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반양장)
E.H.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외 옮김 / 예경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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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 에른스트 곰브리치, 1950.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 <서론 - 미술과 미술가들에 관하여> 중

곰브리치는 추상적인 '미술'이라는 '지적인 유희'는 속물근성이라고 본다. 단지 세계를 편견 없이 '제대로' 표현하는 그릇으로서 '미술가들'이 있다는 전제로 건축, 회화, 조각 등 예술 '이야기(Story)'를 시작한다. 

"위대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제일 큰 장애물은 개인적인 습관과 편견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 태도이다."
- <서론> 중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세계가 '제대로'라고 판단한다. 물론 이 '제대로'는 선사-고대-중세-근대-현대의 각 시대마다 기준이 다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대체로 그들이 존재한다고 '알았던' 것을 그렸고,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본' 것을 그린 반면에 중세의 미술가들은 그들이 '느낀' 것을 그림 속에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8장 <혼돈기의 서양 미술 - 6세기부터 11세기까지 : 유럽>)처럼.

"미술사 책에서는 대개 조토와 더불어 새로운 장을 시작... 천년동안 이와 같은 것이 만들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조토는 평면에서 깊이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을 재발견한 것이다." 
- 10장 <교회의 승리 - 13세기> 중

15세기 르네상스를 앞서 예고했던 13~14세기 피렌체 화가 조토 디 본도네처럼 미술가는 당대 사람들이 보는 유행과 같은 '제대로'를 혁신한다. 그러므로 곰브리치에게 "미술사는 미술가들의 역사"가 된다. 또한 그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등 '예술사조'를 심각하게 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평가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은 이미 너무나 많은 상이한 문맥 속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정확한 의미를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 <서론> 중

곰브리치는 "어떤 유행의 표본으로서만 흥미있는 작품"들은 배제하고 "진정으로 훌륭한 작품"들을 선정했다고 초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데, 이 '진정한 작품'이란 세계를 '제대로' 표현하려는 미술가들의 노력을 대중들이 '편견' 없이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의미한다.
한편 일반 대중들이 해당 작품을 각 시대의 '유행'에 따라 구분하고 그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예술사조'에 따른 분류도 필요하다. 그러나 곰브리치는 '예술사조'를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예술사'에서 엥겔스는 '리얼리즘의 승리'를, 하우저는 '낭만주의 흐름'을 강조하는 반면, 곰브리치가 '모더니즘의 승리'로 [서양미술사]를 끝맺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데, 20세기 초반 격렬했던 '~주의' 이후 나타난 '모더니즘' 자체가 그 무어라 규정하기 힘든 '예술사조'이기 때문이다.

'미술사(History)'보다 '미술가들' 중심으로 '미술 이야기(Story)'를 풀어가는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를 '끝이 없는 이야기(28장)'로서 '모더니즘의 승리'로 결론짓기 전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미술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중의 역할을 언급한다.

"결국 우리는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형태와 색채가 '제대로' 될 때까지 그것을 조화시키는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드물기는 하지만 어중간한 해결방식에 머물지 않고 모든 안이한 효과와 피상적인 성공을 뛰어넘어 진정한 작품을 제작하는데 따르는 노고와 고뇌를 기꺼이 감내하는 뛰어난 남녀들이다. 미술가는 계속해서 태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미술이 존재할 것인지 아닌지는 적지 않게 우리들 자신, 즉 일반 대중의 태도에 달려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느냐 아니냐에 따라, 편견을 갖느냐 이해심을 갖느냐에 따라 미술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전통의 흐름이 끊이지 않게 하고 미술가가 과거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이 미술이라는 보물에 귀중한 것을 하나 더 보탤 수 있게 하는 것도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 27장 <실험적 미술 - 20세기 전반기>

