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소호 지음 / 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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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사랑하지않는사람에게
이소호
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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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미워도 그리운 사람일까. 하지만 정확한 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을 나는 사랑하거나 사랑했었다는 것이다. 사랑의 관계를 상상했거나 혹은 실패했던 기록이기에 '나는' 사랑을 했었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독자인 나는 같이 울어줄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 이 책의 필자인 이소호 시인은 그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연애와 인생의 흑역사 같은 장면들로 이뤄진 이 책은 사랑의 실패에 좌절하고 낙담하는 것을 넘어선다. 어쩌면 동화의 결말처럼,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어요'라는 문구가 가식처럼 느껴질 만큼 이 책에서 전하는 실패의 이야기들은 매우 솔직한 망한 연애담이다. 실패의 사연으로 위안을 얻는가? 그렇지 않다. 누적된 실패로 용감하고 거침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실패에 성공한, 망한 연애를 집대성한 이 순도 높은 이야기가 결국 감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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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다 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나는, 짝사랑의 귀재가 되어 늘 사랑에 실패했다.(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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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패하고 싶었다. 사랑에 실패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습지만 나는 늘 나를 멋지게 망칠 남자를 기다렸다. 망칠 만한 남자는 사실 널려 있었고, 나는 골라도 역시 제일 좋은 것만 골랐다. 가장 최악의 남자를. 먼 미래까지 내 인생을 괴롭힐 최악의 남자를 골랐다.(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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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안전하게 적당히 피해가는 것으로 사랑을 대하지 않는다. 언제나 대담하게 직진하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실패를 완성하는 것, 사랑의 이름으로 가장 강렬한 나를 발견하고 밀어붙이는 것이다. 시인 김수영이 온몸으로 쓴다면 시인 이소호는 온몸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망가지더라도 문장의 주어는 가장 생생한 자신이 되며 늘 능동태로 세상을 대한다. 당당한 실패의 이력들은 빛난다. 하지만 어떤 사랑은 실패로 끝났기에 결국 인생으로 보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기록을 남김으로써 완벽한 승리자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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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사랑했던 누군가를 떠올리다가 내가 정말 사랑했던 건 사랑에 빠진 내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소호 시인의 이 에세이에서 그려지는 '소호'가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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