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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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시간에 갇힌 채
-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2003.


"1975년의 겨울로 인해 모든 것이 확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그해 겨울로 인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2003.


요사이 계속,
여전히 '시간'에 갇혀 있다.

역사의 진보를 믿는 나는 고대의 순환적 시간관이나 중세의 직선적 시간관보다는, 근대적 나선형 시간관을 믿는다. 
시간은 돌고돌아 제자리 또는 반복한다는 순환론이나 궁극적 종말을 향해 결국 직진한다는 직선론이 아닌, 돌고돌며 반복하는 듯 하지만 그 반복은 동일한 순환이 아니고 앞으로 또는 위를 향해 전진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그 진보의 '필연'을 향해 직진만 하지 않는다. 반복 같지만 똑같진 않고 어떻게든 더 나은 발전을 이룬다는 믿음이다. 그 시간의 나선운동 속에는 잠깐의 퇴행도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진보'의 필연을 담고 있다는 다분히 '20세기 소년'스러운 신념이다.

인류사적 관점에선 그렇다는 말이다.

46억년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친다면 하루 한나절도 안될 인류 600만년의 역사에서, 100년도 안될 내 생애를 가정하면 나선형식 퇴행과 진보의 변동폭은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느낌이다. 쉽게 말해 큰 변동 없이 정해진 길로 서서히 직진한다는 느낌이 크다. 
뒤로 쌓여가는 지난 시간은 앞으로 남은 내 시간에 별로 영향이 없다. 
지난 시간에게 나는 관객에 불과하다.


2003년에 출간된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 : 1965~)의 장편소설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2003)는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어소설이라고 한다. 1973년 군주제가 무너지고 공화국이 되었으나 내전을 겪다가 1980년대 소련의 침공을 받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간 저자의 경험이 녹은 이야기다. 주인공 아미르 '도련님'에게 실은 이복동생이었던 '머슴' 하산은 아미르가 두고 떠난 조국 아프가니스탄 자체의 상징이다. 본의 아니게 아미르가 저지른 어린 날의 과오는 자신의 과거를 두고두고 부정하다 못해 피해가고만 싶은 그런 시간으로 만들었다. 
아미르에게 친구같던 하인 하산과 어머니같던 조국 아프가니스탄이 바로 그렇다.

그렇게 소설의 첫 문장은 "1975년의 겨울로 인해 모든 것이 확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그해 겨울로 인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가 되었다. 1975년 겨울에 아미르 자신을 위해 나섰다가 곤경에 빠진 하산을 외면한 과오를 제일 앞에 내세우지 않고서는 단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

소설의 첫 문장이란 그렇게 과거와의 길고긴 대화에서 중요한 첫 마디가 된다.


"20세기 초에 영국인이 깨달았던 것을, 소련인들이 1980년대 말에 결국 깨닫게 될 것을, 그 인도 애 역시 곧 알게 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독립적이라는 것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관습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규칙을 혐오한다. 그리고 연날리기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규칙은 간단했다.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이었다. 연을 날려서 상대방 연줄을 끊으면 된다. 행운을 빌 뿐이다."
-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2003.


사실 아미르가 20년도 훨씬 지난 후 다시 돌아간 아프가니스탄은 그의 아버지 바바 없이는 회상될 수 없는 시공간이다. 카불의 성공한 사업가이자 모든 면에서 당당하고 영웅적이었던 아버지 바바는 소련 침공으로 인해 미국으로 탈주하는 과정에서는 물론 미국 땅에서 어렵게 자리잡는 동안이나 말기암으로 죽어가던 순간까지도 변함없이 뿌리깊은 아프가니스탄인이었다. 무슬림이긴 하지만 그닥 신에 의지하지 않았고 외부가 아닌 본인 스스로의 의지를 믿는 매우 독립적인 인물, 아버지와는 천성이 다른 아들 아미르가 보기에 아버지 바바는 타고난 아프가니스탄인 자체였던 거다.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에 인도를 점령하고 북쪽의 러시아와 '그레이트 게임'이란 식민지 도박전쟁을 벌이던 영국도, 20세기에 결국 직접 침략을 감행한 소비에트연방 조차도 지배하지 못한 다분히 '독립'적인 나라였다.

'규칙 없는 것이 규칙'이며 오랜 기간 강대국의 침략은 받았으나 '독립'의 시간이 길었던 동아시아의 우리 한반도와 요동 또는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같은 강인한 민족성을 공유하는 듯 하다.

[연을 쫓는 아이]의 주된 이야기는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뒤에 남겨진 하산으로부터 시작된다. 
제목처럼 연을 잘 쫓던 아이 또한 하산이다. 그런데 책을 덮은 내겐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가 더 깊이 남았다. 

알고보니 아미르의 이복동생이었던 하산은 아들 소랍을 남기며 아미르에게 미래의 여지를 주었지만,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이제부터 모든 것을 혼자서 헤쳐나가야 하는 아들 아미르에게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아프가니스탄이다. 자신이 외면했던 하산을 통해 부정하고 싶던 아미르의 과거는 언제나 당당하고 든든했던 아버지 바바가 아니었다면 다시 돌아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아미르를 다시 조국으로, 하산과 그의 아들 소랍에게로 다시 초대한 건 아버지 바바의 친구이자 아미르의 멘토와 같던 라힘 칸이었지만, 어린 아미르의 정신적 지주 라힘 칸조차도 아버지 바바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다.

