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전주 여행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5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찾은 견훤(甄萱)은.
- [일상이 고고학 - 나 혼자 전주 여행], 황윤, <책읽는고양이>, 2022.


"892년, 나라에 도둑 무리가 벌떼처럼 일어나고 백성들은 정처없이 흩어지자, 이때를 기회로 삼아 '견훤(甄萱)'은 자신을 따르는 동료를 모아 서남 해안에서 당당히 하나의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러자 불과 한 달 만에 5,000명의 무리가 그에게 모여든다. 견훤은 무주(武州), 즉 현재의 광주를 함락시키고... 앞으로 백제 영역을 완전히 장악하여 백제 왕에 오르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을 때, 견훤의 나이 불과 스물다섯이었다."
- [일상이 고고학 - 나 혼자 전주 여행], <후백제 왕이 된 견훤>, 황윤, 2022.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삼봉 정도전을 꼽는다. 우리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전체 역사를 통틀어 성리학의 [대학]이 말한 '3강령 8조목'을 '혁명'을 통해 현실화시킨 인물로 나는 생각한다. 물론 유방의 한나라를 전한과 후한으로 나눈 '신'나라의 왕망도 유교 이상국가를 지향하다 단명했다지만 당시의 유학은 후대의 성리학만큼 정교한 이론이었다고 볼 수 없다. 주희 이래 성리학은 전 우주를 통찰하려는 세계관이었고, 그 이데올로기로 무장하여 새왕조를 개창한 유일한 인물이 내 생각에는 정도전이었다. 술에 취한 정도전은 말했단다. 한고조가 장자방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쓴 것이라고. 이성계의 주먹이 없었더라면 정도전의 머리가 없었듯, 정도전의 머리가 없었다면 이성계의 주먹은 고려의 주먹으로 썩고 말았을 것이다.


"궁예(弓裔)는 신라 사람으로 성은 김씨다. 아버지는 제47대 헌안왕 의정이요, 어머니는 헌안왕의 빈어로서 그 성명은 전하지 않는다. 혹은 이르기를, (궁예가) 48대 경문왕 응렴의 아들이라고도 하는데, 5월 5일에 외가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때 옥상에서 하얀 빛깔이 마치 긴 무지개처럼 하늘 위로 뻗치니 일관(日官)이 말하기를, '이 아이가 중오일(단오)에 태어났고, 나면서부터 이(齒)가 있으며, 또 불꽃이 이상하니 장차 국가에 이롭지 못할까 염려되므로 기르지 마십시오.' 하여 왕은 중사(中使)에게 명하여 그 집에 가서 죽이라고 하였다. 사자가 강보 속에서 들어내어 다락 아래로 던졌는데, 유모가 몰래 받다가 잘못 손으로 찔러서 한쪽 눈을 멀게 하였다. 안고 도망하여 숨어서 수고하며 양육하였는데, 나이 10여 세가 되자 유희를 그치지 않으니 그 유모가 말하기를, '네가 태어나서 나라의 버림을 받았으나 나는 차마 못하여 몰래 기르고 오늘에 이르렀는데 너의 미친 행동이 이러하니 반드시 남이 알게 될 것이며, 너와 나는 함께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니 어찌하느냐.' 하였다. 궁예는 울며 말하기를, '만약 그렇다면 나는 떠나서 어머니의 근심을 없게 하겠습니다.' 하며 세달사로 갔는데 지금의 흥교사가 이곳이다.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스스로 선종(善宗)이라 불렀다."
- [삼국사기], <열전 권10 - 궁예전>, 김부식, 1145.


그 다음으로 주목하는 인물을 톺아보라면 그 수많은 영웅들 중 후고구려의 궁예를 뽑겠다. 어린 시절의 궁핍을 딛고 본인의 이념과 실천으로 일가를 이룬 입지전적 인물의 전형이라고 나는 본다. 사료에는 신라왕족이라 적고 있으나 아버지가 무슨왕인지도 정확하지 않고 이를 뒷받침할 근거도 [삼국사기] <열전 10권> 말고는 빈약하다. 정도전 또한 서얼의 한계로 사회적 승진의 한계를 안고 있었으나 고려말 난세에 급진적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로 출사했고, 궁예는 이보다 5백년 전 '선종'이라는 세달사 탁발승에서 난세에 무장호족이 된다. 내가 중국사에서 서민황제인 한고조 유방과 궁예처럼 탁발승에 거의 극빈민에 가깝던 거지황제 명태조 주원장에 주목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난세의 시대적 배경도 있었지만 절대적으로 본인의 실력만으로 천하를 호령했던 자들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결과의 성패를 떠나서 말이다. 물론 출신이 비슷하더라도 당말 난세의 배신의 아이콘이자 양아치황제였던 후량의 주전충 같은 자는 얘기가 다르다.


소장 역사학자이자 '나 혼자 여행' 시리즈의 작가 황윤 선생이 2022년 3월에 낸 여행기는 [나 혼자 전주 여행]이다. 전주 하니 일단 조선왕조를 개창하여 정도전을 비롯한 고려말 급진적 성리학자를 처단한 후 왕가를 확고히 한 이씨 본향의 이야기만 나올 줄 알았건만, 생각치 못했던 '견훤(甄萱)'이 등장한다. 후백제를 건국한 바로 그 견훤이다. 저자는 이성계와 견훤을 '도플갱어'로 삼아 전주 기행문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신라말기 후삼국시대 군웅할거의 난세 속에서 궁예 및 왕건과 마지막까지 천하를 다투다가 고려태조 왕건에게 항복하여 자기가 세운 후백제를 본인의 손으로 멸망시킨 견훤의 최후와 함께 논산에서 이야기를 마치는데, 단순히 '전주'라는 오래된 도시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 시기 '9주 5소경' 중 하나였던 '전주'와 남원(남원경) 및 백제와 후백제 공히 멸망의 고장 논산까지 아우르는 후백제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현재까지도 전주를 지배하는 이성계와 오래전 잊혀졌지만 백제땅을 다시 지배했던 견훤의 시차적 약전(略傳)이기도 하다. 저자가 추적한 바에 의하면 견훤은 신라시대 '이씨'였고 그의 아버지였던 상주의 아자개의 본명도 '이원선'이었는데 신라의 서남쪽 해안에서 왜적을 막는 군인이었다가 장수가 된 후 백제땅에서 일가를 이룬 견훤은 본래의 '이씨' 성을 버리고 백제의 귀족성인 '견씨'를 택한다. 즉, '견훤'은 본래 '이씨'의 후예라는 추정으로 이성계의 조상일 수도 있음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다.


"마침 이 당시 견훤은 전유와 비슷하게 892년부터 신라 서쪽을 통치하는 공(公)의 지위에 스스로 올라 있었으며, 900년부터 935년까지는 옛 백제 지역에서 후백제 왕으로 활동했다. 즉, 오월 왕 전유와 시기가 거의 겹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월과 후백제는 900년 전후부터 외교 관계를 수립하여 적극적으로 교류를 이어갔다... 이에 최승우는 고민 끝에 오월과 비슷한 분위기를 지닌 후백제를 자신의 정착지로 선택한다."
- [일상이 고고학 - 나 혼자 전주 여행], <신라 3최(崔) 중 최승우>, 황윤, 2022.


