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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기록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평점 :
구간의 제목이 <우행록>이었으니 개정판의 제목을 <어리석은 자의 기록>으로 풀어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왜 제목을 그렇게 지었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책 속의 진실에 근접하고자 줄거리를 살펴본다면 도쿄의 어느 한적한 주택가에서 단란하게 살던 일가족 네 명이 모두 참살되는 끔찍한 사건이 들어 있다. 단순히 금전을 노린 강도사건을 치부하기엔 너무나 잔혹했고 그 누구도 범인의 정체는 물론이거니와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진짜 까닭이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시시각각 세간의 기억에서 지워져가던 중에, 한 르포라이터가 피해자의 여섯 지인을 대상으로 인터뷰 형식의 취재에 나선다. 그 사람들은 평소 어떠했나요? 원한 살만한 일은 없었을까요?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증언은 쌓인다. 취재대상을 어떻게 선별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르포라이터의 관점은 완전 배재된, 그들의 증언에 조금씩 귀를 쫑긋 세우면서 혹시라도 피해자에 대한 사소한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서.
가장 먼저 인터뷰한 동네 아줌마는 직접적인 교류가 없어서 그런지 상당히 호의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크게 문제 삼을만한 거리는 없어 보이는데 문제는 다른 사람이다, 죽은 부부의 지인들, 즉 요리교실 친구, 회사동료, 대학동기, 동아리 친구, 대학 선배의 순서인데 역시 피해자들에 대하여 남들이 알지 못하는 부분을 세세히 알고 있다. 누구나 살면서 그럴 수 있지 않느냐는 정도의 정보가 나오는 것 같더니 어느새 피해자들의 위선과 기만적 처신들이 술술 터져 나온다.
살아 있을 순간에는 결코 듣지 못할, 한 사람이 죽어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듣게 되는 평판이란 것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웃고 대해 주었으나 속으로 남들이 품었을 악의, 불만, 시기와 질투는 기왕 죽어버렸으니 이제 막 까발려져도 되는 것일까? 죽은 자의 어리석은 행동이 마땅히 죽었어도 될 이유인지, 마지막까지 혼란스러웠다.
그 와중에 어느 소녀인 듯한 화자의 시점은 이번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문을 뭉게구름처럼 피워 올리더니 결말에 와서야 드러나는 진실은 놀랍다. 이 세상을 온전히 산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제 아무리 처신을 잘하려 애를 써도 칼날은 어리석음을 행하기 마련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