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레퀴엠˝ / 로버트 크레이스

L.A. 레퀴엠 ㅣ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5월

아, 얼마만인가? 집 나간 자식이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기분. 다시 국내에 선보이기 힘들 거라는 예상을 무참히 비웃기라도 하듯이 로버트 크레이스의 “엘비스 콜&조 파이크” 콤비가 기습적으로 컴백했다. 물론 타 출판사에서 로버트 크레이스 작품의 출간 소문만 무성했지만 여전히 기별은 없고 대신 버티고에서 나와 준 것만 해도 고마울 따름이다. 역자 이름을 확인하고선 의외였단 생각은 따로 들지만.

<LA 레퀴엠>은 조 파이크의 과거와 현재 시점이 번갈아 나오는데 항상 선글라스에 과묵하고 웃음기가 말라 버린 하드캐릭 조 파이크의 개인사가 본격적으로 조명되면서 신비에 가까웠던 그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워치맨>에서도 조 파이크의 어린 시절이 그의 현재 모습을 형성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짤막하게 언급 되고 있지만 이번엔 모든 것이 본격적이다.

늘 술 마시고 엄마와 자신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로 인해 스스로 강자가 되어맞서 싸우고자 했던 조 파이크가 군 입대와 제대 후 경찰생활에 이르기 까지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시절을 보여 줌으로서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고양이새끼를 불태워 죽이려던 어느 십대들을 저지하다 구타당했으나 끝내 복수하고 마는 그 집요한 끈기야말로 손속에 정을 두지 않게 한 크나큰 배경일 것이다.

그런 조 파이크에겐 늘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오명이 있다. 경찰 재직시절 아동 성애자를 보호하느라 동료를 살해했다고 불명예 퇴직해 버린 그는 절친 엘비스 콜과 탐정사무소를 공동 운영 중이다. 어느 날, 조를 사랑했던 여인 카렌 가르시아의 실종 사건 수사를 의뢰받게 되지만 곧 살해된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이 사건이 과연 우발적인 것이냐에 의혹을 품는다. 곧 그렇지 않다는 사실... 이미 다섯 명의 희생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연쇄살인임을 직감한다. 범인은 영리하다. 총기와 신발을 각각 다른 것으로 현장에 흔적을 남겼다.

문제는 이 살인들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으로 토대로 되짚어 봐도 실마리가 풀리지를 않고 오히려 조 파이크가 카렌의 시신을 발견했지만 용의자로 지목된 남자를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된 게 아닌가. 알리바이도 입증 할 수 없고 목격자로 조가 맞다고 하니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이대로 당하고 있을 조가 아니지. 이송차량에서 탈출해 버린 조 파이크를 뒤쫓는 경찰들.

단순히 조 파이크만 고초를 겪는 게 아니다. 경찰에게 쫓기는 조 파이크를 옹호하려다 사랑하는 루시와 대립하게 되면서 남자들이 늘 곤란해 하는 우정과 사랑 사이, 그 선택을 두고 갈등하는 엘비스 콜의 갈팡질팡 하는 순간들이 아슬아슬하다. 조 파이크를 절대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그 마음을 남자들이라면 지극 공감하리라.

그리고 이번 작품들에는 다양한 조연들이 등장하여 맹활약 해주시는데 예전에 조 파이크를 심문하는 과정에 조의 분노를 자극해 멱살 잡혔다가 바지에 지리고 말아 별명이 “바지”인 경찰 하비 크란츠는 그날의 수치심을 잊지 못해 조 파이크를 내내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조가 몰리자 내심 쾌재를 부르며 누구보다 조를 철장에 쳐 넣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조연은 걸 크러시 여자경찰인 사만다 돌런 양이다. 여자 조 파이크 같이 무표정에 와일드한 그녀는 처음에 엘비스를 탐탁해 하지 않다가 이내 그에게 반해버린 순정녀. 그래서 늘 임자가 있는 엘비스 때문에 외기러기 같은 사랑이 안타까웠다. 억척 같이 활동했으나 제도의 그늘 아래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그녀를 추억한다.

결국 이 사건은 쉽게 풀기 힘든 실타래 같이 꼬여있다 극적으로 단서를 발견하고 사건을 원점에서 재조사하여 늦은 대처였지만 진실을 바로잡고 정의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운명을 피해가지 못했던 희생도 치렀으며 폭발하는 액션과 스릴도 마음껏 만끽해준다.“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는 서로 성격이 판이하지만 애인 사이처럼 갈라설 수 없는 찰떡궁합임을 입증해주었으니 연쇄살인범은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악용해 마지막까지 범행을 완수하려 했던 것 같다. 손에 땀을 쥐게 할 액션스릴러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라면 <Last Detective>도 조만간 국내에 소개해 주길 바란다. 설마 이걸로 퉁치는 것은 아닐 테지.

머리를 쓸어올리는 너의 모습
시간은 조금씩 우리를 갈라놓는데
어디서 부턴지 무엇때문인지
작은 너의 손을 잡기도 난 두려워

어차피 헤어짐을 아는 나에게
우리의 만남이 짧아도 미련은 없네
누구도 널 대신 할순없지만
아닌걸 아닌걸 미련일뿐

멈추고싶던 순간들 행복한 기억
그 무엇과도 바꿀수가 없던 너를
이젠 나의 눈물과 바꿔야하나
숨겨온 너의 진심을 알게됐으니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마음을 이젠 떠나리
내자신보다 이세상 그누구보다
널 아끼던 내가 미워지네

멈추고 싶던 순간들 행복한 기억
그무엇과도 바꿀수가 없던 너를
이젠 나의 눈물과 바꿔야하나
숨겨온 너의 진심을 알게됐으니

사랑보단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마음을 이젠 떠나리
내자신보다 이세상 그누구보다
널 아끼던 내가미워지네

연인도 아닌 그렇게 친구도 아닌
어색한 사이가 싫어져 나는 떠나리
우연보다도 짧았던 우리에 인연
그안에서 나는 널 떠나네

읽고 나면 이 노래 가사가 계속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