이성계에게 삼봉 정도전이 있었다면, 견훤에게는 최승우가 있었다. '신라 3최(崔)'로 불리는 최치원, 최언위와 최승우는 모두 당나라 빈공과에 합격한 신라의 수재들인데 6두품의 한계로 진골이나 성골의 벽을 넘지 못했다. 신라 말기는 골품제로 대표되는 중앙집권적 귀족제의 모순이 심화되어 새로운 체제의 대두를 요청하고 있었다. 견훤의 부친인 상주(지금의 경북 문경)의 호족 아자개(이원선)도 진골이나 성골이 아니면서 1두품 각간을 자칭하던 시대였으나 신라 최고 천재 최치원은 끝까지 신라에 충성했고 그의 사촌 최언위는 고려태조 왕건에 귀부하여 이름을 날렸다. 기록에는 없으나 이들의 친척뻘로 추정되는 또 다른 수재 최승우는 후백제의 견훤을 통해 새세상을 기획한다. 당시는 중국 대륙 역시 당나라 말기 군웅할거 시대였기에 중국의 동부 오월땅에는 전유라는 자가 '오월왕'을 자칭하였는데 최승우는 당나라 시절 한때 오월왕 영향권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로 귀국한 최승우는 최치원이나 최언위와 다른 길인 후백제왕 견훤을 선택한다. 이후 결말은 달랐지만 최승우와 최언위는 각각 견훤과 왕건의 서신을 통해 경쟁을 했고 알다시피 패자는 견훤을 선택한 최승우였다.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지만 아마도 신라말 군웅할거 정세의 당시는 견훤이 더 유력자로 보였을 수도 있다. 궁예가 초기에 의탁했던 죽주(죽산)의 기훤이나 북원(원주)의 양길, 후에 명주(강릉)에서 독립한 궁예보다도 먼저 스물다섯살에 이미 무주(광주)를 점령하고 8년 후인 900년 서른셋에 전주(완산주)를 장악하여 후삼국 최초로 왕을 자칭한 영웅이 바로 견훤이었다. 기훤이나 양길의 수하였다가 이들 모두를 평정한 '일목(一目)대왕' 궁예가 부랴부랴 후고구려왕을 자칭한 게 901년이니 이보다 한해 먼저 후백제왕이 된 견훤은 신라말 군웅할거 시대를 정리하고 이른바 '후삼국시대'를 연 장본인이었다. 물론 북쪽에서 급격히 팽창하던 궁예를 의식하여 선수를 쳤을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당시는 견훤이 최고의 실력자였을 수도 있고 신라 천재 최승우가 귀부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정도전도 최승우도 난세에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야 했다. 정도전도 장자방을 존숭했듯 자신을 한고조의 책사 장자방에 견주었던 제갈량의 주군 유비도 역사에서 승자는 아니었다. '후삼국시대'는 궁예와 견훤이 각각 고구려(고려)와 백제를 동경하여 부흥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 이미 이들 나라가 멸망한지 2백년 이상 지났으니 망국의 복위운동이었다기 보다는 각자의 할거 지역 정서에 따라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앞세운 것이리라. 종교적 이념은 불교의 미륵불사상, 정치적 이념은 각지의 정서를 반영하여 각각 고구려(궁예-왕건)와 백제(견훤)를 슬로건으로 내건 것이다. 당시는 당말의 중국대륙과 신라말의 한반도를 통틀어 동아시아 전체가 군웅할거의 난세였다. 이들로부터 5백년 전 광개토대왕이 대륙으로 뻗어나간 5호 16국 시대처럼 궁예와 견훤 또한 대륙의 난세 속에서 천하제패를 꿈꿀 수 있었다. 9세기말 10세기초의 한반도에서 그 첫 출발은 견훤이었고 최승우라는 신라 천재가 주군으로 선택할 만한 영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역사의 승자는 견훤과 궁예가 넘어서지 못했던 삼국과 통일신라의 고대 중앙집권 귀족체제를 끝장내고 새로운 지방 호족연합권력을 정립했던 왕건의 포용력이었다. 왕건은 궁예를 몰아냈지만 궁예가 기틀을 다진 국가체제를 부정하지 않았고 아들의 쿠데타로 인해 자신이 세운 국가를 버리고 귀의한 견훤을 내치지 않았다. 물론 궁예의 후고구려의 최대 기반이 송악(개성)의 왕건 호족집안이었고 고려의 마지막 최강숙적 후백제의 사기를 꺾을 자가 견훤 밖에 없었다는 배경은 있었겠지만 지방호족 연합정권 시대의 창시자 왕건의 내공이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다. 신라말과 고려초(나말여초)는 신라의 삼한일통의 왕조통합과 다르게 고대 중앙집권 귀족체제에서 중세 지방호족 연합체제로 이행하는 체제의 시대적 교체기였던 것이다.


"이처럼 견훤은 자신이 세운 후백제가 멸망하는 모습을 확인한 직후 등창이 터져 이곳(황산) 사찰(논산 개태사로 추정)에서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으며, 왕건만 병력을 이끌고 남으로 내려가 전주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고려군이 최종승리를 만끽하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견훤은 세상을 뜬 상황이었다."
- [일상이 고고학 - 나 혼자 전주 여행], <개태사와 왕건>, 황윤, 2022.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왕권을 찬탈한 쿠데타 후 '함흥차사'의 소문으로 남은 시기에 사실 이성계는 의정부(양주) 회암사에 머물며 함흥의 수하 조사의로 하여금 1만의 동북면 군대를 모아 반란을 사주했다. 당시는 1만의 조사의(이성계) 반란군과 5만의 조선군 사이 내전의 상황이었는데 이방원의 빠른 대처와 총력대응으로 인해 반란은 진압되었고 역사는 '이성계의 난'이 아닌 '조사의의 난'으로 기록한다. 이후 아버지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을 조선의 왕으로 인정했고 성리학 이념국가 조선에서 태종 이방원은 다행히 불효의 죄를 면할수 있었다.

견훤의 맏아들 신검이 아버지를 폐위시켜 금산사에 가두었고 나이가 들어 무력이 아닌 술책으로 금산사를 탈출한 견훤이 왕건에게 항복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논산에서 대치한 신검의 후백제 정예군은 고려군의 선봉에 선 후백제 건국자 견훤을 보고 창칼을 내려 놓았다. 쉽게 후백제군의 주력을 무너뜨린 왕건은 내처 후백제의 근거지인 완산주(전주)로 내달렸고 견훤은 병에 걸려 논산에 주저앉는다. 괘씸한 아들에게 복수하고 싶었겠지만 차마 자신이 만든 국가의 멸망을 직접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왕건이 후백제를 복속하고 돌아왔을 때 일흔의 견훤은 이미 자신의 나라 후백제와 함께 죽은 후였다.

똑같이 칠십대까지 살았지만 이성계는 아들에 대한 복수는 실패했으되 자신이 만든 국가 조선은 보존하면서 장수한 반면, 5백년 전 그의 '도플갱어' 견훤은 아들에게 복수는 했으나 자신이 세운 국가 후백제와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일상이 고고학 - 나 혼자 전주 여행]의 저자 황윤 선생은 명시적으로 말할 수 없다. 사료적 근거가 없이 역사학자는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이씨'였고 전주를 장악하며 후백제를 열었던 견훤이 그로부터 한 5백년 지난 후 '도플갱어' 이성계를 만나게 한 이유는 아마도 견훤이 이성계 일족의 먼 조상이라 암시하는 것은 아닐는지. 

