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무게 ㅣ 믿음의 글들 262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명석함보다 빛나는 루이스의 진정 어린 마음


C. S. 루이스 저, ‘영광의 무게‘를 읽고


오랜만에 읽는 루이스. 아직도 다 읽지 못한 그의 저서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루이스의 책은 집중을 요구하기에 살짝 긴장을 했다. 하지만 의외로 막히지 않고 읽혔다. 그의 논리와 변증은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루이스의 명석함보다 그의 진심 어린 마음이 더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루이스의 여러 설교문과 강연문을 엮은 것이다.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쓰였다. 다는 아니지만, 루이스의 주된 목소리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비롯한 젊은 지식인층을 향한다. 전쟁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존적이고 현실적인 고민들을 떠안고 인생의 변곡점에 서 있는 청년들을 향한 루이스의 선한 마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중년에 접어든 루이스의 현실을 꿰뚫는 논리 정연한 현실 분석과 그것을 초월한 그의 성숙한 신앙도 충분히 전달되었다. 


아홉 편의 원고는 저마다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나씩 훑어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간략하게 정리하며 감상을 남긴다.


1. 영광의 무게 - 천국과 인간의 영원한 가치

첫 번째로 소개되는 이 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지고 있을 천국을 향한 갈망,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보상, 즉 영광에 대한 루이스의 통찰이 담긴 설교문이다. 루이스는 천국은 속물근성에 의한 잘못된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살아낸 그리스도인에게 결과로 주어지는 합당한 보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머나먼 본향에 대한 갈망을 우리는 흔히 아름다움이라고 부르는데, 이 아름다움의 실체는 아름다운 대상이 아니라 결국 영원을 향한 갈망이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다음으로 루이스는 영광의 개념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는데, 성경이 약속하는 영광은 세상적인 명예 또는 광휘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진정한 영광은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상태라고, 이것이 바로 신약성경이 말하는 바라고, 진짜 그리스도인의 명예라고 루이스는 말한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 아, 천국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한 마디만 들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이보다 더 큰 영광이 또 있을까? 아니, 이것이 유일한 영광이지 않을까? 

이어서 루이스는 영광의 무게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 무게는 너무나 무거워서 겸손해야만 질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마주치는 이웃들을 돕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며 사랑하는 일이다. 그 이웃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안에 내주 하시는 그리스도가, 즉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이자 영광을 받으시는 분, 영광 자체께서 계시기 때문에, 거룩한 존재라고 말하며 루이스는 글을 마무리한다. 


2. 전시의 학문 - 전쟁 중에도 학문에 힘쓰는 이유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시기에 대학에서 학문을 추구하는 행위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루이스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겐 전쟁이 제기한 이러한 질문보다 훨씬 중요한 질문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인간이 매 순간 천국이나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이 일촉즉발의 시기에 문학이나 예술, 수학이나 생물학 같은 일들에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전쟁 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과 영혼 구원 외의 다른 일을 생각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경박하고 이기적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것이 세속적이고 또 어떤 것이 거룩한 것인지 물으며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즉 학문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자연적인 활동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면, 설사 그것이 가장 비천한 활동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목회자가 된다거나 신학을 한다거나 교회에서만 생활하려고 할 필요도 없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학자의 길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학문을 성실히 수행하라는 말이다. 단,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학자들은 흥분하지 않도록, 좌절하지 않도록,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말이다. 

내가 만약 루이스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면, 나 역시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학문에 더욱더 성실히 매진했을 것 같다. 이런 선배가 존재한다는 건 후배 학자에겐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자 축복이다. 


3. 나는 왜 반전론자가 아닌가? - 전쟁에 대한 태도

루이스는 반전론자가 아니다. 전쟁 중 이미 명성이 자자한 인사가 자신의 입장을 떳떳하게 밝히는 것은 쉽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루이스는 이 글에서 왜 자신이 전쟁을 반대하지 않는지 장황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먼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옳고 그름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이 질문을 통해 루이스는 독자에게 양심을 고찰하도록 이끈다. 이성과 경험과 권위와 직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종교적 관점과 역사적 관점을 동원하여 반전론의 입장이 논리적으로 취약할뿐더러 전쟁을 제거하지도 못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기독교적으로도 반전론은 지지되지 못한다는 점도 짚어낸다. 기독교적 반전론의 근거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라는 마태복음 5장 39절 같은 예수의 몇 마디 말씀이 전부라고 지적하면서 말이다. 