결국, 미술가들이 미술을 혁신한다면, 예술을 완성하는 것은 다수 대중이다.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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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세트 - 전4권 - 개정2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반성완 외 옮김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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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르놀트 하우저, 1951. (1606)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처음 나오면서부터 큰 반향을 일으킨 데는 당시(1974~1981년) 우리 출판문화의 척박함도 한몫했다. 예술사에 관한 수준있는 저서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사회현실을 보는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 자체가 억압의 대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로부터 20세기의 영화예술에 이르는 온갖 장르를 일관된 '사회사'로 서술한 예술의 통사는 교양과 지적 해방에 대한 한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바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러한 특성은 원저가 출간되기 시작한 1950년대 초의 서양의 지적 풍토에서도 흔하지 않은 미덕이었음을 덧붙이고 싶다. 속류 맑시즘의 기계적 적용이 아닌 예술비평을 이처럼 방대한 규모와 해박한 지식 그리고 자신만만한 필치로 전개한 사례는 그후로도 많지 않았기에, 하우저의 이 저서는 오늘도 여전히 이 분야의 고전적 저술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으로 안다... 
'예술사면 됐지 어째서 예술의 사회사냐'는 시비 또한 지속된다고 할 때, 예술도 하나의 사회현상이고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마땅하다는 저자의 발상은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도전임을 짐작할 수 있다."

- 백낙청(번역자), <새로운 개정판에 부쳐>

***

물론, 지금 시대에는 '토종 미학자' 유홍준의 저서나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등을 보면서 '예술의 사회사'를 접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고전은 고전'이다.

'세계사 입문의 고전'인 [곰브리치 세계사]를 우리 아이들과 한장 한장 읽듯이 두고두고 곱씹으며 후세들에게 권할 수 있는.

헝가리 태생 맑스주의 예술사학자 아르놀트 하우저는 "자연주의(리얼리즘)란 실상 새로운 관습을 지닌 낭만주의"라 규정하는가 하면, "인상주의는 자기중심적인 심미적 문화의 정점으로 실제적이고 활동적인 삶에 대한 낭만주의적 체념의 극단적 귀결"이라고도 하며, "20세기 인상주의의 부정"이자 "표현의 직접성을 위한 투쟁"으로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적인 움직임"이라면서 '낭만주의'를 '예술의 사회사'에서 가장 주요한 문예사조로 보는 듯 하다.
엥겔스가 발자크의 '사실주의(자연주의)'를 통해 '리얼리즘의 승리'를 보았다면, 하우저는 문예의 사회사를 통해 혁명적 '낭만주의의 승리'를 보았을 수도 있다.

역사적 유물론의 시각으로 접근하되 문예사조를 '도식화'하지 않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단연 '예술사의 고전'이다.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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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1번지 경주 - 2박 3일 경주 제대로 즐기기
최동군 지음 / 도서출판 담디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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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정보] 2박3일 '경주답사'

* 1일차
- 대릉원 (미추왕릉, 황남대총, 천마총 등)
: 박,석,김씨가 돌아가며 왕이 되었던 신라에서 최초의 김씨왕이었던 미추왕릉과 황남동에 있는 가장 큰 쌍무덤인 황남대총 발굴전 연습삼아 팠다가 천마도를 비롯하여 보물대박맞은 천마총이 있다. 주인이 밝혀진 묘는 미추왕릉 뿐인데 김씨 자손들이 관리한다고 문을 안 열어준다.
- 첨성대 
: 선덕여왕때 지은 천문관측대로서 별로 높지도 않은 구조물에서 별을 관측했다기 보다는 권력을 자랑하는 상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답사의 출발점으로 삼으면 된다.
- 언양 불고기 
: 옛날에는 유명했으나 지금은 실질보다는 명성만 남아 비싸기만 하다. 경주에서는 40분 걸리는 언양보다 좀더 가까운 봉계를 가란다. 도축장이 언양에서 봉계로 옮겼다나.

