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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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세 가지 것에 근거한다.
바로 진리와 정의, 사랑이 그것이다.”
작가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는 고대 이스라엘 랍비 시몬 벤 감리엘의 격언으로 화두를 던진다.
학교와 실제 인생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주인공 게르버,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학교는 과연 진리, 정의, 사랑이 있는 곳인가? 그것을 배우고 가르치는 곳인가?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을 우리에게 묻고 있다.


학교마다 #미친개 는 꼭 존재했었다. 술이 덜 깬 모습으로 교단에 서고 기분에 따라 아이들을 쥐어패고, 심지어 심한 성희롱, 성추행, 인격모독까지 했던!!
하지만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왜였을까? ㅠㅠ 학생들은 눈치보며 한 대라도 덜 맞기 위해 애썼던 시절이 있었다. 이 책은 그 미친개인, 수학교수 #쿠퍼신 과 똑똑하지만 반항기 가득한 #게르버 와의 대결구도를 중심으로 놓고 이야기를 펼쳐간다.


학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게르버의 담임이자 수학, 화법기하학 교수 쿠퍼. (그의 별명이 쿠퍼 신이다) 학교는 그의 제국이며, 학생은 자신의 권력을 확인시켜주는 도구일 뿐이다. 사회에서는 자신을 권위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만큼은 독하게 권력을 휘두르고 확인받기 위해 애쓴다. #못난눔 자신의 권력에 반기를 드는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무릎을 꿇게 만든다. 그런 그의 눈에 게르버는 눈엣가시! 게르버를 망가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담임을 맡기까지 한다 #상또라이


한국으로 치면 고3인 8학년 아이들은 졸업시험을 통과해야한다. 교수가 미흡을 준다면 졸업은 계속 늦춰진다. 대학이나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졸업시험 합격증이다. 그것을 위해 엄청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교수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다. 게르버는 묻는다.
“너는 미흡해!”, “당신은 자격이 없어요!”라고 한 사람의 존재를 규정할 권리를 누가 보장해주었느냐고!!


자신이 글을 쓰기 시작한 1929년 겨울에 학업 스트레스로 단 일주일 동안 무려 열 건의 학생의 자살 소식을 신문을 통해 접했다는 작가. 이 책은 작가 자신이 프라하의 권위주의적인 학교에서 겪었던 부정적인 경험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90년이 넘었음에도 낯설지 않은 이 이야기, 그래서 더 슬프고 아프다. 수능이 끝나면 들려오는 자살 소식도 학업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


무엇을 위해 아이들은 그런 시간을 견뎌야 하는지,
그리고 어른들은 무엇을 위해 그런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 우리는 물어봐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 말이 무색할정도로 제도는 계속 바뀌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선생님들조차 다 알지 못하는 입시전형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 장을 덮는 마음이 너무도 무겁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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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홍련 - 철산사건일 한국추리문학선 14
이수아 지음 / 책과나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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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으리. 생각보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많습니다.”
“그래서요?”
“네가 좀 해결하라고.”
“산 사람 문제도 바쁩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거 아니니. 저승에 가려면 억울함을 풀어야 하는데, 귀신들이 무슨 수로 억울함을 풀겠니? 죽인 자들이 스스로 죄를 고하기 전까지 방법이 없어. 꿈에 나타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p.71


귀신 보는 사또가 나타났다. 귀신 보다 무서운 추리력을 가진 추리마님 홍련이가 나타났다. 계모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던 장화와 홍련이. 그러나 홍련이는 같이 죽은 게 아니었다? 오호라!!! 🤩
혼례를 치르기도 전에 죽은 장화, 그녀의 시신은 찾지도 못했다. 고향 철산 땅에 있으면 홍련이도 곧 죽을 목숨. 죽은 어미의 친구인 황대감의 도움으로 신분세탁을 마치고 황대감의 첩실로 들어간다. 이 또한 위장결혼이다. 배홍련에서 원추리로 신분을 숨기고 안방에서 사건을 해결해주는 추리 마님이 된 홍련.


