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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의 소식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평점 :
나쁜 짓만 하고 있으면
추억은 하나도 남지 않아.
그러면 시시하잖아...... - P.440 -
<64> 이전에도 미스터리 팬들에겐 요코야마 히데오는 익히 잘 알려져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64>가 히트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경우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게 아니었다면 작가의 존재를 망각해 버렸을지 알 수 없다. 일단 이야기의 전개는 이러하다. 경찰 간부와 경찰 담당 기자가 어울린 12월 망년회. 쌍방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차의 양쪽 바퀴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경찰과 언론의 관계란 인식이 먼저 눈에 띄는데 유착과 반목이 엉켜있는 기이한 동업자 의식이 이 작품의 초반을 지배하고 있다. 여전히.
그렇게 흥에 취해있던 중 서장에게 모종의 쪽지가 전달된다. 15년 전에 있었던 모 고교 여교사 자살 사건이 실제는 타살의혹이 유력하다는 제보였고 내일로 시효가 끝난다는 급전이었다. 참 아슬아슬하다. 당시 그 사건은 여교사가 유서를 남긴 채, 학교에서 뛰어내린 자살로 종결 되었는데 하필 지금에 와서 정보의 출처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재수사가 시작되려 하다니.
진범을 찾기 위해, 그리고 진실을 찾기 위해 소환된 용의자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세 명의 남자가 지목되어 이들뿐만 아니라 관련된 인물들은 차례차례 불려 들어간다. “루팡 작전”이라고 불리는 시험지 탈취음모가 실토되는데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기자기 하면서도 재치 있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결코 장려할 일은 아니지만 대충 학교 다니다 졸업장만 따는 것에 만족할 것 같은 이들도 성적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는 최소한의 상황에 처해 있었고 모의와 잠복, 실행까지 기지는 번뜩이지만 정작 완전범죄에 성공 못하고 발각되고야 마는 그 허술한 마무리가 웃음을 자아
낸다.
“루팡 작전”은 그야말로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할 만한 에피소드 정도로 부담 없이 읽어나갈 내용이지만 이들이 목격한 것이 따로 있다.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여교사가 이미 죽은 상태로 학교 내부에서 이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비로소 제대로 된 미스터리로 확장된다.
무엇보다 24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공소시효라는 장치 때문에 느끼는 쪼임이 탁월 하다.시간은 촉박하고 의심스러운 용의자들은 많으나 동기는 추측 불가하고. 게다가 용의자들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들어보면 어딘가 허점이랄까, 모순 이 있는 것도 같아서 교묘하게 농락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해법은 따로 존재한다. 불량한 청춘기에 상처는 존재했고 어른으로 커나가는 세월에 말 못할 성장통이 숨어 있었다. 외로움을 끈끈한 정으로 극복해서 훌륭하게 진실의 규명을 이루어낸 휴머니즘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덕분에 예상 밖 인물의 활약, 그 개입이 아니었다면 미적지근하게 마감될 수 있었을 것을 인간이라는 감동으로 후끈하게 잘 구워내었다. 그래서 청춘미스터리이자 사회파 미스터리의 매력은 이게 모범답안이란 수긍이 당연하게 느껴질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