궁예나 견훤은 정도전이나 이성계와 달리 초상화가 남아있지 않아 얼굴이나 풍모를 상상할 수 밖에 없다. 한편, 고려 무신반란 초기 권력자 중 하나였던 이의방은 조선태조 일족의 조상이라는데 오래전 대하사극의 각각 다른 극 중에서 이의방과 견훤을 맡은 배우가 동일했던 것 또한 참으로 우연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역사학자가 아니라 소설이나 쓰고 싶은 나는 감히 추측한다. 
소장 역사학자의 이 책을 통해 내가 찾은 견훤(甄萱)은 이성계 일족의 '할아버지'라고 말이다.

***

1. [일상이 고고학 - 나 혼자 전주 여행], 황윤, <책읽는고양이>, 2022.
2. [슬픈 궁예], 이재범, <푸른역사>, 2000.
3. [삼국사기](1145), 김부식, 최호 역해, <홍신문화사>, 19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움받는 식물들 - 아직 쓸모를 발견하지 못한 꽃과 풀에 대하여
존 카디너 지음, 강유리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국 '잡초'와 인류의 '공진화(共進化)'
- [미움받는 식물들](2021), 존 카디너, 강유리 옮김, <윌북>, 2022.


"식물은 인간없이 잡초가 될 수 없고,
인간은 잡초없이 지금의 인류가 될 수 없었다."
- [미움받는 식물들], <프롤로그>, 존 카디너, 2021.


1. 

머리를 길렀다.
같이 밥을 먹다가 아버지는 "대가리꼴이 그게 뭐냐"시며 젓가락을 내동댕이 치시고는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으니 나는 머리카락을 계속 길렀고 이제 곧 2월이 되었다.

대학 1학년 동안 나는 영문과 학생회 내 '현대철학반', 줄여서 '현철반'에서 우리 학교 선배이자 철학과 강사인 우기동 선생의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라는 주 교재를 옆구리에 끼고 돌아다녔고 2학년 올라가면서 '현철반장'이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 떨어졌던 '반장'을 결국 이런식으로 하게 될 줄 몰랐지만 어쨌든 '현철반장'도 반장은 반장이었다. 

1994년 2월에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간 총학생회 주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앞두고 나는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던 것인데, 좀 어이없지만 '철학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94학번 신입생들이 긴머리의 우수에 찬 2학년 선배 현철반장을 보고 현철반에 많이 들어왔으면 하는 욕심에 부자지간의 인연까지 포기해 가며 머리를 길렀던 거다. 스물한살 그때는 진정 몰랐다. 내 추레한 긴머리가 신입생들을 철학에서 더 멀어지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찌되었건, 2학년 현철반장의 긴머리 때문은 결코 아니었겠지만 대여섯 명의 신입생들이 현철반에 들어왔다. 우리 문학을 읽는 영문과 학생회 내 주력학회 '문학사랑반', 줄여서 '문사'는 신입생들이 넘쳐났고 '문사'는 우리 학회에 별 관심 없었겠지만 '문사'를 경쟁상대로 상정했던 '현철반'의 신입생 수는 초라했다. 1980년대에는 '패밀리'라는 지하서클이었던 학회들은 1990년대 들어 학생운동의 부문운동으로 공개활동을 했다는데, 영문과 학생회에서는 '문사'와 '현철반'이 아마도 그 잔재였을 것이다. '문사'와 달리 쭈그러든 '현철반'을 재건하고자 했던 나와 정박아와 지진아 등 영문과 철부지 삼인방은 그래서 '문사'를 끊임없이 의식했고 도발했다.

스물한살 당시의 나는 '현철반' 여자 후배에게 감히 철학과 학생운동을 가르친다는 핑계로 겉으로는 여학생에게 관심없는 척 하면서도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스스로가 내심 부끄러웠다. 그러나 나이를 더 먹고 알게 된 건 대부분의 청춘들이 그 때는 다 그랬다는 사실이다. 내가 속으로 좋아했던 여자후배도 안그런 척 했지만 다른 남학생의 뒤를 쫓아다녔을 테고, 나를 좋아하는 듯 했던 희귀한 여자 후배는 나만이 아니라 다른 남학생들에게도 엄청 들이댔다는 사실을. 당시에 존경해 마지않던 91학번 선배들이나 더 오래전 치열했던 80년대 학번 소위 '386' 선배들 모두 그땐 다들 그랬다는 사실을. 인류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 고대 바빌로니아나 로마시대에도 스물한살 청춘들은 다 똑같았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없애려고 아무리 애써 뽑아도 보고 약을 쳐보아도 결국 사라지기는 커녕 더욱 창궐하며 진화발전을 거듭하는 '잡초들(Weeds)'처럼 이십대 청춘은 아무리 흑역사로 점철되더라도 똑같이 반복되고 진화발전하고 만다.


2. 

하고싶은 일을 직업으로 사는 삶이 제일 부럽다.
그때는 몰랐지만 중년이 되고보니 학업을 위해 대학원에 들어가거나 운동판에 뛰어들거나 '문학도'답게 작가 또는 번역일 등을 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행복해 보였다. 물론 그들은 회사 다니며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나를 그렇게 볼지도 모를 일이지만.

1994년 당시 '현철반'이 아닌 '문사' 소속으로 기억하며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연정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청춘 남학생을 쫓아다녔을지도 모르는 여자 후배가 번역가가 되었다는 소식은 익히 들었던 터였다. 대전에서 올라온 작고 눈매가 진하던 그 스무살짜리 여학생은 훗날 번역가가 되었고 오래전 소설가를 꿈꿨지만 결국 소설을 쓰지 못한 나는 그 후배의 삶을 속으로 응원했다.

얼마전 어쩌다 페이스북 친구가 되어 안부를 묻고 지내다가 그 후배가 식물을 키우는 이른바 '식집사'라는 것과 최근에 '식물'에 관한, 그 중 '잡초'를 주제로 한 미국 책을 번역했다는 걸 알고 냅다 책을 샀다. 속으로만 응원하는 게 아니라 실력은 없지만 '서평'을 쓰는 SNS 비인기 '작가'이기도 한 나는 독후감 하나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고맙게도 후배가 책을 한 권 또 보내주니 한 권은 서울집에, 다른 한 권은 오산 자취방에 두고 읽었다.

어려서부터 동물에는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구분도 잘하는 나는 사실, 식물에는 영 젬병이다. 나무와 꽃, 각종 식물은 아무리 설명을 듣고 다음에 다시 봐도 구분을 영 못한다. 그러니 실은 '잡초의 삶(Lives of Weeds)'이라는 원제목에 [미움받는 식물들]이라는 우리말 제목의 이 책의 진도가 생각보다 나가지를 않았다. 물론 내용은 흥미롭다. 결론인 즉슨, 인류가 1만년 이상 더 오래전 농경을 시작하면서부터 효율적인 작황을 바라며 제거하려던 잡초들(어저귀, 기름골, 베가위드, 망초, 비름, 돼지풀, 강아지풀 등)은 인간이 제거하려면 할수록 더욱 강해지며 진화발전한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바퀴벌레의 진화도 그렇고 공상과학 방사능 오염 괴수 고질라도 그렇고 잡초 또한 그렇다. 
인류와 잡초는 '공진화(共進化)', 즉 '함께 진화'하는 것이다.