어느 날, 자신의 고향 철산에서 의문의 죽음이 이어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철산지역의 사또가 줄줄이 죽어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에는 장화홍련 귀신이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조선 팔도에 퍼진다. 홍련이는 가만 있을 수 없다!! 이 사건은 내가 해결하게쒀! 하는 마음으로 분연히 일어나 철산 땅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 즈음 철산 땅으로 발령 받은 사또 정동호. 그는 유일하게 귀신을 보고도 죽지 않은, 귀신과 사담까지 나누고 귀신의 도움으로 사건마저 해결하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다~🥳


사건 해결을 도와주는 것은 다름 아닌 장화귀신.
귀신과 사또의 공조수사가 펼쳐진다. 억울하게 죽은 조선 여인들의 사연을 풀어주며, 언니의 죽음에 얽힌 단서와 사건의 배후세력까지 밝혀내는 홍련과 동호. 그리고 그 속에서 스멀스멀 꽃피는 사랑🧡 아흥☺️


600페이지가 되는 책임에도 아주 술술 읽힌다. 퓨전사극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 한 느낌이 든다. 유교의 영향 아래 억울하게 죽어나간 한 맺힌 여인들의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한숨이 나온다. 왜이리 억울하게 죽어나가는 이들은 많은 것인가!
그놈의 체면이 뭐라고! 뭣이 중헌디!! 😡😤


2017년 웹소설로 집필을 시작했다는 “탐정 홍련”
우리에게 친숙한 전래동화 ’장화홍련전‘에 조선 시대 검험서인’신주무원록‘을 접목한 여성 탐정물! 일단 설정부터가 흥미롭다! 그 흥미로운 설정에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게 한다는, 한을 품고 죽은 여인들의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안타까움과 재미 그리고 감동까지 선사해준다. 탐정 홍련은 철산 지역 뿐 아니라 한양, 완주, 탐라 등 조선 팔도를 다니며 사건을 해결한다고 한다.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에 귀 기울 사또 정동호와 홍련이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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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옆모습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북포레스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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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미친 남자에서 또 다른 미친 남자로 넘어온 건가? p.44

▫️나는 그를 사랑했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왜 그인지, 왜 그토록 빠르게 그토록 맹렬하게 사랑하는지.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했다. 내 인생이 꽉 찬 둥근 사과와 같아지기에는, 그리고 그가 가버릴 경우 그 사과의 잘라낸 절반만 느껴지기에는 하룻밤으로 충분했다. p.170

▫️우리는 지독히도 평행이고 지독히도 낯선 서로의 인생 속을 지나갔다. 우리는 오직 옆모습으로만 서로를 보았고, 결코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소유하기만을 꿈꾸었고, 나는 그에게서 달아나기만을 꿈꾸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p.233


파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조제는 미국으로 건너가 매력적인 미국 남자 앨런과 결혼하여 파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는 #집착대마왕 남자들과 시선을 맞추며 미소를 흘려보내는 조제를 감금하기에 이른다. #세상또라이 그러던 어느 날 사교 모임에서 만난 나이 많고 키 작은 거물 사업가 줄리우스의 도움으로 집 밖으로 탈출하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도 앨런과 별다르지 않다. #미친놈위에더미친놈 인가?


조제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뒷조사를 하며 그녀의 곁을 서성인다. 능력없는 조제에게 일자리와 월급까지 책임지는 줄리우스. 그는 조제를 만나기 전과 이후의 삶이 달라짐을 느낀다. 수면제, 신경 안정제를 복용해야만 하는 피곤한 삶에 단비 같은 여인 조제. 조제와의 결혼을 열망하지만 느꼈으리라 조제가 그를 사랑하지 않음을.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랑을 한다.

