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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랄라 씨, 엉뚱한 네가 좋아 - 맞선 둘이 하나인 맞얽힘으로 바라본 인생
이은미 지음, 박예지 그림 / 움직이는책 / 2021년 11월
평점 :
[주역]을 읽는 시간 : 2021년
- [맞얽힘 : 맞선 둘은 하나다], 이철, <움직이는책>, 2021.
- [주역 : 왕필 주](3세기), 왕필 주석, 임채우 옮김, <길>, 1998~2013.
"'곤(困)'은 '형통'하고,
바르고 대인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으니,
말이 있으면 믿지 않으리라.
...
[상전]에서 말하기를, 못에 물이 없는 것이 '곤(困)'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서 목숨을 다하여 뜻을 이루느니라."
- [주역], <47괘. 곤(困)>, 왕필 주석, 3세기.
1.
- 아주 좋은 궁합이야.
탑골공원 옆 사주팔자 점을 치는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 근데, 올해는 안돼. '반.드.시.' 헤어져.
2005년 5월 경이었겠다.
아내인 안은미 양과 결혼 날짜를 잡고 어두워진 종로 거리를 걷던 주말에 재미삼아 탑골공원 담장 옆 점보는 천막에 들어갔을 때가.
어릴 때 '파고다공원'으로 불리던 종로3가 탑골공원을 마주보고 좌측으로 돌면 낙원상가 들어가는 방향에 어딘가에서 사진으로 본 인디언 천막이 연상되는 것이 자세히 보니 '사주팔자', '주역' 어쩌고 써붙인 할아버지 점집이었다. 두 어개 있었나. 탑골공원에는 무료한 어르신들이 한담이나 장기를 두거나 낮술 한 두잔 주고받는 장소만이 아니라 '점'도 쳐주는 곳이란 걸 몰랐었다.
그 중 가까운 천막에 무작정 들어가 나와 안은미 양의 사주를 물었다. 지긋한 연세의 점쟁이 할아버지는 정체모를 책첩을 펼쳐 손가락으로 한참을 짚어 나갔다. 그러더니 우리 둘 각자의 매우 '불우'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정말 '쪽집게'처럼 맞추셨다. 양가 부모님들께는 죄송한 말씀이나 우리 둘다 어려서 '부모덕은 없었다'. 하지만 성장해서는 잘 풀릴 거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각자는 본인의 기억을 중심으로 과거를 재구성한다. 지난 8~9개월의 연애 과정에서 우리 두 청춘은 가난했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공유했고 물론 둘 다 서울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의 대표적 '소년/소녀 가장'이기는 했으나 이제 같은 직장에서 자립했으니 우리 힘으로 가정을 꾸리자고 작정한 터였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후 농담따먹기나 하다가 내가 다른 곳으로 인사발령 받게된 2004년 10월부터 6개월 정도 짧은 연애를 했고, '같이 살자'고 2개월 정도 꼬셔서 안은미 양의 승락을 받았다. '부모 덕'은 없었기에 양가 부모님께는 '허락'이 아닌 '통보'를 했고 결혼 날짜도 우리 둘이 잡았다. 2005년 음력 단오였던 양력 6월 11일이 예정일이었는데, 당연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그 민족적 축제날 '단오'를 알고 정한 건 아니었고 우연히 현실적으로 가장 후딱 해치울 수 있는 날로 잡다보니 공교롭게도 민족의 잔칫날인 '단오날'이었다. 양가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건 있을 수도 없고 한창 마이너스였던 안은미 양한테는 언감생심이었으니 우리의 결혼자금은 내 마이너스 통장 1,200만원이 전부였다. 그래도 이제 '오르막길' 더 가팔라지기 전 호주 신혼여행으로 결혼자금의 절반을 쓰기로 하고 그냥 부모님과 함께 살던 우리 전셋집 내 방에 80만원 '아씨방' 신혼가구를 들였고 예식비용은 축의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아마도 5월의 그 주말 저녁에 종로 거리를 거닐었던 날은 종로5가 금은방에서 18만원짜리 결혼반지를 산 날이었을 걸로 추정된다.
