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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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참 영리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히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가 식의 이분법으로 이 부부의 관계를 정리하기 보다는 두 사람 모두에게 페널티를 제시함으로서 어느 누구도 세상의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롭거나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온도차가 달라지도록 교묘히 안배하여 논쟁이라는 뜨거운 불씨가 계속 살아 종국에는 활활 타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마존리뷰가 8천개가 넘으면서 이 작품이 이슈화되는 일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결혼 5주년을 맞아 갑자기 사라진 아내 에이미. 어린 시절에 그녀를 주인공 모델로 한 동화책이 나올 정도로 인기와 지성, 미모, 재력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않던 그녀는 모두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던 여자였고, 그녀의 남편 닉은 다정한 미소와 자상하고 젠틀한 매력남으로 누가 보아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그런데 돌연 사라진 그녀를 찾아 닉이 동분서주하는 동안 경찰이 찾아낸 정황과 단서들은 모두 닉을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누명을 벗고자하는 닉의 바람과는 달리 시시각각 불리한 상황으로 옥죄어오는 아내 살인범이라는 의심과 오명 앞에서 그제서야 그는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매년 결혼 기념일 마다 에이미가 이벤트처럼 벌이던 보물찾기 게임은 한때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는 증표였지만 이제는 그와 그녀의 결혼생활에 놓인 권태기와 더 나아가 관계의 근간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풀어내야할 사명으로 변질된다. 사실 두 사람은 모두 페널티를 안고 있다고 사전에 언급했듯 일상에서 대부분의 부부들이 풀지못해 숙제처럼 쌓여가는 갈등과 문제점들을 아주 현실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남편인 닉은 신혼초까지는 해도 달도 따줄 것 같던 자상하고 따뜻한 남자였지만 작금에 와서는 실직상태에 놓이면서 경제적 악화에 따른 불만이 커지면서 아내에게 냉담한 남자가 되버렸다.  

 

아내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쌓이면서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어린 여제자와 불륜에 빠져있는데 어머니에게 권위적이었던 아버지를 싫어하면서도 일정부분은 은연중에 닮아가는 유전적 필연을 거친다. 아내 에이미는 흔히 말하는 알파걸이지만 어릴적 그녀를 떠받들게 한 '어메이징 에이미 신드롬' 현상의 독에 빠진 그녀는 자신에게 여신적 지위를 부여해서 불종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징벌하도록 하고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합리화한다.

 

역시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여자. 그동안 부부는 에이미가 자신의 본성을 억압한 채 남편 닉을 위한 맞춤형 아내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왔다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받고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고자 하는 그녀만의 부부 관계 재 정립을 위한 시도때문에 평온한 일상이 마침내 서스펜스로 촉발되어 버린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닉과 에이미의 시점에서 교차되는 이야기는 밀도높은 갈등과 순간순간의 위기상황들이 결말에 대한 예측을 불허하면서 한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할 정도의 긴박감 때문에 한시도 맘을 놓치 못했다.

 

닉이 처한 상황은 같은 남자로서 잘못에 대한 비판은 하면서도 그녀가 무의식중에 형성한 억압과 속박에 대한 반발로 인한 일탈에는 어느 정도의 공감을 했다. 에이미의 심리는 닉의 잘못된 처신에 대한 분노라는 점에서는 역시 공감하지만 그녀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특유의 사악한 요인들때문에 섬뜩한 한기를 자주 느껴야한다. 그러한 몇가지를 배제하고 주변상황들을 둘러보자면 닉을 아내 살인범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황색언론과 페미니즘의 무시무시한 위선적 광기 앞에서는 무수한 반발심과 혐오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특히 이 책에서 페미니즘이 올바른 공정성을 갖지 못하면 남성혐오증만 부추기는 편협된 마녀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는, 나름 균형잡힌 작가의 시각은 여느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신선한 생각인 것 같다. 그렇기에 닉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자 도움을 주고 심정적 지지를 보내는 여동생 고와 보니 경관은 그런 의미에서 다른 여성캐릭터들과는 차별화된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니까....

