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조선 - 제국이 재편한 음식경제사
임채성 지음, 임경택 옮김 / 돌베개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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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
- [음식조선], 임채성, 2019.


1.

음식 이야기인 줄 알았다.

더구나 믿고 보는 <돌베개> 출판사의 '한국학총서'라는 말에, 우리 한반도의 음식 역사 이야기를 또 다시 읽어볼 요량으로 살펴보고 두고 볼 일 없이 바로 주문했다.
모든 책은 결국 '역사책'이라 생각하는 나는, 세상 만물에 결국 '역사'가 깃들여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쟁에도, 미술에도, 그리고 '음식'에도. 
모든 것들의 이야기는 결국 '역사'인 것이다.

기대하던 책을 받아보고는, 그제서야 제목이 다소 심상치 않다는 생각과 함께 '서문'격인 <들어가며>를 읽고는 '음식의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국제경제학'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 다시는 본격적으로 수학과 경제학을 다루는 도서는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이미 책을 구입했으니 '국제경제학'을 전공한 저자 임채성 선생과 책을 통해 대화를 끝까지 이어가고자 출퇴근길에 며칠을 들고 다녔다.

다른 건 몰라도,
한 번 잡은 책을 끝까지 읽는 건 자신있다.
수학과 경제학 같이 100% 이해를 못하는 분야라도 저자와 대화를 하듯이 쭉 읽어가면 된다. 모든 대화를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끝까지 대화를 하고나면 반드시 줄거리가 이해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내게 독서는 '역사'에 관한 저자와의 대화다.


2.

"... 이러한 역사인식(식민지 수탈론)은 '강좌파'적인 견해가 강하게 반영된 '식민지 반봉건론'을 기초로 한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개발론적 역사인식(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 수탈론'을 통해서는 파악할 수 없었던 새로운(실증연구) 역사상을 제시하였다. 그 후의 식민지 경제사 연구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계승하는 입장을 취하든 비판적 입장을 취하든, 이 논의를 전제로 할 수 밖에 없었고, 종래의 일방적 '수탈론'으로는 설명해 낼 수 없는 역사상이 그려져 왔다. 이와 같은 새로운 움직임은 '신고전파 경제학'이 경제사 분석의 방법론으로 도입된 것과도 관련이 있다."
- [음식조선], <들어가며. 식료제국과 조선>, 임채성, 2019.


[음식조선(飲食朝鮮/Inshoku Chosen)](2019)의 저자 임채성 선생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했지만 우리나라 학자는 아니다. 일본 도쿄대 경제학 박사를 거쳐 현재 릿쿄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주제는 '일본 경제사'인데 일본을 넘어 한국과 대만, 나아가 중국까지 아우르는 동아시아 국제경제학과 비교경제학까지 확장하고 있단다. 연구의 소재는 '음식', '건강'과 '위생' 등이라고 한다.

[음식조선]은 임채성이라는 한국 출신의 일본 경제학자가 일본어로 쓴 책을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임경택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일제강점기 멸망한 조선 땅에서 새롭게 재편된 '음식경제사'다. 결국 동아시아 국제경제학에 깃든 '역사' 이야기는 어느 정도 맞기는 하다. 그러나 '역사' 보다는 '경제학'에 방점을 둔다. 

곡물의 대표로서 쌀(미곡)과 농업 생산수단이자 고기로서의 소, 고전적 사치품인 홍삼의 동아시아 교류가 <1부. 재래에서 수출로>의 소재다. 
쌀은 일제의 '산미증산계획'을 통해 생산성이 향상되었지만 일본으로 대거 수출되었는데 사실 식민지 착취였다. 일제가 조선을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시키려고 했다지만 결국 농업은 '자유 시장'으로 편입되지 못했다. 일제와 총독부의 국가권력에 의한 대대적인 계획통제 및 착취가 이루어진다. 1940년대 세계대전 시기의 전시계획경제에 의한 강력한 통제는 비단 쌀 뿐만 아니라 모든 산물의 공통적 상황이었다. 소도 마찬가지고 대한제국 말기까지도 국가 전매를 시도했던 홍삼도 그랬다.

원래 조선에는 없던 상품으로서의 우유와 사과는 일본을 통해 외부로부터 들어와서 역시 일제와 총독부의 국가권력에 의해 여러 독과점적 '동업조합'으로 재편되었고, 반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확장된 명란젓(명태알)은 일제의 주도로 조선 특유의 상품이 된다. 

<2부. 자양과 새 맛의 교류>에서 다룬 우유와 사과는 서울우유의 전신인 '경성우유(서울우유)동업조합'을 통해 한반도의 새로운 자양분 음식으로서의 우유를 정착시켰고, 조선 토종이 아닌 19세기에 이식된 외래종 과일인 사과는 역시 동업조합의 독과점적 발전을 통해 일본의 아오모리 사과와 경쟁하게 되는 국광과 홍옥 등의 조선사과로 태어난다. 명란젓은 원래 일본에서는 먹지 않았다는데 지중해의 참치와 북대서양의 대구와 같이 한반도 동해의 명태를 주로 먹던 우리나라의 명란젓이 자본주의적 상품으로서 일본에까지 확장된 사례다. 조선의 사과처럼 일본의 명란젓은 이제 해당나라 특유의 산물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던 <3부. 음주와 흡연>은 소주와 맥주, 그리고 담배에 관한 이야기다.

소주는 원래 재래식 증류주다. 몽골제국을 통해 서아시아 아랍에서 동아시아까지 넘어왔을 소주는 중세 아랍의 연금술사들이 물과 알코올의 끓는 온도가 다른 점에 착안하여 발효주를 끓여 먼저 수증기가 되는 알코올 성분을 다시 액화시키는 방식으로 처음 발명한 술이다. 증류기에 '땀'처럼 맺힌 것을 보고 아랍인들은 이 증류기를 '알렘빅(Alembic:땀)'이라 불렀다. 중국 원나라는 이를 '아라길'이라고 불렀는데, 소주는 서아시아는 '알렘빅', 동아시아에서는 '아라길' 주였다. 우리의 전통 소주는 이런 방식으로 만든 가정식 생산물이었지만 일제는 자본주의 상품으로서 주정식 소주를 대량생산한다. 사탕무 당밀로 원액(주정)을 만들고 물로 희석시킨 지금의 화학식 소주는 재래식 자가용 소주를 제치고 보편화되었다.