* 2일차
- 분황사지 모전석탑 (신라 탑 형성기)
: 고대 인도 산스크리트어 '스투파'의 뜻은 '무덤'이다. '스투파'가 중국 한자로 '탑파'가 되고 우리에게 넘어와 '탑'이 되는데, '석탑'은 '석조탑파'의 준말이며 원래 '탑'은 부처님의 존엄한 사리를 묻은 '무덤(스투파)'으로 원시적 탑은 건물과 같은 크기였으나 시간이 흐를 수록 불상을 모신 금당과 함께 작게 지어지게 된다. 분황사지 탑은 현재 남은 신라 탑 중 가장 오래된 탑으로 돌을 벽돌처럼 가공한후 쌓아 올렸다 하여 '모전석탑'이다. 원래 9층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훼손되었다. 원효대사가 머물며 저술활동을 했다는 분황사 또한 현재 약사여래 한 분만 남았다.
- 황룡사지 
: 신라에서 가장 높았을 높이 80m 황룡사 9층 거대목탑이 있던 절터로 분황사 바로 옆이다.
- 불국사 (토함산 불국사)
: 현세의 석가여래를 모신 대웅전 마당에는 신라탑 완성기인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고, 바로 서쪽에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가 있는 극락전, 더 높은 곳에 청정법신 비로나자불을 모신 비로전 등 부처님의 나라 '불국'을 형상화한 우리 사찰 가람배치의 표본이다. 돌들의 자연적인 형태와 어우러진 건축기법에  산세를 이용한 다른 절들과 달리 산중턱 평지에 조성한 사찰로서 청운교/백윤교 등의 인공적인 계단을 통해 부처님의 세계로 진입하는 구조이다.
- 석굴암 (토함산 석불사)
: 신라 재상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석굴암)를 지었다고 한다. 일제의 시멘트 보강으로 습기와 이끼가 계속 차서 지금은 유리로 막아 에어컨으로 건조시키고 있어 자세한 내용은 근처 신라역사과학관에서 볼 수 있단다. 신라불상의 완성기 부처님이다.
- 장항리 사지 5층 쌍탑 (신라탑 변화기)
: 불국사와 문무대왕릉 사이 장항리에 있는 이름모를 절터에는 신라탑 변화기의 탑이 산중턱에 있다. 계곡을 건너 103개의 나무계단을 오르면 고즈넉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 감은사지 3층 쌍탑 (신라탑 형성기 말기)
: 문무왕을 기리기 위해 문무대왕릉 옆에 조성했다는 감은사 터에 남은 쌍탑은 경주국립박물관에 있는 고선사지 석탑과 비슷한 시기 석탑양식이란다.
- 대왕암 (문무대왕릉)
: 신라를 통일한 문무왕이 죽어서라도 왜구를 막겠다면서 묻혔다는 동양 유일의 수중릉이며 호젓하게 바닷가를 거닐 수 있다.
- 감포항 (대게, 회) : 경주의 항구
- 안압지 (동궁과 월지) 
: 신라 태자들 궁이며 국가행사를 열던 곳으로 오리와 기러기가 찾아와 안압지라 한단다. 야경을 볼 수 있도록 밤 10시 넘어까지 개장한다.
- 그 외 시간되면 김유신묘, 태종무열왕릉 등도 돌아볼 수 있다.

* 3일차
- 경주 남산 (마애불 군락)
: 토함산과 함께 '경주5악' 중 하나라는 궁궐 남쪽 남산에는 바위에 부조로 새긴 마애불이 많다.
- 경주민속박물관 (경주답사 총정리)
: 성덕대왕신종과 고선사지 석탑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보들이 모셔진 박물관에서 경주답사를 마무리한다. 어느 지역이든 박물관을 들러 그 지역의 역사를 총정리할 것을 강력 추천한다.

* 참고서적
- [답사여행 1번지 경주], 최동군, <담디>, 2016.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 유홍준, <창비>,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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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8
이진경 지음 / 그린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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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회] 제10차 독서회 - '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이라는 우리의 '무기'
- [해방전후사의 인식],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등


박근혜 파시즘의 '수구독재'와 '여소야대'에도 불구하고 보수야당들의 우경화로 인한 '의회반동'의 지금 시대를 헤쳐나가는 길은 우리 역사에 대한 철학적 관점과 이를 무기로 한 '구체적 정세에 대한 구체적 분석'입니다.

산별교육원의 날 - '수요회' 제10차 모임은 1989년 완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6권을 중심으로 하여, 일제강점기 조선과 해방공간(1945~1948) 한반도의 '사회구성체'를 보는 관점으로서 '사회과학방법론'에 대한 논의를 하였습니다.