 

결국에는 말이다. 닉이 최후에 행한 선택은 부부는 배우자가 자신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지말고 내가 스스로 배우자에게 베푼다는 이타심을 가지라는 교훈을 대신하는 행동일 것이다. 또한 남자는 가장으로써 부양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결혼의 행복과 만족이라는 척도에 관계없이 어떻게해서든 앞만 보고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숙명이라는 점도 새삼 되새기게 된다. 그런다고 백점짜리 남편이나 백점짜리 아버지 소릴 듣는 것은 아니겠지만 체념하고 살 닉의 앞날을 상상하면 맘이 서글퍼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나보다.

 

이건 마치 <빅 픽처>에서 벤이 이루지못할 꿈을 택했다가 현실이라는 가정에 안주해버리는 마지막 선택과 끔찍하리만치 유사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한 번 정도는 지금 당신의 침대 옆에서 누워자고 있는 배우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과연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한 사람과 한 침대를 쓰고 있는 걸까? 그것은 알 수없다. 내가 자고 있을 때 배우자도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고.....  

 

그런데 결코 남 일 같지 않고 2012년에 미국에서 가장 히트를 쳤다는 이 작품을 뛰어넘는 대박작품이 <다크 플레이스>라고? 진정 믿어도 될까? 그렇다면 길리언 플린은 한계를 모르는 작가라는 말이 된다. 지금이 대단하다고 감탄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작품으로 우리들을 더 놀라게 할 비장의 카드를 남겨둔게 사실이라면 어서 그 패를 꺼내보고 싶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건 잠시 아껴두었다가 확인사살할 때 다시 써먹어보자.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제껏 읽었던 여성 스릴러 작가의 작품 중 단연 역대급이었음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 같다. 길리언 플린은 정말 기대되고 주목할만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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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파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4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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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최혁곤 작가가 6년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전작 에 이어 이니셜 B로 시작되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이 나름 의미심장한 면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작을 읽어보지 않은 관계로 어떠한 선입견없이 읽고자 했지만 신작소개에서 전작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평가들때문에 신작에 대한 기대치가 다소 떨어지면서도 근래 한국 장르소설들의 부흥을 염원하듯 부쩍 접할 기회가 많이 제공되고 있는 것도 주목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물론 밀리언셀러 클럽이 있구요. 일말의 불안감을 의식하며 읽었던 이 책은 기대를 넘어선 선방과 더불어 한계점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한국형 웰메이드 스릴러 소설으로 탄생할 가능성은 어디까지 근접했는지 현 주소를 확인할 계기였기 때문입니다.

 

모텔에서 여자를 살해한 누명을 쓴 채 도주한 조선족 출신 은행원 리영민, 그의 뒤를 좇아 특종을 낚고자 하는 신참 여기자 여에스더, 청부살인을 의뢰받지만 오히려 자신이 생명의 위협을 받게된 킬러 미호, 그리고 킬러가 연관된 연쇄살인의 전모를 추적하는 고참기자 윤, 그 와중에서 정재계의 실세들이 차례대로 살해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네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교차되어 추격전과 액션, 서스펜스가 시종 스피디하게 전개됩니다. 특이하게도 이 네 사람은 사회에서 엘리트 계층이 아닌 소수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비판적 메세지를 대중적 재미와 함께 버무립니다. 결코 가볍지만않은 진중함도 기하고 있어 중심축의 균형을 비교적 잘 지탱하고 있기도 합니다. 

 