맥주는 한반도에 원래 없던 술로 독일의 제조방식이 일제를 통해 이식된 상품이다. 원래는 양주와 같이 일본인과 친일 상류층을 위한 사치품으로 시작되었지만 자본주의적 상품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식민지 경제성장을 통한 소득 증대로 인해 민간에도 확대되었다. 일제가 서울 영등포를 비롯해 평양 등지에 독일식 맥주공장을 세웠는데 이게 조선 '비루(beer)'가 된다. 남한의 조선맥주(크라운)와 북한의 대동강맥주 등의 유래가 되겠다.

17세기에 조선에 들어온 담배 또한 자가용 곰방대 엽초를 넘어 일제가 궐련식 상품으로 대거 재편했는데,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품의 자본주의적 상품화의 과정은 국가의 직간접적 독점전매를 통한 세수 확보의 역사다. 일제와 총독부는 술을 주류동업조합에 대한 지배를 통한 간접적 형태로, 담배는 국가전매라는 직접적 방식으로 하여 국가재정을 확충했다. 해방과 6.25 전쟁 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주류와 담배를 통한 세수확충의 유래는 따지고 보면 일제강점기부터다.


[음식조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식민지 반(半)봉건론'에 기초한 '식민지 수탈론'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선을 자본주의 체제라기 보다는 식민지 체제 하 절반의 봉건국가를 벗어나지 못한 후진 체제로 규정하고 일제가 한반도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이식한 것이 아닌 대대적 수탈만 했다는 역사관이다. 
일본의 국제경제학자인 [음식조선]의 저자 임채성 선생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로서 복잡하고 매우 광범위한 '실증적' 통계자료를 근거로 일제가 조선에 이식한 자본주의 상품화를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내세우고 있다.

책 서술 내내 일본을 '식민지 본국' 나아가 '내지'로 매우 일관되게 표현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매우 불편하다. 아마도 일본 학계의 연구서로 원서가 일본어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돌베개> 출판사가 왜 이 책을 '한국학총서'로 분류했을까 의아하기도 하다.

물론 저자는 대놓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책의 '서문'격인 <들어가며>에서는 '신고전파 경제학'적 통계수치를 근거로 삼지 않아 '실증적'이지 못한 '식민지 수탈론'을 '강좌파'로 부르면서 '실증적'인 경제학 통계에 기반한 '식민지 근대화론'의 역사인식과의 일종의 '조화와 균형'을 주장하는 듯 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결국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시기였지만 분명 일제에 의해 한반도조선이 자본주의 '근대화'가 되었다는 역사인식이다.

'음식'을 통해 '근대적' 자본주의로 재편된 우리의 역사를 다룬 경제학 책이지만, 역사인식은 어딘가 익숙하다.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균형을 말하지만 '실증주의'를 앞세운 궁극의 '식민지 근대화론'의 재편이다.

이렇게 조선인이 쓴 일본의 경제학 저서 [음식조선]은 '음식'을 매개로 한 동아시아 '식민지 근대화론'의 재판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푸드 시스템'이 '제국' 내에서 일상적인 것으로 확장되었고, 나아가 그 경계에 있는 중국에까지도 퍼져갔던 것이다. 이른바 '식료제국'의 성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소비자의 성장'에 대해서는 경제성장이 부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대중소비사회'의 도래를 연상하기 쉬운데, 시작은 경우에 따라 국가의 물리적 강제력을 수반할 수 있는 '생산과정으로부터의 소비자의 분리'였다. 밀매 단속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국가 폭력'적인 과정이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동아시아에서 전반적으로 볼 수 있는 역사적 과정이었을 것이다."
- [음식조선], <나가며. 식료제국과 전후 푸드 시스템>, 임채성, 2019.


3.

[음식조선]이 보편화한 일본 제국주의 '내지' 주도로 재편된 동아시아 '음식경제사'에서 일관되게 주장되는 표현이 하나 있다.

바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다.

쉽게 말하면, 자본주의적 '상품화' 과정이다. 
재래식이 아닌 공장식 생산과 '상품화'를 통한 자본주의화다. 즉 쌀이나 술과 담배를 내가 만들어 내가 먹는 것이 아닌, '생산자'와 '소비자'가 따로 '분리'되는 과정인 것이다. 지금의 '대중소비사회'의 전형적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 초기 과정은 '자유시장'이 아닌 국가 주도의 경제체제 재편이었으며 국제적으로는 일종의 '보호주의'였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초기 자본주의 착취체제의 정착을 '생산수단으로부터 노동계급의 분리'라고 규정한 것이 생각난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가진 것이라고는 노동력 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하나의 '상품'으로 구매하는 과정이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시작이라는 역사인식이다.
이는 한편으로 '식민지 수탈론'의 역사인식이기도 하다.

반면, [음식조선]의 결과적 '식민지 근대화론'은 '계급투쟁'의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실증'적이고 '수치통계학'적인 '신고전파 경제학'에 기반하고 있어서, '노동'과 '착취'가 아닌 '생산자'와 '소비자'만을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음식'을 매개로 재편된 제국주의 주도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 과정을 '자유 시장'으로 포장하지는 못하고 국가권력과 사적 자본의 융합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솔직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보기에도 '자유 시장'은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국가권력 주도의 자본주의화로서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공통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여담이나, [음식조선]에서 일제 식민지 '본국'과 '내지'라는 표현은 수백 번 나오는데, 1905년의 '을사늑약'은 단 한 번 나온다.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역사전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 '계급투쟁'과도 같이,
심지어 '음식'의 '경제사'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

- [음식조선(飲食朝鮮/Inshoku Chosen)](2019), 임채성, 임경택 옮김, <돌베개>,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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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골동품 서점
올리버 다크셔 지음, 박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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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 저 '골동품'으로부터...
- [기묘한 골동품 서점], 올리버 다크셔, 2022.


1.

둘째가 곧 튀어나올 정도로 배가 부른 마님이 관내를 시찰하던 중 어느 한 집을 점지하고는 자리를 뜨자마자 집안의 마름아재가 군소리 없이 바로 가서 값을 치른다. 3년 전엔 분명 신랑신부 사이였던 것 같은데 어느덧 마님과 머슴 관계가 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느날 아침에 눈을 뜬 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나는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잘 익어 있었다. 우리 집에 머슴은 나 하나 밖에 없었으니 그나마 나는 머슴 중 서열 1위였다. 치열한 마름 경쟁은 없었다. 모든 계산은 내가 해야 했다는 말이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돈도 마님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다 알아서 내야 한다는 것 정도. 