그러던 조제 앞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시골에서 살면서 수의사로 일하는 루이. 루이와 조제는 급속도로 친해지며 아주 뜨거운, 핫한 밤과 낮을 보낸다.
조제는 도시의 생활을 정리하고 루이와 함께 시골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그런 그녀가 잠시 방문한 파리에서 우연히 줄리우스와 마주치고, 줄리우스는 조제가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라 확신한다. #김칫국드링킹 한 사실을 알고 줄리우스는 무너져내리는데…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얼굴을 봐야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 서로의 모습을 온전히 보지 못한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그 사람의 모습은 맞는 것인가? 내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삶을 구속하던 관계에서 벗어나지만 줄리우스가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도움은 받을지언정 사랑은 거절하는 조제의 모습은 너무 이기적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인물들이지만 그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 심약한 마음을 표현한 사강언니의 필력은 역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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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시대 - 하얼빈의 총성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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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태 : 하지만 아무리 대의라고 하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순수한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야. 정의에도 분형이 선이라는 게 있다고. 그 선을 넘는 순간 우리도 저 일본놈들과 똑같아지는거야. p.30

▫️의태 : 우리는 무엇이 정의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가져야 해. 그래야 정의는 더 빛이 날 수 있는 거야. p.38

조선의 역적 이완용의 암살을 담당했던 독립의군 중장 정의태. 정의의 이름으로 그를 처단하려고 했지만, 이완용이 가족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죄 없는 이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실패한 거사를 만회할 기회를 얻은 의태는 이토를 암살하러 하얼빈으로 향한다. 그러나 하얼빈으로 가는 것은 이토가 아닌 이토의 실무관. 그것을 알지 못한 의태는 이토가 아닌 실무관을 쏴 죽이고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난 독립의병인가 살인자인가?‘
의태는 오인 사살을 한 후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보며 괴로워한다. 그런 의태에게 동료인 형두는 사망자가 일본 고위 간부였기에 그들을 처단하는 것 또한 독립을 향한 일이며 정의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정의에 대한 경계에 대해 늘 고민하던 의태에게 이 말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그는 스스로를 독립의병이라 정의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변론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넌 독립 의병이 아닌 살인자일 뿐이라고 태클을 거는 이들이 등장한다. 변호사, 검찰관, 신부, 한 방을 쓰는 죄수, 사망자의 아내까지..

#정의의딜레마 #하얼빈의총성

독립 투사에게 민족적, 역사적으로 영웅이란 이름이 부여된다. 그런 그들의 이름 앞에 소설가 이우는 보편적 잣대를 들이민다. 그들은 영웅일까, 살인자일까?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식민지를 만드는 것이 그 시대의 정의였을 것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시대가 변할 때마다 정의는 새롭게 정의될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자신의 정의가 절대적 정의라 생각하는 극단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 시대에 이우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너의 정의는 정말 정의가 맞냐고 말이다.


▫️의태는 어쩌면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의로움의 한계치를 보여 주는 인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러므로 자신과 타자에 관한 진실을 직시하고자 끝없이 갈등하는 것이다. 내로남불로 점철된 시대, 내로남불에 가담하고 있는 자신을, 그리고 내로남불에 희생당한 타자를 뼈아프게 직면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우리 자신을 무대 위에 세워 두고 따가운 스포트라이트를 뒤집어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쉬지 않고 보편의 시선을 객석 어디쯤에 초대하는 것이다. - 문학평론가 최지현
▫️의태 : 하지만 아무리 대의라고 하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순수한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야. 정의에도 분형이 선이라는 게 있다고. 그 선을 넘는 순간 우리도 저 일본놈들과 똑같아지는거야. p.30

▫️의태 : 우리는 무엇이 정의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가져야 해. 그래야 정의는 더 빛이 날 수 있는 거야. p.38

조선의 역적 이완용의 암살을 담당했던 독립의군 중장 정의태. 정의의 이름으로 그를 처단하려고 했지만, 이완용이 가족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죄 없는 이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실패한 거사를 만회할 기회를 얻은 의태는 이토를 암살하러 하얼빈으로 향한다. 그러나 하얼빈으로 가는 것은 이토가 아닌 이토의 실무관. 그것을 알지 못한 의태는 이토가 아닌 실무관을 쏴 죽이고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난 독립의병인가 살인자인가?‘
의태는 오인 사살을 한 후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보며 괴로워한다. 그런 의태에게 동료인 형두는 사망자가 일본 고위 간부였기에 그들을 처단하는 것 또한 독립을 향한 일이며 정의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정의에 대한 경계에 대해 늘 고민하던 의태에게 이 말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그는 스스로를 독립의병이라 정의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변론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넌 독립 의병이 아닌 살인자일 뿐이라고 태클을 거는 이들이 등장한다. 변호사, 검찰관, 신부, 한 방을 쓰는 죄수, 사망자의 아내까지..

