 그 '실천(praxis)'적 형태를 강조한다.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역사 속 중앙집중식 계획경제 또는 명령경제에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실천이 불가능했던 '공산주의(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는 저자 윌리 톰슨은 인류 보편의 '해방'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위 네 가지 '이데올로기'들의 특성을 서술한다. 
19세기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는 '허위 의식'이자 사변적 '관념'에 불과했던 '이데올로기'는 20세기 루이 알튀세르에게는 그럼에도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힘을 지니면서 역사유물론의 '과학'에 의해 구분되는 '철학'의 지위를 획득한다. 21세기에 노구의 역사학자가 보기에도 '이데올로기'는 인류사에 매우 중요한 '사상'을 의미한다. "의식적으로 분명하게 표현된 모든 이데올로기는... '해방'을 약속"(같은책, <3-15>)하는 이유다. 


2. 자유주의


"자유주의는 예외적으로 '해방'에 역점을 두고 있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해방이란 개인을 사회의 규율로부터 구제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에서 '사유재산'은 개인의 인격과 긴밀하게 엮여있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2-7. 우파 자유주의>, 윌리 톰슨, 2011.


자유주의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의 기본 사상으로서 신화나 종교가 아닌 인본주의 사상의 시초였다. 부르주아의 부상과 함께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며 사유재산을 신성시했다. 토마 피케티는 자유주의를 아예 '소유주의'로 부른다. 자유주의는 '해방'을 향한 모든 이데올로기의 뿌리다. 그러나 보통선거권 쟁취의 정치적 평등은 지향했으되, 경제적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시장을 옹호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경제적 토대로서 자본의 영역에서는 철저히 반민주적이다. 자본주의 최고단계에서 더이상 진보적이지 않은 자유주의는 경제 위기를 맞은 1970~80년대에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보수주의와 유착하여 '신자유주의'가 된다(같은책, <3-12>). 우파 자유주의인 신자유주의와 좌파 자유주의인 사회민주주의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개량하는 주요한 두 이데올로기다.


3. 보수주의


"프랑스 혁명과 그 여파 때문에 그 반대자들은 자신들의 앙시앵-레짐(구체제)을 옹호하기 위한 논증을 준비해야만 했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1-3. 보수주의>, 윌리 톰슨, 2011.


보수주의는 하나의 정립된 사상이 아니다. 그냥 지배 이데올로기 일반이다. 근대 이전에는 왕정과 이에 결탁한 가톨릭으로 그만이었다. 그러나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사상으로서 자유주의가 부상하고 시대정신이 되자 이에 반발하여 결집된 구 지배 계급의 대항 이데올로기가 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토지 소유 귀족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부르주아적 프로테스탄티즘에 맞선 가톨릭 구교 세력들이 주축이 된다. 이후로 '기독교' 등 지배 종교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한 자들이 '보수주의'를 앞세웠고 결국 기존 질서 유지와 보존을 본질로 하는 '보수주의'는 '자유주의'와 필연적으로 유착하여 '신자유주의'가 된다. 기존 질서와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는 보수주의는 언제 어디서든 '파시즘'과도 결탁할 준비가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2차 대전에서 왕정복고 보수주의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벗이었다.


4. 공산주의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뒤이어 소비에트 국가가 살아남지 못했다면, 이전의 식민지 세계에 있던 대부분의 국가는 여전히 식민지로 남아있을 것이며, 중국 역시 반(半)식민지 상태로 남았거나 조각난 제후국들의 집합이 되어있을 것이다. 게다가 냉전 기간 서유럽 주민들에게 '공산주의'가 호소력을 지닐 수 있다고 하는 위협 덕분에, 그런 위협을 중화시키기 위해 자본의 포식적 본능을 견제하고 노조의 세력을 용인하며 적절한 복지체계에 자금을 지원하여 복지국가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었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3-13. 공산주의>, 윌리 톰슨, 2011.


