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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잠든 숲 1 ㅣ 스토리콜렉터 5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평점 :
드디어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을 만났다. 만날 기회는 많았지만 인기 많은 작가의 책에 대한 알 수 없는 거부감이 있어서 안 읽고 있었다. 게다가 독일 소설이라 더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재미있게 읽었다. 예전에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추천해준 지인이 떠올라 미안해지기도 했다. 책이 두 권이라 첫 번째 압박을 받았고, 2페이지 가득 찬 등장인물들을 보고 두 번째 압박을 받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많은 사건들로 지쳐있는 50대 강력반 반장 '보덴슈타인'이 등장한다. 개인적인 안식년을 갖기 위해 윗 사람에게 이야기 해둔 상태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한밤중 캠핑장 '숲 친구 하우스'의 한 캠핑 카가 전소했는데, 그 안엔 불에 탄 시신이 있었다. 그리고 불에 탄 캠핑카의 소유주인 마을의 한 할머니를 찾아가지만, 그녀 역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살인사건의 배경인 독일 타우누스 지방의 루퍼츠 하인은 보덴슈타인이 어린 시절부터 지낸 곳이다. 친숙한 장소에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들의 죽음은, 지쳐있던 그를 더 힘들게 했다. 그와 함께 여러 사건들을 만나고 해결했던 피아 형사는 그의 추측과 판단이, 처해진 상황에 의해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은 언제나 크다.
사건은 42년 전에 일어난 러시아 이주 소년 '아르투어'의 실종사건과 교차된다.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았던 두 사건의 연결고리들이 발견되면서 아르투어의 절친이었던 보덴슈타인은 잠자고 있던 죄책감과 슬픔을 다시 만난다.
나는 시골 마을의 '폐쇄된 공동체'라는 것을 유럽에 대입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나 일본의 장르물에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한마을의 폐쇄성'은 작은 사건조차 입에서 꺼내지 않으려는 묘한 공동체 의식에서 시작된다. 본인이 개입되었을 수도 있지만,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방관자로 남는다면 자신도 모르게 '관계자'가 되어버린다. 이는 '폐쇄된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작고 많은 중요 요소가 된다.
루퍼츠 하인의 사람들도 '폐쇄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알고도 모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이는 사건 해결에 큰 어려움이 되고, 42년 전의 러시아 이주 소년 실종 사건이 해결될 수 없는 배경을 만들었다. (이주민이란 이유로 따돌림받았었던 소년의 가족은, 그 마을 토박이들과는 상관없는 남의 일일뿐이었다. ) 그렇게 그들은 자신도 모른 체 지금까지 그 공동체를 유지해왔고, 새로운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역시 '폐쇄된 공동체'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보덴슈타인과 피아, 그리고 동료들은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며 단서를 찾고 사람들을 만난다. 많고 복잡하지만 천천히 진행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각 인물들의 심리, 관계 등의 묘사가 적절하게 들어가 있어서 감탄하며 읽었다. (보통 이러면 복잡하다고 욕을 한다) 피아가 다른 형사와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나오는 그녀의 생각과 성격 묘사가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이런 식의 진행이 많다)
「타우누스 시리즈」가 벌써 8권이나 나왔지만 나는 『여우가 잠든 숲』으로 처음 만났기 때문에, 주요 인물들의 성격 파악 등이 어려울까 봐 걱정했었다. 하지만 그런 이질감 없이 천천히 내 속도로 읽기에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특히 보덴슈타인과 피아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묘사하는 부분은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느낄 수 있었고, 나 역시 그들의 감정에 녹아들었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꼼꼼함과 세심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완성도를 높여준 것 중 하나는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넬레 노이하우스의 능력이다. 작가로서 (많은) 마을 사람들의 작은 소문들이나 행동들이 범인의 생각과 행동, 계획에 미칠 영향들을 판단하고, 그로 인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이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 페이지를 채울 정도로 많은 등장인물들이 있기에 더 엄청난 능력이다. 그녀가 이 책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이 절로 보였다.
앞으로의 보덴슈타인과 피아도 궁금하지만 과거의 그들 모습이 엄청 궁금해졌다. 나의 호감 작가 리스트에 추가된 그녀의 소설들을 더 읽어봐야겠다. 후련한 마음으로 책을 덮게 해준 이 책이 참 좋았다.
그리고 제목을 정말 잘 지은 것 같다. 아련아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