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영역 K-픽션 20
권여선 지음, 전미세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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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픽션> 시리즈의 20번째 작품인 권여선 작가의 <모르는 영역>을 읽었다. <K-픽션>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국내와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기획된 것으로 책을 펼쳐보면 왼쪽은 한, 오른쪽은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이 색다르다. 최은영 작가의 <그해 여름>으로 이 시리즈를 접하고 난 뒤로 특유의 감성들에 빠져들 뿐만 아니라 한때는 독서와 병행하여 영어독해까지 해볼까란 생각까지 해본 적 있기도.

 

 

우선 이 소설은 명덕이 다영과 통화하고 난 뒤 그녀가 있는 여주로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전날 함께 있던 일행들과 식사를 하다 우연히 보드카를 몇 잔 마셨다고 했다. 술이 깨기를 기다리던 중에 다영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 대목은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가 갑자기 반사적으로 떠올랐다(집에 책은 있는데 여태 묵혀두고 있는데.). 더군다나 작년에 광주에서 도선우 작가를 만났을 때 권여선 작가가 술을 참 좋아하더란 이야기를 들은 기억 또한 함께 재생되었기에 정말 애주가로서의 숨길 수 없는 본능이 알게 모르게 소설 속에 드러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런데 둘은 어떤 관계인지 암시해주는 그 어떤 설명조차 발견할 수가 없다. 도자비엔날레 촬영 때문에 여주에 있다고 해서 방송국 일을 하는 구나 정도만. 그리고 다영이 명덕에게 하는 말투가 워낙 정중해서 사적으로 친밀한 사이는 결코 아니구나 싶었는데, 웬걸 막상 다영 일행이 있는 식당엘 도착했더니 아빠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 그런데 부녀지간이라고 보기엔 둘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무겁고 어색하다. 봄날임에도 불구하고.

 

 

아내와의 사별 이후 부쩍 아버지의 딸의 관계가 소원해졌음은 눈치 챌 수 있었는데 자세한 내막은 알 길 없으나 명덕이 과거 가족들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상처를 준 적 있는 것 같았다. 그 잘못이란 것이 명덕의 무심함인지 아니면 다른 그 어떤 게 있는지는 상상에 맡겨두고. 그래서 딸이 아빠에게 하는 말투는 가족끼리의 다정함이 아닌 사무적인 느낌이 강했나 보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모르는 영역>이란 우리가 살면서 맺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단정 짓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가족조차도 말이다. 사람의 모든 내면을 알 수는 없지 않은가.

    

 

여기서는 아빠의 딸 사이가 그러하다. 딸에게 아빠란 존재는 응원 받고 기대고 싶은 영웅으로 서 동경의 대상이거나 막연히 두려운 공포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아빠의 입장에서도 마냥 딸 바보일수가 없다. 역시 불편하고 어색한, 마이클 코넬리의 <다섯 번째 증인>에서도 사춘기 딸에게 다가갔다가 어떤 봉변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대목이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명덕과 다영은 여전히 불통 진행형이다. 다영의 방송국 동료들과 술 약속해놓고도 그냥 숙소에 들어가 자겠다는 명덕에게 다영은 주무시라는 단답형의 문자 메시지만 남기자 딸의 무심함에 삐쳐버린다. 그러나 사실은 딸은 아빠에게 먹일 간식거리를 사러 버스 타고 나간 상황이었다. 그 사실을 알 길 없는 명덕과 아빠가 먹다 남긴 것은 무조건 안 먹는다고 해서 일부러 사러나간 것인데 몰라주는 다영의 섭섭함이 폭발해 또 그렇게 말싸움을 하고 마는 장면이 계속 생각났다. 소통의 부재가 낳은 오해의 연속들.

 

서로에 대한 감정 표현에 서투른 아빠와 딸은 결국 나중에 화해하였을까, 그래서 해피엔딩으로 남게 될까, 모르겠다. 모르는 영역이라서 섣부른 결말로 단정 짓지 않고 어떤 여지를 남겨둔 것일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대로 아빠의 딸의 관계란 게 참 불가사의하다. 영화 <인터스텔라>와 애니 <코코>에서는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빠와 딸이 가슴 뭉클하게 만들었는데 모르는 영역을 어찌 머리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가슴으로 받아들여야지. 비록 애증이 공존하는 영역이래도 말이다. 그 쓸쓸함과 혼란을 담아낸 권여선 작가의 문체가 인상적이어서 감성이 쉽게 휘발되지 않을 소설이었다. 이 시리즈는 무조건 좋다.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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