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재정론은 틀렸다 - 화폐의 비밀과 현대화폐이론
L. 랜덜 레이 지음, 홍기빈 옮김 / 책담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MMT'의 '정치경제학'
- [균형재정론은 틀렸다](2015), 랜덜 레이,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우리는 화폐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게 해줄 새로운 이야기 프레임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확산시켜야만 한다.
이 새로운 이야기 프레임은 시장, 자유교환, 개인의 선택 같은 것으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어야 한다. 우리는 사회라는 메타포와 공공의 이익 같은 개념들을 필요로 하며, 그런 것들로 개개인들의 사적 이익의 계산을 대체해야만 한다. 우리는 정부가 수행하는 적극적, 긍정적 역할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거기에 쓰이는 돈은 우리 모두를 윤택하게 한다는 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 [균형재정론은 틀렸다], '10. 결론 : 주권통화와 현대화폐이론', 랜덜 레이,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세계적 금융 위기로 자본주의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전세계 '비주류' 경제이론가들이 이 체제의 '불평등' 문제에 천착하면서 체제 변혁의 이론인 마르크스주의와 그 실천 강령으로 '사회주의' 일반이 다시 주목받기도 하는 지금이다. 의도하든 아니든 '평등'이나 '정의', '분배'를 강조하고자 한다면 어쨌든 '사회주의' 영역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다수가 함께 잘 살려면, 자유로운 '시장'은 허상이며 좀더 평등한 '분배'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체제는 명실상부한 '금융자본주의'이기에 '화폐'라는 금융의 한 형태를 중심으로 현 체제 해석의 이론이 다시 제기되기도 한다. 이른바, '현대화폐이론(MMT : Modern Money Theory)' 이야기다.


미국 켄사스 주 미주리대학 경제학 교수인 랜덜 레이(Randall Wray)는 'MMT'의 주도적 이론가로 2015년에 이론적 연구와 블로그 소통의 내용들을 소재로 'MMT 입문서'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의 대안 경제학자 홍기빈 박사가 2017년에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국역 제목은 [균형재정론은 틀렸다]인데, 타협의 여지 없이 단호한 선언이다. 번역체도 단호하면서 시원시원하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재정적자를 경계하면서 정부의 지출이 많아지는 것을 개인이 돈을 흥청망청 써서 거덜나는 것과 동일시하며 정부의 '균형재정'이 깨지는 것을 죄악시한다. 
이 책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서부터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MMT가 확신있게 주장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주권국가의 정부재정은 가정경제 및 기업과는 다르다는 부분일 것이다. '미연방정부가 예산을 운영하는 식으로 우리집 가정경제를 운영했다가는 파산이 날 것이다'라는 말이 사방에서 들린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의 적자를 통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MMT는 이러한 비유가 그릇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권국가의 정부는 자국통화로 지불을 행하는 한 지급불능 상태에 처할 수가 없다. 이러한 정부는 자국 통화로 가치가 매겨진 채무에 관한 한,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언제든 모두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 우리(MMT)의 주장이다."
- 랜덜 레이, 같은책, '서론'.


경제이론을 쉽게 설명하기란 난망하다. 그러므로 나는 MMT를 개념 중심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현대화폐이론'이므로 우선, '화폐'부터 시작한다. 다음으로 '주권국가', '조세', '변동환율제', '기능적 재정론', '완전고용', '인플레이션', '불평등 해소', '수입통제'와 '자본통제' 개념들을 따라 '공공성'의 정책적, 정치적 문제로 마무리된다.


MMT는 고전적인 '상품화폐'설을 부정한다. 상품들이 교환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일반적 등가물'로서 '화폐'는 그 형태가 조개껍데기든 금속이든 동전이나 지폐든 관계없이 '계산화폐'이지 '상품'을 매개하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류경제학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주저인 [자본론]에서도 근거하고 있는 '상품화폐론'을 과감하게 폐기하는 MMT 입장에서 모든 '화폐'는 케인즈식 '계산화폐'이자 '주권정부'가 발행하는 '부채의 증표'로서 '명령화폐'다. 즉, '통화 발행자'인 '주권국가'가 정식 통화로 모든 사람들이 일률적으로 받아들이고 쓰게끔 '명령'하는 것이 '화폐'의 본질이며, 케인즈에 따르면 4천년 '국가'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이야기다.


"... '화폐'는 본래 지배자들이 신민들이 내야할 수수료, 벌금, '조세'의 가치를 정하기 위해 창조한 측량단위이다. 신민들 혹은 시민들을 부채 상태로 몰아넣게 되면 실물자원들을 동원하여 '공공'의 목적에 쓸 수 있게 된다. '화폐 유통의 추동력은 조세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창출된 자원들을 정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화폐가 창조된 것이다. '조세'는 우선 실물의 재화 및 서비스 판매자들을 창조하기 위해 기능하며, 그 다음에는 '공공' 목적의 추구를 비롯한 여러 더 심화된 결과들로 만들어내게 되었다."
- 랜덜 레이, 같은책, '5. 주권국가의 조세정책'.


'명령화폐'성의 본질이 밝혀지면, 다음은 이 '통화 발행자'인 '주권국가'가 부과하는 '조세'의 역할이 밝혀져야 하는데, 예로부터 '국가권력'에 의한 강탈인 벌금이든 '십일조'든 모든 형태의 세금, 즉 '조세'는 1) '통화 유통을 추동'하고, 2) '총수요를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화폐 유통의 추동력은 조세"라는 명제는 이 책에서 수십번 반복되는 말인데,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비유 역시 수십번 등장한다. 바로 '거시경제학'에서 '항등식' 이야기다. 즉, '거시경제학'의 주체들의 관계에서 '통화 발행자'인 국가(정부)는 '통화 사용자'인 '가계(개인)'와 '기업'과 달리 대차대조표상 '적자'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것인데, 정부의 '지출(적자)'은 금융자산의 형태로 중앙은행의 준비금으로 쌓이고 이는 각 운행의 준비금으로 이전되면서 다른 민간 주체들의 '소득(흑자)'이 된다는 '항등식'이다. 두 사람이 맞춰 추는 '탱고'처럼, 공적 정부의 '적자'는 민간의 '흑자'라는 얘기다. 통화를 발행하는 정부는 '소득'이 있은 후에 '지출'을 행하는 민간 주체들과 달리 '지출'을 먼저 행하고 '조세'를 걷는데, 정부가 행한 '지출'을 전부 '조세'로 거둬들여 '균형재정'을 이루면 민간 주체들에게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짠돌이 국가'의 국민들은 '가난하다'.


"... 그냥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이야기야? 그렇다. 바로 그거다."
- 랜덜 레이, 같은책, '서론'.


