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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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동물은 사치스럽다. 발이 네 개가 있는데도 두 개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사치다. 네 발로 걸으면 그만큼 빨리 갈 수 있을 텐데, 언제나 두 발로만 걷고, 나머지 두 발은 선물 받은 말린 대구포처럼 하릴없이 드리우고 있는 건 우습기만 하다.

 

날로 먹어도 되는 것을 일부러 삶아보기도 하고, 구워보기도 하고, 식초에 담궈보기도 하고, 된장을 찍어보기도 하고, 툭하면 쓸데없는 수고를 해가며 좋아한다.

- 본문 중에서 -

 

일본 문학 100년 역사상 최고의 국민작가이자 일본의 세익스피어로 칭송받는 나쓰메 소세키(발음 주의)의 대표작으로 냥이의 시점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가차 없이 씹고 뱉고 두들기고 있는 소설입니다. 촌철살인의 풍자, 그리고 해학은 통렬하면서도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시대적 불안감에 대한 지식인들의 고뇌도 여기저기 묻어나지요.

 

나는 고양이다. 쥐는 절대로 잡지 않는다. 원래 사람이란 건 자기 역량만 믿는 나머지 모두 다 오만해져 있다. 좀 더 인간보다 강한 내가 세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이 냥이 정말 시건방지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뭐 이딴 녀석이 다 있어 라며 네발 달린 짐승이 두발로 직립 보행하는 만물의 영장, 우리 사람들을 감히 조롱하는데 대해 오만방자함을 넘어 콧방귀를 뀌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냥이가 보여주는 우리네 세상은 차마 부끄럽게도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냥이와 인간의 생활방식의 차이점을 통해 낱낱이 까발려집니다. 여기 등장인물의 한심한 작태는 냥이에겐 좋은 안주감이 되겠네요. 

 

냥이의 주인인 구샤미 선생은 천성적으로 고지식하고 우유부단하며 그 누구보다 세간의 이목에 항상 촉각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여기저기 나대는 곳도 많은데다, 구샤미 선생과는 달리 남들 눈치 안 보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자칭 미학자 메이테이, 이 두 사람은 결코 세상을 달관하지도 못했으며, 시대의 격류를 헤쳐 나갈 용기도, 담대한 배짱도 없는 소심한 지식인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냥이가 혀를 끌끌차는 대상들이란 이런 것들이죠.

 

세상을 관조하며 세상의 오만함을 맘껏 비웃지만 정작 죽음을 통하여 진정한 태평성대를 얻을 수 있다는 냥이의 말 속에는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허울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통찰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시대를 초월한 귀감이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은 결코 난해하지도, 고루하지도 않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정말 능청스러운 냥이가 그래서 고전을 읽는 즐거움이란 이런 것입니다.”라고 꼬리치며 유혹하고 있습니다. 왕자병 냥이의 매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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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
난니 모레티 감독, 난니 모레티 외 출연 / 키노필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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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들의 방>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난니 모레티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아들의 방>이 바로 연상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로 본지 10년도 더 되었는데, 이 책과 마찬가지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던 영화였지요.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책 보다 영화가 우선시될 정도인데 그만큼 책 표지뿐만 아니라 제목조차 독창성이랄까, 임팩트가 부족한 탓인지 심드렁 하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코벤의 책은 <결백> 이후 두 번째로 읽어봤기 때문에, 적은 표본으로는 상대적인 비교는 불가할 것 같습니다.

 

흔히 코벤의 책들은 사소한 문제점들이 치명적인 위협이 되어 일상을 뒤흔든다는 설정이 많다고 하는데 이번 <아들의 방>도 결국 그러한 패턴을 그대로 밟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소한 말실수가 나비효과처럼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이 되어 되 돌아 온다는 전개에 대해선 태클을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게다가 이 책은 일단 가독성은 좋습니다. 읽으면서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로 술술 잘 넘어가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긴장백배할 일도 없다는 것, 그냥 무덤덤하게 진도가 나간다는 것이죠.

 

최근 스릴러에서 가족이라는 소재는 어느덧 한국 사람들이 밥 먹을 때 곁들이는 김치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갈등과 불화, 가족의 중심축이 된 아이가 범죄에 연루될 때마다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테이큰식 진행, 그리고 마지막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용서로 화합을 도출한다는 마무리까지 사골 국물 우려먹듯이 보고 또 보게 됩니다.

 

근데 자식의 사생활을 컴터로 일일이 감시하고 체크함으로서 관심개입이란 표현으로 대체하려하는 것 말인데요, 부모님의 경우에도 제가 방에 틀어박혀 컴터로 야동을 보는 건지, 리포트를 작성하는 건지 당췌 확인할 방법이란 모르셨는데 마이크 부부는 작정하고 덫을 쳐놓습니다. 뭐가 걸려드는지 어디 함 볼까나! 자식들은 이런 것을 간섭이라면서 극렬 반발하겠지만요. 그래도 부모 자식 간의 의사소통 부재로 인한 "단절"을 훔쳐보기를 통하여 복구하고자 하는 절박함은 어느 정도 공감되긴 합니다.