4. 변환 - 방언과 초자연적 현상 이해

성령강림절 설교문으로써 루이스는 오순절 성령 강림 직후 일어난 방언을 비롯한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한다. 방언은 1세기 초대교회 시기만이 아니라 21세기인 지금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방언이 성령의 역사였다면, 21세기 현재 홍길동 교회 지하 예배당에서 '랄랄랄라'와 같이 알아들을 수도 없는 언어로 마치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것 같은 방언(?)도 성령의 역사라고 해야 할까? 반대로, 오순절 다락방의 방언이 히스테리였다면, 나머지 방언들 모두도 히스테리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떤 방언이 성령의 역사이고 어떤 방언이 히스테리인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루이스는 이 난제를 최대한 해소하기 위해 방언만이 아닌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대상으로 설명을 시작한다. 중심 원리는 이 글의 제목과 같이 '변환'이다. 영적인 현상이라는 것도 결국 우리가 익숙한 자연적인 현상으로 비친다는 사실로부터 서로 다른 두 차원 간의 소통 혹은 번역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것이 바로 변환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차원 세계에 사는 사람이 삼차원 세계를 이해하려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언어는 삼차원의 언어를 다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역사로 인한 방언과 히스테리에 불과한 거짓 방언의 차이도 성령의 역사하심 없이는 결코 정확히 분별할 수 없다. 똑같이 외계어로 들린다고 해서 함부로 그 모두가 성령의 역사라든지 히스테리라든지 경솔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말이다. 

루이스는 이러한 변환의 교리가 소망이라는 신학적 덕목을 이해하는 데 긴요하다고 말한다. 삼차원 세상에 살고 있고 육을 가진 인간인 우리는 원할 수 있는 것만을 소망할 수 있다. 하지만 천국은 우리가 모르는 것들, 지금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혹은 지금 우리에게 없는 것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성경에 나온 천국의 모습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루어진 비유이지 않는가. 이 점에서 루이스는 요한일서 3장 2절을 언급한다. "장차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보다 더 훌륭하게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리고 루이스는 천국에서 무한히 가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뵙고 누릴 수 있다는 거라고 말한다. 나 역시 그것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5. 신학은 시인가? - 신학을 보는 관점

옥스퍼드대학 소크라테스 클럽에서 받은 "신학은 시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루이스의 대답이 담긴 원고. 먼저 루이스는 신학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또 그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진술들의 모음'이라고 여긴다고 밝힌다. 그리고 시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만족시켜 주는 글'이라며 아주 애매하면서도 무난한 정의를 내리면서 첫 질문을 이렇게 변환시킨다. "기독교 신학의 매력은 상상력을 고취하고 만족시키는 힘에서 나오는가? 기독교 신학을 믿는 사람은 미적 즐거움을 지적 동의로 오해하고 있는가? 즉 좋아하기 때문에 동의하는 것인가?" 그러면서 루이스는 기독교 신학이 시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기독교가 신화에 불과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루이스에게 신학이 시가 되는 이유는 자기가 그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학이 시이기 때문에 믿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루이스는 신학이 시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분석하기도 한다. 기독교 신학에는 원시 종교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시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신학은 비유적이거나 상징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시와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시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짚어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신학을 시 정도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나 상징을 동원한 시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대상들을 제외한 다른 것들에 대한 언어는 모두 비유적일 수밖에 없다. 

