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원리와 개념으로 쓴 본격 한식 비평‘이라는 문구답게 본격적으로 한식을 조목조목 까내린다. 대부분의 한식은 품격이 없으며 한마디로 무지의 소치라는 것. 한식의 품격 없음에 기여하기로는 한식의 생산과 소비에 관여하는 모든 주체를 아우른다. 심지어 식재료인 채소나 과일의 생산자도 예외는 아니다. 식재료에 대한 이해나 조리방법에 대한 고민이 없고 개선의 의지도 없으며 여전히 전통이나 손맛 같은 추상적 개념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우선, 요식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하나로 저자의 전체적인 논지에는 매우 공감한다는 점, 그리고 글 자체는 읽는 맛이 있어 꽤 재밌게 읽힌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문제삼고 싶은 점은 저자의 태도. 저자가 음식을 분석하는 논리는 이렇다. [요리에는 엄연히 문법이 존재한다. 문법에 맞지 않는 음식은 맛이 없다. 한식은 대체로 문법에 위배 되므로 맛이 없을 뿐더러 품격 또한 없다.] 음식비평에서 ‘맛없음‘이란 용어는 과연 적어도 비평가들의 사이에서는 합의된 객관적인 용어인가의 여부는 차치하고 이 논리는 그런 음식을 맛있게 먹어온 사람의 존재를 애초에 상정하지도 않는다는게 문제다. 이런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이 있을리가 있냐. 엘리트주의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음식의 생산과 소비에 관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이 문법을 알아야 한다! 포물선 운동과 에너지 보존법칙도 모르는 무식한 것들은 캐치볼 할 생각도 하지 말아라! 유체역학도 모르면서 감히 무슨 커피를 내려마시느냐!음식을 먹는 도구로 젓가락을 문제삼는 부분에서는 마침내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비평이란 응당 이렇게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유리된 채 띡하니 이론으로써만 존재해야 하는 건가 나는 이만 알기를 포기한다. 비평이 그렇게 기능한다면 고작 내적 논리의 정합성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 현실에서 과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무튼 시종일관 이렇게 밀어붙이니 500여 페이지에 육박하는 책이 후반부에 들어설 때 쯤엔 굉장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또한 음식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 방법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지만 한편 애진작에 폐기된 획득형질이 유전된다고 주장한 라마르크 진화이론을 언급할 정도로 과학에 무지하기도 하다.(“한국인만 턱 근육과 어금니가 더 강하게 진화되어 딱딱하고 질긴 것의 저작에 유리하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물론 쫄깃하다는 명목 아래 과조리된 음식을 계속 먹으니 길게 보아 그런 진화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겠다.)” 본문 385p.)
책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제목에는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는데 출판계의 화두를 반영하듯, 책 전체를 대표하지도 않는(뇌과학에 관한 총 40여 편의 글 중 고작 한편) 자극적인 제목으로 페미니즘을 ‘팔아먹으려는’ 의도가 다분하기 때문이며 낚인 당사자이기 때문. 제목만 보고 책 전체가 뇌과학과 성차에 관한 내용인 줄 알고 흥미로울 것 같아 구매했는데 그렇지 않다는걸 알았다면 굳이 사보지는 않았을 것.
이른바 립스틱 페미니즘과 탈코 논쟁의 연장선 상에서 페미니즘의 실천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탈코로 귀결되는지 탈코인들의 입을 통해 들려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자기 몸 긍정주의가 시장 페미니즘과 만나 자기합리화를 이뤄내는 기작을 설명하는 대목. 하지만 비혼 선택을 넘어 이성과 사랑에 빠지는 본능적인 감정 또한 사회적 구성물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대목, 상대적도 아니고 절대적으로 몸치장에 공을 들이지 않는 남성이란 편리한 일반화에는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한편 이 논리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탈코에 동참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페미니스트의 입장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해진다.
중동에 대해 큰 관심은 없지만 우연히 검색해 본 이 책의 평가가 칭찬 일색인 것을 보고 궁금해져 어쩐지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책은 뭘 읽던 좋으니까. 아침에 출근 할 때 마다 운전해서 갈까 아님 지하철 타고 책 읽으면서 갈까 조금 고민했다. 오래 읽을 수록 앞부분의 기억이 소실 돼 책 읽는 즐거움이 확실히 반감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빨리 좀 읽어 치우고 싶어졌다. 800여 페이지에 육박하는 책이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운동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동의 근대사라니 꽤나 따분할 것 같지만 인물 중심으로 서술돼 생각보다 드라마틱하게 쓰였는데도 중동에 대한 내 밑천이 워낙 없어서 흡사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는 것 마냥 인물 관계도만 떠올리기도 벅찼다. 끊었다 읽을 때 마다 리셋되는 나의 기억. 이런 고충 다들 알고 있지…? 모든 책에는 마지막 페이지가 있다!는 일념으로 읽어 나갔다. 완독만이 목표라는 듯. 마치 보잉 747기의 조립 설명서를 차근차근 읽고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아니 대체 일개 소시민일 뿐인 내가 왜 이런 외교 정치 공학의 메커니즘까지 상세히 알아야 되는거지! 갑자기 짜증이 솟구칠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부품이 하나 하나 끼워 맞춰지고 짜잔 완성된 모습을 보았다. 현대에도 중동에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의 대부분은 약 100년 전 이른바 유럽 열강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다툼을 벌인 결과라는 것. 그리고 또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한 인간들의 한계로 어리석은 결정들이 쌓여온 결과라는 것. 과연 세계사란 그런 모든 인간들의 삶의 총합이 아닐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