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18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 길(도서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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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에서 과학으로’,‘과학에서 공상으로재전환의 변증법

- [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1944), 칼 폴라니 著, 홍기빈 譯, <>,2009.

 

“19세기 문명은 무너졌다. 이 책은 이 사건의 정치적, 경제적 여러 기원들, 그리고 그것이 불러들인 거대한 전환을 다룬다.19세기 체제가 나오게 된 원천이자 모태였던 것은 자기조정 시장(Self-regulating Market)’이었다. (19세기 문명을 떠받치던 4가지 제도 중) ‘금본위제란 이 국내의 시장경제 체제를 국제적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한 것이다. 세력균형 체제란 이 금본위제에 기초하여 세워진 상부구조였고 그 작동 또한 부분적으로나마 금본위제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유주의 국가라는 것도 그 자체가 자기조정 시장의 피조물이었다. 결국 19세기 문명의 제도 체제를 이해하는 열쇠는 시장경제를 통제하는 여러 법칙에 있었던 셈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이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을 아예 씨를 말려버리게 되어 있다. 인간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거대한 전환], 1 <백년 평화>

 

19세기 유럽의 신성동맹(Holy Alliance)’ 체제는 세습왕조와 카톨릭 교회의 영적이고 물질적인 봉건권력의 담합체로서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출현한 테르미도르 반동과 영국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강대국들의 모종의 공동 이해를 달성해 왔는데,오스트리아 출신 경제사상가인 칼 폴라니(Karl Polanyi)에 의하면 그 공동의 이해가 바로 백년 평화체제였다고 한다. 그러나 신성동맹의 뒤를 이어 폭력 사용의 빈도나 폭압성이 그에 비해 비교도 되지 못할 정도로 허깨비 같은 존재였던 유럽 협조체제는 익명의 요인으로서 강력한 사회적 도구를 등에 업고 있었으니, 초국적 대형 금융자본을 이르는 오트 피낭스(Haute Finance)’가 그것이다. 유럽의 로스차일드(N.Rothschild) 집안이나 그 뒤를 이은 미국의 모건(J.P.Morgan)와 같은 오트 피낭스는 오늘날 초국적 금융자본의 고전적 형태로서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의 전쟁대부와 전방위적 인수합병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모든 전쟁은 이런 금융가들이 조직한 것이 맞기는 하나, 평화 또한 이윤추구를 방해하는 전면전을 두려워한 바로 이 대형금융가들이 조직한 것도 사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의 와중에 섣부르게 유럽 각국의 통화 안정화에만 골몰한 결과 세계적 채권자인 영국과 미국이 패전국들의 채무불이행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금본위제를 포기하자 평화의 이해를 대변하는 두 조직, 즉 국제연맹과 그것의 주요 집행도구였던 로스차일드 집안과 모건 집안이 정치에서 자취를 감추고 전 세계를 묶어놓은 황금줄이 끊어지는”1930년대는 모종의 세계혁명이 시작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게 된다. 이 시기 파시즘사회주의’, ‘뉴딜은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인데, 칼 폴라니는 그 기원을 쫓는 이야기의 본론을 시장경제자유무역’, ‘금본위제발명자이자 산업혁명의 고향인 영국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들을 통째로 갈아서 무차별의 떼거리로 만들어 버린(영국이라는) 사탄의 맷돌(Satanic Mill)’은 무엇이었는가?... 19세기 문명의 역사는 대부분 그러한 (산업혁명의) 메커니즘이 가져올 황폐화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변화는 바로 시장경제의 확립이며 (이러한) 모든 변화들은 그저 이것에 부수적으로 생겨난 것들에 불과하다.”

- [거대한 전환], 3 <삶의 터전이냐, 경제 개발이냐>

 

칼 폴라니는 자유로운 자기조정 시장(Self-regulating Market)’은 환상적 유토피아에 불과하며, ‘노동토지’, ‘화폐를 상품화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인간자연’, ‘생산조직을 사회-문화적으로 지켜내려는 사회적 보호주의를 필연적으로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인류학적 연구의 발견을 보면 인간은 아담 스미스 이후 고전경제학이 주장하듯 물질적 재화의 소유라는 개인적 이해를 지켜내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그가 행동하여 지키려는 것은 그의 사회적 지위, 사회적 권리, 사회적 자산이었다는 것이다. 칼 폴라니는 인간의 경제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회관계 속에 깊숙이 잠겨있다고 말한다. 그의경제학정치경제학의 계보에 있다.

 

정치경제학은 인간과학이어야만 하며, 인간에게서 자연적인 것을 다루는 것이지 자연에게서 자연적인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자들의 자연주의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오언은) 국가와 사회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공동체에 끼치는 해악을 피하는 데에 도움이 될만한 개입이라면 얼마든지 국가에 기대했지만, 사회를 조직하는 일 자체를 국가에 기대하는 법은 결코 없었다.… (그가 꿰뚫어본) 핵심적인 현상이란 바로사회라는 것이었다.

- [거대한 전환], 10 <정치경제학과 사회의 발견>

 

칼 폴라니는 협동조합적 체제에 기반한 로버트 오언(Robert Owen)공상적 사회주의실험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19세기에 과학적 사회주의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공상에서 과학으로전환한 정치경제학의 시도를 20세기에 사회의 재발견의 강조를 통해 과학에서 공상으로 다시 전환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칼 폴라니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조정 시장주의신앙적유토피아에 맞서 노동자계급은 노동조합정당으로, 봉건지주계급은스피넘랜드법과 같은 가부장적 온정주의구빈법 체제로, ‘사회보호주의를 가동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사회적 보호주의이중적 운동(Double Movement)’을 통해 인류 역사가 끊임없이 진행 또는 발전된다는 것이다.

