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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오멘 : 스틸북 한정판
리처드 도너 감독, 그레고리 펙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내 오컬트의 시작, [오멘]
- [오멘, 저주의 시작], 아카샤 스티븐슨, 2024.
1.
소설을 먼저 읽었는데 알고 보니 영화가 먼저였다.
영어 과목을 좋아해서 세상 모든 단어들을 우리말과 영어로 함께 외워대던 시절이었으니, 분명 중고등학교 청소년기였을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디오 테잎을 빌려 영화를 보았던 것 같으니,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이었을 거다.
내가 '오멘(omen;징조)'이라는 영어단어 뜻을 그 소설과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을테니 고등학생이었던 1990~1992년 사이의 일이었을 게다.
당시 고등학교 '철봉파' 친구들은 토요일 학교 끝나면 철봉대 밑에서 놀다가 가끔 집이 비는 친구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먹고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빌려 보기도 했다.
쟝르는 주로 공포영화였는데, 미성년자인 우리들은 대놓고 성인영화를 빌릴 깜냥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13일의 금요일'이나 '나이트메어' 같은 미국 슬래셔 무비들에는 불문율처럼 섹스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했다. 원래 20세기 소년이었던 우리들 어릴 적에는 워낙 관련 자료(사진/영상 등)를 구하기 어렵기도 해서 그랬는지 적나라한 거보다 살짝 나오는 게 더 좋다더라 하는,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위안이 돌기도 했다. 우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섹스를 심지어 우리와 같은 나이에 마친 미국의 7080 슬래셔 무비 속 남녀는 여지 없이 영화 속 주인공 악마한테 처단당했다. 우리들이 그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 이유는, 순결을 해친 자들을 저주하는 종교적 엄숙함은 아니었고 아주 심플한 질투심이었을 뿐이었지만.
어느 토요일 오후에 내가 영화 [오멘](1976)을 빌려보자 했던 건 그러나 동정남의 시기심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역시 종교적 경건함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마 얼마 전 우연히 빌려 읽었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라 영화로도 한 번 봤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거고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남녀상열지사가 나오지 않아 실망했을 친구들과 달리 나는 놀라고 말았다.
이유인 즉슨, 영화 내용이 소설과 정확히 똑같았기 때문이었는데, 본래 소설이 원작인 영화는 각색이 되어 세부 내용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고, 그 때는 몰랐지만 소설 [오멘]의 원작이 영화였다는 사실을 아직은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설 [오멘]은 영화의 원작이 아니라,
영화 [오멘]의 극본을 소설화했던 거였다.
2.
소설을 읽던 당시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 장면은 주인공인 악마의 아버지인 로버트 쏜을 도와 악마 데미안을 제거하려던 기자 제닝스가 죽던 장면이었다.
유리가 깨지는 장면과 그 중 한 유리조각으로 목이 잘리는 상황인데 소설과 영화가 겹쳐지면서 내게는 유리로 된 온실 같은 곳에 갇혀 무너지는 하우스의 유리 조각 세례를 받다가 목이 잘리는 이미지로 오래도록 기억된다. [오멘] 1편(1976)을 다시 보니 공사장에서 화물차가 밀려 날아든 유리가 제닝스의 목을 먼저 치고 뒷쪽의 유리창을 박살내면서 유리 파편이 흩날리는 장면이었지만, 아무튼 오래전 당시의 내 기억에 영화가 소설 속 그 상황을 영상으로 아주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더랬다. 물론 원래는 그 영화 장면 또는 극본을 나중에 소설로 묘사한 것이었지만.
영화 [오멘(The Omen)]은 1976년에 리처드 도너 감독과 극작가 데이비드 셀쳐가 함께 만들었고, 이후 셀쳐는 영화를 소설화했다. 내가 먼저 읽은 게 그 소설이었던 것 같다.
원작 [오멘]은 사탄의 아들을 미국 정부의 유력 정치인의 아들로 만들려는 악의 세력과 서서히 주변을 죽음으로 뒤덮고 파멸시키면서 자라는 순수해 보이는 아이를 제거하려는 세속의 아버지(로버트 쏜)와 신부(브레넌), 기자(제닝스) 등의 희생을 그린다. 물론 사탄의 자식 데미안을 없애려는 그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데미안은 10대([오멘2])와 청장년([오멘3])을 거쳐 세계를 장악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듯 하다.
선악의 구분이 다소 불분명한 지금의 현세가 이를 증명한다.
물론 이건 나의 말이 아니다.
[성경]의 마지막 장 <요한 계시록>의 환상과 예언은 수천년 동안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으나, 각 시대별로 그 특성을 지닌 채 끊임없이 반복되고 소환된다.
2024년에 영화 [오멘]도 다른 수많은 작품들처럼 '프리퀄'로 재탄생한다.
1976년의 [오멘] 1편은 악마의 징표인 '666'을 암시하며 6월 6일 6시에 데미안이 태어나면서 시작하는데, 2024년의 [오멘]은 '저주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하여 데미안이 태어나는 과정과 아이가 바뀌는 경위를 밝히며 끝난다.
[오멘, 저주의 시작(The First Omen)](2024)의 마지막 대사는, 사탄으로 태어날 그 아이의 이름을 처음으로 밝히는, "데미안"이다.