6. 내부패거리 - 특권층 지향 욕구 통찰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글 중 내겐 가장 인상적인 글이었다. 나 역시 분야는 다르지만 학문의 영역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들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내부패거리는 'Inner circle'을 지칭한다.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에 첫 발을 디디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주류에 편승하고 싶은 욕망'의 위험성에 대해서 루이스는 엄중한 목소리로 경고한다. 주요 청중이 런던 킹스 칼리지의 졸업생 및 재학생 청년들이었던 이 강연은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통찰한 루이스의 젊은 지식인층을 향한 진심 어린 충고로 읽힌다. 루이스는 이러한 주류에 들고 싶은 욕구와 바깥에 남겨지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평생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면 '내부패거리주의자'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며, 마음도 부서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강력하게 결론을 말한다. 모든 게 부서지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그것을 부수라고. 그 비법은 앞서 말한 욕구와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기가 맡은 일을 그저 성실과 열심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중요하고 유일한 집단 내부에 들어가 있음을 스스로 발견하게 될 거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나에게 이 글은 은밀한 샛길을 찾지 말라는 조언으로 읽혔다.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정면승부를 보라는 말로 읽혔다. 역경과 고난을 만나더라도 묵묵히 걷다 보면 걸어온 발걸음이 길이 된다는 말로도 읽혔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7. 멤버십 -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넘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집단주의가 개인을 가차 없이 몰아내고 있는 시대로서 고독, 침묵, 사생활, 명상, 참된 우정에 굶주려 있다고 말하면서 문을 여는 이 글은 종교만이 이 시대에 혼자 있을 때 하는 일로 분류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이라고 지적한다. 루이스는 그리스도인은 집단주의에도 개인주의에도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대신 그리스도인은 멤버라고 칭한다. 멤버는 바울이 말한 장기 혹은 지체에 해당한다.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면서 상호보완적이고 한 몸을 이루는 조각들이기 때문이다. 각 지체는, 다시 말해 각 그리스도인은 고유성을 가진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개인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비한 몸을 구성하는 지체로서의 지위를 가짐으로써 개성을 가진다는 말이다. 기독교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사이의 이분법을 초월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글이었다. 


8. 용서 - 참된 용서 실천 방법

이 짧은 글은 주기도문 중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에 대한 해제로 읽을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고 믿지만, 우리에게 죄지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도 믿는다.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주님의 가르침이기에 이만큼 분명한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린 삶에서 이 부분을 자주 희석시키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나만 용서받길 바라는 심보를 가지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말한다. 하나님은 그리 끔찍하지 않거나 정상 참작이 되는 경우에만 죄를 용서하신 게 아니라고. 아무리 끔찍하고 비열하고 자주 되풀이되더라도 용서하신 거라고. 정말로 양해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일을 양해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자비가 아니라고. 그것은 공정함일 뿐이라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한다는 뜻이라고. 하나님이 우리의 용서할 수 없는 부분들을 용서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덧붙인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를 거절하는 것과 같다고. 불가능성의 가능성. 용서는 결코 쉽지 않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일을 언제나 마음에 두고 행함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9. 실언 - 하나님의 주권 인정하기

이 짧은 글은 루이스가 축문을 외다가 실언을 했던 경험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시적인 것들을 잘 통과하여 영원한 것들을 잃지 않게 해 달라는 말을 영원한 것들을 잘 통과하여 일시적인 것들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말해 버렸다는 것이다. 루이스는 이 실언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자기 안에 있던 은밀한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자꾸만 신앙생활에서 하나님과 적정 선에서 타협하려는 방어 기제이자 인간적인 욕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에서 권리 주장을 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사랑이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는 협상이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지 말고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신뢰하며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세금을 받고 계시는 주인이 아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시간이나 관심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다. 이는 예배의 본질과도 연결될 것이다. 나를 쪼개어 불에 태워드리는 번제의 의미도 되새겨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싸워야 하는 적은 하나님도 손댈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이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홍성사 

#김영웅의책과일상 


* 루이스 읽기

1. 예기치 않은 기쁨: https://rtmodel.tistory.com/682

2. 고통의 문제: https://rtmodel.tistory.com/695

3. 헤아려 본 슬픔: https://rtmodel.tistory.com/699

4.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https://rtmodel.tistory.com/822

