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동자의 모험 -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
배명은 외 지음 / 구픽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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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프롤레타리아 장르'라니.
- [어느 노동자의 모험], 이서영 외, 2024.


그림 하나를 보았다.

미술사학자 이진숙 선생의 [시대를 훔친 미술](2015)을 읽다가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노가 1901년에 그린 '제4계급'이라는 미술 작품을 우연히.

수많은 노동자 군대가 서서히 걸어오는 장면인데 카라바조 풍의 명암대비법인 '키아로스쿠로' 같은 효과 속에서 선두의 대열은 어둠으로부터 광명깃든 역사의 무대로 서서히 걸어나오는 장면이라는 해설을 읽었다.

'제4계급'이라는 말을 나는 처음 들었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이끈 부르주아가 왕족 또는 귀족의 '제1계급'과 성직자의 '제2계급'에 상대적인 '제3계급'으로 불렸고, 당시 다수였던 농민과 소수의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혁명의 배경에 불과했다는 말은 익히 들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최종적으로 농촌에서 쫓겨난 도시 노동자들이 다수가 되면서 산업혁명의 토대 위에서 생산의 주역이 되었고, 마르크스는 이 대다수 산업노동자 계급에게 혁명의 주체로서의 역사적 사명을 부여했다. 이제 다수 노동계급은 인류 역사에서 계급 자체를 철폐해야 할 주인공이 된 것이다.
아마도 자본주의를 끝으로 계급사회에 종말을 고하는 혁명의 주체가 되었기에 노동계급은 오래전 부르주아 혁명을 선도한 '제3계급'에 대비되는 이른바 '제4계급'이 되었을 게다.

어둠에서 밝은 광장으로 나오는 선두 대열에는 노동 지도자 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 같은 어머니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 같은 어린아이도 있다. 이는 이 세계의 미래를 선도하리라 믿었던 20세기 초 혁명적 열망의 아이콘이기도 하단다.

'20세기 소년'이면서 노동자의 아들인 내게도 '프롤레타리아'로 규정되던 노동계급은 불평등한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는 주역이었다.


페이스북을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소설이 있다.

[어느 노동자의 모험]이라는 모호한 제목이지만, 부제가 무려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이라는,
내게는 어마무시한 영감을 주는 소설집이다.

이 정도 되면, 둘 중 하나로 감이 오게 마련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만연한 비정규/불안정 노동 현실을 고발하는 참혹한 르포르타주이거나, 아니면 아예 현실배경을 잠시 떠나 판타지로 현실을 비꼬는 유쾌발랄한 도발이거나.
책의 표지 그림을 보면 유쾌발랄 '노동판타지'로 추정되는데, 나 또한 페이스북에서 이 책을 소개한 어느 페친처럼, '프롤레타리아 장르'라는 과감한 선언 뿐만 아니라 이 20세기적 포스터에도 강렬하게 끌리게 되었다.


1970년대의 황석영,
1980년대의 방현석,
1990년대의 김소진,

오래전에 소설을 쓰고 싶던 내가 매달린 '사실주의' 형식이나 '노동전위' 내용 같은 것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황석영과 방현석, 그리고 김소진 같은 소설가들을 우리 소설사에서 최고의 '리얼리스트'들로 꼽았고 지금도 그 판단에는 변함이 없지만, 세기말을 지나 21세기 벽두에 선 나는 그들처럼 글을 쓰지 못했다. 서른살 중반까지도 매년 초 찾아 읽던 각종 문학상 수상작들은 더 이상 지금 이 현실을 그대로 배경삼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된지 오래였다.
그렇게 '소설'은 내게서 멀어져 갔다.

중년인 지금 아주 오랫만에 읽은 소설들도 대부분 가상의 '판타지'였다.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 또한 이를테면 일종의 '노동판타지'다.

배명은 작가의 <삼도천 뱃사공 파업 연대기>는 조선소 파업에 참여한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가 사고로 바다에 빠져 죽어 저승 가는 길에 착취당하는 카론 같은 뱃사공들의 파업을 돕는 이야기.

은림 작가의 <카스테라>는 제빵 노동자를 갈아먹은 거대한 괴물기계의 산재사고가 배경이지만, 어쩌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도 꿈을 쫓는 어느 제빵사의 소소한 이야기.

이서영 작가의 <노조 상근자가 여주 인생 파탄 내는 악녀로 빙의함>은 로맨틱판타지 여주인공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노동판타지로 뒤바꿔 버리려다가 종국의 반전을 맞는 일본식 '라이트 노벨(Light Novel)'류의 이야기.

구슬 작가의 <슈퍼 로봇 특별 수당>은 근미래의 반체제 변혁운동가 이야기로 가는 듯 하더니 결국은 성소수자 퀴어 이야기.

전효원 작가의 <살처분>은 전북 김제의 시골마을 살인사건 추리소설 같이 시작하더니 결국 이주노동자 이야기.

다섯 종의 이야기 모두 노동과 인권, 소수자 이야기를 무려 '프롤레타리아 장르'로 잘 엮어내었다.

그 중 백미는 이서영 작가의 <노조 상근자가 여주 인생 파탄 내는 악녀로 빙의함>인데, 
읽는 내내 나도 저런 소설 한 번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얼리즘'이 꼭 팍팍한 지금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 르포르타주일 필요는 없다는 정도는 이제, 나도 안다. 언젠가 나도 나만의 '프롤레타리아 장르' 소설을 써보고 싶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 지금 이 현실을 벗어나 가상현실로 나아갈 엄두가 나지는 않는다.

언제쯤 나도 주세페 다 볼페노의 '제4계급'처럼 '리얼리즘'의 어둠으로부터 '판타지'의 환하고 발랄한 광장으로 나올 수 있을까.

소설이란 결국 '이야기'인 것이고,
모든 '이야기'는 결국 다 '판타지'일텐데 말이다.

***

- [어느 노동자의 모험 :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 배명은/은림/이서영/구슬/전효원, <구픽>,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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