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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평점 :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자본주의의 ‘자유주의적’ 재구성
-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著, 장경덕 외 譯,<글항아리>, 2014.
경제학은 어렵다. 각종 수치들과 수학공식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경제학자들은 ‘순수과학자’임을 자처하는데 [21세기 자본]이라는 저서로 ‘불평등’ 문제를 세계사적으로 고찰하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에 따르면 불평등이 가장 극심하여 21세기의 구유럽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현재 미국의 소득계층 구조에서 ‘선망받는 자리를 점하고 있는 경제학자들’이 그런 것이다. 토마 피케티는‘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경제학’을 자신의 학문적 배경으로 하는데 이런 점에서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의 고전주의 경제학과 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의 계보를 잇고 있다.
불평등… 핵심적인 문제는 불평등의 크기 자체라기보다는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 [21세기 자본], 제3부 제7장 <불평등과 집중:기본적 지표>
[21세기 자본]의 주제는 ‘불평등’이다. 피케티는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사회구성체론, 즉 경제적 토대와 상부구조의‘추상적 개념’을 버리고 구체적으로 ‘사회적 국가’, ‘누진적 자본세’,‘국가 공공부채’ 등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작업은 분명 경제학자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 역시 보여주고 있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의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 저축률 등의 방대한 통계자료(주로 근현대 약 300년간)를 바탕으로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토마 피케티는 역시 칼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계보를 잇고 있다.
자본은 결코 조용한 법이 없다. 자본은 적어도 형성기에는 언제나 위험추구적이고 기업가적이다. 그러나 충분히 축적되면 자본은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본의 사명이자 논리적 귀결이다… 자본의 성격은 변했다. 과거에 주로 토지였던 자본은 이제 부동산, 산업 및 금융자본(자산)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전혀 잃지 않았다.
- 제2부 제3장 <자본의 변신>
프랑스와 영국의 역사적 데이터들을 주요 근거로 하여 불평등의 역사를 파헤치는 토마 피케티에 의하면 칼 마르크스는 의회보고서의 애독자였음에도 당시의 구체적 데이터 조차도 제대로 인용하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 등이 20세기에 철학적으로 ‘다시 읽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은‘순수이론서’이다. 즉, 19세기 당시 최고의 자본주의 발전단계에 있던 영국을 배경으로 하였지만 영국의 정치경제체제를 분석하지는 않는다. 다만 영국으로부터 추출한 ‘추상적 개념’을 발전시켜 ‘순수이론적인 자본주의 자체’를 상정한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이 ‘상품’이라는 ‘가장 단순한 현상 속에서 현대사회의 모든 모순을 폭로’하는 서술형태를 따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레닌의 [철학노트]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대량적인 것 등등으로부터 시작하면… 이미 이 속에는 (헤겔이 천재적으로 지적하였듯이) ‘개별은 보편이다’라는 변증법이 존재한다… 이리하여 대립물(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에 대립한다)은 동일적이다… 변증법은 다름아닌(헤겔과) 마르크스의 인식론이다”라고 적고 있다. 마르크스는 가장 단순한 개별로서 ‘상품’에서 시작하여 가장 총체적 보편으로서 ‘자본주의’ 자체를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칼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한 김수행 교수는 최근 발간한 [자본론 공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론] 1권‘자본의 생산과정’에서 자본의 축적 과정이 실업자를 점점 더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마르크스는 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에서는 자본의 축적 과정이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전자가 자본주의의 발달이 노동자계급에게 주는 영향을 집약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본가계급에게 미치는 영향을 요약한 것입니다.
- [자본론 공부], 제8장 <평균이윤율의 형성과 이윤율의 저하,상승 경향>, 2014.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계급투쟁’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모든 잉여가치과 이윤의 원천은 노동이며 이는 자본의 원시축적에서부터 일체의 생산수단에서 분리된 대다수 노동계급만이 담지한다. 자본에 대하여도 마르크스의 [자본] 3권에서 지대는 이자, 이윤, 세금 등과 같이 노동으로부터 생산된 잉여가치에서 배분된 형태 중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으나 피케티는 ‘자본은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면서 자본의 흐름을 현대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어쨌든 마르크스는 [자본] 1권에서 대다수가 되는 노동계급의 ‘산 노동’이 [자본] 3권에 이르면 자본가의 ‘죽은 노동’을 대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분석하는데 피케티는 자본을 ‘비인적 자본’, 노동을 ‘인적 자본’으로 호명하며 ‘인적 자본’인 노동을 ‘주도적 형태의 자본’이라 규정한다. 보통 선진국 또는 피케티가 부르는 ‘부유한 국가’는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이 70%는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피케티 역시 방대한 자료를 통해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인 ‘자본/소득 비율’을 약 30%인‘1/4 또는 1/3’ 정도로 본다. 여기서 피케티가 자본주의 분석에 사용하는 공식 몇 개는 차치하고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모순’이자 ‘양극화의 근본요인’으로 보는 공식은 ‘자본수익률(r)>경제성장률(g)’이라는 부등식이다. 역사적으로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누진적 소득세 등을 통해 자본주의 위기를 사회복지국가 형태로 극복한 호황기를 제외하고 세계대전 이전이나 현재는 자본수익률(r)은 4~5%인데 반해 경제성장률(g)은 장기적으로 1~1.5%이므로 이 부등식은 불평등과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자본주의 체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생산성의 향상과 지식의 확산에 기초한 현대의 성장은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재앙을 피해 자본축적 과정이 균형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뿌리깊은 자본의 구조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혹은 적어도 노동에 비해 자본의 거시경제적 중요성을 진정으로 축소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소득과 부의 분배에서 나타나는 불평등도 이와 마찬가지인지를 고찰해야만 할 때다.