5. 천국과 지옥의 이혼: https://rtmodel.tistory.com/852

6. 순전한 기독교: https://rtmodel.tistory.com/911

7. 시편 사색: https://rtmodel.tistory.com/942

8. 순례자의 귀향: https://rtmodel.tistory.com/1164

9. 순전한 그리스도인 (by 김진혁): https://rtmodel.tistory.com/1176

10. 세상의 마지막 밤: https://rtmodel.tistory.com/1629

11. 침묵의 행성 밖에서: https://rtmodel.tistory.com/1633      

12. 루이스가 메리에게: https://rtmodel.tistory.com/1635

13. 페렐란드라: https://rtmodel.tistory.com/1637   

14. 개인기도: https://rtmodel.tistory.com/1653

15.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https://rtmodel.tistory.com/1658

16. 인간 폐지: https://rtmodel.tistory.com/1662

17. 책 읽는 삶: https://rtmodel.tistory.com/1742

18. 경이라는 세계 (by 이종태): https://rtmodel.tistory.com/1772

19. 루이스의 인생 책방 (by 홍종락): https://rtmodel.tistory.com/1845

20. 영광의 무게: https://rtmodel.tistory.com/2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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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에티켓 -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
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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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죽는다


롤란트 슐츠 저, '죽음의 에티켓'을 읽고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지식공동체 '그믐'에서는 2026년 1월부터 '웰다잉 오디세이'가 진행 중이다. '웰다잉 오디세이'는 말 그대로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는지'에 대한 거대하고도 근원적인 질문에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책들을 매달 한 권씩 읽어나가는 프로젝트이다. 나는 곁눈질을 하다가 7월부터 본격적으로 합류를 했다. 매번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 선정되었지만, 이번 10월에 함께 읽고 나눌 책이었던 롤란트 슐츠의 '죽음의 에티켓'은 내겐 아주 독특한 경험을 선사했다. 아마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는, 비록 대리이지만, 죽어가는 과정과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저자는 마치 편지를 쓰듯, 마치 대화를 걸듯, 2인칭 시점으로 글을 써내려 간다. 그래서 책을 펼치면 모든 독자는 죽어감과 죽음의 여정을 거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이 단순한 진리를 우린 부인하지도 않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죽음은 언제나 너무 멀기만 하고,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겨지는 탓이다. 하긴 현재의 삶에서 죽음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삶 또한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럴 때 클리셰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망각은 신의 은총이라고. 하지만 우린 이성의 동물이기도 하고 기억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죽음에 천착하지만 않는다면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건 결코 잘못된 선택이 아니다. 어떻게 잘 죽을 수 있는지 묻는 것은 어떻게 잘 살 수 있는지 묻는 것으로 자연스레 연결되기 때문이다. 웰다잉은 웰에이징, 웰리빙, 웰비잉과 모두 연결된다. 죽음이라는 명징한 결과가 없다면 늙는 것도, 사는 것도 존재하는 것도 모두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제목이 거슬렸다. '에티켓'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에티켓은 사회생활을 하거나 대인 관계를 유지할 때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규범을 뜻한다. 그러므로 '죽음의 에티켓'은 아마도 죽어가는 과정과 죽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규범을 말하고자 지은 제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예의나 규범에 천착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은 이렇게 죽는다는 것을 2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서술해내려 갈 뿐이다. 독일어 원제 역시 'So sterben wir'인데, 번역하면 '우리는 이렇게 죽는다'이다. 부제 역시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원제를 그대로 살렸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유일한 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2인칭 시점을 택한 것이 내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아무래도 2인칭은 3인칭보다 직접적이다. 그래서 독자는 조금은 더 죽음을 가깝게 느끼면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책이 만약 3인칭으로 쓰였다면 저자의 의도와 문체가 가진 힘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을 것 같다. 내용 면에 있어서는 '웰다잉 오디세이'에서 읽은 다른 인문서보다 특별한 점은 없었다. 새로운 정보랄까 지식이랄까 하는 것은 오히려 얕은 감이 있었다. 그러나 죽음을 가까이에서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입장에서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문체는 이러한 결핍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특히 저자의 담담한 어조는 죽음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하면서도 동시에 관조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정보 전달보다는 여백이 더 많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깨닫기보다는 죽음이라는 실체를 이물질로 여기지 않고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역시 인간은 이성만이 아닌 감성이 자극되어야 움직이는 존재인 것 같다. 