자연과학과 같은 독립된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에서 벗어나, ‘사회과학사회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인식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19세기로부터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을 거친 20세기 이후의 정치경제학이며,대공황과 뉴딜, 두 차례 세계대전이나 파시즘사회주의 혁명등 온갖 주요한 사회 현상의 기원을 규명하는 사회과학방법론이다.

 

노동시장이 노동자들의 삶을 지독하게 쪼아댈수록 노동자들은 점점 더 끈질기에 투표권을 달라고 목청을 높여갔다. 이러한 인민정부의 요구가 훗날 문명의 붕괴를 가져온 긴장의 정치적인 원천이었다.

개입주의와 통화라는 시장사회의 근본문제들은 내적인 필연성에 의해 계속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문제들이1920년대에는 정치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사회주의는 그 본질에서 자기조정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그것을 민주적 사회의 명령 아래에 의식적으로 복종시키고자 하는 것으로서, 이는 산업 문명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경향이었다. 이는 (다수인) 산업노동자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해결책이었다.

… 1920년대에 실제로 벌어졌던 일노동세력은 그 수를 무기로 삼아 의회에 참호를 파고 단단히 자리를 잡았으며,자본가들은 산업을 자신의 철옹성으로 건설하여 그 위에 올라 앉아 온 나라를 호령했다.… 이러한 (계급전쟁의) 상태가 계속되자 마침내 경제 체제와 정치 체계 양쪽 모두가 완전히 마비될 위협이 현실화되는 순간이 오게 되었다.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고, 사람들은 나중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따져보지도 못한 채 그저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날 쉬운 길만 제공해준다면 어떤 이들에라도 기꺼이 지도권을 떠안겨주기에 이르렀다. 파시즘이라는 해결책이 나타날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

- [거대한 전환], 19 <인민정부와 시장경제>

 

거대한 전환이든 공상과학전환재전환이든, ‘사회의 역사를 관통하는 철학적 사유방식은 대립물의 투쟁과 통일로서의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물론, 칼 폴라니는 “22세 이후로는 마르크스주의에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고 선언했다지만 그가 분석한 세계 경제사의 방법적 뿌리는 부정할 수 없이 변증법적이고 역사적인 사회과학으로서의 정치경제학이고 그러므로 그의 결론 또한 이에 기반한 민주적 사회주의인 것이다.

고립된 인간자유주의 시장체제가 아니라, ‘사회의 재발견을 통해 복합 사회(Complex Society)에서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고 확립하는 것이 칼 폴라니가 주장하는 인류 과제의 실현이다.

 

시장경제의 사멸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자유시대의 개막일 수 있다.… 규제와 통제를 통하여 단지 소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 자유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산업사회라면 분명히 자유로운 수 있는 여력 뿐만 아니라 정의로울 수 있는 여력 또한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사회의 발견은 자유의 종말일 수도 있고 그것의 재탄생일 수도 있다인류는 더욱 성숙해질 것이며, ‘복합 사회안에서도 여전히 인간의 형상을 갖춘 채 존재할 수 있다.”

- [거대한 전환], 21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

 

(20155)

 

***

 

[공산당 선언],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93.

: 1848년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함께 발표한 과학적 사회주의로서의 공산주의의 고전.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교황과 짜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의 첩보경찰 등 구유럽의 모든 열강은 이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로 이어지는 제1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구분, “공산주의자는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이해를 제기하고 전면에 내세우며그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와 공산주의자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제2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 ‘반동적 사회주의보수적 사회주의 또는 부르주아 사회주의’, ‘비판적-공상적 사회주의, 공산주의과학적 사회주의로서의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이전 사회주의 사상을 비판하는 제3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헌을 거쳐, 4기존 여러 반대파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입장이라는 결론에서는 공산주의자는 당면 목표의 달성을 위해, 노동계급의 당면한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싸운는 동시에, 현재의 운동 속에서 이 운동의 미래를 보여주고 이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말로 시작하여 과학적 사회주의로서 공산주의자의 임무를 선언한다. , 첫째, “공산주의자는 부르주아지가 절대군주, 봉건지주, 쁘띠부르주아지에 반대하여 혁명적으로 행동할 경우 이들과 함께 싸운다.”, 둘째, “공산주의자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의 적대관계에 대한 가장 명확한 인식을 노동계급에 주입시키려 끊임없이 노력한다.”,셋째, “공산주의자는 모든 곳에서 기존의 사회, 정치적 질서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을 지지하며, 그 모든 혁명에서 각국의 발전 정도와 관계없이 소유문제를 핵심적인 문제로서 전면에 내세운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자는 어디서나 모든 나라 민주적 정당들의 통일과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면서, “프롤레타리아는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 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전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끝맺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로버트 오언의 협동조합적 사회주의 실험을 공상적 사회주의로 분류하고 개인적이고 자비적인 실천의 한계로 인해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이고 집단적인 정치적 실천을 배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레닌은 1914년 집필한 [칼 마르크스] 백과사전 항목에서 [공산당 선언]을 아래와 같이 평하고 있다.

이 저작은 새로운 세계관, 사회생활의 영역까지 포함한 일관된 유물론, 가장 포괄적이고 심오한 발전의 학설인 변증법, 계급투쟁의 이론, 새로운 공산주의사회의 창조자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사적, 혁명적 역할의 이론을 천제적인 명료함과 탁월함으로 그려내고 있다.”