- [21세기 자본], 제2부 제6장 <21세기 자본-노동의 소득분배>
피케티는 자신은 마르크스나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다름을 역설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재앙’은 빗나갔고 소련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했으며 전후 사회민주주의 정책 또한 ‘현대화’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토마 피케티는 그럼에도 사이먼 쿠즈네츠처럼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불평등이 완화되고 균형을 이룬다고 예견하고 있지도 않다. 한편으로 장하준 교수처럼 보호무역과 국민국가적 시장통제를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계급 없는 완전평등사회 같은 것은 불가능하지만 누진적 글로벌 자본세를 통해 자본주의를 통제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면서 자본주의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토마 피케티의 ‘자유주의적’ 결론이다.
(글로벌) 자본세의 주된 목적은 사회적 국가의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규제하는 것이다. 첫번째 목적은 부의 불평등이 끝없이 증가하는 것을 막는 것이고, 두번째 목적은 금융 및 은행제도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금융과 은행 시스템에 효과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본세는 우선 민주적 투명성과 금융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즉 누가 전세계에 어떠한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지가 명확해야만 한다… 자본세는 자본통제의 자유주의적인 형태이며 유럽의 비교우위에도 더 잘 맞는다.
- [21세기 자본], 제4부 제15장 <글로벌 자본세>
r>g라는 부등식은 과거에 축적된 부가 생산과 임금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등식은 근본적인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 자본은 한 번 형성되면 생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것이다… 올바른 해법은 매년 부과하는 누진적 자본세다… 자본에 대한 누진세는 높은 수준의 국제협력과 지역별 정치적 통합을 요구한다…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려면 민주주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숫자를 다루기를 거부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21세기 자본], <결론>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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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론] 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비봉출판사>
: [자본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원어 그대로 번역하면 [자본]이다.
[자본]Ⅰ권은 ‘상품’에서부터 시작하여 ‘화폐’로 전환되고 다시 ‘상품’으로 재전환하는 다분히 도식적이지만 가장 단순한 과정을 분석하면서 생산적 ‘노동’이 잉여가치를 창출하지만 이 가치가 전부 ‘지불’되지 않은 채 ‘부불노동’의 형태로 자본에 의해 착취된다는 결론을 내리며 ‘자본의 인격화된 형태’로서 자본가는 이 잉여가치를 확대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는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과정’에서 기술발전과 자본투자를 통해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자본의 축적’은 결국 ‘노동을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선학들인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등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개념인 ‘가치’ 개념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구분하고, ‘노동’ 개념을‘노동’과 ‘노동력’으로 구분하는 ‘문제의식 변경’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 분석에 있어 중요한 역사적 유산을 남기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Ⅰ권에서 ‘자본의 생산과정’을 분석하면서 자본이 노동에 대한 착취를 통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자본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면서 축적되는 단계를 분석했다면, 마르크스 사후 그의 초고들을 가지고 엥겔스가 편찬한 [자본론]Ⅱ권은 ‘자본의 유통과정’을 분석하면서 자본이 운동하는 방식을 추적하는데 이러한 자본의 유통은 “잉여가치가 생산된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잉여가치가 자본화된 것, 즉 자본이 축적된 것을 표현”함으로써 자본유통과 회전의 결과는 “최초의 자본가치와 그것의 운동을 통해 축적된 자본의 가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한편에서는 화폐로 실현된 잉여가치의 일부가 유통으로부터 끌려 나와 퇴장화폐로서 적립된다면, 동시에 잉여가치의 다른 부분은 끊임없이 생산자본으로 전환된다”고 하며 ‘확대재생산’의 형태로서 자본의 축적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원과정인 ‘단순재생산’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즉, 잉여가치는 ‘자본의 유통과 회전과정’이 아니라 이미 ‘자본의 생산과정’에서 생산됨을 증명하고 있다.