이후 하산의 아들 소랍을 찾아 다시 돌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의 믿기 어려울 정도의 우연한 재회와 오랜 원한, 숨가쁜 혈투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장면은 너무 극적이라 말 그대로 '소설'로만 읽으면 되겠으나, 내게는 주인공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를 통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조국과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따뜻하고 푸근하게 남았다.


미래는 정해져 있다.
아버지는 이미 내게 모든 걸 맡기고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서서히 걸어가고 계신다. 
그렇게 내가 의지했던 모든 과거의 시간들은 나의 뒤로 하루하루 차곡하게 쌓여간다.
나는 그저 그들을 따라갈 뿐이다.

다시금 연을 쫓아 뛰기 시작한 아미르처럼,
나도 과거의 시간을 딛고 곧 앞으로 뛸 수 있기를 바란다.

최근의 적지 않은 동안의 나는 여전히, 
시간에 갇힌 채 살고 있지만,
어쨌든 다시 돌아보는 과거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처럼 언제나 따뜻한 것일테니.

***

-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 Khaled Hosseini,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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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를 위한 안내서 - 천국과 지옥 그리고 연옥까지 인류가 상상한 온갖 저세상 이야기
켄 제닝스 지음, 고현석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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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시간이 멈춘다면
- [환상특급] 시즌2, 1985~1989.


1987년, 아니면 그 다음 해였던가.
토요일 늦은 오후 '황혼'(twilight)의 시간은,
'환상특급' 열차를 타고 '신비스럽거나 또는 초자연적인''(twilight) 어딘가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중학교 때 오락실에서 동전은 이미 떨어진지 오래되었고 구경이나 하다가 싫증나면 동네 구씨 형제네 집으로 놀러가곤 했다.
구씨 형제는 나보다 한 살 많은 태환이형과 나보다 한 해 아래인 태영이였는데, 두 살 터울의 그 형제의 어머니는 아마도 신용카드가 없던 1980년대 중반에 우리 어머니와 서로 현금을 융통해주던 모종의 '신용카드' 관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혹은 같은 계모임 회원이었거나.
아무튼 1987~8년 중학생이었던 나는 부모님이 일하러 나간 구씨 형제네 집에서 민화투도 치고 애거서 크리스티 장편 추리소설도 읽었으며 TV 드라마를 봤다.

화투 가지고 놀길 좋아하시는 내 어머니한테 배운 민화투를 내가 구씨 형제들한테 가르쳐줬는지 아니면 애초에 민화투를 구씨 형제한테서 배운 건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서로가 아는 규칙들을 조정하고 일반화시키면서 팔뚝이나 딱밤 맞기 내기로 민화투를 가끔 쳤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다른 친구네 집을 들락거리며 섭렵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 추리소설 시리즈를 넘어 중학교 때 영국의 애거서 크리스티와 미국의 엘러리 퀸의 장편 추리소설을 처음으로 읽게 된 것도 역시 구씨 형제의 방에서였다. 팬더 문양의 <해문출판사>에서 낸 그 장편 추리소설 시리즈들과 그 책들에 들어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 풍의 미스테리한 미국식 삽화들이 지금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토요일 오후에도 구씨 형제네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일터에 계셨고, 1987년인가 1988년인가 당시 토요일 학교 끝나고 구씨 형제네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나면 미국 드라마 [브이(V)]를 봤던 것 같다. 친한 척 하면서 지구를 방문한 파충류 외계인들이 사실은 지구를 점령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외계인들의 정체를 알게 된 도노반과 줄리엣 같은 과학자 반군이 전력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이들에 대항하여 독립해방투쟁을 실천하는 감동의 드라마였다. 나는 용감한 남자 주인공 도노반이나 여자 주인공인 외계인 총사령관 다이애나 보다는 또 하나의 여자 주인공인 반군측 줄리엣이 너무 예뻐서 넋을 잃고 보고는 했다. 그 여배우 이름이 페이 그란트(Faye Grant : 1957~)라는 건 이제서야 검색해보고 알았지만. 
어쨌든 당시의 사춘기 남학생인 나는 줄리엣 상사병 같은 것도 걸렸던 것 같다. 

그러다가 구씨네 어머니의 귀가가 좀 늦어져 그 집에서 줄리엣 후유증에 시달리느라 집에 갈 타이밍을 놓친 나는 같은 채널에서 이어서 방영하던 [환상특급]도 보게 된다.

[환상특급] 역시 1980년대 미국 드라마였는데, 내 어릴적 1980년대에는 평일 오후 TV 만화영화는 다 일본 만화였고, 토요일 오후 TV 외화는 죄다 미국 드라마였다. [브이], [맥가이버], [전격Z 작전], [에어울프], [머나먼 정글] 등등이 토요일 오후를 장식했지만 그 중 나는 [환상특급]을 제일 좋아했던 것 같다. [브이]는 오로지 줄리엣만 좋았던 거고.


"당신이 끝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시작이었습니다."

미국 작가 켄 제닝스의 [사후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를 위한 안내서](2023)를 보면, [환상특급]의 <어둠 속의 공허> 에피소드 중 인격화된 '죽음(Mr. Death)'이 '죽음'을 안내하면서 한 말이라고 한다. 