'통화 발행자'인 국가는 무한대로 '돈'을 찍어낼 여력이 있다. 재무부는 '포인트'와 같은 '주권통화'를 "엔터키를 때려서" 은행의 준비금으로 쌓는다. 이 얘기를 들은 주류 경제학자들이나 민간 주체들은 경악하면서 '인플레이션'을 걱정한다. 여기서 '변동환율제'는 국내 통화 가치의 무한정 하락을 방지하는 유효한 정책이 되고, '균형재정론'의 대안인 '기능적 재정론'은 경기변동에 따라 재정정책을 유동적으로 조정하면서, 이렇게 '무한정' 발행되는 '돈'들은 케인즈식 '유효수요'를 넘어서 모든 사람들의 노동과 소득을 창출하는 '완전고용제' 정책으로써 국가의 '총수요를 안정화'한다. 물론 '일자리 보장/최종 고용자'로서의 국가의 역할은 20세기 중후반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외 다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채택되지 않은 정책이다. 그들은 거대 금융기관에 천문학적 '공적 지출'을 행하면서 한편으로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잡는 정책들을 시행했는데, MMT는 정부의 무한대 '지출 여력'을 통해 노동대중의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최종 고용자'로서 '완전고용'을 통해 '총수요를 안정화'하는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한다. 소득과 임금이 일정하게 오르는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할 뿐더러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게 MMT의 입장이다.


"... '노동'은 모든 생산 과정에 들어가는 투입물이므로 이 (일자리 보장/최종 고용자) 프로그램으로 임금이 안정화되면 그에 비례하여 모든 생산물의 생산 비용 또한 더 안정화될 것이다... 우리(MMT)의 주장은 이 '일자리 보장/최종 고용자' 프로그램이 통화의 국내적, 대외적 가치 변동에 있어서 하나의 무게중심을 제공하며, 이렇게 하여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실제로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얻어 보수를 지급받을 권리는 '인권'의 일부라는 것이다."
- 랜덜 레이, 같은책, '8. 완전고용 및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


MMT는 스스로의 정책을 "좌파도 우파도 아닌" 이론으로 "실제 현실의 묘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공공성'을 추구한다는 명확한 선언을 하면서 '진보'와 같은 편임을 천명한다. MMT는 자신들의 정책이 개발도상국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현실의 묘사"로서 피할 수 없는 형태이며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재정적자를 내는 미국 정부가 전세계 무역에서 다른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를 유도할 수도 있다는 다분히 '윤리적'인 결론을 비추기도 하나 이 지점은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더라도, '주권국가'들의 주체적 '재정적자'를 통해 노동대중들의 소득을 안정화하면서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으면, 만일 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해 '인플레이션' 등의 부작용 방지를 위해 "부자들에게 전가"하는 '불평등 해소'의 적극적인 계급적 정책을 내놓기도 한다. 단, 토마 피케티식의 '누진세'나 '부유세' 등의 지출 사후적 조세적 형태보다는 다수의 '소득 안정화' 등의 사전적 조치를 선호한다. 
MMT가 '진보'의 편인 이유는, '노동'을 중요한 '인권'으로 인식하고 다수 '노동'의 가치를 무엇보다 정치(정책)적으로 중시하기 때문이다.


"MMT의 여러 원리는 모든 '주권국가'에 해당된다. 그렇다. 모든 '주권국가'는 국내의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무역적자를 낳을 수가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통화 환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이것이 인플레이션 전달장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주권통화'를 발행하는 정부라면 이러한 결과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많이 갖게 된다. '수입 통제'와 '자본 통제'가 그 예이다. 국가의 직접고용, 직접투자, 그리고 전략적 발전 등의 정책들도 취할 수가 있다."
- 랜덜 레이, 같은책, '10. 결론'.


이 책은 어쨌든 '경제학' 책이므로, '경제학'이 어려운 독자는 '서론'과 '결론'을 먼저 읽고 '본론'은 나중에 순서대로 읽되 중간 박스 기사들은 이해 안되면 건너뛰는 게 좋을 듯 싶은 게 내 독후감이다. 그만큼, 같은 명제들이 여러 번 반복되며, 이 내용들은 '서론'과 특히 '결론'에서 강조되고 있다. 


"실제 현실의 묘사"이자 "금융 공공성"을 지향하는 MMT의 화두는 결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며, "화폐의 본성에 대한 이해로 시작하는 하나의 '세계관'을 내놓고 있다(같은책, '9. 인플레이션과 주권통화')."

그러므로, 노동대중 다수의 '소득 안정화'를 통해 함께 잘 사는 '정치경제학'을 지향하는 MMT의 또 다른 결론 중 하나는 '자유 시장'의 허상을 깨는 "자본 통제"일 수 밖에 없다. 20세기 중반의 케인즈와 칼 폴라니, 현재의 장하준 등의 '진보' 경제학이자, 수학 공식과 '균형재정'에 기반한 주류 '경제학'을 넘어서 국가권력의 적극적 '정치(정책)'를 강조하는 또 하나의 '진보'적 '정치경제학'인 것이다.


"... 우리 모두가 우리 스스로를 돌보는 것...
정부가 돈이 떨어지는 상황이란 있을 수가 없다. 정부는 우리 모두를 돌볼 재정적 여력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기술적으로 현실성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행해볼 재정적 여력이 있다. 문제는 기술, 자원, 정치적 의지이다. 우리에게는 기술과 자원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를 굳건히 하여 정치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이야기 프레임이 필요하다."
- 랜덜 레이, 같은책, '10. 결론'


***

- [균형재정론은 틀렸다 - 화폐의 비밀과 현대화폐이론(MMT)](2015), 랜덜 레이,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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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B - 3집 The Third Wave [재발매]
공일오비 (015B) 노래 / 대영에이브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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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옛생각을 끊어야지...]


중년이 꺾어지고 또 꺾어지는 이 가을에,
오랫만에 듣게 된 내 어릴적 대중가요를 기화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부질없고 찌질한 내 옛 시절이 자꾸자꾸 떠올라 끊었던 담배를 사러 그 새벽에 기어이 뛰쳐나가고야 말았다.


1. 'Santa Fe' - [015B] 3집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 효종이와 우리집 반지하 방에서 함께 살았다.
등교 10분 거리라 같이 거의 지각하면서.

