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소설의 계보학 - 탐정은 왜 귀족적인 백인남성인가
계정민 지음 / 소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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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변증법'과 '리얼리즘'
- [범죄소설의 계보학], 계정민, <소나무>, 2018.


어린 시절 친구의 집에 있던 '셜록 홈즈' 전집은 검은색 표지의 얇은 단편이 50권 정도의 한질을 이루고 있었다. 

1984년에 그리 친하지 않았던 같은 반 급우의 집으로 자주 놀러간 이유가 '84 태권브이' 책받침을 계속 보고 싶어서였다면, 1985년 즈음 학교도 달랐던 아주 어린 시절 친구 집에 자주 놀러간 건 오로지 검은색 표지의 '셜록 홈즈' 단편을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집에는 노란색 표지의 '세계문학전집'과 '세계위인전집' 각 50권씩 100권이 좁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당시 나는 '셜록 홈즈'의 신세계를 만나 '독서'라는 것을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사실 세계문학전집은 TV에서 방영하던 일본만화와 전집의 삽화 중심으로 건성건성 읽었을 뿐, 4학년 '독서반' 특활시간에는 6개월 내내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만 들고 갔음에도 결국 다 읽지도 못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방법을 당시의 어린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정확한 연도는 지금에 와서의 추정일 뿐, 내가 단편소설이나마 '책'이란 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게 된 건 오로지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덕분이었다. 이실직고 한다면, 친구가 잃어버린 셜록 홈즈 한 두 권은 내가 반납하지 않은 것이리라. 그 책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사뭇 궁금하다. 아마도 50권의 단편 중 엄선한 나만의 '베스트 컬렉션'이었겠다.

이후 오락실만 전전하던 내가 다시 '책'이란 걸 펼친 게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88년도의 애거서 크리스티 장편소설이었다. 동네 형의 어둑한 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해문출판사>의 추리소설 몇 권은 내 인생 최초로 완독한 장편소설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내 인생의 명작이다. 곁가지로 읽었던 엘러리 퀸의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또한 결코 잊을 수 없다.

내가 단편의 호수에서 물에 뜰 수 있도록 한 것은 코넌 도일의 '홈즈'였고, 장편의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도록 도와준 건 애거서 크리스티의 탐정 '포와로'와 '미스 마플'이었다. 아마도 지금의 나보다 젊었을 마약쟁이 스포츠맨 '셜록 홈즈'와 얼핏 내 나이 쯤일 멋진 콧수염의 키 작은 '에르퀼 포와로', 언제까지나 수다스럽게 뜨개질을 하는 노처녀 할머니로 남아 계신 '마플 양'은 내게는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나에게는 이들이야말로, 사회악을 응징하는 '정의'의 사도들이었다.

"나는 '뉴게이트 소설'의 전복성이 초기 자본주의 체제의 잔혹성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그리고 '뉴게이트 소설' 이후에 등장한 '(고전) 추리소설'은 '뉴게이트 소설'의 급진적인 흐름을 분쇄하고 되돌리려는 보수적인 움직임으로 파악했다. 추리소설은 지배계급에 대한 도전을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범죄에 대한 처벌을 통해 기존 체제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나는 추리소설이 '뉴게이트 소설'의 전복성을 무력화시키려는 지배계급의 입장과 함께 한다고 보았다."
- [범죄소설의 계보학], <머리말>, 계정민, 2018.

19세기 영국의 '실버-포크 소설'과 '댄디즘 소설'을 재조명한 계명대 영문학과 계정민 교수의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2021)에 관한 서평을 쓰다가 영문학사의 비주류 소설을 소개하는 저자의 연구에 이끌려 그의 2018년작 [범죄소설의 계보학]을 읽게 되었다. 역시 당대 소설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음에도 영문학사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다수가 잊혀진 '추리소설'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문학이 토대로 하는 사회적 배경에 관한 탄탄한 관점을 이 책에서부터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배경은 바로 '계급투쟁의 역사'다.

계정민 교수는 '추리소설'만을 다루지 않는다. 더 큰 범위로 '범죄소설'이라 분류되는 이 장르는 18세기 말과 20세기 초중반을 통과하면서 사회문화적 배경을 투영한다. 이 책의 제목 '범죄소설'의 '계보학'을 따라가는 영문학사의 여정이다.

1. '뉴게이트(New-gate) 소설' : '변증법'의 시작

"뉴게이트 소설의 부상은 형법 개혁운동으로 대표되던 변혁적 움직임과 함께했다. 뉴게이트 소설은 범죄가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기인하며 범죄자 개인에 대한 처벌은 부당한 계급적 탄압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럼으로써 범죄를 하류계급에서 주로 발생하는 전염성 강한 질병으로 정의하고 범죄의 박멸을 위해 범죄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의 필요성을 주장한 지배적 범죄담론을 전복시키려 한 것이다."
- [범죄소설의 계보학], <1. 뉴게이트 소설>, 계정민, 2018.

18세기 영국의 중죄인들이 수감된 '뉴게이트' 감옥에서 집행된 공개처형은 대중들에게는 큰 구경거리였다. 아마도 중세 이단자 화형식과 같이 법을 어긴 죄인에 대한 응징을 공개하면서 지배질서를 공고히 하고 대중들에게 공포와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장치였을 것이다. 1773년에는 이 사형수들의 전기를 [뉴게이트 캘린더]라는 제목으로 대중에게 배포했다. 지배질서에 도전하지 말라는 지배계급의 선전물이었겠지만, 시대는 프랑스 대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뉴게이트 캘린더]에서 다룬 중범죄자들은 19세기에 이르면 불워-리턴 같은 작가들에 의해 발표된 '뉴게이트 소설'을 통해 부당한 지배질서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그려진다. 대혁명으로 부상한 부르주아지에게 '사유재산'은 신을 대신했고 이를 침해하는 자는 무자비하게 처형되었다. 대혁명의 배신으로 버림받은 하류계급은 19세기 영국에서 형법 개정운동을 전개했고 '뉴게이트 소설'이 보여준 전복성의 배경은 '사유재산의 신성화'와 '잔혹한 형벌의 완화'라는 '계급투쟁'이었다. 
'뉴게이트 소설'은 범죄소설 계보학에서 '변증법'의 시작이었다.

2. '고전 추리소설' : '부정'의 단계

"추리소설에서 분석과 추론을 통해 범죄를 해결하여 사회체제를 수호하는 인물은, 하류계급 출신 경찰이 아니라 상류계급 출신 탐정인 것이다."
- [범죄소설의 계보학], <2. 추리소설>, 계정민, 2018.

'뉴게이트 소설'의 주인공은 단연 범죄자였다. 그러나 그 주인공들은 결코 지배체제를 변화시키지 못한 채 장렬히 처형당하거나 파멸한다. 영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꼽히는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는 '뉴게이트 소설'로 분류되지만 내용은 '전복성'과 '보수성'의 타협이었다. 초기 자본주의 빈민의 삶을 사실주의적으로 고발하면서 한편으로 주인공을 범죄의 소굴에서 구출한다. 이 과정에서 범죄자를 추적하고 단죄하는 '추리소설'의 씨앗을 내포하는데, 추리소설의 '변증법'에서 '부정'의 단계 또한 내포하는 맹아이기도 하다.

이제 이 '변증법'의 부정의 단계로서 '(고전) 추리소설'의 주인공인 '탐정'이 본격 등장한다. 우리가 아는 셜록 홈즈와 에르퀼 포와로, 미스 마플은 물론 디킨스의 연구자로서 [모르그가의 살인]이라는 최초의 '추리소설'을 쓴 에드거 앨런 포의 탐정 뒤팽은 모두 상류계급 출신이다. 이들이 백인남성 또는 미혼의 노처녀 할머니인 이유는 기존 지배계급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찰이나 여성 탐정처럼 '생계'가 아닌 '지적 유희'로써 범죄를 수사한다. 여성 탐정은 사회활동을 하는 본인을 비하하면서 결국 결혼을 통한 '가정의 천사'로의 은퇴를 꿈꾸는 반면 노처녀 할머니 탐정은 이런 혐의에서 벗어나 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 모리아티 교수가 잉글랜드에 격렬히 저항한 아일랜드인인 이유는 식민지 개척과 지배가 한창이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외국인에 대한 영국인들의 배제와 공포가 녹아있다. 실제로 작가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는 제국주의자였고 보수주의자였다. 그들은 상류계급을 옹호했고 식민지 출신 인도인들을 짐승화했으며 여성의 참정권을 반대했다. 그들의 소설 속 탐정들은 범인은 색출하되 결코 사회모순을 고발하지 않는다. '뉴게이트 소설'에서 사건의 전말을 고발하던 범죄자들은 이제 '(고전) 추리소설'에서는 탐정에게 일체의 발언권을 빼앗긴다. 
청소년기 나에게 추리소설 작가들이 가르쳐준 '정의'는 곧 지배질서의 다른 말이었다.
'(고전) 추리소설'은 범죄소설 계보학의 '변증법'에서 '부정'의 단계였던 것이다.