대부분 에피소드의 줄기는 이런 '환상'적 반전이다. 즉,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또다른 세계의 시작일 수 있으며, 이 '사후세계'는 종교적으로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중국의 도교와 동아시아적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처럼 우리 곁에 있는 그 무엇일 수 있다는 관념의 서양식 또는 미국식 표현이겠다.
죽음의 여객선을 탄 노부부들은 유령이나 귀신들이라기보다는 그저 내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이웃들과 같다. 그 누구도 이 배가 '사후세계'로 간다는 사실을 대놓고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잘못 탑승한 젊은 부부가 스스로 알아서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해야 한다. '죽음'으로 향하는 그 시간은 경각을 다투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무덤덤하게 흘러가는 현실의 시간이다.
미처 탈출하지 못한 채 죽음의 문턱을 넘는다 해도 [환상특급]의 '사후세계'(The Great Beyond)로 간 나는 어디 먼 너머로 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 가까운 그 어딘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겠다. 또는 죽음의 여객선 위의 젊은이가 어느새 옆에 있던 늙은이가 되어 버린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죽음'이 현실의 어딘가에서 새로 시작하는 또 다른 삶일 수 있는 거다.

저 멀리가 아닌 옆 동네 어딘가로 건너가 신선이 된 동양의 죽은 자는 늘 산 자의 곁을 맴돌며 그와 함께 새 삶을 시작하는 서양의 그 무엇이 된다.
현실과 '사후세계'의 경계는 모호하다.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은 미국의  방송제작자이자 각본 작가인 로드 설링(Rod Sirling)의 TV 단편드라마 시리즈라고 하는데, 이어지는 연속극이 아니라 매주 토요일 늦은 오후에 한 두편씩 하는 단편 에피소드들이었다. 내용은 현실에선 낯선 환상의 세계나 현실의 이면 또는 곁에서 도사리는 공포나 호러, 죽음과 사후세계 같은 기묘한 이야기들이었다. 과학적 모티브는 있었겠지만 그리 과학적이지도, 그렇다고 종교적이거나 신화적인 주제도 아니었다. 그저 현실의 우리가 잊고 살지만 항상 우리 곁에 있을 법한 온갖 환상적인 이야기들로 상상의 세계가 잠시 펼쳐졌다.

에피소드들을 다 보지도 못했을 뿐더러 본 것들 조차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린 중학생이었던 내게 인상깊었던 에피소드 하나는 시간이 멈추는 환상 이야기였다. 어떤 계기가 되면 나만 빼고 모든 것이 정지되는 순간이 온다. 그 '얼음/땡'의 반복 후 시간의 흐름이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 같은 건 없다. 그냥 나 빼고 다 멈춘 채 정지되었으니 시간이 멈춘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주인공은 처음에 시간이 멈추었을 때 신이 난 듯 장난도 쳐보았지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지되곤 하는 시간 속에서 무료함과 무력감을 느끼다가 종국에는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절규하면서 끝났던 것 같다. 

현대과학에서는 시공간을 구부리고 겹쳐버리는 '상대성 이론'과 이를 초월하기도 하는 '양자역학'을 통해 보듯 오래된 뉴턴식 절대적 시간관은 붕괴된지 오래지만, 짧은 생을 잠시 스치듯 사는 우리 개인에게 '시간'이란 다시 되돌아가거나 붙잡아 둘 수 없는 불가역적인 '절대적' 존재다. 그래서 유한한 나는 오래전 토요일 늦은 오후의 [환상특급] 에피소드 이후 35년 넘게 '만약 시간이 멈춘다면?'이란 말도 안되는 가정을 가끔씩 혼자 해보곤 한다.

시간 없어 가보지 못한 공간을 가보거나 하지 못한 일들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만 알지 다시 흐르게 할 방법 같은 건 모른다. 혹시 내 의지대로 시간을 움직일 수 있다 한들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내가 정지된 듯한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어차피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함께 살지 않는 한 그 삶의 시간은 거의 정지된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말이다.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없는 우리들 개개인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고 평등하다.

그래도 만약,
시간이 멈춘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

- [사후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를 위한 안내서](2023), 켄 제닝스, 고연석 옮김, <세종>,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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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기원 -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기후가 만든 한국인의 역사
박정재 지음 / 바다출판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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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본질은 결국, '기후 난민'
- [한국인의 기원], 박정재, 2024.


"... 인간의 이동을 자극한 주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지리학자로서 나는 그 답이 '기후 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기후 변화'였을 가능성이 높다."
- [한국인의 기원], <1-3. 사피엔스가 동쪽으로 간 까닭>, 박정재, 2024.


생물지리학과 고기후학을 전공한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는 2021년의 저서 [기후의 힘]을 통해 '기후의 힘'을 통제해야 인류가 산다는 주장을 했다. 오랜 빙하기를 지난 후 하나의 거대한 간빙기에 해당하는 '홀로세'(11,700년 전 ~ 현재) 동안에도 정기적인 한랭기 및 소빙기와 온난기의 반복이 있었는데, 인류 문명의 발전으로 그러한 자연의 규칙이 교란되어 그 주기 또한 불규칙해지고 있으니 예상치 못한 자연의 대재난을 피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무자비한 '기후의 힘'을 억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20만년 동안 혁신의 지혜로 살아남은 슬기로운 '호모 사피엔스(슬기롭고 지혜로운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믿음이 그 근거였다.