아무튼 우리는 결혼 날짜를 정했다는 말은 안 하기로 하고 '불우'한 소년/소녀 가장인 우리 둘의 궁합이나 보자며 무심히 천막에 들어갔던 터였다. 우리 둘의 사주를 듣고는 거의 정확하게 두 사람 각자의 과거를 짚어주는 할아버지의 영험함에 우린 놀라서 서로를 쳐다봤다. 이제 가정을 꾸리면 삶은 더 힘들고 가팔라질 거라는 각오를 한 우리에게 그 점쟁이 할아버지는 이제 슬슬 '풀릴 것'이라고 미래를 예측해주셨는데, 신뢰도는 이미 200프로 이상이었고, 할아버지 앞에 미래를 내다보는 '수정 구슬'이 있는 듯 했다. 예비신랑인 나는 '칼'을 쥐고 있어 돈은 많이 못 벌지만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것이라 하여 순간 근심했으나 예비신부 안은미 양은 '금'을 깔고 앉아서 나중에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을 거라는 후문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느새 '사주명리학'의 주요 역술인으로 보이던 할아버지가 점쳐준 우리 둘의 '과거'는 정확한 '역사과학'이었고 우리의 '미래'는 장밋빛 희망이었다.
그래, 이제 '현재'를 물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받은 결혼의 여신 헤라로부터의 '신탁'은 "궁합은 잘 맞으나 올해는 안된다"였다.
'과거'와 '미래'에 관한 '신탁'을 듣고는 신뢰도 급상승하여 나는 내처 결혼날짜인 '현재'를 털어놓을 참이었다. 그런데 그 좋은 궁합에도 불구하고 2005년 그 해에 결혼하면 우리 장인장모처럼 헤어질 거라는 헤라의 '신탁'은 금세 카산드라의 '저주'가 되었다. 나는 점값을 황급히 지불하고 안은미 양의 손을 잡고 천막을 나왔다. 황망히 손을 잡아끄는 바람에 얼떨결한 안은미 양은 그 와중에도 "아이는 셋이야~"라는 점쟁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예언을 들었단다.
어언 17년이 지난 지금, 신통했던 점쟁이 할아버지의 예언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지금 우리는 자녀 셋을 기르고 있고 아직 헤어지지 않았다.
원래 자녀 한 명을 두자는 나와 적어도 셋은 있어야 한다는 안은미 양의 의견 차이가 있었는데, '칼'을 쥔 나는 하나라도 잘 키워보자, 였고, '금'을 깔고 앉은 그녀는 식구는 많을 수록 좋다, 였다.
결국,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던 나는 그 해에 결혼하면 '반드시' 헤어진다던 점쟁이 할아버지의 예언이 틀리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리고 자녀 다다익선주의자인 안은미 양은 '아이 셋'이라는 그 할아버지의 예언이 맞다는 걸 증명하고 말았다.
2.
물론 2005년 당시에 나는, [주역]과 '사주명리학', '음양오행'이 다 같은 건 줄 알았다. 뭔가 '과학'적이지 못한 '미신' 같은 그런.
스무살 이후 20세기 내내 서구의 '사회과학'에 익숙하던 나는, 21세기 첫 해에 <한겨레21>을 구독하며 읽었던 이상수 기자의 '동서횡단'이라는 코너를 좋아라 읽어댔고 중국 전문가이자 [주역] 연구자가 된 이상수 기자가 2001년 낸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2001)이란 책을 계기로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동양 '최고의 고전'인 사마천의 [사기]도 그 이후로 읽었다. 노동계급의 사회변혁은 여전히 중요했고 소비에트도 해체된 지 오래였고 옆동네의 '인민공화국'에는 노예적 '노동' 또는 '소비' 밖에 모르는 '축생'들 뿐 '인민'은 없으니 이제 아시아에서 그 방향은 공자의 '인'과 맹자의 '의'를 통한 '대동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묵자의 '노동'에 기반한 '겸애'가 그 '평등'한 나라의 주요 덕목이었다. 노동자 보통선거가 없던 마르크스-레닌 시대의 불가피한 '폭력혁명'과 '기동전'보다는 손자처럼 '먼저 이겨놓고 싸우는' 헤게모니 '진지전'의 '평화의 병법'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던 중 너무 중국사람이 될 것 같아 뒤돌아 우리 역사를 다시 보니 역시, 1997년 조유식 선생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1997) 이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경하게 된 '불세출의 혁명가' 삼봉 정도전 선생이 다시 생각났다.