미국의 사료작물학 박사이자 농무부 연구원이라는 존 카디너(John Cardia)가 2021년에 쓴 책 [미움받는 식물들(Lives of Weeds)]은 나의 1년 과후배 강유리가 번역했다. 그 아이가 속한 '펍헙번역그룹'에서 번역가 각자의 관심사를 가지고 직접 기획하고 발굴한 책이라 하니, '식집사' 강유리 선생의 안목 또한 돋보인다. 본인이 좋아하는 내용을 본인이 좋아하는 번역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얼마나 행복했을지 상상이 간다. 인지도나 대중성 같은 건 1도 없는 나같은 아마추어 SNS 작가도 책을 읽고 글을 쓸 때가 세상 가장 행복한 순간이니 말이다.


"봄만 되면 흙을 뚫고 나타나는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은 세상의 모든 정원사에게 좌절감을 준다. 이러한 적시성은 수천 년 동안 의도하지 않은 농경선택의 결과다. 잡초가 정기적인 농사의 주기에 적응하게 된 것이다. 농사의 주기 뿐 아니라, 씨앗이 쟁기질에 파묻히고 경운에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수확물과 함께 퍼져 나가는 등 농사의 모든 과정에 잘 적응한 유전형이 유리해졌다."
- [미움받는 식물들], <비름>, 존 카디너, 2021.


한 때는 약용으로도 쓰이고 인간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던 민들레가 '잡초'가 된 건 19~20세기 초 미국 중산층들이 유럽 귀족들과 같은 넓은 잔디정원을 로망으로 삼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비름을 비롯하여 기름골과 망초 같은 식물들이 '잡초'가 된 건 농업이 기업형으로 대규모 산업이 되고 '돈이 되는' 작물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인간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 식물들을 박멸하기 시작한 시점부터다. 물론 농경을 처음 시작했을 아주 오래전부터 '잡초'는 제거의 대상이었겠지만, 본격적으로 제초제를 만들어내고 대량살포를 통해 기업형 농업을 영위하던 최근에 이 식물들은 '잡초'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제거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노력에 정확히 반비례하여 이 '잡초'들은 진화했고 또 더욱 강해졌다.


"돼지풀은 지배, 착취, 식물에 대한 오만함을 불러온 숭리이자 인류세, 아니 '암브로세Ambrocene(돼지풀세)'의 잡초라 할 만하다... 이 초라하고 너덜너덜한 잡초를 인류가 직면한 전 세계적인 환경문제와 연결 짓는 것은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돼지풀과 환경문제는 둘 다 '발전'이라는 허황한 생각에서 생겨났다. 둘 다 지구에 대한 인간의 신념과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잡초가 그냥 식물이 아니듯이 '기후위기'는 그냥 날씨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에 있는 자원을 끊임없이 뽑아내고 성장할 것을 요구하는 인간 주도적 세계경제의 결과물이다."
- [미움받는 식물들], <돼지풀>, 존 카디너, 2021.


'누더기잡초(ragweed)'라는 이름에, 신들이 먹는 음식을 일컫는 '암브로시아(Ambrosia)'라는 학명을 지닌 돼지풀은 북아메리카에서 원주민들이 농경을 시작하던 5천년 전부터 '잡초'였다. 정확히 말하면 돼지풀이 다른 식물들과 자라는 땅에 인간들이 침범하여 작물을 심고 먹지도 쓰지도 못하는 돼지풀을 잡초로 규정하고는 지금껏 없애고 있는 중이다. 돼지풀이 잡초로 명성을 날리던 18~19세기 초 미국은 세계 각지로 배와 선원과 군인과 전쟁물자를 보냈고, 당시 주요 전쟁무기였던 말들의 건초더미와 군인들의 군장을 통해 돼지풀 씨앗도 확산되었다. 소련 스탈린의 농업 집산화에 저항하면서 농토를 놀렸던 우크라이나 농지에서도 이 돼지풀들이 성황하여 돼지풀은 이른바 '스탈린 잡초'라고도 불린다는데, 인류의 문명 발전과 극도로 함께 진화한 잡초의 대명사가 미국의 '국민 잡초' 돼지풀이다.


"가을강아지풀이 환경 전체를 장악하는 볏과 잡초가 된 것은 미리 결정되어 있던 일이 아니었다. 땅과 자원 이용에 대한 태도가 다른 곳에서는 아직 주요 잡초가 아니다. 세타리아(강아지풀)가 가능성과 희망을 상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는 다른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어떻게 농사를 짓고, 먹고, 소비하고, 서로를 대하고, 자연을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선택에 따라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무엇이 잡초가 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 [미움받는 식물들], <강아지풀>, 존 카디너, 2021.


길가에 늘어선 강아지풀들(세타리아:Setaria)의 친척 중 가장 강력한 잡초가 가을강아지풀이다. 저자인 존 카디너 박사가 이 책 [미움받는 식물들]의 제일 마지막 장 주인공으로 가을강아지풀을 다루는 이유가 "잡초가 보여주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서"(같은책, <가을강아지풀>)라고 하는 이유가 역설적으로 가을강아지풀이 최강의 잡초이기 때문이다. 모든 강아지풀이 다 잡초는 아니다. 그러나 이 '세타리아속' 식물 중 가장 크고 강력한 생존력을 지닌 이 가을강아지풀은 아마도 농업과 산업 문명 일체를 고속발전시켜 왔던 인류가 키운 최강잡초임에 틀림없다. 강력한 제초제를 이겨내고 스스로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식물의 가소성과 최신 화학약품을 동반한 극한의 제초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선택압 속에서 강화된 강아지풀의 패자가 바로 가을강아지풀이기 때문이다. 

잡초전문가인 존 카디너 박사의 결론은 수천년 동안 잡초를 없애고 이기려 해온 인류가 "결국 잡초를 당해내지 못했다"(같은책, <에필로그>)는 것이다. 즉, 초강력 잡초 가을강아지풀을 보고 인류의 문명을 다시 돌아보자는 것이다. 자연과 생태계와 동반하는 삶을 시작하면 잡초는 더 이상 인류에게 제거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인류와 잡초 사이에 이어져 온 수천수만년 간 '공진화(共進化)'의 결말이다.


3.

'공진화(共進化)'를 다시 생각해 본다.
예전의 나는 푸르른 청춘이었으나 돌아보면 쑥스럽고 겸연쩍은 흑역사를 숱하게 남겼다.
지금의 나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후회와 갖가지 회한을 곱씹지만 사실 다시 그 시간이 주어진다 한들 지금보다 더 잘 살아볼 요량은 없다. 
다만, 그 당시든 지금이든 부족한 나와 함께 울고 웃으며 진화해 온 사람들과 관계, 환경을 생각한다.

머리를 기르면 내게도 '철학'이 올지도 모른다고 믿던 스물한살의 나와 그런 나를 만들어준 사람들, 90년대 초반의 시대.
좋았든 싫었든 나와 '공진화(共進化)'했던 환경들이다.

세월이 흘러 오래전 긴머리의 아들을 못마땅해하셨던 중년의 아버지가 연로하시어 거동도 어려운 지금, 나와 대립하고 상생하며 지내온 무수한 사람들과 환경을 돌아본다.

진부하지만 결론은,
내가 스스로 진화하며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다~ 모두다~ 사랑하리~"의 그룹 송골매 노래의 제목일지언정.


"사람이 있는 곳에 잡초가 있다... 우리는 결국 잡초를 당해내지 못했다."
- [미움받는 식물들], <에필로그>, 존 카디너, 2021.