공산주의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역사 속 현실체제를 이른다. 저자는 사회주의 일반을 다루지는 않는다. 마르크스주의로부터 1991년 소비에트연방에 이르기까지의 현실 공산주의의 '실천'을 바탕으로 20세기 초중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유로코뮤니즘 등의 이데올로기로서 사회주의를 묶어서 서술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는 사유재산을 신성화시키며 개인의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설파하는 반면, 사회주의는 인류 보편의 '해방'을 주장하며 등장했고 정치경제 체제의 변혁을 통해 해방을 쟁취하려던 '과학적 사회주의'가 한때 세계의 1/3을 차지했음에도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못한 체제임을 돌아본다. '과학'을 이야기했지만 근본적으로 '유토피아'적 '공상'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의 한계다. 새로운 체제를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없는 한 '반세계화' 운동과 같은 전세계적 다수 대중투쟁도 시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노년 사회주의자의 냉정한 평가로 마무리된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열었던 영국의 보수주의자 마거릿 대처의 슬로건은 "대안은 없다(There's No Alternative)!"였는데, 자본주의 체제가 건재하고 새로운 대안체제가 등장하지 못하는 한 '자유주의'가 주류 이데올로기가 된다.


5. 파시즘


"파시즘을 정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특징 같은 것은 없지만, 의사혁명론, 권위주의, 포퓰리즘적 극단적 민족주의는 군사화된 함의들과 함께 파시즘 전체를 거의 모두 포괄한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1-5. 파시즘>, 윌리 톰슨, 201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두 계급 전쟁에서 어느 편도 우위에 서지 못했을 때 등장하는 세력이 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의 조카가 등장한 '보나파르티즘', 20세기 '국가사회주의'를 내건 무솔리니를 보고 옥중의 그람시가 고대 로마의 공화정에서 등장한 케사르(시저)에 빗대어 명명한 '케사리즘', 우리 역사를 포함하여 등장한 '군사정권'들. 이들은 군사조직을 기반으로 민족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이며 의사(사이비) 혁명적이지만 본질은 독점자본의 정치적 대변자였다. 경제 위기와 대량 실업의 재난을 배경으로 등장한 이들은 살기 힘든 다수 노동자민중들의 분노를 군사적 전쟁이나 테러로 대리표출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그랬고, 공화정을 무력화시킨 모든 군부독재의 모습이 그랬다. 사상적으로 일관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 자들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고대 로마 단결의 도끼묶음에서 착안하여 만든 '파시스트당'의 이름에서 유래한 '파시즘'으로 통칭되는데, '반공주의', '인종주의', '군국(군사)주의', '(총통)전체주의', '(신화적)신비주의' 등을 내세우는 세력 일체를 '파시즘'으로 보면 된다. 역사적으로 이탈리아 무솔리니, 독일 히틀러, 일본 천왕주의, 스페인 프랑코, 우리의 군부독재정권 일체가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보수주의와 가장 가까운데, 경제 위기의 피를 먹고 자란 파시즘의 '혁명'은 다수의 해방을 위한 그것이 아니라 기득권 체제를 유지하고 사적이익을 빨아먹으려는 쿠데타이기에 그렇다. 역시 자유주의자들 또한 독점자본주의 체제를 존속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파시즘과 손을 잡는다. 전간기 유럽의 자유주의자들은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의 체제 위협을 두려워하여 히틀러와 '평화협정'을 맺고 경제교류를 했다. 파시즘은 계급투쟁 과정에서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 창궐할 수 있는 독버섯이다.


6. 이데올로기의 '실천'은 '해방'


"그러한 이데올로기들 중에 지금까지 가장 가공할 만한 것은 공격적인 '민족주의'다. 민족주의는 지난 200년 동안 그 힘이 크게 변해왔지만 언제나 중요하게 남아 있었던 일종의 '정체성 정치학'이었다. 냉전이 진행된 몇 십 년 동안은 양쪽 진영 모두 민족주의를 자기 쪽에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었다. 개별적인 공산주의 조직들이 붕괴되거나 변형되기 훨씬 전에 국제 공산주의 조직이 동요하기 시작하자 민족주의의 힘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었다."
- [20세기 이데올로기], <3-15. 1991년 이후>, 윌리 톰슨, 2011.


