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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하우스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칠흑 같은 밤입니다. 눈의 무게가 옷을 적시며 소년의 무릎과 허리를 부여잡고 맨살을 찢는 동안에 쥐고 있는 차가운 칼과 움켜진 손톱마저 붉게 물들이며 더없이 냉혹한 밤입니다. 소년을 추적하는 고함 소리와 개들이 짖는 소리 속에서 소년은 앞을 헤치며 달아나고 있습니다.
흠칫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생긴 동상의 흔적들과 흉터들을 어루만지며 마이클은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사랑하는 여인 엘레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갈 각오가 있는 남자라는 점을요, 동시에 그는 킬러입니다. 이제 그는 킬러의 길을 접고 조직을 탈퇴하여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가 꾸는 꿈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가 속해있는 조직은 오토 케이틀란이라는 수장이 이끄는 범죄조직인데 마이클은 누구보다 탁월한 킬러본능으로 보스의 신임을 절대 얻고 있었습니다. 이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노쇠한 보스는 죽음을 앞두고 있고 마이클은 그에게 은퇴를 밝히며 그의 소원대로 죽음을 선물합니다. 평소 아버지의 신임을 독차지하던 마이클을 질시하던 보스의 아들 스티븐과 조직의 일원으로 마이클의 재능을 높이 사서 그가 조직에 계속 남아있기를 원했던 지미는 그때부터 변절자에 대한 복수를 위해 사냥에 나섭니다. 가까스로 조직의 테러에서 목숨을 건진 마이클과 임신한 엘레나는 마이클이 어렸을 적에 헤어진 남동생 줄리앙을 찾아 그의 양부모인 상원의원 랜들 베인의 집을 방문합니다.
마이클과 줄리앙 형제는 "아이언 하우스"라는 고아원에서 서로 의지하며 기약없는 미래를 포기하며 함께 자랐습니다. 강인한 형 대신 병약한 동생은 항상 못된 아이들에게 학대를 당했고 그 때마다 든든한 방패가 되어준 것은 믿음직한 형 마이클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을 못살게 굴던 아이를 살해해버린 줄리앙, 형 마이클은 자신이 동생 대신 죄를 뒤짚어쓰고 추적을 피해 달아납니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이었던지, 그 날은 두 형제를 입양하러온 여인이 있었고 동생만 입양되어 버렸습니다.
엇갈린 운명의 장난이었나 봅니다. 성인이 된 두 형제, 동생 줄리앙은 상원의원의 양자로서 동화작가로 성공합니다. 여전히 나약한 줄리앙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구요. 조직의 보스를 죽인 변절자이자 보스가 남긴 유산의 비밀을 알고 있는 마이클을 추적하는 어둠의 세력들과의 대결의 결말은 원 샷, 원 킬의 현란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마이클의 반격, 조직의 와해입니다.
<라스트 차일드>, <다운 리버>에 이어 3번째로 읽은 존 하트의 스릴러 <아이언 하우스>는 존 하트가 가족이라는 구성단위에서 발생하는 부재와 불통이라는 일그러진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고통과 소외, 복원과 구원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이번에도 고스란히 포맷으로 삼습니다. 대신 서정성이 줄고 스케일이 커지면서 집안에서 칩거하던 소년이 집을 뛰쳐나와 세상 밖으로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되는데 상대적으로 늘어난 액션의 비중이라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과격한 스릴이 넘쳐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물론 미스터리도 덩달아 소용돌이칩니다.
액션은 확실히 이전 작품들에서 만나지 못했던 색다른 형태이면서 신체훼손도 마다않는 잔인한 결단도 보여주어 확실히 효과적인 시퀀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액션 이후에는 미스터리가 그자리의 바통을 이어받는데요. 솔직히 마이클과 줄리앙 형제는 일반적으로 입양이라는 시스템에서는 상식을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나이도 많고 한 아이는 병약하다든지 하는 문제점으로 인해 다른 아이들이 대신 입양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 형제를 굳이 입양하려고 찾아온 여인 아비게일에게는 비극적인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무조건 이 형제들이어야만 했었던.....
그리고 상원의원의 저택 주변 호수에서 잇따라 남자 시체 세구가 발견되면서 경찰과 언론의 집중포화와 관심 속에 줄리앙이 살인용의자로 의심받고 베일 의원은 자신의 입지에 타격을 받을 것에 전전긍긍하고 아내이자 엄마인 아비게일은 아들을 지켜내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운데 배후에 얽힌 진실이라는 미스터리의 실체가 다각적이면서도 복잡하게 얽혀있음이 드러납니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 스케일이 커졌다고 언급했습니다만 이 모든 것에는 두 형제를 둘러싼 삐뚤어진 모정과 출생의 비밀, 돈과 결탁한 추악한 밀약, 남자들은 결코 이해못할 여자들의 이상심리 등 스릴러에서 익숙한 소재들을 조합시켜 시종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이 구축되어있습니다. 여러가지 요소들은 자칫 잘못하면 무수한 가지처럼 산만한 결과를 만들어낼수도 있지만 다행히 이만하면 대접 하나에 재료들을 모두 잘 비벼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이크와 줄리앙 형제가 자신들을 얽어매는 비정한 굴레들에 맞서 엉켜버린 가족들의 관계회복에 고군분투하며 이루어 낸 산물들과 가슴아프면서 슬펐던 유년기의 비극을 사랑이라는 고루하지만 영원한 처방전으로 끝내 극복한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피 흘린 대가는 분명 크게 남겠지만 선명하면서도 아름다운 결말을 감정이라는 서스펜스와 액션, 충격적인 반전이라는 삼위 일체로 찍은 정점이 좋습니다.
다만 가족관계의 구원이라는 반복적 주제 대신 이제는 다른 관점으로 존 하트가 눈을 돌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전히 유효하지만 언젠가는 자승자박이 될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차기작에서는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보고 싶다는 것이죠. 대중은 변덕스러운 존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