오래전 알았던 대학후배가 번역한 잡초와 인간에 관한 책을 읽으며 새삼 떠올린 생각이다. 
부디, 이기려 하지 말고 함께 살아가려 노력해볼 일이다.

머리가 길었고 '현철반'에 후배들을 불러모으던 그 푸르던 젊은날의 내 생각은 분명 그랬었지 않았던가.

***

- [미움받는 식물들(Lives of Weed) - 아직 쓸모를 발견하지 못한 꽃과 풀에 대하여](2021), John Cardina, 강유리 옮김, <윌북>, 20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 읽는 것만으로 역사의 흐름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김재원 지음 / 빅피시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한 권'에 담기 위해서는
-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김재원, <빅피시>, 2022.


"이 책은 과거를 향한 쓸데없이 신중한 접근을 삼간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거꾸로 반감부터 드는 게 인간이 아니던가. 마치 역사를 알면 세상 삼라만상의 비밀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할 생각도 없다. 그럴수록 역사는 더 지루해진다. 역사라는 학문이 지금까지 과도하게 유통되면서도 정작 사람들의 뇌리에 남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프롤로그>, 김재원, 2022.


오래전 소설을 써보고 싶었지만 잊고 살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중년이 되었다. 서평이라도 써서 남겨보려고 책을 읽다보니 문득, 모든 책이 '역사' 책이라는 걸 깨달았다. 철학도, 문학도, 사회과학도, [자본론]이나 [종의 기원]도 결국 '역사'로 보였다. 
그래서 굳이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역사' 관련 책만 읽지는 않는다.
인류가 남긴 모든 책에는 '역사'가 들어 있기에 독자는, 그 책에 담긴 '역사'를 찾아내는 탐정이 되면 된다.


역사학자 김재원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2022)라는 담대한 제목의 책을 통해 너무 신중하게 다루어서 지루해졌거나 또는 입시용으로만 공부했기에 대입시험 후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한국사'를 경계하며 "쉽게 그러나 가볍지 않게 떠나는 한국사 여행"(같은책, <프롤로그>)을 제안한다. 

그에 따라 저자는 <고대>를 다룬 1장에서 고조선과 삼국시대를 대표적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연속적 서사에 필요한 다른 이야기들은 과감하게 생략한다. 예를 들어 고조선은 단군왕검 신화와 청동기에서 철기시대로 전환과정으로 정리하고 말지 고조선 내부의 국가체제, 사회문화, 주요인물 세부내용들은 건너뛴다. 부여라는 국가의 중요성은 잠시 언급하고 나서 삼국시대는 철기를 기반으로 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의 틀을 갖춘 고구려-백제-신라의 특징, 즉 정복약탈국가 고구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백제, 배신의 아이콘 신라와 이에 가려진 가야를 순식간에 정리하고 만다. 한 권으로 엮기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국가체제를 갖추었을 수도 있었을 고조선과 고대국가체제 이전부터도 삼국 또는 열국시대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는 논쟁거리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급하게 넘어가야 하니 사료가 별로 없는 남북국 시대 발해는 본격적으로 언급할 여유도 없다.

2장의 <고려시대>는 남북국 시대의 남국 통일신라 말기 후삼국의 영웅인 궁예와 견훤, 왕건을 시작으로 고려시대의 굵직한 흐름을 잘 정리하고 있는데, 지방 호족 분권정치의 시작 및 광종과 성종의 개혁, 묘청의 서경반란의 배경인 문벌귀족 이야기와 이 체제가 초래한 무신정변, 원나라의 사위나라로서 고려의 위상 등의 흐름이 잡힌다. 입시용으로 외울 내용은 과감히 생략하고 흐름만 잡아도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생소한 <고려시대>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 책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장이 바로 2장 <고려시대>다.

3장 <조선시대>는 정도전과 이성계의 역성혁명의 본질을 '부동산', 즉 '계민수전'의 토지개혁으로 간단히 정리하는데, 정도전의 성리학 관료국가를 뒤집은 이방원의 왕권강화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이후 두차례의 중종 및 인조반정과 왜란과 호란의 전란 등 굵직한 사건과 그 속의 인물들 중심으로 흐름을 잡고 있다. 다들 알만한 성군 세종의 업적이나 붕당정치의 실체와 장단점 등을 논하기에 한 권으로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임진-정유왜란과 정묘-병자호란 등 조선의 국운을 꺾은 대전쟁들은 한반도 국지전을 넘은 대륙까지도 아우르는 동아시아 세계대전이라는 인식은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4장 <근현대> 또한 구구절절 1960년의 4.19, 1961년의 5.16, 1979년의 10.26과 12.12, 1980년의 5.18이나 1987년 및 2016년 민주항쟁 같은 전통적 서사를 벗어난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면서 전두환 군사독재는 일언반구도 안하는 이유가 이승만과 박정희는 공과를 놓고 민주-반민주 진영논쟁의 여지가 있는 한편, 전두환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끝났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희대의 살인권력 전두환 정권에 대한 비판이 빠진 근현대 한국사는 다소 생소하다. 이 책에서 현대의 끝은 아마도 1997년 IMF 경제위기인 듯 한데, 저자는 1995년 삼풍백화점이라는 강남의 호화시설의 붕괴에 빗대어 평가하고 있다. 재해의 규모상 1950년 6.25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재난이었던 삼풍백화점 붕괴는 남한의 기존 사회경제 체제의 붕괴를 상징하며 우리 사회의 체질을 바꾼 IMF의 전조라는 저자의 결론적 평가 행간에는 그럼에도 불평등 체제가 그 위기들 이후 심화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한국사를 한 권으로 정리해야 하는 저자에게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서술할 지면적 여유는 없어 보인다.

결국, 입시를 위한 암기용이 아닌 '역사'는 세세한 내용보다는 흐름 위주로 읽어야 한다. 
중국의 역사학자 이중톈은 수십년 계획의 '중국통사' 시리즈를 쓰며 이를 위해 추리소설 기법을 접목했다. 즉,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시기의 특정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시대적 배경을 아우르며 사건의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도 굳이 '한 권'에 담기 위해서 노력하기 보다 '추리소설'처럼 독자를 안내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어떻게 쓰든,
'역사'는 흥미롭지만 말이다.

***

-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김재원, <빅피시>, 20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루레이]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
마이클 도허티 감독, 밀리 바비 브라운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9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신화'와 '과학'은 하나다
- 영화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2019), 마이클 도허티


"왕이여,
영원하라!"


1.

내가 재성이네 미용실 다락방에서 내려온 1984년경, 나는 종이접기 필살기 한 가지를 장착한 후 하산한 터였다. 물론 기술은 습득했으되 서툴러서 한 마리 접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고 국민(초등)학교 4학년 고사리손으로 그렇게 만든 결과물 또한 정교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친구들 앞에서 아무 때나 발휘할 만은 못했다. 그래도 종이접기 과정은 머릿속에 정확하게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당시의 내가 구입할 수 없었던 <다이나믹콩콩시리즈>의 그 수많은 로봇과 괴수 대백과사전을 섭렵하고 대괴수 '라돈'의 종이접기 최고난이도까지 정복한 나는 더이상, 별로 정확하지도 않은 내용의 이야기로 으스대며 가끔 내 등과 팔다리를 물어 이빨자국을 내던 재성이의 다락방에 오르지 않아도 되었다.
그 때 하산한 나를 반긴 건, 종이접기와 '공작' 활동에는 나에 미치지 못하지만 어린 나이에 제법 근거를 갖춘 '서사'에 강했던 같은 반 친구 민수였다.