윌리 톰슨은 현대사에서 자유주의/보수주의/공산주의/파시즘의 이데올로기 '실천사'를 통해 현재는 '자유주의'가 지배적 이데올로기지만, 자유주의 또한 '유토피아'적 공산주의 못지 않게 그리스도 재림의 "천년왕국"을 기다리는 유토피아적 측면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데올로기가 어떤 측면에서든 "해방을 약속"하는 한 체제가 변혁되고 대안의 가능성이 있다면 이데올로기의 "역사적 경험은 위기와 재난이 그러한 희망을 없애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같은책, <3-15>)고 쓰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민족주의'는 이러한 '20세기 이데올로기'들의 전반적인 투쟁 속에서 지역적이고 국지적 운동의 기본 이념으로 기능하나 이 책에서는 본격적인 이데올로기로서 다루지 않는다. 그저 반식민주의적 민족주의는 식민지 민중들의 해방 이념이었던 반면, 극단적 민족주의는 인종차별주의를 토대로 한 보수주의이자 더 나아가 파시즘의 형태였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상투적이지만, 역사 속에서 '해방'을 향한 '이데올로기'의 '실천'적 힘을 믿는다면, 위기와 재난은 인류의 '희망'을 강화한다.


***

1. [20세기 이데올로기(Ideologies in the Age of Extremes)](2011), Willie Thomson, 전경훈 옮김, <산처럼>, 2017.
2. [독일 이데올로기](1845~1846),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박재희 옮김, <청년사>, 1991.
3. [마르크스를 위하여](1965), 루이 알튀세르, 고길환/이화숙 옮김, <백의>,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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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록 - 미국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제국 건들건들 컬렉션
폴 배럿 지음, 오세영 옮김, 강준환 감수 / 레드리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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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되, 결코 '평등'하지 않은 권총의 표준
- [글록(GLOCK)], 폴 배럿, 2012.


"신이 인간을 창조했지만,
새뮤얼 콜트가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 19세기 미국 서부 속담.


초등(국민)학교 1학년 때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산동네 어귀로 이사왔다. 우리집 여섯 식구는 단칸방 첫 집에서 1~2년 살았는데, 그 집에서 성탄절 이브에 이부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전기를 처음 읽었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머니한테 5천원인가를 받았다. 성탄절이 오면 엄마한테 돈 받아서 꼭 사리라 찜해 놓은 장난감이 우리집 골목 맞은편 문방구에 있었다. 눈덮인 골목길을 건너 아침 일찍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달려간 문방구에는 내 장난감이 다행히도 안 팔린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982년인가 83년 크리스마스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구입했던 '루거 P-08' 권총은 그러나, 조립하자마자 망가졌다. 믿었던 '아카데미 과학'의 그 독일제 권총은 단 한 번도 장전되지 못했고 며칠 후 어디에 두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웰링턴 공작이 일찍이 19세기에 권총이 전쟁에 쓸 만한 무기인가 의문을 제기했는데, (20세기) 기계화 전쟁 시대에 들어서자마자 그 답이 나왔다. 권총은 전쟁에서 개인의 방어 이외에는 거의 쓸모가 없다. 사기 진작 정도에 영향을 줄까 말까 할 정도이다. 하지만 권총의 가치가 공안과 경찰 활동에서 입증되었으며, 차세대 권총은 이를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
- [무기], <자동장전식 권총 : 1950년 이후>, DK [무기] 편집위원회 / 영국 왕립 무기박물관, 2016.


