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가 묻고 답하다 - 2023 세종도서 학술부문
이경태 지음 / 박영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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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르크스는 묻고 스미스는 답했다
-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가 묻고 답하다], 이경태, <박영사>, 2023.


"철학적 토론은 없다. 
철학적 코뮤니카시옹은 없다."
- 루이 알튀세르, [레닌과 철학], 1968.


1.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지식이란 과학적 발견으로 생기며 철학은 사상의 경향성을 설정할 뿐이라고 했다.

철학자인 그가 보기에도 철학이란 지식 생산 기능은 없이 과학이 발견한 지식을 가지고 싸움질이나 하는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었다.

1980년에 정신 나가기 전까지 그 철학자는 '이론'적으로 투철한 공산주의자였다.

이십대의 나는,
그의 추종자, '알튀세리앵'을 선망했다.

내가 보기에도,
모든 '철학'적 토론은 같은 대상을 두고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자기 얘기만 하기에,
합의에 이를 수 없었다.

알튀세르의 말대로,
철학적 '코뮤니카시옹(communication)'이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2.

"나의 경제학은 자본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놓고 있지. 경제를 움직이는 주체는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경제인, 즉 'homo economicus'라는 것이 대전제로 설정되어 있지... 자본이 경제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고. 자본은 수단에 지나지 않아."
-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가 묻고 답하다], <1부>, 이경태, 2023.

"[국부론]은 내가 [자본론]을 쓸 때 반면교사, 타산지석의 지적 깨우침을 선물해 준 고마운 양서네. 자네는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으로서 '보이지 않는 손'과 '자연조화설'을 제시했지. 나는 [국부론]을 수없이 읽으면서 내가 목격한 자본주의의 현실 인식과 대비한 결과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추동력이 '잉여가치'와 '노동자 착취'라는 불편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네."
- 같은책, <1부>, 이경태, 2023.


재무부 공무원이었다가 미국으로 유학 가서 경제학 박사가 된 후 국책기관인 산업연구원에서 활동한 경제학자 이경태 선생은 올해 '사실과 상상의 융합'으로서 '논픽션에 기초한 픽션'(같은책, <머리말>) 장르를 내세워 18세기의 애덤 스미스와 19세기 칼 마르크스를 한 자리에 앉혔다.
배경은 결국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었던 업적을 기려 천당에서 둘이 만나 염라대왕의 배려 하에 지금 세상을 주유천하 후 런던의 템스 강가에서 커피 한 잔씩 때리면서 토론한다는 설정이다.

서로 묻고 답하는 대화체 형식인데, 예상되듯 스미스는 자본주의에 기반하고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또는 과학적 사회주의)에 기반하여 현재의 세계경제를 논하고 있다.

[국부론]에서 합리적 인간의 이기심이 사회적으로 작동하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자연조화'되고 발전한다는 스미스의 경제 자유주의 사상에서 그의 '고전파' 후학들은 '시장'의 절대적 힘을 강화시키고 신격화하고자 했지만,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는 스미스가 발견한 '노동가치론'과 '노동분업'이 자본주의 발전의 기본골자라고 보았다.

애덤 스미스의 경제적 자유주의와 칼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가 상호 학술적 계보를 이루지는 않는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는 [국부론]도 인용되지만 그의 '노동가치론'은 스미스의 후학인 데이비드 리카도의 정치경제학 이론으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았다.
두 사람의 시대는 한 세기의 차이가 나고 스미스의 산업혁명기 시대는 마르크스의 시대와 비교해 노동이 착취되는 양상이 다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설정처럼 둘이 서로 '자네'라 부르며 각자의 사상을 주고받는 것은 넌센스임에도, 저자는 '자본주의(스미스)'와 '사회주의(마르크스)'의 차이와 장점들을 융합하여 우리식으로 '제3의 길'을 모색하고자 굳이 두 인물을 동시에 소환하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말은 1902년에 베르너 좀바르트라는 독일 경제학자에 의해 널리 회자되었다고 한다. 즉, 'capitalism'은 학문적으로 18세기 스미스에게는 그냥 '경제학'이었고, 19세기의 마르크스에게는 당대 '정치경제학'적 분석대상이었을 수도 있다. 
18세기 스미스의 시대는 '경제학'이 '윤리도덕철학'과 구분되지 않은 시대라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이기심을 인간윤리도덕과 법적 통제로 보완하자고 주장했고, 과학이 좀더 발전한 19세기 마르크스 시대에는 '경제학'이라는 독립된 과학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므로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가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으로 '경제학'을 다시금 대체하고자 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은 경제라는 하부구조가 정치라는 상부구조를 규정하며 양자는 상호 변증법적으로 엮여있다는, 이른바 우리 80년대식으로 표현하면 '사회구성체론'이었다.
정리하면, 스미스의 경제학의 주제는 이기적이지만 합리적인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었고,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주제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사회구조'(social structure)였다.

시기는 달랐으나 '자본주의'라는 같은 세상을 두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라는 동일한 지향점이 있었지만, 스미스는 인류의 '자연조화'를 믿었고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의 역사를 보았다.

이 책에서도 두 사람 사상의 차이점을 우선 확인하고 미국의 자본주의, 구소련과 중국의 짝퉁 사회주의를 각자 비판하면서 급기야 <6부>에서는 한반도에 모여 스미스가 남한의 재벌중심 자본주의를 개조하고 마르크스가 북한의 사회주의 사칭 김씨 봉건왕조를 혁명하면서 선의의 '체제경쟁'을 외친 후 마지막 <7부>에서 작별의 건배를 들기까지 하지만, 결론적으로 두 사상의 '철학적 토론'은 없었다. 
결국 한반도 통일방안 또한 '연방제'로 귀결된다.


"이해관계자 상생은 자본주의의 장점인 효율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자본주의의 결점인 불평등을 현저히 개선할 수 있는 대안임이 분명하네...이해관계자 상생은 분배과정에서의 기업과 시장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보려는 시도이지. 공정분배 기능을 시장기구 내부에서 작동하는 내생변수로 끌어들이자는 것이네. 평등사회의 실현을 정부, 종교단체, 시민사회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말고 기업의 경영목표로 내생화하자는 것이지."
- 같은책, <6부>, 이경태, 2023.

"협동조합체제도 생산수단은 공유하면서 사유재산을 부정하지만 공동생산에서 나온 산출물을 시장에 내다 팔고 그 대금을 조합원들이 공평하게 나누어 갖자는 것이니까 시장가격기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닐세.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사유재산의 폐단과 불공평한 분배를 시정하자는 것이지."
- 같은책, <6부>, 이경태, 2023.