물론 정도전 선생을 따라 '성리학'을 따로 보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인데, 삼봉 선생과 성리학자들이 바라본 세계가 그 형이상학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유물론'적 요소를 지닌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은 게 바로 [주역]이었다. 예의 이상수 기자가 2014년에 낸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2014)는 내게 [주역]과 '동양사상'이 점치는 '미신'이 아니라 집단지성에 의한 '(사회)과학'임을 알려줬다. 중국 은나라 때부터 불에 지져대던 거북이 등딱지의 '갑골문'이나 주나라 문왕이 칩거시절 정리했다는 [주역] '64괘'는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점술'이 아니라 그 방대한 기록을 통해 인류의 선택과 방향점을 '대수의 법칙'인 통계로 보여주는 고대의 '빅 데이터'와도 같았다. '사주명리'는 개인들 각각의 데이터에 어거지로 의미를 부여하는 성격이 짙고, '음양오행설'은 세상 운영의 이치를 규명하고자 하나 다분히 관념적 형상(달/해/목-화-토-금-수)을 우선으로 끼워맞추는 관념론이었다. 반면 [주역] 또는 성리학 '경전'으로서의 [역경]은 동양의 사상가들이 세상의 운동원리를 기존의 '빅 데이터'를 통해 규명하고 해석하며 주석을 다는 '유물론'적 세계관의 맹아를 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위대한 동양 역사가 사마천도 [사기]의 서문, <태사공자서>에서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명가' 등과 따로 '음양가'를 구분하며 [주역]에 기초한 앞의 사상들에 비해 '음양가'는 관념과 형상에 세상을 끌어 맞춘다고 평가했다.
근대와 현대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던 기원전 고대에는 '철학'은 '과학' 또는 '학문'의 최고 경지였고, 점치는' 책 [주역]이 바로 '과학'이었다.
[주역]은 단순한 '점술책'이 아니다.
집단지성의 '빅 데이터' 기록을 토대로 세계를 '유물론'적으로 바라본 [주역]과 그 주석들 속에서 자연의 운명론 같은 걸 봐서는 안된다. 그 점괘와 해석을 통해 주체적으로 결단하는 인간이 [주역]의 '주역'이다. 그 인간은 도둑질이나 사기 등 소인배의 정신이 아니라 하늘의 '도(道)'를 이어받아 실현하는 '덕(德)'을 갖추고 미래를 내다 보아야 한다.
2005년 탑골공원에서 '신탁'했던 나의 '현재'는 오로지 나의 주체적 선택의 문제였다. 결혼 후 나의 마음가짐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안은미 양과 헤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백년해로할 것인가"에 맞춰졌다. 점쟁이 할아버지의 '사주명리'는 내게 '예언'이 아닌 '경계'였다.
'사주명리'나 '음양오행'이 아니라, '변화'와 '유물론'적 동양 사상의 경전인 [주역]을 읽는데 가장 중요한 게 인간의 '주체성'과 '덕성'임을 이상수 선생의 책으로부터 배운 후 2014년은 내게 [주역]의 시간이었다.
그 시기는 내 개인적으로 중요하고 어려운 시절이기도 했다. 강력한 회사에 맞서 우리의 권리를 지켜야 했던 노동조합 간부의 시기였다. 시대는 이제 임단협에서 노동자가 임금인상과 복지증진을 요구하기만 하던 시대가 아니었다. 이명박근혜로 이어진 극우 파시즘 정권은 노동법 개악을 수시로 밀어붙였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우리 집행부 임기는 이런 극우 막장정권이 임금피크제 도입과 성과형 임금체계 확대, 파견비정규 노동시장을 제도화하려는 노동법 개악을 강력 추진했고 이에 편승한 자본가들과 그 대리인들은 이제 임단협에서 회사의 요구안을 강력하고 집요하게 밀어붙이던 시기의 한 가운데를 통과했다. 계급투쟁을 시작한 건 역시나 자본가들이었고, 투쟁할 단결력을 확보하지 못한 노동조합은 판판이 깨졌다. 노사협상장에서는 '권리'의 자리는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이익'만이 판을 쳤다. 어차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협상 결과'는 '패배'의 다른 이름이었다.
3.
"'감(坎)'을 익힘(習)은,
믿음이 있어서 오직 마음이 형통하리니,
행하면 승상함이 있으리라.
...
[상전]에서 말하기를, 물이 거듭 이르는 것이 '습감(習坎)'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서 항상 덕행을 지키며 정교의 일을 익히느니라."
- [주역], <29괘. 감(坎)>, 왕필 주석, 3세기.
'가이태서유상(假爾泰筮有常)'
"떳떳함이 있는 크나큰 시초를 빌립니다."