[공산당 선언]은 사회과학 서적이지만 인문학적인 탁월한 문장력 또한 적지 않은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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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책, 최장집 한국어판 서문 최장집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 2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최장집 한국어판 서문, 박상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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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킬 것인가, 바꿀 것인가?"
- [군주론] [맹자] '고독'한 대화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알아야 하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선택적으로 따라야 한다. 사자는 함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어렵고 여우는 늑대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명한 통치자라면, 신의를 지키는 일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거나 자신이 약속한 이유가 소멸할 경우,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지켜서도 안 된다."
- [군주론] 18

 

"()은 사람이 지녀야 할 마음이고, ()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이다."
- [맹자] <고자 상> 11

"군주들이... 인간적 자질 모두를 실제로 가질 필요는 없지만 실제 그것들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일 필요는 있다... 즉 자비롭고 신의가 있으며, 인간적이고 정직하며 또한 신앙심이 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유용하다는 것... 그러나 그렇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당신은 그 반대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 [군주론] 18

"()이란 것은 곧 사람이다. 이것을 합해서 말하면, 곧 도()가 된다."
- [맹자] <진심 하> 16

마키아벨리는 군주정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공화정이 힘을 잃고 절대왕정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알고 '현실정치'에서 국가를 지킬 수 있는 군주는 어떤 군주여야 하는지를 논한다.
반면 맹자는 '인의'를 갖춰야 사람임을 전제로 '백성을 위한(위민;爲民) 정치(군주)'보다는 '백성과 함께하는(여민;與民) 정치(군주)'를 주장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첫 문장을 "모든 국가는 공화국 아니면 군주국"이라고 할 정도로 공화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지만, 본인이 정치를 하려면 군주정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고, 맹자는 당시 시대상 군주정 밖에 몰랐겠지만 '인의(仁義)'를 본질로 하는 사람 또는 그 집단으로서의 '백성과 함께' 하는 것이 '()'임을 역설한다.

"군주는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정직하게 다스려서는 귀족을 만족시킬 수 없는 반면, 민중의 경우는 그런 방법으로 다스려서 만족시킬 수 있다. 민중의 목적은 귀족들의 목적보다 더 정직한데, 귀족들의 목적은 억압하는데 있고 민중의 목적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군주는 적대적인 민중을 상대로는 안전을 확보할 수 없는데, 민중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족들을 상대로는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데, 그들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 [군주론] 9

"어진() 사람을 해치는 자를 '()'이라고 하고, 의로운() 사람을 해치는 자를 '()'이라고 하며, '잔적(殘賊)'을 일삼는 자는 (군주가 아닌) 한갓 '사내'라 부릅니다. 그러기에 (주나라) 무왕이 한갓 사내에 불과한 (은나라)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지만,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 [맹자] <양혜왕 하> 8

마키아벨리는 '귀족과 민중 가운데 누구에 의지해서 통치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다수 민중'으로부터 국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정직하게' 또는 '정직한 척' 다스릴 줄 알아야 하며, 나아가 타국의 원군 없이 자국의 시민들로 조직된 군대가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한다.
맹자는 은나라 폭군 주왕을 죽이고 주나라를 연 무왕의 사례를 들며 '신하가 임금을 죽여도 되는가'를 묻는 양혜왕에게 '인의'를 저버린 '잔적' 주왕은 임금이 아니므로 주나라 무왕의 '혁명'이 정당함을 역설한다.

'정치'를 도덕, 윤리 덕목과 분리시켜 근대 정치학의 기틀을 닦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현실' 군주에게 선택받기 위해 '헌사'를 바치면서까지 국가를 지키는 방법을 제출했고 후세에 '권모술수 정치가'와 같은 평가를 받았지만 공화정이나 군주정 어느 것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으로서 '정치학' 자체를 지지하였으므로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에 의하면 칼 마르크스와도 같이 '침묵 속에서' 그 누구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한채 '고독하다'.
맹자는 기원전 중국 전국시대 정치가임에도 다수 민중의 '인의'를 기준으로 이에 부합되지 못하면 국가권력도 몰락할 수 있음을 역사를 통해 설파하면서 당시 어떤 군주로부터도 선택받지 못했으므로 역시 '고독하다'.

'현실'적이든 '이상'적이든 누구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한 '마키아벨리의 고독' '맹자의 고독'은 침묵 속에서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킬 것인가, 바꿀 것인가?"

(201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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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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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자본주의의 자유주의적재구성

 

-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著, 장경덕 외 譯,<글항아리>, 2014.

 

 

경제학은 어렵다. 각종 수치들과 수학공식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경제학자들은 순수과학자임을 자처하는데 [21세기 자본]이라는 저서로 불평등문제를 세계사적으로 고찰하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에 따르면 불평등이 가장 극심하여 21세기의 구유럽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현재 미국의 소득계층 구조에서 선망받는 자리를 점하고 있는 경제학자들이 그런 것이다. 토마 피케티는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경제학을 자신의 학문적 배경으로 하는데 이런 점에서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의 고전주의 경제학과 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의 계보를 잇고 있다.

 

 

불평등핵심적인 문제는 불평등의 크기 자체라기보다는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 [21세기 자본], 3부 제7 <불평등과 집중:기본적 지표>

 

 

[21세기 자본]의 주제는 불평등이다. 피케티는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사회구성체론, 즉 경제적 토대와 상부구조의추상적 개념을 버리고 구체적으로 사회적 국가’, ‘누진적 자본세’,‘국가 공공부채등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작업은 분명 경제학자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 역시 보여주고 있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의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 저축률 등의 방대한 통계자료(주로 근현대 약 300년간)를 바탕으로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토마 피케티는 역시 칼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계보를 잇고 있다.

 

 

자본은 결코 조용한 법이 없다. 자본은 적어도 형성기에는 언제나 위험추구적이고 기업가적이다. 그러나 충분히 축적되면 자본은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본의 사명이자 논리적 귀결이다자본의 성격은 변했다. 과거에 주로 토지였던 자본은 이제 부동산, 산업 및 금융자본(자산)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전혀 잃지 않았다.