 

어디까지가 개입이고 간섭인지 명확한 구분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방임을 넘어 과잉보호에 미달되도록 균형을 잘 이루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만 아들의 비밀을 캐고자 하는 마이크 부부의 구상은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엔 이 장르에선 무작정 새롭지가 않다는 겁니다. 암만 가족 문제로 이리 틀고 저리 틀어 봐도 김치가 김치전 된 것 외엔 별다른 식감이 없습니다. 이제 이런 얘기들은 너무나도 진부하고 식상하다구욧!

소재 측면이나 패턴 측면에서 새로운 떡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 이 계통에서 시간을 보낸 대다수의 독자들에게는 정말 무덤덤한 책이예요.

 

그리고 이런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해를 품은 달'을 보려고 하는데 다섯 살 아들이 '뽀로로'를 보겠다네요. 내 아들이지만 갖다 버리고 싶네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이런 사연이 올라왔다는 기사를 오늘 인터넷에서 봤는데 웃자는 얘기로 치부하기엔 도가 지나치다 싶은 것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이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부모의 절대적인 헌신 및 애정 보단 현실에서 보여주는 부모들 이기심의 발로를 보면서 차라리 부모 노릇 제대로 못하는 루저들에 대한 직격탄을 날리는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더 속 시원한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이 책의 반전 또한 영 불만스러운데 전개과정에서 비교육적인 설정을 굳이 택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 전에 범인과의 대치에서 처단과정도 개연성도 부족하고 허술해서 맥 빠지는 분위기인데다 해결방식도 썩 보기 좋지 않습니다.

 

또한 에섹스군 수사과장 로렌 뮤즈의 활약상은 다 어디로 갔나요? <결백>에서 짜리몽땅한 여형사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 등장할 줄은 미처 몰랐었죠. 허영심과 과시욕 덩어리인 그녀가 달갑지 않아 은근히 비 호감 캐릭으로 각인되어 있었는데 제대로 된 능력만 구경시켜 주었더라면 별도 평가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반까지 간간히 사건에 대한 단서를 캐고 가던 그녀가 어느 순간 증발했다가 다 해결되고 나니까 엔딩 씬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부모들의 고군분투기라면 경찰의 역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데 로렌 뮤즈 시리즈물도 아니고 왜 출연을 시켜야했는지도 진정 의문입니다. 영화였다면 비싼 출연료만 낭비하게 된 셈이죠.

 

그래도 이 책에서 그나마 인상적인 대목은 다들 언급하시는 도입 부분, 진화론과 창조론의 퓨전화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범인이 타켓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고자 떠 별였던 내용이지만 읽는 이의 눈과 신경을 집중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네요. 만약 현실에서 벌어진 상황이었다면 꼼짝없이 당할 만한 케이스가 아니었나 싶고 논리가 재미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으나 달리 임팩트 없이 그냥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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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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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읽고 스타일이랄까, 방식이 맘에 들어 이 책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를 부푼 기대감을 안고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링컨 라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막 장르문학에 눈을 뜨기 시작하던 시기였으며, 지금은 없어진 동보서적엘 가서 책 냄새 맡으며 직접 구입했던 기억이 아스라이 남아 있습니다. 추리에 관한 초보시절, 이 책을 읽어보니 밀실트릭 3종 세트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번 타자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탐정 가게우라 하야미가 어느 겨울날 모 행사에 초대를 받아서 간 산장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되면서 그와 조수가 사건을 풀어간다는 내용. 오래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암튼 두 사람이 미묘한 경쟁관계에 놓여 있었고 어찌어찌해서 결말은 뜻밖의 반전으로 이어지는데 전반적인 분위기는 유머와 위트가 담겨있던 터라 피식거리며 읽었던 것 같습니다.

 

2번 타자는 외딴 섬을 배경으로 했던가요? 역시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서바이벌 겜이었는데 마지막 생존자를 확인하면서 그 미스터리한 여운에, 3편 중 그나마 제일 맘에 드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럭저럭 뒤를 따라가다가 3번 타자에서 털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돈 많은 주인장과 그의 하인들, 손님들이 드나드는 서양식 저택에서 각자 맡은 추리극 역할 놀이를 통해 과연 범인이 누구인지, 범행수법이 무엇인지 맞추고 노는 지적유희 게임에서 완전 패닉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 내가 낸 문제의 정답을 맞춰보시오! 주인장이 주최하는 퀴즈 쇼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자신 있으면 덤벼 봐라는 식인데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어 미로 속을 헤매다 출구도 못 찾고 입구로 되돌아 나와 버렸습니다.

