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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술래잡기 ㅣ 스토리콜렉터 14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인적없는 산
길게 뻗어있는 돌계단
음산하고 기분 나쁜 사당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나무
정지했다가 다시 꿈틀거리는 사람의 형체
"니시도쿄 생명의 전화"에서 상담원으로 자원봉사 중인 누마타 야에는 업무마감을 앞두고 이상한 전화를 받습니다.
전화를 건 남자는 자신의 괴로운 처지를 털어놓더니 매일 어릴 적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 명이라도 받지 않으면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던 추억의 벚나무에 밧줄을 걸어 목을 매어 자살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남자의 자살을 막기위해 현장으로 달려가지만 혈흔만 남아있을 뿐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미 늦은건가? 어디로 사라진걸까요? 경찰은 이 남자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어릴 적 친구들을 찾아와 탐문수사를 벌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시작된 이 남자의 전화 한 통 이후 친구들은 "다레마가 죽였다"는 섬뜩한 아이의 목소리를 전화로 받습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친구들은 차례차례 연쇄살인을 당합니다. 그러자 전화를 걸었던 남자의 친구 중 한 명이었던 고이치는 이 기묘한 사건의 배후를 파해치기 위해 30년전 어린시절의 추억들이 담긴 표주박산으로 향합니다.
다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해봤음직한(물론 연령별로 경험 유무는 차이가 있겠지만) 놀이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이 소설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저 같은 게임치인 사람도 이해하기 쉽게 즐길 수 있었던 이 놀이를 일본에서는 "다루마가 굴렀다"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다루마"는 일본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싱징물 중 하나인 오뚝이를 말하는 것으로 중국 달마선사에서 모델이 기원되었다고 하는데 "다루마가 굴렀다"는 이 놀이의 노래와 "다레마가 죽였다"는 아이의 전화 속 노래가 어딘가 유사합니다. "다루마가 굴렀다"고 노래를 부르며 앞을 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몰래 술래 가까이에 다가갑니다. 노래를 잽싸게 마친 술래가 뒤를 돌아보면 움직임을 들킨 사람은 술래의 포로가 되는 놀이방식도 다들 아실테고요. 그런데 여섯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술래가 세어보니 한 명이 더 있습니다.
그 한 명과 앞서 언급한 두 노래의 유사성에는 우리가 꺼내고 싶지않은 기억의 봉인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것은 시간의 흐름에 의한 자연적인 망각도 있지만 세상이 칠흑같이 변할 만큼의 끔찍하고 두려운 순간만큼은 스스로 주술을 걸 듯 빗장을 걸어 영원히 묻어버리자는 방어적 기제도 작동하는 것입니다. 피하지말고 직접 맞섰더라면 곁코 촉발되지 않았을 이 참극에는 양심을 발판으로 한 도의적 책임이라는 것이 살인동기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점에서는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떳떳이 고갤들고 세상을 활개치고 다닐 자신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게 합니다. 그러면서 이 소설 속 범인의 내면 속 고통에 일정 공감과 동정을 할 수 있는지가 자연스레 연계된다는 점에서 인생에서 순간의 선택은 항상 참회가 반복되는 과정들인 것 같습니다.
일반독자란 그런 법이다.
애초에 부조리한 세상을 다루는 호러와 합리성을 추구하는 미스터리의 차이를 알고 있는 독자가 대체 얼마나 있을까?
그 수가 깜짝 놀랄만큼 적다는 사실을 고이치는 과거의 다양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이 문구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중 하나인데요. 호러와 미스터리의 결합에다 토속적 괴담을 얹어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미쓰다 신조의 집필에 대한 일반적인 소신을 반영한다고도 생각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이 소설에서 끝내 이루지 못한 인과응보를 염두에 둔 말은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꿈꾸기도 벅찰 만큼 뒤틀려있어 나빠질 뿐. 개선되지 않는다는 염세적인 결말을 보여줍니다. 뿌린 대로 확실한 수확이 있었더라면 개운했을텐데 말이죠. 게다가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미스터리라는 수수께끼는 완전한 해법을 제시않은 채 독자들에게 상상력이라는 숙제로 남겨둔다는 점은 작가의 여전한 스타일입니다. 특히 고이치가 결말을 앞두고 사건의 전모를 설명하면서 도조 겐야의 방식을 차용하고 있는 점(고이치는 도조 겐야를 언급)은 재치만점에 위트마저 있어 입가에 미소를 떠오르게 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깔끔한 정리는 여전히 없지만 다른 작가와 차별화될만큼의 매력적 요소도 여전합니다.
인간 본연의 공포는 잔인하고 엽기적인 상황 설정없이도 목덜미를 서늘하게 한다는 점이며 범인의 정체와 범행동기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놀라운 반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술래에 다가가듯 조금씩 실체를 풀어내면서 술래의 포로가 되는 것이 불편한 진실에 대한 침묵과 암묵적 동의라고 표현한 설정은 미쓰다 신조가 왜 호러 미스터리의 거장이라고 불리는지 멋지게 증명하는 독보적 플롯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