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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공허한 십자가 (보급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사형제도는 언제나 결론을 낼 수 없는 뜨거운 감자다. 나는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그건 피의자의 죄가 확실할 때의 이야기이다. 게다가 범인이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쉽게 찬성이란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방향 잡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들 중 하나가 사형제도이다.
장르물을 자주 접하다 보면, 사형제도를 담고 있는 것을 종종 만나게 된다. 범인을 아주 나쁜 사람이나 이유 없이 살인을 하는 사이코패스 등의 인간으로 만들어 놓으면, '사형 받아 마땅해'라는 생각은 아주 쉽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범인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거나, 착한(?) 사람이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거나, 무고한 이가 어이없이 누명을 썼다면, 내 뇌의 기능은 무한 루프를 돌며 해답을 찾느라 정신이 없어진다. 사형은 너무 과한 것 같고, 벌의 수위를 낮추면 피해자와 유족은 얼마나 억울한가. 많은 사람들이 사는 이 사회에서 딱 맞아떨어지는 일은 의외로 적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공허한 십자가」는 책에 대한 아무 정보 없이 e북으로 구매해서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워낙 많은 책을 쓴 작가라, 읽기 전엔 항상 의심하게 된다. 재미는 둘째치고, 그의 다른 작품들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진 않을까 하는 의심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잘 안 읽게 되는데, 보급판으로 싼 가격에 나와있어서 읽었다. (-_-;;)
광고 회사를 다니던 나카하라는 사요코와의 사이에 있던 어린 딸 미나미를 강도 살해 사건으로 잃었다. 범인은 집에 몰래 들어와 아이를 죽이고 몇 푼 안되는 돈을 훔쳤다. 범인은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둘은 이혼했다. 몇 년 후 그는 애완동물 장례업을 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사요코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이혼 후 프리 라이터 생활을 하던 사요코는 단순 강도에게 살해당한 듯 보였지만, 범인에겐 또 다른 비밀이 있었다. 살인범 마치무라 사쿠조의 사위 후미야와, 죽은 사요코가 취재했던 이들 중 하나인 사오리, 이 둘은 어린 시절 연인이었다. 나카하라는 이 사건이 우연이 아님을 직감한다.
어떤 범죄든 피해자는 피의자의 벌을 원한다. 크든 작든 벌을 주어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어 한다. 형벌을 당연하지만 그 벌의 무게를 정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리고 큰 벌을 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100% 죄를 뉘우치고 반성할까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사형도 마찬가지) 「공허한 십자가」에서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사정을 보여주며, 사형의 진정한 의미와 많은 방향들을 생각하게 한다.
'사형 페지론자의 눈에는 범죄 피해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지금 읽은 문장을 머릿속에서 곱씹어 보았다.
"유족은 단순히 복수를 하기 위해 범인의 사형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 상상해보기 바란다. 가족이 살해당한 사람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 범인이 죽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유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을 손에 넣으면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를 풀 수 있는가? 사형을 원하는 것은 그것 말고는 유족의 마음을 풀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형을 폐지한다면, 그렇다면 그 대신 유족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묻고 싶다."
- 공허한 십자가 中 -
유족에게 남은 것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범인에 대한 증오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형 자체가 단순한 복수심이라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사형 찬성자들의 의견처럼, 추후에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범죄에 대한 예방이 될 수 있다. 교도소에서의 징역살이가 범인의 죄를 회개하는 데에 정말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고, 우리의 피 같은 세금을 낭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의 한 구절처럼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항상 이러한 입장에서 사형을 바라봤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소설들을 접해오면서부터는, 범인과 범인 가족의 사정이란 것도 한 번 이상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같다. 본질적인 틀은 변하지 않지만, 조금의 공간이 생겼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많은 사건들을 접하고, 그 정보에 한해 판단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여러 시사 프로그램에 의해 내가 알고 믿던 진실이, 사실과 달랐던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사법제도와 그 아래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맞는 건 아니라는, 인정하기 싫은 사실들을 인정하게 만든다. 「공허한 십자가」를 읽은 후의 기분도 비슷하다. (ㅜㅜ) 사형제도에 대해 찬성이든 반대든 상관없이 이 책은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생각은 자유이지만, 타인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자는 의미의 추천이 될 수 있겠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도 같이 추천)
그리고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야기의 마법사 같다. (ㅠㅠ) 재밌게 읽어버렸어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