우리집 역사에서 처음 집을 구입하려던 예산의 세 배가 넘는 주택을 아내가 가리키면서 값을 치르라 지시했던 2007년에는 몰랐다. 은행 대출서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랑하는 나의 아내 은미가 아파트를 당장 사내라는 독촉을 이리도 꾸준히 해댈 줄은.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는 말도 필요없고 탑골공원 할아버지가 예언한 사주팔자 바로 그대로 자식 셋을 안겨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모든 귀결은 아파트였는데 금을 깔고 앉았다는 그런 아내에게 칼만 쥐었다던데 지금은 그 무딘 칼을 어디다 뒀는지도 모를 재물에 어두운 내가 해줄 말은 세속의 물욕을 버리라는 말 외에는 없었다. 

주택에 금세 물린 아내는 우리 생애 첫 집을 사서 이사한지 몇 년 되지도 않아 1층 안방의 구석 서재 말고는 죄다 은행 소유였던 시절부터 당장 아파트로 옮기자고 틈만 나면 졸라댔는데, 집안의 유일한 머슴이자 마름으로서 주택 관리 상 할 일이 많은데 할 줄 아는 건 전혀 없음에도 나는 주택을 고집했다. 은행대출 갚으려면 백 년은 걸린다는 명분을 이사의 반대이유로 내세웠지만 사실 마당에서 큰 개를 키우는 게 좋았고, 세상 모든 벌레가 우글대지만 마음만 먹으면 실은 담배를 피우며 밤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나만의 옥상이 좋았으며, 무엇보다 아주 오래된 '골동품 서점'처럼 책들을 여기저기 매우 두서도 없이 쌓아놓는 게 싫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당을 지키던 알래스칸 말래뮤트 에코는 급한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약속의 강 스틱스강을 카론의 배를 타고 건너 갔고, 옥상은 어느덧 담배를 끊었음에도 나의 주요 임무가 되고 만 음식물 쓰레기를 텃밭에 묻는 과업을 수행할 때 말고는 올라가지 않고 있으며, 아이들의 어릴적부터 쌓여온 오래된 책들이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처럼 흘러넘친 결과 나는 사면초가로 포위된 항우처럼 아내에게 눈물을 짓고는 홀로 책과의 전쟁을 치르고자 분연히 일어서게 되었다.


2.

"충분히 오랫동안 '눈이 잘 띄는 곳'에 숨어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서점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찬장 문 뒷쪽이라든지 책장 꼭대기에는 어김없이 한때 누군가에게 중요한 물건이었다가 이제는 존재가 희미해진 물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야말로 오래된 서점이 지닌 매력의 본질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하나 '골동품' 아닌 존재가 없다는 것."
- [기묘한 골동품 서점], <2-25. 소서런의 골동품들>, 올리버 다크셔, 2022.


18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부터 있었다는 오래된 고서점 '소서런(Sotheran's Sackville Street)'의 인턴 직원 올리버 다크셔(Oliver Darkshire)가 중고책을 사고 파는 본업은 제쳐둔 채 회사 sns에 일종의 업무일지 비슷한 것을 썼고, 인터넷 보다는 깃털펜에 잉크를 찍어 써야 한다는 과연 고서점스러운 직업적 신념으로 회사 트윗 팔로워 4명을 꾸준히 유지하다가 인턴 직원의 가상공간 업무일지로 팔로워가 천 명이 넘은 걸 보고 깜짝 놀란 직장 상사 매니저 크리스 샌더스의 응원으로 [기묘한 골동품 서점](2022)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원제는 [Once Upon a Tome]인데, 'Tome'은 'Time'의 오타가 아니라 '오래된 두꺼운 책' 또는 누군가 들춰본지 백만년은 되었을 벽돌같은 '학술서'라는 뜻이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Frankly speeking), 'Tome'은 영문학을 전공한 나도 처음보는 단어였는데, 어느 블로거가 '옛날 옛 적에(Once Upon a Time)' 대신 '옛날 옛 책에(Once Upon a Tome)'라고 매우 적절히 번역해 주었기에 나는 한 발 늦었다는 분한 마음에 책상을 쳤지만 그에 군말 없이 따르기로 하고, 'Tome'을 이 책의 키워드 중 하나인 '골동품'으로 나름 이해하기로 한다. 책장을 들출 때 '쩍' 소리가 나면서 수백년 묵은 존재들이 튀어나오는 그런 오래된 책들 말이다.

[기묘한 골동품 서점]에서 저자 올리버 다크셔는 단 한 순간도 결코 진지하지 않다. 
빅토리아 시대부터 존재했던 만큼 21세기 인턴 급여도 18세기 수준으로 받고, 골동품 같은 책과 물품들을 열심히 사고 파는 게 직업이지만 정작 마흔아홉 가지 에피소드 중 저자가 정상적으로 사거나 판 골동품은 없다. 가히 주식만 빼고 다 잘 하는 증권회사 직원이나 합의만 아니면 뭐든 뒤지지 않는 보험회사 보상직원과도 같다. 저자의 글만 읽다보면 런던 새크빌가(Sackville St.)의 고서점 '소서런(Sotheran's)'은 영원히 팔리지 않을 골동품과 함께 푹 썩어 통째로 그 외진 골목길 땅 속에 아무도 모르게 묻힐 참이다. 사실 저자의 글이 시종일관 진지함은 0도 없고 농담이 아닌 문장이 진짜로 단 한 줄도 없어서 독자인 나는 대체 저자가 이 고서점에서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책을 덮고 나서야 알 것 같았다. 
그만큼 책은 온통 개그로 시작하여 개그로 끝난다. 
그리고 그만큼 재미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고서점과 골동품, 그 곳을 4백년(18~21세기) 동안 골동품처럼 지켰을 법 하던 서점의 선배동료들(제임스/앤드류/크리스 등)에 관한 이야기들과, 특히 마지막 49장 에필로그에서 매니저 제임스의 죽음을 언급한 한 단락을 뜬금없이 갑자기 읽게 되면 문득 깨닫게 된다. 올리버 다크셔의 끊임없는 개그가 실은 오래된 골동품을 시공간적 매개로 하여 그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삶과 죽음",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에 관한 "기억"(같은책, <금정연 작가의 추천사>)을 이야기하고자 했음을. 
마지막에 저자 또한 고서점 '소서런'을 떠나게 되는데 글쎄, 그건 무슨 인위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렇다고 외부적 요인은 더더욱 아닌, 일종의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냥,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했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둘러보면 더 이상 내 곁에 없는,
어쩐지 슬프기도 하고 어딘가 애잔한 듯 하지만 예외없는 자연스러움에 오히려 잔잔하게 무언가를 남기는.

나의 오래된 집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동안,
삶의 외로움 같은 것이 웃고 즐기던 중 어느 순간 마음 한 구석에 싸한 바람을 일으킨다.

그렇게,
세상 모든 것은 애줄없이 사라질 운명이지만,
한편으로 오래오래 어딘가에 남게 되는,
'골동품'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 '원스 어폰 어 터움(Once Upon a Tome)'을 나 나름대로 번역해 본다.