3. '하드보일드(Hard-boiled) 추리소설' : '부정'의 '부정'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서 탐정의 재현이 이전과 극명하게 달라진 것은, 외부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사회질서와 정의의 회복과는 거리가 먼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결말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고전추리소설에서는 탐정의 개입에 의해 혼란과 불의가 사라지고, 질서와 정의로의 이행으로 서사가 종결된다. 그러나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서는 탐정의 분투에 의해 개별범죄가 해결되어도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서는 다가올 거대한 불의와 혼돈에 대한 불안으로 서사가 종결되는 것이다."
- [범죄소설의 계보학], <3.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계정민, 2018.

무대는 1920년대 미국으로 넘어간다. 1차 세계대전으로 국제정치 권력관계는 재편되었고 세계 자본주의 패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 20세기 초 금융자본주의 시대 신흥 강대국 미국의 화려한 번영은 '재즈 시대'로 불렸고 유럽의 귀족적 탐정들은 신대륙의 생계형 터프가이 탐정들에게 바톤을 넘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로 대표되는 '하드보일드' 소설은 완숙된 계란노른자처럼 딱딱하고 비정하고 냉정한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리얼리즘'이다. 추리소설 또한 '부정의 부정'을 거쳐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이 되는데, 이 '변증법'은 잔혹한 현실 앞에서 '정-반-합'으로 완성되는 해겔식 '변증법'일 수 없었다. 끊임없이 부정되고 또 부정되는 '부정의 부정'이라는 과정 자체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주인공은 더이상 상류 계급이 아닌 거리의 터프가이 탐정과 이런 남성들을 성적으로 유혹하여 이득을 취하다가 결국 파멸하고 마는 여성악당인 '팜므 파탈'이다. 귀족적 향수가 잦아든 20세기 초 미국 '프롤레타리아' 탐정들은 시정잡배처럼 굴러먹다가 불굴의 의지로 사건은 해결하지만 역시나 '정의' 실현보다는 사적인 복수에 의존하고, 저자에 의하면 이들의 대적자로서 '팜므 파탈'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본가계급과 똑같다. 그러나 '하드보일드 소설'은 사회 절대악인 자본가계급 대신 그들을 닮은 하류계급 출신 '팜므 파탈'만 응징하고 만다. 사건이 해결되어도 자본가는 여전히 이익을 취하고 세상의 지배질서는 변함없다. 탐정의 모습이 '부정'되고 악당의 형상이 '부정'되지만 부조리한 세상이 궁극에 '부정'되지 않는 점은 '(고전) 추리소설'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종속적 여성 탐정으로 부각되던 젠더 문제는 '팜므 파탈'의 탐욕과 파멸로 인해 더 후퇴하기도 한다.

저자인 계정민 교수는 이러한 '범죄소설의 계보학'을 통해 '변증법'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이전 장르와 이후 장르 사이의 '대립("공격")'과 '타협("협상")'의 관계로 설명한다. 
18세기 부르주아 대혁명의 배경 속에서 등장한 '뉴게이트 소설'의 체제 전복성은 19세기 노동계급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배계급의 반격으로서 '(고전) 추리소설'을 유행시켰고 20세기 금융자본주의 패권을 배경으로 '정의' 실현 대신 가엾은 여성만을 파괴시키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로 전화된다. 

결국 이 추리소설의 '변증법'이 또 다시 어떻게 대립하고 타협하며 전환될 것인가는 '추리소설'이라는 '문학의 요충지'가 얼마나 시대를 사실적으로 반영하는가의 문제가 된다.

"범죄소설은 계급, 민족, 인종, 젠더를 향한 서로 다른 시각과 입장이 경합하고 충돌하고 타협하는 '문학의 요충지'로 존재해 왔다. '뉴게이트 소설', '(고전) 추리소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이라는 범죄소설의 흐름 속에서 뒤에 나타난 장르는 앞서 나온 장르에 대해 공격의 칼을 휘두르기도 했고, 협상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 [범죄소설의 계보학], <맺음말>, 계정민, 2018.

추리소설에서도 역시,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

- [범죄소설의 계보학], 계정민, <소나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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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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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고헤이의 '인류세의 [자본론]'
- [지속불가능 자본주의](2020) /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2017), 사이토 고헤이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완성할 수 없었다. 
1883년에 죽은 그가 1867년에 출간한 [자본론] 제1권은 '상품'이라는 '개별자'를 통해 '자본주의'의 거대한 생산체제라는 '보편자'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위대한 첫걸음이었다. 서술방식은 "개별은 보편"이라는 헤겔 논리학의 '변증법'이었다. 
1867년의 [자본론] 1권은 1848년 유럽 노동계급 혁명의 시기에 발표된 [공산당선언]을 분기점으로 하여 이전 '독일 이데올로기'나 '철학/경제학 초고' 시기의 '철학'적 단계와 단절되는 '과학'적 단계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그 준비단계는 1851년 망명지 영국의 대영도서관에서 작성된 마르크스의 24권 '런던노트'였다. 
마르크스는 미완의 발췌록과 노트를 남긴 채 저 세상으로 돌아갔고 그의 사후에 평생의 동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자본론] 2권(자본의 순환), 3권(자본의 총생산과 지대, 이윤 등), 그들의 후계자로 여겨지던 칼 카우츠키에 의해 4권에 해당되는 '잉여가치 학설사'로 출간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결코 완성될 수 없었다.


"자본주의가 지구를 부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신세(人新世/인류세:Anthropocene)'가 아니라 '자본세'라고 부르는게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연대하여 '자본의 전제(專制)'에서 인류의 유일한 고향 지구를 지켜낸다면, 그때는 긍정적인 의미로 인류의 새로운 시대를 '인신세'라 부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자본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한 '인신세의 자본론'이다."
- 사이토 고헤이,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마치며>, 2020.


일본의 젊은 마르크스주의 연구자 사이토 고헤이(1987~)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과 편지, 연구노트 등 일체 출간을 위해 'MEGA(마르크스-엥겔스 전집:Marx-Engels Gesamtausgabe)' 작업에 참여하는 학자다. 그가 독일에서 출간한 마르크스주의 철학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였다. [자본론]을 준비하던 마르크스의 방대한 연구노트와 발췌 등을 '훈고학'적으로 추척하여 마르크스가 말년에 기획하다가 미완으로 남긴 '생태사회주의'를 이어서 복원하려는 시도다. 이 논문의 영문판은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이란 부제를 달고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연구자에게 수여된다는 아이작 도이처상을 받았다고 한다. 
사이토 고헤이의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2017)는 박사논문이었거니와 마르크스의 초고들의 발췌를 기본으로 했으니 상당히 딱딱하고 문헌적이며 어찌보면 교조적이기까지 하다. 결론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비판했음에도 동일하게 '성장주의'였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말년에 자연과 인간의 원활한 '대사'와 교류를 기획했던 '생태주의'였으며 그러므로 기후위기의 시대에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지와 후계자에 의해 편집되고 요약되어 속간된 [자본론]이 아니라 당대부터 성장 제일주의였던 자본주의와 투쟁하던 '자연과학'이었던 생태주의 연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마르크스는 자신의 [자본론]을 완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본론] 연구를 이르는 '정치경제학 비판'은 그렇게 미완으로 끝났고, '생태사회주의'로서 그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이제 '기후위기'의 '인류세'에서 다시 살아난다. 2017년의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라는 딱딱한 논문을 벗어나 사이토 고헤이는 2020년에 [지속불가능 자본주의]라는 대중서를 냈는데, 그 부제는 '인신세의 자본론'이고 국역은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이다.