 

- 2부 제3 <자본의 변신>

 

 

프랑스와 영국의 역사적 데이터들을 주요 근거로 하여 불평등의 역사를 파헤치는 토마 피케티에 의하면 칼 마르크스는 의회보고서의 애독자였음에도 당시의 구체적 데이터 조차도 제대로 인용하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 등이 20세기에 철학적으로 다시 읽은칼 마르크스의 [자본]순수이론서이다. , 19세기 당시 최고의 자본주의 발전단계에 있던 영국을 배경으로 하였지만 영국의 정치경제체제를 분석하지는 않는다. 다만 영국으로부터 추출한 추상적 개념을 발전시켜 순수이론적인 자본주의 자체를 상정한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상품이라는 가장 단순한 현상 속에서 현대사회의 모든 모순을 폭로하는 서술형태를 따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레닌의 [철학노트]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대량적인 것 등등으로부터 시작하면이미 이 속에는 (헤겔이 천재적으로 지적하였듯이) ‘개별은 보편이다라는 변증법이 존재한다이리하여 대립물(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에 대립한다)은 동일적이다변증법은 다름아닌(헤겔과) 마르크스의 인식론이다라고 적고 있다. 마르크스는 가장 단순한 개별로서 상품에서 시작하여 가장 총체적 보편으로서 자본주의자체를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칼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한 김수행 교수는 최근 발간한 [자본론 공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론] 1자본의 생산과정에서 자본의 축적 과정이 실업자를 점점 더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마르크스는 3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에서는 자본의 축적 과정이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전자가 자본주의의 발달이 노동자계급에게 주는 영향을 집약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본가계급에게 미치는 영향을 요약한 것입니다.

 

- [자본론 공부], 8 <평균이윤율의 형성과 이윤율의 저하,상승 경향>, 2014.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계급투쟁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모든 잉여가치과 이윤의 원천은 노동이며 이는 자본의 원시축적에서부터 일체의 생산수단에서 분리된 대다수 노동계급만이 담지한다. 자본에 대하여도 마르크스의 [자본] 3권에서 지대는 이자, 이윤, 세금 등과 같이 노동으로부터 생산된 잉여가치에서 배분된 형태 중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으나 피케티는 자본은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면서 자본의 흐름을 현대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어쨌든 마르크스는 [자본] 1권에서 대다수가 되는 노동계급의 산 노동 [자본] 3권에 이르면 자본가의 죽은 노동을 대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분석하는데 피케티는 자본을 비인적 자본’, 노동을 인적 자본으로 호명하며 인적 자본인 노동을 주도적 형태의 자본이라 규정한다. 보통 선진국 또는 피케티가 부르는 부유한 국가는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이 70%는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피케티 역시 방대한 자료를 통해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인 자본/소득 비율을 약 30%‘1/4 또는 1/3’ 정도로 본다. 여기서 피케티가 자본주의 분석에 사용하는 공식 몇 개는 차치하고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모순이자 양극화의 근본요인으로 보는 공식은 자본수익률(r)>경제성장률(g)’이라는 부등식이다. 역사적으로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누진적 소득세 등을 통해 자본주의 위기를 사회복지국가 형태로 극복한 호황기를 제외하고 세계대전 이전이나 현재는 자본수익률(r) 4~5%인데 반해 경제성장률(g)은 장기적으로 1~1.5%이므로 이 부등식은 불평등과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자본주의 체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생산성의 향상과 지식의 확산에 기초한 현대의 성장은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재앙을 피해 자본축적 과정이 균형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뿌리깊은 자본의 구조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혹은 적어도 노동에 비해 자본의 거시경제적 중요성을 진정으로 축소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소득과 부의 분배에서 나타나는 불평등도 이와 마찬가지인지를 고찰해야만 할 때다.

 

- [21세기 자본], 2부 제6 <21세기 자본-노동의 소득분배>

 

 

피케티는 자신은 마르크스나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다름을 역설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재앙은 빗나갔고 소련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했으며 전후 사회민주주의 정책 또한 현대화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토마 피케티는 그럼에도 사이먼 쿠즈네츠처럼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불평등이 완화되고 균형을 이룬다고 예견하고 있지도 않다. 한편으로 장하준 교수처럼 보호무역과 국민국가적 시장통제를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계급 없는 완전평등사회 같은 것은 불가능하지만 누진적 글로벌 자본세를 통해 자본주의를 통제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면서 자본주의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토마 피케티의 자유주의적결론이다.

 

 

(글로벌) 자본세의 주된 목적은 사회적 국가의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규제하는 것이다. 첫번째 목적은 부의 불평등이 끝없이 증가하는 것을 막는 것이고, 두번째 목적은 금융 및 은행제도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금융과 은행 시스템에 효과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본세는 우선 민주적 투명성과 금융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즉 누가 전세계에 어떠한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지가 명확해야만 한다자본세는 자본통제의 자유주의적인 형태이며 유럽의 비교우위에도 더 잘 맞는다.

 

- [21세기 자본], 4부 제15 <글로벌 자본세>

 

 

r>g라는 부등식은 과거에 축적된 부가 생산과 임금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등식은 근본적인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자본은 한 번 형성되면 생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것이다올바른 해법은 매년 부과하는 누진적 자본세다자본에 대한 누진세는 높은 수준의 국제협력과 지역별 정치적 통합을 요구한다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려면 민주주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숫자를 다루기를 거부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21세기 자본], <결론>

(201410)

***

 

 

1. [자본론] 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비봉출판사>

: [자본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원어 그대로 번역하면 [자본]이다.

