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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나와 일본 - 비릿 짭짤, 일본 어식 문화 이야기
서영찬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9월
평점 :
비릿한 '어(魚)식문화' 이야기
- [사카나와 일본], 서영찬, 2024.
"魚 물고기 어.
일본인에게 이 한자를 보여주고 한번 읽어보라 하면 대다수가 '사카나(さかな)'라고 발음할 것이다. 1973년 상용한자표가 개정된 후 초등교과과정에서 어(魚)를 '사카나'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사카나'의 본래 뜻은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무엇과? 밥과 술이다. 그래서 사카나는 반찬이기도 하고 안주이기도 하다...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모든 언어 대중 사이에 '술안주=사카나=생선'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를 통해 유추 가능한 사실은 예로부터 일본인의 주류 술안주가 생선(魚/물고기)이었다는 점이다."
- [사카나와 일본], <6. 바닷물고기 언어학>, 서영찬, 2024.
1.
내 일찍이,
'회(鱠)'를 사주는 사람은 나이고하를 막론하고 '형'이라 부를 준비가 되어 있다.
점심에 누가 뭘 먹을까 물을 필요 없이 사시사철 먹을 수만 있다면 나는 늘 '물냉면'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저녁에 술 한 잔 할 때 안주를 뭐로 할 것이냐 누가 묻기도 전에 나는 항상 '회(鱠)'를 떠올린다.
진심으로 1년 내내 먹고 싶은 음식이다.
물고기의 비릿함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 중 하나다. 차고 비린 술안주의 조합이 바로 '회'다.
2.
'회(鱠)'.
우리가 날생선 음식으로 알고 있는 이 한자는 일본에서 지은 글자란다. 원래는 고기 육(肉) 변을 쓰는 '회(膾)'였다. 익혀먹는 화식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 중국에서 닭고기와 개고기 등을 날로 먹던 풍습이 한자 '회(膾)'의 기원인데, 서기전 6세기의 공자까지도 개고기 '회'를 먹었다는 설이 있듯이 원래 '회'는 날짐승과 들짐승 등의 육지 날고기를 의미했단다. 이것이 일본으로 넘어와 육식을 금했던 에도시대에 물고기 어(魚) 변을 쓰는 '회(鱠)'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 '어식(魚食)문화'라 자칭하는 섬나라 일본에서 각종 물고기를 지칭하는 한자에 '물고기 어(魚)' 변을 붙인 일본식 조어가 등장한다.
3.
읽고 쓰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 '활자중독' 인문학자이자 전직 언론인 서영찬 선생은 [사카나(魚)와 일본](2024)이라는 책을 통해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물고기와 해산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일본에서 살아보지는 못했으나 부산 출신인 저자는 물고기에 대한 박학다식한 관심과 심화 공부를 통해 더 나아가 일본의 역사와 문화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진지하지 않고 즐겁고도 가볍게 읽기 참 좋은 책이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말하듯, 학술적이지 않고 "술자리나 식사 자리에서 가벼운 이야깃거리 정도"로 나눌 수 있는 소소한 내용을 목적으로 한다. 딱 내 취향이다.
"우리가 흔히 스시니, 초밥이니 부르는 것은 '니기리즈시'다. '니기리'는 '손으로 움켜쥔다'는 뜻이다. 밥알을 한 움큼 잡아 손아귀에 힘을 주고 꾸욱 움켜쥐었다가 와사비를 묻히고, 그 위에 생선살을 올린 다음 다시 한번 꾹 쥐어주면 초밥 하나가 완성된다. 이 제조 과정이 그대로 음식의 명칭이 됐다."
- [사카나와 일본], <3. 쏠쏠한 돈의 맛 : 니기리즈시>, 서영찬, 2024.
어식문화 일본의 대표음식 '스시'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말로 '초밥'이라 부르는 '스시'는 'すし' 또는 '寿司'다. 원래는 우리나라 동북해안의 가자미식혜처럼 염장생선에 밥을 얹어 발효시킨 슬로우푸드(나레즈시)였지만, 근현대 일본의 초밥은 '니기리즈시'다. 언제든 먹을 수 있도록 갖은 재료를 재워놓고 필요할 때마다 한 줌 쥐어서 만드는 패스트푸드의 대표음식이 되었다. 김밥의 유래리기도 하다. 전통 발효음식이 19세기 초부터 즉석식품으로 전환되는 식문화 변천과정에서도 변치 않는 건 '사카나(魚)'다. 소량 한 줌의 작은 밥덩이에 어떤 생선을 올려도 좋다.