'인신세'는 사이토 고헤이의 일본식 작법인 듯 하다. 1995년에 노벨 화학상를 받은 파울 크뤼천이 썼다는 '인류세'를 지칭한다. 정해진 번역어도 없고 학문적으로도 확정되지 않은 명칭으로 지금의 신생대 중 인류에 의해 지구가 장악된 시기를 일컫는 일종의 비유적인 용어다. 번역자는 고헤이의 원문에 따라 '인신세'라 쓰나 내게는 '인류세'가 익숙하니, 사이토 고헤이의 [지속불가능 자본주의]는 결국 '인류세의 [자본론]'을 뜻한다. 수많은 마르크스주의 후계자들을 제치고 이 기후위기의 '인류세'에서 마르크스의 뒤를 이어 [자본론]을 쓰겠다는 젊은 학자의 자신감이 참으로 대단하다. 
그는 자본주의가 지구를 망친 지금의 '인류세'는 '자본세'라 불러야 마땅하나, 인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다시 인류와 자연이 원활한 교류를 해야 하므로 그냥 '인류세(인신세)'로 부르면서 자신이 연구한 말년의 마르크스 [자본론] 연구를 토대로 '탈성장 코뮤니즘'의 실천을 당장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학자지만 '이론'적 비판에 머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분석만 하고 있다가 지구 온도가 2~3도 이상 오르면 한 세대 이내 지구의 대부분은 사막화되고 지금처럼 소수의 독점자본가들만 살아남거나 여차하면 그 소수만 우주 밖으로 탈주하게 된다.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 민중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성장과 이윤을 위해 인간의 노동은 물론 근본적으로 지구와 자연을 끊임없이 비틀어짜고 착취하는 자본주의를 당장 뒤엎는 실천을 해야하며, 그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무기를 이미 '1868년 이후의' 마르크스가 말년에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쓰가 발표한 '3.5퍼센트 수치'는 '3.5%가 먼저 진심으로 실천하면 다수에 의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법칙이라는데, 우리는 이미 역사속 '민중항쟁'과 혁명을 통해 보아왔다. 사이토 고헤이가 예시한 전세계적 사례에서는 빠졌지만 우리의 2016년 촛불항쟁의 시초도 거의 '3.5%'였을 게다. 
그래서 사이토 고헤이의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이 말하는 당장의 실천 또한 기다릴 것 없이 '3.5%'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이뤄지는 마르크스 재해석의 핵심개념 중 하나는 '커먼(common)' 혹은 '공(共)'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커먼'이란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부(富)를 가리킨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라는 두 마르크스주의자가 [제국]이라는 책에서 제기하여 단숨에 유명해진 개념이다... '제3의 길'인 '커먼'은 수도, 전력, 주택, 의료, 교육 등을 '공공재'로 삼아서 사람들이 스스로 민주주의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한다."
- 사이토 고헤이,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4. '인신세'의 마르크스>, 2020.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에서 사이토 고헤이는 마르크스의 초고들을 추적한다. 1844년의 '파리노트'에서는 '소외' 개념을 중심으로 포이어바흐로부터 영향을 받은 '청년 헤겔학파'의 철학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노동'에 기초한 사회혁명의 '과학적 사회주의'를 기획한 1848년 유럽 노동계급 혁명의 정국에서 [공산당선언]으로 역사유물론의 기초를 잡았지만 현실의 혁명은 실패했고, 1849년 영국 망명 이후 작성된 1851년의 '런던노트'에서는 정치경제학에 관한 방대한 연구를 통해 '철학자'에서 '정치경제학자'로 진화한다. 자본주의 체제에 관한 과학적이고 비판적인 분석으로서 [자본론]은 자본주의 총생산 분석의 틀은 잡았으나 마르크스는 이 [자본론]의 기획을 한꺼번에 완성할 수 없었다. 인간의 합목적적 노동을 통해 생산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이중성과 그로 인한 노동의 '소외', 교환가치를 매개로 하면서 인적 관계를 물적 관계로 은폐하는 '물신화(물상화)'로 나타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노동으로 이어지는 인간과 자연과의 '물질대사'의 왜곡은 지구환경에 대한 자본주의적 약탈로 이어지지만 지구환경이 망한다 해도 결코 멈추지 않는 자본의 자기증식 경향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작업은 막히고 말았다. 그로 인해 마르크스는 '잉여가치'와 국가, 그리고 국제정치와 세계사를 아우르는 [자본론]의 대기획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이 기후위기 '인류세'에서는 더 이상 연구만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지구와 인류문명의 멸망으로 멈추기 전에 다수 대중의 '3.5%'부터 시작되는 당장의 실천으로 이 자본주의 체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자본론] 1권이 나온 다음해인 1868년 이후의 마르크스는 '자연과학'을 심도깊게 공부한다. 그는 '생태학'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으나 당시 그가 연구하던 '자연과학'은 '지대'에 관한 연구를 심화시키기 위해 참고하던 '농업학'이었다. 유스투스 본 리비히와 칼 니콜라우스 프라스라는 농학자들을 우리는 잘 모른다. 이들은 '인클로저' 운동를 비롯한 자본주의적 대량생산 농축산업에 의한 토지생산성 약탈을 우려했고 마르크스는 이들의 이론을 통해 자본주의가 자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통찰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자본론] 연구에서 "너무나 큰 이론적 전환"([지속불가능 자본주의], <4>)이 이루어졌고 그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미완으로 남았다. 따라서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엥겔스와 카우츠키가 남긴 그것을 넘어서 마르크스가 완성하지 못한 '인간과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다시금 잇는 실천에서 그 유산을 이어받아야 한다. 사이토 고헤이의 주장은 한가한 이론적 선택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인류세'에서 우리 다수대중에겐 다른 선택지도 없고 기다릴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의 '불평등'에 맞서 미국에서조차 젊은이들 과반수가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이 체제의 '지속성장'을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다. "먹고 사는 게 제일 우선"이라고 선전하던 이 자본주의 체제는 다수를, 특히 우리의 미래세대인 젊은이들을 궁핍의 나락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까지 모두 경제성장으로 번 돈으로 화성에 가서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자본주의적 희망은 그 실현 가능성이 너무도 희박하다. 그리하여 현재 자본주의가 이룬 경제성과를 배분하는 'FALC'도 등장했다. 아론 바스타니의 [완벽하게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선언(FALC)](2019)은 바로 자본주의적 공공재를 절대다수가 재전유하여 불평등 체제를 타파할 수 있다는 매우 낙관적인 전망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사이토 고헤이에 의하면 아론 바스타니의 주장은 그 바람직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과 '생산력(기술발전)'의 함정에 걸린 "가속주의라는 현실도피"([지속불가능 자본주의], <5>)에 불과하다. '노동의 종말'이나 '엔트로피 법칙' 따위로 '미래학자' 행세를 하는 제레미 리프킨 같은 학자가 내놓는 대안들이나 '그린 뉴딜' 또한 사이토 고헤이에 의하면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에 기반한 '가속주의' 또는 '기후 케인즈주의'로 분류된다.

사이토 고헤이에 의하면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이나 '생산력(기술) 발전'이 아니라 '탈성장'이며 다수들의 연대에 기반한 '연합체(association)'다. 지금의 성장으로도 다수 인류가 충분히 번영을 이루며 살 수 있으니 후진국(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자연과 노동력에 대한 선진국(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약탈과 착취를 멈추고 소수에 독점된 '커먼(common)'을 다수가 재전유하는 '연합'이 필요하다. 이야말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에서 말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다. '탈성장'을 지향하는 다수 개인들이 연합하여 지구가 망하든 말든 자본주의적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기만 하다가 안되면 지구를 떠나겠다는 소수의 발상에 강력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커먼(common)'이라는 용어 또한 정해진 번역어는 없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제국](1998), [어셈블리](2017)를 통해 다수대중인 '다중'(multitude/mass worker/people)'이 '공통적인 것(common)'을 재전유하는 '연합(association)'을 이야기한다. 즉 '커먼'을 더 많이 만들어 봐야 결국 소수가 독점하는 '결핍의 자본주의'를 벗어나, 현재의 '커먼'과 공공재를 그것을 만든 다수가 재전유하는 '풍요의 코뮤니즘'으로 이행시키는 열쇠는 '평등'과 '탈성장'을 공유하는 전세계적 연합체인 것이다. 
[공산당선언]에서 지향하는 '자/개/연(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의 현대화다.


