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훔친 미술 -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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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 담긴 '인문학'적 서사의 힘
- [시대를 훔친 미술], 이진숙, 2015.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인간적인 것',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힘들어졌어도 우리는 해야 한다. 이 사고를 멈추는 순간, '인문학'적 성찰이 소멸하는 순간, 우리는 그저 '인간'이라는 이름의 동물이 될 뿐이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결국 우리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 [시대를 훔친 미술], <'세계의 살'을 다루는 예술, 인간 자취로서의 예술사>, 이진숙, 2015.


미술사는 내게 '놀이터'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별다른 취미나 특기가 없는 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글쓰기 행위를 일종의 혼자서도 잘 노는 '놀이'로 규정하게 되었는데, 그 중 그림을 좋아해서 '미술사'는 읽고 또 읽어도 물리지 않는 분야이기에 '미술사'가 나에게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뛰어노는 '놀이터'가 된 것이다.

인류에게 문자가 정착되기 전에는 태초에 '말', 즉 언어가 있었다. 수백만년 인류 역사에서 문자의 역사가 5천년이라면 나머지 그 이전의 더 길고 긴 시간은 말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시간이었다. 그 중 또 몇 만년은 아마도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남긴 시간이었으리라.

미술의 역사, 즉 미술사에 담긴 이야기들이 수만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미술사 또한 여느 인문주의적 행위와 같이 '이야기'의 역사다. 지금껏 그림과 의미, 나아가 '문자'와 '문헌'을 통해 해석되는 미술사를 이끈 것은 '서사'의 힘이다.

미술사에서도 또한 '인문주의'는 필수 불가결하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구텐베르크의 활자혁명 덕분이었다. 개신교가 문자를 선택했다면, 가톨릭은 미술의 강력한 힘을 다시 불러냈다. 가톨릭의 '반(反)종교개혁'은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원동력이 되었다. 교회의 권위와 영광을 드높이는 화려한 '바로크 미술'이 꽃피게 된 것이다."
- [시대를 훔친 미술], <5. 反종교개혁과 바로크 미술>, 이진숙, 2015.


미술사학자 이진숙 선생은 [시대를 훔친 미술](2015)에서 미술 작품들이 담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전한다.

미술 작품은 '시각 예술'로 분류되는데, 예술은 인류의 언어나 이론만이 아닌 실제 삶 자체를 포괄한다는 의미에서 미술은 '세계의 살'을 다룬다고 저자는 말한다. 언어 외의 다른 방식으로 인류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미술 작품들의 이야기는 중세의 신학적 세계관을 깨고 신 앞에 홀로 서게 된 근대적 '개인'의 발견으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전에 15세기 구텐베르크의 문자적 인쇄혁명이라는 '인문학'적 배경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 중세 가톨릭의 억압에 대항하면서 중세적 세계관에 균열을 냈던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 등 대규모 농민반란과 함께한 종교개혁운동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루터가 교황의 면벌부(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95개조 반박문'과 성경의 독일어 번역을 통해 종교개혁에 성공한 배경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이라는 강력한 동력이 있었다. 라틴어 독점이 아닌 독일어와 각종 언어로 성경이 인쇄되었을 때, 신은 성직자와 귀족 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에게도 다가왔다. 

저자는 미술사 이야기를 다루지만, '예술사조'를 테마로 삼지는 않는다. 
미술 비전공자인 나는 처음에는 예술사조의 도식을 통해 미술 작품들을 분류했다. 아마도 일반인이 예술사를 이해하기에는 도식적이기는 해도 간편한 방법이겠다. 

그렇게 나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통해 '모더니즘'의 승리를 보았고,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통해  '낭만주의'적 혁명을 읽었으며,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를 읽으며 '인상주의'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미술 작품을 보면 어느 시대의 어느 사조로 분류될 수 있는지 혼자 가늠해 보고는 한다.

[시대를 훔친 미술]은 예술사조를 강조하지는 않지만 14~16세기 근대 르네상스로부터 17세기 '바로크'와 18세기 '로코코' 양식, 19세기 고대 그리스의 재발견을 통해 등장한 '신고전주의' 아카데미즘과 이에 반발한 '인상주의' 및 이후 20세기 초 현대 미술 이야기를 유럽의 세계사 이야기와 함께 엮으면서 이어간다.