조선족 출신 은행원 리영민은 출신성분을 극복하고 은행에서도 인정받으며 전도유망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재였지만 한순간의 누명으로 인해 정상에서 벼랑으로 내몰립니다. 그러면서 같은 민족이 사는 한국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멸시와 차별이라는 폐쇄적 정체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철저하게 대변하는 인물로 남습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 마냥 호흠질환을 유발하는 주범이 되어 마스크없이 대화조차 싫은 민족공동체의 수성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앵글로색슨족에 끔뻑 죽다가도 인종적, 국적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한국인들에 대한 불만이 폭발합니다. 중국에서 박해받고 우리에게는 눈치를 받아야하는 비루한 현실 앞에서 한국인들의 위선적민 민족성을 비판하기에 불편함에 외면하다가 끝내 수긍을 할 수 밖에 없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리고 민주일보의 두 기자 여에스더와 윤은 작가가 실제 기자로서 경험했던 언론의 보도관행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어 스릴러적 요소와는 별개로 현장의 생생함을 견학하듯 만끽할 수 있도록 노련한 배치와 구성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자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낙종과 특종을 구분짓는 순간적 캐치, 정보제공을 두고 밀당을 하는 경찰과 기자라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공정보도는 개나 줘버리라며 황색보도에 우선하고 파벌싸움에 밥그릇 챙기는 일에 사활 건 언론인의 삐뚤어진 관행 등 시종일관 진실은 외면한 채 사리사욕에 발을 담근 언론의 음지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은 체험에서 우러난 진정한 직업관을 다루고 있어 리얼리티가 빛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인물인 킬러 미호는 남자로 태어났지먼 성 정체성에 혼란을 껵으면서 여자가 되고 싶은 상적 소수자에 해당됩니다. 어릴 적 보육원에서 입양되지만 짧은 행복도 잠시, 손에 피를 묻혀야했던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어 청부업을 접고 행복한 삶을 누리리라 다짐하지요. 아픔이 묻어있는 과거는 통속적이고 신파적이긴 하지만 찰나의 안위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그녀의 삶에 한 줄기 훈풍이 불어와 얼었던 맘을 녹여주고픈 바람이 생길 정도로 잔정이 많이 가는 캐릭터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주류로 살아 남지 못한 네 사람을 B파일이라는 잉여인간 취급을 하는 것에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은 고기처럼 등급으로 매겨지는 거대자본의 횡포 앞에서 슬프고 우울하죠.

 

그렇게 네 사람은 각자의 루트에서 평행선을 달리다가 원더랜드라는 초고층 빌딩의 개관식에 모여 음모의 실체를 발히고자 합니다. 근원에 접근하면서 벌어지는 빌딩에서의 액션신은 손에 땀을 쥐게 할만큼의 박진감이 넘쳐 흐르지만 정작 머리는 불확실한 미스터리적 해결방식에 급격히 냉각되는 처지에 빠져버립니다. 리영민의 누명에 얽힌 원한의 실체는 비록 풀어내지마 연쇄살인의 희생자에 대한 동기와 배후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피한 채, 안개 속 처럼 모호한 처리로 마감해버립니다. 지금까지 한계마저 뛰어넘을 듯 무시무시한 주행을 하던 스토리가 타이어에 펑크난 것 처럼 허무한 마무리에 공든 탑에 배어있는 정성과 노력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작가가 의도했던 결말인지, 엉킨 실타래를 풀 창의성의 부족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독자의 입장에선 감점을 줘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네 사람의 그 후 행보는 인생극장에서의 선택적 기로처럼 무지개와 잿빛이 공존하였기에 이것이 쓰디쓴 인생이 아닐까라고도 곰곰히 생각들기에 평가는 그때그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그렇게 본다면 급정지때문에 도로에 스키드마크를 진하게 남겼지만 한국적 스릴러의 현실에 후반부 헐리우드적 전개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장대한 스케일 속에는 폭발적인 추진력이 있는 소설이기에 한국 스릴러가 또 한 번 일취월장한 반등의 계기를 만든 최혁곤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야한다는 의무감이 들기도 합니다. 비판보다 격려가 더 필요한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끝맺고 싶은 말은

 

"그래도 이만하면 훌륭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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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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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릴러물들을 읽다보면 기름기 쫙 빼서 지극히 건조한 하드보일드물을 접하게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수한 은유와 함축적 의미를 담고 해석에 상대한 시간을 들여 읽게 만드는 심리스릴러물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여 증거를 수집하기보다 머리 속에서 가설을 추출해 정황을 추측하고 범인의 심리와 패턴을 분석, 응용하므로서 범죄의 실체에 다가서는 학구파적 엘리트들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는 유형입니다.