이상은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첨단을 누리는 '디지털' 기술혁명의 놀랍고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공유한 두 사상가가 이 '디지털' 기술혁명을 기반으로 하여 이 책에서 내린 주요 결론들이다.

스미스는 기업이 효율만 따지지 말고 자본가와 노동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협력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장기적으로 자본주의 불평등을 공정하게 완화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 상생' 전략을 내건다.

마르크스는 구소련 공산주의 등이 실패한 국가주도 중앙계획경제가 아닌 노동자 자치의 공유제를 통한 '협동조합'들이 '디지털' 기술혁명에 기반한 실시간 '계획경제'를 실현하고 한편으로 시장기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공정하게 경쟁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자본론]과 [공산당선언]의 궁극적 결론)를 꿈꾼다.

이 책 내내 두 사람은 열심히 토론하고 건배로 끝내지만 사실 서로 자기 얘기만 하고 끝난다.

역시,
알튀세르의 말대로 "철학적 토론은 없었다."


3.

"환경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은 생명체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제도와 사상에도 적용된다고 믿네. 자본주의는 비판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유연한 체제이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번성하고 있지."
- 같은책, <7부>, 이경태, 2023.


사실 내가 읽기로 이게 이 책의 결론이다.

자본주의는 체제 자체에 내재된 주기적 공황과 외재적 위협인 사회주의라는 '소금' 덕분에 지속 수정발전하며 지금에 이르렀고, 인류는 다시 옛날의 빈곤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니 조지프 슘페터의 말마따나 '기업가의 창의적 혁신'을 장려하며 생산력를 지속 발전시키고 존 메이나드 케인즈의 정책대로 정부의 '보이는 손'으로 유효수요와 완전고용을 확보하면서 분배를 고르게 이뤄야 한다는 것. 자본주의가 '인간화'되고 혁신하며 적응하고 버텨온 진화론적 '선택설'에 따라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방식도 좋으니 어쨌든 사회주의는 '소금'으로 자본주의에 간 좀 잘 맞춰달라는 것.


이 책에서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는 서로 자존심 세워가며 문답을 이어가지만, 결국 체제경쟁에서 1패한 마르크스는 물었고 어찌되었든 피묻은 1승을 거둔 스미스는 답을 한 것이다.

인류가 적응하며 다윈주의적 '자연선택설'을 통해 살아남았듯,
자본주의는 온갖 위험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사회선택설'에 따라 살아남았다고.

그러니 과연 이 체제 말고 다른 대안이 있냐고, 말이다.

***

-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가 묻고 답하다], 이경태, <박영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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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미술관 - 생각을 바꾸는 불편하고 위험한 그림들
김선지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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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라는 '놀이터'
- [뜻밖의 미술관], 김선지, 2023.


"한 점의 그림은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술작품은 한 시대의 삶과 사회의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역사책 뿐만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도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제 그림 속 인물들과 그들을 그린 화가는 사라졌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남아 그들 모두의 감정과 생각을 우리에게 조용히 건넨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 [뜻밖의 미술관], <젊은 금수저 부부 초상화의 비밀>, 김선지, 2023.


1.

'독후감'과 '서평'의 차이에 관한 글을 페이스북에서 보며 생각한다.
과연 내 글은 무엇일까.

소설가를 꿈꾸던 이십대를 보냈고, 정치평론 같은 글을 게시판에 가끔 올리던 삼십대가 있었고, 노동조합 성명서를 주로 쓰던 사십대도 잠시 있었다. 공통점은 그리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지는 않았다는 점 정도.

이십대에는 주로 소설책을 끼고 다녔고, 삼십대에는 거의 철학책을 들고 다니다가, 사십대에는 주로 역사책을 펼쳐보았다. '문사철'의 장대한 인문학적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글을 쓸 때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서였는데 실제로 나이가 들 수록 모든 책이 '역사책'으로 읽혔다.

오십대가 된 지금까지 읽은 책을 꾸준히 글로 정리하며 나름의 '독서일지'를 써 둔 나는, 그것들을 감히 '서평'이라 불렀다. 그런데 '서평'은 '객관적'인 평론이 있어야 하고 개인적 감상은 '독후감'이라는 페이스북의 글을 보고는 새삼 궁금해졌던 거다.

내 글은 대체 뭐지?


2.

'브런치'와 '블로그' 같은 곳에 '주간 문사철'이라는 간판을 걸고 매주 글을 올리는 '온라인 작가'라는 생각에, 지난 몇 년간 나의 '서평'인지 '독후감'인지는 단순한 '책소개'에서 형식이 바뀌었다. 
원래 '소설'을 쓰고 싶었으니 짧은 '소설'과, 
책 읽는 걸 즐기니 '서평'을 융합해 보는 것으로. 
서론과 결론은 매우 짧은 논픽션 '소설'적 단상이고,
본론이 '책소개'다. 

이번 생에 진짜 '작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나의 글쓰기는 그렇게 혼자서도 잘 노는 일종의 '놀이'가 되었다.
퇴근 후 또는 토요일 아침 일찍 '서평+소설'을 쓸 생각으로 나는 일주일을 버틴다. 또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어려운 책도 잘 읽히고 심지어 업무까지 즐거워지는 믿지 못할 경우도 있다.

그래도 인류의 어려운 '고전'들은 잘 넘어가지 않을 때도 간혹 있는데, 그럴 때는 나의 또 다른 취미인 종이접기나 하다가 '주간 문사철'이 '격주간 문사철'이 되기도 한다.
그 와중에 단 한 가지 분야에서만큼은 먹기 아까운 곶감을 꺼내 먹듯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책장이 아깝다.
그 분야가 바로 '미술사'다.

[그림속 천문학](2020)과 [그림속 별자리 신화](2021)를 쓴 김선지 작가는 내가 '브런치'와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미술사 전문작가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즐겼고 미술을 좋아했으며 한때 '고고학자'를 동경했던 나는 커서 어쩌다가 '문사철'과 '인문학'에 경도되면서 '미술사'에 끌리게 되었다. 
곰브리치와 하우저, 뵐플린과 파노프스키 등 저명한 미술사학자들의 저서를 읽고 '독후감'을 써놓기도 했으며, 우리의 유홍준, 진중권 등과 일본의 나카노 교코 같은 미술사가들의 책은 거의 무조건 읽는데, 내 브런치와 페이스북 '친구'인 미술학자 김선지 작가 또한 책이 나오는 대로 꼭 읽게 되는 작가다.