자연 생태와 기후 이야기를 통해 인류 문명의 변천사를 '빅 히스토리'처럼 다루었던 박정재 교수는 전작 [기후의 힘]에서 다 하지 못한 우리 한반도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펼쳐낸다. 

2024년작 [한국인의 기원]이다.


"마지막 빙기 말 수렵채집민들이 지구 대부분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추운 빙기가 끝나고 온난한 홀로세로 접어들면서 농경이 시작되었고 인구는 늘어났다. 인구압박에 못이긴 농경민은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만난 수렵채집민을 인구수를 앞세워 제압했다. 한편 내륙의 건조한 초원으로 이동한 농경민은 작물재배를 포기하고 유목생활에 집중했다. 말을 능숙하게 다루게 된 유목민은 기후가 나빠져 먹을 것이 부족할 때마다 기동성을 살려 정주사회를 공략하고 무너뜨렸다. 점령지에서 유목민은 정주민의 생활방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고 유목문화는 점차 위력을 잃어갔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수렵채집민, 정주농경민, 유목민의 유전자는 복잡하게 섞였다."
- [한국인의 기원], <2-6. 홀로세에도 인류의 이동은 멈추지 않았다>, 박정재, 2024.


[기후의 힘](2021)이든 [한국인의 기원](2024)이든 '사피엔스'의 거대한 역사로부터 시작하여 유럽 및 유라시아와 동북아시아를 거쳐 이동해 온 인류와 그 인류가 일구어 온 다양한 문명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한국인의 기원]은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와 한반도 및 일본열도에 정착한 사람들에 집중하고 있다.

우선, 큰 틀에서의 시대 구분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고생대와 중생대, 신생대 중 포유류가 득세한 신생대는 6,500만년 전이고, 신생대 중 온난기였던 제3기를 지나 260만년 전부터 현 시기인 제4기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아는 빙하기는 260만년 전부터 대략 1만2천년 전까지의 '플라이스토세'를 이른다. 250만년이 넘는 플라이스토세 동안 빙기와 간빙기가 20회 정도 반복되었다고 하는데, 1만1천7백년(1.17ka) 전부터 시작된 지금의 '홀로세'는 2만5천년 전부터 1만년 훨씬 넘게 지속된 '마지막 빙기 최성기' 이후 나타난 하나의 간빙기에 해당한다.

여기에 지구의 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지구의 '세차운동'과 태양의 '흑점수 변화', 바다의 '열염순환' 등을 들 수 있다.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 기울기로 인해 태양열의 양에 차이가 나면 약 2만5천년 주기로 해당 지역의 환경과 식생에 변화가 온다. 사막이 초원스텝이 되고 초원이 빙하가 될 수도 있다. 그레이엄 핸콕이 [신의 지문](1995)에서 현재 인류문명의 기원으로 현재의 빙하가 아니라 오래전 스텝지대였을 것으로 추측하는 남극대륙으로 지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외 태양의 흑점수가 많아지는 활발한 태양열 증가시기와 빙하가 녹아 대서양과 태평양 같이 큰 바다의 염도와 온도가 교란되는 '열염순환'(엘니뇨 같은) 등이 박정재 교수가 지목한 46억살 지구의 기후 변동 요인이다.

빙하기 최전성기가 지나고 온 약 1만년 전의 홀로세는 간빙기로서 온난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위와 같은 지구의 '세차운동'과 태양의 '흑점수 변화' 및 대양의 '열염순환'에 인류의 농경문화 발전 등이 겹치면서 홀로세 초기의 8,200년(8.2ka) 전과 중기의 4,200년(4.2ka) 전, 후기의 2,800년(2.8ka) 전에 각각 엄청난 강추위와 작은 빙기들이 나타났다. 'ka'는 'kilo-annum'으로 1천년을 의미하니 예를 들어 '8.2ka 한랭기 이벤트'는 지금으로부터 8,200년 전, 즉 기원전 약 6천년 전의 빙기를 말한다. '4.2ka 이벤트'는 기원전 2천년, '2.8ka 이벤트'는 기원전 7~8백년이다.
박정재 교수가 홀로세 중 '인류세'로 지정하는 기점인 핵실험으로 대기상태를 바꾼 1950년대를 기준으로 기원전후 기점을 잡는다 해도, 지금은 1950년 이후 1세기도 지나지 않았으므로 아직 이 책이 기준으로 삼은 기원전후와 우리가 익히 아는 서양 기독교식 기원전후 연도의 차이는 없다. 

이를 대입해 보면, 20만년 동안 동아프리카에서 초원으로 나간 사냥감 대형동물을 쫓아 유럽과 유라시아의 초원지대로 이동하면서 유럽의 네안데르탈인과 아시아의 데니소바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교잡하며 살아남은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빙하기의 수렵채집 구석기를 거친 인류가 홀로세 초기에 맞이한 '8.2ka 이벤트'는 1만년 전 시작된 '신석기'와 농경정착 시기에서의 한랭기, '4.2ka 이벤트'는 '청동기'와 농업에 기초한 고대국가 시기의 한랭기, '2.8ka 이벤트'는 이른바 '철기 저온기'에 해당된다.

