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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스 문도스 ㅣ 밀리언셀러 클럽 6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 단편집 참 요상한 것이 책을 덮고 나서 천정을 보고 누워 있으면 알 수 없는 망상들이 찰싹 달라붙어 흐물흐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기분이 든다. <얼굴에 흩날리는 비>는 솔직히 별다른 감흥도 없이 평범하게 넘어갔었는데 이 책은 기리노 나쓰오 여사의 작품 스타일에 대한 세간의 평이 그냥 허언이 아니었음을 제대로 실감하게 한다. 여자가 쓴 글 같지 않다는 둥, 같은 여자를 비하한다는 둥, 어딘가 불편하고 께름칙하다는 둥 그동안 들어왔던 말들은 다 맞는 말이었네.
<식림>, <루비>, <괴물들의 야회>, <사랑의 섬>,<부도의 숲>, <독동>,<암보스 문도스>까지 총 7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어느 것 하나 범상치 않은 포스를 내뿜어주신다. 역시 <사랑의 섬>이 가장 후끈하다. 회사에서 여직원 셋이서 해외여행을 간다는 줄거리는 얼핏 봐선 흔한 일로 볼 수 있다. 여자들끼리의 여행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별다른 차이는 없겠지.... 그런데 쓰루코, 요시에, 나오코 세 여자가 상하이로 여행을 떠나는데, 각각 나이 차도 좀 있고 이전에는 별달리 친하지도 않았는데도 여행가자고 의기투합하는 걸 보면 여자들끼리는 가능한 교류인가 보다. 단지 그 점만 좀 특이하다.
그렇게 상하이에 도착해서 쓰루코, 요시에만 따로 에스테틱 숍에 가서 얼굴 마사지를 받으러 간다. 아! 그런데 이게 뭐람. 얼굴 마사지만 받기로 했는데 뜻밖에도 은밀하면서 야릇한 마사지를 받게 되면서 일순 당황, 그리고 아찔한 체험을 온 몸으로 즐기는 두 사람, 내가 다 민망하여 혼자 있는 방에서 주위를 괜시리 잠시 의식했다가 순간 강력한 몰입에 빠져버렸다. 예상치 못한 서비스체험을 계기로 세 여자는 자신들이 이제껏 겪었던 은밀한 성적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엽기와 변태가 상호 경쟁하는 노골적인 이야기들이 여자들의 솔직한 욕망으로 대입되는데 방 안 공기가 열기로 상승하는 것 같았다. 휴, 덥군 더워!!! 마치 여탕을 훔쳐보는 사춘기 소년의 심정이 이러할까? 암튼 표현수위가 파격적인 것이 야설이 따로 없다.
각자의 경험담에서 도출된 결론은 당당한 즐기기를 벗어나 피학적인 성적 욕구와 호기심이 분출되는 것으로 결말지으면서 손가락질하면서도 맛보고 또 맛보고 결국 중독되고 싶은 성인여성들의 욕망을 판타지화 했다. 물론 도덕적 판단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란 교훈도 남기지 않는다. 요 단편만큼은 여자들만 읽어야 해! 누가 너 뭐 읽고 있냐고 물으면서 페이지의 내용을 확인한다면 화들짝 놀라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고갤 숙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밖의 다른 단편들에서도 공통적으로 찌질한 여자 주인공들이 나와 왕따, 노숙, 불륜, 살인 등 어두운 소재를 바탕으로 죄의식도, 양심도, 자존심도, 체면도 내팽개치고 남자에 의존적이면서 비루한 인생을 보내고 있어 그야말로 여자 루저들의 퍼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하나같이 어딘가 나사 빠진 모습에 제대로 된 여자들이 단 한 명도 없고 나쓰오 여사의 괴이한 정신세계와 한데 어울려 별나긴 하다. 한 편으론 안쓰럽기도 하고.
같은 여자들을 비하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통해 나쓰오 여사가 말하고 싶었던 화두는 속마음이 썩어 문드러진 그녀들을 맘껏 조롱하며 내숭떨지 말라고 가차없이 채찍이라도 휘두르고 싶었던 것인지... 어쨌든 상식으론 판단할 수 없으며, 한계를 초월한 스토리에 항시 매료되는 내게 그래서 별미같은 소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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