내가 믿고 읽는 김선지 작가가 그 동안의 일간지 연재글을 보완하고 엮어서 올해 또 한 권의 책을 냈다.
제목은 [뜻밖의 미술관](2023)이다.

'뜻밖의 미술사'라는 제목의 <한국일보> 칼럼은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대로 다 읽었기에 이 책의 <part 1. 명화 거꾸로 보기>는 대부분 익숙하다. 
<1부>와 <2부> 중간중간 곁들여진 <더 알아보기>는 영국의 '라파엘전파',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 플랑드르의 캉탱 마시, 미술사가 대비열전과 같은 '게인즈버러 대 레이놀즈', '다빈치 대 미켈란젤로', '고흐 대 고갱' 등의 흥미로운 뒷이야기로 즐비하다. 
<part 2. 화가 다시 보기>는 칼럼으로는 읽지 못한 이야기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물론, 기괴한 기독교인 히에로니무스 보스와 요절한 르네상스 화가 조르조네, 벨라스케스와 고야, 고갱과 뭉크, 그리고 17세기 혁명적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18세기 프랑스 혁명 전 마리 앙트와네트의 초상화가 마담 르브룅과 현대 여성주의 화가 메리 베스 에델슨까지 소개해준다.

곶감 빼 먹듯 아까워 하다가 하룻밤에 읽어버리고는 아쉽게 입맛을 다시고 만 김선지 작가의 [뜻밖의 미술관]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명화들과 화가들의 삶 이면에 내포되고 숨겨진 의미들을 밝혀내는 내용이다.

미술사가는 '탐정'과 같다고도 하는데, 이 책 또한 그렇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있는 예수는 전형적인 유럽인의 모습이지만 실제 유대인 예수는 유럽인과 다르게 생겼을테니 명화와 영화 속 예수는 서양중심주의의 산물이다.
로마의 그리스 조각상 모작들은 흰색이지만 원래 그리스 조각은 화려한 색채였고, 16세기에 역사상 유명한 예술가들의 [열전]을 쓴 조르조 바사리와 근대 수학자들이 만든 '1:1.6' 황금비율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신화라는 이야기도 있다.
다빈치와 고야 말년의 그림들은 염세적이었고 고갱은 사실 원주민 미성년 성착취자였으며 뭉크는 중근세의 흑사병이나 현대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전세계인을 몰살시킨 20세기 초 팬데믹인 스페인 독감 투병일지와 같은 그림들을 남겼다. 한편 신분상승을 열렬히 꿈꾸었지만 벨라스케스는 약자였던 궁정의 '난쟁이'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깊은 연민을 보였고 풍경화를 그리고 싶었던 초상화가 게인즈버러는 금수저 동창 부부의 초상을 그리며 곳곳에 계급적 냉소와 풍자를 숨겨두었다.

인상적이었던 내용 하나를 꼽는다면,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의 초상화로 유명한 마담 르브룅은 치열을 드러내며 웃는 얼굴들을 자화상을 포함하여 몇 점 그렸는데 치아위생이 좋지 않았던 당시에는 서민이 아닌 귀족층에게 치아 노출은 꺼려지는 일이었단다. 요즘에도 개인적으로 증명사진 찍을 때 치아를 보이며 웃는 표정이 쉽지 않은 것처럼, 18세기 당시에는 가히 혁명적인 초상화였던 거다. 곰브리치 말대로 미술의 역사에 '미술'이란 '관념'은 없고 '미술가들'의 '혁신'만이 존재한다.

'최후의 만찬'으로 시작한 책은 역시 '최후의 만찬'으로 끝맺는다. 
마지막 장을 여는 그림은 현대 여성주의 화가 에델슨이 '현존하는 여성 예술가들'의 얼굴을 예수와 열두 제자 얼굴 위에 겹친 패러디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2020)로 등단한 작가답게 미술사에서 지워지고 소외된 여성 미술가들에 대한 오마쥬가 느껴진다.

김선지 작가를 내가 믿고 읽는 이유는,
내가 '미술사'라는 분야를 '뜻밖'에도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평등한 세상에서 계급적으로, 성별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작가가 언제까지고 붙잡고 있을 것 또한 믿기 때문이다.


3.

"글을 쓸 수 있는 지금 나의 마음은 5월의 따사로운 햇살같이 포근하고 충만하다. 여전히 꿈을 꾸고 있고,... 항상 설레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 [뜻밖의 미술관], <프롤로그>, 김선지, 2023.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모든 글쟁이들이 그렇겠지만, 김선지 작가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면 공감이 될 때가 많다. 특히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과 먼길을 돌아 온 이 길에서 딛는 한 발 한 발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출간작가가 되지 못해 글쓰기를 한낱 '놀이'로 생각하기로 한 내가 보기에도 생생하게 그 마음이 전해져 온다.

책을 출간하면서 김선지 작가의 그 즐겁고 행복한 글쓰기가 고된 '노동'이 되지 않기를 독자로서 바래 본다.

그게 '서평'이 되었든, '독후감'이든, '소설'이든, 
그냥 책 읽고 쉬는 시간에 종이나 접어 제끼다가 다시 끊임없이 글 쓰는 걸 '놀이'로 삼고 사는 내게,
가장 재미진 '놀이터'는 여전히 언제까지나 '미술사'이기에 갖는 바람이다.

***

- [뜻밖의 미술관], 김선지, <다산북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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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된 표현형 - 출간 40주년 기념 리커버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장대익.권오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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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은 아니었다!
- [확장된 표현형], 리처드 도킨스, 1982.


"동물이 하는 행동은 그 행동을 '위한' 유전자가 행동을 수행하는 특정 동물 몸에 있든 없든, 해당 유전자가 달성하는 생존을 최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표현형' 특질을 끌어당기는 복제자는 몸 속 뿐만 아니라 몸 밖에도 있다는 점이 내 이론이 품은 핵심이다... 나는 거의 모든 '표현형' 형질이 내부 복제자 힘과 외부 복제자 힘 사이에서 일어나는 '타협'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 [확장된 표현형], <13장. 원격 작용>, 리처드 도킨스, 1982.


생명의 진화사에서 중요한 실체는 생물의 개체나 집단이나 유기체가 아닌 오직, 불멸의 '이기적 유전자(gene/DNA)'라고 선언하고 논증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1989)를 덮자마자 그가 스스로 '학자'로서 "자랑거리이자 기쁨거리"라며 자화자찬했던 후속작 [확장된 표현형](1982)을 펼칠 때만 해도, 나는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좋아하는 '동물의 왕국'을 보듯이 편안한 자세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킨스의 "자랑거리이자 기쁨거리"라던 [확장된 표현형]은 결코 '동물의 왕국'이 아니었다! 

