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평점 :
어느 '평범한 여인'의 초상
- [마리 앙투아네트], 스테판 츠바이크, 1932.
"'평범한 인물'이 자신에게 가능할지도 모르는 어떤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이전부터 예견하고 느끼고 있었던 것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 밖으로 내쳐져야 한다. 그 목적을 위해서 운명이 쥐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불행'이라는 채찍이다."
- [마리 앙투아네트], <서문>, 스테판 츠바이크, 1932.
의외의 '영웅론'을 접했다.
나카노 교코의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2008)를 읽고 나서 이제 비로소 스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전기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책의 <서문>에서 뜻하지 않게 '영웅론'을 읽었던 거다.
오스트리아의 전기작가이자, 1920~1930년대 유럽 최고의 작가로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로 불렸던 스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 1881~1942)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단두대(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진 프랑스 마지막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 : 1755~1793)'의 전기소설를 쓰면서 그 <서문>에서 다룬 주제가 의외로 '영룽론'이다.
문헌에 기반한 역사소설이라기 보다는 조작되지 않은 여러 서신 편지들을 근거로 하여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한 인물들의 심리를 파헤친 심리소설에 가까운 이 책의 부제는 '어느 평범한 여인의 초상'이라고 한다.
스테판 츠바이크는 프랑스 마지막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족이라는 신분 외에는 역설적이지만 비범하거나 특출난 인물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역사의 격변이 아니었다면 남편 루이16세처럼 두드러질 것 하나 없었을 아주 '평범한 여인'에 불과했다는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역사는 '영웅' 뿐만 아니라 '불행'이라는 고난을 겪으며 고귀하게 성장하는 '평범한 인물'로 인해 더욱 '감동적인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츠바이크의 생각이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철딱서니 황녀로 태어나 14살에 프랑스 부르봉가와의 정략적 외교결혼으로 프랑스 왕세자비를 거쳐 결국 왕비가 된 이 '평범한 여인'이 역사의 대격변기를 맞아 어떻게 고결하고 위대한 최후를 맞게 되는지를 심리추적극처럼 그려내는 이 소설을 마치면서 츠바이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신격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화하는 일이 모든 창조적인 심리학의 최고 법칙이다. 인위적 논리로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해명하는 것이 심리학이 이룩해야 할 과제이다. 이런 과제가 이 책에서는 한 '평범한 인물'을 통해서 시도되고 있다. 이 인물이 시대를 초월하는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은 오로지 비할 바 없는 운명의 덕택이며, 내적인 위대함을 얻게 된 것은 유별난 불행의 탓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지상에서의 어떤 조건이나 아무런 높임 없이도 현대인의 관심과 이해를 받게 되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 [마리 앙투아네트], <저자 후기>, 스테판 츠바이크, 1932.
스테판 츠바이크의 전기소설 [마리 앙투아네트](1932)의 부제는 '어느 평범한 여인의 초상'이라고 하지만 현재 국역판의 부제는 '베르사유의 장미'로 되어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을 그린 궁정화가 루이 엘리자베트 비제-르브룅의 그림에서 장미꽃을 든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미지가 있고, 대혁명 전야의 극한적 사치와 향락을 이끈 '로코코의 여왕' 또는 '로코코의 장미'로서 그녀의 강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제목으로 보인다. 실은 1972년 일본의 신좌파적 순정만화가 이케다 리요코의 작품 제목에서 유래한다. 고등학교 시절 스테판 츠바이크의 이 소설을 읽은 이케다 리요코가 1968년 신좌파 혁명의 물결을 겪은 후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고른 인물이 마리 앙투아네트였고 그녀와 뒤바리 백작부인의 암투와 스웨덴 귀족군인 페르센과의 사랑, 그녀를 지키려는 남장여인 기사 오스칼의 활약과 비극을 그렸다는데 나는 고등학교 때 만화가게에서 해적판으로 읽었던 기억이 아련하고 1993년인가 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된 것을 몇 편 보았던 기억이 있다.
1968년 일본의 신좌파 혁명 시기에 공산당원이기도 했다던 [베르사유의 장미] 작가 이케다 리요코는 순정만화의 표본을 통해 '혁명'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스테판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그녀가 감옥과 같은 '탕플'이라는 수도원에 처음 갇혔을 시기를 그린 장에서 다음과 같이 '혁명'을 묘사하고 있다.
"혁명이 정말 패배한 왕을 고의적으로 상처 입히고 학대했는지 아닌지 하는 이 결정적인 물음에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특별히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혁명'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이미 상당히 폭넓은 의미를 내포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지고한 이상주의에서부터 현실적인 잔악함에 이르기까지, 위대함에서부터 무자비함에 이르기까지, 정신에서부터 그것과는 반대인 폭력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여러 가지로 변색되며 변화한다. 그것은 인간과 환경에 의해서 그 빛깔을 바꾼다. 모든 '혁명'이 다 그렇지만 프랑스 혁명에서도 두 종류의 혁명가가 뚜렷이 대조를 이룬다... 이런 것은 인간의 '이중성'에 근거를 두는 것으로서 어느 시대에나 해당된다."
- [마리 앙투아네트], <탕플>, 스테판 츠바이크, 1932.
모든 '혁명'은 인간사의 '이중성'에 기반하여, 처음에는 이상주의적 기치를 올리지만 시간이 갈수록 폭력과 잔악함을 동반한다는 시각이다. 프랑스 대혁명도 마찬가지였다. 민중의 고혈을 빨아먹던 절대왕정은 '자유, 평등, 박애'의 이름으로 뒤집어 엎어졌지만 이 과정에서 부르봉 왕족에 대한 사형선고와 '오스트리아 첩자'이자 '창녀'와 같은 로코코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인신공격과 인격살인은 필수적 요소였다.
천성이 무감각했던 루이16세는 무능한 국왕으로 단지 왕이었기에 새로운 공화국의 희생물이 되어야 했는데, 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 또한 루이16세가 목이 잘린 1793년의 10월에 같은 길을 따라간다. 그녀는 혁명 과정에서 낡은 구체제의 상징으로서 모든 악의에 찬 공격의 대상이 되었지만, 스테판 츠바이크는 소설의 후반부에서 '철딱서니' 황녀가 얼마나 위대하고 고결하게 왕비로서의 품위를 당당하게 지키면서 최후를 맞았는지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공화주의자'인 현대의 나는 결코 왕정에 대한 동경 따위는 없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마리 앙투아네트 - 어느 평범한 여인의 초상](1932)을 읽기를 주저했던 이유는 오래전 일본 순정만화 작가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유의 장미](1972)를 보다가 느꼈던 비극적 주인공에 대한 연민을 나도 모르게 느낄까봐 그랬던 거다.
그런데 역시, 소설을 읽으면서 원래 나의 관심사였던 '혁명'은 뒤로 하고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불행한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적 최후에 깊은 연민을 갖게 되었다.
비록 한때는 경멸할 만큼 천박하고 경박했던 왕비였지만 본인에게는 비극적 불행이었던 '혁명' 앞에서, 그 '혁명'의 이면인 폭력과 잔악함 앞에서, 늦기는 했지만 당당하고 고결하게 품위를 지키고자 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한편으로 또 다른 인간의 '이중성'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기요틴으로 담담하게 걸어가던,
비극적이지만 끝까지 꼿꼿하고자 했던 왕비의 이미지가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련하다.
***
- [마리 앙투아네트 ; 베르사유의 장미](1932), 스테판 츠바이크, 박광자/전영애 옮김, <청미래>, 1979~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