1만년 전 시작된 신석기와 농경정착 문명 이후 '8.2ka 한랭기 이벤트' 시기는 북방의 아무르강 문화를 일군 인류가 따뜻한 남방으로 이주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때 산동 반도와 만주, 요동과 요서 등지의 동북아시아 농경민은 한반도로 내려왔다. 고립된 한반도에 신석기와 농경이 도입된 기원전 6천년경의 이야기다. 이후 다시 한반도가 온난해지고 초원이 다시 숲으로 변하면서 인류는 사피엔스의 본능대로 초원과 사냥감을 찾아 북으로 다시 거슬러 오른다. 아직 농사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었고 조개를 주워먹으려 다들 해안가와 강가로만 몰려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지 않고 잔류한 문화가 한반도 남부와 일본 열도로 넘어간 조몬인 문화다. 

'4.2ka 한랭기 이벤트' 이후 유라시아에서 내려온 북방인들은 한반도에 청동기 문화와 밭벼가 아닌 물을 댄 논에 재배하는 벼농경 문화를 가져왔다. 한반도 중기 충남 금산의 민무늬 토기로 대표되는 송국리 문화다. 

'2.8ka 저온기 이벤트'는 중국의 춘추전국 열국시대와 일치한다. 이로 인해 북방에서 다시 내려온 철기 문화는 송국리 문화 같은 한반도의 청동기 농경인들을 남쪽으로, 더 나아가 일본 남부로 몰아낸다. 한반도 중부의 송국리 문화와 한반도와 일본 남부의 조몬 문화가 일본에서 섞이는 과정이다. 야요이 문화의 시작이다. 일본 남부에 있던 기존의 조몬 문화는 일본 열도의 북쪽으로 쫓겨나 원주민과 섞이면서 일본 북쪽의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이 된다.

언어적으로도 '4.2ka' 송국리 문화는 원시 일본어를 사용했고, '2.8ka' 북방인은 원시 한국어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차이처럼 이들 선사시대 2천년 이상의 문명은 유전자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직접적 연관이나 교류가 없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단다.


"결론적으로 약 8,200년 전 추위를 피해 아무르강 유역에서 내려온 수렵채집민 집단, 중기 청동기 저온기와 약 3,200년 전 산둥, 랴오둥, 랴오시 등에서 이주한 농경민 집단, 철기 저온기에 랴오시와 랴오둥에서 남하한 점토대토기 문화집단, 중세 저온기에 북방에서 내려온 고조선과 부여의 유민이 혼합하여 현대 한국인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 [한국인의 기원], <5-14. 기후가 만든 한국인>, 박정재, 2024.


동양의 왕조 교체기나 서양의 그리스-로마 문명 일체는 서로 지지고 볶는 인간사 뿐만이 아니라 '기후 변화'의 주기와 정확할 정도로 거의 일치한다. 

그리스 미케네 문명이나 로마 공화정의 몰락도 기후 변동으로 인한 식량 위기였고 오현제의 치세는 온난기의 주기와 일치했으며 로마의 멸망 또한 먼 동북방으로부터 따뜻한 곳을 찾아 서진한 훈족과 이로 인해 도미노 현상처럼 연쇄적으로 남하한 게르만과 고트족의 대량이주로부터 본격 시작되었다. 유목민족의 이동은 기원전 3천년 전 중앙아시아의 '얌나야 문명'부터 시작하여 약 1천년 주기로 대량이동하며 각지의 농경정착 문화를 위협했다. 기원전 18세기 히타이트, 기원전 9세기 스키타이와 흉노 또는 동호족, 기원후 4세기 훈족이나 돌궐 또는 선비족, 마지막 유목민인 12~13세기 몽골족과 거란 및 여진족 등의 출현이 그렇다.
동아시아에서도 200~400년 이어진 왕조들은 그 교체 시기가 철기 저온기('2.8ka 이벤트') 이후 발생한 약 500년 주기의 소빙기와 겹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진한교체기 및 한나라 전성기가 그 시작이고, 중국 삼국시대와 연이은 5호16국 시대 또한 소빙기로 인한 식량 부족과 북방 유목민족의 남하가 그 원인이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이후 장수왕의 남진 또한 5세기 소빙기와 무관하지 않다. 북방에서 멸망한 고조선과 한참 후 발흥한 고구려에 밀려난 부여족이 한반도로 내려온 후 마한 지역과 가야 지역에 철기 및 기마 문화가 전해진 것도, 신라 내물왕 이후 김씨 왕조 세습이 북방 숙신족의 남하로 인한 것이라는 설도 모두 기후 변동의 소빙기에 밀려 내려온 유목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박정재 교수는 사피엔스의 이동과 유목민의 이동이 '기후 변동'의 결과라는 가설을 확고한 중심 테마로 설정하고 논의를 이어간다. 
한반도는 북방의 만주와 요동, 요서의 아무르강 문명이 내려와 자리를 잡고 이후 정기적인 기후의 '맥박'에 따라 내려온 북방의 문명이 기존 문명을 일본 등지로 밀어내거나 서로 섞인 결과였다. 한반도와 일본 같은 언어적, 유전자적 단절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대 중앙집권적 국가체제가 갖춰지기 전에는 '기후 변화'와 '식량 위기'를 맞아 북방에서 남하한 문명이 농경이나 청동기, 철기와 기마 등의 신문명을 한반도에 전달하면서 기존 사람들과 섞였다.