도킨스가 하고자 했던 주장은 [이기적 유전자](1976)의 1989년도 개정판에서 증보된 마지막 <13장>에 이미 다 소개되었고, [확장된 표현형](1982)은 대중과학서인 [이기적 유전자]가 제시한 관점에 대해 전문가들이 가한 비판에 대항하여 본인의 '이기적 유전자론'을 변호하고 논증하는 일련의 학술적인 작업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문 생물학자들을 대상으로 쓴 [확장된 표현형]에서 도킨스가 논증한 숱한 '사고 실험'에 지쳐서 나는 책을 덮고 종이접기나 했으며, 결국 중간에 잘 이해되지도 않는 '사고 실험' 몇 가지는 건너 뛰었다.
[확장된 표현형]은 전문적인 과학책이면서 현실의 '동물의 왕국'과 달리 이론적인 '사고(생각) 실험'으로 넘쳐난다. 
고등학교 때 문과였음에도 생물 시간만큼은 좋아했던 나였지만, 지금도 쉬는 날 오후에는 꼭 KBS 1TV '동물의 왕국'을 틀어놓고 조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은 결코 나 같은 사람이 아닌 생물학 전공자들의 책이었다.


"다소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책은 '이기적 유전자'를 '개체'라는 개념적 감옥에서 해방시키려 한다. '유전자'가 발하는 '표현형' 효과는 자신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지렛대와 같은 도구이며 이러한 도구는 '유전자'가 자리한 '몸(생존기계)' 밖으로, 심지어 다른 개체의 신경계 깊숙이까지 '확장'될 수 있다."
- [확장된 표현형], <서문>, 리처드 도킨스, 1981.6.


일반인으로서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으라면, 역시 [이기적 유전자] 한 권이면 충분하다.
리처드 도킨스의 대표저서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에 발표되었고 1982년에 유전자가 드러내는 '표현형(phenotype)'이 유기체 외부 환경으로까지 무한히 '확장(extend)'된다는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 출간 후 1989년 전작인 [이기적 유전자] 개정판에서 <12장>과 <13장>의 추가설명까지 덧붙였으니, 단언컨대,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은, 특히 문과적 인간이라면, 도킨스의 이론을 알기 위해 굳이 [확장된 표현형]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읽는다 쳐도 도킨스의 전작인 [이기적 유전자] 1989년 개정판보다 더 확장될 지식도 없다. 
공연히 읽다가 도킨스에게 실망만 더 하게 될 공산이 크다.
실제로 내가 그랬다.


"유전자는 '복제자'다. 유기체와 유기체가 모인 집단은 최적의 복제자라고 보기 어렵다. 그들은 복제자가 타고 여행하는 '운반자'다... 집단 선택 대 개체 선택 논쟁은 제시된 두 종류의 운반자를 다루는 논쟁이다. 유전자 선택 대 개체(또는 집단) 선택 논쟁은 우리가 선택받는 단위를 말할 때, '운반자'를 의미해야 하는지 또는 '복제자'를 의미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논쟁이다... 실제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모든 생식계열 복제자는 잠재적으로 '불멸'이다."
- [확장된 표현형], <5장. 능동적인 생식계열 복제자>, 리처드 도킨스, 1982.


결코 '동물의 왕국' 같이 푸근한 분위기가 아닌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의 장황한 변론과 복잡한 '사고 실험'들을 제외하면,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이기적 유전자]의 1976년 초판과 1989년 개정판의 마지막 <13장>이 소개한 '유전자의 (확장된) 긴 팔' 그것 뿐이다.

리처드 도킨스에 의하면, 수십억 년의 생명 진화사에서 맹목적 생존만을 위해 프로그램된 '불멸의 이기적 유전자'와 이러한 유전자들의 '표현형'은 "유전자와 환경이 만드는 공동 산물로서 유기체가 지닌 밖으로 드러난 자질"이며 "유전자가 자리한 몸 밖으로" 유전자의 "기능적 차이"를 포함하는 영역으로까지 "확장"([확장된 표현형], <용어 사전>)된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gene)'의 자연과학적 개념을 확장하여 인간문명계의 '밈(meme)'을 논의하지만 그에게 '밈'은 "인간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보다는 유전적 자연 선택을 보는 통찰력을 예리하게"(같은책, <6장>)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확장된 표현형] <1장>에서 저자는 이 책의 "핵심"이 <11장>, <12장>, <13장>이라고 말한다.
<11장>은 거미와 비버 등의 특징을 나타내는 유전자의 '표현형'은 동물 유기체들 내부 뿐 아니라 그들이 조작하는 거미줄이나 댐 등으로도 표현되며 이 "동물이 만드는 조작물"들은 주변의 환경도 변화시키면서 결국 해당 유기체의 더 나은 생존을 위한 유전자 진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다. 
<12장>에서는 맹목적 생존만이 목적인 '이기적 유전자'는 한 유기체 뿐만 아니라 "기생자 유전자"로서 다른 유기체에 기생하며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숙주 표현형"을 통해 '확장'된다는 또 하나의 가설이다. 달팽이와 흡충은 유기체 결합 상태에서, 뻐꾸기 새끼와 개개비새 어미는 그렇지는 않지만 한 둥지라는 공간에서, 기생자가 숙주를 '조종(조작;manipulation)'한다. 이 '조종' 과정에서도 도킨스가 말하는 '군비 경쟁(Arms Races)'(같은책, <4장>), 즉 생존을 위해 '비용'보다는 좀더 '이익'이 되는 유전자를 선택하는 다윈주의적 '자연 선택'이 작용하여 '기생자'에게는 이익이고 '숙주'에게는 일견 손해로 보일지라도 결국 공생하고 함께 진화한다. 
[확장된 표현형]의 결말은 <13장> "원격 작용(Action at a Distance)"이다. '유전자'는 '유기체'나 생물 '개체'에 얽매이지 않고도 원격 조종으로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유전자 표현형 확장'의 "논리적 정점"(같은책, <12장>)이다.

한편, 도킨스는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자기 변론서의 서두에서부터 '유전적 결정론'의 오해를 벗어나고자 하는데, 흔히 생각하듯 개체나 유기체의 '집단 선택' 진화설이 아니라 유전자의 '자연 선택' 진화설로 인해 '유전자'가 모든 걸 결정한다는 통념적인 오해를 불식시키는 게 이 책의 우선적인 목표(같은책, <2장>)이기도 하다.
도킨스의 주장은 '유전자 결정론'이 아닌 '유전자 선택론'이라는 것이며, 유전자의 '표현형'은 유기체 내부만이 아닌 외부환경으로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무한히 '확장'된다는 일종의 '타협'(같은책, <14장>)이다.

