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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랜드
신정순 지음 / 비채 / 2017년 7월
평점 :
엄마의 영은 이미 이 방을 떠나 어딘가로,
내가 모르는 어떤 영역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 가지 마.
조금만 더 있다가 가지 벌써 가면 어떡해.
할 얘기가 많은데 엄마 조금만 더 있다가.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반응이 없었다 . <선택 중에서 -93페이지->
우리 모두는 인생에 있어서 다들 각자만의 꿈이랄까,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때론 그것을 실현 못하고 실패와 좌절에 빠질 때 또 다른 돌파구를 통해 재기하거나 도약하기를 갈망하게 될 수도 있다. 그 돌파구를 모국에서 찾기 힘들면 해외로 눈을 돌리기도 하는데 작가는 유학을 위해 미국에 잠시 눌러 앉으리라 예상했으나 그대로 상주하게 된, 말 그대로 이민자가 되어버렸다.
미국에 거주하는 만큼 이민사회가 내재한 어려움, 가령 언어,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질적인 난관에 막혀 말로 표현 못 할 고통을 겪게 되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그들과 자신에게서 어쩌면 환경을 탓하기에 앞서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품어야 할 것은 품고 가리라는 대전제를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풀어낸다.
<드림랜드>는 시카고에서 범죄율이 높아 다들 인수를 꺼려하는 곳에서 도넛가게를 운영 중인 한국 여자의 이야기이다. 이 가게에는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손님으로 찾는 곳으로 다른 한국인들은 이 지역을 떠나고 없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불운을 생각하면 다시없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엄마가 남편과의 결혼을 반대했던 이유도 당연하다 싶다. 불운했던 아버지와 남편의 불운은 평행선을 달리 듯 그대로 이어졌고 성실해보였던 남편도 도통 풀리지 않는 세상사에 사람이 삐뚤어 진 듯하다. 딸에 대한 상습적인 폭력도 모자라 말리는 아내를 자신 대신에 자녀 폭행범이 되어 감옥에 들어가 줄 것을 청할 정도다.
기 막힐 노릇하다. 비겁한 변명을 들자면 영주권을 얻으려면 희생양이 필요하고 딸 학비도 벌어야하니까. 나중에 이 부부의 파행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던가. 드림랜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는 사실이, 아니 서슴지 않는 방식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가 영혼을 내놓으라면 그렇게 할 뻔 했다는 자책과 후회 또는 반성으로도 들렸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제정신이 돌아오기라도 한 것인지 안도와 함께 여전히 가슴이 아려온다.
아마도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이었던 <선택>에는 오빠만 감싸고돌면서 지나칠 정도로 딸 혜진에게는 차가웠던 엄마가 있다. 명석한 딸과 달리 학업, 건강도 시원찮은데다 성격까지 나약한 진성이 오빠의 앞길을 동생 혜진이 막고 있다며 노골적인 차별대우를 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던 혜진은 아예 등 돌리고 살아왔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나간 선 보는 자리에서 그녀는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 중인 남자와 결국 결혼해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흔히 노처녀들이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독립한다며 결혼했다는 이유처럼 엄마의 곁을 떠나버린 혜진은 오빠의 결혼식에도 참석 않고 미국생활에 젖는다. 그동안 제대로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은 처사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도 자신의 뜻을 존중해주는 남편이 고마웠기 때문이라도. 오직 드림랜드를 꿈꾸며 참 치열하게 살아갔던 이 부부. 이민자들은 아무도 발 들이지 않으려는 분야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부자나라에서 호강하지 않느냐는 타인의 무지한 편견과 점차 인간다움을 포기한 채, 생기를 잃어가는 모습들에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렇게 혜진 모녀는 악연으로 끝내고 마는 가 싶었는데 엄마의 속마음은 실상 그러지 않았나 보다. 진작 알았더라면. 모진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가슴 아팠지만 가진 걸 차마 내려놓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의 설득에 그래야 했던 혜진이 편안했으면 했다. 그래도 가지지 못한 자가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위안에 난 지금도 공감했는지 장담 못하겠다. 다만 가끔씩 눈물이 난다. 엄마가 진성이 오빠와 혜진이를 그토록 각각 차별 대우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사연에. 평생 한이 되신 어머니.
그렇게 드림랜드라는 미국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고 싶어서 때론 한국이 싫어서 많은 이들이 부푼 꿈을 안고 건너갔고 지금도 건너가고 있지만 지금까지 태어나고 자랐던 성장환경과는 많이 상반되고 낯설어 고생을 많이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도 척박한 땅에 거름을 주어 비옥한 토양을 만들 듯이 개인의 꿈과 가족의 부양을 위해 불철주야 살아가는 이민자여러분들에게 한줄기 빛이 찾아오기를, 그 빛이 행복이라는 열매를 수확하는 도구와 수단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바가 그런 것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