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라스푸틴의 정원>은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살인마 잭의 고백>으로 시작했다가 단 한 권도 빼먹지 않고 차곡차곡 읽어나가다 보니 왕성한 창작열을 자랑하는 작가의 수많은 작품 리스트 중에서도 유독 애정과 관심을 갖게 되는 듯하다.
그런 이누카이가 맞닥뜨린 이상한 정황들. 딸 사야카의 병실 친구였던 소년 유키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고인을 마주한 순간, 그의 시신에서 멍을 발견하게 된다. 퇴원해서 가정 치료로 옮겨진 유키와 관련해서 부모들은 멍에 대해서 명확히 아는 바가 없다고 했지만 손과 목에는 끈으로 구속당한 자국이 부검 결과 밝혀졌기에 사건성이 의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들을 대상으로 한 사정청취에서도 학대 정황은 없었으니 이대로 수사를 끝내야만 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유사한 흔적이 남은 다른 시신들이 연달아 발견되면서, 자칫 병사나 자살로 덮어질 일련의 죽음들에서 이누카이는 범죄의 냄새를 맡게 되고 이제 수사는 본격 확대된다.
불확실 속에서 진행되던 수사는 아주 수상한 의료기관으로 이누카이와 아스카 콤비를 이끌게 하는데 심증은 있으나 증거가 부족한 안개정국 같은 단계들. 일련의 죽음들과 이 기관의 검은 연결고리를 밝혀야만 했다. 참으로 어렵고 난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쇄살인마를 뒤쫓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피해자들에 손을 댄 정황이 전혀 없는데다 일관되게 유족들의 침묵과 부인으로 커넥션의 실체를 알아낼 묘안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소설 속 제목으로 내세운 라스푸틴은 카리스마적인 능력으로 추종자를 낳고 제정 러시아의 비선실세로 국정농단을 벌이다 암살되었다고 전해지는 요승으로 알려져 있고, 주요 포인트가 이 소설의 전개에 지대한 유사점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라스푸틴의 생애 자체가 사건의 흑막에 모티브가 되는데 냉정한 이성적 사고로는 기만과 현혹에 취약한 대중들의 우둔함을 질타하게 될 수밖에 없겠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서 현실을 타파하고 싶은 당사자들에 대해 어쩔 수 없는 공분과 공감이 공존하게 되리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첨단의학과 대체의학, 그리고 민간요법 그 어느 기로에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물론 선택과 결과가 같은 출구로 나올 수가 없더라도 말이다. 한결같이 가독성 좋은 시리즈라고 또 다시 인정하게 되는 순간을 맞았으니 차기작 <닥터 데스의 재림>편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