죽어가는 여정, 그리고 끝내 찾아오는 죽음을 담담한 기분으로 걸어가 보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죽음이 한층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스노우폭스북스

#김영웅의책과일상 


* '웰다잉 오디세이'와 함께

1. 아툴 가완디 저, '어떻게 죽을 것인가': https://rtmodel.tistory.com/2215

2. 김현아 저, '죽음을 배우는 시간': https://rtmodel.tistory.com/2238

3. 모모 조예스 저, '미 비포 유': https://rtmodel.tistory.com/2258

4. 롤란트 슐츠 저, '죽음의 에티켓': https://rtmodel.tistory.com/2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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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부르그 연대기 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2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항재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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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소통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저,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를 다시 읽고 (‘그믐’과 함께)


뾰뜨르 이바니치와 이반 뻬뜨로비치 사이에 오고 간 아홉 통의 편지.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오해와 미움만 커졌고, 끝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절교를 선언하게 된다. 중간에 끼인, 표면적으로는 아홉 통의 편지의 발단이 된, 예브게니 니꼴라이치만 어부지리로 궁극의 승리자 자리를 꿰차게 된다. 예브게니는 두 사람의 아내와 각각 연인 관계에 있었거나 현재 진행 중인 남자다. 


소설은 이반 뻬뜨로비치가 소개해 준 예브게니 니꼴라이치에 대해 뾰뜨르 이바니치가 불만을 토로하며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편지로 시작한다. 휴대전화가 없던 19세기 러시아 제국 시대, 둘은 서로를 만나기 위해 서로의 집은 물론 여기저기를 찾아다니지만 정작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 매번 정당하게 보이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지만, 오고 간 편지를 차례대로 읽다 보면 그 이유는 핑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만나자고 하면서도, 특히 뾰뜨르 이바니치의 경우, 진정 만나고 싶어 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나름대로 친분이 있던 관계가 편지 아홉 통만에 파국으로 치닫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란 무엇인지 그 경박함에 대해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된다. 


표면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던 예브게니에 관련된 문제는 편지가 오갈수록 희미해진다. 대신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돈거래가 주요 화제로 등극하여 절교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초독 땐 놓쳤던 것 같고 두 사람이 덤 앤 더머로만 보였는데, 재독 땐 둘의 관계가 더 이상 수평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뾰뜨르가 돈 문제와 관련해서 이반에게 뭔가 잘못을 했다는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였다. 물론 상대적이겠지만 말이다. 말하자면 뾰뜨르가 상대적으로 더 가해자, 이반이 상대적으로 더 피해자의 위치에 놓인 구도로 읽혔다. 예브게니 문제도 뾰뜨르가 정작 중요한 돈 문제를 은근슬쩍 넘어가거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큰 그림의 작은 조각으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뾰뜨르에게서 악함을 느꼈고, 이반에게서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봤자 이반 역시 뭔가를 숨기고 있었고 뾰뜨르에게 당당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드러내기 위해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감추기 위해 글을 쓴다. 뾰뜨르는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소통의 수단이어야 할 편지도 자기 뜻을 관철시키고 입바른 거짓으로 진실을 덮으려고 하며 문제의 핵심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변죽만 울리는 일방적인 폭력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뾰뜨르라는 인간에게서 나는 또 다른 인간의 본성을 엿보게 된다. 


덧붙여, 재독 때 눈에 띈 것 중 한 가지는 두 사람의 이름이다. 이름과 부칭이 서로 뒤바뀐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뾰뜨르 이바니치는 이반의 아들 뾰뜨르이고, 이반 빼뜨로비치는 뾰뜨르의 아들 이반이기 때문이다. 왜 도스토옙스키는 이런 설정을 했을까? 두 사람 모두 고상한 척하며 소통의 부재를 겪고 자기 얘기만 하지만, 결국 둘은 똑같다는 것, 똑같이 눈먼 바보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예브게니에게 각자의 아내의 사랑을 빼앗긴 증거를 소설 마지막에 보여주는 것도 다 이를 위함이지 않았을까? 도스토옙스키는 역시 천재다.