이 말을 두 번 외치고 나는 책상 앞에 정좌했다.
모두들 패배한다고 했고 나의 예측도 사실 그랬다. 응원하는 사람들보다는 만류하고 외면하며 심지어는 비웃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회사는 스리슬쩍 '10%도 안되던데 할 수 있겠냐' 나를 떠보았다.
손자는 그 '평화'의 [병법]에서 '난타전'은 하책이며 먼저 이겨놓고 싸움에 임하는 것이 상책이라 했지만 2005년 5월의 나처럼 2016년의 나는 여전히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 간 모자란 머리로 읽었던 3세기 위진남북조 시대 '도가'적 현학자 왕필이 주석한 [주역]을 놓고 산가지는 없으니 이쑤시개 쉰다섯개를 늘여놓고는 책상에 좌정했다.
그때가 내 처음이자 마지막 '주역점'이었다.
그 이전에는 몰라서 못쳤고, 그 이후에도 역시 몰랐지만 그 하루에 더듬더듬 삼세번 정도를 쳐봤다. 그리고 이제 설령 [주역]에 대해 더 알게 된다 해도 칠 생각은 없다.
나는 그 한 번으로 '주역점'이 뭔지 알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첫 번째 나온 괘는 47번째 '곤괘'였다. 한자 그대로 '곤'란하고 피'곤'했다. 괘상은 위의 삼효인 상괘가 '연못'을 상징하는 '태'괘이고 아래는 '물'을 뜻하는 '감'괘다. '택수곤'이라 하여 쉬운 말로 다 '물'인데, 물은 아래로 흐르나 위로 향하는 양과 아래로 향하는 음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용]이거늘 둘다 아래로 흘러봐야 물에 잠기기만 한다. [주역]에서 '물'의 '감괘'만 따지면 그리 좋지만은 않다. 물은 '형통'하지만 대체로 흉하다. 공자 이래 지은 [주역]의 해석에 따르면 연못 아래 큰 물이 있어 정작 연못에는 물이 말라 '궁'하고 '곤'하다 했으니 이보다 나쁠 수는 없었다. 물론 '물극필반(物極必反)', 즉 '극에 닿으면 반대로 전환된다'는 [중용]의 원리에 따라 '궁즉통', 즉 '궁하면 통하여' 다음의 길함을 징조하여 결국 '대인', '군자'가 '뜻을 이룬다'고 나와 있으나 당장은 흉하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각 효는 '변효'를 포함한다. 봄을 뜻하는 '소양'의 숫자 7은 변하지 않지만 여름의 '노양' 9는 극에 달했으므로 곧 가을의 '소음' 8로 변한다. 겨울의 '노음'인 6 또한 극에 닿아 '대한'의 절기를 지나면 '입춘', 즉 7로 순환한다. 산가지 남은 갯수로 나온 이 숫자에 따라 각 효는 변하거나 불변하면서 다른 괘를 그리는데 그에 따라 나온 괘가 29번째 '감'괘였다.
또 다시 '물'에 빠졌는데 이번에는 상괘와 하괘가 모두 '물'이다. '중수감'이라 하여 온 지구의 육지가 온통 바다에 빠졌다. 흉 중의 흉이었다. 물론 도교에서 말하는 '상선약수'는 아래로 흐르는 물이 최고의 '선'이라 하고 그 주요 덕목은 '겸손/겸애'다. 하지만 [주역]의 괘로만 치면 물에 빠지는 '흉괘'다.
계속 '길함'과 '흉함'만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뜻인데, 사실 [주역]이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만물의 '유물론'적 이치는 길 속에 흉의 조짐이 있고 흉 속에 길의 씨앗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운동'하고 '변화'하며 '양질전화'하듯 길흉과 흉길은 서로 전환되는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히 동양에서 먼저 발견한 '유물변증법'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정수다.