고대국가 문명이 굳어진 후에는 단순한 소부족 단위의 잦은 이동이 아닌 국가간 전쟁에서 패망국의 대량이주가 이뤄지는 '인류세'의 징후가 보이기는 하나, 인류와 문명의 결정적인 이동 요인이 '기후 변화'와 이에 따르는 '식량 위기'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기원]의 결론은 원래부터 한반도에 고립되어 살아 온 '단일민족'이나 '한민족'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본질은 결국,
'사피엔스'의 발자취를 따르는,
'기후 난민'이었던 것이다.

***

1. [한국인의 기원 -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기후가 만든 한국인의 역사], 박정재, <바다출판사>, 2024.
2. [기후의 힘 - 기후는 어떻게 인류와 한반도 문명을 만들었는가], 박정재, <바다출판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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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원전 - 다빈치에서 파인만까지 인류 지성사를 빛낸 원전 기록들
존 캐리 엮음, 지식의 원전 번역팀 옮김 / 바다출판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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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선사시대를 발견한 크리스티안 톰센은 유물의 박물관 분류를 통해 석기-청동기-철기 시대 구분의 단초를 이뤄냈다.
미케네 슐리만과 아라비아 로렌스, 쐐기문자 조지 스미스와 투탕카멘 하워드 카터, 그리고 선사시대 톰센 같은 아마추어 고고학자들은 지식의 민주화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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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계급, 사회 - 계급화폐의 발생과 발전, 화폐권력에 관한 사회학적 탐구
빌헬름 게를로프 지음, 현동균 옮김 / 진인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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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는 '사회적 재화'이다"
- [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1952.


"화폐는 '사회교류적 행동'의 산물이다."
- [화폐, 계급, 사회], <1-1. 사회교류적 현상으로서의 화폐-연구과제>, 빌헬름 게를로프, 1952.


'화폐'란 무엇인가.

미국의 경제학자 랜덜 레이의 '현대금융이론(MMT:Modern Money Theory)은 '화폐'는 국가에서 찍어내는 '명령화폐' 또는 '표권화폐'로서 중앙은행이 언제든지 엔터키만 누르면 발행되고 이 돈들은 다수 노동계급의 소득증대와 완전고용을 전제로 균형을 맞춘다면 인플레이션의 폐해도 상쇄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재정균형론'이나 '재정건전성'은 허구이며 국가의 적자는 다수 국민의 흑자로서 "둘이 함께 추는 탱고"에 비유된다. 
'MMT'에서 화폐는 국가권력과 재정정책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

한편, 19세기 근대 '노동가치론'에 근거한 마르크스주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의 '상품론'에 기초하여 상품생산과 자본증식 과정에서 교환의 '일반적 등가물'이자 상품의 특수한 형태로서의 '상품화폐론'을 주장한다. 즉, 상품생산 및 유통과정, 자기증식을 본질로 하는 자본의 상품생산 과정과 자본주의 총생산에서 주요한 매개수단으로서의 화폐론이다.

'현대화폐이론'은 화폐에 대한 '현상'적 설명이고, 
'상품화폐론'은 '본질'적 설명으로 나는 판단한다. 
그러나 이런 화폐이론들은 오로지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역사에만 기반한 공시적 설명이다.


"본서에서는 화폐가 '경제적 영역'을 넘어서는 '사회교류적 영역'에서 기원된 것이라는 견해를 견지한다. 화폐는 이러한 '사회교류적인 영역'에서부터 발출하여 '경제적 영역'으로 침투하고 이윽고 '경제적 영역'을 지배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경제적 영역'을 넘어선 일반적인 '사회교류적인 것'까지도 포획한다."
- [화폐, 계급, 사회], <1-2. 사회교류적 현상으로서의 화폐-화폐의 사회적 이론이 가지는 의미>, 빌헬름 게를로프, 1952.


독일의 재정경제학자 빌헬름 게를로프(Wilhelm Gerloff : 1880~1954)는 1952년의 저서 [화폐, 계급, 사회]에서 인류 전역사를 관통하는 '화폐론'을 전개한다.
나치에 대한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프랑크푸르트 대학총장직에서 해임된 후, 1940년 [화폐의 발생과 화폐체계의 시작]으로 사회학적 관점의 화폐론을 열었고 1952년에는 [화폐와 사회]라는 주저를 통해 그의 '사회교류적 화폐론'을 완성한다.

게를로프의 [화폐와 사회](1952)의 한글판 제목이 바로 [화폐, 계급, 사회]다. 
원제는 [화폐와 사회(Geld und Gesellschaft)]인데, 그의 화폐론에서 화폐의 발생과 변천의 배경인 사회가 '계급사회'이고 화폐의 역사적 형태가 '계급화폐'이므로 국역판 제목에 '계급'이 포함된 듯 하다. 부제 또한 <사회적 화폐이론에 관한 연구(Versuch einer gesellschaftlichen Theorie des Geldes)>인데, 국역은 <계급화폐의 발생과 발전, 화폐권력에 관한 사회학적 탐구>로 했다. 
화폐의 역사에서 '계급'과 '권력'의 중요성이 게를로프 화폐론의 주요내용이기 때문이다.

[화폐, 계급, 사회]의 주요 명제는, 화폐는 특정 '경제적' 영역이 아닌, '사회적', 역사적 영역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화폐 사용자들은 '경제합리적'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을 넘어선 '사회교류적' 인간이자 '야심'에 찬 '평판집착적' 인간이 그 기원이라는 것이다.