#정의의딜레마 #하얼빈의총성

독립 투사에게 민족적, 역사적으로 영웅이란 이름이 부여된다. 그런 그들의 이름 앞에 소설가 이우는 보편적 잣대를 들이민다. 그들은 영웅일까, 살인자일까?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식민지를 만드는 것이 그 시대의 정의였을 것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시대가 변할 때마다 정의는 새롭게 정의될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자신의 정의가 절대적 정의라 생각하는 극단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 시대에 이우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너의 정의는 정말 정의가 맞냐고 말이다.


▫️의태는 어쩌면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의로움의 한계치를 보여 주는 인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러므로 자신과 타자에 관한 진실을 직시하고자 끝없이 갈등하는 것이다. 내로남불로 점철된 시대, 내로남불에 가담하고 있는 자신을, 그리고 내로남불에 희생당한 타자를 뼈아프게 직면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우리 자신을 무대 위에 세워 두고 따가운 스포트라이트를 뒤집어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쉬지 않고 보편의 시선을 객석 어디쯤에 초대하는 것이다. - 문학평론가 최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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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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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가 눈 오는 풍경을 좋아하는 건 눈송이들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동선들이 서로 엉켜 도시를 한순간 전혀 다른 흐름으로 만들어놓는 것. 어떤 눈송이들은 위아래로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정말 그것이 살아 낙하의 고저를 조절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흰 새처럼, 흰 벌처럼 느껴지는 눈이었다. - 은하의 밤, 54p

▫️그러니까 눈 내리는 희귀한 부산의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했던 일들은 겨우 그런 사실에 대해 알게 되는 것 아닌가. 모두가 모두의 행복을 비는 박애주의의 날이 있다는 것. - 크리스마스에는, 305p


데뷔 13년 만에 발표하는 첫 번재 연작소설 “크리스마스 타일“.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일곱 편의 단편. 서로 조금씩 연결되어 있는 인물들이 그려내는
뭉클하고 명랑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한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담겨있다.

암 수술 후 다시 찾은 일상과 복직의 과정을 비유적으로 그린 [은하의 밤], 소봄의 남동생 한가을의 짝사랑 실패 후 찾아온 사랑을 그린 [데이, 이브닝, 나이트], 지민과 현우의 이별의 씨가 된 옥주의 중국 유학 이야기를 다룬 [월계동 옥주]

현우 친구와의 소개팅을 앞둔 진희가 첫사랑을 떠올리는 [하바나 눈사람 클럽], 소봄을 중심으로 예능국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첫눈으로]

이십 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반려견을 잃고 애쓰며 사는 세미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 SNS에서 맛집 알파고로 유명한 옛 연인 현우를 취재하러 온 지민의 이야기가 담긴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한 해가 정말 가는구나 하는 마음이 코끝을 찡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올 해는 무슨 마음을 품었더라? 어떤 생각을 했더라? 생각하며 한 해를 정리하게 된다. 나의 일상이 모여 일 년이란 시간을 만들었다. 작고 반짝이게, 때론 흠집이 나기도, 때가 타기도 했을 수많은 순간들. 하나하나의 작은 순간들을 이어붙이면 어떤 모습일까? 그 타일들을 모아 놓으면 근사한 ‘나’가 완성되어 있을까?

사랑, 이별에 아파하며 애쓰며, 치열하게 때론 치사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 그렇지만 가끔 꺼내보고 싶은 마음의 조각들. 흰 눈이 내릴 때 도시가 전혀 다른 풍경이 되듯 우리 마음도 전혀 다른 바람이 불어온다. 그때만 건넬 수 있는 마음이란 것이 존재할 것이다. 모두 행복하길 바라는 박애주의가 발현되는 날이 있다는 것. 그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라는 선물은 아닐까..


📮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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