초등학교 졸업반과 중학교 시절 1, 2차 세계대전의 서사에 빠져들기 전, 민수와 나는 일본의 대괴수 '고질라'의 괴수 대전쟁에 잠시 빠졌다. 그 후로도 수년간 그랬듯 나는 '똘똘이 스머프'를 닮은 민수의 이야기 전개에 의지하며 예전에 재성이네 다락방에서 수련한 로봇과 괴수들의 캐릭터를 그림으로 그렸고 라돈을 접었다. 이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5년 이상 지속된 '글 김민수, 그림 송용원' 서사의 시작이었다.

그 서막을 연 것이 바로,
일본의 대괴수 '고질라' 이야기였다.


'고질라(Godzilla;ゴジラ)' 시리즈는 1950년대 등장한 일본의 괴수 영화 캐릭터라는데, 1980년대 중반 당시 초등학생 우리는 일본 캐릭터들을 해적판으로 베낀 <다이나믹콩콩> 대백과 시리즈들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처음 재성이네 다락방으로 입산하던 1983년 경에는 몰랐는데 하산하게 된 1년 후에 내게 그 사실을 알려준 게 바로 박학다식 초딩박사 김민수였던 것이다. '고질라'가 일본 괴수라는 것을 알고있던 민수의 정보는 고질라도 외계 생명체라는 식의 재성이식 서사와 달랐다. 어디서 알았는지 근거를 자신있게 대던 민수는 믿을만 했다. 한편으로 그림만은 잘 그리던 나는 동년배 친구들에 비해 너무 어리거나 덜 떨어진 듯 느껴졌다. 아마도 수년 후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머리도 굵어지고 친구들도 많아졌던 내가 알게 모르게 똑똑한 민수를 따돌렸던 건 나의 이 오래된 열등감의 소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질라'는 '킹 기도라'와 '라돈', '모스라'와 '메카 고질라' 등의 괴수 캐릭터들과 함께 이후 다수의 영화 시리즈에서 등장시켰기에 사실상 하나의 일관된 서사 같은 게 없다. 다만, 티라노사우르스 같은 거대 육식공룡을 닮은 '고질라'와 프테라노돈 같은 익룡을 닮은 '라돈', 대왕나방 '모스라' 등은 인류의 무분별한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으로 탄생하고 진화한 대형 생물종, 즉 괴수였다는 유래를 가진다. '고질라' 등 착한 괴수들이 대항하는 숙적으로서 나쁜 괴수들인 머리 셋 달린 용 '킹 기도라'와 로봇괴수 '메카 고질라'는 지구 밖 외계에서 왔는데, 이로 인해 이 대괴수들의 전쟁은 광대한 스케일의 '우주 대전쟁'이 된다.
어쨌든 일관된 서사는 없어도 '고질라' 시리즈는 그 캐릭터들의 유래 자체를 통해 인류에 의해 위협받는 지구와 생태, 더 나아가 기후환경에 관한 거대 서사시가 된다. 우주까지 끌어들인 것은 사실 우주의 일부로서 이 지구라는, 아주 작은 점이지만 흔치 않은 생명체 행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도 하다.

이 지구사랑의 대괴수 서사시는 최근에는 헐리우드의 자본과 기술력에 힘입어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2019)로 회생했다.


2.

작년말에 직장의 인사이동으로 나는 경기도 오산에서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다. 주중 혼자 지내는 저녁시간에도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주간 문사철(文史哲)'이라는 서평작업을 혼자 하고 있음에도 읽은 책이 주당 한 권을 넘어서 미리 서평을 써두게 되었고 그 동안 읽어야지 벼르던 어려운 책들도 자취생활 덕분에 많이도 먹어치웠다. 그렇게 6개월 여를 보내다가 일종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는데 그 때 떠오른 게 38년 간 나의 필살기 '라돈' 접기였다. 나는 마치 묵상을 하듯 자취방에서 홀로 A4 용지를 잘라 '라돈'을 접었고 접어서 넘쳐나는 '라돈'을 동료들에게 주었다. '라돈' 하나만 접기에 지루해진 나는 주말에 집에 가서 둘째딸 은규에게 사준 로버트 랭과 존 몬트롤 등 미국 종이접기 대가들의 책를 펼쳐 역시 최고 난이도 머리 셋 달린 용 '기도라'와 그리스 신화 속 뤼키온의 괴수 '키마이라', 일본의 종이접기 대가 후지모토 무네지의 '오리가미(origami : 종이접기) 로봇' 시리즈를 매주 한 가지씩 연습하고 습득했다. '라돈'과 '기도라'와 '키마이라', '오리로봇'과 'T-렉스' 등 필살기 5종을 열심히 접어댄 이유 중 하나로 대리석에서 예술적 영혼을 일깨워내던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처럼 새하얀 A4 용지를 통해 이 종이접기 기술들을 완벽히 구사하여 나름 유투브에 올려볼까 했던 욕심도 있었다. 필살기 6호로 '고질라'를 종이접기 책에서 찾지를 못하여 어쩔 수 없이 유투브를 검색하여 정사각형 용지 한 장으로 접는 '고질라'를 찾아 열심히 따라 접던 어느날, 스승의 손이 너무 고사리스러워 소리를 높여 들으니 나에게 '고질라' 접기를 가르쳐 주시던 그 손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초등생 유투버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나는 이 '한 장으로 쉽게 접는 고질라' 이후 종이도 접고 유투버의 꿈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6행의 '사언절구' 시 한편을 남기게 된다.

젤로형의 정신으로
육호까지 접은후에
유투버를 꿈꾸었네
그중쉬운 고질라여
초딩유툽 고사리손
종이접고 유툽접네

그러나 8월에 들어 여름 휴가를 맞아서도 나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휴가를 떠나서도 나는 베트남 지폐접기 유투버의 '고질라'를 따라 접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정사각형의 용지 한 장으로 접는 기존 필살기 6종과 다른 차원이었다. 지폐와 비율이 같은 직사각형으로 A4 용지를 재단하여 최근 읽는 양이 10분의 1 이상 줄어든 나의 책들 속에 꽂아두었다가 꺼내서 접어댔다. 여름 휴가지의 저녁 숙소에서 처자식이 잠든 밤에 직사각형 종이 다섯장으로 접어서 조립합체하는 '고질라'를 습득했고, 이제 그만 접고 책 좀 읽자 싶다가도 손이 멈추질 않아 하계휴가가 끝난 그 다음주에는 직사각형의 용지 여덟장으로 접어 붙이는 '킹 기도라'까지 익히고 말았다. 한달전 내가 접고도 신기해 마지않던 정사각 한장짜리 '기도라'와 '고질라' 따위는 이미 시시해졌다.


3.