 

이 당시의 후유증으로 이후 일본 정통 추리소설에는 미리 겁을 집어먹고 상시 꼬리를 내리게 되었으며, 이 책은 저를 우롱하고 기만한 죄로 괘씸죄를 적용받아 지금은 출가외인이 되었답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책 먼저 읽고나서 <벚꽃~~~~>을 읽었군요. 무슨 판단으로 당시에 읽었던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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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전문의 - 하 밀리언셀러 클럽 123
라슈 케플레르 지음, 이유진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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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르웨이 설원에서 눈사람을 만들어 놀다가 옆 동네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겨 북유럽 투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스릴러는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라슈 케플레르의 <최면전문의>라는 스릴러입니다. 2011 <월스트리트 저널> 선정 10대 미스터리 소설, 2011 <타임> 선정 10대 소설이라는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면서 모국인 스웨덴에서 라세 할스트룀 감독이 영화로 제작 중이라고 하는군요. 

 

어느 겨울날에 스웨덴의 한 일가족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참극이 발생합니다. 유일한 생존자인 아들 유세프는 쇼크 상태에 빠져 있는데다 범인이 아직 생존해 있는유세프의 누나를 찾아갈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스웨덴 국립 범죄 수사국의 유나 린나 경감은 소년으로부터 범인에 대한 단서를 포착하고자 증언을 청취하기 위한 시도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과거 불미스런 일로 최면을 중단했던 정신과 전문의 에릭 마리아 바르크를 불러 소년에게 최면을 걸어줄 것을 요청하지만 그는 더 이상 최면을 거는 것에 주저합니다. 결국 유나 경감의 설득으로 유세프에게 최면을 걸게 됩니다. 하지만 유세프가 최면 도중 자신이 가족을 모두 살해했다는 진술을 한 후에 병원을 탈출하고 누군가에게 에릭의 아들 베냐민이 납치당하면서 수사는 일대 혼란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최면전문의>는 연상과 명상이 결합된, 변화된 의식 상태를 가리킬 따름이라는 에릭의 최면에 대한 정의처럼 읽는 이로 하여금 계속해서 마법주문을 연상시키는 최면 유도로 사건 속으로 들어가 구경하게 하는 독특한 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간 스릴러에서 부분적으로 도입되었던 최면 기법을 전면에 내세워 납치된 아들을 찾고자 하는 에릭 부부의 필사적인 수색을 통해서 드러난 추악한 진실로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것이죠.

 

과거는 결코 죽지 않았고, 심지어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인용구처럼 사건해결의 열쇠는 에릭이 10년 전에 겪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쥐게 됩니다. 그 와중에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고민과 원하는 바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덮어버리려는 점에 대해 반발하게 되고, 무절제한 사생활로 빚어진 갈등으로 서로에게 등을 돌려버리는 부부의 모습에서 한 가정에 불어 닥친 붕괴와 파탄을 불안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가정의 화합에는 아이가 중심이며, 갈등을 봉합하는 실과 바늘도 아이에게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현재와 과거의 기억들을 넘나들며 납치극을 해결해나가는 전개과정이 북유럽의 서늘한 냉기처럼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유세프가 일가족 살인의 범인임이 일찍 밝혀지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선회되면 스피디하게 전개되던 이야기는 분권이라는 암초에 걸려 좌초해버립니다.

 

스토리의 전개에 불필요한 사족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사건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말씀드린 에릭의 10년 전 과거 속의 특정한 기억과 맞물려 있습니다. 상권 막판에 수면 위로 끄집어 낸 실마리를 하권의 시작부터 다시 반복하는 우를 범하면서 의도했던 취지와는 달리 지루함의 극치를 시전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사건 전개나 해결과는 아무 상관없이 맥거핀적인 요소를 삽입하여 불필요하게 페이지를 낭비해버리기도 하네요.

 

그리고 무의미한 대화들, 예를 든다면,

 

“...내가 맞아요.”

경감님을 믿어요, 경감님은 언제나 맞아요. 그렇지 않나요?”

그렇죠, 난 그래요.

 

이런 식의 대화가 소설 전반에 걸쳐 퍼져있는데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갈팡질팡합니다. 아무래도 스케일 측면이나 스토리의 전개 상 단권짜리면 충분한 분량을 이 부부 작가의 과욕이 두 배로 불려놓게 한 것 같습니다. 분권의 폐단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가 아닐 수 없네요. 그것도 출판사의 판단미스가 아니라 작가에게 책임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말이죠. 카첸바크의 <저스트 커즈>가 분권으로 출간된다고 하는데 부디 충실한 내용으로 이 같은 과오가 되풀이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눈사람이 불러온 북유럽 스릴러의 열기가 이 소설로 인하여 식지않기도 바랄 뿐이구요, 새삼 요 네스뵈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입니다.