[자본]Ⅰ권은 상품에서부터 시작하여 화폐로 전환되고 다시 상품으로 재전환하는 다분히 도식적이지만 가장 단순한 과정을 분석하면서 생산적 노동이 잉여가치를 창출하지만 이 가치가 전부 지불되지 않은 채 부불노동의 형태로 자본에 의해 착취된다는 결론을 내리며 자본의 인격화된 형태로서 자본가는 이 잉여가치를 확대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는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과정에서 기술발전과 자본투자를 통해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자본의 축적은 결국 노동을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선학들인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등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개념인 가치개념을 사용가치‘(교환)가치로 구분하고, ‘노동개념을노동노동력으로 구분하는 문제의식 변경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 분석에 있어 중요한 역사적 유산을 남기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Ⅰ권에서 자본의 생산과정을 분석하면서 자본이 노동에 대한 착취를 통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자본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면서 축적되는 단계를 분석했다면, 마르크스 사후 그의 초고들을 가지고 엥겔스가 편찬한 [자본론]Ⅱ권은 자본의 유통과정을 분석하면서 자본이 운동하는 방식을 추적하는데 이러한 자본의 유통은 잉여가치가 생산된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잉여가치가 자본화된 것, 즉 자본이 축적된 것을 표현함으로써 자본유통과 회전의 결과는 최초의 자본가치와 그것의 운동을 통해 축적된 자본의 가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한편에서는 화폐로 실현된 잉여가치의 일부가 유통으로부터 끌려 나와 퇴장화폐로서 적립된다면, 동시에 잉여가치의 다른 부분은 끊임없이 생산자본으로 전환된다고 하며 확대재생산의 형태로서 자본의 축적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원과정인 단순재생산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 잉여가치는 자본의 유통과 회전과정이 아니라 이미 자본의 생산과정에서 생산됨을 증명하고 있다.

[자본]Ⅲ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을 분석하면서 자본의 생산과정에서 노동을 원천으로 하여 발생한 잉여가치가 전 자본주의적 총생산과정에서 이윤으로 전환하는 과정과 지대와 이자 등으로 배분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평균이윤율이 저하되는 경향이 있음을 주장한다. “자본구성의 이러한 점진적 변화가 어떤 개별 생산분야의 특징이 아니라 거의 모든 생산분야 또는 적어도 결정적인 생산분야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변화가 그 사회의 총자본의 평균적 유기적 구성을 변화시킨다고 가정한다면, 가변자본에 대비한 불변자본의 이러한 점차적 증가는-잉여가치율 또는 자본의 노동착취도가 불변이라고 가정한다면- 필연적으로 일반적 이윤율의 점차적인 저하를 초래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레닌은 1915 [철학노트] <변증법의 문제에 대하여>라는 기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맨먼저 부르주아(상품) 사회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대량적이고 가장 일상적이며 헤아릴 수 없이 목격되는 단계, 즉 상품교환을 분석하고 있다. 그 분석은 이 가장 단순한 현상 속에서(부르주아 사회의 이 세포속에서-개별로서의) 현대사회의 모든 모순(혹은 모든 모순의 맹아)을 폭로한다. 계속되는 서술은 이 모순의 발전(성장은 물론 운동도)과 그 개별 부분들의 총합(Σ) 속에서 이 사회의 발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방식은 또한 변증법 일반의 서술(내지 탐구)의 방법임에 틀림없다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대량적인 것 등등으로부터 시작하면,… 이미 이 속에는 (헤겔이 천재적으로 지적하였듯이) ‘개별은 보편이다라는 변증법이 존재한다이리하여 대립물(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에 대립한다)은 동일적이다. 변증법은 다름아닌(헤겔과) 마르크스의 인식론이다.”

 

 

2. [자본론공부], 김수행 지음, <돌베개>, 2014.

: 우리나라 최초로 칼 마르크스 [자본론]을 번역하여 출간한 김수행 교수가 세월호 정국에서 새롭게 출간한 [자본론] 해설서. 김수행은 <서문>에서 이 책은 방대한 [자본론] 1~3권의 내용을 단순히 요약한 것이 아닙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비판했고 어떻게 찬양했는가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미래 사회의 태아를 자본주의가 잉태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주목할 것을 강조합니다.”라고 적고 있다. ‘자본의 생산과정을 분석한 [자본론]Ⅰ권에 대한 해설, ‘자본의 유통과정을 분석한 [자본론]Ⅱ권에 대한 해설,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을 분석한 [자본론]Ⅲ권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으며, 특히 [자본론]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평균이윤율 저하 경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본론]1자본의 생산과정에서 자본의 축적 과정이 실업자를 점점 더 증가시키는경향이 있다고 말한 마르크스는 3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에서는 자본의 축적 과정이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전자가 자본주의의 발달이 노동자계급에게 주는 영향을 집약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본가계급에게 미치는 영향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업자의 증가 경향과 이윤율의 저하 경향은 모두 자본가들이 상대적 잉여가치를 증가시키기 위해 기계화∙자동화∙로봇화를 도모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즐겨 사용하는 경향이라는 용어는 법칙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하나의 경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상반되는 경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자본의 축적 과정에서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기계화가 진행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이 기계화는, 한편에서는 면방적 기계가 물레를 돌리는 노동자들을 축출하여 실업자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면방적업을 크게 확장시킬 뿐 아니라 면방직업과 의류업을 활성화시켜 수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경향도 낳는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기계화는 한편에서는 실업자를 만들어 내는 경향을 가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취업자를 증가시키는 경향을 가지는데, 마르크스는 이 두 경향 그 자체를 각각의 법칙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기계화는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함으로써 실업자를 증가시키는 경향또는 법칙을 가지며, 기계화는 투하자본의 규모를 증가시켜 실업자를 감소시키는 경향또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계화가 실업자를 증가시킬 것인가,아니면 감소시킬 것인가는 이론 차원에서는 판명할 수가 없고, 현실에서 판명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윤율의 저하 경향이윤율의 상승 경향과 나란히 각각의 법칙으로 제출된 것이고, 현실적으로 이윤율이 저하한다고 예측한 법칙은 아니라는 것을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지음, <그린비>,2004.