대입이 끝난 후 효종이는 구리 돌다리 사촌누나 집으로 홀연히 떠났고,
나는 내 '서정의 기원' [015B]의 '세번째 물결' 뒷면 첫곡 'Santa Fe'를 들으며 망우리 공동묘지를 넘어 친구를 찾아갔다.
형들이 많아 조숙했던 효종이는 '비틀즈' 밖에 모르던 내게 '팝송'이 뭔지 가르쳐주었고, '개그욕심'을 일깨워 주고는 기약없이 떠난 터였다.
그렇게 다가올 스무살에는 오로지 나 혼자 '개그'를 해야했다.

이 곡을 떠올리면,
92년 말 93년 초 그 겨울길과,
새로 시작될 우리들의 불안한 청춘과,
겨울입김을 담아 내뿜던 담배연기에 실린 우리들의 농담이 짙게 배어온다.


2. '여름 이야기' - [무한궤도] 1집

"잊어버렸던 첫사랑의
설레임과 떨려오는
기쁨에 다시 눈을 감으면
너는 다시 내곁에 예쁜
추억으로 날아들어
내 어깨 위에 잠드네~"
- '여름 이야기', [무한궤도] 1집, 1989.

고등학교 때 친구 철호네 집에서 처음 알게 된 [무한궤도 1집] '여름 이야기'를 들으면,

동대문구 이문동 충남수퍼 앞 횡단보도와 그곳에 서 있는 여자아이가 왠지 내게도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혼자 좋아했던 오미나랑 고등학교 때까지도 우연히 마주치면 뒷모습까지 계속 눈으로 쫓던 김화영이 생각난다.

물론,
찌질하고 못생겼던 나는 말 한마디 붙여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무한궤도]의 '여름 이야기'를 흥얼거리면, 그 여학생은 "예쁘게 날아들어 내 어깨 위에 잠들었다."

아울러,
내게 [무한궤도] 뿐만 아니라 너무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면서 초딩때부터 줄곧 붙어다녔던 내 오랜 친구 철호가 늘 건강하게 나랑 오래오래 붙어서 놀아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3. '눈물나는 날에는' - [푸른 하늘] 2집

"나에게 올 많은 시간들을
이제는 후회없이 보내리
어두웠던 지난날을 소리쳐 부르네
아름다운 나의 날을 위하여~"
- '눈물나는 날에는', [푸른 하늘] 2집, 1989.

중학교 때는 큰 누나가 이선희, 셋째 누나가 전영록에 빠져 카세트 테이프를 사댔는데 나는 레코드점 한 번 못 가봤다.
그 때는 '좀 놀아보이던' 키 큰 친구 민상이가 멀리서 놀자고 불러도 삥뜯길까봐 도망가던 내 인생의 '중세 암흑기'였다.

고등학교 올라가서 친구들을 많이 만나 내 인생은 '근세'에 접어들었는데, 친구들 생일선물 사려고 레코점을 몇 번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생일이 세 개나 되던 민상이로부터 '푸른 하늘'과 '윤상'을 알게 되었다. 특히 [푸른 하늘] 테이프는 민상이에게 한 번 빌리면 반납 안하고 '존버'하다가 수차례 독촉을 받고 거의 절교 전 결국 테이프 다 늘어진 다음에 돌려줬다.

1981년에 인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살던 '이오사' 높은 구석집과 여인숙 단칸방에서, 일요일 아침 KBS에서 하던 [디즈니]와 MBC '명작만화'를 누나들과 옹기종기 보던 어린시절도 흐리게 떠오른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마 그 여인숙에서 잠깐 본 것 아니었을까.

아무튼,
원래부터 심하게 구겨져 있던 가세가 펴진 적이 없던 어린 나와 민상이는 이제 어른이 되어 꼭 남들처럼 풍족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4. ...
담배를 안 피우려면,
옛생각을 먼저 끊을 일이다.


(202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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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4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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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를 돌면
- [빨간 머리 앤](1908), 루시 몽고메리, 최지현 옮김, <보물창고>, 2011.




"다행히 매튜는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면할 수 있었다. 매튜가 자신에게로 오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여자 아이는 햇볕에 그을린 앙상한 손으로 낡아빠진 구식 여행가방의 손잡이를 잡고 일어서더니 남은 손을 매튜에게 내밀었다.
'초록 지붕 집의 매튜 커스버트 씨죠?'
아이는 독특하게 맑고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아저씨가 저를 데리러 오지 않으면 어쩌나 막 걱정을 하던 참이었어요.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서 아저씨가 오지 못하는 걸까, 상상하고 있었어요. 혹시라도 오늘 밤 저를 데리러 오지 않으시면 기찻길을 따라 가 저기 모퉁이에 있는 커다란 야생 벚나무에 기어 올라가서 밤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참이에요. 전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온통 하얗게 꽃이 핀 벚나무에서 달빛을 받으며 잠을 자는 건 정말 낭만적이지 않을까요? 대리석으로 꾸민 커다란 방에 살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아저씨가 오늘밤에 오지 못하더라도 내일 아침에는 꼭 오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매튜는 아이의 작고 앙상한 손을 어색하게 잡고는 당장 어떻게 할지 마음을 정했다. 두 눈을 반짝이고 있는 이 아이에게 착오가 있었다고 자기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 마릴라가 대신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 [빨간 머리 앤], <2. 매튜 커스버트, 놀라다>, 루시 몽고메리, 1908.


내가 어릴적인 1980년대는 방송국에서 'TV 명작동화' 시리즈를 줄창 틀어줬다. 전부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우리집에는 노란색 표지의 <세계위인전집>과 <세계명작동화>가 한 질씩 있었는데 'TV 명작동화'를 감명깊게 본 후 '원작'을 꺼내 읽곤 했다. 가장 많이 읽은 내 '인생동화'는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이었다. 두번째인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 전집에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앨리스 애니메이션은 일본 것이 아닌 월트 디즈니판으로 기억난다. 세번째 감명깊은 게 [빨간 머리 앤]인데, 그 전집의 앤을 다 읽었는지 또한 기억나지 않는다. TV 시리즈와 동화전집이 뒤죽박죽되면 책을 읽었는지 만화를 본 건지 경계가 모호하다.

처가 둘째 딸 읽으라고 사준 [빨간 머리 앤]을 최근 우연히 읽고 나니, 사실 나는 루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을 처음 읽은 거였다. 열네살인 둘째에게 '앤이 열여섯살에 끝나더라'라고 전하니 옆에서 듣던 처가 '앤이 열여섯에 죽느냐?'고 묻는 걸 보니 처도 안읽은 거였다. 


1874년에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태어나 외조부모 손에 자란 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는 외지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홀로된 외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자전적 이야기를 각색하여 [빨간 머리 앤]을 18개월간 지었다고 한다. 2년간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다가 1908년에 보스턴 출판사에서 출간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후속 얘기를 쓰기도 했다.
수다스럽고 끊임없이 떠들어제끼며 '상상개그'를 날려대는 열한살 빨간 머리 앤은 아마도 루시 몽고메리 본인의 자화상이었을 게다. 1995년 조숙한 여자아이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 [새의 선물]의 그 꼬마가 작가 은희경 본인이었을 거라는 그 추측처럼.