"옛날 옛 저 '골동품'으로부터 남는 것은..."


3.

어둑하고 음침한 고성과도 같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20세기의 주택에서 유령처럼 내가 버티는 이유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사시사철 주택의 하자보수를 도맡으셨던 부지런했던 정비공 출신의 부친께서는 이미 2년 전 '천 개의 바람'이 되셨다. 
옥상의 텃밭에서 각양각색의 무성한 채소와 그보다 더 다양한 벌레를 함께 키우시던 모친께서는 이제 더 이상 호미를 들 수 없도록 어느새 어깨도 빠지고 늙으셨다. 
북극의 알래스카 대신 폭염의 마당을 질주하고 호령하던 말래뮤트 썰매개 에코는 썰렁한 마당과 뒷골목만 남겨둔 채 나의 세 자녀들의 어린 시절 추억들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매일매일 습관적이고 인공적으로 퍼부어지는 남편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집값 더 떨어지기 전에 얼른 팔아치우고 새 아파트로 뜨자는 아내의 쌍꺼풀 수술한 인위적으로 매서운 눈빛 뿐이다.

물욕 가득한 아내의 그윽한 눈빛에 대고,
사라지는 것들의 애잔함과 그 오래된 것들이 남기는 잔상, 그리고 가끔 심장에 폭행을 가하는 추억을 이야기할 만한 이유들 자체가 '골동품'이 되고 있다.
은미는 나의 골동품 'Tome'의 책장을 펼쳐볼 생각이 전혀 없다.

20세기 소년인 나의 20세기 저택은,
한없이 쌓여가는 오래된 것들과 함께,
그 자체로 거대한 '골동품'이다.

***

- [기묘한 골동품 서점(Once Upon a Tome)](2022), Oliver Darkshire, 박은영 옮김, <RHK>,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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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미술관 - 지친 하루의 끝, 오직 나만을 위해 열려 있는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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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위로받다
- [위로의 미술관], 진병관, 2022.


여전히 '미술관' 시리즈다.
아마도 미술사 관련 책의 제목으로 출판사들이 뽑은 키워드가 '미술관'인 듯 하다.

명화를 통해 역사를 읽어주는 김선지 작가의 [사유하는 미술관](2024)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중에 천천히 읽으려고 예전에 사두었던 프랑스 미술해설사 진병관의 [위로의 미술관](2022)을 잠시 들춰 보다가 역시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아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내게 '놀이터'와도 같은 미술사 책은 항상 그렇다. 넋 놓고 먹다가 어느새 바닥나 버린 과자와도 같이 아쉬움에 손가락을 빠는.
'Finger-licking good'이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화가들은 작품에 자의식을 담으려 노력했다. 눈앞에 보이는 세상을 평면에 표현하는 방법을 사진술에 넘겨주면서, 다른 방식의 표현법을 찾은 것이다."
- [위로의 미술관], <1장.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날의 그림들 - 폴 세잔>, 진병관, 2022.


19세기 인상주의에서 20세기 현대미술로 넘어오는데 가장 큰 영감을 주었다는 폴 세잔은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인상주의'는 프랑스 살롱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아카데미즘에 대항하여 개인전을 연 모네와 마네, 르느와르 등 일군의 화가들을 조롱하기 위해 붙여진 명칭이었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2)를 본 기득권 화가들이 사물의 '실체'가 아닌 '인상'만 그렸다는 비평이 곧 그들 화파의 이름이 된 것이다.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의 '시각예술(Visual arts)'로서의 그림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또는 미화시키면서까지 '본질'을 그리고자 했지만, 19세기에는 사진처럼 직접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상'은 말그대로의 '印象(Impression)'이 아닌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또 다른 표현법이 되었다. 
망막에 비친 빛의 반사에 따른 일시적 풍경을 그린 '인상주의'의 대표화가 모네가 시시각각 변하는 하나의 사물을 여러 편의 연작으로 그린 이유다.

이처럼 '인상'이라는 '현상'을 통해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는 '인상주의' 자체가 약 한 세기 이상 흐른 뒤 등장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뮬라크르(Simulacre;흉내내다)'를 예고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현상은 언제나 '현재' 또는 '현대'를 뜻하는 '모더니즘'의 특징이다. 모든 '모더니즘'은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해 '후기' 또는 '말기'적 현상으로 전환되는데, '~이후' 또는 '부정'의 의미로 붙여진 '후기~'라는 개념은 해당 '모더니즘' 경향을 부정하는 동시에 연속되도록 갱신한다.

'후기 인상주의' 거장 폴 세잔의 역할도 그랬다. 사과를 한 각도만이 아니라 여러 각도에서 본 관점을 하나의 장면으로 그려낸 실험은 오래전 르네상스 시대 전후 러시아와 비잔틴, 동양화풍의 '역원근법'의 왜곡에서도 보이기는 했지만 당시는 인류가 '원근법'을 익히던 시대였기에 아직 일렀다. 이제 19세기 말 세잔의 '사과(Apple)'는 뉴턴의 '사과'나 스티브 잡스의 '사과'만큼이나 미술사에서 혁신의 아이콘이 된다. 
이후 앙리 마티스의 '야수파'적 색채와 파블로 피카소의 '입체파'적 관점은 폴 세잔의 '후기 인상주의'를 거쳐야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처럼 당대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으나,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폴 세잔의 꾸준한 열정이 늦었다고 생각하고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그리고 젊은 화가들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한 수동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쿠르베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독립 전시회를 열었듯,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를 개최하며 모더니즘 시대를 활짝 열게 된다."
- [위로의 미술관], <2장. 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 - 귀스타브 쿠르베>, 진병관, 2022.


인상주의 화가들이 기득권 살롱에 대항한 단체개인전을 열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것은 의도했든 아니든 귀스타브 쿠르베의 역할이었다.

19세기 '사실주의'의 대표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 역시 당시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대세였던 아카데미즘에 저항한 화가다. 실제하지 않는 천사를 데려오면 '사실'대로 그려주겠다고 장담한 쿠르베는 자신만만한 예술가였다. 여인의 나체를 그리스 신화처럼 미화하지 않고 너무 적나라하게 그렸다는 비판에 굴하지 않았고 후원자에게 간택받는 것이 아니라 화가 본인이 후원자를 선택했으며 결국 만국박람회장 맞은편 임시 건물에서 '사실주의 관'이라는 본인 개인전을 열면서 이후 젊은 후배 화가들에게 예술가적 자존심의 본보기가 되었다. 쿠르베의 이 '사실주의 관'에는 당대의 낭만주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가 한 시간 동안 관람했다는데, 신화와 역사화를 강조한 아카데미즘에 맞지 않게 사소한 개인적 소재를 크게도 그렸다고 살롱전에서 거부당한 쿠르베의 [화가의 작업실](1854~1855)을 들라크루아가 특히 극찬했다고 한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높은 자존감과 혁신적 도전은 유난히 애쓴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위로'가 된다.