"지금 사람들이 당사자로서 능동적으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영역이 남아 있다면 바로 '생산'일 것이다. 그러니 '변혁'을 형한 첫걸음은 '생산(노동)'에서 시작해야 한다."
- 사이토 고헤이,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7. '탈성장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한다>, 2020.


[21세기 자본]의 '자유주의'에서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참여사회주의'로 이행한 토마 피케티에 대한 사이토 고헤이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여기에 기후위기 문제에 기반한 '생태주의'를 결합하되, 피케티처럼 마르크스를 구닥다리로 보지 않고 지속적으로'현대화'시키는 당장의 실천을 위해 그 이론적 기초를 추적하는 것이 사이토 고헤이의 지적 여정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젊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쓰는 '인신세(인류세)의 [자본론]'의 결론은 '노동'과 '생산'에 여전히 기반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사용가치 경제로의 전환' : 자연에 대한 무한한 착취를 멈추기 위해 인간과 자연의 본래적 '물질대사'로서의 '사용가치'가 양적이고 '물신화(물상화)'된 '교환가치'보다 우선될 것.
2) '노동시간 단축' : '노동일' 단축과 '생산혁신'을 통해 '교환가치'의 양적 생산영역이 아닌 '사용가치'의 질적 생산영역인 여가노동(시간)을 더 많이 확보할 것.
3) '획일적인 분업폐지' : 노동자가 생산의 일부만이 아니라 생산과정 일체를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노동으로 만든 생산물을 함께 전유할 것.
4) '생산과정의 민주화' : 노동자 자주관리와 상호부조에 기초한 민주적인 생산과정은 '경제성장'의 덫에 빠지지 않는 '탈성장'의 기본 운영구조이므로 더디더라도 생산과정 일체를 민주화할 것.
5) '필수노동 중시' : '교환가치' 우선의 '물신화'를 극복하고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돌봄(감정)노동과 공공재 생산의 '필수노동'은 기계화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중시하고 지켜낼 것.


막연한가?
언제 어느 시절에도 '변혁'과 '혁명'은 그래 왔다. 그럼에도 '인류세'에서의 근본적인 전환을 위한 인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구환경의 운명을 책임지는 임무는 우주 먼 별에서 그랜다이저를 타고 온 '듀크프리드' 왕자나 소수 독점자본가와 정치권력이 아니라 화성으로 도망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절대다수에게 있다.

사이토 고헤이는 '소비주의'적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지만, 나부터 플라스틱 줄이기와 일회용품 안 쓰기 운동 등을 실천하면서 더 나아가 진지하게 '탈성장'과 다시금 '평등'을 곱씹어 봐야겠다.
[자본론]의 전체적인 윤곽은 잡았지만 인류와 자연과의 관계 복원에 머리를 싸맨 채 도서관에 처박혀 '자연과학(생태학)'과 게르만 '마르크공동체', 러시아의 '미르' 등과 같은 '지역공동체' 등을 공부하며 여전히 '런던노트'를 쓰던 1868년 이후의 마르크스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커피숍에서도 플라스틱 빨대는 받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쓰는 '인류세의 [자본론]'이다.

***

1.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2.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 비판](2017), 사이토 고헤이, 추선영 옮김, <두번째테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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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 비판
사이토 고헤이 지음, 추선영 옮김 / 두번째테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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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고헤이의 '인류세의 [자본론]'
- [지속불가능 자본주의](2020) /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2017), 사이토 고헤이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완성할 수 없었다. 
1883년에 죽은 그가 1867년에 출간한 [자본론] 제1권은 '상품'이라는 '개별자'를 통해 '자본주의'의 거대한 생산체제라는 '보편자'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위대한 첫걸음이었다. 서술방식은 "개별은 보편"이라는 헤겔 논리학의 '변증법'이었다. 
1867년의 [자본론] 1권은 1848년 유럽 노동계급 혁명의 시기에 발표된 [공산당선언]을 분기점으로 하여 이전 '독일 이데올로기'나 '철학/경제학 초고' 시기의 '철학'적 단계와 단절되는 '과학'적 단계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그 준비단계는 1851년 망명지 영국의 대영도서관에서 작성된 마르크스의 24권 '런던노트'였다. 
마르크스는 미완의 발췌록과 노트를 남긴 채 저 세상으로 돌아갔고 그의 사후에 평생의 동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자본론] 2권(자본의 순환), 3권(자본의 총생산과 지대, 이윤 등), 그들의 후계자로 여겨지던 칼 카우츠키에 의해 4권에 해당되는 '잉여가치 학설사'로 출간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결코 완성될 수 없었다.


"자본주의가 지구를 부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신세(人新世/인류세:Anthropocene)'가 아니라 '자본세'라고 부르는게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연대하여 '자본의 전제(專制)'에서 인류의 유일한 고향 지구를 지켜낸다면, 그때는 긍정적인 의미로 인류의 새로운 시대를 '인신세'라 부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자본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한 '인신세의 자본론'이다."
- 사이토 고헤이,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마치며>, 2020.


일본의 젊은 마르크스주의 연구자 사이토 고헤이(1987~)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과 편지, 연구노트 등 일체 출간을 위해 'MEGA(마르크스-엥겔스 전집:Marx-Engels Gesamtausgabe)' 작업에 참여하는 학자다. 그가 독일에서 출간한 마르크스주의 철학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였다. [자본론]을 준비하던 마르크스의 방대한 연구노트와 발췌 등을 '훈고학'적으로 추척하여 마르크스가 말년에 기획하다가 미완으로 남긴 '생태사회주의'를 이어서 복원하려는 시도다. 이 논문의 영문판은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이란 부제를 달고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연구자에게 수여된다는 아이작 도이처상을 받았다고 한다. 
사이토 고헤이의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2017)는 박사논문이었거니와 마르크스의 초고들의 발췌를 기본으로 했으니 상당히 딱딱하고 문헌적이며 어찌보면 교조적이기까지 하다. 결론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비판했음에도 동일하게 '성장주의'였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말년에 자연과 인간의 원활한 '대사'와 교류를 기획했던 '생태주의'였으며 그러므로 기후위기의 시대에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지와 후계자에 의해 편집되고 요약되어 속간된 [자본론]이 아니라 당대부터 성장 제일주의였던 자본주의와 투쟁하던 '자연과학'이었던 생태주의 연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마르크스는 자신의 [자본론]을 완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본론] 연구를 이르는 '정치경제학 비판'은 그렇게 미완으로 끝났고, '생태사회주의'로서 그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이제 '기후위기'의 '인류세'에서 다시 살아난다. 2017년의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라는 딱딱한 논문을 벗어나 사이토 고헤이는 2020년에 [지속불가능 자본주의]라는 대중서를 냈는데, 그 부제는 '인신세의 자본론'이고 국역은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이다.