마차타고 달리는 가로수길을 '기쁨가득 새하얀 길'로 이름붙이고, 본인의 빨간 머리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며, '앤'이라는 이름은 촌스럽고 평범하니 '코델리아'라고 불러주거나 아니면 끝에 'e'가 붙는 '앤(Anne)'으로 불러달라고 막무가내로 부탁하는 열한살 고아소녀의 특징은 단연 '상상력'이다. 결국 머리가 좋고 시골학교에서 성적도 좋아 도시의 사범학교 같은 곳으로 진학하기도 하지만, 앤의 '개그'는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과 끊임없는 연습의 결과일 수 있겠다. 매튜 아저씨를 만나자마자 내던지는 장황한 말들은 아마도 기차역에서 그를 기다리는 내내 연습하고 외워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아, 제발 저를 코델리아라고 불러 주세요. 어차피 제가 여기서 잠시 동안만 있을 거라면 아주머니가 저를 뭐라고 부르든 아무 상관없잖아요. 앤이란 이름은 너무 낭만적이지가 않아요."
- [빨간 머리 앤], <3. 마릴라 커스버트, 놀라다>


이런 식이다. 남자 아이를 입양하여 일꾼을 만들려던 매튜와 마릴라 커스버트 독신남매가 착오로 여자 아이가 온 것을 알고는 초록 지붕 집에 살지 못할 수도 있는 '절망' 앞에서도 '상상'과 '개그'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과 '절망'의 극과 극을 오가는 이 빨간 머리 소녀는 당장 내일 지구가 망한다 하더라도 '유언개그'를 날릴 참인데, 사실은 불우하고 가난한 환경을 버텨낸 힘이 그것이다. 교사인 부모가 열병으로 일찍 돌아가고 어린 나이부터 다른 집 더부살이를 하며 보모일을 했고 그조차도 여의치 않아 고아원에 갔을 때는 깨진 유리에 비친 자신과 숲에서 메아리치는 본인 목소리에 이름을 붙여 끊임없이 상상하고 대화하면서 수련한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다. 절친 다이애나에게는 슬쩍 "가난해서 위안이 되는 게 한 가지 있지. 상상할 것들이 많다는 거야."라며 '비기'를 전하기도 한다.


"어른이 되는 건 그래서 나쁜가 봐요. 그 사실을 이제 막 깨닫기 시작하고 있어요. 어릴 때 그렇게 원하던 것도 막상 가지고 보면 그다지 멋지지 않거든요."
- [빨간 머리 앤], <29. 새로운 경험>


끊임없이 수다를 떨던 앤은 열세살을 넘어가는 '틴에이저'가 되면서 말수가 다소 줄었는데, 서구에서는 '-teen'으로 끝나는 13세부터 19세까지가 'Teenager'라 하니 우리로 치면 '사춘기'가 되었는지 마릴라 아주머니한테 제법 어른스러운 말과 표정을 지어주기도 한다.


"마릴라는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말끝에 한숨을 내쉬었다. 앤이 자란 걸 보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진 것이다. 자신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아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 눈앞에는 진지한 눈빛과 사려 깊은 듯한 눈썹, 그리고 당당한 표정을 한 키 열다섯 살짜리 소녀가 서 있는 것이다."
- [빨간 머리 앤], <31. 시냇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


'모태독신녀'로 알려진 마릴라 아주머니는 사실 앤의 수다개그와 상상개그를 핀잔은 하지만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그만큼 말수가 줄어들고 커가는 앤을 보며 무척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고 앤이 애써 무시하려는 '훈남' 길버트의 아버지와의 젊은 시절 '썸'타던 얘기도 해준다. 
자녀와 함께 크고 그만큼 변하는 부모의 모습이다.


"난 나 이외의 어느 누구도 되고 싶지 않아. 평생 동안 다이아몬드로 위로를 받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야. 난 진주 목걸이를 한 초록 지붕 집의 앤이라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 매튜 아저씨가 분홍 드레스 부인의 보석보다 훨씬 더 깊은 사랑을 그 목걸이에 담아 주셨다는 걸 난 아니까."
- [빨간 머리 앤], <33. 호텔 발표회>


그래서 우리가 [빨간 머리 앤]을 보며 그 아이의 성장을 통해 배운 것은 미친 '상상력'과 주체못할 '개그욕심'만은 아니다. 바로 빨간 머리로는 결코 행복할 수 없고 주근깨에 빼빼 말라 미남과 결혼도 못할 것이며 이름마저 촌스러운 불완전한 본인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존감'이다. 본인 뿐 아니라, 자신을 만들어준 환경과 함께해 준 사람들과 그 힘으로 성장하는 '나' 이외의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힘이다.


"... 이제 그 이정표에는 모퉁이가 있네요. 그 모퉁이를 돌면 뭐가 있을지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좋은 일들이 있을 거라 믿을래요. 모퉁이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에요."
- [빨간 머리 앤], <38. 모퉁이를 돌면>


매튜 아저씨가 심장병으로 죽은 후 대학 장학금까지 포기하며 마릴라 아주머니가 홀로 남은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교사로 돌아오는 앤의 선택은 그렇기에 빛이 난다. 더 좋은 길을 가지 못한 아쉬움이나 불행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어릴 때는 하루에 열두번도 더 '불행'과 '행복', '절망'과 '희망'를 넘나들던 상상력의 천재가 생각하지 않을리는 없다. 다만 이제 열여섯살 다 큰 앤은 그 생각을 수다로 풀지 않고 더 멋진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승화하는 것이리라.
자신이 바라보던 이정표에서 '모퉁이'를 발견했고, 그 '모퉁이'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멈칫하는 대신 앤 특유의 '상상력'과 '개그'로 극복하는 것.
[노자]가 말한 "대직약굴(大直若屈)"의 [빨간 머리 앤]식 표현이다. 역시 '크고 곧은 길은 작게는 굽어보이는 법'일테니.


스스로를 모태로 창조했을 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냈을 몽고메리는 결국 '모퉁이를 돌며' 이야기를 끝낸다.