이를 위해 도킨스가 [확장된 표현형](1982) <1장>과 [이기적 유전자] 1989년 <개정판 서문>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이는 '네커 정육면체'의 비유를 통해 전제하는 것은 '유전자 자연 선택설'이나 '유기체 선택설'이나 생명을 보는 두 가지 타당한 관점이라는 것이다. 
다만 도킨스 본인은 다윈주의 진화론인 '자연 선택설'을 따르되 그 중요한 근본 실체를 '유전자' 또는 '불멸의 생식기계 복제자'로 본다는 주장을 '동물의 왕국'과 달리 매우 재미없게 논증한 다음 이 책 [확장된 표현형]의 '핵심'인 <11~13>장을 지난 후 마지막 <14장>에서 "통합된 다세포 유기체"를 재발견하며 끝을 맺고 있다. 
즉, '불멸의 이기적 유전자'가 근본이기는 하나 이 유전자와 외부환경이 함께 만든 '표현형'이 무한히 '확장'되며 환경과 함께 공진화한 '다세포 유기체'는 역시 '생존기계'이기는 해도 위대하고 장엄하다는 의미겠다.


"통합된 다세포 유기체는 원래 독립해 있던 '이기적 복제자'에 자연 선택이 작용한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다. 함께 모여 행동하는 방침은 복제자에게 이득이었다. 원리적으로는 복제자가 생존하도록 보장하는 '표현형' 힘은 '확장'되며 한계도 없다."
- [확장된 표현형], <14장. 유기체의 재발견>, 리처드 도킨스, 1982.


유전자는 생명의 근본이고 이들이 통합된 유기체는 장엄하지만,
내게 [확장된 표현형]은 결코 휴일 오후 '동물의 왕국' 같은 편안함을 주지 않았다.

혹시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를 알고 싶은 문과생이시라면,
그렇다면, 더도 말고 딱 [이기적 유전자](1976~1989)까지만 읽으시라.

***

1.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1982), Richard Dawkins, 홍영남/장대익/권오현 옮김, <을유문화사>, 2022.
2.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1976~1989), Richard Dawkins, 홍영남/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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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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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건 오직, '불멸'의 '유전자'
-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1976.


"진화에서 실제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실체, 그리고 이에 근거한 관점이 의미를 가지는 실체는 오직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이기적 유전자'다."
- [이기적 유전자], <8장. 세대 간의 전쟁>, 리처드 도킨스, 1976.


1.

실적이 바닷속 심해 가오리처럼 바닥을 훑고 있다.
팀장이 된 지난 1년 반 동안 올해 상반기가 최악이다.
나를 팀장으로 추천한 선배팀장은 '선한 영향력'을 확장시키라고 권유했다. 
실적은 결국 그에 따라올 것이라는 희망을 담아서. 

후임자는 기본적으로 전임자로부터 배운대로 '모방'하고 '복사'한다. 선배팀장은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선한 영향력'을 지녔고, 그를 보고 배운 나는 이를 '확대재생산'해야 할 필연적인 의무가 있다.

내가 원래 선한지 악한지 '백지 이론(tabula rasa)' 또는 '빈 서판(the blank slate)' 이론을 따르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고는 싶다. 여태껏 반백년 살아오면서 실제로 어땠을지 모르지만 나는 언제나 그러려고 노력했고 지난 1년 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팀내 동료들 간 우애는 나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실적이 하향세만 그리면서 바닥을 치기 직전이 되니 문득 '이기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나도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 눈에 들어온 책이 [이기적 유전자]였다.


2.

"나의 목적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생물학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gene)'가 만들어낸 기계라는 것이다... 이제부터 논의하려는 것은, 성공한 '유전자'에 대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성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자연선택'의 과정을 보면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해온 것은 무엇이든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선택(집단선택이 아닌 자연선택)의 기본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단위가 종도 집단도, 개체도 아닌,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라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 [이기적 유전자], <1장.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리처드 도킨스, 1976.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 1941~)의 대표 저서는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1976)다.
찰스 다윈 진화론의 '자연선택설'을 지지하는 '신다윈주의' 일파를 표방하지만, 생명 진화의 기본 단위를 19세기 다윈을 포함한 보통의 생물학자들처럼 '개체'가 아닌 30억년 전 원시 지구의 생명의 기원부터 존재한 최소의 '분자', 즉 DNA라는 '자기복제자(the replicators)'로 불리는([이기적 유전자], <2장>) '유전자(gene)'로 본다.


"우리는 '생존기계'다. 즉 우리는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자다."
- [이기적 유전자], <초판 서문>, 리처드 도킨스, 1976.

"자기복제자...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신체)는 그들의 '생존기계'다."
- [이기적 유전자], <2장. 자기복제자>, 리처드 도킨스, 1976.

"우리 모두는 같은 종류의 '자기복제자', 즉 DNA라고 불리는 분자(유전자)를 위한 생존기계다... '유전자'들은 '자기복제자'이고 우리는 그들의 '생존기계'다."
- [이기적 유전자], <3장. 불멸의 코일>, 리처드 도킨스, 1976.


유전자가 생명 진화의 기본단위고, 생물 개체들의 몸은 유전자가 영원토록 번식하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계'라는 말은 이 책에서 계속 반복된다. 나머지 대부분의 장들은 과학자의 논리전개답게 이 가설을 증명하는 각 동물 개체들의 '행동'이다. 1976년의 <초판 서문>에서도 도킨스는 스스로를 "동물학자"이며 이 책은 "동물의 행동에 관한 책"이라 규정한다. 그러나 계속 오해가 없도록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본인은 다윈주의자이며 그럼에도 '생존기계'에 불과한 생물 '개체'가 아닌 불멸의 '유전자'를 연구하는 중이라고.
결국 도킨스의 진화론은 '개체'를 중심으로 한 '집단선택'이 아닌 다윈주의적 '자연선택'이다. 다윈이 '개체'에 머물렀던 건 19세기 중반 그가 [종의 기원]을 발표할 당시에는 '유전자'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명의 진화는 '집단선택' 즉 각 '개체'들 집단의 오랜 선택의 누적이 아니라, '유전자'가 '생존'하고 '번식'하며 '불멸'의 존재로 이어지기 위한 '안정'적 선택, 즉 '자연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전자의 '자기복제'가 기본인데 '자기복제'는 '진화적으로 안정된 생존전략(ESS)'을 위해 3가지 특성을 지닌다. '안정적 수명(장수)'과 '다산성', 그리고 '정확성'이다(같은책, <2장>). 이 특성으로 무장한 '유전자'는 결국 살아남는 '성공한 유전자'다. 물론 이들 특성에서 이탈한 '오류'(같은책, <2장>)는 아마도 진화의 질적 변화를 추동하는 '돌연변이'일 것인데, 실제 동물집단 사례에서도 처음에는 소수였던 생존전략이 다수가 되면서 '선택'의 질적변화를 이끄는 행동들을 이 책은 많이 소개하고 있다. 
물론, 개체들의 '집단선택'이 아닌 유전자의 다윈주의적 '자연선택'이라는 전제는 잊을만 하면 재차 강조하면서 말이다.