1. 사회과학방법론 

사회과학방법론은 이론적 전개 속에 사상적, 철학적 원칙을 관철시키는 방법으로서 개별적 대상으로서 구체적 정세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합법칙적 내용을 담은 원칙을 적용시키는 방법적 원리이며, 개별적 대상의 제 현상형태를 본질적 관계 속에서 전체로서 파악하기 위한 방법론적 원리입니다. 즉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철학적 방법론'입니다.
사회과학방법론에서 중심이 되는 문제는 보편적 원칙과 보편원칙에 입각해 개별적 대상의 다양한 모든 현상형태를분석하는 보편과 개별의 통일 문제이고, 따라서 방법론에 있어서는 특수성이 그 중심범주가 됩니다.

사회과학의 철학적 원칙이자 방법론적 전제로서 기본범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계급성 : 사상, 이론은 계급적 존재를 반영하므로 특정 계급의 세계관으로서의 철학(변증법적 유물론)
2) 객관성 : 사회적 존재(토대:경제적 생산양식)가 사회적 의식(상부구조:정치,사상,이데올로기등)을 규정한다는 역사적 유물론
3) 총체성(전체성) : 전체의 한 계기로서 여타 관련 개별대상간의 관계속 사유
4) 특수성 : 개별과 보편, 보편성과 개별성의 통일 속에서 구체적 대상의 특수성 규명

2. 사회구성체론

포괄적 개념인 '사회(Society)'와 '사회구성체(Social Formation)'는 구별되는 개념으로서 '사회'는 정태적, 현상적 개념인 반면, '사회구성체'는 본질적, 동태적 개념으로서 그 토대(경제적 생산양식)의 '이행'과 '발전경향'을 전제로 합니다.

20세기초 각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동아시아(중국,일본,조선)적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승리한 이론은 일제강점기 조선을 '식민지반봉건제' 사회로 규정한 측이었던 바, 이 관점은 이후 해방공간의 미군정 시기와 남한 근현대화 과정에서도 '주변부반자본주의' 등의 과정도 잠시 있었으나 주류 사회구성체 이론을 구성합니다. 이들은 '민족해방파'의 관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민중민주파' 입장에서는 식민지 시대의 봉건적 현상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발전경향이 있었음을 주목하며 해방공간 사회구성체를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사적 시장조절 메커니즘'으로서의 '독점자본주의'와 이를 통제하는 '공적 메커니즘'으로서의 '국가'가 단일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김세균 교수) '국가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이에 국제정치의 제국주의적 종속성를 결합한 이론이 바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구성체 이론입니다.

이후 6.25 한국전쟁의 기원과 의의를 서로 논하는 과정을 거치고 결국 이러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을 2016년 한국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관한 열띤 논의가 있었습니다.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관점과 입장은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철학의 관점으로서 '사회과학방법론'과 사회경제적 토대의 발전과 이행을 전제로 해당 사회의 성격을 유물론적으로 규정하는 '사회구성체론'은 더 나은 세계를 기획하는 사람들의 유용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노동개악 저지!"

* 참고
- 이진경,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1987.
- 김세균, [(종속적)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 1999.
- 박명림, 백일 외, [해방전후사의 인식] - 6권, 1989.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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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7
안재성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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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잊혀진 역사'를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 - [박헌영 평전]과 [이현상 평전], 안재성 


일제강점기 단 한 번도 일제에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 대다수는 '공산주의자'였다. 

해방공간에서 미국과 소련의 영향으로 남북의 단독정부가 들어선 후 그 불굴의 '공산주의자'들은 잊혀졌다.

'조선의 레닌' 박헌영과 '조선의 체 게바라' 이현상 등 항일독립운동가들에 관한 '일제강점기 노동운동사 전문작가' 안재성 선생의 저서들을 읽어보는 것도 '잊혀진 우리 현대 역사'를 찾는 하나의 방법이다.


1. [박헌영 평전], 안재성, <실천문학사>, 2009.