"그리고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는 법이다!"
- 루시 몽고메리


***

1. [빨간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 루시 몽고메리, 최지현 옮김, <보물창고>, 2011.
2. [빨강 머리 앤], 몽고메리, <교원>, 2006.
3. [새의 선물], 은희경, <문학동네>,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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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 (양장) TV애니메이션 원화로 읽는 더모던 감성 클래식 2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애니메이션 <빨강 머리 앤> 원화 그림, 박혜원 옮김 / 더모던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모퉁이를 돌면
- [빨간 머리 앤](1908), 루시 몽고메리, 최지현 옮김, <보물창고>, 2011.




"다행히 매튜는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면할 수 있었다. 매튜가 자신에게로 오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여자 아이는 햇볕에 그을린 앙상한 손으로 낡아빠진 구식 여행가방의 손잡이를 잡고 일어서더니 남은 손을 매튜에게 내밀었다.
'초록 지붕 집의 매튜 커스버트 씨죠?'
아이는 독특하게 맑고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아저씨가 저를 데리러 오지 않으면 어쩌나 막 걱정을 하던 참이었어요.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서 아저씨가 오지 못하는 걸까, 상상하고 있었어요. 혹시라도 오늘 밤 저를 데리러 오지 않으시면 기찻길을 따라 가 저기 모퉁이에 있는 커다란 야생 벚나무에 기어 올라가서 밤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참이에요. 전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온통 하얗게 꽃이 핀 벚나무에서 달빛을 받으며 잠을 자는 건 정말 낭만적이지 않을까요? 대리석으로 꾸민 커다란 방에 살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아저씨가 오늘밤에 오지 못하더라도 내일 아침에는 꼭 오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매튜는 아이의 작고 앙상한 손을 어색하게 잡고는 당장 어떻게 할지 마음을 정했다. 두 눈을 반짝이고 있는 이 아이에게 착오가 있었다고 자기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 마릴라가 대신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 [빨간 머리 앤], <2. 매튜 커스버트, 놀라다>, 루시 몽고메리, 1908.


내가 어릴적인 1980년대는 방송국에서 'TV 명작동화' 시리즈를 줄창 틀어줬다. 전부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우리집에는 노란색 표지의 <세계위인전집>과 <세계명작동화>가 한 질씩 있었는데 'TV 명작동화'를 감명깊게 본 후 '원작'을 꺼내 읽곤 했다. 가장 많이 읽은 내 '인생동화'는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이었다. 두번째인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 전집에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앨리스 애니메이션은 일본 것이 아닌 월트 디즈니판으로 기억난다. 세번째 감명깊은 게 [빨간 머리 앤]인데, 그 전집의 앤을 다 읽었는지 또한 기억나지 않는다. TV 시리즈와 동화전집이 뒤죽박죽되면 책을 읽었는지 만화를 본 건지 경계가 모호하다.

처가 둘째 딸 읽으라고 사준 [빨간 머리 앤]을 최근 우연히 읽고 나니, 사실 나는 루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을 처음 읽은 거였다. 열네살인 둘째에게 '앤이 열여섯살에 끝나더라'라고 전하니 옆에서 듣던 처가 '앤이 열여섯에 죽느냐?'고 묻는 걸 보니 처도 안읽은 거였다. 


1874년에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태어나 외조부모 손에 자란 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는 외지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홀로된 외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자전적 이야기를 각색하여 [빨간 머리 앤]을 18개월간 지었다고 한다. 2년간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다가 1908년에 보스턴 출판사에서 출간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후속 얘기를 쓰기도 했다.
수다스럽고 끊임없이 떠들어제끼며 '상상개그'를 날려대는 열한살 빨간 머리 앤은 아마도 루시 몽고메리 본인의 자화상이었을 게다. 1995년 조숙한 여자아이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 [새의 선물]의 그 꼬마가 작가 은희경 본인이었을 거라는 그 추측처럼.

마차타고 달리는 가로수길을 '기쁨가득 새하얀 길'로 이름붙이고, 본인의 빨간 머리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며, '앤'이라는 이름은 촌스럽고 평범하니 '코델리아'라고 불러주거나 아니면 끝에 'e'가 붙는 '앤(Anne)'으로 불러달라고 막무가내로 부탁하는 열한살 고아소녀의 특징은 단연 '상상력'이다. 결국 머리가 좋고 시골학교에서 성적도 좋아 도시의 사범학교 같은 곳으로 진학하기도 하지만, 앤의 '개그'는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과 끊임없는 연습의 결과일 수 있겠다. 매튜 아저씨를 만나자마자 내던지는 장황한 말들은 아마도 기차역에서 그를 기다리는 내내 연습하고 외워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아, 제발 저를 코델리아라고 불러 주세요. 어차피 제가 여기서 잠시 동안만 있을 거라면 아주머니가 저를 뭐라고 부르든 아무 상관없잖아요. 앤이란 이름은 너무 낭만적이지가 않아요."
- [빨간 머리 앤], <3. 마릴라 커스버트, 놀라다>


이런 식이다. 남자 아이를 입양하여 일꾼을 만들려던 매튜와 마릴라 커스버트 독신남매가 착오로 여자 아이가 온 것을 알고는 초록 지붕 집에 살지 못할 수도 있는 '절망' 앞에서도 '상상'과 '개그'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과 '절망'의 극과 극을 오가는 이 빨간 머리 소녀는 당장 내일 지구가 망한다 하더라도 '유언개그'를 날릴 참인데, 사실은 불우하고 가난한 환경을 버텨낸 힘이 그것이다. 교사인 부모가 열병으로 일찍 돌아가고 어린 나이부터 다른 집 더부살이를 하며 보모일을 했고 그조차도 여의치 않아 고아원에 갔을 때는 깨진 유리에 비친 자신과 숲에서 메아리치는 본인 목소리에 이름을 붙여 끊임없이 상상하고 대화하면서 수련한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다. 절친 다이애나에게는 슬쩍 "가난해서 위안이 되는 게 한 가지 있지. 상상할 것들이 많다는 거야."라며 '비기'를 전하기도 한다.


"어른이 되는 건 그래서 나쁜가 봐요. 그 사실을 이제 막 깨닫기 시작하고 있어요. 어릴 때 그렇게 원하던 것도 막상 가지고 보면 그다지 멋지지 않거든요."
- [빨간 머리 앤], <29. 새로운 경험>


끊임없이 수다를 떨던 앤은 열세살을 넘어가는 '틴에이저'가 되면서 말수가 다소 줄었는데, 서구에서는 '-teen'으로 끝나는 13세부터 19세까지가 'Teenager'라 하니 우리로 치면 '사춘기'가 되었는지 마릴라 아주머니한테 제법 어른스러운 말과 표정을 지어주기도 한다.