[사카나와 일본]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0. 프롤로그
1. 애잔한 서민의 맛
: 이와시, 멍게, 오징어, 꽁치, 가다랑어, 백합, 날치, 전갱이
2. 깊은 역사의 맛
: 붕어, 다시마, 방어, 갯장어, 뱀장어, 붕장어, 가쓰오부시
3. 쏠쏠한 돈의 맛
: 니기리즈시, 대게, 새우, 청어, 전어, 고등어, 명태
4. 무사의 칼맛
: 도미, 뱅어, 아귀, 참치, 복어, 무사의 밥상
5. 신묘한 신성의 맛
: 문어, 쑤기미, 김, 전복, 연어, 고래
6. 바닷물고기 언어학
이 중 대부분은 우리 한반도에 익숙한 물고기들이다. 가다랑어와 청어, 날치와 참치 정도가 한반도와 대륙보다는 태평양 원양에 그나마 가까운 섬나라 일본의 상대적 특징이겠다. 물론 냉장냉동 기술이 발전한 지금은 어디서든 먹을 수 있으니 고대로부터 이어진 물고기 이야기인 것이다.
접대(오모테나시)를 비롯하여 물고기 중 최고는 도미(鯛/조)다. 사시미, 찜, 조림 등 어떤 음식으로도 중요한 접대의 앞자리를 차지한다. 우리는 회로 많이 먹는데, 줄돔, 가시돔 같은 건 이름만 따온 거고 진짜 도미는 '참돔'이다. 임진왜란 이후 첫 조선통신사가 건너갔을 때도 에도 막부는 도미를 차렸고 우리 젊을 때만 해도 결혼식이나 돌잔치의 뷔페상에는 도미가 통째로 누워 있었다. 우리의 붕어빵은 본래 일본의 도미빵이었고, 사시미나 회로 유명한 도미의 손질은 과연 사무라이 무사의 칼맛도 난다.
서민의 물고기 하면 이와시(鰯/약)다.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이 물고기는 청어과 생선을 싸잡아 부르는 말로 정어리와 멸치 등속의 회유성 떼거리 어종을 이른다. 떼거리로 잡히니 많은 사람들이 질리게 먹다가 버리거나 비료로도 가공하는 식이다. 다수 약한 민중들의 물고기반찬이라 약할 약(弱) 자 앞에 물고기 어(魚) 변을 붙였다. 그러나 다수의 힘을 지녀 어획량에 따라 일본 민중의 식생활을 좌지우지했다. 다수는 결코 약하지 않다.
첫 봄에 '맏물'로 잡는 가다랑어(鰹/견)는 일본 특유의 생선이다. 원양어업이 발달하기 전이었던 에도시대에는 참치(鮪/유)보다 맏물 가다랑어가 바로 부르는 게 값 1순위였단다. 오히려 먼바다에 사는 참치가 뭍에 올라왔을 때는 이미 상했거나 직전의 맛이라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가다랑어 또한 날로 먹다가 탈이 많이 나서 막부정권이 날생선 취식을 금지시키기도 했다는데, 어민들은 '겉바속촉'으로 겉만 대충 익혀 먹기도 했다. 탁탁 두드린다는 가다랑어 짚불구이 '다타키'다.
일본 사카나의 상징인 가다랑어는 가쓰오부시(鰹節/견절)의 재료이기도 하다. 물에서 쪄낸 가다랑어를 열로 건조한 후 연기로 훈제하고 말리는 과정에서 곰팡이를 수차례 깎아내는 수개월의 과정을 거치면 딱딱한 가쓰오부시가 된다. 가쓰오부시는 중세 전국시대부터 무사들의 승전기원 식량이었고 미소된장과 주먹밥 같이 근대 일본군대의 전투식량이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명태(鯳/저)는 대구과의 물고기로 우리는 생태, 황태, 동태, 먹태, 북어, 노가리, 코다리, 명란 등으로 다양하게 먹지만 일본에서는 그 모양 그대로가 아니라 주로 가공한 형태로 먹었다. 어묵도 가능하지만 분홍색 어육소시지, 게맛살 등 추억의 밥반찬의 주재료가 바로 명태다. 명란젓이라는 한반도 동북부의 특산품이 일본으로 건너가 자리잡기도 했다.
청어(鰊/련)와 연어(鮭/규)는 홋카이도 산물로 일본 혼슈의 북쪽 아이누 착취와 생선 가공업 자본축적의 상징이다. 청어와 연어를 얻기 위해 아이누족을 지배 및 착취했고 가공산업 진흥을 통해 자본축적을 했으나 현재는 청어와 연어 대부분을 수입한다는데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 과정을 보여준다.
일본의 고래(鯨/경) 잡이는 끈질기다는데 전후 일본인을 먹여살린 고래를 신성시하는 점도 있겠지만 [모비 딕]의 에이해브 선장이 오래전 다리를 잃은 장소가 일본 근해였던 것처럼 일본이 고래와 가까운 문화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다만 후쿠시마 방류처럼 다른 나라는 무시하고 제멋대로 처신하는 일본 우익정권의 행태는 참 일관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4.
비릿한 '어식문화'는 무릇 섬나라 일본의 것만은 아니다.
내륙 출신의 내가 생선회를 스무살에 처음 먹어보았음에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된 것만 봐도 물고기(사카나)의 비릿함은 바닷가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비릿한 어(魚)식문화 이야기는 계속된다.
비가 오든 말든,
오늘 저녁에는 지인과 함께 도미회를 먹으며 소주 한 잔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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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카나(さかな/魚)와 일본], 서영찬, <동아시아>,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