2019년 마이클 도허티 감독의 헐리우드 영화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Godzilla : King of the Monsters)]는 역시 1950년대 일본의 대괴수 '고질라'를 비롯한 대괴수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긴 우주적 사건으로 확장시키고 싶은 지구적 기후생태환경 위기의 산물로서의 이 대괴수들은 아주 오래전 선사적 고대로부터 인류의 지구파괴 역사에서 그 부작용으로 계속 진화해오고 있었는데, 이와 무관한 우주 대괴수 '킹 기도라'는 어쩐 일인지 괴수추적 비밀단체 '모스크'에 의해 남극 기지에 동면된 상태였다. 지구의 환경위기와 진화되는 대괴수의 간헐적 출현으로 대재난이 반복되는 가운데 극렬 환경주의자들은 이 고대 지구의 주인 '타이탄'인 대괴수를 모두 살려내어 '인류세' 동안 인간들의 문명에 의해 급격히 파괴된 지구를 그들 타이탄족에게 다시 되돌려주기 위해 '모스크'가 봉인한 대괴수들을 일시에 깨워낸다. 우주에서 온 대괴수 '킹 기도라'는 그 이름처럼 대괴수들의 '왕(King)'이라 동면에서 해제되자마자 전세계 모든 괴수들을 깨워 결집시킨다. 그러나 이 괴수들은 우두머리를 따를 뿐 각자의 의도가 따로 있지는 않다. 

결국 악당 괴수 '기도라'와 자기집인 지구를 지키려는 주인공 '고질라' 간의 건곤일척 대전을 통해 지구의 운명이 결정되는데, 모스크를 필두로 한 인류는 당연히 '신화'적 존재로 밝혀진 '고질라'와 '기도라'의 대전쟁중 '고질라' 편에 서서 인류 '과학'의 힘으로 돕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구를 지배하려던 '기도라(Ghidora)'와 지구를 지키려던 '고질라(Godzilla)'와의 전쟁에 다시금 인류의 문명이 결합하고 열세에 몰려 죽음까지 이르던 고질라에게 인간은 핵반응이라는 '과학'의 힘까지 동원하여 다시 살려내면서 결국 '고질라'가 승리하고 지구를 지켜낸다는 이야기다. 

결론은 당연히 이 고대의 '신화'(괴수)와 당대의 '과학(인류)'이 융합하여 지구를 지킨다는 것이며 이제 '고질라'와 함께 '기도라'를 물리친 인류는 기후생태환경을 더욱 사랑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으로 향한다. 

기도라의 세 개 머리 중 마지막 대가리 하나를 먹어치운 고질라가 궁극의 '괴수왕(King of the Monsters)'으로 등극하여 토해내는 핵방사능 포효 속에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생태위기를 경계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왕이여,
영원하라!"

'기도라'가 동면에서 깨어났을 때 극렬 환경주의자가 읊던 이 '신화'적 주문은,
'고질라'를 돕게 된 인류의 '과학'자가 또 다시 읊으며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 '왕(King)'은 결국 '신화'와 '과학'이 일종의 핵반응처럼 하나로 응축된 '고질라'로 상징된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고대나 현대나,
'신화'와 '과학'은 하나다.

***

-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Godzilla : King of the Monsters)], 마이클 도허티, 20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독교 콘서트 - 교양인이 알아야 할 기독교 2천 년의 스캔들과 진실
만프레트 뤼츠 지음, 오공훈 옮김 / 더봄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캔들' 자체가 '스캔들'?
- [기독교 콘서트](2018), 만프레트 뤼츠, 오공훈 옮김, <더봄출판사>, 2022.


"기독교는 서구 세계에서 가장 베일에 싸여 있는 종교다. 이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너무 많은 정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보들은 대개 유별나고 진기한 특색이 있다. 즉 기괴할 만큼 잘못된 정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오늘날의 역사학 관점에서 이른바 교회의 모든 '스캔들'을 비판적으로 규명하고 이를 통해 기독교의 은밀한 역사를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자 여러분은 '굉장히' 흥미진진한 결과물을 기대해도 좋다!"
- [기독교 콘서트], 만프레트 뤼츠, 2018.


1.

어릴적부터 하늘을 보면 저 멀리 구름 사이로 햇빛 한 줄기가 땅으로 내리꽂는 장면을 기대했다. 

취학전 할머니께서 잠시 입원해 계셨던 병원 입원실의 달력에서 아마 처음 보았을 그 이미지는 초등시절 아주 가끔 가본 동네의 작은 교회의 달력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의 그림 배경으로 다시 만났다. 아버지 하느님이 계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하는 예수에게 내리쬐던 그 한 줄기 광선은 신의 계시로 보였다. 신비로운 그 장면은 고등학교 때 잠시 가본 마을의 동안교회 청소년부 회장형의 광기로 인해 다소 반감되었으나 아직까지도 하늘을 올려보게 될 때 나도 모르게 기대하는 광경이다.

남자고등학교를 다니던 내가 여학생 구경이라도 할까 기대하면서 들러본 동안교회 청소년부에는 여학생은 커녕 광신도의 눈빛을 지닌 청소년도 아닌 대학생 회장형이 있었고 한 번 나갔다가 교회를 제낀 내게 그 형은 수차례 전화를 해대더니 심지어 '회개하라!'는 편지를 몇 번인가 보내왔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교회에서 온 편지봉투를 보며 '꼴에 연애는 무슨' 하는 듯한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여학생 구경도 못한 나는 억울했다.

그것이 아직 구름 사이의 한 줄기 광선을 기대하는 나에게 남은 유일한 기독교 '스캔들'이다.


2. 

며칠전 페이스북에서 믿고 읽는 <더봄출판사>의 책광고를 보았다. 

책 제목은 [기독교 콘서트]. 
독일의 정신심리학 의사이자 신학박사 학위를 강조하는 만프레트 뤼츠(Manfred Lutz)가 호기롭게 낸 책으로 원제는 'Der Skandal der Skandale', 즉 내가 번역하기로는 '스캔들'들(복수형:die skandale)이라는 '스캔들'(단수형:der skandal), 해석하면 2천년 기독교 역사 속 모든 '스캔들'이라는 것들 그 자체가 '스캔들'이라는 의미다. '스캔들(scandle)'은 알다시피 '추문' 또는 '좋지 않은 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기독교의 역사와 그 근본 교리 및 이념을 토대로 2천년 기독교에 관한 '스캔들(추문)' 자체가 '추문(스캔들)'이라고 이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유일신교의 출현... 욕구가 없고 초월적인 '유일신'은 개인적이고, 자유로우며, 윤리적인 판단을 인간에게 요구했다. 신은 내면적인 것을 요구했다. 결국 시대는 이러한 신들의 법정에 서게 됐다. 이후 인간은 오로지 홀로, 단독으로 신 앞에 섰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인간보다 신에게 더 복종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신 자신은 오로지 내면적인 복종만 바라서, 강요된 복종은 전부 의미가 없게 됐다. '자유롭게 신앙을 갖는 유일신교'이기 때문에, 유일신교의 기원은 오늘날 인간의 자유와 자율로 이해할 수 있는 성향을 보인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은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게 아니라, 수세기 동안 발전하는 과정을 거친다."
- [기독교 콘서트], <1.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만프레트 뤼츠, 2018.