한참 후의 일이지만, 오래전 2005년 점쟁이 할아버지의 예언대로 '아이 셋'은 현실이 되었고, '그 해 결혼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예언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으며 나의 '주체적' 결단과 '덕성'으로 그 길만은 피해가고 있는 이 다복한 2021년에 동양 고전과 서양 과학 연구자인 이철 선생은 이 고전적인 사물관계를 '맞얽힘'이라 선언했다. 모든 물질은 '맞섬'의 서양식 세계관과 만물이 하나로 '얽힘'이라는 동양적 사고방식을 한데 '맞얽혀' 새로운 용어를 '직관적'으로 표현하고자 단어를 찾았으나 적절한 작명에 실패했음을 토로하는 이철 선생은 [맞얽힘 : 맞선 둘은 하나다](<움직이는 책>, 2021)에서 공자와 손자, 노장사상은 물론 이들의 사상을 관통하는 '물극필반'의 개인 윤리인 [중용]과 사회사상으로서 '평천하'의 [대학]까지 요약한다. 이를 관통하는 객관적 배경이 바로 [주역]이다. 기존 강단학계와는 다르게 '맞얽힘'의 원리로 동양 고전을 새롭게 해석했다는 저자의 공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굳은 내 머리로는 아무리 봐도 '맞섬'은 '대립'으로, '얽힘'은 '통일' 또는 '연결'로, '맞얽힘'은 '대립물의 통일'의 '변증법'으로만 읽혔다. 저자가 애써 공부하고 궁리한 새로운 세계관의 법륜을 다시 허무하게 200년 전으로 돌리는 듯 하여 매우 송구했지만 어쩔 수 없다. 대신 '물아일체'나 '일국사회주의 완성'과 같은 단순무식한 '통일'이 아닌 끝없는 '연결(얽힘)'과 교차를 꿈꾸는 '유물변증법'의 '현대화'라 급마무리하는 내 마음대로 '서평'은 하나 써서 정리해 두었다. 바야흐로 현재는 토마 피케티 같은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자도 '사회주의'의 '현대화'로 급전화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시대가 아닌가 말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싫어하는 피케티 조차도 '자유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급전향하게 만든 정치경제사회 배경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 극한의 '불평등' 사회는 '물극필반'의 원리에 의해 '평등'이라는 가치와 '맞얽힘'의 관계이기 때문이며, 시대는 다시금 '평등'의 '유물변증법'을 소환하고 있다. 그렇게 '변증법적 유물론'은 [주역]과 함께 '현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4.
64괘 중 47번 '곤괘'에서 29번 '감괘'로 변화하면서 물에 퐁당 빠진 것도 모자라 아예 잠겨버렸지만, 오히려 그 이후 마음을 다스리고 지금 있는 곳에 좌정하여 다복하게 잘 지내는 지금, 잼처 [주역]을 읽던 시간을 생각한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고, 물에 빠진 생쥐꼴 보이기 싫어 물 속에서 나오기를 주저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만물은 흘러가고 변화한다. 그리고 적절히 잊혀지고 오늘의 나 또한 어제의 내가 아니다. 보는 곳이 다를 수도, 아니면 같은 곳을 보더라도 보는 방식과 자세가 다를 수도 있겠다.
내게는 지금까지도 [주역]이 이 원리를 담고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주역]이 워낙 어려운 것과 같이 솔직히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나인가 당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역시 "너 자신을 알라"가 제일 어려운 철학적 명제가 맞다.
2005년 '사주명리'의 점괘를 경계하며 사는, 2016년까지 읽다만 [주역]을 이철 선생의 [맞얽힘 : 맞선 둘은 하나다] 덕분에 다시 펼쳐본 2021년, 다시금 [주역]을 읽는 시간을 지나겠지만 '주역점'은 다시는 치지 않을 것이다. [주역]은 어려운 책이고 [맞얽힘]도 쉽지 않은 원리지만, 그래서 이은미 작가의 [유쾌한 랄라씨, 엉뚱한 네가 좋아](<움직이는책>, 2021)라는 책처럼 '맞얽힘'의 원리를 유쾌발랄하게 재해석할 재주은 없지만, [주역]과 [맞얽힘]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내 나름대로 정리했으니 이제 다시 읽던 [주역]을 잠시 덮고 '주역점' 없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 사상의 새로운 해석'을 선언한 이철 선생에게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맞얽힘'을 '새로운 (유물)변증법'으로 '현대화'시키고자 하는 지금 내게 [주역]을 읽는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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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맞얽힘 : 맞선 둘은 하나다], 이철, <움직이는책>, 2021.
2. [유쾌한 랄라씨, 엉뚱한 네가 좋아], 이은미, <움직이는책>, 2021.
3. [주역 - 왕필 주](3세기), 왕필, 임채우 옮김, <길>, 1998~2013.
4.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이상수, <웅진지식하우스>, 2014.
5.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이상수 지음, <길>, 2001.
6. [정도전을 위한 변명], 조유식, <푸른역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