[자본]Ⅲ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을 분석하면서 자본의 생산과정에서 노동을 원천으로 하여 발생한 잉여가치가 전 자본주의적 총생산과정에서 이윤으로 전환하는 과정과 지대와 이자 등으로 배분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평균이윤율이 저하되는 경향’이 있음을 주장한다. “자본구성의 이러한 점진적 변화가 어떤 개별 생산분야의 특징이 아니라 거의 모든 생산분야 또는 적어도 결정적인 생산분야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변화가 그 사회의 총자본의 평균적 유기적 구성을 변화시킨다고 가정한다면, 가변자본에 대비한 불변자본의 이러한 점차적 증가는-잉여가치율 또는 자본의 노동착취도가 불변이라고 가정한다면- 필연적으로 일반적 이윤율의 점차적인 저하를 초래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레닌은 1915년 [철학노트]의 <변증법의 문제에 대하여>라는 기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맨먼저 부르주아(상품) 사회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대량적이고 가장 일상적이며 헤아릴 수 없이 목격되는 단계, 즉 상품교환을 분석하고 있다. 그 분석은 이 가장 단순한 현상 속에서(부르주아 사회의 이 ‘세포’ 속에서-개별로서의) 현대사회의 모든 모순(혹은 모든 모순의 맹아)을 폭로한다. 계속되는 서술은 이 모순의 발전(성장은 물론 운동도)과 그 개별 부분들의 총합(Σ) 속에서 이 사회의 발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방식은 또한 변증법 일반의 서술(내지 탐구)의 방법임에 틀림없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대량적인 것 등등으로부터 시작하면,… 이미 이 속에는 (헤겔이 천재적으로 지적하였듯이) ‘개별은 보편이다’라는 변증법이 존재한다… 이리하여 대립물(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에 대립한다)은 동일적이다. 변증법은 다름아닌(헤겔과) 마르크스의 인식론이다.”
2. [자본론공부], 김수행 지음, <돌베개>, 2014.
: 우리나라 최초로 칼 마르크스 [자본론]을 번역하여 출간한 김수행 교수가 세월호 정국에서 새롭게 출간한 [자본론] 해설서. 김수행은 <서문>에서 “이 책은 방대한 [자본론] 1~3권의 내용을 단순히 요약한 것이 아닙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비판했고 어떻게 찬양했는가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미래 사회의 태아를 자본주의가 잉태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주목할 것을 강조합니다.”라고 적고 있다. ‘자본의 생산과정’을 분석한 [자본론]Ⅰ권에 대한 해설, ‘자본의 유통과정’을 분석한 [자본론]Ⅱ권에 대한 해설,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을 분석한 [자본론]Ⅲ권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으며, 특히 [자본론]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평균이윤율 저하 경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본론]1권 ‘자본의 생산과정’에서 자본의 축적 과정이 실업자를 점점 더 증가시키는‘경향’이 있다고 말한 마르크스는 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에서는 자본의 축적 과정이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전자가 자본주의의 발달이 노동자계급에게 주는 영향을 집약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본가계급에게 미치는 영향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업자의 증가 경향과 이윤율의 저하 경향은 모두 자본가들이 상대적 잉여가치를 증가시키기 위해 기계화∙자동화∙로봇화를 도모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즐겨 사용하는 ‘경향’이라는 용어는 ‘법칙’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경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상반되는 경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자본의 축적 과정에서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기계화가 진행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이 기계화는, 한편에서는 면방적 기계가 물레를 돌리는 노동자들을 축출하여 실업자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면방적업을 크게 확장시킬 뿐 아니라 면방직업과 의류업을 활성화시켜 수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경향도 낳는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기계화는 한편에서는 실업자를 만들어 내는 경향을 가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취업자를 증가시키는 경향을 가지는데, 마르크스는 이 두 경향 그 자체를 각각의 법칙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기계화는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함으로써 실업자를 증가시키는 ‘경향’ 또는 ‘법칙’을 가지며, 기계화는 투하자본의 규모를 증가시켜 실업자를 감소시키는 ‘경향’ 또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계화가 실업자를 증가시킬 것인가,아니면 감소시킬 것인가는 이론 차원에서는 판명할 수가 없고, 현실에서 판명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윤율의 저하 경향’도 ‘이윤율의 상승 경향’과 나란히 각각의 법칙으로 제출된 것이고, 현실적으로 이윤율이 저하한다고 예측한 법칙은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지음, <그린비>,2004.
: 1980년대 남한사회 ‘사회구성체’ 논쟁을 촉발한 [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의 저자인 이진경이 1990년대 들어 고전적 인식론에서 ‘탈주’하여 ‘근대성 탈피’를 화두로 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영역과 미셸 푸코, 질 들뢰즈 등의 유목주의(노마디즘)적 철학의 우회로를 통해 다시 마르크스에게로 돌아오면서 발간한 책. 자본주의 '이후'가 아닌, 현재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그 '외부'를 사유하고, 미래의 '공산주의'가 아닌, 현재의 '꼬뮤니즘'을 그리고 있다. 고전으로서의 [자본론]을 공부하고자 할 때 해설서로서 참고할 만한 책이다.
