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8월
평점 :
여전히, 시간에 갇힌 채
-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2003.
"1975년의 겨울로 인해 모든 것이 확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그해 겨울로 인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2003.
요사이 계속,
여전히 '시간'에 갇혀 있다.
역사의 진보를 믿는 나는 고대의 순환적 시간관이나 중세의 직선적 시간관보다는, 근대적 나선형 시간관을 믿는다.
시간은 돌고돌아 제자리 또는 반복한다는 순환론이나 궁극적 종말을 향해 결국 직진한다는 직선론이 아닌, 돌고돌며 반복하는 듯 하지만 그 반복은 동일한 순환이 아니고 앞으로 또는 위를 향해 전진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그 진보의 '필연'을 향해 직진만 하지 않는다. 반복 같지만 똑같진 않고 어떻게든 더 나은 발전을 이룬다는 믿음이다. 그 시간의 나선운동 속에는 잠깐의 퇴행도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진보'의 필연을 담고 있다는 다분히 '20세기 소년'스러운 신념이다.
인류사적 관점에선 그렇다는 말이다.
46억년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친다면 하루 한나절도 안될 인류 600만년의 역사에서, 100년도 안될 내 생애를 가정하면 나선형식 퇴행과 진보의 변동폭은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느낌이다. 쉽게 말해 큰 변동 없이 정해진 길로 서서히 직진한다는 느낌이 크다.
뒤로 쌓여가는 지난 시간은 앞으로 남은 내 시간에 별로 영향이 없다.
지난 시간에게 나는 관객에 불과하다.
2003년에 출간된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 : 1965~)의 장편소설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2003)는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어소설이라고 한다. 1973년 군주제가 무너지고 공화국이 되었으나 내전을 겪다가 1980년대 소련의 침공을 받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간 저자의 경험이 녹은 이야기다. 주인공 아미르 '도련님'에게 실은 이복동생이었던 '머슴' 하산은 아미르가 두고 떠난 조국 아프가니스탄 자체의 상징이다. 본의 아니게 아미르가 저지른 어린 날의 과오는 자신의 과거를 두고두고 부정하다 못해 피해가고만 싶은 그런 시간으로 만들었다.
아미르에게 친구같던 하인 하산과 어머니같던 조국 아프가니스탄이 바로 그렇다.
그렇게 소설의 첫 문장은 "1975년의 겨울로 인해 모든 것이 확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그해 겨울로 인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가 되었다. 1975년 겨울에 아미르 자신을 위해 나섰다가 곤경에 빠진 하산을 외면한 과오를 제일 앞에 내세우지 않고서는 단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
소설의 첫 문장이란 그렇게 과거와의 길고긴 대화에서 중요한 첫 마디가 된다.
"20세기 초에 영국인이 깨달았던 것을, 소련인들이 1980년대 말에 결국 깨닫게 될 것을, 그 인도 애 역시 곧 알게 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독립적이라는 것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관습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규칙을 혐오한다. 그리고 연날리기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규칙은 간단했다.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이었다. 연을 날려서 상대방 연줄을 끊으면 된다. 행운을 빌 뿐이다."
-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2003.
사실 아미르가 20년도 훨씬 지난 후 다시 돌아간 아프가니스탄은 그의 아버지 바바 없이는 회상될 수 없는 시공간이다. 카불의 성공한 사업가이자 모든 면에서 당당하고 영웅적이었던 아버지 바바는 소련 침공으로 인해 미국으로 탈주하는 과정에서는 물론 미국 땅에서 어렵게 자리잡는 동안이나 말기암으로 죽어가던 순간까지도 변함없이 뿌리깊은 아프가니스탄인이었다. 무슬림이긴 하지만 그닥 신에 의지하지 않았고 외부가 아닌 본인 스스로의 의지를 믿는 매우 독립적인 인물, 아버지와는 천성이 다른 아들 아미르가 보기에 아버지 바바는 타고난 아프가니스탄인 자체였던 거다.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에 인도를 점령하고 북쪽의 러시아와 '그레이트 게임'이란 식민지 도박전쟁을 벌이던 영국도, 20세기에 결국 직접 침략을 감행한 소비에트연방 조차도 지배하지 못한 다분히 '독립'적인 나라였다.
'규칙 없는 것이 규칙'이며 오랜 기간 강대국의 침략은 받았으나 '독립'의 시간이 길었던 동아시아의 우리 한반도와 요동 또는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같은 강인한 민족성을 공유하는 듯 하다.
[연을 쫓는 아이]의 주된 이야기는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뒤에 남겨진 하산으로부터 시작된다.
제목처럼 연을 잘 쫓던 아이 또한 하산이다. 그런데 책을 덮은 내겐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가 더 깊이 남았다.
알고보니 아미르의 이복동생이었던 하산은 아들 소랍을 남기며 아미르에게 미래의 여지를 주었지만,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이제부터 모든 것을 혼자서 헤쳐나가야 하는 아들 아미르에게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아프가니스탄이다. 자신이 외면했던 하산을 통해 부정하고 싶던 아미르의 과거는 언제나 당당하고 든든했던 아버지 바바가 아니었다면 다시 돌아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아미르를 다시 조국으로, 하산과 그의 아들 소랍에게로 다시 초대한 건 아버지 바바의 친구이자 아미르의 멘토와 같던 라힘 칸이었지만, 어린 아미르의 정신적 지주 라힘 칸조차도 아버지 바바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다.
이후 하산의 아들 소랍을 찾아 다시 돌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의 믿기 어려울 정도의 우연한 재회와 오랜 원한, 숨가쁜 혈투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장면은 너무 극적이라 말 그대로 '소설'로만 읽으면 되겠으나, 내게는 주인공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를 통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조국과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따뜻하고 푸근하게 남았다.
미래는 정해져 있다.
아버지는 이미 내게 모든 걸 맡기고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서서히 걸어가고 계신다.
그렇게 내가 의지했던 모든 과거의 시간들은 나의 뒤로 하루하루 차곡하게 쌓여간다.
나는 그저 그들을 따라갈 뿐이다.
다시금 연을 쫓아 뛰기 시작한 아미르처럼,
나도 과거의 시간을 딛고 곧 앞으로 뛸 수 있기를 바란다.
최근의 적지 않은 동안의 나는 여전히,
시간에 갇힌 채 살고 있지만,
어쨌든 다시 돌아보는 과거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처럼 언제나 따뜻한 것일테니.
***
-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 Khaled Hosseini,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