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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크기
이희영 지음 / 허블 / 2025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허블 출판사에서 진행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행복의 반대말이 뭐야?“
”행복의 반대말은 아마 불행이겠지?“
행복의 반대말은 ‘안 행복’ 아닌가?
”행복하지 않다고 모두 불행한 건 아니잖아요. 다만 안 행복할 뿐이지. 소설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주인공이 ‘안 행복의 안’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는 느낌. 행복하지도 않지만, 완전한 불행으로 곤두박질치지도 않는 삶. 그저 안 행복의 안이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는 그 과정 말이에요.“ p.163
단설우. 어느 날부턴가 햇빛보다 훨씬 밝고 작은 파란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설우의 눈에는 보이는 빛. 그리고 그 작은 빛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원래는 쌍둥이었으나 임신 10주에서 15주 사이에 쌍둥이 중 한 명의 심장이 멈추고 자연스레 소멸하여 혼자 태어난 아이. 그런 현상을 배니싱 트윈이라 했던가. 열세 살 아이가 엄마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알게 된 사실이었다. 설우에게만 보이고 들리는 빛과 소리는 혹시 그때 나와 함께였지만 소멸된 아이일까? 조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함께 성장한다.
서른이란 나이, 하루 아침에 권고사직과 이별 통보를 받을 확률은?
태어날 때부터 상실을 경험한 설우는 모든 것에 심드렁했다.
그것이 상처를 ‘안’받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으리라.
행복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잃어버렸을 때의
상처는 더 할 테니까. 아예 처음부터 욕망하지 않으면 상처도
실망도 슬픔도 없을 테니까. 그런 설우가 tv에 나온 국수집을 방문하면서
새로운 삶의 문이 열리게 된다.
우연히 흑호동의 호호 영어학원 강사가 되고
흑호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고
우연히 방문한 동네 서점 사장과도 친하게 된다.
우연…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그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지
필연으로 만들지는 결국 선택해야 한다.
‘안’ 선택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선택하게 된다.
왜냐고? 행복하고 싶고, 욕심내고 싶으니까.
평생 무채색으로만 있는 듯 없는 듯 하게만 살아온 설우는
자신의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깨닫게 된다.
자신과 비슷하게 선택하지 않고 용기내지 않고
살아가는 동네 서점 사장을 보고 알게 된다.
‘안’의 크기를 줄여가는 선택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그래서 지금 ‘안의 크기’는 어때요?“
”안 행보고의 안도 마찬가지예요. 내버려두면 자연스레 줄어들긴 해요.“
”문제는 그 과정을 어떻게 견디느냐죠.“
”그 과정을 반복해서 견디는 게 삶이죠.“
천사 같이 이쁘지만 징글맞게 악마 같은 아이들과의 부대낌,
평생을 고생하며 살다 자신을 위해 무용한 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일흔 넘어 초등 영어 학원 문을 두드린 선자 님.
서로를 위한 환대로 마음의 쓸쓸함을 다정함으로 덮어주는
흑호동 사람들로 인해 설우는 차차 빛을 향해 나아간다.
분명한 건 ’안의 크기‘가 조금은 줄었을 거라는 거다.
누군가와 함께 한 약속이 있으니까.
약속을 지키기 위한 기다림도 충분히 행복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