"'이기적 유전자'... 그것은 온 세상에 퍼져있는 특정 DNA 조각의 모든 복사본들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늘리는 것이다.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장소인 몸(신체)에 프로그램을 짜넣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한다."
- [이기적 유전자], <6장. 유전자의 행동방식>, 리처드 도킨스, 1976.


'이기주의'냐 '이타주의'냐는 현상일 뿐이다.
'유전자'의 궁극적 목표는 '생존'이므로 겉으로는 '이타적'으로 보여도 해당 '유전자'가 '생존기계'인 여러 신체들을 죽이고 갈아타며 안정적으로 장수하기 위한 '이기성'이 그 본질이다. 다만, 이 책 [이기적 유전자]가 다루는 분야는 인문학이 아닌 자연과학이므로 '신'의 목적이나 프로그램 따위를 상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자 스스로도 이 책의 제목으로 [이기적 유전자]보다는 [불멸의 유전자(코일)]가 더 맞을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도킨스에게 결국 '이기주의'나 '이타주의' 같은 인문학적 가치판단 개념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전자(gene)'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나갈 때 정자가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meme)'도 밈 풀 내에서 퍼져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mimeme)'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 다닌다."
- [이기적 유전자], <11장. 밈-새로운 복제자>, 리처드 도킨스, 1976.


[이기적 유전자] 1976년 <초판>의 마지막 장은 원래 '밈(meme)'에 관한 내용이었다.
생명 전체에서는 '유전자'의 생존이 주제였지만, 인류에게는 뇌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원시 형태를 넘어서는 '문화'와 '문명'이 있음을 짚고 넘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즉, 인류진화사에서 뇌에서 뇌를 통해 이어지는 '모방'과 전승의 '문화' 말이다. 
이를 우리는 인류의 '문명'이라 부른 것이다.

이 '문명'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기본단위는 '유전자'라는 일차원적 개념과 차별화되어야 했기에 도킨스가 고대 그리스어 'mimeme(모방)'를 어원으로 'gene(유전자)'처럼 단음절의 개념을 만든 것이 'meme(밈)'이다.

'gene'은 자연계, 'meme'은 인간문명계 진화사의 기본단위라는 차이 외에, 도킨스는 '가치중립'적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인문학적 가치판단으로 <초판>을 아래와 같은 문구와 함께 끝맺는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 [이기적 유전자], <11장>, 리처드 도킨스, 1976.


물론, 1976년 도킨스의 '유전자'의 '확장'은 인간계의 '밈'에서 끝나지 않는다. 1982년 그 스스로 "일생 동안 학자로서 성취했던 그 어떤 것보다 자랑거리이자 기쁨거리"(같은책, <13장>)라 표현한 또 하나의 대표 저서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 발표 후 도킨스는 1989년 [이기적 유전자] 제2판에서 '밈'의 <11장> 이후 2개의 장을 추가한다.

마지막 장인 <13장. 유전자의 긴 팔>은 그의 "자랑거리이자 기쁨거리"인 [확장된 표현형]의 예고편(예고와 본편의 선후는 바뀌었지만)이자 요약본이니 나로서는 그의 '자랑거리' [확장된 표현형]을 다음 책으로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마도 [이기적 유전자] 개정판의 <13장> 요약을 미리 읽었으니 내가 좋아하는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듯, 저명한 동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소개해 주는 여러 동물들의 '행동'을 읽어보고자 한다.


"유전자 간의 중요한 차이는 그 '영향'으로서만 드러난다... '표현형(phenotype)'이라는 용어는 하나의 유전자가 신체로 발현되는 것, 즉 배 발생 과정을 통해 유전자가 그 대립 유전자에 비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말할 때 쓰인다... 우리가 숙주의 변화는 기생자에게 이익이 되는 적응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숙주의 변화를 기생자 유전자가 '확장된 표현형(extended phenotype)'에 미치는 '영향'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유전자'는 자신의 몸 바깥까지 팔을 뻗쳐서 다른 생물체의 '표현형'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 [이기적 유전자], <13장. 유전자의 긴 팔>, 리처드 도킨스, 1989.


그리고 개정판에 추가된 <12장>의 제목은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이다.


3.

"... 현실생활에서 인간과 동식물의 생활은 관중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실 실생활의 많은 측면은 '비영합 게임(nonezero sum game)'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이 종종 물주' 역할을 하고 개개인은 서로의 성공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경쟁자를 누를 필요는 없다. '이기적 유전자'의 기본법칙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우리는 서로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세계에서조차 협력과 상호부조가 어떻게 번성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액설로드의 말대로 어째서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 [이기적 유전자], <12장.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 리처드 도킨스, 1989.


'권선징악'의 도덕책 얘기가 아니다.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의 개정판에 추가한 <12장>에서 소개한 게임 이론과 '죄수의 딜레마'를 주제로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가 수차례 실험한 사례들이 보여준 과학적 결과다. 
'이기적'으로 싸워야 하는 게임에서도 결국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니.

여기서 조건은,
1) 서로 피터지게 빼앗아먹는 '영합 게임(zero sum game)'이 아닐 것,
2) '비영합 게임(nonezero sum game)'으로서 '자연'이라는 '물주'가 있어 자연은 망가지든 말든 게임참가자들이 공생할 수 있을 것,
3) 가장 중요한 건, 그 게임의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도록 '불멸의 시간'일 것,

대충 이렇다.
따라서, '마음씨 좋은' 전략이 '일등' 즉, '불멸'이 되기 위해서는 생명진화사와 같은 영겁의 시간이 필수전제인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에 의하면,
'불멸'의 시간 속에서 마음씨 좋은 '이타성'이 생존이라는 '이기성'과 동일해지게 된다.