초등학교와 중학 시절에는 아무 사상적 배경 없이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 추축국들의 전쟁기계를 선호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지금 돌아보면, 아마도 군부 파시즘 정권에서 나고 자란 탓으로 그냥 생각한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악당들인지도 모르던 시기였고 오히려 카리스마 있다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었다. 2차대전까지 독일군 장교들이 사용했던 '루거 P-08'은 1908년산이다. 거의 반세기 가까이 독일의 대표 권총이었고 지금도 유럽에서는 권총계의 '우상'이란다. 한편, '총의 나라' 미국은 1775년 4월 19일 렉싱턴 콩코드 전투에서 무장한 민병대가 영국의 정규군을 상대로 싸워 이길 정도로 총기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미국 독립 후인 1791년 제정된 <미국 수정헌법 제2조(The Second Amendment)>는 '시민 무장의 원칙'을 담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6연발 리볼버가 미국의 상징이었다. 서부 영화에서 보안관과 악당, 정의의 수호자인 주인공이 쓰던 그 총의 대표작은 새뮤얼 콜트가 만든 '콜트 뉴 서비스(1907)'와 '스미스&웨슨(1900)'이었다. 미국 영화에서 경찰들이 소지한 리볼버 권총이다. 그러나 리볼버는 6발 쏘고 장전해야 했다. '콜트 1911년형' 자동권총은 손잡이 탄창에 7발이 들어갔고, '루거 P-08'(1908)은 한번 장전하여 10발을 쏠 수 있었다. 19세기 리볼버의 둥근 탄창은 한계가 있었지만 20세기 자동권총의 손잡이 탄창의 총알은 계속 늘어났다. '콜트 1911' 이후 미국 군대와 경찰의 주요 권총이었던 벨기에산 '브라우닝 GP35'(1935)는 13발이 들어갔고, 역시 미군의 권총인 이탈리아 '베레타 92FS'(1976)도 13발이었다. 1950년대 이후로는 리볼버는 거의 사라지면서 자동권총의 시대가 되었고 1970년대에 리볼버는 강력탄환을 쓰는 은빛 '매그넘'의 형태로 명맥을 이어갔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서면 미국의 경찰과 악당들의 손에는 현대 자동권총의 대명사 '글록(GLOCK) 17'이 들려있다. 한 번의 장전으로 17발을 쏘면 더 많은 살상이 가능했고 혹자는 미국 총기난사 사건들이 대규모 참극을 초래한 주범으로 '글록'을 지목하기도 한다. 미국의 총기 규제에 관한 논쟁은 정치권의 주요 소재이며 총기의 자율소지가 범죄율을 높이는지 아니면 예방하는지 여부는 사회과학으로 해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전미총기협회(NRA : National Rifle Association)'는 미국 최대최강의 로비단체이며, 공화당은 '총기소유' vs. 민주당은 '총기규제'의 공식 또한 절대적이지는 않다. '시민 무장의 원칙'을 둘러싼 끝없는 정치논쟁의 본질은 사실상 자본주의적 이권이다.


"글록은 권총계의 구글이다. 현대의 권총을 처음으로 정의한 브랜드라 할 수 있다. 우아함을 찾아볼 수 없는 박스형 몸체와 검은색 마무리는 권총의 표준이 되었다. (미국)연방정부가 공항에 붙인 무기소지 금지표지 실루엣도 당연히 글록이다."
- [글록], <3장. 못생겼는데도 모든 사람이 원하는 호신용 권총>, 폴 배럿, 2012.


일본에서 사무라이 칼잡이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던 시기는 우연찮게도 근대 보편적 민주주의가 시작되던 시기와 겹친다. 군인이 살상를 위해 무예를 연마하던 기사와 사무라이의 엘리트 시대가 귀족적 보수주의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다. 이제 미국의 '시민 무장'처럼 누구든 총을 들고 소수 엘리트들의 쓰러뜨릴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미국 서부 사람들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지만, 새뮤얼 콜트가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다"는 극단적 언사를 서슴치 않았다. 
19세기 미국의 권총 제작자 새뮤얼 콜트, 미국에서 벨기에로 이민 가서 권총을 만든 존 브라우닝, 이탈리아의 베레타사와 독일의 게오르그 루거는 권총계의 전설들이다. 그러나 권총을 더욱 '대중화'시킨 사람은 1980년대 오스트리아의 군수품 제작납품업자 가스통 글록(Gaston Glock)이다.


"문제의 권총은 '글록 17'이다. 가스통 글록이 (오스트리아) 빈 외곽 도이치 바그람 마을에서 개발한 9mm 권총이다. 정확하고 안정적이며 대부분 경질 (플러머)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 총열, 슬라이드와 스프링 한 개만 철제다. 분해하면 너무나도 쉽게 보안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다."
- <워싱턴포스트>, 1985, 같은책 '5장'에서 재인용.