#열린책들 

#김영웅의책과일상 


* 도스토옙스키 다시 읽기

1. 가난한 사람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2. 분신: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3.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4. 상처받은 사람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5. 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6. 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7.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8. 노름꾼: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9. 백치: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10. 악령: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11. 미성년: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12.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13. 쁘로하르친 씨: https://rtmodel.tistory.com/2271

14.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https://rtmodel.tistory.com/2275


* 도스토옙스키 처음 읽기

1.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2. 백치: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3. 악령: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4. 미성년: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6. 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7. 가난한 사람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8. 분신: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9. 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10. 노름꾼: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11. 도스토옙스키 (by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https://rtmodel.tistory.com/1077

12.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177

13.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by 이병훈): https://rtmodel.tistory.com/1194

14. 매핑 도스토옙스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58

15.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62

16.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by 도제희): https://rtmodel.tistory.com/1388

17.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18. 상처받은 사람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19. 악몽 같은 이야기: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20. 악어: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21. 인간 만세!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488

22.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by 슈테판 츠바이크): https://rtmodel.tistory.com/1625

23.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by 조주관): https://rtmodel.tistory.com/1644

24. 백야: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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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영원한 남편: https://rtmodel.tistory.com/1823

38.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https://rtmodel.tistory.com/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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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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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부르그 연대기 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2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항재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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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첫 등장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저, ‘쁘로하르친 씨‘를 다시 읽고 (‘그믐’과 함께)


재독의 즐거움 중 하나는 초독의 맹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초독 땐 줄거리 파악이나 작품 속 낯선 세계와의 조우 때문에 긴장도 하게 되고 조급한 마음에 간과하거나 피상적으로 파악하고 넘어간 부분들이 있게 마련이다. 재독은 이미 한 번 와본 장소에 재방문한 기분으로 조금은 더 여유 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나름대로의 분석과 재해석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재독의 이점은 함께 읽을 때 증폭되고 강화된다. 이 작품 '쁘로하르친 씨'의 재독 과정에서도 나는 이것을 분명히 체험할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예상치 못한 호평과 '분신'의 뜻밖의 혹평은 마음이 여린 신진 작가 도스토옙스키에게는 가혹한 시련이었을 것이다. 그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것이 이 작품, 그러니까 '분신' 직후에 쓰인, '쁘로하르친 씨'를 대하는 바른 독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쁘로하르친 씨는 '분신'의 골랴드낀의 변주다. 둘 다 하급 관리였고, 가난했으며, 단절되고 고립된 삶을 살았다. 쁘로하르친 씨는 골랴드낀처럼 정신분열증 환자로 판명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죽기 직전에 취한 여러 행동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으며, 오로지 앙상한 몸뚱이와 쓰지도 못하고 모으기만 했던 돈만 남긴 채 죽고 말았다. 그가 죽지 않고 더 살았다면 골랴드낀처럼 미쳐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골랴드낀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여 늘 눈치를 보면서도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했으며, 항상 남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낄 정도로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나머지 정신이 분열되는 지경까지 이른 인물이었다. 반면 쁘로하르친 씨는 타인으로부터의 인정보다는 자신의 안위에 천착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돈에 대한 집착은 돈만이 자신의 안위를 보장해 주는 유일한 수단이자 구원의 통로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쓰지도 못하고 수전노처럼 축적만 하다가 죽음에 이르고 만다. 자신의 안위는 증발해 버렸고, 구원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단절과 고립, 집착과 망상이 낳은 허망한 죽음. 이것이 쁘로하르친 씨가 증명한 삶이었다.