'인신세'는 사이토 고헤이의 일본식 작법인 듯 하다. 1995년에 노벨 화학상를 받은 파울 크뤼천이 썼다는 '인류세'를 지칭한다. 정해진 번역어도 없고 학문적으로도 확정되지 않은 명칭으로 지금의 신생대 중 인류에 의해 지구가 장악된 시기를 일컫는 일종의 비유적인 용어다. 번역자는 고헤이의 원문에 따라 '인신세'라 쓰나 내게는 '인류세'가 익숙하니, 사이토 고헤이의 [지속불가능 자본주의]는 결국 '인류세의 [자본론]'을 뜻한다. 수많은 마르크스주의 후계자들을 제치고 이 기후위기의 '인류세'에서 마르크스의 뒤를 이어 [자본론]을 쓰겠다는 젊은 학자의 자신감이 참으로 대단하다. 
그는 자본주의가 지구를 망친 지금의 '인류세'는 '자본세'라 불러야 마땅하나, 인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다시 인류와 자연이 원활한 교류를 해야 하므로 그냥 '인류세(인신세)'로 부르면서 자신이 연구한 말년의 마르크스 [자본론] 연구를 토대로 '탈성장 코뮤니즘'의 실천을 당장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학자지만 '이론'적 비판에 머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분석만 하고 있다가 지구 온도가 2~3도 이상 오르면 한 세대 이내 지구의 대부분은 사막화되고 지금처럼 소수의 독점자본가들만 살아남거나 여차하면 그 소수만 우주 밖으로 탈주하게 된다.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 민중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성장과 이윤을 위해 인간의 노동은 물론 근본적으로 지구와 자연을 끊임없이 비틀어짜고 착취하는 자본주의를 당장 뒤엎는 실천을 해야하며, 그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무기를 이미 '1868년 이후의' 마르크스가 말년에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쓰가 발표한 '3.5퍼센트 수치'는 '3.5%가 먼저 진심으로 실천하면 다수에 의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법칙이라는데, 우리는 이미 역사속 '민중항쟁'과 혁명을 통해 보아왔다. 사이토 고헤이가 예시한 전세계적 사례에서는 빠졌지만 우리의 2016년 촛불항쟁의 시초도 거의 '3.5%'였을 게다. 
그래서 사이토 고헤이의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이 말하는 당장의 실천 또한 기다릴 것 없이 '3.5%'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이뤄지는 마르크스 재해석의 핵심개념 중 하나는 '커먼(common)' 혹은 '공(共)'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커먼'이란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부(富)를 가리킨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라는 두 마르크스주의자가 [제국]이라는 책에서 제기하여 단숨에 유명해진 개념이다... '제3의 길'인 '커먼'은 수도, 전력, 주택, 의료, 교육 등을 '공공재'로 삼아서 사람들이 스스로 민주주의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한다."
- 사이토 고헤이,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4. '인신세'의 마르크스>, 2020.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에서 사이토 고헤이는 마르크스의 초고들을 추적한다. 1844년의 '파리노트'에서는 '소외' 개념을 중심으로 포이어바흐로부터 영향을 받은 '청년 헤겔학파'의 철학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노동'에 기초한 사회혁명의 '과학적 사회주의'를 기획한 1848년 유럽 노동계급 혁명의 정국에서 [공산당선언]으로 역사유물론의 기초를 잡았지만 현실의 혁명은 실패했고, 1849년 영국 망명 이후 작성된 1851년의 '런던노트'에서는 정치경제학에 관한 방대한 연구를 통해 '철학자'에서 '정치경제학자'로 진화한다. 자본주의 체제에 관한 과학적이고 비판적인 분석으로서 [자본론]은 자본주의 총생산 분석의 틀은 잡았으나 마르크스는 이 [자본론]의 기획을 한꺼번에 완성할 수 없었다. 인간의 합목적적 노동을 통해 생산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이중성과 그로 인한 노동의 '소외', 교환가치를 매개로 하면서 인적 관계를 물적 관계로 은폐하는 '물신화(물상화)'로 나타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노동으로 이어지는 인간과 자연과의 '물질대사'의 왜곡은 지구환경에 대한 자본주의적 약탈로 이어지지만 지구환경이 망한다 해도 결코 멈추지 않는 자본의 자기증식 경향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작업은 막히고 말았다. 그로 인해 마르크스는 '잉여가치'와 국가, 그리고 국제정치와 세계사를 아우르는 [자본론]의 대기획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이 기후위기 '인류세'에서는 더 이상 연구만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지구와 인류문명의 멸망으로 멈추기 전에 다수 대중의 '3.5%'부터 시작되는 당장의 실천으로 이 자본주의 체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자본론] 1권이 나온 다음해인 1868년 이후의 마르크스는 '자연과학'을 심도깊게 공부한다. 그는 '생태학'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으나 당시 그가 연구하던 '자연과학'은 '지대'에 관한 연구를 심화시키기 위해 참고하던 '농업학'이었다. 유스투스 본 리비히와 칼 니콜라우스 프라스라는 농학자들을 우리는 잘 모른다. 이들은 '인클로저' 운동를 비롯한 자본주의적 대량생산 농축산업에 의한 토지생산성 약탈을 우려했고 마르크스는 이들의 이론을 통해 자본주의가 자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통찰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자본론] 연구에서 "너무나 큰 이론적 전환"([지속불가능 자본주의], <4>)이 이루어졌고 그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미완으로 남았다. 따라서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엥겔스와 카우츠키가 남긴 그것을 넘어서 마르크스가 완성하지 못한 '인간과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다시금 잇는 실천에서 그 유산을 이어받아야 한다. 사이토 고헤이의 주장은 한가한 이론적 선택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인류세'에서 우리 다수대중에겐 다른 선택지도 없고 기다릴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의 '불평등'에 맞서 미국에서조차 젊은이들 과반수가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이 체제의 '지속성장'을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다. "먹고 사는 게 제일 우선"이라고 선전하던 이 자본주의 체제는 다수를, 특히 우리의 미래세대인 젊은이들을 궁핍의 나락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까지 모두 경제성장으로 번 돈으로 화성에 가서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자본주의적 희망은 그 실현 가능성이 너무도 희박하다. 그리하여 현재 자본주의가 이룬 경제성과를 배분하는 'FALC'도 등장했다. 아론 바스타니의 [완벽하게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선언(FALC)](2019)은 바로 자본주의적 공공재를 절대다수가 재전유하여 불평등 체제를 타파할 수 있다는 매우 낙관적인 전망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사이토 고헤이에 의하면 아론 바스타니의 주장은 그 바람직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과 '생산력(기술발전)'의 함정에 걸린 "가속주의라는 현실도피"([지속불가능 자본주의], <5>)에 불과하다. '노동의 종말'이나 '엔트로피 법칙' 따위로 '미래학자' 행세를 하는 제레미 리프킨 같은 학자가 내놓는 대안들이나 '그린 뉴딜' 또한 사이토 고헤이에 의하면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에 기반한 '가속주의' 또는 '기후 케인즈주의'로 분류된다.

사이토 고헤이에 의하면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이나 '생산력(기술) 발전'이 아니라 '탈성장'이며 다수들의 연대에 기반한 '연합체(association)'다. 지금의 성장으로도 다수 인류가 충분히 번영을 이루며 살 수 있으니 후진국(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자연과 노동력에 대한 선진국(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약탈과 착취를 멈추고 소수에 독점된 '커먼(common)'을 다수가 재전유하는 '연합'이 필요하다. 이야말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에서 말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다. '탈성장'을 지향하는 다수 개인들이 연합하여 지구가 망하든 말든 자본주의적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기만 하다가 안되면 지구를 떠나겠다는 소수의 발상에 강력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커먼(common)'이라는 용어 또한 정해진 번역어는 없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제국](1998), [어셈블리](2017)를 통해 다수대중인 '다중'(multitude/mass worker/people)'이 '공통적인 것(common)'을 재전유하는 '연합(association)'을 이야기한다. 즉 '커먼'을 더 많이 만들어 봐야 결국 소수가 독점하는 '결핍의 자본주의'를 벗어나, 현재의 '커먼'과 공공재를 그것을 만든 다수가 재전유하는 '풍요의 코뮤니즘'으로 이행시키는 열쇠는 '평등'과 '탈성장'을 공유하는 전세계적 연합체인 것이다. 
[공산당선언]에서 지향하는 '자/개/연(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의 현대화다.


"지금 사람들이 당사자로서 능동적으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영역이 남아 있다면 바로 '생산'일 것이다. 그러니 '변혁'을 형한 첫걸음은 '생산(노동)'에서 시작해야 한다."
- 사이토 고헤이,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7. '탈성장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한다>, 2020.