 

토니 힐 시리즈, 그리고 데이브 거니 시리즈가 대표적으로 예를 들 수 있는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고 정의 내리고 싶네요. 저는 이 데이브 거니 시리즈를 다음 편인 <악녀를 위한 밤>으로 처음 읽고 지금에야 타임슬립하여 데뷔작을 읽었습니다. 후속작과 전작은 어떠한 관계에 놓여있으며 차별화된 변화는 있는걸까요? 영혼을 잠식할 불안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거니는 오래 전 연락이 끊겼던 옛 친구인 멜러리와 해후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숫자를 임의로 생각해서 그 숫자를 한 번 말한 뒤, 받은 봉투를 열어보면 바로 그 숫자가 있을거라고 했다는군요. 장난이려니하며 열어 본 봉투 속에는 진짜 그 숫자가 있었고 이에 경악한 멜러니는 거니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궁금해? 궁금하면 오백원말고 수표를 지정된 사서함으로 보내라는 설명과 함께...

 

도대체 그 숫자는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이 낯선 이로부터 도착한 전화와 편지들은 멜러리의 신상에 중대한 위협이 되었기에 해결을 바란 것이죠. 고심 끝에 도움을 주기로 한 거니가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뜻밖에도 멜러니는 자신이 운영 중인 수련원에서 총상과 함께 목에 수차례 찔린 자상을 남긴 모습으로 끔찍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범인이 동일한 수법으로 추가 살해한 희생자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이 모든 살인에 얽힌 동일한 동기를 밝히는 데 주력하면서 대결은 게임의 방식을 차용하게 됩니다. 

 

거니는 시작부텀 머그샷에 빠져있네요. 머그잔과 자주 헷갈리는 저로서는 범인들의 측면과 정면을 찍은 사진들에 무슨 예술적 가치가 담겨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어쨌든 거니는 예술적 성취감과 부수입이라는 일거양득의 즐거움에 빠져있지만 아내 매들린은 강력계 뉴욕 강력계 형사에서 은퇴한 거니가 전원의 안락한 삶 대신 범죄의 잔여물들을 끝내 버리지못하고 집착과 미련을 가지는 것에는 당연히 싸늘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거니는 예전에 이버지가 일에 빠져 가족들과 소원했던 관계를 기억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은 어버지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며 닮지 않겠노라 다짐하지만 이미 첫번째 결혼생활에서 무심한 아버지로 일관해 아들을 뺑소니사고로 잃은 전력이 있는데다 재혼에서도 부인과 아들에 대하여 가정적인 모습보다 범죄해결에 관심을 두는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일에는 프로페셔널이지만 가정에서는 여전히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거니는 후속작에서도 변함없지만 껄끄럽고 영혼없는 관계에 삐걱하다가도 결말은 화해의 여지를 담고있는 점은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존 버든은 자신의 작품을 다른 작품으로 조금씩 복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멜러리를 살해한 범인이 남긴 발자국이 숲 속으로 이어지다 갑자기 끊기면서 증발한다든지. 세리든 클라인 검사 사무실에서의 대책회의 분위기, 사건 해결 과정에서 겪는 범인과의 대치상황 등은 <악녀를 위한 밤>에서 헥토르가 살인 후 증발된 흔적부터 시작해서 전반적으로 놀랄만치 데자뷰 현상을 느끼게한다는 사실은 우연인지 의도적인 선택인지 의문점을 낳는것이지요.

 

또한 과도한 심리묘사를 단점으로 지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과도한 행동묘사 내지 상황묘사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인물의 행동이나 표정을 설명할 때 그냥 ~~~~ 했다 하면 될 것을 마치 ~~~ 하는 것 처럼 ~~~~ 했다 라는 동일반복적인 패턴이 집요하리만큼 공식화되어있는 겁니다. 가량 도자기 가게에 황소를 들여놓는다는 표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염세적인 개구리의 표정은 어떤 모습인지 상상할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해서라도 유머스럽게 보이고자하는 강박증이 무척이나 부담스럽네요. 그렇지만 오히려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받아들이시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녀를 위한 밤>에서 보여준 상상플러스 + 넘겨짚기보다는 가설 자체가 좀 더 현실성이 있었던 점은 장점입니다. 숫자퀴즈에 숨겨진 트릭이 무엇일지 범인의 정체나 범행동기보다 더 궁금했던 제게 밝혀진 진실은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단순한 발상에 기인하면 기본이 확인된다는 퀴즈를 푸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답니다.