: 1980년대 남한사회 사회구성체논쟁을 촉발한 [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의 저자인 이진경이 1990년대 들어 고전적 인식론에서 탈주하여 근대성 탈피를 화두로 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영역과 미셸 푸코, 질 들뢰즈 등의 유목주의(노마디즘)적 철학의 우회로를 통해 다시 마르크스에게로 돌아오면서 발간한 책. 자본주의 '이후'가 아닌, 현재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그 '외부'를 사유하고, 미래의 '공산주의'가 아닌, 현재의 '꼬뮤니즘'을 그리고 있다. 고전으로서의 [자본론]을 공부하고자 할 때 해설서로서 참고할 만한 책이다.

 

 

4. [자본론을 읽는다], 루이 알튀세르 지음, 김진엽 옮김, <두레>, 1991.

: 칼 마르크스 사후 [자본]Ⅱ권과 Ⅲ권을 편찬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84 [자본론] Ⅱ권 <서문>에서선학들이 해답을 본 곳에서 그(마르크스)는 문제만을 보았다.”고 하였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그의 제자 에티엔 발리바르와 함께 [자본론을 읽는다](1965)라는 연구작업을 통해 마르크스의 이론적 혁명은 그 답의 변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변경에 있다는 것, 따라서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의 지형으로부터 과학의 지형으로 옮긴 제요소의 변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라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정치경제학텍스트가 아닌 철학적텍스트로 다시 독해하고 있다. 알튀세르는 “[자본론]에 대한 철학적 독해는 우리의 연구대상 그 자체인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 적용해야만 가능할 뿐이다. 이 원환이 인식론적으로만 가능한 이유는 마르크스주의 저작 속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실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정확한 의미에서 생산한다는 문제이다. 생산한다는 말의 의미는실제로는 이미 어떤 의미에서 실존하고 있는 것을 (목적에 적합한 대상의 형태를 이미 존재하는 원료에 부여하기 위해) 변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생산은 생산작업에 원환이라는 필연적인 형태를 준다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지식의 생산이다라고 하면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다루는 인식의 대상실재적 대상지식의 대상으로 구별하는데 [자본론]에서 탐구하는 영국은 실제 자본주의 선진국으로서의 영국의 정치경제체제가 아니라 추상적으로 분석되어지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알튀세르는 구조주의 철학자답게 정치경제학의 진실된 주체생산관계들, 그리고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사회관계들이라는 전제 하에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논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제 양식의 이상적 평균현실에 대한 (이론적) 개념을 의미하며 마르크스의 이론적 대상은 영국이 아니라 그 핵심적 형태와 그 핵심적 형태의 결정에 있어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며 자본주의 생산양식 연구에 있어 완전히 순수할 수는 없으나 하나의모델적 사례로 다루어지는 영국과 관련하여 영국 자본주의의 불순성은생산양식들의 이론과 관련한 대상을 구성하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한 생산양식으로부터 다른 하나의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이론과 관련된 대상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이론은, 모든 각각의 생산양식이 이전의 한 생산양식의 존재형태들로부터만 구성되기 때문에 하나의 일정한 생산양식의 구성과정에 대한 이론인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당시, 특히 자본주의 선진국으로서의 영국의 자본주의 현실 체제를 분석한 것이 아니라 영국이라는 이상적 평균모델을 통해 상품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개별적인 형태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 총생산의 가장 복잡하고 보편적인 생산양식의 구성과정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5. [철학노트],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 1914년 제국주의 세계전쟁과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배신 국면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레닌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저술할 때 그러했듯 망명지의 도서관에서 틀어박혀 헤겔로 되돌아간다. 이전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의 주제도 철학이었지만 이는 경험주의, 상대주의인 오스트리아 마흐주의식의 경험비판론에 대한 다분히 논쟁적 의도로 저술되었고, [철학노트]에서는 헤겔의 [논리학] 적요를 시작으로 존재론’, ‘본질론’, ‘개념론등 철학의 기본개념부터, 즉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레닌은 헤겔 속의 유물론을 재발견하기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 헤라클레이토스 등 철학의 대선배들의 사상 등도 두루 재학습하고 있다. [철학노트]는 헤겔의 [논리학]은 물론, [철학사 강의], [역사철학 강의] 등에 대한 적요 등을 포함하면서 관념론 철학의 완성체로서의 헤겔을 철저히 분석하고 정리한 대량의 노트라 할 수 있다. 그람시의 [옥중수고]와 같이, 발간목적이 아닌 마르크스주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재정립이라는 확고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진행한 방대한 학습노트, 수고록을 나중에 엮은 것이다. 철학학습을 시작하는 레닌의 금언은 다음과 같다.

헤겔의 논리학 전체를 철저하게 연구하지 않고 또 이해하지 않고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특히 제1(상품)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반세기를 경과하였지만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마르크스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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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설국열차
CJ 엔터테인먼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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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체제 외 혁명의 단절성, 체제 내 혁명의 무한성’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중 단테의 [신곡] 인용구

 

 

기차가정상 철로를 이탈하여 뒤집어진 후 요나와 어린아이가빙하기의 세상으로 나왔는데 북극곰이 보인다.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고 알았고 기차 밖으로 나가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배웠는데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그래서?”라고 물었다 하고 어떤 사람은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단절을 보았다. 이제 인류는 이빙하기라는 대자연을 딛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당장 먹을 것과 잘 곳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당연시 되던 체제를 깨고 나가는 것은 결국단절에서 시작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 해도 이 정도의단절은 우리의 사회과학으로 풀어나가기에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막연하기만 하다.