"그녀는 미술이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는 것은 삶에 대한 위선이라고 했고, 자신의 예술이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예술은 사회를 반영한다. 권력의 입맛에 맞게 순응하는 예술도 존재하지만, 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표현하고, 공감하며, 위로하는 예술은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준다."
- [위로의 미술관], <3장. 외로운 날의 그림들 - 케테 콜비츠>, 진병관, 2022.


'사실주의(Realism)'의 힘은 여기에 있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사실주의'는 현실을 그리스-로마 신화적인 역사로 미화하는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 쿠르베는 현실과 동떨어진 신화를 그리지 않았고 당대의 현실을 '사실주의'라는 이름으로 그려냈고 1871년 파리 코뮌의 민중혁명에도 가담하여 옥살이까지 한다.

19세기 말 독일 슐레지엔 직조공 파업을 새겼고, 20세기 들어 1,2차 세계대전으로 아들을 잃은 케테 콜비츠는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그림과 판화, 조각을 남겼다.

법학을 전공한 지식인이었지만 스스로 노동자가 된 아버지의 영향으로, 19세기 여성이지만 미술가가 된 콜비츠는 평생 노동자와 빈민의 현실을 대변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삶을 살았다.

케테 콜비츠는 항상 노동자, 민중과 함께 했지만, 전쟁으로 자식을 잃은 그녀는 언제나 고독하게 혼자 지냈다고 한다. 
외롭지만 끝까지 민중과 함께했던 케테 콜비츠의 예술은 외로움으로 힘든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짓이겨지지 않도록 '위로'를 보낸다.


"칼이 100여년 전에 남긴 그림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을 짓거나 따뜻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행복이란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과 보내는 일상에 존재하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 [위로의 미술관], <4장. 휴식이 필요한 날의 그림들 - 칼 라르손>, 진병관, 2022.


마지막으로 스웨덴 화가 칼 라르손의 그림은 무슨 사상이나 '주의(~ism)'를 말하지 않는다. 

가난한 환경이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미술의 도시 파리에서 그림을 배웠다. 변방의 화가로서 파리 미술의 중심에 머무는 대신 역시 화가였던 아내 카린을 만나 스웨덴으로 돌아와 '릴라 히트나스(작은 용광로)'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가족과의 평온하고 즐거운 일상을 그린다. 라르손은 그림을 그리고 아내 카린은 집의 인테리어로 명성이 높아졌다는데 특히 라르손 가정의 인테리어는 북유럽 인테리어 브랜드인 이케아의 뿌리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데오 모딜리아니는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는 아내 에뷔테른의 질문에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눈동자를 그릴 것'이라고 답했지만 모딜리아니의 삶과 사랑은 비극이었다. 

반려견과 아이들을 친근하게 그린 찰스 버튼 바버의 그림들도 푸근하지만 그는 왕족과 귀족의 일상만 담고 있다.

그런 반면 칼 라르손의 그림들은 우리 일상의 접시와 찻잔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일상과 가족 안에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100년 전 북유럽의 그림이 새삼 보여준다. 

역시, 휴식이 필요할 때는 내 힘의 원천, 가족 밖에 없다. 세상 누구보다 나를 제일 알아주는 내 가족만한 '위로'가 또 어디 있겠는가.

***

- [위로의 미술관], 진병관, <빅피시>,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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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미술관 - 그림 속 잠들어 있던 역사를 깨우다
김선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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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은 역사의 동력이다
- [사유하는 미술관], 김선지, 2024.


"그림 속에는 그 시대와 사회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다양하고 풍요로운 정보가 들어 있다. 이런 점에서 예술 작품은 역사를 반영하는 기록물이자 인간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수많은 말을 건네고 의미를 전한다... 나의 관심은 그림을 매개로 한 인문학적 사유다. 그리고 나의 글에는 늘 역사적 배경이 주요한 요소로 바탕에 깔려 있다. 과거는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 [사유하는 미술관], <서문 - 내 안의 사유를 깨우는 미술관으로의 초대>, 김선지, 2024.


다시 '미술관'으로 들어선다.

내 비록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시각예술(Visual Arts)'로 분류된 그림을 좋아해서 미술사 관련 작가와 책들은 계속 읽게 된다. 
꼭 읽게 되는 미술사 작가로는 일본의 나카노 교코가 있고 우리나라 김선지 작가가 있다. 나카노 교코는 왠지 귀족적 역사관이 깔린 듯 하나 [무서운 그림] 시리즈처럼 명화에 담긴 인간사의 주제 선정에 끌린다. 이에 비해 김선지 작가는 명화가 담고 있는 역사 속 '모순'과 그로 인해 밝혀지는 역사의 이면이라는 일관된 주제 선정에 동감하기 때문에 읽는다. 
김선지 작가의 글에는 변함없이 소외된 계층과 피지배계급에 대한 연민과 연대의식이 스며들어 있다.

김선지 작가가 2024년에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의 과거, 역사를 비추는 '거울'인 명화를 통해 '인문학'적 사유를 이어가는 '미술관'을 열었다길래 첫번째 관람객이 되고자 바로 책을 펼쳤고, 역시나 이번에도 아끼고 아껴 읽고자 했으나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30관의 전시실을 다 돌고 말았다. 
내게 미술사 책은 항상 그렇다. 아무리 아껴먹으려 해도 눈 깜빡하는 사이 다 먹어버리는 달디단 곶감이자 어느새 해가 저물고 어둑해지는데 홀로 남겨진 외롭지만 정겨운 놀이터다.

[그림 속 천문학](2020)과 [그림 속 별자리 신화](2021)를 통해 알게 된 김선지 작가가 [사유하는 미술관](2024)을 열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내가 보기에 '역사' 속 '모순'이다.