 

한 번의 숫자게임은 우연에 운을 걸고, 또 한 번의 숫자게임은 지리적 잇점을 선점한, 천재적 발상이 아니라 넓게 보지 못하고 눈 앞의 허상에 매몰된 편협된 마음이 낳은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쨌거나 데이브 거니 시리즈사 본궤도에 오르기 위한 션결과제가 많겠습니다만 여전히 독툭한 정신세계만큼은 독보적입니다. 그리고 다혈질이기도 하고요. 최향에 대한 선택은 결국 각자의 몫임을 잊지 말야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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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종말이 오다 - 종말문학 공모전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수상작품집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3
최경빈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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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개월여 동안 밀리언셀러클럽에서 한국장르소설들이 꾸준히, 그것도 연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우수서평 회원 자격으로 받고 있는 것이지만 실상 외국 장르소설들에 비해 한없이 부족하다는 편견이 깊이 뿌리박혀 있어 기왕이면 한국소설 보다는 외국소설로 받았으면 좋겠다는 푸념이 배어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사전정보도 없이 읽게 된 이번 단편집은 “10개월, 종말이 오다라는 제목의 종말문학 장르인데 좀 더 세분화하면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생소한 타이틀을 달고 있네요.

 

신체강탈자문학의 정의랄까, 역사 같은 것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대중화된 장르는 아니겠죠. <옥상으로 가는 길>이나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4>같이 먼저 출간된 작품들은 여전히 척박한 토양 속에서 깊숙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국내 장르소설의 현실의 한계를 깨뜨리기 위한 작가들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결과만큼은 대박에 미치지 못한 채 편차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큰 기대 없이 읽은 이번 수상작 모음집은 그야말로 기대했던 것 이상의 박력과 흥분이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것들은 진짜였습니다. 당선작 <10개월>을 비롯하여 우수작 5편이 실려 있는데 편차가 크지 않음에 대만족이었습니다. 초속과 종속 차이가 크지 않은, 그야말로 오승환식 돌 직구였던 것입니다.

 

<10개월>은 어느 날, 갑자기 여자들이 남자로 변해버리는 이야기입니다. 바이러스처럼 전 세계적으로 남자 변이 증후군이 퍼지면서 성비의 균형이 점차 무너지고 여자들의 숫자가 점차 줄어듭니다. 세상은 당연 일대 혼란이 벌어집니다. 어제까지 여자 친구였던 그녀가 수염에 떡대 좋은 남자로 돌변하고 아내이자 엄마였던 여자는 잠이 들면 남자로 변이된다는 소문에 남편과 아이들이 교대로 밤새 지켜가며 뜬눈으로 지새우려는 사투를 벌입니다. 남자였던 여자와 여자였던 남자는 성적호기심에 뒤바뀐 육체로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야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여자의 숫자가 줄어들자 성적충동을 억제 못하는 일단의 남자들이 임산부를 납치해서 겁탈하려는 대목입니다. 임산부는 남자로 변하지 않는 특이현상(?)에 피그미족을 사냥하듯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 욕구를 채우려는 것입니다 

 

이성과 도덕의 마지막 경계가 무너진 말세 그 자체를 이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준 적도 드물다 생각하니 충격의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여자들의 수난에, 비록 소설이었지만 남자로서 읽는 동안 미안하고 안쓰러운 맘이 들었고 혼돈의 세상 속에서는 소수자는 다수의 힘에 눌려 언제나 보호받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공격당한다는 역사의 반복은 과거나 현재,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결코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작가 기리노 나쓰오 식 소신이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균형이 무너지면 어떠한 불행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전달과 함께 우리가 대처해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수작이죠.