"마릴라는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말끝에 한숨을 내쉬었다. 앤이 자란 걸 보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진 것이다. 자신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아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 눈앞에는 진지한 눈빛과 사려 깊은 듯한 눈썹, 그리고 당당한 표정을 한 키 열다섯 살짜리 소녀가 서 있는 것이다."
- [빨간 머리 앤], <31. 시냇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


'모태독신녀'로 알려진 마릴라 아주머니는 사실 앤의 수다개그와 상상개그를 핀잔은 하지만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그만큼 말수가 줄어들고 커가는 앤을 보며 무척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고 앤이 애써 무시하려는 '훈남' 길버트의 아버지와의 젊은 시절 '썸'타던 얘기도 해준다. 
자녀와 함께 크고 그만큼 변하는 부모의 모습이다.


"난 나 이외의 어느 누구도 되고 싶지 않아. 평생 동안 다이아몬드로 위로를 받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야. 난 진주 목걸이를 한 초록 지붕 집의 앤이라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 매튜 아저씨가 분홍 드레스 부인의 보석보다 훨씬 더 깊은 사랑을 그 목걸이에 담아 주셨다는 걸 난 아니까."
- [빨간 머리 앤], <33. 호텔 발표회>


그래서 우리가 [빨간 머리 앤]을 보며 그 아이의 성장을 통해 배운 것은 미친 '상상력'과 주체못할 '개그욕심'만은 아니다. 바로 빨간 머리로는 결코 행복할 수 없고 주근깨에 빼빼 말라 미남과 결혼도 못할 것이며 이름마저 촌스러운 불완전한 본인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존감'이다. 본인 뿐 아니라, 자신을 만들어준 환경과 함께해 준 사람들과 그 힘으로 성장하는 '나' 이외의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힘이다.


"... 이제 그 이정표에는 모퉁이가 있네요. 그 모퉁이를 돌면 뭐가 있을지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좋은 일들이 있을 거라 믿을래요. 모퉁이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에요."
- [빨간 머리 앤], <38. 모퉁이를 돌면>


매튜 아저씨가 심장병으로 죽은 후 대학 장학금까지 포기하며 마릴라 아주머니가 홀로 남은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교사로 돌아오는 앤의 선택은 그렇기에 빛이 난다. 더 좋은 길을 가지 못한 아쉬움이나 불행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어릴 때는 하루에 열두번도 더 '불행'과 '행복', '절망'과 '희망'를 넘나들던 상상력의 천재가 생각하지 않을리는 없다. 다만 이제 열여섯살 다 큰 앤은 그 생각을 수다로 풀지 않고 더 멋진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승화하는 것이리라.
자신이 바라보던 이정표에서 '모퉁이'를 발견했고, 그 '모퉁이'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멈칫하는 대신 앤 특유의 '상상력'과 '개그'로 극복하는 것.
[노자]가 말한 "대직약굴(大直若屈)"의 [빨간 머리 앤]식 표현이다. 역시 '크고 곧은 길은 작게는 굽어보이는 법'일테니.


스스로를 모태로 창조했을 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냈을 몽고메리는 결국 '모퉁이를 돌며' 이야기를 끝낸다.


"그리고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는 법이다!"
- 루시 몽고메리


***

1. [빨간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 루시 몽고메리, 최지현 옮김, <보물창고>, 2011.
2. [빨강 머리 앤], 몽고메리, <교원>, 2006.
3. [새의 선물], 은희경, <문학동네>,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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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궁예
이재범 지음 / 역사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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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 중앙집권국가 '태봉' vs. 호족 지방연합국가 '고려'
- [슬픈 궁예], 이재범, <역사인>, 2011.



"궁예(弓裔)는 신라 사람으로 성은 김씨다. 아버지는 제47대 헌안왕 의정이요, 어머니는 헌안왕의 빈어로서 그 성명은 전하지 않는다. 혹은 이르기를, (궁예가) 48대 경문왕 응렴의 아들이라고도 하는데, 5월 5일에 외가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때 옥상에서 하얀 빛깔이 마치 긴 무지개처럼 하늘 위로 뻗치니 일관(日官)이 말하기를, '이 아이가 중오일(단오)에 태어났고, 나면서부터 이(齒)가 있으며, 또 불꽃이 이상하니 장차 국가에 이롭지 못할까 염려되므로 기르지 마십시오.' 하여 왕은 중사(中使)에게 명하여 그 집에 가서 죽이라고 하였다. 사자가 강보 속에서 들어내어 다락 아래로 던졌는데, 유모가 몰래 받다가 잘못 손으로 찔러서 한쪽 눈을 멀게 하였다. 안고 도망하여 숨어서 수고하며 양육하였는데, 나이 10여 세가 되자 유희를 그치지 않으니 그 유모가 말하기를, '네가 태어나서 나라의 버림을 받았으나 나는 차마 못하여 몰래 기르고 오늘에 이르렀는데 너의 미친 행동이 이러하니 반드시 남이 알게 될 것이며, 너와 나는 함께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니 어찌하느냐.' 하였다. 궁예는 울며 말하기를, '만약 그렇다면 나는 떠나서 어머니의 근심을 없게 하겠습니다.' 하며 세달사로 갔는데 지금의 흥교사가 이곳이다.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스스로 선종(善宗)이라 불렀다."
- [삼국사기], <열전 권10 - 궁예전>, 김부식, 1145.


우리 역사 10세기 전반 신라 말부터 고려 건국까지 약 50여 년의 기간을 '후삼국시대'라 한다. 이 시기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를 재건한 사람이 궁예(弓裔)다. '고조선'이든 '조선'이든 국호는 '조선(朝鮮)'인데 구분을 위해 오래된 '조선'은 '고(古)'를 붙였고, '고구려'든 '고려'든 국호는 '고려(高麗)'인데 역시 구분을 위해 오래된 '고려'는 '구(句)'를 삽입했다. 물론 궁예의 다음 국호 '마진' 같은 고유 국명이나 우리식 나라이름이 있었을는지는 모르나 '정사' 기록이 전하는 '공식 국명' 얘기다.

역시 '후삼국시대'라는 교과서적 역사시기 구분을 벗어나 당시 남쪽의 통일신라 말 정세를 보면 골품제를 기본으로 한 고대 귀족사회의 모순이 극에 달했고 북쪽의 발해는 요동사회의 통합력을 잃어가는 시기, 이른바 한반도와 요동의 '전국시대(戰國時代)'라 할만 하였다. 고대국가의 중앙권력으로 보장받던 귀족의 정치경제적 권력이 중앙왕조의 몰락과 함께 각 지역에서 '군벌(軍閥)'의 형태인 '호족(豪族)'으로 등장하는, 지금으로 치면 '지방자치'가 더 강력한 시대일 수도 있겠다. 