과학자처럼 명료하지 못하고 온통 뒤죽박죽인 문사철 편애자인 나는 또 다시 헷갈린다.
이 끝이 보이는 '실적'의 게임에서 나의 '생존'은 역시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가.

일단, 나의 의식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맹목적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불멸의 유전자'만은 명확하다.


"우주의 어느 장소든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복제자(유전자/코일)' 뿐이다."
- [이기적 유전자], <13장>, 리처드 도킨스, 1989.


이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는 덮고 그의 '자랑거리'인 [확장된 표현형](1982)이나 펼쳐봐야겠다.
일요일 오후 '동물의 왕국'을 틀듯 편안한 자세로 말이다.

***

1.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1976~1989), Richard Dawkins, 홍영남/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2018.
2.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1982), Richard Dawkins, 홍영남/장대익/권오현 옮김, <을유문화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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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상징 동서문화사 세계사상전집 46
칼 구스타프 융 지음, 김양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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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과학으로서, 심리학
- [인간과 상징], 칼 구스타프 융, 1964.


1.

아들이 카톡을 보내왔다.

용돈이 필요하거나 책 읽다가 모르는 단어를 물을 때 가끔 문자를 보내는 아들은 고등학생이 된 작년에 한창 'MBTI' 성격유형 테스트에 빠져있었다. 아들이 공유한 문자를 통해 나도 검사를 해보았더니  'ENJF'인가 'ENJT'인가로 나왔던 것 같다. 나는 '이 무슨 현대식 미신이냐'고 하면서 한 번 훑어보고는 치워버렸고 아들이 'MBTI' 얘기를 할라치면 '너는 아직 변화의 가능성이 무궁하다'며 일축했다.

내가 인간의 타고난 '본성' 보다는 '백지 이론'(tabula rasa/blank slate)을 믿는 대외적이고 공식적인 이유는 내가 세상의 '진보'를 믿기 때문이었고 그 이론적 전제는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이었다. 내 마음에 '심리학'이 들어설 공간은 없었다. 계급투쟁의 역사에서 굳어지고 이어져 온 인류의 사회적 '본성'은 언젠가 도래할 평등의 새 체제에서 다시금 씌어져야 했다. 

아들이 본인은 'INJT'이시라며 내게 보낸 카톡 문자는 그 성격에 관한 유투브 영상의 링크였고, MBTI '전문가'를 자처하는 유투버나 개그맨 출신 유투버의 영상을 통해 아들이 아빠인 내게 하고자 했던 말은, '하라고 하면 더 안 하는' 성격이시니 건드리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와도 같았다. 내 아들이 내 생각보다 공부를 훨씬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재작년부터 세상 스트레스 다 받으며 잔소리가 심해진 아빠에게 공부가 싫은 아들이 보내는 호소이기도 했다. 아들이 슬로건처럼 내건 'INJT'는 '무슨 말인지 이제 알았고 앞으로 알아서 할테니 자꾸 강요하지 말라'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녀석의 아버지이므로 'MBTI' 결과가 거의 비슷하다. 아니 사실은 똑같을 수도 있다. 나도 아들처럼 '직관'적이고 '판단'형인 듯도 하다. 나는 또한 '논리'적이고 싶어하며 '외향'적이기를 지향한다. 한편으로 타고난 대로 한다면 아마 나는 'INJF', 즉 '내향'적이고 '직관'적이며, '판단'형에 '감정'적인 성격에 가깝다. 그러나 성인이 된 나의 '의식'은 'ENJT', 즉 '외향'을 지향하고 '직관'을 믿으며, '판단'형에 '논리'적이고 싶어한다. 

정리하면,
나의 '의식'은 'ENJT'를 표방하고,
나의 '무의식'은 'INJF'로 잠재되어 있다.

아마도 '타고난 본성'을 믿기로 한다면,
나는 나의 '무의식'의 문을 여는 것이리라.


2.

1912년, 서른일곱살의 정신분석 의사 칼 융이 선배 의사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결별했을 때 프로이트는 쉰여섯살이었다. 
두 사람이 '무의식'의 발견과 연구라는 공통분모로 처음 만난지 5년 만이었다.

현대 심리학의 쌍벽인 두 인물의 관계는 '동지'였다. 일곱살 차이였던 조선 태조 이성계와 삼봉 정도전은 철저한 '동지'였지만, 열아홉살 차이의 프로이트와 융은 사실 '부자' 관계와도 같았다. 프로이트는 본인의 이론에 융이 철저히 따르기를 강요하는 '아버지'였고, 융은 자신만의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아버지를 결국 떠나고 마는 '아들'이었다. 
신경증 환자들의 '꿈의 해석'의 추상화와 보편화, 나아가 교조화의 징후를 보이고 말기에 성에 대한 집착에 빠져 꿈해석을 이론화하던 프로이트에 반대하여 그 어떤 추상화나 보편화 일체를 경계하면서 철저하게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사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결론을 내리고자 했던 칼 융은 결국 프로이트의 이론대로 아버지를 죽이는 오이디푸스의 운명길을 따라간 것이었다.
아들 같았던 칼 융은 아버지와도 같았던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당시에는 세인들에 의해 안 그래도 멸시당하던 '마음의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을 아예 "도덕적 어둠의 쓰레기장"([인간과 상징], <1>)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한다.


"꿈의 분석이란 한 인간이 배워서 규칙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일종의 '기술'이 아니라, 두 인격 사이에 이루어지는 '변증법'적 대화인 것이다."
- [인간과 상징], <1. 무의식에 대한 접근>, 칼 융, 1964.


현대 심리학의 기반이 되었으며 지금의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라는 성격유형 테스트의 이론적 토대를 놓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1875~1961)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악몽도 꾸고 수학을 특히 싫어하며 공부만 하면 발작을 일으켜 열두살에 등교거부까지 했던, 어찌보면 지금 내 아들보다 더 말을 안 들었을 수도 있는 이 천재소년은 타고난 'INJT'였을 텐데 어쨌든 공부발작증을 극복하고 의사가 된다. 당시만 해도 완전 비인기 영역이었던 정신병원에 취직한 융은 어린 시절의 특이한 꿈들과 당시로서는 치료불능의 영역이었던 신경증 환자들의 연구 과정에서 '꿈'과 '상징', 그리고 이들의 원천으로서 '무의식'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1907년 32세에 51세의 프로이트를 만나 5년간 함께 부자지간과 같은 학문적 동지관계를 이어갔고 프로이트와 결별한 융은 꿈의 분석을 교조화하지 않고 인간 무의식의 발로로서 꿈을 절대화하지 않았으며 꿈을 비롯한 갖자기 사례를 통해 발현된 인간의 '상징'에 주목했다. 