"모든 '문화적 소유', 즉 물질적이며 정신적인 '문화적 재화'의 소유는 '계급소유'에서 기원하였다. 그런데 화폐도 동일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인류학에서 언급되는 사례들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바는, 당시 사용된 '화폐증표'는 바로 '계급표시'였다는 사실이다."
- [화폐, 계급, 사회], <2-10. 화폐관용의 여명기-계급화폐>, 빌헬름 게를로프, 1952.


화폐는 그 발생의 여명기에 '선물교류'의 형태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익히 배웠듯, 근대 상업과 산업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것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지배계급의 '우월성' 과시수단으로 통용되던 게르만족의 금속고리 같은 희귀하거나 특별상징으로 통용된 재화가 바로 화폐의 기원이라고 게를로프는 말한다.

최초에는 소수 지배계급의 특권적인 재화로서 우월함에 대한 '인정수단'(같은책, <3-15>)이었던 이 원시화폐는 다수 농민의 직물이나 가축과 같은 재화로 그 징표가 확장되었다. 게를로프는 이를 화폐의 '민주적 확장'으로 본다. 이러한 화폐의 '민주화' 과정에서 기존의 소수 지배계급에 의한 축적된 재화 또는 '선물'로서의 화폐는 다수 거래를 통해 "측량과 숫자로 표현되는 '물질가치'로 변화하여 결국 '화폐'가 된 것이다"(같은책, <2-4>).

'계급사회'에서 출발한 만큼 화폐에는 '계급'과 '권력'의 낙인이 찍혀 있다. 
즉, 화폐는 '계급사회'의 산물이다.


"시장은 경제적 '권력투쟁'이 펼쳐지는 장이다. 화폐는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내에서 특별한 적응과 발전을 거쳐온 이러한 투쟁에서의 무기이다. 이에 화폐가 준비되게 하고 또한 그것을 구성시키는 여러가지 요건과 '특성들' 중에서는, '경제사회'에 있어서만 무한하게 발휘될 수 있는 '화폐'의 '구매권력'의 발전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화폐, 계급, 사회], <3-16. 화폐의 본질-사회교류적 권력수단으로서의 화폐>, 빌헬름 게를로프, 1952.


화폐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발생과정을 살핀 후, 게를로프는 [화폐, 계급, 사회]의 <3부>에서 본격적으로 '화폐의 본질'을 탐구한다. 

화폐는 사회적 '관계수단'(같은책, <3-14>), '인정수단'(<3-15>), '권력수단(<3-16>), '경제수단'(<3-17>), '교환수단'(<3-18>), '가격표현수단'(<3-19>), '계산수단'(<3-20>), '지불수단'<3-21>)의 성격을 지니고,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수 불가결한 '자본기능'(<3-22>)의 본질적 성격을 드러낸다. 

'화폐의 본질'을 서술함에서도 "화폐는 '사회교류적 행동'의 산물(창조물)이다"(같은책, <1-1>,<5-30>), 또는 "화폐는 '사회적 재화'이다"(같은책, <3-12>)같은 주요 명제는 견지된다. 

화폐의 '사회적 이론'이 관찰대상으로 삼으면서 다루어지는 주요한 개념은 '화폐관용'이다. 즉, 화폐는 국가권력의 '법적 명령' 같은 '표현수단' 이전에 그런 기능을 갖게 되어온 '관용'적 성격이 우선된다는 것이다. '교환매개수단'이나 '지불수단' 같은 '경제적 화폐' 이전에 '우월성 과시충동'이나 '인정수단', '선물교류', '속죄금', '결혼지참금(신부값)' 같은 '사회적' 화폐가 선행되었으며, 이런 원시화폐의 '필수 서비스'에 '사회교류적 권력수단'으로서의 '본질적 서비스'(같은책, <3-13>) 형태가 결합되면서 비로소 '사회적 화폐'가 된다. 

화폐는 '우월성'의 '인정수단'으로 시작되어 '사회적 계급권력 관계'에 의해 '경제적' 교환의 매개수단이 되었으나, 이 화폐라는 수단이 '권력의 담지자'(같은책, <5-30>)로서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되는, 즉 "수단이 목적으로 격상된 가장 인상적인 사례 중 하나"(같은책, <3-13>)가 된다.

본질적 근원인 '사회'와 현상적 표상인 '화폐'와의 변증법적 관계이며,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말하듯 수단과 목적이 역전되어 인간의 '사회적 관계'보다 '물질적 화폐'가 우선시 되는 '물신화'의 과정이다.


"자본은 특정 목표를 위하여 배치된 화폐의 명칭이다. 따라서 '화폐의 자본기능'은 화폐가 사용되는 방식과 연관되어 있다. 화폐는 화폐의 이득을 창출하는 수단이거나 혹은 수단이 될 수 있는 한에서만 '자본'이다. 즉, 생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화폐가 제공되는 경우에 비로소 '화폐'는 '자본'이 된다... 화폐의 '자본기능'은... 화폐의 '구매권력'의 결과이다."
- [화폐, 계급, 사회], <3-22. 화폐의 본질-화폐의 자본기능>, 빌헬름 게를로프, 1952.