박사 학위 논문이 [후삼국시대 궁예정권의 연구]인 경기대 이재범 교수는 '후삼국시대' 대신 '전국시대' 또는 우리식으로 표현한다면 '호족시대'로 따로 구분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며 '후고구려' 궁예에 관한 대중서 [슬픈 궁예]를 맺는다. 단순히 '후삼국시대'로 보면 궁예, 견훤, 왕건, 신라왕조는 '삼국시대'를 잇는 피튀기는 경쟁자였지만, '전국시대' 또는 '호족시대'로 본다면 궁예와 견훤은 '호족시대'의 기틀을 다졌고 왕건은 이 '호족' 세력에 기반한 새로운 '지방자치(?)' 연합왕조를 연 개창자다. 알다시피 고려 건국 과정에서 지방 호족과 정략결혼 정책을 편 태조 왕건의 왕비는 29명이었다고 한다.

'고려'라는 이름의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지금의 비무장지대에 갇힌 '철원'을 중심으로 '마진(摩震)', 태봉(泰封)'국을 이어가다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쫓겨난 궁예에 관한 기록은 거의 '악담'만이 유일하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의 [제왕운기], 조선 세종조 [고려사] 등의 역사서 뿐만 아니라 그 이전 12세기 고려 김부식의 [삼국사기] '열전' 등에 등장하는 궁예는 역사 속 '위인'이라기 보다는 '악당'에 가깝다. 한 나라를 개창하고 중국으로부터 독립된 연호까지 내세웠으나 막판에는 배고파서 보리이삭을 훔쳐먹다가 농민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고려왕' 궁예의 출생과 최후에 관한 기록은 우리 '정사' [삼국사기]의 '열전 권10'에서 유일하게 전한다. [삼국사기] '열전'의 마지막 권10은 '신라의 적' 궁예와 견훤에 관한 이야기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은 주지하다시피 '신라의 후예'였다.

'궁예 박사' 이재범 교수는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을 통해 '후삼국시대'와 궁예가 재조명되던 2000년도에 [슬픈 궁예]라는 책으로 궁예에 관한 짧은 역사 기록과 전승되는 관련 이야기들 속에서 그 왜곡된 기억 이면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 궁예의 패망을 알려주는 흔적들이 철원에는 더 많이 흩어져 있다. 궁예가 항전했던 최후의 격전지인 '보개산성', 왕건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는 '성동리성', 그리고 궁예가 왕건과 싸우다 달아났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패주(敗走)골'이 그곳이다. 실제 보개산성에서는 지금도 신라 말 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조각 등이 출토되고 있다. 이외에 궁예의 군사가 '명성산'으로 한탄을 하며 쫓겨갔다고 하여 '군사들의 한탄'이라는 뜻의 '군탄리'라는 지명도 있다. 
이러한 여러 지명 가운데서도 궁예의 최후 은거지로 알려진 '명성산(鳴聲山)'은 궁예의 역사를 가장 잘 대변한다. 명성산의 다른 이름은 울음산인데 이는 궁예와 그 부하들이 왕건에게 쫓겨간 것이 서러워 슬피 통곡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궁예가 도망가다가 피신했던 곳이라고 전하는 개적(바위)봉굴, 궁예가 쫓겨가다 흐느껴 울었다고 하여 이름붙여진 느치골, 왕건에게 쫓기던 궁예가 한숨 돌리고 잠깐 쉬어간 골짜기라고 하여 이름붙여진 한잔모텡이(골), 적정을 살피기 위하여 망원대를 세우고 봉화를 올렸다는 망봉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야전골은 당시 궁예와 왕건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케 한다."
- [슬픈 궁예], '1.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이재범, <푸른역사>, 2000.


역사에서, 특히 '승자의 기록'으로서 '정사(正史)'에서 '패자(敗者)'들은 잊혀질 뿐 아니라 왜곡되기도 하는데, 동서양을 막론하여 조선왕조 오백년 '불구대천'의 역적 정도전이 그랬고, 스탈린의 숙적 트로츠키가 그랬으며, 프랑스 왕정복고 귀족들의 원수 로베스피에르가 그랬다. 20세기말 조유식 선생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통해 깨달음을 얻듯 '역적' 정도전을 '혁명가'로 새롭게 만났던 나는 2000년도 대하드라마를 통해 '폭군' 궁예의 '미륵(彌勒)불'로서 면모를 보았고 이를 뒷받침해준 책이 이재범 교수의 [슬픈 궁예]였다.

물론, 민중을 돌아보지 못하여 쫓겨난 '폭군' 궁예가 '미륵불'이라 평가하기에는 그 근거로서 역사의 기록이 없다. 일반인에게 궁예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가 전부라고 보면 된다. 일생을 일제에 대항한 독립투쟁과 주체적 역사관 정립투쟁으로 일관하신 존경하는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목대왕의 철퇴]라는 미완의 역사소설을 지으셨다. '일목(一目)대왕' 즉 눈이 하나인 '애꾸눈' 대왕이 바로 고려왕 궁예다. 궁예에 관한 악의적 기록 이면에 흘러온 전승구담과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우리 주체적 역사를 이어간 인물을 재조명하려던 단재 신채호의 소설은 궁예가 북원의 양길 휘하에 들어가는 대목에서 그친다는데, 그 외 궁예의 출신과 생애에 관한 궁금증은 당최 풀 수가 없다.