융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개인'의 강조다. 꿈의 전형성을 가지고 일률적인 해석을 하는 게 아니라 꿈꾼 자의 성격 유형(외향-내향/감각-사고-감정-직관)을 배경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도 꿈꾼 자의 유아기와 전날 생각들을 토대로 꿈을 사례별로 해석하지만 이를 전형화하고 보편화하려는 학자적 욕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성에 대한 집착을 벗어난 융은 꿈 자체를 무의식의 '상징' 발현으로 보되 이를 보편적 이론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칼 융은 현대 심리학의 대부라는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대표저서가 없는 편이다. 1961년에 세상을 등진 융의 사후인 1964년에 그의 제자들과 공저로 출간된 [인간과 상징]에서 융은 <1장. 무의식에 대한 접근>이라는 프롤로그 개관의 집필을 했는데 융의 최측근 제자였던 루이제 폰 프란츠가 이 책 출간을 실질적으로 총괄했다. 

[인간과 상징]은 처음부터 융에 의해 기획된 작업은 아니었다. 1959년 영국 BBC에서 방영된 한 프로그램에서 칼 융의 인터뷰가 대중들의 호응을 받게 되어 1964년에 출간된 책인데, 처음에는 심리학의 '이론화'를 경계한 융이 출간을 거절했지만 전세계 시청자들의 요청에 따라 작심을 하게 되었고 융 혼자가 아닌 그의 학문적 동지들인 제자들과의 공저를 조건으로 기획된 책이라고 한다.

칼 융은 이 책의 <1장>에서 '무의식에 대한 접근'의 개괄적 내용을 통해 '꿈'과 '상징', 꿈을 꾸거나 분석하는 사람의 성격 '유형'의 문제, 인류진화사에서 유전자와도 같은 '집단 무의식'의 '원형' 문제 등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정치경제사회 문제에 섣불리 개입하지 않고자 했을 심리학자 융은 이러한 '원형'과 '유형'을 보편화하지 않고 각 '개인'의 개별성과 구체성에 주목한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근대인(현대인)이 '합리주의'를 앞세워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부하면서 신 또는 자연과의 거리가 멀어졌고 양차례 세계대전 같은 재앙은 이를 증명하는데 근대의 '합리주의'든 고대 및 중세의 '신비주의'든 다시금 소통하고 합일이 되어야 현대적 '단절' 현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유전자 DNA와 같은 '원형'의 '집단 무의식'과 개인 성격 '유형'은 꿈을 비롯한 각종 행위를 통해 '무의식'의 '상징'으로서 '의식'과 함께 우리들의 심리 현상을 이룬다.

전형적인 꿈(나체꿈, 추락꿈, 비행꿈, 귀신꿈, 위인꿈, 추격당하는 꿈, 목적지가 보이는데 도달하지 못하는 꿈, 움직여야 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 꿈 등)은 그 자체가 아니라 꿈꾼 자의 성격과 유형, 인간 무의식의 원형 등을 연구하여 종합적이고 개별적으로 분석되어야 하며, 인간 심리의 유형도 비록 '타고난 본성'이기는 하나 그 개인이 살아온 환경의 영향으로 항상 '양면성' 또는 다면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개인이야말로 유일한 현실이다. 개인에서 벗어나 인류라는 추상적인 관념으로 나아갈 수록 우리가 실패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 어디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면 그 변화를 경험하고 이어나가는 것은 결국 개개인이다. 실제로 변화는 '개인'에게서 시작되어야 한다."
- [인간과 상징], <1>, 칼 융, 1964.


칼 융이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이고 성격유형 테스트(MBTI)의 기원과도 같지만, 그의 이론은 결코 보편적으로 이론화되지 않는다.
그에게 모든 변화의 주체는 "개인"이어야 하고, 꿈꾼 자와 꿈 분석가는 서로 "변증법적 대화"를 이어가야 하며, 항상 "진리는 구체적"인 것이다.


3. 

"성격은 한 가지로 정해진 게 아니란다."

이게 내가 'MBTI'로 본인의 정체성을 알고자 했던 내 아들에게 해준 말이었다.

칼 융 박사의 말대로 모든 사람은 각자 양면성이 있고, 설령 타고난 본성이 있다고 해서 그 '본성' 그대로가 아니라 자라온 환경에 따라 어느 한 유형이 특출나게 될 수도 있다. 
남성 속에 여성성(아니마)이 있고 여성 속에 남성성(아니무스)이 있듯, 오래전 '내향성'이었던 나는 지금 '외향성'이 더 두드러진 것처럼 행동한다.  또한 '감정'이 앞서던 나는 '이성(사고)'을 더욱 앞세우기도 한다. 

융에 의하면 나는 '의식'의 영역에서 '외향성'과 '이성'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잠재된 '무의식'의 영역에서 '내향성'과 '감정'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의식'이 '무의식'을 억압하고 통제만 한다면 이는 프로이트나 융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콤플렉스'로 나타날 수도 있다. 프로이트에게 꿈은 이 억압된 '무의식'의 '소망충족표현'인 한편, 융에게 꿈은 '의식'에 지배된 '무의식'이 그 인류의 '원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장치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융에게 '꿈'과 '상징'의 기능은 '의식'과 '무의식'이 균형을 이루는 "심리적 평형상태를 회복시키는 것이다"([인간과 상징], <1>).


"... '마음'은 '의식'을 뛰어넘는 것이다."
- [인간과 상징], <1>, 칼 융, 1964.


'의식'과 '무의식'의 '변증법'을 담는 그릇은 칼 융에게는 인간의 '마음'이다.

내 아들의 'MBTI'라는 '의식'은 아직은 알 수 없는 그 아이의 '무의식'을 억압하고 있을 수도,
나의 '내향'적이고 '감정'적인 '무의식'이 사실 '외향성'과 '이성'을 지향하는 '의식'을 줄곧 괴롭혀 왔는지도,
나와 내 아들 개인이 겪는 자기 성격에 관한 질문들은 결국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누구나 겪어온 공통적인 '심리학'적 현상일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심리학'은 칼 융의 인도에 따라 내게도 '마음'의 과학이 된다.

***

1. [인간과 상징(Man and his Symbols)](1964), Carl Gustav Jung 외, 김양순 옮김, <동서문화사>, 2016.
2.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1900), Sigmund Freud, 김양순 옮김, <동서문화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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