16세기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1536~1541)은 신교에 맞서 구교를 지키려는 노력이었다. 
이후 17세기에 등장한 '바로크'는 종교개혁의 기치를 이어가던 신교의 '문자'에 대항한 구교의 '미술'적 무기였다. 
19세기의 '인상주의'는 기교의 혁명을 통해 시각 예술의 범주를 넓혔다. 
이제 인류는 이상적으로 고정화된 이미지 뿐만 아니라 빛의 움직임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변화하는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19세기 말, 미술사는 '인상주의'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세잔의 후기 인상주의와 야수파, 미래파, 피카소의 입체파 등의 모티브는 바로 '인상주의'다.


"인상주의는 젊은 세대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방법론적 혁신이 성공의 필수요소라는 점이었다. 방법의 다양화는 피할 수 없는 덕목이 되었다."
- [시대를 훔친 미술], <14. 인상주의가 그린 장미빛 인생>, 이진숙, 2015.


[시대를 훔친 미술]이 '사실주의'나 '낭만주의' 같이 예술사조에서 중요한 계기들을 언급하지 않은 점은 저자의 미술사가 예술사조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증거다.

미술이 훔친 시대의 역사는 '예술사조'의 '도식'이라기 보다는, "좋은 시대에도 나쁜 미술이 나올 수 있고 나쁜 시대에도 좋은 미술이 나올 수 있다"(같은 책)는 우리 삶 속 미술의 이야기다.


"르네상스 이후 발전해 온 회화의 핵심 개념은 세계의 '재현'이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완벽하게 캔버스 위에 구현하는 것이 그림의 목표였다... 인상주의와 그것을 넘어서려는 피카소의 도전,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포착하려는 미래파 모두가 이 목표에 봉사하고 있었다."
- [시대를 훔친 미술], <17. 들끓는 친부 살해의 욕망들>, 이진숙, 2015.


구상주의적이고 추상주의적인 현대 미술은 더 이상 사진 같이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사진 없던 시절 사진 같던 '트롱프뢰유'나 명암대비 배경의 연극 같은 '카이로스쿠로' 같은 기법은 사실의 재현이 아닌 극적인 기법일 뿐이었다. 그저 우리가 사실이 그러할 것으로 바라는 이상적 기대에 불과했을는지 모른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얀 페르메이르가 그린 그림은 얼핏 보면 매우 사실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실은 평범한 일상을 최대한 이상화한 개신교적 접근에 불과할 수 있다. 더 이상 종교화가 아닌 일반 민증의 일상이 최초로 예술화되는 근대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시대를 훔친 미술] 이야기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현대 미술은 여기서 더 나아가 그래도 세계를 그대로 재현해보고자 했던, 심지어 피카소의 기괴한 입체주의 조차도 벗어나지 못했던 '정통 미술'이라는 '아버지'를 '살해'하고자 했다. 예술 또한 역사 일반과 같이 자기를 낳은 '친부'를 죽이고 넘어서면서 혁신된다. 
[시대를 훔친 미술]은 이러한 역사를 '친부 살해의 욕망'(같은책, <17장>)이라 표현한다.

인류 역사의 모든 서사를 담고 있는 미술사 또한 '혁신'을 빼고는 이어질 수 없는 이야기다. 

미술사 이야기를 통해서도 새삼 다시 읽게 되는 서사의 힘이다. 
이야기로 이어지는 미술사 또한 '인문학'인 것이다.

그렇게,
무궁무진한 미술사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주간 문사철'의 놀이터'가 된다.

***

1. [시대를 훔친 미술], 이진숙, <민음사>, 2015.
2.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1950), 에른스트 곰브리치, 백승길/이종숭 옮김, <예경>, 2003.
3.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Social History of Art)](1951), 아르놀트 하우저, 백낙청/염무웅 외 옮김, <창비>, 1974~2016.
4. [서양미술사], 진중권, <휴머니스트>, 2008~2016.
5. [시각예술의 의미(Meaning in the Visual Arts)](1955), 에르빈 파노프스키, 임산 옮김, <한길사>, 2013.
6. [미술사의 기초개념(Kunstgeschichtliche Grundbegriffe)](1915), 하인리히 뵐플린, 박지형 옮김, <시공사>, 1994~2016.
7. [뜻밖의 미술관], 김선지, <다산북스>, 2023.
8. [루터, 브랜드가 되다(Brand Luther)](2015), 앤드루 페트그리, 김선영 옮김, <이른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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