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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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테이프를 되감아 뒷걸음질 치던 것 같던 남자가 다시 돌아왔다. 우린 그가 어떻게 봄에서 겨울로 넘어가게 되었는지 예습을 충분히 해 둔 터여서 반가운 마음에 울컥 할 뻔 했지만 동시에 낯선 기운도 함께 한다. 다가오는 이 남자는 키가 당연히 껑충했고 진중한데다 맞춤정창은 고급스럽고 세련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남자의 왼쪽 입가에서 시작한 흉터가 거의 귀까지 이어져서 섬뜩하다는 것이 가장 눈길을 끈다.

 

 

그렇게 타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해리 홀레는 완전한 유령(팬텀)이다. 그냥 해리 홀레라고 소개해주었다면 이렇게나 구슬프지 않았을 텐데. 얼굴과 복장의 미스매치. 그는 전설로 남았지만 현역이 아니었으니 어떻게든 일거리가 필요했다. 옛 상사는 그에게 잠복근무 중에 살해당한 경찰 사건을 넘겨주려하지만 해리의 의중은 다른 데 있었다.

 

 

스노우맨 사건의 여파로 사랑하는 여인 라켈과 이별해야 했던 해리는 자신을 따르던 그녀의 아들 올레그가 마약에 찌들린데다 동료 마약상을 살해한 죄목으로 체포되어 수감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던가. 함께 게임도 하면서 유망한 빙상 종목의 선수로 자랄 것만 같았던 귀여운 소년이 훌쩍 자라서 벌써 열여덟 살이 되었다니 놀랍다.

 

 

왜 이렇게나 망가져야 했을까. 떠나간 해리를 아빠처럼 생각했던 소년 올레그가 겪어야 했을 세월은 만만치가 않더라. 어쩌면 둘 다 공통점이라면 한 사람은 실제로 마약중독자이고 또 한사람은 마약중독자처럼 보인다는 거다. 노르웨이 오슬로는 새로운 마약유통의 거점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기존의 유통방식을 걷어내고 항공기가 마약의 밀반출 경로가 되었으니까.

 

 

 

누군가는 포섭당하고 또 누군가는 버너라는 이름으로 밀고자를 처단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몰래 마약을 유통하려 들고 마약에 영혼을 저당 잡힌 군상들의 먹이 사슬은 살인에 살인을 불러들인다. 확실히 불길하고 또 오싹하다. 해리가 잃어버린 가족애를 다시 회복하는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조금씩 엿보였던 게 잠시나마 봄이었었다. 라켈도 의외로 냉정하게 그를 대하지 않았었고 올레그의 누명만 벗기면 성공일 줄 알았는데....

 

 

 

아마 그렇게만 된다면 이 지긋지긋한 오슬로를 떠나 저 머나먼 곳에서 일상의 행복을 꿈꿀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운명은 참으로 잔인하다. 예상을 벗어난 지점에 해리를 떨어뜨려 놓고 가 버린다. 이제는 꿈꾸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 버린 것일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절망만이 남았다가 이 시리즈가 아직 진행형임을 깨닫고 일망의 희망을 움켜쥐었다. 안타깝고 또 아프지만 다시 도약하게 되기를. 신이시여, 용기를 주소서. 아직은.....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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