상품생산에 '비용재'로서 투입된 화폐는 '자본'이 되어 자기가치를 스스로 증식시키는 매개수단이 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C(상품)-M(화폐)-C'(가치증식된 상품)'의 단순 상품생산 과정이 'M(화폐)-C(상품)-M'(가치증식된 화폐)'로 변태되는 상품의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화폐라는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특정 상품형태가 곧 자본주의 상품경제를 확대재생산하는 주요 매개고리가 되는 과정을 서술한다. 자본주의 상품생산에서 가치증식의 수단으로 기능했던 화폐가 상품유통과 자본주의 총생산과정에서는 그 자체로 가치증식된 자본의 표현물인 목적 자체가 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물신화'인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에서 돈이 최고다'라는 말의 화폐론적 표현이다.

여기서 빌헬름 게를로프의 [화폐, 계급, 사회]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구매권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구매권력'은 화폐가 양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수량적 표현으로서의 '구매력'과 다르다. 
게를로프에 의하면 화폐의 '구매권력'이란 "교환가능성에 대한 보증"(같은책, <4-27>)으로서 화폐가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능력", "교환수단'으로서 화폐가 소지한 '사용능력'의 종류와 그 외연"(<4-27>)을 의미한다. 화폐의 양적 측면 뿐만 아니라 화폐 자체의 객체적이고 본질적 측면과 그 사용 주체의 권력적 측면 모두를 고려한 게를로프 화폐론의 필수적 개념인 것이다. 


"... 화폐는 항상 '권력수단'으로 남아있게 된다... '화폐관용'이 바로 '화폐의 권력'을 결정한다. 화폐는 그 '화폐관용'이 보편화되고 확립됨에 따라서, 그리고 특히, '교환경제적' 거래에서 '화폐의 구매권력'을 획득함에 따라 '권력수단'이 된다."
- [화폐, 계급, 사회], <5-30>, 빌헬름 게를로프, 1952.


'사회적 화폐관용'에 따라 출발하였고 '경제적 교환수단'을 거쳐 다시 '사회적 권력수단'으로서의 자리로 돌아오는 화폐의 발생과 변천 과정을 둘러본 빌헬름 게를로프의 '화폐론'의 결론을 볼 때가 되었다.

애초에 화폐의 '경제적' 지위를 넘어 그 근원으로서 '사회적' 역사를 다루는 게를로프의 '화폐론'은 화폐의 '사회심리적 기초'(같은책, <1-3>)를 연구의 기반으로 삼고 있기에 주류경제학으로부터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사회과학으로서 정치경제학의 입장에서도 게를로프의 화폐론이 내린 결론은 비슷한 비판의 여지를 둔다.

[화폐, 계급, 사회]의 결론에 해당하는 <5부 화폐와 사회교류적 질서>는 '올바른 화폐'(같은책, <5-28>)란 무엇인가의 질문부터 시작된다.

게를로프에 의하면 "올바른 화폐"란 "정의로운 화폐"이자 "가치유지적 화폐"다. 이는 국가가 법적 명령으로 화폐를 규정한다는 '명목화폐론'처럼 "국가가 답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5-28>). 이에 대해서는 화폐사용자들이 답할 수 있는데, "국가화폐나 법적화폐가 실질적이며 생동하는 화폐인지의 여부는 화폐사용으로 이루어지는 거래에 의해 결정"(<5-28>)된다. '올바른 화폐'는 어느 정도 고정된 가치를 유지하며 사회경제적 교류의 안정화를 유지하는 화폐인데 게를로프의 이상주의적 경제사상을 보여준다. 
'과학적 사회주의' 못지 않게 이상주의적 화폐이론이다.

게를로프는 말한다.
"세상이 변하면 화폐도 변한다"고.
그리고 덧붙인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면 다른 종류의 화폐, '올바른 화폐'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화폐는 '사회교류적 행동'의 창조물이다."
- [화폐, 계급, 사회], <5-30. 화폐와 사회교류적 질서-화폐의 사회적 이론>, 빌헬름 게를로프, 1952.


[화폐, 계급, 사회]의 <1부 1장>을 위와 같은 말로 열었던 게를로프는 이 책의 결론인 <5부 30장>에서도 역시 같은 말로 시작하고 있다.

'사회적 인정표현의 수단'으로서 화폐는 '사회적 권력행사의 수단'이기도 한데, 경제에서의 화폐는 '권력관계', '권력역학'과 '권력차이'를 표현하는 공통분모가 되며 결국 '권력의 담지자' 그 자체가 된다(같은책, <5-30>)는 화폐와 사회의 변증법적 관계의 재반복이기도 하다.

게를로프는 화폐를 자본주의 역사에 국한시키거나 '경제적' 관점에서만 고찰하지 않는다. 결론은 화폐가 '사회교류적' 산물이라는 당연한 주장이다. 
인류사회 역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화폐론'이다.

다시 기억할 것은,
'화폐'와 '사회'의 변증법적 관계다.
즉, 인류역사에서 필연적인 공동체로서 사회는 자연적으로 화폐를 발생시켰지만, '사회교류적 행동'의 산물인 화폐는 역으로 해당 사회체제를 지배하고 규정한다는 것이다.

***

1. [화폐, 계급, 사회(Geld und Gesellschaft) - 계급화폐의 발생과 발전, 화폐권력에 관한 사회학적 탐구](1952), Wilhelm Gerloff, 현동균 번역/역주/해제, <진인진>, 2024.
2. [균형재정론은 틀렸다](2015), 랜덜 레이,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3. [자본론](1867~), 칼 마르크스,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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