4. [자본론을 읽는다], 루이 알튀세르 지음, 김진엽 옮김, <두레>, 1991.
: 칼 마르크스 사후 [자본]Ⅱ권과 Ⅲ권을 편찬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84년 [자본론] Ⅱ권 <서문>에서“선학들이 해답을 본 곳에서 그(마르크스)는 문제만을 보았다.”고 하였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그의 제자 에티엔 발리바르와 함께 [자본론을 읽는다](1965년)라는 연구작업을 통해 “마르크스의 이론적 혁명은 그 답의 변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변경’에 있다는 것, 따라서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의 지형으로부터 과학의 지형으로 옮긴 ‘제요소의 변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라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정치경제학’ 텍스트가 아닌 ‘철학적’ 텍스트로 다시 독해하고 있다. 알튀세르는 “[자본론]에 대한 철학적 독해는 우리의 연구대상 그 자체인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 적용해야만 가능할 뿐이다. 이 원환이 인식론적으로만 가능한 이유는 마르크스주의 저작 속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실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정확한 의미에서 생산한다는 문제이다. 생산한다는 말의 의미는… 실제로는 이미 어떤 의미에서 실존하고 있는 것을 (목적에 적합한 대상의 형태를 이미 존재하는 원료에 부여하기 위해) 변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생산은 생산작업에 원환이라는 필연적인 형태를 준다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지식의 생산’이다”라고 하면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다루는 ‘인식의 대상’을 ‘실재적 대상’과 ‘지식의 대상’으로 구별하는데 [자본론]에서 탐구하는 영국은 실제 자본주의 선진국으로서의 영국의 정치경제체제가 아니라 “추상적으로 분석되어지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알튀세르는 구조주의 철학자답게 “정치경제학의 진실된 ‘주체’는… 생산관계들, 그리고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사회관계들”이라는 전제 하에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논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제 양식의 ‘이상적 평균’은 “현실에 대한 (이론적) 개념을 의미”하며 “마르크스의 이론적 대상은 영국이 아니라 그 ‘핵심적 형태’와 그 ‘핵심적 형태’의 결정에 있어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며 자본주의 생산양식 연구에 있어 완전히 ‘순수’할 수는 없으나 하나의‘모델적 사례’로 다루어지는 영국과 관련하여 “영국 자본주의의 불순성은… 생산양식들의 이론과 관련한 대상을 구성하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한 생산양식으로부터 다른 하나의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이론과 관련된 대상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이론은, 모든 각각의 생산양식이 이전의 한 생산양식의 존재형태들로부터만 구성되기 때문에 하나의 일정한 생산양식의 구성과정에 대한 이론인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즉,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당시, 특히 자본주의 ‘선진국’으로서의 영국의 자본주의 현실 체제를 분석한 것이 아니라 영국이라는 ‘이상적 평균모델’을 통해 ‘상품’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개별적인 형태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 총생산’의 가장 복잡하고 보편적인 ‘생산양식의 구성과정’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5. [철학노트],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 1914년 제국주의 세계전쟁과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배신 국면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레닌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저술할 때 그러했듯 망명지의 도서관에서 틀어박혀 헤겔로 되돌아간다. 이전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의 주제도 ‘철학’이었지만 이는 경험주의, 상대주의인 오스트리아 마흐주의식의 ‘경험비판론’에 대한 다분히 논쟁적 의도로 저술되었고, [철학노트]에서는 헤겔의 [논리학] 적요를 시작으로 ‘존재론’, ‘본질론’, ‘개념론’ 등 철학의 ‘기본개념’부터, 즉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레닌은 ‘헤겔 속의 유물론’을 재발견하기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 헤라클레이토스 등 철학의 ‘대선배’들의 사상 등도 두루 재학습하고 있다. [철학노트]는 헤겔의 [논리학]은 물론, [철학사 강의], [역사철학 강의] 등에 대한 적요 등을 포함하면서 관념론 철학의 완성체로서의 헤겔을 철저히 분석하고 정리한 대량의 노트라 할 수 있다. 그람시의 [옥중수고]와 같이, 발간목적이 아닌 마르크스주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재정립이라는 확고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진행한 방대한 학습노트, 수고록을 나중에 엮은 것이다. 철학학습을 시작하는 레닌의 ‘금언’은 다음과 같다.
“헤겔의 논리학 전체를 철저하게 연구하지 않고 또 이해하지 않고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특히 제1장(상품)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반세기를 경과하였지만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마르크스를 이해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