가스통 글록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단검과 같은 군수품을 만들고 납품했다. 그는 전쟁터 참전경험도 없었고 총에 대해 하는 바도 없었지만, 총기 전문가들의 조언을 충실히 듣고 내구성 강한 플러머 플라스틱 소재의 못생긴 권총 '글록 17'을 만들어낸다. 멋은 없지만 가볍고 단순한 부품에 총알도 많이 쏠 수 있는 '글록'은 순식간에 미국의 총기 시장을 점령한다. 유럽은 가스통 글록과 그의 수하인 볼프강 리들이 장악했고, 대규모 시장인 미국은 유명한 총기 보따리장수였던 칼 발터가 키웠다. '전미총기협회'의 대변자였던 폴 야누초 변호사는 미국 마케팅담당 칼 발터가 가스통 글록에 의해 토사구팽 당한 후 미국의 영업 책임자였지만, 결국 '글록'을 키운 자들 모두는 설립자 가스통 글록에 의해 제거되었다. 미국 마케터 칼 발터는 글록사의 대부분 이익을 책임지고 성공시켰지만 너무 많은 연봉을 요구하다가 해임되었고 후임자 폴 야누초는 횡령 혐의로 현재까지 구속 중이란다.


미국의 총기 전문가 폴 배럿은 2012년에 [글록]이라는 논픽션 다큐멘터리 형식의 책으로 '글록사'의 권총이 미국의 권총시장을 장악한 역사를 이야기한다. 설립자 가스통 글록은 제외하고 그를 둘러싼 관련자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자료로 쓴 이 책은 재미는 있지만, 부제처럼 '미국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제국'까지 거론할 정도의 깊이는 없다. 국내 번역자와 감수자 또한 이론이나 사상은 차치하고 '총기 매니아'의 입장에서 가볍게 권총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 장난감 권총을 들고 다니던 어린 시절처럼 전철에서 들고다니며 읽기 편한 책이다.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책의 그립감이 딱 장난감 플라스틱 권총과도 같다. 


총기의 나라 미국을 지배한 '글록'은 오스트리아의 골수 사회당원이지만, 극우 파시스트 정치인과 유착되었고, 삼성 이재용처럼 중립국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탈세를 일삼지만 이를 폭로하려던 야누초는 오히려 횡령혐의가 걸리고 만다. 역시 가장 원초적인 전쟁과 총의 욕망은 자본주의적 이권을 중심으로 집중된다. 
오스트리아 빈의 외곽에서 현대 권총의 표준을 만들어낸 천재 가스통 글록은 더이상 위대한 발명가가 아니다. 그는 다만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다"는 오해를 등에 업고 뻔뻔하게 대량 학살을 일삼는 권총으로 막대한 이윤을 얻고 동료들을 배신하며 탈세와 탈법을 자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독점자본가일 뿐이다.

권총의 표준 '글록' 또한 한세기 전 새뮤얼 콜트보다 더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자본가 '가스통 글록'은 결코 '평등'의 대명사는 아니다.

***

1. [글록(GLOCK) - 미국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제국](2012), Paul  M. Barret, 오세영 옮김, 강준환 감수, <북이십일 레드리버>, 2021.
2. [무기(WEAPON) - 2판](2016), DK [무기] 편집위원회 / 영국 왕립 무기박물관 공동제작, Richard Holmes 감수, 정병선/이민아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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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조선사 365 - 읽다보면 역사의 흐름이 트이는 조선 왕조 이야기
유정호 지음 / 믹스커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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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조선은,
- [1일 1페이지, 조선사 365], 유정호, <원앤원북스>, 2021.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이 '공이 있는 이는 조로 하고, 덕이 있는 이는 종으로 한다'라고 말한 것이 <태조실록> 황조실 책호문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라 나라를 세웠거나 반정에 성공한 왕에게는 조를 붙였다. 또한 국난을 극복한 왕에게도 조를 사용했다."
- [1일 1페이지, 조선사 365], <143. 묘호를 조와 종으로 구별하다>, 유정호.