: 몰락 양반가의 ‘서자’로 1900년에 태어나 1955년 북조선공화국 정권으로부터 미제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남한 공산주의 운동의 최고지도자 박헌영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남북한 단독정부 건설로 인한 분단초기와 한반도 내전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다. 소비에트연방의 스탈린과 중국인민공화국의 모택동 등의 국제적인 공산주의 지도자들로부터 ‘조선의 유일한 공산주의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공산당 건설 사업에 매진하다가 해방 후 중도민족주의자들과의 연대전술을 꾀하면서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의 지도자로 역할을 하는데, 박헌영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식민지 해방투쟁을 벌인 국가의 혁명 단계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로 설정한 코민테른의 지침을 ‘교조적’일 정도로 준수하려 했던 ‘원칙주의자’였기에 가능했다고 저자는  평가하고 있다. 월북 후에는 김일성에 의해 소위 ‘정의의 반격전쟁’으로 시작된 6.25 과정에서 전쟁을 묵인하는 등 소신없이 처신하다가 ‘패전의 원흉’이자 ‘미제의 간첩’의 혐의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역사에서 뛰어난 인물은 아닐지라도 대다수 민중들이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박헌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가 관통해 왔던 우리 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평전이다.


2. [이현상 평전], 안재성, <실천문학사>, 2007.

: 1905년에 충남 금산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6.10 만세운동' 등 일찍부터 항일운동을 시작한 매우 과묵한 인물로서 일제강점기 내내 민족해방, 계급해방의 염원으로 수년간 옥고를 치르면서 단 한 번도 일제에 굴하지 않아 일제경찰로부터 '고문강자'라는 별명까지 얻어낸 '강철'과도 같은 캐릭터의 소유자이다. 이재유, 김삼룡과 함께 '경성트로이카', 박헌영, 이승엽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 재건 '경성콤그룹'을 주도하며 남로당 최고간부를 역임하다 1948년 '여순반란'을 계기로 이후 5년간 그 유명한 '빨치산 부대'를 이끌었다. 공식 직함은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다. 일제강점기 항일의 최전선에서, 해방후 항미 유격대를 이끌던 중 6.25 전쟁을 맞았고 '남조선 후방 교란의 임무'를 수행했다지만, 이현상이 이끈 '빨치산'은 우리땅을 다시금 지배하려는 또 하나의 제국주의 미국에 항전하는 '항미 유격대'였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남북의 정권으로부터 배제되어 외롭게 하산하던 중 사망한 그는 '조선의 체 게바라'였다. 이현상 사살을 둘러싸고 군경이 서로 '공적'을 경쟁하였는데, 초왕 항우가 죽은 후 '공적'을 위해 한나라 장수들이 사지와 머리를 찢어가는 [항우본기] 기록이 떠오르기도 하나, 어쨌든 이현상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저자 안재성은 그의 죽음을 이렇게 정리한다.

"이현상은 죽었다. 어떻게 죽었는가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누가 어떻게 죽였든 그의 죽음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다. 민족해방의 이름으로, 계급해방의 이름으로, 그리고 인간해방의 이름으로, 자신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던 한 따뜻한 인간의 죽음일 뿐이었다. 지리산에서 죽어간 수많은 유격대원의 죽음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 민족사의 비극일 뿐이었다."


3. [잃어버린 한국 현대사 - 파와 순수의 시대를 살아간 항일독립운동가 19인 이야기], 안재성, <인문서원>, 2015.

: 박헌영, 이현상을 비롯하여 김삼룡, 이주하, 이관술, 이승엽, 이강국, 최용달, 김무정, 박진홍, 김원봉 등 불굴의 항일독립운동을 했으나 남북의 역사에서 잊혀진 위인들의 열전이다.


***


남북의 현대사에서 '잊혀진'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강자에게는 굽힘없이 강하고 약자에게 한없이 약했던 그들의 독립운동이 위대한 이유는,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더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존경과 사랑', '인간해방'의 원대한 목표를 꺾지 않았기 때문이다.


'잊혀진 역사'를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는,

지금은 당장 도달할 수 없어도 굽히지 않고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인류의 위대함'을 다시금 되새기기 위함이다.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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