'모순'은 변증법적 역사관으로 보면, 세상 만물의 동력이다. 씨앗이 품고 있는 생명의 맹아는 곧 현재의 씨앗 상태를 깨고 생명을 틔운다. 씨앗 속에 움튼 맹아라는 말 자체가 현재와 미래의 공전상태를 이른다. 인류사에서 새로운 세상은 한 번에 나타나지 않는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망하지 않았고 르네상스는 한 번에 오지 않았으며 러시아 혁명의 맹아는 러시아의 잔혹한 차르 체제 자체에 오랫동안 살아숨쉬고 있었다. 소비에트와 볼셰비키의 대대적인 혁명은 러시아 차르 체제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다. 레닌이라는 전대미문의 혁명가는 서유럽 같은 곳이었다면 빛을 볼 수 없었다. 가까운 우리 역사의 사례로 내가 존경하는 삼봉 정도전의 급진적 성리학은 이미 고려말 체제가 충분히 만들어 주었다.
자연사 뿐만 아니라 인류사의 동력은 역시,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모순'이다.
역사는 이 '모순'을 동력으로 전진해 온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며, 김선지 작가는 이런 역사를 그림들을 통해 읽어준다.

[사유하는 미술관]은 그림 속 투영된 권력과 성, 음식과 신앙 등을 통해 역사의 이면을 파헤친다.


"메리 1세는 역사에서 블러디 메리라는 악명으로 기억되며 부정적 평가를 받아 왔다. 영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성공적인 군주로 인정받는 엘리자베스 1세와 비교되며 더욱 빛을 잃었으니, 죽어서도 그들은 숙명의 라이벌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의심할 여자 없이 언니에게 많은 빚을 지었다. 메리가 잉글랜드의 첫 번 째 여왕이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사유하는 미술관], <1-3. 튜더 왕가의 라이벌 공주>, 김선지, 2024.


이혼하고 싶어 영국 국교회를 창시한 영국의 헨리 8세에게는 메리와 엘리자베스 두 공주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다른 두 공주는 잉글랜드 최초의 여왕이 되고자 권력투쟁을 이어간다. 이혼의 희생양이 된 엄마 캐서린을 위해 가톨릭을 옹호하며 개신교도들을 학살한 '블러디 메리'는 5년 후 개신교를 앞세운 엘리자베스 여왕 세력에 의해 패퇴되었지만, 영국 최초의 여왕으로서 후대인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초석을 깔았다는 평가도 있다. 조선 태종의 왕정 패악질이 세종의 치세를 닦은 토대였다는 시각과 같다. 
권력보존 역사의 '모순'이다.

오스만의 술탄 슐레이만 1세의 왕비 술타나 록셀라나와 동로마 비잔틴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황후 테오도라는 각각 노예와 고급 매춘부에서 술탄 및 황제와 거의 동급의 반열에 올랐다. 역사에서 이들은 악녀의 이미지로 전해졌지만 사실 역사는 시대적 한계는 있지만 고대와 중세 당시의 여성 인권을 보호했던 인물로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근대와 현대에 성취된 여성 인권은 다수 여성들과 이에 연대한 계급투쟁으로 쟁취되었지만 역사의 이면은 신분의 벽을 깨부순 여성 권력자를 여러 명화들을 통해 보여준다. 
여성 권력자들은 비록 지배계급이었지만 당시의 피지배신분으로서 여성으로서의 '모순'을 품고 있었기에 여성 인권 진보의 역사를 담보한다.


"설탕의 역사는 인류사의 어두운 장이었다. 설탕은 달콤하지만 그 이야기는 매우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단맛에 빠진 당대의 사람들 중 설탕 플랜테이션의 냉혹한 현실을 생각해 본 이가 있었을까?"
- [사유하는 미술관], <3-14. 그림 속에 차려진 설탕의 유혹>, 김선지, 2024.


우리 주변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요소인 음식에도 '모순'은 있다. 

설탕의 단맛은 근대 식민지 플랜테이션의 흑인 및 비백인 노예 착취를 배경으로 한다. 노예와 식민지를 쥐어짠 사탕수수의 단맛은 사실 역사의 쓴맛과 '모순' 관계에 있다. 
역시 식민지와 노예무역이 배경이 된 커피와 후추 또한 그 알싸함 뒤에는 아픈 역사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음식에서 향신료의 고마움과 민주주의 역사를 발전시킨 '커피하우스'의 역사적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음식의 역사에도 '모순'은 도사리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성격이 사납고 충동적이며 과대망상에다 편집증이 있었다. 베토벤은 병적인 변덕스러움과 분노 조절 장애를 가졌으며, 스티브 잡스는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 증세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광기는 천재성과 통하기도 하지 않은가?...
... 생각과 가치관은 늘 바뀌어 왔다. 과거의 비정상은 현재의 정상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 경우도 있다. 진짜 문제는 나와 우리는 정상이고 너와 너희는 비정상이라는 독선적 이분법이다."
- [사유하는 미술관], <5-25. 정신 질환, 그 폭력의 역사>, 김선지, 2024.


권력투쟁만큼 첨예한 인간사가 있을까 싶다. 권력 앞에서는 에미애비도 자식도 없다. 권력의 역사는 광기의 역사다. 역사의 위인으로 남기 위해 권력자들과 천재들은 기꺼이 '미친년놈'들이 되었다. 권력자들의 광기는 일일이 열거할 것도 없다. 지역 내부 정치를 넘어 알렉산더와 칭기스칸, 나폴레옹을 배우고자 했던 히틀러는 그 대명사에 불과하다. 그냥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미화한 교활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과 그 과정을 사실대로 묘사한 폴 들라로슈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인간사 '모순'의 정점인 미친 권력자들 얘기는 넘어간다. 

한편으로 권력에 의한 폭력의 피해자가 된 여성은 '창녀'와 같은 억울함의 표상이 되고는 하지만 더 이상의 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성녀'의 힘도 갖게 된다. 결연한 죽음을 통해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운 기폭제가 스스로 되어버린 루크레티아를 기억한다.
역시, '모순'은 폭력의 역사를 뒤집는 동력이다.


[사유하는 미술관]의 제목은 원래 '사(史)적인 미술이야기'로 김선지 작가가 정해 두었단다. 그런데 출판사에서는 '역사(史)'를 제목으로 앞세우면 독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제목을 [사유하는 미술관]으로 바꿨다는 후문을 작가의 페이스북을 통해 들었다. 

아쉬웠다. 
책이 안 팔릴까봐 제목에 '역사(史)'를 올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물론 이런 아쉬움 또한 대중적이지 못한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 다행이기도 하다.
'사유'를 역사와 함께 노니는 '사유(史遊)'로 생각하기로 했다는 작가의 후일담을 들으니.
이로써 김선지 작가는 그림과 함께하는 '역사(史)'를 지켜낼 수 있었다.

세상 만물은 예외없이 '모순'을 담고 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역사는 전진하는 미래를 담고 있는 그때 그때의 현재다.

명화들을 보며 읽어내는 역사를 봐도 역시,
'모순'은 역사의 동력이다.