[배트맨 비긴즈]와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 [킹스맨, 퍼스트 에이젼트] 등을 생각하면 된다.
[오멘](1976), [오멘 2](1979), [오멘 3](1981) 등은 사탄의 자식이 탄생한 배경 보다는 기왕의 이런 현실과 그 속에서 악마의 아들 데미안이 성장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다 보니 속편들은 절대로 1편을 넘어설 수 없었다. 나는 2편과 3편을 보았지만 지금은 내용이 0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단 하나, 악마의 자식답게 데미안은 본인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고도 세계를 파멸시킨다는 것, 사탄의 신봉자들이 알아서 모이고 자발적으로 희생하며 스스로 악을 행하면서 데미안의 의지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오멘, 저주의 시작](2024)은 자체의 복잡한 플롯도 있다. 전술한 [오멘](1976)에서 기자 제닝스의 최후를 장식한 유리 파편 세례를 오마쥬 한 듯 영화 첫 장면에서 사탄의 자식 탄생을 고해한 신부의 죽음은 하늘로부터 스테인드 글래스의 파편 세례로 예견되고 지목된 사탄 자식의 어미는 반전을 통해 애초에 지목된 여자아이 카틀리나가 아니라 주인공 초급 수녀 마가릿임이 드러난다. 이 어미들의 특징은 무녀와 같이 각자의 '신기(神氣)'가 있다는 점인데, 이는 애초에 가톨릭의 유일신(神)에게 의탁될 수 없거나 그러기를 끝내 거부하는 존재를 의미할 수 있겠다.
한편, [오멘, 저주의 시작]에서 사탄의 자식 탄생을 저지하려는 브레넌 신부는 주인공이자 궁극의 어미인 마거릿 신부에게 악마의 귀환 배경을 설명하면서 원작이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리퀄'의 연사가 되어준다.
아마도 데미안은 1971년생 돼지띠 되시겠는데, 로마 주재 미국 대사 로버트 쏜의 아들이 사산되고 바로 데미안으로 바뀌는 시공간이 바로 1971년 로마였다. 1971년의 유럽은 아직 1968년 신좌파 혁명의 물결이 거세던 때였고 당시의 젊은 세대는 가톨릭을 포함한 기득권 일체의 권위를 거부하던 시절이었다. 영화는 파문당한 신부 브레넌의 입을 통해 시대의 혼돈이 아닌 기존의 가톨릭이 오히려 악마를 소환했다고 말한다. 즉, 기존 권위에 저항하는 세력의 '악마화'가 아니라, 기득권으로 다시 통합하기 위해 가톨릭 극단주의자들이 사탄의 자식을 불러 다시금 선악의 이분법 전쟁을 공고히 하면서 가톨릭의 안위를 꾀한다는 무서운 음모를 전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절대악으로서 적을 계속 생산해대는 거대 보수양당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멘], 그 '저주의 시작'은 지옥의 악마가 아니라 속세 또는 현세 가톨릭의 생존투쟁이었던 거다.
3.
[오멘] 소설에서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장면은 소설 초반에 애기 데미안의 유모가 데미안의 생일날 잔치에서 '널 위한 선물'이라고 독백하면서 건물에서 목매어 공개자살하는 장면인데 소설에는 삽화가 아닌 실사 장면의 흑백사진이 삽입되어 있었다. 역시 영화가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난 몰랐기에 상상이 아닌 실사로 접한 듯 생생했다.
1976년 [오멘] 원작에서 이미 나온 장면이었고, 2024년 [오멘, 저주의 시작]의 초반부에서 역시 미스터리한 한 수녀의 공개 분신자살로 오마쥬된다. 나중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이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프리퀄'로서 나중의 유모 공개자살을 예견하기도 한다.
또한, 6월 6일 6시에 나오다가 사산된 아들을 대체한 아버지 로버트 쏜이 주변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가면서 브레넌 신부의 경고를 듣기로 하고는 데미안의 머리통 가마에서 '666' 표식을 찾아본 후 직접 데미안을 죽이려 했던 외로운 고투와 인간적 고뇌도 인상깊고 성당에서 존속살해 현행범으로 사살되는 장면은 고등학생이었던 당시의 내게 큰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유력자 가문의 후세로 살아남은 데미안이 부친의 장례식에서 남기는 미소의 영화 마지막 장면은 역시 속편을 예고하는 장치였지만 내 인생 첫 오컬트 영화의 대미로서 손색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영화 쟝르가 '오컬트'다.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2015)과 [사바하](2019), [파묘](2024)는 아직도 내게는 최고의 영화다. 현문섭 감독의 [사흘](2024)이 아무리 나를 슬프게 했어도 오컬트 쟝르에 대한 나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는 없다.
내 오컬트의 시작,
단연 [오멘(The Omen)](1976~202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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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멘, 저주의 시작(The First Omen)], 아카샤 스티븐슨, 2024.
2. [오멘(The Omen)], 리처드 도너 연출, 그레고리 펙 주연, <20세기폭스>, 1976.
3. [오멘 2], 돈 테일러, 1979.
4. [오멘 3], 그레이엄 베이커, 1981.
5. [일곱 봉인의 비밀 - 요한묵시록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배은주, <분도출판사>, 2022.
6. [신좌파의 상상력 -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조지 카치아피카스, 이재원/이종태 옮김, <이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