초독 때 놓쳤던 것을 재독 때 알아챈 사실이 있다. 쁘로하르친 씨가 이웃에게 막말을 하는 중 ‘나폴레옹’이라는 단어는 사용하는 부분에서다. 알다시피 나폴레옹은 20년 뒤에 쓰일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꼬프에게 비범인 사상의 모델이 되었던 인물이다. 쁘로하르친 씨는 라스꼴리니꼬프처럼 비범인 사상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돈만 모으면 직장에서 해고당하지 않고 떵떵 거리며 계속 살 수 있을 줄 알았던 것 같다. 이런 소극적인 자세를 나폴레옹을 모델로 한 비범인 사상이었다고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어설프다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 작품 자체가 도스토옙스키의 초기작에 속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고 ‘분신’ 직후에 쓰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쁘로하르친 씨’는 나폴레옹으로 대변되는 비범인 사상의 맹아가 된 작품이라고 해석해도 될 듯싶다. 등장인물로 말하자면, 골랴드낀과 라스꼴리니꼬프를 잇는 인물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라스꼴리니꼬프는 골랴드낀과 쁘로하르친 씨를 합친 인물이 20년간 숙성되어 탄생한 인물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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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토옙스키 다시 읽기

1. 가난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690

2. 분신: https://rtmodel.tistory.com/1696

3.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739

4. 상처받은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744

5. 죽음의 집의 기록: https://rtmodel.tistory.com/1761

6. 지하로부터의 수기: https://rtmodel.tistory.com/1776

7. 죄와 벌: https://rtmodel.tistory.com/1807

8. 노름꾼: https://rtmodel.tistory.com/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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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미성년: https://rtmodel.tistory.com/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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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토옙스키 처음 읽기

1. 죄와 벌: https://rtmodel.tistory.com/811

2. 백치: https://rtmodel.tistory.com/815

3. 악령: https://rtmodel.tistory.com/879

4. 미성년: https://rtmodel.tistory.com/928

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https://rtmodel.tistory.com/1068

6. 죽음의 집의 기록: https://rtmodel.tistory.com/1087

7. 가난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153

8. 분신: https://rtmodel.tistory.com/1159

9. 지하로부터의 수기: https://rtmodel.tistory.com/1171

10. 노름꾼: https://rtmodel.tistory.com/1174

11. 도스토옙스키 (by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https://rtmodel.tistory.com/1077

12.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177

13.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by 이병훈): https://rtmodel.tistory.com/1194

14. 매핑 도스토옙스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58

15.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62

16.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by 도제희): https://rtmodel.tistory.com/1388

17.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396

18. 상처받은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429

19. 악몽 같은 이야기: https://rtmodel.tistory.com/1435

20. 악어: https://rtmodel.tistory.com/1436

21. 인간 만세!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488

22.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by 슈테판 츠바이크): https://rtmodel.tistory.com/1625

23.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by 조주관): https://rtmodel.tistory.com/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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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뽈준꼬프: https://rtmodel.tistory.com/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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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예수의 크리스마스 트리에 초대된 아이: https://rtmodel.tistory.com/1724

37. 영원한 남편: https://rtmodel.tistory.com/1823

38.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https://rtmodel.tistory.com/1825

39. 쁘로하르친 씨: https://rtmodel.tistory.com/1827

40. 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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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https://rtmodel.tistory.com/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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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익는다
방영민 지음 / 이삭나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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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에서 안내자로


방영민 저, ‘읽어야 익는다’를 읽고


2016년은 페이스북을 비롯하여 여러 블로그와 게시판에 서평이 범람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때부터 2026년 현재까지 10년간 기독교 서적을 꾸준히 서평해 온 서평가가 있으니, 바로 이 책의 저자 방영민 목사다. 이 역사적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자에 대한 신뢰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는 지금도 목회 현장에서 신학 공부를 놓지 않고 성실하게 읽고 쓰는 현재진행형 목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이 책은 하나님과 나와 이웃과 세상을 더 알고 싶어 하는 진지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목소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2016년은 나에게도 의미가 깊은 해였다. 이국 땅에서 인생의 두 번째 회심을 경험하고 기독교 서적을 막 읽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나는 페이스북으로 방영민 목사를 처음 만났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본 회퍼의 ‘나를 따르라’에 대한 서평을 읽고 감동이 된 나머지 그 글을 복사해서 수차례 읽었고, 그 당시 '복있는사람'에서 출간된 본 회퍼 시리즈를 모두 구해 읽기도 했다. 아마도 그 이후였을 것이다. 나는 방영민 목사의 애독자 중 하나가 되어 그의 서평을 지금까지 묵묵히 읽어오고 있다. 