나는 '왕정'이 싫다.
기본적으로 크든 작든 인간들의 공동체나 사회가 소수의 집단에 의해 굴러간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하물며 '왕족'이라는 한 집안이 공동체를 지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게 '왕족'이란 '도적떼'의 다른 말이다.

'공화정'을 인식하기 전이었던 고등학교 때도 나는 조선의 '태정태세문단세...'를 외우지 않았다. 세계가 인정하는 기록유산이라는 [조선왕조실록]을 보느니 민담과 전설 또는 야사가 낫다고 보았다. '왕조'를 중심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국사시험 보는데 문제는 없었다.

'태정태세문단세...'를 새삼 외운 건 나이 마흔이 넘어서였다. 무슨 책을 읽든, 모든 게 '역사책'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본론]에도, 음식이나 전쟁에도 역사가 깃들어 있었다. 문학이든 철학이든 결국 역사에서 시작하여 역사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보니, '태정태세문단세...'가 비단 조선 왕들의 계보만이 아니었고, [조선왕조실록]은 왕의 그저 그런 '본기'가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우리 역사가 아니라 기전체의 시초인 사마천 [사기]를 여러 번 읽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승자의 기록'일지라도 남아서 후세에 전하는 문장들이 일단은 '역사'였다. 역사의 숨은 맥락은 그 다음 이야기였다.

예전에는 조선 왕이 죽은 후 묘호에 쓰는 '조(祖)'와 '종(宗)'의 차이가 새왕조 개창자는 성을 갈았으니 '조'로, 이후 적장자나 직계가 이으면 '종'이 되다가 반정이나 방계가 이어지면 다시 '조'가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중 최근에 역사 교사 유정호 작가가 쓴 [1일 1페이지, 조선사 365](2021)를 보고 그 기원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조선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의 규정이었다. '조'와 '종'의 차이는 '공'과 '덕'의 차이였다. 
왕정국가에서 '왕'은 기본적으로 '덕'이 있어야 했다. 변변치 못한 자가 보위를 이어받아도 왕으로서 죽으면 후세로부터 '종'은 받았다. 개국을 하거나 반정을 성공하거나 전쟁과 같은 국난을 극복했으면 '조'가 붙었다. 예외는 있다. 조선 최초의 쿠데타 반정에 성공한 이방원이 '태종'이 된 것은 위 원칙이 틀을 잡기 전이었거나 형제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이방원 스스로가 '정통성'과 '덕'을 선호했을 수도, 그의 아들 세종이 그런 아버지의 뜻을 헤아렸을 수도 있겠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얼떨결에 왕이 된 중종은 이전 세조나 이후 인조처럼 '공'을 내세우기 보다는 왕위의 정통성에 촛점을 더 맞추고 싶어서 성종의 직계라는 사실을 더 강조했다고 한다. 조선 최초의 방계 출신 왕인 선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는 과정에서 조선을 쇠퇴의 길로 꺾어놓은 군주지만 그 스스로는 국난을 극복했다고 자평했다. 이후 광해군 때부터는 무능한 선왕을 선조로 칭하면서 '조가 종보다 좋다'는 인식이 강화되었단다. 왕정에서 말 뿐인 '덕'이 허위에 불과하다는 자기인식이 본격화된 것이겠다. 조선 초 [조선경국전]에서 정도전이 계획한 새로운 국가에서 애초에 '군주'나 '인주'가 내세울 것은 어차피 능력이나 실력이 아닌 혈연에 기반한 '덕' 밖에 없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창업군주로서 전지전능하게 포장되어야 했으나 그의 자손들이 모두가 능력자일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국가의 골간은 성리학의 '민본주의'로 무장한 사대부가 왕의 '덕'을 견제하고 보완하면서 국가를 운영하는 체제였다. 실제로 고려의 왕은 '조'가 없다. 탄탄한 사대부 관료주의 국가 조선에서 '조'는 나름의 '덕'을 다시 세우려는 사대부 관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왜란과 호란으로 조선이 기울어지기 시작한 원인은 성리학이 '민본주의'를 버린 이후였다. '계민수전'의 건국 초 토지공개념 정신이 사라지고 공정해야 할 과거시험은 부정했으며 대쪽 같아야 했던 사대부가 사리사욕으로 부패했을 때 조선왕조의 대다수 민중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이 피폐해졌다. 전쟁통에서도 구제받지 못한 다수에게 조선이라는 국가는 망해야 할 왕의 나라일 뿐이었을 게다. 당쟁이 서인 노론 독재로 끝나고 세도정치가 득세했던 조선 후기 1백년은 '민란의 시대'였다. 이런 역사의 흐름에서 왕권 강화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조선 최강의 '성리학 군주'가 되고자 했던 정조의 개혁 실패는 왕조가 기울어지는 역사의 필연이었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는 다수 민중의 혁명으로 왕의 목이 날아갔다. 
군주의 시대에 '덕'이나 '왕'으로 표현되던 '공공성'은 이미 다수 민중의 몫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내가 보는 조선은,
왕의 나라이기 전에 '민본주의'의 '공공성'을 이념으로 세운 '혁명'의 국가다. 
낡은 체제 고려를 뒤엎은 이 '반역'의 나라에서는 왕권 강화를 획책한 '반정'과 쿠데타가 끊임없이 일어났는데, 언제 쫓겨날까 두려워하던 왕과 국가를 집단운영하는 주체로서의 사대부 관료들의 체계적 공생체제였다.
일제강점기는 일단 차치하고 조선의 다음 단계는 더이상 왕의 '덕'이 아닌 다수 민중의 '공공성'에 기반한 '공화주의'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보는 조선은, 
우리 역사 '마지막 왕조'의 운명이었다.