미술사를 넘어 미술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는 김선지 작가의 발전이 반갑다.

***

- [사유하는 미술관], 김선지, <알에이치코리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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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 문명 - 개정판 현대의 지성 65
자크 르 고프 지음, 유희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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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중세', 그 '혁신'이자 '연속'으로서의.
- [서양중세문명], 자크 르고프, 1964~1984.


"어느 누구보다도 나는 중세 사회의 움직임이, 비록 '계급'이라는 개념이 중세 사회구조에 딱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주로 적대감이나 '계급투쟁'을 통해서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사회와 문명도 '총체성'과 전체에 대한 열망을 중세보다 더 강하게 가져본 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중세는 가장 좋은 의미에서건 가장 나쁜 의미에서건 '전체주의'적이었다. 중세의 통일성을 인식하는 것, 그것은 바로 중세에 그 자체의 '총체성'을 되돌려주는 일이 될 것이다."
- [서양중세문명], <프롤로그>, 자크 르고프, 1984.


15세기 동로마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에 의해 멸망했을 때, 콘스탄티노플을 탈주한 문명이 서유럽에 대거 유입되면서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단순한 '고대'의 부활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인문주의'로서 '근대성'을 열고자 했던 이 근대인들은 새로운 시대와 대비되는 어두운 터널과 같은 한 시대를 구분해 냈다.
이 암흑의 시대가 바로 '중세'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사회사' 중심의 역사관의 계보를 잇는 '아날학파' 학자인 자크 르고프(Jacques Le Goff : 1924~2014)는 [서양중세문명](1964~1984)에서 '중세'는 근대 르네상스인들이 만들어낸 구분법 속에서 '어두운 터널' 같이 묘사되었지만, 사실 '중세'는 4~5세기 게르만족에 의한 서로마의 점차적인 멸망부터 19세기 유럽의 산업혁명기까지를 관통하는 시대와 문명 일체라고 규정한다. 

이른바, '장기(長期) 중세(Long Moyen Age)'다.
1964년 자크 르고프의 '장기(長期:long)' 시대 개념은 1962년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혁명의 시대](1962)에서 19세기를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부터 1914년 제1차대전 이전의 '좋은 시절(벨라 에포크 : Belle Epoque)'까지 규정한 '장기 19세기'로 익숙한 개념이다.
자크 르고프의 '장기 중세'는 9~14세기의 구간만이 아닌, 4~5세기 고트족과 반달족, 프랑크족과 롬바르드족 등의 게르만 왕조로부터 19세기 산업혁명까지 이어지는 문명과 '계급투쟁'의 역사 전체다. 또한 고대의 개인주의의 반명제로서 '전체주의'와 '총체성'의 시작이기도 하다


"인문주의자들은 중세, 달리 말하면 과학과 예술과 문학을 통해 빛을 발하던 찬란한 두 시대 사이의 일종의 어두운 터널인 중세를 창조했다. 그런데 그들이 이러한 중세를 창조한 것은 그리스-로마, 성경의 시대 등 참된 고대로 복귀하는 것이 '근대적'이라는 주장을 통해서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혁명'이었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근본적인 구조들은 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사회에서 지속되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1,500년 동안의 단일성을 파악할 수 있다... 봉건제도가 지배했던 '장기 중세'는 악마와 선한 신의 투쟁의 역사다. 사탄은 '장기 중세'의 초기에 태어나서 말기에 죽었다."
- [서양중세문명], <시론 - 장기 중세를 위하여>, 자크 르고프, 1983.


자크 르고프의 [서양중세문명]의 초판은 1964년에 나왔고 저자는 도판과 <에필로그>를 빼고 <프롤로그>를 다시 쓴 개정판을 1984년에 다시 내기 전인 1983년에 이 '장기 중세'에 관한 시론 '장기 중세를 위하여(Pour un Long Moyen Age)'를 통해 중세를 장기적으로 4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1,500년으로 잡아보고 있다. 9세기와 14세기 등의 몇 번의 '르네상스'적 혁신을 거쳤으나 기본적으로는 이 흐름은 '단절'이 아닌 '연속'의 역사라는 관점이다. 


"중세초가 고대세계의 종말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인가...를 알기 위한 고전적 논쟁에서 '연속'이 종종 '단절'보다 우세해 보일 정도로 서양이 로마제국 말기 이래로 '연속'으로 기운 것처럼 보인다."
- [서양중세문명], <1-1. 게르만족의 정착(5~7세기)>, 자크 르고프, 1964.


이러한 '연속'의 '장기 중세' 관점에서 저자는 <1부. 중세사의 전개>를 통해 5~10세기 게르만족 사회의 정착 및 재편과 11~15세기 기독교 세계의 형성 및 위기를 사회구성체의 물적토대(하부구조)로부터 살펴본다. 중세 계급관계의 기초인 토지소유관계와 봉건적 봉신계약, 상부구조로서 주요한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독교 사상의 물적 토대를 우선 배경으로 고려하는 중세 '사회사'의 역사관이다.

이어지는 <2부. 중세 문명>에서는 상부구조인 사상적 문명을 여러가지로 서술하는데, 고대 로마의 광활하고 열린 군사교역도로가 막힌 채 숲과 덤불 속에 갇혀 각각 고립된 중세의 성채들과 농촌, 도시의 발전이라는 '공간'과 신에 의해 시작과 끝이 정해진 중세의 '비관'적 '시간' 관념, 이에 따른 '종말론'과 공동체 및 조합이나 코뮌 등의 집단주의적 삶이 지배한 중세의 '망탈리테(사고방식)' 등을 두루 고찰한다.

[서양중세문명]이라는 야심찬 제목이 말해주듯, 유럽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장기 중세'라는 레테르에 걸맞게 고대와 근대까지 '연속'으로 아우르는 중세의 모든 것을 망라하고자 하는 역사학자 자크 르고프의 학문적 의지가 돋보인다.


"신의 시간은 연속적이고 직선적이다... 중세적 사고는 순환적 시간을 거부하고 시간에 비순환적인 직선적 의미를 부여했다. 역사가 시작과 끝을 갖는다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한 주장이다. 이러한 시작과 끝은 실증적인 동시에 규범적이고, 역사적인 동시에 신학적이다."
- [서양중세문명], <2-6. 공간과 시간의 구조(10~13세기)>, 자크 르고프, 1964.