 

[설국열차]는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살포된 물질로 인해 오히려빙하기를 맞은 지구를 매년 한 바퀴씩 도는 기차가 주요 무대이다. 기차의주인은 윌포드와 그의 엔진. ‘빙하기로부터 살기 위해 기차에 탄마지막 인류는 두 개의 계급으로 나뉜다. ‘머리칸꼬리칸’. ‘머리칸에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그자리를 지키는지 알 수는 없지만, ‘꼬리칸에서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으로 연명하는 비참한 사람들은무임승차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혁명 지도자 커티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꼬리칸에 타자마자 모든 것을 빼앗겼고 그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왔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참지 못한 사람들은주기적으로반란을 일으키는데 그 정신적 지주는 지옥 같은꼬리칸에서 휴머니즘을 가르쳤던 길리엄이라는 위인이다. 길리엄을 배후에 두고 커티스가 지도하는 이번 혁명은 4년 전맥그리거 반란보다 더 발전하여 윌포드의 엔진까지 장악하게 되는데 윌포드에 의하면 이러한 반란은 폐쇄된 기차 내균형을 맞추기 위해 윌포드와 길리엄의 협력 하에주기적으로조장되어 왔으며 이러한주기적 반란으로 기차 내 혹은꼬리칸인구의 70% 이상이 사라짐으로써 인구의 균형이 이루어진다.

한편으로 오로지 윌포드 엔진 장악만을 목표로 하는 커티스는 열차칸의 문을 열기 위해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크로놀에 집착하는 남궁민수의 목표는 결국 기차 밖으로 나가는 것이며크로놀이라는 인화물질은 종국에 기차벽을 깨부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혁명의 두 가지 관점을 보는데, 체제 외 혁명체제 내 혁명이다. 남궁민수의 혁명은체제 외 혁명이고 커티스 또는주기적혁명은체제 내 혁명인 바, 전자는단절을 특징으로 하고 후자는무한반복을 그 특징으로 한다.

 

[설국열차]에서체제 외 혁명의 단절성은 너무도 극적이고 극단적이어서 우리는 또 다른 인류의 출현을 몇 백만년이든 기다려야 할 상황까지도 설정해야 하지만 역사발전 단계에서체제간 단절과 연속은 필연의 계기일 것이고, ‘체제 내 혁명의 무한성은 장면마다 드라마틱함에도 불구하고 큰 줄기 자체는 체제 질서 유지의 각본에 너무도 충실한 나머지 현 체제의 권력이나 자본으로 상징될 수 있는엔진을 장악한 후 더 이상 할 일이 막연해 지지만 그래도 조금씩체제의 역사가 무한히 전진한다는 위안은 삼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양자간 한 가지 공통점은 그 어느 것도 계획한 대로 종결되지 않으며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역사가 흘러간다는 것일텐데, 이런 식의 결론이라면 여러체제들의 연속인인류의 역사가 너무 기계주의적이고 진화론적으로 흘러 결국 헤겔이 말한역사의 간지만 남을 것이다. 그러니 거창한 역사는 차치하고 어떤 선택을 하든 허무하게 죽어나가는도덕적 위기의 순간의 설정 속에서 행운아가 아닌 다수는중립이 아닌 무엇을 택해야 할 것인가. ‘꼬리칸인가머리칸인가, ‘체제 외인가체제 내인가.

 

적어도체제 외 혁명인가체제 내 혁명인가는 애당초 주체의 설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 또한 결국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객관적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것 아닐는지 모를 일이다.

 

                                                                                                                (201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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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서울
최종현.김창희 지음 / 동하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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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묵은 길을 품은 오래된 서울야망의 터전’ ‘서촌

- [오래된 서울], 최종현/김창희 共著, <동하>, 2013.

 

 

조선 초에 서울 도성을 쌓을 때 북서쪽 소문인 창의문을 왜 그 자리에 냈겠는가? 그 고개에 본래 길이 있었던 것이다그것은 바로 고려시대 남경에서 개성으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자 개성에서 남경에 이르는 마지막 고갯길이었던 것이다. 이성계가 서울 도읍의 자리를 살피기 위해 무학과 함께 건너왔던 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길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이어주는 길이다

 

- [오래된 서울], ‘1부 서울의 탄생고려시대의 길을 찾아서2’

 

 

서울의 역사는 조선이 건국되고 2년이 지난 1394년에 수도로 정해진 이후로부터 ‘600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서울시도 1994년에 정도 600주년 기념식을 치렀다니 관()에서도 인정하는 공식 역사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시공학과 교수를 지낸 최종현과 언론인 김창희가 공저(共著) [오래된 서울]은 우리 역사를 좀더 거슬러 올라간 서울의 원점에서 추리를 시작한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 형제는 주몽의 또 다른 아들 유리가 왕위에 오르자 남쪽으로 내려왔다. 비류는 미추홀에 자리 잡고, 온조는 위례에 자리 잡았다. 온조는 나라를 세운 후 나라 이름을 십제라 하였다. 미추홀은 지금의 인천 지역으로 땅은 습하고 물은 짠 곳이었고, 위례는 지금의 서울 지역으로 매우 기름진 곳이었다. 그 뒤 비류가 죽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온조를 따랐다.

 

- [오래된 서울], ‘1부 서울의 탄생서울의 원점을 찾아서, [삼국사기] 재인용

 

서기전 18년 백제를 건국한 온조가 서울 위례 지역에 터를 잡고 건국한 기록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례성 지역은 지금의 경기도 하남 지역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로 행정구역이 바뀐 지 몇 십년 밖에 안된 지역에다가 조선의 수도 한양은 사대문안의 구역을 의미하니 양자의 서울은 현재의 서울로 통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전혀 다른 지역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역사를 백제 건국 시기인 2000여년 전부터 시작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 ‘600년 통설을 그대로 따라야 할 것인가.