기독교라는 2천년 간의 '스캔들'이 모두 그 자체가 '추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이 책은, 우리가 기독교에 관해 아는 거의 모든 것을 정반대로 해석한다. 
이 책에 의하면 로마 시대 국교로 공인된 기원후 4세기 이후 중세를 거치며 행해진 가톨릭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등은 사실 기독교의 '스캔들'이 아니다. '유일신교'의 대표 종교인 기독교는 기존 범신론적 '부족종교'에 비하면 '자유로운 개인'의 이념적 기원이라고 한다. 원시 부족종교는 물론 그리스와 로마의 다신교는 공동체의 종교를 믿지 않으면 집단에서 축출되었던 반면, 기독교는 유일신교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종교의 자유'는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신 앞에 선 단독자'를 가능케 했단다. 중세의 종교재판 또한 그 자체로 보면 종교 탄압 같지만 본래 폭력적이었던 게르만족의 처벌과 형벌에 비하면 그 정도와 횟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인데, 실제로 저자는 교황과 주교들이 신체 절단과 화형 등의 형벌을 반대했고 최소화했다는 사실을 역사적 수치 자료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이 모든 '역사'적 자료들은 2007년 아르놀트 안게넨트라는 역사학자의 방대한 연구서가 출처라는데 [기독교 콘서트]는 그 연구서의 일종의 대중판과 같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기독교의 교리와 이념은 우리에게 알려진 중세 암흑기의 상황과 달리,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개인의 출현이며, 기독교를 믿을지 여부는 불완전한 이 개인들의 '자유'에 맡겼기에 근대의 '인권'과 '계몽주의' 조차도 저자에 의하면 기독교의 이념에서 기원한단다. 이 정도의 결론에 이르면 과연 저자의 단언처럼 '굉장히' 흥미진진하지는 않을지라도 '굉장히' 도발적이기는 하다.
중세의 암흑을 걷어내려던 '계몽주의'와 '인권'에 기반한 대혁명 조차도 아이러니하게 기독교에 기반한다는 매우 놀라운 결론이다. 그렇다면, 근대의 혁명이 타파하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의 주장은 기독교 교리와는 반대로 나타났던 폭력적인 게르만 문화와 신 앞에 선 인간을 부정하고 성경만을  교조화시킨 루터 등의 종교개혁파를 비롯한 칼뱅이나 츠빙글리 등의 신교파, 하느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스른채 폭력으로 점철된 온갖 정치혁명 탓이란다. 

이러한 논리로 기독교 2천년의 '스캔들'은 결국 본디 선한 기독교의 이념과 달리 억울하게 퍼진 '추문'에 불과하니 역사 속에 서술된 일체의 기독교 '스캔들' 자체가 '스캔들'임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겠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인 것이다.

이렇게 기원후 1천년 부터 중세 십자군 성전, 아메리카 인디오 원주민 말살과 아프리카 흑인노예 매매 등을 일관되게 '반대'했던 기독교 이념은 성스럽게 옹호된다. 만프레트 뤼츠가 함께 돌아본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교회의 불완전했던 역사 또한 신성한 기독교 교리체계에 의해 변호된다. 이 책은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비록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했고 나치즘을 용인했으며 식민지 선교의 역할을 맡아 제국주의 첨병이 되었던 '스캔들'은 있었지만, 원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게르만 유럽의 역사가 그런 것이며 여기에 문명을 접합시킨 기독교는 이 폭력의 역사를 저지하거나 순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굉장히' 도발적인 '스캔들'을 시도하고 있다.


"기독교와 교회의 역사를 '스캔들'로 뒤바꾸는 것 자체가 '스캔들'이다."
- [기독교 콘서트], <12. 21세기 교회>, 만프레트 뤼츠, 2018.


그리하여 이 책의 결론은 위의 한 문장이다.
개신교와 게르만 문화, 나치즘과 공산주의 등의 20세기 문명, 나아가 폭넓게 18세기부터 출현한 사회주의와 다양한 혁명 자체도 이 책에 의하면 그 자체가 '스캔들'이지 가톨릭의 2천년 역사 속 기독교 자체는 무죄다. 기독교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이를 왜곡한 불완전한 인간들의 탓이지 하느님과 그의 대리자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에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거다.
이 책은 오히려 기독교 자체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이다"라고까지 주장하는데 과연 '굉장히' 놀랍다.

차라리,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예수와 기독교의 유물론적 역사를 개괄한 20세기 초 칼 카우츠키의 책이나, 아니면 가톨릭의 세속적 역사를 온갖 음모와 의혹의 극단적 '스캔들'로 간주해 버리는 1980년대 BBC 방송작가 헨리 링컨 등의 [성혈과 성배]와 같은 20세기의 진지한 책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독자라면 만프레트 뤼츠의  이 책이 어쩌면 '굉장히' 흥미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편 들기도 한다.

저자 만프레트 뤼츠는 아마도 독일의 문화 속에서 그나마 우리 사회 '민주당'보다도 좌파적일지도 모를 기독교중앙당이나 기독민주당 같은 계열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저자의 말>과 <들어가는 말>을 읽고 '굉장히' 자신만만한 저자의 단언에 낚시질당했던 나는, 어쨌거나 책의 결론까지 읽고 나서 오래전 나에게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오라"던 동안교회 청년반 회장형의 광기를 저자 만프레트 뤼츠와 오버랩시키고 말았다.

나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예수를 '혁명가'로 보는 '유물론자'이기 때문이다.


3.

청년기의 나는, 일체의 종교와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단호한 '유물론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중년의 나는, 솔직히 말해 어느정도 '영성(靈性)'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신화와 종교,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회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한 인류 역사 속 '인지 혁명'을 이야기한 역사학자들 덕도 있고, 계급사회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한 루이 알튀세르를 한 때 추종하기도 하면서 '철학'의 지위를 높게 보던 시절의 덕도 있다. 
이데올로기가 없는 혁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동 쿠데타는 '체제 수호'가, 급진적 혁명은 '체제 타도'가 각자의 슬로건이었다.

이 모든 이데올로기가 바로 '영성(靈性)'이라고 본다.
나 개인도 스스로가 동물임을 철저히 인식함에도 먹고 자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 수 없다. 거창한 목표의식까진 아니더라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데올로기' 또는 '신념화'를 거치지 않고 살기란 어렵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어찌보면 스스로를 세뇌하고 속이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기도 한데, 인류 역사에서 사회 공동체의 역사 또한 바로 이런 '영성'의 역사였다. 

21세기 기독교의 수호자 만프레트 뤼츠의 '굉장히' 용감한 당파성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누구든 본인의 신념과 물질적 기반을 옹호하고 변론할 자유가 있다. 나 또한 기독교라는 수천 년간의 '스캔들'을 '유물론'적 시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이 아닌 '인간'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내가 보기에 예수는 견고한 로마 체제와 기회주의적인 유대교 랍비들에 대항하여 급진적 평등세상을 주장한 '혁명가'다. 예가 무너진 세상에 누구든 '인의예지' 덕목을 실천하면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 현실주의자 공자와 '모든 사람이 곧 부처'라는 지극한 평등사상을 설파한 석가모니, 유일신 사상의 실천으로 이슬람 형제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광대한 평등의 집을 건설하려던 마호메트 등과 함께 예수가 인류의 위대한 '4대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공통 덕목이 바로 '평등'이라는 '이데올로기'였고 '영성'이었다.

기독교든, 유학이든, 불교나 이슬람교든,
이 모든 '영성'의 '이데올로기'는,
모두가 함께 어우러진 세상을 살아가는 '평등'이라는 공통의 가치이다.

***

1. [기독교 콘서트(Der Skandal der Skandale)](2018), 만프레트 뤼츠, 오공훈 옮김, <더봄출판사>, 2022.
2. [그리스도교의 기원](1908), 칼 카우츠키 지음, 이승무 옮김, <동연>, 2011.
3. [성혈과 성배](1981), 헨리 링컨, 마이클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지음, 이정임, 정미나 옮김, <자음과모음>, 20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