 

<베르테르 증상>은 세계최고 수준의 자살대국이라는 불명예를 얻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는 문제작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최근 발생한 전직 유명 야구선수의 자살이 가져온 충격이 때마침 오버랩 되면서 자살증후군은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펴져나가는 내용입니다. 새삼 산다는 것의 의미와 고민을 되새겨줍니다. 특히 자살을 유도하는 매개체가 물이라니 닥치면 피해가기 어려운 영겁의 저주가 따로 없습니다. 역시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귀환>의 경우에도 우주 탐사 후, 귀환한 탐사사선이 이미 멸망한 지구의 인류를 탐사한다는 내용인데 기술자들이 장난으로 프로그래밍한대로 자의적 판단대신 입력된 설정대로 탐사를 수행하면서 맞게 되는 기이한 생명체들과의 조우와 임무종료까지... 외국 유명 SF작가들의 작품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아름답고 처연하게 보여주는데 무엇인가 뭉클함이 가슴 한켠을 치고 올라오는 순간은 말을 잊게 합니다. 그리고 여운이 남습니다. 작가의 범 우주론적 상상력이 뛰아나서 좋았습니다.

 

<미래도둑><10개월>과 함께 이번 수상작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모두 외계인이라는 전개는 재밌고 독특한 설정이 아니라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죽음의 향연을 보여줍니다. 외계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곧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됩니다. 즉 인간의 형상으로 바뀌게 되는데, 문제는 아이의 성장속도가 무척이나 빨라서 단기간 내에 어른으로 자랍니다. 그런데다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엄마 이런 식으로 외모와 기억까지 전부 그대로 복제해버립니다. 진정한 신체복제 = 강탈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제 아들이 남편이 되고 딸은 아내가, 동생이 엄마역할을 같이 하는 대 혼돈의 가족동거가 되면서 근친상간이라는 최악의 악수마저 둡니다.

 

이제 원본은 카피본을 죽이려 들고 카피본은 원본을 죽여 먹으려 드는데 그 와중에 벌어지는 살인극은 가족의 근간을 해체하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드러내고 말죠. 극중 복제인간 은혜가 나랑 같이 죽을테냐.”며 진짜 은혜를 집요하게 쫒아오는 순간은 등골이 오싹하면서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공포스러웠습니다. 뒤돌아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후덜덜함이란 진정 압권 그 자체입니다. 밤에는 결코 두 번 다시 해당 페이지를 넘긴다는 것은 감당키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쩜 이리도 읽는 이의 심장을 조여들어갈 수 있는지 작가의 진정한 능력에 감탄합니다. 향후 주목해야할 국내작가 중 한 명이 아닐까 합니다. 브라보!!!

 

그 밖에 한국근대문학에 신체강탈 소재를 퓨전화시킨 <운수 나쁜 날>이나 담배로 외계인과 대결하는 샐러리맨의 고군분투기 <금연 클럽>, 걸 그룹과 삼촌팬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야기 (극중 걸 그룹 지소는 분명 소시에 대한 풍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아이유를 연상시키는 비유도 있지요.)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고퀄의 진수를 뽐내고 있어 은연중에 국내 장르작가의 필력을 과소평가했던 저를 반성토록 합니다. 이 수상작 모두가 인류의 종말을 테마로 펼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후유증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강한 중독성과 흡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초에 만난 대박작으로 손색이 없는 필견의 소설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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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면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일본 신 본격 미스터리의 기수 아야츠지 유키토가 아홉 번째 관 시리즈로 내놓은 <기면관의 살인>을 읽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전작들의 괴기호러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본연의 퍼즐 맞추기의 심정으로 집필했다고 하는데요. 그 점과는 별개일지도 모르겠으나 연쇄살인 대신 단 하나의 살인만이 발생해서 예상했던 패턴과는 적잖이 달랐습니다. 첫 번째 살인 이후 폭설에 갇혀 기면관에 고립된 여섯 명의 초대 손님과 종업원들을 두고 분명히 후속살인이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말이죠. 보기 좋게 비껴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만의 재미와 뚝심이 엿보여서 괜찮았습니다.