 

[오래된 서울]은 고대 삼국과 근세 조선의 중간에 위치한 고려시대에서 그 해답을 추적해 나간다. , 지금의 사대문지역은 고려시대 한양부 남경(南京)’으로서 지금의 경기도 양주(楊州) 이남으로 천도를 준비하기도 했던 고려 숙종대인 1100년대 전후에 경복궁 후원 한 귀퉁이에 임금의 또 하나의 별궁인 남경행궁을 지었다는 것까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을 통해 추적해 나간다. 이후 무신정권과 몽골지배기를 거쳐 고려 말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100여년 시기에도 인도 승려 지공화상과 그의 고려 제자 나옹화상이 나누었다는 선문답에서 삼산양수(三山兩水)’, 즉 삼각산과 한강-임진강 사이의 명당이라 하여 개창된 경기도 양주 회암사를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의 명찰로 보면서 역시 지공화상의 제자 중 하나였으며 한양 천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조계종파의 무학대사가 공민왕대 화엄종의 신돈이 실권한 후 회암사에 머물렀다는 사실까지 추적해 낸다. 따라서 서울은 조선의 한양이전인 고려 중기 한양부 남경시절부터 하나의 수도로서 역사를 추리할 수 있으니 이쯤 되면 서울의 역사는 600년이라기보다는 1000년 정도로 볼 수 있게 된다.

 

[오래된 서울]은 추리에서 끝나지 않고 고려 중기 이후 천년묵은 길을 소개한다. 모든 길은 자연이 만든 길, 즉 물길을 기준으로 생기기 마련인데 조선 태종이 종로와 교차하여 창덕궁 앞으로 통하는 돈화문로와 양쪽의 피맛길을 만들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길을 보여준다. 현재 지하철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나와 갈매기집좌측으로 비스듬히 올라 삼일로 삼환기업 건물 길까지 이어지는 골목이 바로 [오래된 서울]이 이야기하는 천년묵은 길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은 후 찾아간 골목길은 두리번 거리며 걷는 내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 들게 한다.

또 하나의 길은 고려시대 수도 개경(개성)에서 남경행궁으로 내려오는 유일한 길인 창의문(彰義門)’에 이르는 길이다. 현재 경복궁 서쪽으로 종로구 옥인동과 청운동 부근을 지나 올라가면 조선시대 사소문중 북문이었던 창의문이 나오는데 이 북소문은 조선이 만든 문이지만 여기로 통하는 길은 위에서 인용했듯이 천년묵은 길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북대문이었던 숙정문(肅靖門)’으로 통하는 길은 없었다고 하니 창의문이 북쪽과 남쪽을 잇는 실질적인 북문이었던 것이다. ‘창의문은 임진왜란 때 일부 소실되어 1740년대에 중창되었으나 사소문중 유일하게 그 자리에서 300년 가까이 제 모습을 보존한 문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천년묵은 길을 추적한 [오래된 서울]의 본래 주제는 서촌(西村)’이다. ‘서촌은 조선 초기 왕실군락지로서 경복궁 서쪽으로 해서 자하문로 따라 위로 올라가면 나오는 지역으로서 책은 세종이 태어난 준수방 잠저(임금이 되기 전 살던 집)’로 추정되는 지금의 우리은행 효자동 지점과 그 뒷편길로 해서 서북쪽으로 예전 청계천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세종의 3남 안평대군이 살았다는 수성동 계곡 일대를 소개하고 있다. 이 곳 수성동 계곡은 안평대군이 어느날 문득 꿈에서 본 풍경을 화가 안견을 불러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한 지역이라고도 하는데 아마도 서촌 수성동 계곡 어딘가에서 삼각산 쪽으로 바라본 풍경 아닐까 추정된다고 한다. 이후 단종복위사건으로 안평대군이 형인 세조에 의해 사사된 후 수성동 계곡에는 세종의 둘째 형이자 안평대군의 삼촌인 효령대군이 옮겨와 천수를 누리며 살았다고도 한다.

서촌은 임금이 되지 못한 왕자들 외에도 겸재 정선과 같은 화가가 살면서 서촌의 배경인 인왕제색도를 포함하여 그 특유의 화법을 발전시킨 곳이기도 하고, 병자호란 때 주전파(主戰派)’로 이름날린 김상용, 김상헌 형제의 장동 김씨류의 권신들의 터전이었으며 조선 중기로 넘어오면서 신분사회에 대한 절망을 시()로 승화시킨 중인들이 송석원등의 절경을 배경으로 동인회를 만들어 활동하던 지역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을 뒤에서 바라보며 실현될 수 없는 야망을 태우던 일종의 야망의 터전아니었을까 싶다.

 

이후 서촌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친일파의 거두 이완용과 그에 못지 않았던 윤덕영 등이 현재 옥인동 일대를 강탈하여 호의호식하며 살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조선의 마지막 왕후의 큰아버지이자 이완용과 친일을 경쟁하던 ‘1급 친일파윤덕영 같은 자는 현재 옥인동 47번지 일대와 송석원등의 지역에 벽수산장이라는 서양식 호화별장을 짓기도 했다는데 이쯤 오면 권력을 향한 폭력적 야망의 터전이기도 하였다. [오래된 서울]은 서촌 옥인동 일대에서 편안하게 숨을 거둔 이완용에 대하여 당시만 해도 민족정론이었던 <동아일보> 1926년 사설 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나중 다음의 명문을 소개하기도 한다.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

 

아마도 이완용과 친일부역자들의 삶을 가장 명료하게 정의한 테제가 아닐까 싶다.

 

조선 후기 서촌은 작가 이상과 화가 구본웅, 시인 윤동주와 국문학자 정병욱, 민족사회주의 화가 이여성과 이쾌대 형제 등이 시대를 고민하면서 동행했던 터전이 되었고, 김수임, 노천명, 앨리스 현 등의 역사의 파고에 쓸려간 여성들이 살던 지역으로도 소개된다. [오래된 서울]은 이들 모두를 포함하여 화가 이중섭이 작품을 생산하던 집까지 추적하여 소개하고 있다.

 

날씨 좋은 휴일에 [오래된 서울]의 추적을 따라 천년묵은 길서촌일대를 둘러보는 산책길은 이미 관광상품화된 서울성곽길과는 또 다른 상념을 선사할 지도 모른다. ‘동행이 없다 한들 어떤가. 우리에게는 천년묵은 길을 품은 오래된 서울의 역사라는 동행이 있으니.

 

 (2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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