4~5세기 중세 초 마니교와 같은 선악이분법 '이단'에 의해 태어난 '사탄'은, 자크 르고프에 의하면  19세기 근대 산업혁명기에 죽었다는데, 기독교 사상이 자본주의적 물신숭배에 지배이념 자리를 내준 이후 자본이 신이자 악마의 강력한 복합체로 등장했기 때문이겠다.
기아와 전염병 등의 극한상황이 일상이었던 '자크리(Jacquerie)'들의 농민반란이 내세운 '천년왕국'은 19세기 대다수가 된 노동계급이 이어받았다. 20세기까지민 해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임무는 공산주의적 무계급사회인 '천년공화정'의 건설이었다.

혁명의 '단절' 속에도 장기 중세의 '연속'이 있다.


"대다수 농민은 영양실조와 기아와 전염병 등으로 극한상황에 처해 있었다. 후대에 프랑스에서 '자크리(Jacquerie)난'이라 불렀던 농민반란이 엄청난 절망적인 힘을 분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극한상황에서 연유했다."
- [서양중세문명], <2-8. 기독교 사회(10~13세기)>, 자크 르고프, 1964.


중세사와 중세문명을 고찰하면서 '아날학파'답게 '사회사'의 계보를 잇는 자크 르고프의 역사관은 역시, '계급투쟁'이다.


"삼분체계(성직자-전사-농민)는 오직 상층계급만, 즉 성직자 계층, 전사 계층, 생산자 계층 중 상위계층만을 나타낸다... 그것이 프랑스에서는 세 신분으로, 즉 성직자-귀족-제3신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제3신분은 평민 전체와 동일시될 수 없다. 그것은 심지어 부르주아지 전체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부르주아지 중 상위계층, 즉 유력자들로 구성되었다... 이 제3신분의 본성에 대해 중세 이래로 존재하는 모호함은, 프랑스혁명 때 제3신분 중 엘리트의 승리로 혁명을 종식하고자 했던 1789년의 사람들과, 혁명을 전인민의 승리로 끝내려 했던 사람들 사이의 투쟁으로 표현되었다."
- [서양중세문명], <2-8>, 자크 르고프, 1964.


그러나, 중세의 '계급투쟁'이 자본주의 초기처럼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같은 단순 이분법일 수는 없다.
자크 르고프의 '계급투쟁'이나 '지식인' 같은 개념은 후학인 자크 베르제에 의하면 다소 '시대착오적'이다. 왜냐하면 당시는 '현대'라 불렸을 중세 당대에는 그런 개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중세' 당시는 후대인 우리가 지금 구분하는 것처럼 '중세'가 아니라 여전히 '현대'였을 것이고 시대정신에 맞는 개념들이 따로 있었거나 아직 등장하기 전이었다. 
자크 베르제는 중세 후기의 '지식인' 대신 '식자(識者)'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쓴다.

어쨌든, '계급투쟁' 개념이 없었을 중세에도 실질적으로 '성직자-전사(기사)-농민'의 계급이 있었고, 이후 도시공동체의 발전과 함께 상인과 대지주 같은 부르주아지가 탄생하면서 이 중세적 '삼분체계'가 '성직자-귀족-부르주아'의 체계로 전환되었다. 농민 또는 농노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졌다. 기근과 전염병 등의 극단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들고 일어난 다수 농민반란은 지속되었겠지만, 중세 '계급투쟁'의 최종 전선은 '귀족-부르주아지'로 끝맺는다.

한편으로 자크 르고프는 '계급투쟁'의 고질적 형태로서 '계급 내분'을 지적하는데, 중세 도시 장인조합(길드) 내부의 장인 및 도제 부류와 아직은 소수에 불과했던 비숙련 임금노동자 간의 계급내 분열과 갈등을 서술한다. 농민 사이에도 지주가 된 부농과 농노 간의 분열이 있었다. 현대사회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재벌 및 대기업과 자영업 간의 분열과 갈등구조가 비춰진다.
'장기 중세'의 '연속'과도 같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과 1848년 유럽혁명은 부르주아지 상층부들만의 승리로 혁명을 종식시키려는 세력과 다수 민중들의 승리로까지 궁극적으로 이어가려는 세력간의 끝나지 않는 투쟁으로 이어진다. 
이 또한 '장기 중세'의 '연속'이다.


"14세기 위기로부터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듯 했다. 그러나 외형의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세계의 육체와 영혼은 그 '지속적인 것들'로 인해 특히 주목을 받을만 하다... 인쇄술, 그것은 혁명적이고 위대한 발명이었다... 인쇄술이 즉각 전파시킨 것은 '인문주의'다... 그것은 고대로의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새롭게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 중세에는 인간의 세계의 모방 또는 축도, 즉 소우주였다. 이제 이 관계는 뒤바뀌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간은 세계의 모형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 [서양중세문명], <에필로그 - 지속되는 것과 새로운 것(14~15세기)>, 자크 르고프, 1964.


중세가 4~19세기까지 포괄하는 1,500년 간의 '장기 중세'로서 '연속'의 역사로 이해되어야 한다지만, 문화혁명으로서 '르네상스', 그 중 대표적인 이념인 '인문주의'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중세 기독교사회에서는 세계가 이미 신의 필연적인 시공간으로 정해졌기에 인간은 이에 복종하면서 하나의 '소우주' 또는 세계의 축도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인쇄술 혁명 및 문자의 보급과 발전으로 인해 지적으로 깨어난 인간은 본인들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세계관의 척도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대의 선구자들은 항상 시대의 '모더니스트'였고 '현대인'이었지만, 15세기 중세말 인쇄술 혁명으로 인해 정통 기독교적 세계를 벗어나 동서양의 공간적 교차 및 고대와의 시간적 교류를 경험한 르네상스인들은 인류역사의 위대함을 새삼 믿게 되면서 인간을 '만물의 척도'이자 '세계의 모델'로 상정했다. 

이러한 '인문주의'는 인류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자 '혁신'이었다. 

물론 현대사상은 '인문주의'의 오만함을 경계한다. 그럼에도 인문학의 자기확신없이 이 급격한 기후생태위기와 비참한 불평등착취구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인문주의' 또한 모든 것이 그렇듯 양날의 검이며, '인문주의'를 이해하고 어둠의 중세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장기 중세'를 다시금 돌아봐야 한다.

미래는 현재의 '혁신'이자 '연속'이기 때문이다.

***

1. [서양중세문명](1964~1984), Jacques Le Goff, 유희수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2.
2. [공부하는 인간 - 중세 후기 유럽의 식자들](1997), Jacques Verger, 문성욱 옮김, <읻다>, 2024.
3. [혁명의 시대](1962), Eric Hobsbawm, 정도영/차명수 옮김, <한길사>, 1998.
4. [자본의 시대](1975), Eric Hobsbawm, 정도영 옮김, <한길사>, 1998.
5. [제국의 시대](1987), Eric Hobsbawm, 김동택 옮김, <한길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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