[21세기 자본]의 '자유주의'에서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참여사회주의'로 이행한 토마 피케티에 대한 사이토 고헤이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여기에 기후위기 문제에 기반한 '생태주의'를 결합하되, 피케티처럼 마르크스를 구닥다리로 보지 않고 지속적으로'현대화'시키는 당장의 실천을 위해 그 이론적 기초를 추적하는 것이 사이토 고헤이의 지적 여정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젊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쓰는 '인신세(인류세)의 [자본론]'의 결론은 '노동'과 '생산'에 여전히 기반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사용가치 경제로의 전환' : 자연에 대한 무한한 착취를 멈추기 위해 인간과 자연의 본래적 '물질대사'로서의 '사용가치'가 양적이고 '물신화(물상화)'된 '교환가치'보다 우선될 것.
2) '노동시간 단축' : '노동일' 단축과 '생산혁신'을 통해 '교환가치'의 양적 생산영역이 아닌 '사용가치'의 질적 생산영역인 여가노동(시간)을 더 많이 확보할 것.
3) '획일적인 분업폐지' : 노동자가 생산의 일부만이 아니라 생산과정 일체를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노동으로 만든 생산물을 함께 전유할 것.
4) '생산과정의 민주화' : 노동자 자주관리와 상호부조에 기초한 민주적인 생산과정은 '경제성장'의 덫에 빠지지 않는 '탈성장'의 기본 운영구조이므로 더디더라도 생산과정 일체를 민주화할 것.
5) '필수노동 중시' : '교환가치' 우선의 '물신화'를 극복하고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돌봄(감정)노동과 공공재 생산의 '필수노동'은 기계화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중시하고 지켜낼 것.


막연한가?
언제 어느 시절에도 '변혁'과 '혁명'은 그래 왔다. 그럼에도 '인류세'에서의 근본적인 전환을 위한 인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구환경의 운명을 책임지는 임무는 우주 먼 별에서 그랜다이저를 타고 온 '듀크프리드' 왕자나 소수 독점자본가와 정치권력이 아니라 화성으로 도망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절대다수에게 있다.

사이토 고헤이는 '소비주의'적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지만, 나부터 플라스틱 줄이기와 일회용품 안 쓰기 운동 등을 실천하면서 더 나아가 진지하게 '탈성장'과 다시금 '평등'을 곱씹어 봐야겠다.
[자본론]의 전체적인 윤곽은 잡았지만 인류와 자연과의 관계 복원에 머리를 싸맨 채 도서관에 처박혀 '자연과학(생태학)'과 게르만 '마르크공동체', 러시아의 '미르' 등과 같은 '지역공동체' 등을 공부하며 여전히 '런던노트'를 쓰던 1868년 이후의 마르크스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커피숍에서도 플라스틱 빨대는 받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쓰는 '인류세의 [자본론]'이다.

***

1.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2.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 비판](2017), 사이토 고헤이, 추선영 옮김, <두번째테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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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2 한길그레이트북스 64
게오르크 W.F. 헤겔 지음, 임석진 옮김 / 한길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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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을 읽던 시간 : 1997년 가을
- [정신현상학](1806), G.W.F. Hegel, 임석진 옮김, <지식산업사>, 1997.


1.

"말하자면 이제 '의식'은 오직 자기 자신을 음미하고 검증하는 것이라고 할 때 바로 이 점에 있어서도 우리는 순수한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기만 하면 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의식'은 한편으로는 '대상'의, '대상'을 향한 '의식'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자기 자신의, 자기 자신에만 관여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 G.W.F. Hegel, [정신현상학], <서론>, 1806.


그 해 여름이 더웠던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해 12월이면 전역이었고, 전 해 가을에는 생전 처음 '사랑'이란 걸 시작한 터였기에, 스물다섯 내 청춘은 가장 뜨거웠을 거란 기억만이 남은, 
1997년의 늦은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독일 사변철학을 완성했다는 19세기 '객관적 관념론' 철학자 헤겔(Georg W. F. Hegel)의 [정신현상학]을 사서 보내달라고 보낸 편지의 수신인 미선이는 이제 더 이상 나의 학교 후배가 아니었다. 
1996년 10월, 상병 진급휴가 복귀 전날 새벽까지 손을 잡고 함께 별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구박하고 골려먹던 대학 2년 후배였다. 하지만 '취중진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한 술취한 군바리의 사랑고백에 흔쾌히 응해준 그날 밤부터 미선이는 나의 실질적 '첫사랑'이 되었다. 그건 사실, 두 사람이 동의한 '객관적' 현상부터의 이야기였고, 나의 '주관적' 의식 속에서는 아마도 오래 전부터 그녀가 줄곧 떠나지 않은 터였다. 신병훈련소에서 빡세게 구르거나 자대배치 후 야간보초를 설 때 온통 내 머릿속에는 '자주국방'이나 '멸공방첩'이 아닌 소주 한 잔과 그녀 뿐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싫던 군대가 아니었다면 헤겔 철학의 원전인 [정신현상학] 따위는 읽을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게다. 헤겔의 거꾸로 물구나무 선 '변증법'은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유물변증법)'으로 150년 전에 바로 세워진지 오래고,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으로 완성된 19세기 독일 사변철학은 부르주아의 유산일 뿐, 진정한 철학인 '유물론'의 유산은 엥겔스에 의하면 이미 19세기에 독일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이 물려받은지 오래였다. 엥겔스는 아예 내친 김에 1888년에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을 선언했다. 1분에 5백타 이상 치는 한글타자 실력으로 운좋게 사령부처 행정병 보직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옆 공병대로만 갔어도 나는 공구리 치고 삽질하며 짬밥 더 먹기 위한 전우들과의 생존투쟁에 치어 철학책 따윈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역시 돌아보면 인생이란 '우연'으로 점철된 거 아니면, 헤겔의 아이였던 '의식'이라는 꼬마가 '이성의 간지(奸智:간교한 지혜)'에 의한 길고 긴 여행을 통해 '절대정신'이라는 궁극의 '일자(一者)'를 만나는 '필연'의 과정일 터였다.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며, '이성'적인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썼다는데, 그에게 '현실'은 '이성의 간지'에 의해 '절대정신'이 궁극에 실현되는 '필연'의 과정이었다. [정신현상학]으로 시작된 그의 방대한 세계관은 '개념'의 변증법적 운동으로서 [대논리학]으로, '법철학'과 '골상학', '미학'과 '역사철학'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순환되고 확장되었다. 어쨌든, '현실'이란 그게 무엇이었든 스물다섯의 한 젊은이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중년의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세상 모든 철학적 이치를 다 안다고 자부하던 이십대의 나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의하면 이제 겨우 '2장' 자기의식의 즉자성을 지나 대자적 관계에 접어들어 '이성'의 '3장'에 들어선 '의식'이라는 작은 아이였다.


헤겔이 주저 [정신현상학]을 탈고한 때는 그가 독일에 나타난 나폴레옹을 보고는 "저 분이야말로 말을 탄 '절대정신'이다"라고 일갈한 그날 밤이란다. 오래전부터 철학의 주체인 '의식'이 절대적 일자로서 '절대정신'을 만나 그야말로 신과 같이 절대적인 '학(學)적 지식'이 되는 철학적 여정을 고민했을 헤겔이 그 일단의 철학 프로그램을 후다닥 완성한 순간이었다. 18~19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근대주의'를 접했던 당대의 혁신적 '모더니즘' 철학자 헤겔에게 지적 혁명은 철학과 종교가 결국은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성'적 논증이었다. 헤겔로 인해 철학은 '주관적 관념론'을 벗어나 세상의 운동원리인 '변증법'과 일치하는 거대한 '객관적' 세계관이 되었다. 물론 마르크스에 의하면 '거꾸로 선' 관념론자였지만. 
[정신현상학]으로 사상의 개관을 마친 헤겔은 '의식'이 아닌 '개념'의 동일한 여정을 그리는 [(대/大)논리학]을 완성하고 또한 마지막에 같은 논리로 돌아가는 '역사철학'까지 진격하는데, 과연 이 거대한 일관성의 철학자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서양 철학사에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대(大)사상가였다.

