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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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참 한방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정명 작가의 소설을 처음 만나게 됨에도 불구하고 미리 섣부른 판단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 듯 밥상을 엎어버릴 때 순간 멍때리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떤 근거였을지는 모르나 장르적 접근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렇게 각 챕터별로 화자는 계속 번갈아 바뀌면서 정의라는 가치가 시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조작되는지 그 생생한 현장 보고서를 써내려가는 것이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시절, 시위현장 마다 나타나 설계, 선동한다는 운동가 최민석을 검거하기 위하여 작전을 펼치는 정보요원 김기준이 먼저 등장한다. 아무도 최민석의 실체를 본 적 없어 바람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최민석이 영웅담은 공안당국의 똥줄을 타게 만드는 데 충분하였으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잡아야 할 인물이었다. 그러나 신중히 포위망을 좁혀가던 찰나, 간발의 차이로 그를 놓쳐 버린 김기준은 작전실패의 책임을 물어 현장직에서 좌천되고 만다.

 

 

이대로 포기하고 물러나지 않겠다고 다짐한 김기준은 상관인 관리관에게 최민석의 유력한 후보인 이태주를 검거할 전담팀 결성을 요청하고 관리관은 한 번 사냥에 실패한 사냥개를 삶아 먹는 대신에 기회를 주기로 한다. 문제는 이태주란 인물이다. 고대 로마제국의 영웅 <줄리어스 시저>를 연극으로 각색하여 흥행에 성공을 거둔 연출가였는데, 평소 체제에 반하는 불온적인 연극을 상영하려는 시도가 보여 주목하다 결정적 순간에 이태주를 비롯하여 연극단원 전체를 일시에 검거해 버린다.

 

 

검거 후, 요원들은 의도적으로 이태주와 나머지 연극단원들을 분리 심문하여 당근과 채찍으로 사이를 분열시켜버려서 이 바닥에서 그의 무고함은 땅에 떨어지게 되고 모두의 원망과 비난을 사게 된다. 공안당국이 노렸던 고립의 상황. 등골이 서늘해지는 치밀함이었다. 게다가 또 다른 등장인물로 성인연극에서 노출연기로 각광 받던 김진아라는 여배우가 있어 이태주와 연출가와 출연배우로서의 인연을 맺게 된다.

 

 

여기서 혼란스러워진다. “김기준이태주최민석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태주는 자신은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고 부인한다. 그러면서 관리관을 만나서 진실을 털어 놓겠다고 한다. 사실 중반부의 연극판은 시대의 압제에 맞서 우회적으로 저항하기 위한 또 따른 방편인 것처럼 보이긴 하나 연극으로 표현되는 일련의 서술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무척 난해했다. 예술이라는 관념은 대중성과는 괴리감이 있어 어떤 진공 상태마저 느껴야 했을 정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이 모든 일에 어떤 조작된 배경이 있었음이 드러난다. 어떤 가치관의정당성을 위해 누군가는 부역하고 누군가를 뒤를 쫓는 등, 장기판의 말처럼 조종하고 조종당하는 설계도면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조작된 정의를 권력은 필요로 했던 것이고. 대의명분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 한 것이라 애써 자위하면서까지. 암울했던 시대니까 더 이상 그처럼 불행했던 현대사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던 소설. 많이 어렵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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