 

 

서막은 추리소설 작가 시시야 가도미가 자신과 닮은 괴기환상 소설 작가 휴가 고스케로부터 자신 대신 어느 서양식 저택의 주인장이 초대하는 연회에 참석해달라는 제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참가수당을 반씩 나눈다는 조건도 나쁘진 않았지만 무엇보다 그 저택의 설계자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것에 혹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에서 발생했던 각종 살인사건에는 그의 건축물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고 그 사건들에 연루되었던 시시야에게는 호기심이라는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발을 딛게 된 것입니다. 그 저택의 이름은 진기한 가면을 수집해놓았다 하여, 기면관(奇面館)이라고 불리는데 가면관이 아닌 기면관이라는 호칭은 미스터리의 성격에도 부합되는 뉘앙스가 물씬 풍깁니다.

 

주인장인 가게야마 이쓰시는표정 증후군이라는 요상한 증세에 시달리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표정을 몹시 싫어하는, 마음속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비치는 사람들의 표정이라는 것을 견디기 힘든 공포로 받아들이는 증세라고 합니다. 사업가로서 원만한 대인관계가 필수라는 아킬레스건을 감안하면 이 같은 공포를 견디고 억누른다는 건 웬만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주인장 가게야마의 설명은 얼토 당토한 횡설수설로 치부되지 않고 무언가 마음속에서 수긍하고 동조하는 움직임이 느껴지기에 제게도 표정 증후군대신 비스무리한대인 증후군이 있어 사람만큼 불신에 두려움 가득한 생명체도 없다는 것도 압니다.

 

 

가게야마는 표정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인또 하나의 자신’, 도플갱어를 찾고 있었던 것이고 자신과 유사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을 초대해 가면 연회를 열었던 것인데 참극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옵니다. 초대된 여섯 손님이 때늦은 폭설로 인해 돌아가지 못하고 하룻밤을 보냈는데 다음 날 주인장 가게야마가 손가락이 잘리고 목 없는 시체로 발견되는 참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잠에서 깬 손님들에게는 각각의 가면이 씌워져 있었고 가면을 풀 수 있는 열쇠 또한 사라졌습니다. 이쯤 되면 범인은 내부인의 소행인지, 부인의 소행인지 그리고 사라진 목은 어디에 있는지 진득한 추리가 시작됩니다. 바로 시시야 가도미에 의해서요.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면관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고 환희, 놀람, 탄식, 오뇌, 대소, 분노로 구분되어진 가면을 쓴 손님들의 신분부터 파악하는 일이 차순일 것입니다. 수집된 각종 가면들을 전시해 둔 컬렉션 룸부터 대면의 방, 그리고 기면의 방까지 위치, 구조, 용도 모두 인상적이고 특이한 것이 실제 거기에 가 본다면 그로데스크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날 것 같아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가면을 주인장의 요구에 따라 쓰고 얼굴을 잃어 버린 여섯 사람들을 지켜보며 마치 장님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본명대신 가면이름으로 불리는 손님들 때문에 때때로 구별하지 못하고 착각에 헤매며 몇 번이나 앞 페이지를 뒤적였는지 모릅니다. 각자의 신분확인은 기면관 별관 방 배치도의 객실 호수에 표시된 가면이름으로 가능했으니 익명성이라는 공통성은 살인을 은폐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면책특권을 보장한 셈입니다.  

 

 

시시야 가도미의 일목요연한 추리 앞에 드러난 진실들은 아무도 모르는 기면관의 비밀구조, 그리고 특정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중의성, 사람이 하는 말 속에 있는 뜻밖의 함정(이것은 기면관의 배치도를 보고 무언가 잘못된 음모가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과 트릭 등 지나치기 쉬운 복선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쁨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범죄계획의 범위가 뜻하지 않게 확장되고 만 사연은 정말 무릎을 탁 치게 할 만큼의 절묘한 재미였기에 추운 겨울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차근차근 읽으면 정말 좋을 추리 소설이었습니다. 특히 쇠창살에 그런 비밀이라니요 ㅎㅎㅎ 이제까지와는 범행 동기나 수법에서도 차별화될 수작이라고 한다면 이제 아야츠지 유키토의 열 번째 관 시리즈가 점점 궁금해집니다. 그때는 어떠한 트릭으로 독자들을 즐겁게 할까나 하고 말이죠.... 그리고 미래의 가면같은 컬렉션이 제게도 하나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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