이 책은 그의 두 번째 저서다. 3년 전 출간된 첫 번째 저서 ‘책의 숲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그가 썼던 서평들을 모으고 정리하여 엮은 책이었던 반면, 이번 책은 성격을 달리 한다. 기독교 서적을 읽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역할을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방영민 목사의 이러한 변화, 즉 서평가에서 안내자로의 변화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서평가 방영민이 수많은 책들에 파묻힌 채 책상 앞에 있었다면, 안내자 방영민은 그가 10년간 읽고 공부하고 서평 한 수백 권의 책들로 이뤄진 든든한 토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읽기’를 먼저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선물 같은 안내서이다. 


1부에서 그는 책의 종교인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을 쉽고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책들을 추천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여성, 과학, 일상 등 기독교와 언뜻 보면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온전한 신앙을 가지도록 돕는 중요한 영역에 관련된 책들도 추천한다. 읽는 사람만이 다르게 읽고 생각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또한 무속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으로부터 바른 신학을 바탕으로 한 건강한 신앙을 분별하고 견지하기 위한 책으로 그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들을 추천한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은 그에게 신학적 회심을 경험하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삼위일체론만이 아니라 성령에 대해 깊고 풍성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책들도 여러 저자와 함께 소개하면서 그는 이 폭풍 같은 시대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진리의 깃발을 흔드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어서 그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고통과 관련된 신정론에 대한 책들도 추천한다. 제럴드 싯처와 루이스의 저서는 나 역시도 읽고 도움을 많이 받았다. 


2부로 넘어가면서 저자는 복음의 정수를 간결하게 담은 여러 책들과 설교에 관한 책들을 추천한다. 스캇 맥나이트, 매튜 베이츠, 톰 라이트, 마틴 로이드 존스의 책들이 소개되어 그것들로 많은 은혜와 깨달음을 얻었던 지난 과거가 생각나 반가웠다. 그리고 저자는 성경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책들을 쓴 저자들도 추천한다. 성서해석학적인 공부는 성경의 배경을 알게 해 주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다 깊고 풍성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맥락에 맞지 않은 해석, 주해 없는 작위적인 해석은 바른 신앙일 수 없을 것이다. 성경만 읽어선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저자가 추천해 주는 책들의 도움이라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기독교 서적은 성경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도구이다. 


묵상에 관한 책들을 추천하면서 문을 여는 3부에서 저자는 읽기에 대한 통찰을 본격적으로 나눈다. 책을 다 읽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 중 하나일 것이다.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묵상과 기도로 연결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신앙을 우리의 일상으로 옮기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혼자 읽기와 함께 읽기의 유익에 대한 생각도 나눈다. 


마지막 4부에서 저자는 읽기에 이은 '쓰기'에 대한 생각을 자신의 서평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나눈다. 읽기만 하고 쓰기를 하지 않으면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흔적을 남기는 능동적인 방법이 쓰기다. 쓰기는 읽기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쓰기는 다시 읽기를 부르고, 그 읽기는 또 다른 쓰기를 부르면서 선순환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점점 생각과 신앙이 깊고 풍성해진다. 마치 익어가는 벼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소망이 생겼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고 쓰게 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화의 중심이 교회 공동체가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읽기라는 거룩한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 세상과 인간을 더 잘 알아 가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좋겠다.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이웃과 세상을 향해 눈을 돌리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좋겠다. 타인의 아픔도 깊이 공감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좋겠다. 읽으며 익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좋겠다. 저자 방영민 목사가 말하듯, 이런 것들이 읽기로 가능해질 수 있을 거라 나도 믿는다. 


#이삭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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