나중에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세기를 넘긴 장대한 '5년 연애'를 얘기하는 나에게 "웃기지 말라. 3년도 안된다"고 말하던 그녀는 나름의 셈법이 있었나 본데, 아무튼 새롭게 만난지 10개월이 지나는 시점에 생뚱맞게 '100일 기념(?)'으로 미선이는 [정신현상학] 두 권을 소포로 부치면서 "성경책만큼이나 빡빡한 이 두 권의 책을 보기에는 100일은 커녕 1000일도 모자랄 듯..."이라고 앞 속지에 썼다. 아마도 '니 제대할 때까지 읽는다고 다 보겠느냐'는 의구심이었겠지만, 미선이는 결코 사령부 민심처 행정병의 남아도는 시간까지는 알 수 없었으리라. 마르크스가 엄청 욕해대면서도 영향을 크게 받았고 넘어서야 했던 철학의 큰 산,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나는 1차 세계대전의 전야였던 1914년의 좌파 사회민주당 의원들마저 '조국'의 제국주의 전쟁공채에 찬성표를 던지던 암울한 유럽 정세에서의 레닌이 하라는 혁명은 하지 않고 바로 앞 선배인 마르크스처럼 대영도서관에 짱박힌 채 헤겔의 [대논리학]을 읽고 [철학노트]로 정리했을 그 마음으로 열심히 줄치고 메모하며 읽었다. 


2.

"이제 '이성'은 그 자신이 곧 전체를 포괄하는 실재라는 데 대한 확신이 진리의 단계로까지 고양되며 또한 자기자신을 바로 자기의 세계로, 그리고 다시 이 세계를 자기자신의 세계로 의식하는 가운데 스스로 '정신'이 된다... 이제 (즉자대자적 존재로서의) '의식'으로서의 구체성을 띠면서 동시에 스스로 자기자신을 표상하는 즉자대자적 실재는 다름아닌 '정신'인 것이다."
- Hegel, [정신현상학], <3장 이성, 6절 정신>, 1806.


'현상학(現象學/phenomenology)'은 사물의 '현상'적 흐름을 추적하는 서술기법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필연'이라는 '이성의 간지'를 부리는 '절대정신'은 절대로 '의식'의 운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그저 지옥에서 단테를 안내하던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도 같이 "순수한 방관자"(같은책, <서론>)이자 관찰자인 헤겔의 손을 잡고 높은 곳에 서서 '의식'(1장)이라는 작은 아이가 스스로를 깨닫는 즉자적 '자기의식'(2장)을 거쳐 타자와의 관계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이성'(3장)으로 발전하는 현상의 궤적을 묵묵히 따라간다. '의식'에서 '이성'으로 성장하는 이 철학적 아이는 '정신'(3장 6절)과 '종교'(3장 7절)를 거치며 '절대정신' 또는 '절대지'를 만나는데, 이 궁극의 단계에서는 '이성'이라는 아이 자신이 곧 '절대이성'이 된다. '즉자'(의식)-'대자'(이성)-'즉자대자'(절대정신)로 완성되는 헤겔 철학은 후대에 의해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도식화되었고 이러한 완성의 체계를 비판한 마르크스는 물질로부터 시작하는 유물론을 역시 변증법적으로 완성하나 결국 말년의 주저 [자본론]에서 그렇게 비판하던 헤겔의 '현상학'적 서술방식을 따른다. 즉, '상품'이라는 작은 아이가 '생산'과 '노동착취', 그리고 '잉여가치'와 교환 및 확대재생산 등의 형태와 과정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생산'이라는 거대한 체제의 비밀을 폭로하는 과정이 마르크스 [자본론]의 서술체계다. 
19세기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방식으로 헤겔을 뒤집었고, 20세기 레닌은 그런 헤겔의 [대논리학]의 '개념 운동'을 통해 역설적으로 헤겔의 '유물론'적 측면을 발견하면서 [철학노트]를 작성했다. 혁명을 준비하던 레닌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물구나무 선' 철학 스승 헤겔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스물다섯의 나 또한 포천의 군부대 구석에서 하라는 '자주국방'은 아랑곳 없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팠다.


3.

"실제로 지(知)의 근원을 이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적작용을 하는 보편적 요소일 뿐더러 이것이 궁극적 의미에서는 다름아닌 '절대정신'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절대정신'은 신앙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순수의식이나 혹은 사유한다는 것 그 자체로서만 본다면 오직 절대적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자기의식'으로 보면 이것은 바로 자기에 관한 지(知)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 Hegel, [정신현상학], <3장 이성, 6절 정신>, 1806.


이십대 초반의 나는 '소설가'를 꿈꾸었고,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했으나, 사실 '연애'를 하고 싶었다. 입대 후 일년 간 짧은 머리카락만 쥐어 뜯다가 휴가 때 구박은 했지만 귀엽게 아끼던 후배 미선이한테 다가갔고 전역을 하고도 그 후로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에게 상처만 주다가 결국 헤어졌다. 
아프기도 했고 당시 나로서는 어쩔 수 없기도 했던 미안함이 가장 크지만, 다시 그 때로 되돌아 갈 수 있다 해도 나로서는 더 잘해볼 도리는 없었을 게다. 

그 당시 나의 '절대정신'이었던 그녀는 결국 그녀를 통해 투영했던 나 자신이라는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기의식'이 타자를 만나 대자적 관계를 맺으며 '절대정신'으로 성장하는 잊지 못할 청춘의 과정. 
미안함에도 가끔 그 때가 문득 떠오른다면, 그 당시 모자랐던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상념이리라.

헤겔을 읽던 시간,
1997년 가을의 이야기다.

***

1. [정신현상학](1806), G.W.F.Hegel, 임석진 옮김,<지식산업사>, 1997.
2. [자본론] 1권(1867), K. Marx,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89~1996.
3.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4. [철학노트](1914), V.I. Lenin,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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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1 한길그레이트북스 63
게오르크 W.F. 헤겔 지음, 임석진 옮김 / 한길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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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을 읽던 시간 : 1997년 가을
- [정신현상학](1806), G.W.F. Hegel, 임석진 옮김, <지식산업사>, 1997.


1.

"말하자면 이제 '의식'은 오직 자기 자신을 음미하고 검증하는 것이라고 할 때 바로 이 점에 있어서도 우리는 순수한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기만 하면 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의식'은 한편으로는 '대상'의, '대상'을 향한 '의식'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자기 자신의, 자기 자신에만 관여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 G.W.F. Hegel, [정신현상학], <서론>, 1806.


그 해 여름이 더웠던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해 12월이면 전역이었고, 전 해 가을에는 생전 처음 '사랑'이란 걸 시작한 터였기에, 스물다섯 내 청춘은 가장 뜨거웠을 거란 기억만이 남은, 
1997년의 늦은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독일 사변철학을 완성했다는 19세기 '객관적 관념론' 철학자 헤겔(Georg W. F. Hegel)의 [정신현상학]을 사서 보내달라고 보낸 편지의 수신인 미선이는 이제 더 이상 나의 학교 후배가 아니었다. 
1996년 10월, 상병 진급휴가 복귀 전날 새벽까지 손을 잡고 함께 별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구박하고 골려먹던 대학 2년 후배였다. 하지만 '취중진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한 술취한 군바리의 사랑고백에 흔쾌히 응해준 그날 밤부터 미선이는 나의 실질적 '첫사랑'이 되었다. 그건 사실, 두 사람이 동의한 '객관적' 현상부터의 이야기였고, 나의 '주관적' 의식 속에서는 아마도 오래 전부터 그녀가 줄곧 떠나지 않은 터였다. 신병훈련소에서 빡세게 구르거나 자대배치 후 야간보초를 설 때 온통 내 머릿속에는 '자주국방'이나 '멸공방첩'이 아닌 소주 한 잔과 그녀 뿐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싫던 군대가 아니었다면 헤겔 철학의 원전인 [정신현상학] 따위는 읽을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게다. 헤겔의 거꾸로 물구나무 선 '변증법'은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유물변증법)'으로 150년 전에 바로 세워진지 오래고,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으로 완성된 19세기 독일 사변철학은 부르주아의 유산일 뿐, 진정한 철학인 '유물론'의 유산은 엥겔스에 의하면 이미 19세기에 독일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이 물려받은지 오래였다. 엥겔스는 아예 내친 김에 1888년에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을 선언했다. 1분에 5백타 이상 치는 한글타자 실력으로 운좋게 사령부처 행정병 보직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옆 공병대로만 갔어도 나는 공구리 치고 삽질하며 짬밥 더 먹기 위한 전우들과의 생존투쟁에 치어 철학책 따윈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역시 돌아보면 인생이란 '우연'으로 점철된 거 아니면, 헤겔의 아이였던 '의식'이라는 꼬마가 '이성의 간지(奸智:간교한 지혜)'에 의한 길고 긴 여행을 통해 '절대정신'이라는 궁극의 '일자(一者)'를 만나는 '필연'의 과정일 터였다.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며, '이성'적인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썼다는데, 그에게 '현실'은 '이성의 간지'에 의해 '절대정신'이 궁극에 실현되는 '필연'의 과정이었다. [정신현상학]으로 시작된 그의 방대한 세계관은 '개념'의 변증법적 운동으로서 [대논리학]으로, '법철학'과 '골상학', '미학'과 '역사철학'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순환되고 확장되었다. 어쨌든, '현실'이란 그게 무엇이었든 스물다섯의 한 젊은이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중년의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세상 모든 철학적 이치를 다 안다고 자부하던 이십대의 나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의하면 이제 겨우 '2장' 자기의식의 즉자성을 지나 대자적 관계에 접어들어 '이성'의 '3장'에 들어선 '의식'이라는 작은 아이였다.