 

분권의 압박! 산으로 가는 스토리, 그리고 퉁퉁 불은 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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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전문의 - 상 밀리언셀러 클럽 122
라슈 케플레르 지음, 이유진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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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설원에서 눈사람을 만들어 놀다가 옆 동네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겨 북유럽 투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스릴러는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라슈 케플레르의 <최면전문의>라는 스릴러입니다. 2011 <월스트리트 저널> 선정 10대 미스터리 소설, 2011 <타임> 선정 10대 소설이라는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면서 모국인 스웨덴에서 라세 할스트룀 감독이 영화로 제작 중이라고 하는군요. 

 

어느 겨울날에 스웨덴의 한 일가족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참극이 발생합니다. 유일한 생존자인 아들 유세프는 쇼크 상태에 빠져 있는데다 범인이 아직 생존해 있는유세프의 누나를 찾아갈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스웨덴 국립 범죄 수사국의 유나 린나 경감은 소년으로부터 범인에 대한 단서를 포착하고자 증언을 청취하기 위한 시도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과거 불미스런 일로 최면을 중단했던 정신과 전문의 에릭 마리아 바르크를 불러 소년에게 최면을 걸어줄 것을 요청하지만 그는 더 이상 최면을 거는 것에 주저합니다. 결국 유나 경감의 설득으로 유세프에게 최면을 걸게 됩니다. 하지만 유세프가 최면 도중 자신이 가족을 모두 살해했다는 진술을 한 후에 병원을 탈출하고 누군가에게 에릭의 아들 베냐민이 납치당하면서 수사는 일대 혼란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최면전문의>는 연상과 명상이 결합된, 변화된 의식 상태를 가리킬 따름이라는 에릭의 최면에 대한 정의처럼 읽는 이로 하여금 계속해서 마법주문을 연상시키는 최면 유도로 사건 속으로 들어가 구경하게 하는 독특한 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간 스릴러에서 부분적으로 도입되었던 최면 기법을 전면에 내세워 납치된 아들을 찾고자 하는 에릭 부부의 필사적인 수색을 통해서 드러난 추악한 진실로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것이죠.

 

과거는 결코 죽지 않았고, 심지어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인용구처럼 사건해결의 열쇠는 에릭이 10년 전에 겪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쥐게 됩니다. 그 와중에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고민과 원하는 바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덮어버리려는 점에 대해 반발하게 되고, 무절제한 사생활로 빚어진 갈등으로 서로에게 등을 돌려버리는 부부의 모습에서 한 가정에 불어 닥친 붕괴와 파탄을 불안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가정의 화합에는 아이가 중심이며, 갈등을 봉합하는 실과 바늘도 아이에게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현재와 과거의 기억들을 넘나들며 납치극을 해결해나가는 전개과정이 북유럽의 서늘한 냉기처럼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유세프가 일가족 살인의 범인임이 일찍 밝혀지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선회되면 스피디하게 전개되던 이야기는 분권이라는 암초에 걸려 좌초해버립니다.

 

스토리의 전개에 불필요한 사족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사건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말씀드린 에릭의 10년 전 과거 속의 특정한 기억과 맞물려 있습니다. 상권 막판에 수면 위로 끄집어 낸 실마리를 하권의 시작부터 다시 반복하는 우를 범하면서 의도했던 취지와는 달리 지루함의 극치를 시전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사건 전개나 해결과는 아무 상관없이 맥거핀적인 요소를 삽입하여 불필요하게 페이지를 낭비해버리기도 하네요.

 

그리고 무의미한 대화들, 예를 든다면,

 

“...내가 맞아요.”

경감님을 믿어요, 경감님은 언제나 맞아요. 그렇지 않나요?”

그렇죠, 난 그래요.

 

이런 식의 대화가 소설 전반에 걸쳐 퍼져있는데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갈팡질팡합니다. 아무래도 스케일 측면이나 스토리의 전개 상 단권짜리면 충분한 분량을 이 부부 작가의 과욕이 두 배로 불려놓게 한 것 같습니다. 분권의 폐단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가 아닐 수 없네요. 그것도 출판사의 판단미스가 아니라 작가에게 책임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말이죠. 카첸바크의 <저스트 커즈>가 분권으로 출간된다고 하는데 부디 충실한 내용으로 이 같은 과오가 되풀이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눈사람이 불러온 북유럽 스릴러의 열기가 이 소설로 인하여 식지않기도 바랄 뿐이구요, 새삼 요 네스뵈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입니다.

 

분권의 압박! 산으로 가는 스토리, 그리고 퉁퉁 불은 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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