현재는 순천 김씨와 광산 이씨의 족보에 궁예가 일가였다는 기록이 있다는데, 그의 출신에 관해서는 [삼국사기] 기록처럼 궁예가 신라 왕족의 후예였다는 설이 통설이다. 신라 하대는 수많은 왕위쟁탈전의 시대였다. 이 와중에 밀려난 왕족의 피붙이라는 그의 배경은 왕위쟁탈전에 끼어들다가 암살당한 청해진의 장보고를 등장시키기까지 한다. 즉 궁예의 외가가 장보고 집안이고, 장보고 숙청 과정에서 쫓겨간 애기 궁예가 장성하여 찾아간 세달사는 영주 부석사이며, 당시 그곳은 장보고 가문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는 설, 이후 궁예가 통일전쟁에서 소백산 부석사를 접수한 후 신라왕의 초상화에 칼집을 내면서 신라 구체제 전복을 대대적으로 선언한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물론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적 추리에 불과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당시 군벌 호족들을 대규모로 통합하면서 한반도 중남부를 석권하고 왕건의 고려 개국의 기틀을 다진 궁예가 단지 '미친 짓'과 '관심법' 등의 일탈로 인해 쫓겨났다고 보기에는 역사의 개연성이 너무 굳건하다. 개성의 상인호족 왕건의 집안은 치밀하게 '반역'을 준비했으며, '고려'를 넘어서 '마진(큰 진인)'과 '태봉(큰 영토)'의 국호를 내걸고 새로운 통일국가를 기획하던 궁예의 '미륵불' 세상과 현실적인 '지역 호족 연합'의 '고려'를 붙들고 견훤과 정복전쟁를 하던 왕건 세력의 대전쟁에서 '이상'적이었던 궁예가 '현실'적이었던 왕건에게 패배했다는 그 역사적 개연성 말이다. '미륵'과 '현실'의 치열한 세계관의 대전투에서 승리한 현실의 왕건은 그렇게 패주 궁예를 역사에서 지우고 악마화하였으나, '호족 연합국가'로서 '고려'와 '미륵 중앙집권국가'로서 '태봉' 중 어떤 체제가 민중을 위한 국가였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신라 중앙귀족왕조를 칼로 내려친 궁예의 새로운 '미륵불' 세상은 한낱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가능한 게 아니라 당시 신흥 호족 세력의 발호라는 시대정신을 담았어야지 구시대적 중앙집권체제로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역사단계적 추정이 가능하다. 궁예 또한 대호족 양길의 휘하에서 하나의 호족 세력으로 성장하였고 그가 명주(강릉)를 접수한 894년에 스스로를 '장군'이라 칭한 것은 그 자신이 당시 중국 당나라 말기 각 지역 군벌인 '절도사'와 같은 한반도의 지역 군벌인 '호족'임을 천명한 것이었다. 승자인 왕건은 그 집안 자체도 호족이었던 덕에 당시 '호족시대'의 흐름을 탈 수 있었고, 패자인 궁예는 왕족이었으되 탁발승과 반란군 이력에 따라 호족을 통합했음에도 구시대적인 중앙집권왕조를 선택했다.


"음양오행설의 원리에는 오행상승(극)설과 오행상생설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원리는 오행의 운동원리를 기준으로 역사를 합리화하는 점에서는 같다. 그에 따르면 제왕은 오행의 운행에 의해 지위를 얻는다고 하는데, 운행의 순서는 상승(극)설(수-화-금-목-토)과 상생설(목-화-토-금-수)로 구분된다. 오행상승(극)설은 이전의 덕을 극복하고 나아간다는 것이며, 오행상생설은 이전의 덕을 보완하며 계승해 나간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하면 오행상승(극)설은 '혁명'의 원리, 오행상생설은 '선양'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 [슬픈 궁예], '5. 미륵의 나라', 이재범.


한(漢)나라 고조 유방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중 '화덕(火德)'이자 붉은 '적제(赤帝)'로서 검은 물의 '수덕(水德)'을 상징하는 진(秦)나라 시황제의 뒤를 이었다. 즉, '오행상승설'에 따르면 물 '수(水)'를 이기고 대체하는 것이 불 '화(火)'니 '혁명'의 원리로서 '오행상승(극)설'로 보면 '혁명가' 유방은 물을 이긴 불의 제왕인 '적제'가 된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 <고조본기> 등에서는 노역을 가다가 도망친 유방이 술이 덜 깬 상태에서 길가를 막은 큰 뱀의 목을 베었을 때, 그 큰 뱀은 '백제(白帝)'인 바, 자신과 상극인 쇠 '금(金)'을 미리 친 것일 수 있겠다. 결국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세운 한나라 역사가들에게 한나라는 오행의 이치를 거스르면서 영원불멸해야 하는 권력이었을 것이다. 
이는 모든 권력자들의 욕망일 텐데, 유방은 '오행상승(극)설'에 의해 혁명을 일으켰으나 권력의 안정을 위해 '오행상생설'을 더 따랐다고 하며, 이는 궁예를 몰아낸 고려 태조 왕건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미륵불'이 되고자 했으나 절대권력을 꿈꾼 궁예는 진시황처럼 '수덕(水德)'을 표방하며 마지막 왕국 '태봉'국의 연호를 '수덕만세'로 지었다. 궁예가 신라왕조를 오행 중 무엇으로 보았는지는 모르나 신라왕의 초상을 칼로 베고 천년고도 경주를 '멸도'라 부르며 극복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으로 보아 '토덕'이나 '화덕'으로 보았을 수 있지만, 왕건은 신라를 멸망 대상으로 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긴 견훤도 포석정까지 쳐들어가 신라 경애왕을 죽였으나 감히 스스로 왕이 되지 못한 것을 보면 당시 '천년왕국' 신라의 위상은 '썩어도 준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궁예의 처신과 행각은 '혁명가'로서 그의 자유분방한 성정을 엿보이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역사의 물결 속에서 비틀려진 궁예를 재조명하는 이유는 '현실'에 패배한 '이상'의 상징이기 때문이리라.


"... 이 책을 내면서 이런 질문을 수 없이 받았다. 왜 하필 이 시점에서 궁예인가? 그 대답은 간단하다. 현재는 우리에게 도전과 모험을 요구하고 있다. 또 현재 우리의 내적 당면 과제는 통일이다. 이러한 과제와 사명을 잘 실천했던 인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궁예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기와 환경은 다르지만 현실에 대해 가장 절실하게 고민했고, 실천했던 인물이 바로 궁예였던 것이다. 궁예는 천 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신라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다. 신분보다 능력을 우선하고자 했다. 지역주의를 탈피한 통일을 갈구하였다. 마진과 태봉으로 상징되는 이상사회로의 통합을 원했다. 그러나 단지 정권이 지속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궁예는 너무 왜곡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바르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궁예가 오늘도 우리의 테마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슬픈 궁예], '6. 궁예 최후의 재해석', 이재범.


9~10세기 '후고구려' 궁예의 삶은 14~15세기 중국 '명(明)나라' 태조 주원장과 비슷하다. 물론 단명정권 '태봉'과 장수왕조 '명'의 차이는 있으나 부패한 왕조말기의 불우한 어린 시절, 탁발승과 반란군의 이력, 강력한 중앙집권을 통해 주변 권력자에게는 가혹했던 반면 민중에게는 상대적으로 긍휼하게 대한 마키아벨리식 '군주론'의 면모 등 삶의 궤적이 비슷하다. 

비록, '현실'의 왕건에게 패배하여 역사의 서재에 쳐박혔을지라도, 굳이 남의 역사 속 주원장의 '현실'적 혁명을 찾는 대신, 우리 역사의 궁예의 '이상'적 혁명을 상상할 일이다.

***

1. [슬픈 궁예], 이재범, <역사인>, 2011.
2. [삼국사기](1145), 김부식,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4.
3. [주원장전(朱元璋傳)](1949), 오함, 박원호 옮김, <지식산업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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