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상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이후로 제일 오래걸려 읽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가부장제의 강간문화를 마르고 닳도록 고발하는, ‘백래시’에 버금가는 역작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전시강간 챕터는 정말 읽기 괴로울 정도라 여러번 숨을 고르며 읽어야 했다.
이 소설은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첩보원으로 활동했던 나치의 부역자 하워드 캠벨의 삶을 다루고 있다. ‘첩보원이자 부역자’라는 아이러니한 설정을 통해 전쟁의 야만이 인간들의 삶을 어떻게 뒤틀어 놓는지 보여준다. 다소 무거운 주제일 법 하지만 진지할 지언정 전혀 심각하지 않다. 소설 전반을 통해 흐르는 주된 정서는 냉소적 유머라 할 수 있을텐데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키득거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이런 특유의 문체를 통해, 그가 쓴 인간에 대한 실망은 알고보니 인류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논리전개가 너무 어수선한데 번역도 한몫 거들어 흐름이 잘 잡히지 않아 반정도 읽다가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했다. 책에 펜을 대거나 플래그를 붙이지 않는 편인데, 불가피했다. 그래도 여전히 명료해 지진 않는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내용은 사실 이제는 대부분 익히 아는 내용인데 1899년 작임에도 여전히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달까. 많이 회자되곤하는, 자신의 계급이익에 반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한 통찰도 흥미로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