헤겔이 주저 [정신현상학]을 탈고한 때는 그가 독일에 나타난 나폴레옹을 보고는 "저 분이야말로 말을 탄 '절대정신'이다"라고 일갈한 그날 밤이란다. 오래전부터 철학의 주체인 '의식'이 절대적 일자로서 '절대정신'을 만나 그야말로 신과 같이 절대적인 '학(學)적 지식'이 되는 철학적 여정을 고민했을 헤겔이 그 일단의 철학 프로그램을 후다닥 완성한 순간이었다. 18~19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근대주의'를 접했던 당대의 혁신적 '모더니즘' 철학자 헤겔에게 지적 혁명은 철학과 종교가 결국은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성'적 논증이었다. 헤겔로 인해 철학은 '주관적 관념론'을 벗어나 세상의 운동원리인 '변증법'과 일치하는 거대한 '객관적' 세계관이 되었다. 물론 마르크스에 의하면 '거꾸로 선' 관념론자였지만. 
[정신현상학]으로 사상의 개관을 마친 헤겔은 '의식'이 아닌 '개념'의 동일한 여정을 그리는 [(대/大)논리학]을 완성하고 또한 마지막에 같은 논리로 돌아가는 '역사철학'까지 진격하는데, 과연 이 거대한 일관성의 철학자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서양 철학사에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대(大)사상가였다.

나중에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세기를 넘긴 장대한 '5년 연애'를 얘기하는 나에게 "웃기지 말라. 3년도 안된다"고 말하던 그녀는 나름의 셈법이 있었나 본데, 아무튼 새롭게 만난지 10개월이 지나는 시점에 생뚱맞게 '100일 기념(?)'으로 미선이는 [정신현상학] 두 권을 소포로 부치면서 "성경책만큼이나 빡빡한 이 두 권의 책을 보기에는 100일은 커녕 1000일도 모자랄 듯..."이라고 앞 속지에 썼다. 아마도 '니 제대할 때까지 읽는다고 다 보겠느냐'는 의구심이었겠지만, 미선이는 결코 사령부 민심처 행정병의 남아도는 시간까지는 알 수 없었으리라. 마르크스가 엄청 욕해대면서도 영향을 크게 받았고 넘어서야 했던 철학의 큰 산,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나는 1차 세계대전의 전야였던 1914년의 좌파 사회민주당 의원들마저 '조국'의 제국주의 전쟁공채에 찬성표를 던지던 암울한 유럽 정세에서의 레닌이 하라는 혁명은 하지 않고 바로 앞 선배인 마르크스처럼 대영도서관에 짱박힌 채 헤겔의 [대논리학]을 읽고 [철학노트]로 정리했을 그 마음으로 열심히 줄치고 메모하며 읽었다. 


2.

"이제 '이성'은 그 자신이 곧 전체를 포괄하는 실재라는 데 대한 확신이 진리의 단계로까지 고양되며 또한 자기자신을 바로 자기의 세계로, 그리고 다시 이 세계를 자기자신의 세계로 의식하는 가운데 스스로 '정신'이 된다... 이제 (즉자대자적 존재로서의) '의식'으로서의 구체성을 띠면서 동시에 스스로 자기자신을 표상하는 즉자대자적 실재는 다름아닌 '정신'인 것이다."
- Hegel, [정신현상학], <3장 이성, 6절 정신>, 1806.


'현상학(現象學/phenomenology)'은 사물의 '현상'적 흐름을 추적하는 서술기법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필연'이라는 '이성의 간지'를 부리는 '절대정신'은 절대로 '의식'의 운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그저 지옥에서 단테를 안내하던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도 같이 "순수한 방관자"(같은책, <서론>)이자 관찰자인 헤겔의 손을 잡고 높은 곳에 서서 '의식'(1장)이라는 작은 아이가 스스로를 깨닫는 즉자적 '자기의식'(2장)을 거쳐 타자와의 관계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이성'(3장)으로 발전하는 현상의 궤적을 묵묵히 따라간다. '의식'에서 '이성'으로 성장하는 이 철학적 아이는 '정신'(3장 6절)과 '종교'(3장 7절)를 거치며 '절대정신' 또는 '절대지'를 만나는데, 이 궁극의 단계에서는 '이성'이라는 아이 자신이 곧 '절대이성'이 된다. '즉자'(의식)-'대자'(이성)-'즉자대자'(절대정신)로 완성되는 헤겔 철학은 후대에 의해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도식화되었고 이러한 완성의 체계를 비판한 마르크스는 물질로부터 시작하는 유물론을 역시 변증법적으로 완성하나 결국 말년의 주저 [자본론]에서 그렇게 비판하던 헤겔의 '현상학'적 서술방식을 따른다. 즉, '상품'이라는 작은 아이가 '생산'과 '노동착취', 그리고 '잉여가치'와 교환 및 확대재생산 등의 형태와 과정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생산'이라는 거대한 체제의 비밀을 폭로하는 과정이 마르크스 [자본론]의 서술체계다. 
19세기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방식으로 헤겔을 뒤집었고, 20세기 레닌은 그런 헤겔의 [대논리학]의 '개념 운동'을 통해 역설적으로 헤겔의 '유물론'적 측면을 발견하면서 [철학노트]를 작성했다. 혁명을 준비하던 레닌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물구나무 선' 철학 스승 헤겔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스물다섯의 나 또한 포천의 군부대 구석에서 하라는 '자주국방'은 아랑곳 없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팠다.


3.

"실제로 지(知)의 근원을 이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적작용을 하는 보편적 요소일 뿐더러 이것이 궁극적 의미에서는 다름아닌 '절대정신'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절대정신'은 신앙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순수의식이나 혹은 사유한다는 것 그 자체로서만 본다면 오직 절대적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자기의식'으로 보면 이것은 바로 자기에 관한 지(知)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 Hegel, [정신현상학], <3장 이성, 6절 정신>, 1806.


이십대 초반의 나는 '소설가'를 꿈꾸었고,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했으나, 사실 '연애'를 하고 싶었다. 입대 후 일년 간 짧은 머리카락만 쥐어 뜯다가 휴가 때 구박은 했지만 귀엽게 아끼던 후배 미선이한테 다가갔고 전역을 하고도 그 후로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에게 상처만 주다가 결국 헤어졌다. 
아프기도 했고 당시 나로서는 어쩔 수 없기도 했던 미안함이 가장 크지만, 다시 그 때로 되돌아 갈 수 있다 해도 나로서는 더 잘해볼 도리는 없었을 게다. 

그 당시 나의 '절대정신'이었던 그녀는 결국 그녀를 통해 투영했던 나 자신이라는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기의식'이 타자를 만나 대자적 관계를 맺으며 '절대정신'으로 성장하는 잊지 못할 청춘의 과정. 
미안함에도 가끔 그 때가 문득 떠오른다면, 그 당시 모자랐던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상념이리라.

헤겔을 읽던 시간,
1997년 가을의 이야기다.

***

1. [정신현상학](1806), G.W.F.Hegel, 임석진 옮김,<지식산업사>, 1997.
2. [자본론] 1권(1867), K. Marx,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89~1996.
3.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4. [철학노트](1914), V.I. Lenin,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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