"사관에게 요구되는 자질을 '삼장지재'라고 하는데, 역사 서술 능력인 '재(才)', 해박한 역사 지식인 '학(學)', 현실을 직시해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식(識)'이 그것이다."
- 같은책, <41. 사초와 사관, 역사를 기록하다>, 유정호.


[조선왕조실록]이 뛰어난 이유는 왕조차도 그 기록을 보거나 고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조선의 역사 편찬기구인 '춘추관'의 전임사관 8명은 왕실의 모든 일을 기록하고 평가했다. 따라서 이들 사관에게는 학식과 체력, 양심이 따랐다. 또한 '삼장지재(三長之才)'라 하여 '재(才), 학(學), 식(識)'을 기본으로 했다. 물론 권력자의 시각에 눈치가 쏠리기는 했겠지만 학식과 양심에 따라 소신있게 역사를 세세하게 기록했으며 후세가 조선의 역사를 돌아볼 때 가장 믿을 만한 기록이 되었다.


유정호 선생의 [1일 1페이지, 조선사 365]는 조선의 모든 것을 담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학술이 아닌 교양으로 조선 역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한 권만 있어도 충분할 정도다. 책의 사용법은 제목 그대로 곁에 두고 '하루 한 페이지' 씩 읽고 필요할 때 다시 찾아보는 '콘사이스 조선사 사전'이 알맞을 듯 하다. 약 380여 페이지라 금세 읽을 요량으로 파고들면 작은 글씨와 간략한 설명에 당황할 수 있겠다. 글씨 크기와 행간을 키우고 그림 몇 점 넣으면 6~7백 페이지 이상은 충분히 될 만한 분량과 내용이다. 
특히 노안으로 고생하기 시작하는 나이라면 너무 급하게 다 읽으려 하기 보다는 가까이 두고 '1일 1페이지' 사용법을 지키기를 권한다.

***

1. [1일 1페이지, 조선사 365], 유정호, <원앤원북스>, 2021.
2. [사대부시대의 사회사 - 조선의 계급,의식,정치,경제구조], 유승원, <역사비평사>, 2020.
3. [조선반역실록], 박영규, <김영사>, 2017.
4. [민란의 시대 - 조선의 마지막 100년], 이이화, <한겨레출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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